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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주역’ 386 연구

세대 갈등 진원지… ‘건전 보수’의 지평 넓혀라

  • 글: 김방희 경제칼럼니스트 riverside@hanafos.com

참여정부 ‘주역’ 386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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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주역’ 386 연구
두 번째 386세대의 성공 요인은 외환위기 이후 갑자기 우리 사회에 몰아닥친 세대 교체 열풍이다. 이 바람은 단순히 정치권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쳤다. 어쩌면 이 바람은 연공 서열주의와 평생 고용제가 파괴되고 능력주의와 성과급이 급격히 확산되기 시작한 경제 분야에서 발원했거나 더 거셌다고도 할 수 있다. 나이라는 제약 요소가 사라지고 난 후 30대는 더 이상 미래를 기약해야만 하는 미성숙한 세대가 아니었다.

벤처 열기 또한 이러한 흐름과 무관하지 않았다. 새로운 창업과 사업 시스템이 등장한 것과 아울러 새로운 유형의 사업가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경험은 없었지만 젊었으며,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것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앞뒤 안 재고 돈과 관심을 이들에게 쏟아붓게 만든 요소였다. 세상은 바뀌고 있었다. 당시의 분위기는 적어도 그렇게 믿게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386세대 내부의 스타 시스템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세대는 저항을 조직화하는 과정에서 공식 조직과 지하 조직, 상층부와 하층부 등 다양한 구조를 운영한 바 있다. 그리고 이 구조의 최정점에는 소수의 핵심 인물들이 있었다. 총학생회나 삼민투, 그리고 전대협으로 대표되는 운동 조직의 지도부가 그들이었다. 노선과 성명을 통해 각종 미디어에 노출된 그들은 곧 386세대의 상징적 존재가 됐고, 정치권 러브콜의 표적이 됐다. 이들 가운데 공식 조직의 지도자들은 일찌감치 정치권에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반면 대중적 인지도가 낮은 지하 조직의 일원들은 보좌관과 비서관, 비공식 참모의 형태로 기성 정치권과 인연을 맺었으며, 이들 가운데 일부가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 탄생의 주역이 됐다. 일부 질시의 눈길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386세대 대부분은 학생운동 과정에서 개인적 고통을 감수해야 했던 그들에게 암묵적으로 대표성을 부여하고 인정하는 편이었다. 김민석 전 국회의원으로 상징되는 386세대의 스타들이 있었기에, 386세대는 실제 사회 참여 이상의 영향력과 호의적 평가를 누릴 수 있었다.

386 스타, 그 양날의 칼



국민의 정부 당시 분명해진 것처럼 스타들의 존재는 386세대에 행운이자 부담이었다. 이 스타 시스템 하에서는 필연적으로 몇몇 386세대의 노선이나 언행을 386 전체의 것으로 확대 해석할 여지가 있었다. 특히 386세대가 가장 먼저, 가장 공을 들여 진출했던 정치 분야에서 이런 폐해가 두드러졌다.

386 스타들이 연루된 추문이 잇달아 터졌다. 386 의원들이 중심이 되었던 광주 술판 사건과 허인회씨의 큰 절 사건을 비롯해 성격은 조금 다르지만 ‘강철서신’의 저자 김영환씨의 극우 발언 사건도 널리 회자됐다. 급기야 지난 대통령선거 와중에서 김민석 전 의원의 기회주의적 언행은 386세대에 대한 외부의 시각이 결정적으로 나빠지게 된 요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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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방희 경제칼럼니스트 riverside@hanaf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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