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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비화

박지원, 노무현만은 ‘배신’않을 것으로 믿었다

  • 글: 송국건 영남일보 정치부 기자 song@yeongnam.com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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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고문의 이런 몸을 사리지 않는 지원사격에 DJ는 매우 흡족해했다고 한다. 언론과 ‘나홀로 전쟁’을 벌이던 DJ 입장에선 노무현 고문의 적극적인 가세가 더할 나위 없이 고마웠던 것이다. 오죽하면 이때의 노무현 고문 연설 내용을 녹음 테이프로 들은 뒤 전국 각 지구당에 돌려 홍보자료로 이용하게 했을까.

이런 일을 겪으면서 민주당 대선후보와 관련한 DJ의 의중이 ‘믿을 수 있는’ 노무현 고문에게로 기울었다는 게 대선과정을 지켜본 정치권 인사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물론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당시 권노갑 고문을 중심으로 한 동교동계 구파는 이인제 최고위원을 적극 밀었다. 권노갑 고문 계열의 현역의원들과 젊은 당료들이 이인제 캠프에 속속 합류했다. 이에 신파 쪽에서 적극적인 견제 필요성을 느끼던 시점이기도 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물증은 아직 없다. 다만 몇 가지 정황은 찾아 볼 수 있다.

첫째, 2002년 3월부터 시작된 후보경선을 앞두고 당내의 DJ 측근들에 의해 ‘게임의 룰’이 노무현 후보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고쳐졌다. 당내 기반이 없던 노무현 후보로선 국민경선제 도입이 승리의 발판이었다. 16개 지역별로 실시된 경선 순서도 ‘노풍’을 일으키기에 안성맞춤으로 짜여졌다는 분석도 있다.



둘째, 광주경선에서 ‘노무현 돌풍’을 일으키는 데 DJ의 청년조직이었던 ‘연청’이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갖가지 후문이 있다. 광주에서 1위를 장담했던 한화갑 후보는 당시 경선 결과가 나오자 “어젯밤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다”며 의혹을 표시했다.

셋째, ‘박지원 사람’들의 노무현 캠프 합류다. 언론과의 전쟁이 소강 상태에 접어들고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분위기가 무르익던 시점인 2001년 말에 박지원씨는 10·25 재보선 참패 후 제기된 당 쇄신 요구에 의해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직에서 물러나 야인으로 있었다. 이때 박지원씨의 핵심 측근이던 유모씨와 윤모씨가 노무현 캠프에 합류했다. 그러자 정치권에서는 경선을 앞두고 노무현 후보를 밀기로 한 DJ의 뜻에 따라 박지원씨가 이 두 사람을 노무현 캠프에 ‘파견’한 것 아니냐는 말이 파다했다. 유씨는 이후 후보교체론이 본격화되는 시점에서 사실상 노무현 캠프 중심부에서 멀어지게 된다.

이밖에도 경선 직전 일부 방송사들이 ‘노풍’을 연일 보도하는 과정에 청와대 정무수석실의 입김이 작용했다든지, 유종근 후보가 박지원 특보를 만난 직후 구속됐다든지 하는 등의 정황을 내세우는 관계자들도 많지만 확인은 되지 않고 있다.

“DJ측이 먼저 배신했다”

경선에서 일어났던 ‘1차 노풍’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을 찾아가 ‘YS시계’를 보여주며 절한 일, DJ와의 차별화 실패, 김대중 대통령 세 아들의 비리 의혹, 민주당 장악 실패, 정책 비전 결여, 경솔한 언행, 일부 언론의 견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노무현 후보의 인기는 시들어만 갔다.

설상가상으로 2002년 6월 월드컵 4강 진출의 효과로 정몽준 국민통합21 대표의 인기가 치솟았다. 결국 10월 중순에 이르러선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이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정몽준 대표와의 3자 대결에서 15% 안팎까지 떨어졌다.

이 과정에서 노무현 후보 진영은 ‘청와대 음모론’을 제기한다. 단순히 지지율이 떨어져 후보교체를 검토하는 게 아니라 국민경선 이전에 짜여진 각본에 따라 노무현 후보 낙마를 시도한다는 것이었다.

참여정부에서 요직을 맡고 있는 한 386세대 측근은 최근 “DJ를 등에 업은 박지원씨는 물론 한화갑씨를 비롯한 동교동측이 국민경선 이전부터 정몽준씨를 여당의 대선후보로 내세우기 위한 시나리오를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가 주장한 시나리오는 이렇다.

‘먼저 대세를 타고 있던 이인제를 가라앉히기 위해 경선에서 노무현을 띄운다. 이후 월드컵을 통해 정몽준이 뜨면 당내 동교동계를 동원, 노무현을 아웃시킨다. 그렇게 되면 대선은 이회창 외에 이인제, 노무현이 독자 출마해 정몽준과 대결하는 4자구도로 치러진다. 이 경우 이인제가 수도권에서, 노무현이 영남권에서 이회창의 표를 잠식하는 반면, 민주당 후보로 나설 정몽준은 호남과 수도권에서 고정표가 있는 만큼 정권을 재창출할 수 있다.’

이 시나리오는 가변적인 정치상황을 감안하면 일단 일방적 주장으로 받아들여진다. 다만 참여정부 실세들이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은 이들이 ‘우리는 DJ 정부에 부채가 없다’는 인식을 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 후보경선과 대선을 치렀던 참여정부의 한 인사는 “DJ 사람들은 (우리에게) 도덕적으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행위를 했다. 그들은 이회창을 이기고, 자신들의 기득권만 보장해준다면 누가 대통령이 돼도 좋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비난했다.

꽃잎은 바람을 먼저 배신했기에 바람을 탓할 수 없었고, 바람도 꽃잎을 보호해줄 채무감을 느끼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신동아 2003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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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송국건 영남일보 정치부 기자 song@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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