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초대에세이

집에 가서 편히 쉬라고?

  • 글: 최재천 서울대 교수·생물학

집에 가서 편히 쉬라고?

2/2
얼마 전 일본 여성들의 소송사태를 빚은 이시하라 신타로 일본 도쿄 도지사의 망언도 바로 이런 짧은 생각에서 나온 것이리라. 그는 “여성이 생식 능력을 잃고도 산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고 “지구에 심각한 폐해를 끼치는 일”이라며 “할머니는 문명이 가져온 것 중 가장 유해한 것”이라 규정했다.

하지만 이는 지극히 단편적인 생각이다. 나는 오히려 할머니의 역할이 인류의 역사를 통해 늘 막강했을 뿐 아니라 필수적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남자들이란 워낙 여자들보다 수명도 짧고 대부분 전쟁이나 사냥중에 목숨을 잃는다. 그래서 어느 인류 집단이고 정신적인 지주의 역할은 거의 예외 없이 최고 연장자인 할머니 몫이었을 것이다. 오랜 인생 경험을 바탕으로 족장의 상담역을 했을 것이다. 우리 역사만 보더라도 임금이 대비나 대왕대비를 알현해 어려운 문제를 의논하고 윤허를 받았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인간은 후번식기를 위해 번식기를 희생하는 어리석은 동물

공중위생의 개선과 의학의 발달로 인류의 수명은 점점 더 길어지고 있다. 인생 육십은 이미 옛말이 된 지 오래고 이젠 바야흐로 인생 백세가 그리 머잖아 보인다. 그렇게 되면 명실공히 번식기와 후번식기가 각각 50년씩 거의 비슷해진다. 더구나 인간 유전체의 전모가 밝혀지고 그야말로 ‘노화유전자’라도 발견되면 100세가 문제가 아니라 200세까지도 살 수 있게 되리라는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진화생물학자인 나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를 고수한다. 석기시대부터 지금까지 인간의 절대수명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석기시대에도 드물게나마 120세 정도까지 살았던 이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의학이 발달한 지금도 120세를 넘기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영아 사망률이 급격히 떨어져 평균수명이 엄청나게 늘어난 것이지 절대수명이 늘어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동안 과학의 발전이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꿨던 걸 생각해본다면 그런 일이 절대로 벌어지지 말라는 법도 없다. 만일 그런 시대가 온다면 후번식기가 정작 번식기보다 훨씬 길어지는 상당히 기형적인 삶이 펼쳐질 것이다.

그동안 우리가 갖고 있던 은퇴의 개념은 따지고 보면 “자식들도 다 길렀고 근력도 옛날 같지 않으니 편히 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대개 60세를 전후해 현직에서 물러나 조용히 남은 인생을 정리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은퇴를 한 다음 살아야 할 기간이 불편할 정도로 길어졌고 평생 건강을 잘 관리한 이들은 은퇴 후에도 웬만한 젊은이 못지않은 체력을 유지한다. 더욱이 노무현 정부의 출범과 더불어 무섭게 부는 세대교체 바람으로 은퇴 시기가 대폭 앞당겨졌다. “1급 공무원들은 봉사할 만큼 했으니 집에 가서 쉬라”는 요구는 우리 사회의 고령화 속도를 고려하지 않은, 조금은 무분별한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고령화 문제에 다분히 생물학적인 대안을 구상하고 있다. 번식기와 후번식기는 생물학적으로 확연히 구분되는 시기다. 더구나 이젠 둘 중 어느 것이 더 긴지도 알 수 없게 돼버렸다. 오히려 앞으로는 후번식기가 더 길어질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언제까지나 번식기에만 초점을 맞추고 후번식기는 덤으로 엉거주춤 따라가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다. 후번식기는 더 이상 단순한 잉여 시기가 아니다. 거듭 말하지만 일찍이 그 어느 생물도 겪어보지 못했던 후번식기의 문제를 ‘생각하는 동물’답게 합리적으로 풀어야 할 것이다. 나는 얼마 전부터 ‘인생 이모작’을 꿈꾸고 있다. 번식기 50년과 후번식기 50년을 똑같이 중요하게 맞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물들의 행동과 생태를 연구하는 나는 늘 동물들의 사회를 기웃거린다. 그러다 보면 가끔 그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질 때가 있다. 우리 인류가 지금 만물의 영장으로 이 지구를 호령하고 있지만 다른 동물들이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결코 아닌 듯싶다. 우리의 막강한 힘에 눌려 아무 말 하지 못하는 것뿐이다. 우리가 자연환경을 훼손하는 걸 곱지 않은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스스로 살 집을 부수는 우리의 어리석음을 그들은 때로 측은하다는 듯이 바라본다. 가끔은 우리를 일깨우려 적지 않은 규모의 사건을 터뜨리는 친절함도 베풀고 있다.

그들이 우리를 비웃는 결정적인 일이 하나 더 있다. 번식기를 사는 우리의 모습을 보며 그들은 끌끌 혀를 찬다. 이 세상 모든 생물은 죄다 번식기에 최상의 몸 상태와 환경을 유지한다. 자식을 기르는 일이 삶의 가장 궁극적인 목표임을 분명하게 깨닫고 실천에 옮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바라보는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기를 때 우리는 가장 힘겨운 삶을 영위한다. 집을 장만하기 위해 절약해야 한다. 먼 훗날을 대비해 당장에는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가장 잘 먹고 잘 먹여야 할 시기에 우리는 어처구니없게도 마냥 아끼며 산다. 그리고는 그 중요한 번식기를 다 보내고 난 후에야 어느 정도 생활의 여유를 만끽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잘못 돼도 뭔가 크게 잘못된 것이다. 후번식기를 위해 번식기를 희생하는 어리석은 동물이 바로 우리 인간이다. 자연계에서 유일하게 말이다. 그러면서도 막상 후번식기에 이르면 가차없이 퇴장당하고 삶을 접어야 한다. 동물들은 이처럼 어리석은 동물이 어떻게 만물의 영장이 되었는지 의아해한다. 사회는 자꾸만 늙어가는데 우리는 철없이 젊음만 노래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신동아 2003년 6월호

2/2
글: 최재천 서울대 교수·생물학
목록 닫기

집에 가서 편히 쉬라고?

댓글 창 닫기

2019/08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