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7월호

부활하는 중남미 좌파의 얼굴

좌파이론은 정치적 슬로건… 현실과 타협하는 실용주의자들

  • 글: 곽재성 경희대 아태국제대학원 교수·라틴아메리카학 kwakwak@khu.ac.kr

    입력2003-06-25 11: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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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하는 중남미 좌파의 얼굴
    1990년대 그토록 요란스러웠던 중남미 ‘부’의 잔치는 세기가 바뀌면서 막을 내렸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발길은 뚝 끊겼고 활발했던 민영화 바람은 주춤해졌으며 국가신용도는 바닥을 치고 있다.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콜롬비아에서는 경제위기의 차원을 넘어 국민들이 서로 파괴와 약탈, 물리적으로 충돌하는 모습까지 연출했다. 1980년대 외채위기에서 탈출한 후 공고한 민주주의 하에 지속적으로 성공을 거둬온 중남미의 저력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인가.

    그런 중남미에 최근 ‘좌경화’ 바람이 불고 있다. 현지 언론에서는 ‘좌파 부활은 중남미 민중의 희망’이라고 치켜세우고 있고, 브라질의 룰라, 아르헨티나의 키르츠네르 등 이른바 좌파 지도자들이 속속 정권을 잡고 있다. 하지만 좌파 지도자나 정당이 정권을 잡았다고 해서 ‘중남미 전체에 좌경화 바람이 일고 있다’, 더 나아가 ‘좌경화된 국가들이 연대한 반미·반세계화 연합이 출현할 것이다’는 관측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필자는 현재 중남미의 좌파에 대해 논의하면서 그것의 허구성과 자기모순, 그리고 주요 국가들에서 좌파 지도자들이 집권한 현상의 의미를 중점적으로 이야기하고 중남미의 발전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좌파의 ‘마음의 고향’ 쿠바

    우선 중남미 국가들이 좌파로 회귀한다는 명제에는 세 개의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첫째,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정부와 같이 ‘현 단계의 자본주의를 버리고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도입한다’는 고전적인 의미. 둘째, 반미·반세계화 움직임에 동참하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전하는 세계사회포럼(World Social Forum)의 영향. 마지막으로 일종의 수정 자본주의인 유럽식 사회민주주의의 도입을 생각할 수 있다.



    한때 쿠바는 세계 좌파의 표상이었다. 극악한 독재와 외세를 몰아낸 영웅적인 투쟁과 미국의 압력에 굴하지 않는 자주적인 대외정책을 펼친 쿠바의 카스트로는 전세계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다. 구소련과 동구권의 몰락 후 십수 년의 세월이 흘렀는 데도 이 체제가 계속 유지되는 비결은 무엇일까. 또 쿠바는 중남미 좌파 바람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일까.

    지난 1959년 카스트로의 혁명 이후 쿠바는 국내외적인 도전으로부터 국가의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투쟁을 계속해왔다. 이를 통해 사회주의 체제의 통일성을 성공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다. 현재 반정부 세력들은 대부분 해외로 망명했기 때문에, 체제 변동을 이끌어낼 수 있는 세력이 국내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또 1990년대 자본주의적 요소를 부분적으로 도입하면서 오늘날까지 계속돼온 미국의 경제제재 정책에도 경제 위기를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쿠바의 카스트로 정부는 미국이 먹여살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의 강경한 제재정책이 쿠바 집권층에 대한 압력수단으로 작용하기보다 오히려 카스트로의 국내적 존립기반을 더 공고하게 만들고 있는 것. 게다가 미국의 반인륜적이며 불필요한 제재로 인해 아무 죄 없는 쿠바 민중이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사실은 미국을 포함한 전세계적인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

    물론 미국의 정책 결정자들이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제재를 철회할 수 없는 것은 미국 정계의 보수·강경세력과 재미 쿠바인들의 정치력 때문이다. 특히 반(反)카스트로 노선을 견지하고 있는 재미 쿠바인들이 대부분 플로리다주에 거주하면서 지역 정치인들과 언론을 통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동생인 젭 부시가 플로리다 주지사를 역임하고 있는 현실이 미국의 쿠바에 대한 정책을 쉽게 바꾸지 못하는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재미 쿠바인들은 현 정부를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경제위기로 카스트로가 무너지면 자신들이 쿠바에서 권력을 잡고 빼앗긴 재산과 권리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오늘의 사회주의 쿠바 정권은 카스트로와 반카스트로 재미 쿠바인, 미국의 보수정치권이 합작해낸 하나의 특수한 작품일 뿐이다. 이 모델을 재생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쿠바는 전세계 모든 좌파에게 있어 영원한 ‘마음의 고향’으로 남을 것이다.

    지난 1월말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레(Porto Alegre)에서 열린 ‘대안적 세계화운동’인 ‘세계사회포럼(World Social Forum)’은 여느 해와 같이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세계사회포럼은 애초 단발 행사로 기획됐다가 세계적으로 큰 호응이 일자 연례행사로 자리잡았다. 올해 3회 포럼이 개최됐고 4회 포럼은 인도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세계사회포럼의 성향은 반미·반세계화. 2회 포럼에서 발표된 ‘외채에 관한 국제민중법정 최종판결’을 보면 그 색채를 쉽게 알 수 있다.

    “북반구의 은행, 초국적기업, 정부, IMF, 세계은행과 기타 국제 금융기관들은 …(중략)… 높은 삶의 비용을 일반화했으며 제3세계의 생산 가능성과 삶의 질을 파괴했고 빈곤, 유아사망률, 사회적 착취, 죽음의 경제, 환경파괴를 증가시켰다. 이 법정은 부채의 불법성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고 …(중략)… 부채에 대한 거부와 탕감을 결정하는 대안적인 길을 제시하고자 한다.”

    세계사회포럼이 중남미의 한 나라인 브라질에서 열리며 다수의 중남미 좌파 운동가들이 참여한다고 해서 이를 중남미의 좌경화와 결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 포럼은 중남미의 정치권과는 거의 연관이 없다.

    혹자는 이 행사가 브라질 노동자당의 전략적 판단에서 나온 부산물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2001년 당시 정치적 수세에 몰렸던 브라질 노동자당이 탈출구를 마련하기 위해 이와 같은 국제적 행사를 계획했다는 것. 포럼이 열린 포르투알레그레가 지난 13년간 노동자당이 장악해왔던 정치적 거점도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동자당의 룰라가 정권을 잡은 올해의 포럼에서는 ‘노동자당의 기수인 룰라’를 옹호하는 목소리보다 ‘브라질 대통령 룰라’의 우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더욱 컸다. 따라서 이는 전혀 근거 없는 음모이론이었을 뿐이다.

    이처럼 정치는 물론 사회, 문화적으로도 중남미와 큰 연관이 없는 세계사회포럼으로 중남미 국가들의 좌경화를 설명할 수는 없다.

    현실주의자들은 “오늘날의 좌파 이데올로기는 자본주의의 틀을 유지하는 상태에서 유럽식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사회민주주의 역시 중남미의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왜냐하면 유럽식 사회민주주의를 떠받치고 있는 기본틀이 바로 국가주의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르면 국가가 고율의 세금을 거둬 빈민층에게 보조금을 지급하고 교육과 의료보장을 해주며 심지어 노후까지 책임지는 연금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그런데 1980년대 이후 지금까지 공기업 민영화와 외국인 투자 유치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온 중남미의 신자유주의 개혁의 방향은 그 정반대다. 신자유주의 개혁은 ‘시장’을 살리는 대신 ‘국가’를 죽였다.

    돈 없어 못하는 유럽식 사회민주주의

    더 처절한 이유는 중남미 국가가 아무리 사회민주주의를 도입하고 싶어도 더 이상의 재원이 없다는 것이다. 멕시코를 비롯한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이윤을 창출하는 공기업을 갖고 있는 나라가 거의 없다. 유일한 재원 마련은 세금인데 불행하게도 중남미 대다수 국가들은 세금을 거두는 데 있어 좋은 수완을 갖고 있지 못하다. 가장 두드러진 예가 멕시코다.

    멕시코의 조세징수율(Tax Collection Rate)은 GDP의 11.3%에 불과하다(미국 20%, 칠레 19%). 더 한심한 사실은 9500만 멕시코인 중에서 소득세를 납부하는 사람은 겨우 700만명에 불과하다는 것. 따라서 국가 발전의 원동력으로서 세금이 국가 정책을 뒷받침할 수 없는 형편이다.

    2년 전 취임한 폭스(Vicente Fox) 대통령은 이전 정권의 독재와 부정부패의 잔재들을 없애고 무분별한 자유화 조치로 인해 피폐해진 국민 복지수준을 끌어올리는 등 사회정책을 개혁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조세정의를 실현하겠다고 큰소리쳤다. 하지만 현재 정부가 세금을 제대로 거둬 국민의 복지수준이 대폭 향상됐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세금을 납부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국민과 기업은 물론 국세징수기관에 종사하는 공무원들도 타성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기 때문.

    멕시코에는 세원 부족을 이유로 쓰레기 처리시설 하나 설치하지 않은 주가 태반이다. 이런 상태에서 사회민주주의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무색하다. 대안이 있다면 이미 민영화된 공기업들을 다시 국영화하는 것인데, 이 역시 요즘 세계 추세에 역행할 뿐더러 실효를 거두기도 쉽지 않다.

    1970년대 초 칠레에서 시행된 아옌데 독트린을 도입하자는 목소리도 있다. 아옌데 독트린이란 동(銅)산업 부문의 다국적기업을 국영화하면서 인수대금을 계산할 때 나온 방식으로 중심논리는 다음과 같다. 그동안 기업에서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초과이익을 발생시켜 본국에 송금했기 때문에, 이를 상계하면 정부가 지불해야 할 인수금액은 없고 오히려 받아야하지만 이를 굳이 달라고 하지 않을 테니 그냥 떠나라는 것. 세계 최초로 선거에 의해 집권한 사회주의자인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이 시행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이 같은 논리가 더 이상 통할 것 같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활발한 기업활동을 하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사 한국법인을 우리 정부가 국유화하면서 ‘그동안 너희 돈 많이 벌었으니 조용히 놔두고 떠나라’면 과연 통할까?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중남미에는 좌파 혹은 대안적 좌파가 집권할 수 있는 현실적인 조건이 존재하지 않는다.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중남미에서 좌파의 집권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최근 중남미에서의 정권 교체와 우리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소위 ‘좌파’의 집권을 이해할 때가 됐다.

    부활하는 중남미 좌파의 얼굴

    2001년 아르헨티나 정부가 은행인출 제한조치를 시행하자 분노한 한 시민이 정부청사의 문을 발로 걷어차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지금까지도 경제위기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실 중남미에서 좌파 간판을 붙이고 있는 정치인들도 좌파적 정책을 실행할 의사는 전혀 없다. 마땅히 내려야 할 간판을 굳이 내리지 않은 이유는 현 집권세력의 실패에 대한 반사이익을 보기 위해서다. 현 집권세력이 실정을 하면 표심은 당연히 야당 후보에게 간다. 따라서 민중의 뜻에 의해 정권을 잡은 새로운 당선자는 기존과 다른 해법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문제는 최근의 라틴 아메리카 역사에서 ‘집권세력’이 성공한 예가 없다는 것이다. 브라질에서는 종속이론마저 버리고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쳤던 카르도주가 처절한 실패를 맛보아야 했고 멕시코에서는 71년 집권을 자랑했던 제도혁명당(PRI)이 무너지고 말았다. 한때 기대주였던 후지모리 전 페루 대통령도 실정 후 일본 망명이라는 희대의 사기극을 연출했다. 뒤를 이어 집권한 최초의 인디오 대통령인 톨레도 역시 통치력 부재에 따른 문제점을 노출하기에 이르렀다.

    극단적인 예는 최근의 아르헨티나에서 찾을 수 있다. 아르헨티나는 2001년 1410억달러에 이르는 채무를 이행할 수 없다고 선언했고 2주 사이에 대통령이 5번이나 바뀌는 드라마를 연출했다.

    따라서 실패한 현 정권에 맞서 선거전을 치른 후보들이 세계화·신자유주의 패러다임으로 경도된 기존의 정책과는 다른 해법을 내놓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브라질의 룰라도 후보시절에는 국영화를 이야기했고 아르헨티나의 신임 대통령인 키르츠네르는 경제에 대한 국가개입을 시사했다. 그들은 현 집권 세력과 차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이를 좌파로의 회귀라고 호들갑을 떨 이유는 하나도 없다. 그 근거를 알아보자.

    일단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에게 실패와 절망을 안겨준 신자유주의가 무엇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아르헨티나의 사례를 통해 신자유주의라는 정책수단을 잘못 사용할 경우 국가경제에 얼마나 치명적일 수 있는지를 살펴보자.

    아르헨티나의 사례는 집권세력이 어떻게 나라를 ‘거덜’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극단적인 케이스다. 1989년 메넴이 집권했을 당시 고작 653억달러였던 아르헨티나의 대외부채는 메넴이 물러나던 1999년 1462억달러로 무려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액수로 치면 800억달러 이상이 증가한 것이다. 필자가 굳이 이를 ‘무려’라고 표현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메넴은 집권기간 동안 국영사업의 대부분을 민간자본 또는 해외에 팔아치우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펴놓고도 국가 채무를 두 배 이상 늘려놓았다. 이런 납득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 원인은 외국인 투자의 유입이 오히려 외채증가를 부추긴 데에 있다.

    1991년부터 99년 사이에 아르헨티나의 민간기업이 차입한 외채는 9억8000만달러에서 175억달러로 18배가 증가했다. 외국인 투자가 시작되면서 초기에는 많은 자본이 유입됐지만 그에 못지않은 규모의 자본이 차츰차츰 해외로 유출됐다. 1992년부터 99년까지 외국계 기업들은 배당 등의 명목으로 75억달러를 모기업에 송금했고 외채에 대한 이자로 58억달러를 해외로 지불했으며 기타 비자금 명목으로 15억달러를 지출했다. 해외유출자본이 무려 150억달러에 육박한다. 또 1990년대 아르헨티나의 사기업이 해외에서 차입한 액수는 427억달러에 달한다.

    흔히 자유주의 개혁이라고 하면 민영화와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연상한다. 그래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일어나며 노동자는 정리해고되고 해외자본이 국내 자본시장을 잠식해 비생산적인 이윤을 추구하는 것을 상상한다. 하지만 신자유주의는 이런 식의 개혁을 절대 원하지 않는다. 자유화를 뒷받침하기 위해 적절한 규제를 하면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루는 것이 신자유주의의 이상적인 목표다.

    결국 아르헨티나의 문제는 규제 없이 지나친 자유화를 서둘러 시도한 데 있다. 칠레는 중남미에서 가장 자유화된 국가 중 하나로 인식되지만 자유화의 제도적 측면을 보면 규제 장치가 곳곳에 숨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외국인투자액의 장기 예치제도를 비롯해 외국인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면서도 핫머니의 유입은 차단, 국내 자본시장의 안정화를 꾀한 것이 그 한 예다.

    아르헨티나의 경우 개혁의 강도는 높았으나 적절한 규제가 미비했고 특히 달러와 페소를 1대1로 연동시킨 태환정책이 상당한 부작용을 낳았다. 태환정책 이후 초래된 무역 불균형은 국내생산의 감소와 실업의 증가로 이어졌고 유입된 외자는 새로운 생산투자보다 민영화하는 공기업의 지분 매입이 주목적이었다. 즉 아르헨티나는 신자유주의 개혁이 원래의 목적, 의도와 다르게 수행되면서 처절한 실패를 맛보았다. 부정부패의 문제는 논외로 하자.

    이제는 룰라와 키르츠네르라는 소위 ‘좌파’ 성향의 인물들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아볼 차례이다.

    부활하는 중남미 좌파의 얼굴

    중남미의 대표적 좌파 지도자로 꼽히고 있는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왼쪽)과 아르헨티나의 키르츠네르 대통령

    “이번 기회를 통해 우리는 …(기침)… 누가 물 좀 가져다주시겠습니까? 핑계가 좋군요(웃음). 이번 기회를 통해 루이스 이나시오 다 실바 후보가 브라질 대통령에 당선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그런데 브라질 국민들도 다 ‘실바’라고 하면 그가 누군지 전혀 모를 것입니다. 그의 애칭은 ‘룰라’입니다. 그러나 미 국무성에서는 애칭을 쓰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미 행정부의 대중남미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핵심 보직인 국무성의 미주담당차관보, 오토 라이히(Otto Reich)는 지난해 가을 헤리티지재단 연설에서 위와 같은 장면을 연출했다. 부시 행정부의 대중남미정책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그는 룰라(Lula)의 당선을 축하하면서도 다분히 의도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나타냈다. 도대체 룰라가 누구이길래 미국의 대중남미정책 결정자가 이런 무례를 범하는 것일까?

    흔히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등과 비견되는 루이스 이나시오 다 실바(Luis Inacio da Silva), 일명 룰라는 정규교육을 거의 받은 적이 없고 커피에 밀가루를 넣어 끓여 마시며 연명했을 정도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가 빵이란 것을 처음 먹어본 것이 일곱 살 때라고 한다. 그 후 룰라는 브라질의 금속노조지도자로서 정치에 입문했고 1980년 노동자당을 창당해 제도권의 정치인으로 변신한 후 거대하지만 지극히 불평등한 국가인 브라질에서 노동자와 가난한 계층의 대변자 역할을 자청해왔다. 그렇다면 소수의 지배 엘리트가 정치, 경제를 장악하고 있는 브라질에서 룰라가 당선된 배경은 무엇인가? 이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룰라는 지난 8년 동안 브라질을 통치했던 페르난도 카르도주 대통령의 경제 실정(失政)에 대한 반사이익을 얻었다. 미국 달러와 브라질 화폐 헤알을 1대1의 환율로 유지하는 고정환율제를 통해 인플레이션을 막고 외자를 끌어들인다는 카르도주의 헤알 플랜은 단기적으로는 성공했다. 고질적인 인플레이션이 잡혔고 자본유입도 두 배 이상 늘어났기 때문. 하지만 1990년대 중반 미국 달러의 강세가 나타나면서 여기에 고정된 헤알의 가치가 과대 평가되어 브라질의 수출 경쟁력은 크게 약화됐다. 더욱이 시장개방의 조류와 맞물리면서 수입이 급증해 무역적자가 크게 확대됐고 이 때문에 외자를 더 끌어들이려 이자율을 올리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둘째 브라질의 정치가 소수 엘리트가 독점하는 ‘과두제’에서 탈피, 민주화됐다는 점이다. 카르도주 정부는 경제 운영에는 실패했지만 브라질에 제도적 민주주의를 비교적 공고히 다졌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받고 있다. 또 브라질에서는 누가 대통령이 되든 시장경제의 틀을 깰 수 없다는 점을 유권자들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룰라의 좌파 전력에도 브라질 국민은 룰라를 대통령으로 선출하는 데 전혀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

    셋째 룰라 자신의 이데올로기 성향도 극좌에서 중도로 변했다는 점이다. 한때 룰라는 대통령이 되면 외채의 지불을 중단할 것이며 민영화된 기업을 다시 국영화하겠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그는 선거운동기간 이 모든 주장을 뒤엎었다. 또 지난해 8월 대통령후보로서 300억달러의 IMF 차관도입에 동의하면서 현 정부의 재정·금융 정책을 지속할 것을 약속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중도성향의 지지세력을 대거 확보했고 이는 국내외 자본세력의 불안감을 불식시키기에 충분했다. 좋던 싫던 그는 최소한 ‘중도’의 반열에 오른 셈.

    출범 6개월을 맞이하고 있는 현재 룰라 대통령의 인기는 하늘을 찌른다. 노동자나 저소득층을 위해 획기적인 사회보장프로그램을 가동한 것도 아니고 외채지불중단을 선언해 브라질인의 자존심을 세계만방에 고한 것도 아니다. 이유는 단 하나, 각종 경제지표가 양호하기 때문이다. 브라질의 국가위험도는 지난해 9월 2440에서 올 4월 937로 크게 낮아졌다. 지난해와 비교해 헤알화의 달러 대비 환율은 30%이상 떨어졌고 상파울루 증시를 포함해 각 주가지수들은 올라갔다. 1/4분기 대미무역적자가 개선됐고 해외자본도 다시 들어오고 있다. 금리는 연 25%에서 26.5%로 상향조정된 덕분에 인플레의 조짐도 보이지 않는다.

    룰라 대통령은 노동자당(PT)과 다른 좌파연합의 지원을 받아 당선됐지만 지금까지의 정책은 카르도주 전 대통령의 신자유주의 노선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이에 대해 재계와 해외자본들은 환호를 보내고 있는 반면 예상했던 대로 좌파 내부에서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그는 취임 전 원대한 빈곤퇴치프로그램을 제시했지만 아직 구체적인 목표 설정조차 하지 못했다. 농업개혁은 정부부처간 이견으로 지지부진하다. 최대현안인 사회보장제도 개혁문제에 대해서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 노동자당과 노동자단체들은 여기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대통령후보’ 룰라는 한때 좌파였는지 모른다. 그러나 ‘대통령’ 룰라는 절대 좌파가 될 수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신자유주의 개혁을 그대로 추진하는 것 외의 별다른 정책수단이 없는 것이다. 아니면 즉시 외채지불중단 선언을 하고 주요 외국기업을 국유화해야 하는데, 세계화시대에 이런 정책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대통령 룰라의 선택 갈래는 이미 하나밖에 없었다.

    최근 중남미의 문제에 대해 우리 언론이 저지르는 가장 큰 오류는 소위 ‘좌파 바람’에 대한 책임 없는 강조와 반복이다. 몇 년 전 칠레에서 사회당 출신의 라고스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도 ‘칠레에 좌파가 집권했으니 뭔가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식의 보도가 유행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물론 라고스 칠레 대통령이 젊었을 때 제법 과격한 사회주의자였던 것은 사실이다. 또 1960∼70년대를 살았던 칠레의 지식인 대부분이 좌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제도화의 수준이 중남미에서 가장 높고 신자유주의 개혁이 그래도 가장 성공한 곳이 칠레다. 그런데 대통령 한 사람이 예전에 가졌던 이데올로기 때문에 사회가 하루아침에 바뀌리라고 분석하는 것 자체가 우습다. 이와 마찬가지로 룰라의 변신도 브라질의 정치, 경제 구조를 조금이라도 알고 나면 그다지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 언론은 룰라, 키르츠네르, 차베스, 카스트로 등 최근 집권한 중남미 지도자들을 묶어 반세계화 좌익연대로 보고 있다. 물론 이들은 서로에게 신뢰를 보내는 지도자들이지만 그들이 연대하여 공식부문에서 반세계화 투쟁을 했다는 얘기는 아직까지 들어본 적이 없다.

    우리 언론은 또 아르헨티나의 신임대통령 키르츠네르를 ‘주변적’인 정치인으로 소개하며 굳이 좌파로 묘사하려 한다. 아르헨티나 경제가 어려운 것은 극단적 우파 정책인 신자유주의가 실패한 때문이며 이를 치유해야 하는 새로운 지도자는 (당연히) 좌파라는 식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현지 언론이나 아르헨티나 사정에 정통한 전문가들은 지금 어떤 시각으로 아르헨티나의 정권교체를 바라보고 있을까.

    우리 언론이 좌파 수사학에 몰입해 있는 것과 달리 그들은 새 정권의 등장이 아르헨티나 부르주아 지배 엘리트층을 재편시킬 것이라는 주제에 대해 심도 깊은 논의를 벌이고 있다. 이는 지주, 수출업자, 미국계, 유럽계 등 복잡하게 얽혀 있는 아르헨티나 엘리트층의 권력구도가 바뀌고 있다는 뜻이다. 또한 그들은 국가재정을 풀어 각종 정책을 시행하겠다는 키르츠네르의 정책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갖고 있다. 그러려면 세금을 더 걷거나 외부에서 차입해와야 하는데, 아르헨티나의 사정상 국민들에게 세금을 더 걷기는 힘들다. 결국 어디선가 빌려오는 것, 즉 적자재정을 운용하겠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IMF의 주요 정책 권고안은 반대로 흑자재정이다. 키르츠네르가 세계 최고 권력기관의 심기를 건드리는 행동을 할 수 있을까.

    교육에 집중투자해야

    중남미의 좌파가 ‘진짜’ 좌파가 아니라는 설명은 지금까지 충분히 했으니 이젠 중남미의 암울한 현실에 대한 해결책을 이야기해보자. 최근 몇 년 동안 중남미 사람을 만날 때마다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있다.

    “한국이 1960년대부터 고도성장을 이룩하여 1990년대에 거의 선진국 문턱에 들어선 것은 이해할 수 있다. 아시아의 다른 국가들도 그랬으니까. 그러나 IMF 외환위기를 어떻게 그렇게 빨리 벗어날 수 있었는가? 그건 정말 놀라운 일이다. 중남미 국가들은 아직도 허덕이고 있는데.”

    그들은 자신들이 똑같이 겪었던 경제위기에서 유독 한국이 빨리 탈출한 이유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데 언젠가 한 국내 교수가 이에 대한 명쾌한 답변을 했다.

    “그게 바로 삼성전자(로 대표되는 기업들)가 있고 없고의 차이지.”

    그렇다. 중남미 발전에 대한 답은 바로 여기에 있다. 국가경제에는 돈을 벌어오는 기업이 있어야 한다. 그 분야가 굳이 자동차나 반도체일 필요는 없고 1차산물이라도 국내 사회경제구조를 왜곡시키지 않고 안정적으로 생산, 수출할 수 있는 품목이면 된다. 외화를 벌어 우선 외채를 상환하고 지속적인 구조개혁을 통해 국가경제의 효율성을 추구해나가야 한다. 또 하나 중요한 과제는 국가 차원에서 돈을 벌었으면 그 자본이 국내에 재투자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해주는 것이다.

    아시아와 라틴 아메리카 경제의 기본적인 차이는 국내 저축률에 있다. 아시아의 경우 국내 저축률이 높아 기업활동에 필요한 자본을 국내에서 어느 정도 조달할 수 있지만 저축률이 매우 낮은 중남미의 경우 채무의 형태든 투자의 형태든 필요한 자본을 항상 외부에서 조달해야 했다.

    그럼 어떻게 하면 돈을 버는 산업이나 기업을 육성할 수 있을까. 또한 어떻게 하면 그 돈이 해외로 빠져나가지 않고 국내에 건전하게 재투자되게 할 수 있을까.

    그 해답은 바로 교육에 있다. 중남미는 학교교육과 사회교육을 공히 국가적인 역점사업으로 시행하여 좋은 기업가와 좋은 정치인들을 배출해야 한다. 교육은 국가 발전이라는 당면과제를 풀어내고 그들의 유럽적 ‘이상’과 제3세계적 ‘현실’의 간극을 메워주는 유일한 해결책이다. 또 교육을 통해서 ‘나라 만들기’와 ‘국가 정체성 세우기’ 작업을 해야한다. 사실 중남미 국가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국민들이 ‘국가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데 있다.

    국가 정체성 세워야 나라가 산다

    2001년 외환위기로 국가부도사태를 맞았을 때 상당수 아르헨티나 중산층들은 장롱 속에 감추어두었던 이탈리아 여권을 뽑아들고 이탈리아 대사관으로 달려갔다. 그들은 ‘사실 나는 이탈리아 사람인데, 우리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잠시 여기 와서 살았을 뿐이다. 난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외쳤다. 이 충격적인 사건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반복되는 아르헨티나 경제위기의 근본 원인은 정책보다는 아르헨티나인들이 자기 정체성을 거의 못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무책임한 경제정책을 펴는 것이고 틈만 나면 자본을 국외로 반출시키는 것이다. 오죽하면 앙드레 말로가 아르헨티나의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존재하지 않았던 제국의 수도”라고 했을까.

    혹자는 축구를 보면 아르헨티나 국민들도 상당한 애국심을 가지고 있다고 항변할지 모른다. 하지만 축구시합에서 나타나는 나라 사랑과 하나된 모습은 단기적인 최면일 뿐이다. 경기가 끝나면 최면도 풀린다.

    오늘도 아르헨티나를 비롯해 대다수 중남미 국가들이 국민들에게 국가 정체성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결실은 한두 세대가 지나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좋은 기업가와 좋은 정치가가 나타난다면 그 시간은 단축될 수도 있다. 이런 지도자는 훌륭한 교육에서 배출된다. 민중연대와 사회보장의 문제는 그 후에 생각할 일이다. ‘국가 정체성 세우기’, 그리고 이를 위해 ‘훌륭한 교육체계 만들기’가 바로 오늘날 라틴 아메리카의 희망일 것이다.

    (한국라틴아메리카학회에서는 기초학문 진흥육성을 위한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라틴아메리카의 신자유주의 경제개혁과 사회문화변동’이라는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1980∼90년대 라틴 아메리카를 규정지었던 신자유주의 개혁을 주대상으로 하여 주요 나라들의 경제개혁의 성과와 과제, 개혁에 대한 시민사회의 대응 등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또 라틴아메리카의 현주소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한 예측을 시도한다. 이 글은 프로젝트 성과물의 일부임을 밝혀둔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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