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歸農人 장영란의 우리 땅, 우리 맛 ③

밀 베고 팥 심고 마늘 거두고 자두 따먹고

  • 글: 장영란 odong174@hanmail.net

밀 베고 팥 심고 마늘 거두고 자두 따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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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게 행복하니 먹을거리 챙기는 일에도 열심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먹을거리는 자기가 가꾸고. 끼니마다 뭐를 해먹을까 궁리하고. 그 덕에 우리 식구 별별 맛있는 음식을 다 해먹었다. 마땅한 반찬이 없으면 얼른 나가 상추와 돌나물이라도 한 움큼 뜯어온다. 잘 먹고 잘 자니 의욕이 나는지, 자기 나름대로 ‘도전 목록’을 만들어 하나하나 해나간다. 산에 가서 나무 해와 도끼질. 그러다 군불 지피기. 마당 가꾸기. 그러다 그림 그리기. 영어 원서로 읽기. 사람들이 묻는다. “중학교 나이 큰애는 요즘 어떻게 공부를 하는지?” 그럼 나는, “먹고 자는, 그러니까 살아가는 공부요. 그러다 궁금한 게 있으면 그때 공부를 하지요.”

6월은 보리와 밀이 익어가는 망종으로 시작한다. 봄꽃이 지고 산과 들이 푸른데 그 사이사이 인동꽃이 조용히 피어 있다. 6월 하면 가뭄부터 생각난다. 논과 밭이 모두 바싹바싹 타 들어가는 가뭄.

재작년 큰 가뭄에, 집으로 들어오는 물이 끊겼다. 산에 있는 샘에서 물을 끌어와 먹는데 그 샘이 가뭄을 타곤 했다. 몇 번 그랬기에 이번에도 며칠 참으면 되겠지 하고 하루 이틀…. 열흘이 넘도록 비 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물을 길어 먹고 개울에 가서 빨래를 하고, 몸을 씻고. 나중엔 소방차가 물을 실어다 주기도 했다.

물이 끊기면 목이 더 마른다. 집에 물이 안 나오는 순간, 작은애는 물을 달라고 매달린다. 목타는 건 사람만이 아니다. 논 물길도 마른다. 모두 마른다. 사람도 들판의 곡식도. 논바닥이 드러나고, 고추야 콩 싹이야 하나 둘 타서 시들어간다. 경운기로 물을 퍼 밭에 주고. 강물을 퍼서 논에 대고. 그래도 모두 자라지 못하고 목숨줄만 부여잡고 견딘다. 이렇게 가무니 젊은 사람들 입에선 기우제 지내자는 소리가 나온다. 동네 어르신은 기우제는 하지 지나서 지내는 거라고 하고….

밀을 이삭째 군불에 그슬려



아무리 가물어도 산에 들어가면 가뭄이 사라진다. 물길은 말랐지만 그래도 산 속에 생명들은 푸르게 살아 있다. 숲에서 나는 냄새에는 메마름이 없다. 그 가뭄 끝에 마을 사람들이 산을 돌아다니며 마르지 않는 샘을 찾았다. 물맛 또한 좋다. 가뭄이 샘을 선물해주신 셈이다.

논에서는 모내기 끝에 애벌 김매기를 할 때다. 오리를 넣어도 논에 들어가 한두 번 손으로 김을 맨다. 모가 어찌 지내나, 논에 들어가 모 포기 사이를 돌아다녀 봐야 알 수 있다.

6월 벼는 가지가 벌어진다. 곁가지가 벌어져야 그 가지마다 이삭을 안을 수 있다. 따뜻한 곳은 가지가 20개까지 번다고 하는데, 우리 논에서는 열 개쯤 벌었다. 이렇게 가지가 잘 벌어지려면 뿌리 힘을 길러줘야 한다. 뿌리 힘이 좋으면 잎은 점점 짙푸른 빛을 띠고 부챗살 펴지듯 떡 벌어진다. 그렇지 못하면 겨우 두세 개 벌어지다 만다.

밭마다 곡식들이 한창 자라고 있다. 고추, 가지는 벌써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시작하니 자주 돌보아주어야 한다. 콩 싹, 깨 싹은 갓 나와 여리다. 이 어린 싹들이 풀과 벌레를 이겨내게 도와주어야 한다. 붉은팥, 콩나물 콩같이 늦게 심는 곡식도 심어야 한다. 보리, 밀, 양파, 마늘, 감자가 차례차례 익어 거두어들여야 한다.

부지런히 거두지 않았다가 아차 하는 사이 장마가 밀어닥치면 어쩌랴. 보리, 밀농사를 집에서 먹을 만큼 하기가 쉽지 않다. 아예 큰 규모라 콤바인으로 베면서 그 자리에서 털어내 건조기에 넣어 말리면 모를까, 사람 손으로 밀을 베고 도리깨로 털어 바람에 말리려면 장마하고 달리기 경주를 해야 한다.

그래서 망종(芒種)에서 하지까지가 고비다. 망종에서 하지까지 부지런히 움직여 풀을 잡고 작물마다 제자리 잡도록 이리저리 도와주고, 겨울 작물들을 거두어 갈무리해야 하기에. 이때가 대학생들이 농촌활동 다니는 때인데 정말 시골에는 일손이 필요한 때다.

한데 요즘 농촌은 그리 바쁘지 않다. 트랙터로 갈아엎은 뒤, 비닐을 씌우고, 맨땅이 드러난 곳은 풀약(제초제)을 치니 풀 잡을 일이 있나. 밀, 보리농사는 대부분 짓지를 않는다.

마을로 이사 온 우리 식구가 밀농사를 하니 마을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 밀밭을 지나며 “농사한 밀로 수제비 만들어 먹으면 구신데…” 하신다. 오래 전 밀농사할 때 먹어본 수제비가 생각나시는지. 그래서 밀을 거두었을 때 마을회관에서 밀수제비 동네잔치를 했다. 마을 어른들이 어찌나 달게 드시는지.

보릿고개 막바지인 망종에, 즐거움은 뽕나무에 달려 있다. 오디가 익으니 달디단 오디 먹고, 뽕잎도 따 먹는다. 하루 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밀 한 단 베는 풋바심(채 익기 전의 곡식을 지레 베어 떨거나 훑는 일)도 좋다. 밀을 이삭째 군불에 까맣게 그슬린다. 뜨거우니 두 손을 바꿔가며 살살 비벼, 껍질을 후후 불어내고, 따끈한 밀알을 추려 한 입 씹으면 톡톡 터지는 밀알의 맛. 아궁이에 모여 앉은 식구들 입 언저리가 시커멓다. 하루 일을 마치고 고단한 몸이지만 웃음이 절로 나온다.

우리 집에서 가장 자주 하는 전화는 131 날씨 안내전화다. 어떤 때는 하루에도 몇 번 누른다. 비 오실 기미가 보이면 모종을 옮겨 붙이고. 날이 맑으면 거두어 말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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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장영란 odong17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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