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8월호

미 하원, ‘北 경수로사업 영구폐기’ 법안 통과시켰다

  • 글: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강정민 원자력정책센터·핵공학박사 jmkang55@hotmail.com

    입력2003-07-28 17: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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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 하원, ‘北 경수로사업 영구폐기’ 법안 통과시켰다

    지난해 8월 촬영된 KEDO 경수로 공사현장(위). 경수로사업을 폐기하는 내용의 법안이 하원을 통과했음을 알리는 에드워드 마키 미 하원의원의 발표자료(왼쪽)

    ‘9월 중순의 어느 날, 미 의회는 ‘깡패국가들(Rouge States)’에 대한 원자력 관련부품의 반입을 완전히 금지하는 콕스-마키 수정안이 의결됐음을 공포한다. 이에 대해 미 국무부 대변인은 “행정부 의도와는 무관하게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사업이 중단될 수밖에 없음을 유감으로 생각한다”는 논평을 발표한다.

    격앙된 평양은 외무성 담화를 통해 “부시 행정부가 의회를 핑계 삼아 민족을 압살하려 한다”며 “미국은 애초부터 제네바합의를 준수할 생각이 없었다”고 강력히 비난하고 나선다. 이틀 뒤 설상가상으로 함경남도 신포에서 경수로를 건설중인 한국인 근로자 4명이 북한측 근로자에 대한 집단폭행 혐의로 북한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는 ‘조선중앙통신’ 보도가 이어진다. 사건기사가 거의 없는 북한 언론으로서는 극히 이례적인 보도였다.

    KEDO 사무국은 “합의서에 따라 조정위원회를 개최하자”고 제안하지만 아무런 답변도 돌아오지 않는다. 다급해진 청와대는 급히 이들의 신병인도를 요구하고 나머지 600여 명의 건설인력을 귀환시키겠다며 ‘한겨레호’를 띄우지만 북측 군사경계수역 진입지점에서 북한의 ‘단호한 입항 불허‘와 발포경고를 받고 끝내 회항하고 만다. 백악관은 긴급담화를 내고 “안전한 통행로의 보장, 중재재판소를 통한 분쟁해결 등 합의서에 명시된 의무를 지키지 않으면 ‘강력한 대응조치’가 뒤따를 것”이라는 경고를 날린다.

    어렵게 연결된 위성전화를 통해 신포 현장에 있는 건설인력의 두려움에 찬 목소리가 방송전파를 타자, 사상 초유의 ‘인질극 상황’에 대해 국내 여론은 폭발한다. ‘결단’을 촉구하는 보수단체 시위대가 광화문 거리를 가득 메우고, 언론은 연일 ‘특단의 조치’를 주문해댄다. 사건 발생 일주일이 지난 9월말, 미 해군 태평양사령부 소속 항공모함이 신포 앞바다에 도착하고 한미연합사는 데프콘 3를 발령한다. 이날 밤 청와대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어 ‘구출을 위한 군사행동’을 승인한다….’

    이상은 ‘미 의회發 경수로 건설중단’이 야기할 수 있는 극단적인 위기상황을 가상해본 시나리오다. 문제는 이러한 극단적인 시나리오에 적잖은 개연성이 있다는 사실. 특히 경수로사업 중단이 단행될 경우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658명의 한국인 근로자들이 ‘인질’이 되는 상황도 벌어질 수 있다는 예상에 대해서는 정부 관계자들 또한 완전히 부인하지 못하고 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북한이 그렇게 ‘막 나갈’ 리는 없다고 보지만, 모든 상황에 대해 다양한 위기대처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1994년 1차 북핵 위기 해결의 ‘열매’였던 KEDO 경수로가, 날이 갈수록 첨예화하고 있는 2차 북핵 위기 와중에 한·미·일의 ‘애물단지’가 된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신동아’가 원자력 전문가들과 미국 소식통을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이미 미 의회는 KEDO사업을 일시에, 영구적으로 폐기시키는 법안을 마련해 하원을 통과시킨 것으로 밝혀졌다. 우리 정부가 부시 행정부와 일본 정부를 설득해 ‘현상유지’에 매달리고 있는 동안 위기는 예상치 못했던 미 의회의 강경파 의원들로부터 구체화되고 있는 셈이다. 과연 ‘미 의회發 9월 위기설’은 현실화될 것인가. 한반도는 KEDO 경수로사업 중단이라는 암초를 만나 최악의 상황으로 빠져들 것인가.

    첫 삽은 감격스러웠지만…

    1997년 8월19일, 함경남도 신포에는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여름 내내 가뭄을 겪어 말라 있던 대지는 이날 내린 가랑비로 촉촉히 젖었다. 오후 2시, 신포시 금호지구에는 이 흐뭇한 비를 맞으며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행사장 단상에는 ‘케도 원전 부지 정지공사 착공’이라고 쓰인 현판이 걸렸다. 참석한 KEDO 관계자들과 취재진들은 한마음으로 성공적인 역사를 기원했다. 이어진 기념발파와 리셉션. 말 그대로 ‘축제의 날’이었다.

    이날 장선섭 경수로기획단장이 연설문을 읽어내려갔다. “분단 이후 처음으로 경험하게 되는 남북 건설인력 간의 노력을 통해 하나의 민족으로서 화해와 협력의 장이 열리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감격에 떨렸다. 다음날 신문에는 ‘신포의 작은 통일’ ‘남과 북의 대역사’ ‘역사적 첫 삽’ 같은 활자들이 1면을 가득 메웠다. 1993년 북한의 핵확산방지조약(NPT) 탈퇴로 불거진 위기를 해결하며 체결된 제네바합의의 성과가 3년 만에 가시화되는 시점이었다.

    이날 착공된 경수로건설 공사는 1994년 10월 북한과 미국이 서명한 제네바합의문에 따라 이행되는 사업이었다. 북한의 플루토늄 핵시설을 동결·해체하는 대가로 발전용량 1000MWe 경수로형 원자력발전소 2기를 제공하기로 했던 것. 또한 미국은 첫 경수로가 완공될 때까지 대체에너지로 북한에 매년 중유 50만t을 공급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이듬해 3월 한·미·일 3국은 이 사업을 담당할 KEDO를 설립했고, 12월에는 ‘경수로공급협정’을 체결하기에 이른다. 이후 KEDO 경수로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의미하는 DJ정부 햇볕정책의 상징물 가운데 하나였다. 크고 작은 마찰음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7월에는 경수로 운영과 관련해 북한측 요원 25명이 남한에서 훈련을 받았고 8월에는 콘크리트 타설 등 공정을 본격화해 순풍을 탄 듯 보였다.

    그러나 점차 수위가 높아지는 북미간의 긴장은 사업을 상당부분 지연시켰다. 당시 경수로공급협정에 따른 후속의정서 협상 스케줄은 거의 지켜지지 않았고, 제네바합의의 최종목표인 북한의 핵시설 동결 및 해체를 위한 인도일정과 8000여 개 사용후 핵연료의 처분에 관해서는 논의조차 시작되지 않았다. 특히 원자력 사고시 손해배상 문제를 다루는 의정서에 대해 세부적인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도 문제였다.

    이러한 분위기에 결정타를 날린 것이 지난해 10월 켈리 미 특사의 방북 이후 급격히 고조된 북핵 위기였다. ‘북한이 비밀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는 의혹으로 시작된 위기는, 같은해 11월 미국의 대북 중유공급 중단을 계기로 북한이 핵동결을 해제하는 등 하루가 다르게 악화됐다.

    “어떻게든 계속해야 한다”

    이에 따라 미국 의회와 싱크탱크의 보수적인 논객들은 언론을 통해 경수로사업의 즉각적인 중단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CNN 등 미국의 주요언론들은 제네바합의 폐기와 경수로사업 중단을 기정사실화하는 리포트를 연일 쏟아냈다. 10월30일 미 민주당 의원 29명은 경수로사업의 영구중단을 촉구하는 서한을 부시 대통령에게 발송하기도 했다.

    상황이 장기화하자 당초 유보적이었던 미국 정부의 입장도 강경해졌다. 이러한 변화를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 지난 6월12일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열린 한·미·일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TCOG) 회의. 이날 미국 대표는 그동안 비공식 경로를 통해서만 전달됐던 경수로 중단 가능성을 공식 제기했다. 이와 함께 일본도 ‘일시 중단 검토’ 등 강경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런가하면 7월15일에는 “신포 현장에 있는 미국대표가 9월초 철수할 예정”이라는 미 정보소식통의 말을 인용한 ‘동아일보’ 기사가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경수로사업의 완전종료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지만, 미국대표가 철수한다면 사실상 사업이 중단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다급해진 것은 한국 정부였다. 윤영관 외교통상부 장관은 6월17일 캄보디아에서 열린 한·중·일 외무장관 회담에서 리자오싱 중국 외교부장에게 “북한측이 경수로사업 진행을 위한 KEDO와의 협상에 조속히 응하도록 설득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6월30일에는 방한한 찰스 카트먼 KEDO 사무총장을 만나 경수로건설 중단시의 문제점에 대해 논의하기도 했다. 한편 7월15일자 동아일보 보도에 대해서 경수로기획단측은 “미국대표 철수는 전혀 논의된 바도, 들은 바도 없다. 진위 여부를 알 수 없다”며 파장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현재 한국 정부가 집중하고 있는 포인트는 ‘손해배상보장의정서’ 부분. 당초 올 9월1일부터 일본 업체가 공급하기로 예정돼 있던 원자로배수탱크(RDT·Reactor Drain Tank)를 반입하기 위해서는 북한이 KEDO와 사고발생시의 손해배상 문제에 대한 협정을 맺어야 한다는 것이 미국측 입장이다.

    북한은 “경수로공급협정에 따르면 손해배상보장에 관한 의정서는 RDT 따위의 부속설비가 아니라 핵심인 원자로 연료 공급 전까지만 맺으면 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수로공급협정 11조2항은 ‘북한은 ‘핵연료집합체의 선적에 앞서’ KEDO와 배상협정을 체결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손해배상협정이 완료되지 않아 RDT 공급을 승인 못하겠다는 것은 미국측의 억지라는 것이 북측의 반박이다.

    사라지는 8억7000만달러

    한국 정부는 양자를 설득해 어떻게든 사업을 계속함으로써 불필요한 위기를 막겠다는 입장이다. 경수로기획단 관계자는 “2호기 기초토목공사를 먼저 시작하는 등, RDT 이외의 부분부터 공사를 계속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중”이라고 전했다. 이는 사업이 중단될 경우 북한을 자극해 사태가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판단 때문. 그에 비하면 하루 약 100만달러 내외의 지연비용은 감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가 가장 염려하고 있는 것은 현지에서 일하고 있는 우리측 건설인력의 안전 문제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는 한편으로는 북한이 논의에 응하도록 유도하는 한편, 손해배상협정이 필요 없는 다른 공사를 먼저 진행하도록 미·일을 설득하는 작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사업유지를 위한 한국 정부의 전방위적인 노력은 사실상 의미 없는 일이 될 가능성이 높다. 미 의회 강경파 의원들이 발의해 만든 ‘콕스-마키 수정안(Cox-Markey Amendment)’ 때문이다. 경수로사업 자체를 완전히, 영구히 폐기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수정안은, 1954년 제정된 ‘원자력법(Atomic Energy Act)’에 두 조항을 삽입하는 방식을 통해 지난 4월11일 247 대 175라는 적지 않은 표 차이로 하원에서 가결됐다.

    미 하원, ‘北 경수로사업 영구폐기’ 법안 통과시켰다

    6월12일 하와이에서 열린 한·미·일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TCOG) 회의. 미국은 이 자리에서 경수로사업 중단 가능성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원자력법 제14조 끝에 새로 삽입되는 수정안의 첫 번째 항목은 ‘국무부 장관이 테러행위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분류한 모든 국가에 대해, 어떠한 연방기관도 원자력 생산 및 이용시설에 사용될 수 있는 모든 부품, 기술, 물질, 정보, 용역을 제공하도록 허용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같은 법 170항에 하위조항으로 첨가되는 두 번째 항목은 ‘국무부 장관이 테러행위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분류한 모든 국가의 원자력 시설에서 발생할 수 있는 핵사고에 대해 미국 정부에 책임을 부과하는 어떤 계약이나 협약도 맺을 수 없다’는 내용이다.

    수정안의 첫 번째 항목이 효력을 얻게 되면 미국은 신포에 설치하기로 예정되어 있는 경수로 2기의 공급을 허가할 수 없게 된다. 이 원자로의 원천설계를 미국이 담당했기 때문에 원자력협정에 따라 미국의 허가 없이는 해당 기술의 북한 반입이 금지되는 것. 한마디로 경수로사업 자체가 사라지는 셈이다.

    두 번째 항목은 손해배상에 대한 정부보증 문제를 다루고 있다. 북한에 제공될 예정이었던 원자로 부품을 생산하는 웨스팅하우스 등 미국 원자력 기업들은 이 법에 따라 정부의 보증 없이 북한에 납품해야 한다. 그러나 이 경우 핵사고시 면책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개인보험에 전적으로 의존해 부품을 공급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이를 감수할 기업은 없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북한이 생각을 바꾸어 손해보장 관련논의에 응한다 해도 사업을 맡을 업체를 찾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4월29일 미 상원에 상정된 이 법안은 5월5일과 6일 이미 두 차례에 걸쳐 검토됐고 현재 의사진행 일정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미 의회 사정에 정통한 한 한국계 로비스트에 따르면 이 법안은 “9월 중순 발효될 것으로 보인다”는 것. 법안을 발의한 마키 하원의원실의 공보담당 비서관은 ‘신동아’와의 전화통화에서 “상원의원들의 반응이 좋아 통과를 확신하고 있다. 하원에서도 상당히 큰 표 차이로 가결되지 않았느냐”고 답했다.

    문제는 이 수정안이 행정부 결정사항이 아니라 의회를 통과하는 ‘법안’이라는 점. 때문에 부시 행정부가 경수로사업 유지를 결정한다 해도 이를 뒤집을 수는 없다. 한 발 더 나아가 조속한 시일 내에 북핵 위기가 풀린다 해도 관련법의 재개정 이전에는 KEDO 경수로사업은 폐기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특히 이 수정안이 ‘다른 모든 법에 우선하여’ 즉시, 영구히 시행되는 것으로 되어 있는 까닭에 타협의 여지는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이는 한국 정부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태’다. 우선 당장 사업중단으로 인한 북한측의 격한 반응과 신포에 있는 남한측 건설인력의 안전이 가장 큰 문제다. 또한 그동안 경수로사업에 투입한 8억7000만달러의 돈도 고스란히 허공으로 사라진다. 부품을 제조중인 두산중공업 등의 업체에 위약금까지 물어주어야 한다. 제네바합의에서 미국은 경수로건설에 투입되는 직접비용은 전혀 부담하지 않고, 대신 이미 중단된 중유공급만을 책임지기로 했었다. 금전적인 측면만 보자면 미국은 잃을 것이 없는 셈이다.

    무관심, 무대응, 근거 없는 낙관론

    KEDO 경수로사업을 일시에 날려버릴 강력한 수정안을 상정한 마키 의원(Edward J. Markey)과 콕스 의원(Christopher Cox)은 어떤 인물들일까. 우선 마키 의원은 미 하원 에너지통상위원회 및 본토안보위원회 선임위원으로 ‘대량살상무기(WMD) 비확산에 관한 공화 및 민주 양당 태스크포스’의 공동의장을 맡고 있으며, 콕스 의원은 본토안보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직함에서 알 수 있듯 미 의회의 대표적인 대북 매파로서 지난해 북핵 위기가 다시 불거지기 수 년 전부터 경수로사업 중단을 줄기차게 주장해온 의원들이다.

    특히 마키 의원실은 수정안이 하원을 통과한 직후에 배포한 자료에서 “두 수정법안의 하원 승인은 북한을 핵무기 획득으로부터 떨어뜨려놓기 위해 경수로 2기를 뇌물로 제공하는, 현재로서는 도저히 신뢰할 수 없는 (KEDO) 프로그램을 땅에 묻기 직전 ‘관(棺)에 못질을 하는’ 작업”이라고 밝혔다.

    이렇듯 코앞에 닥친 ‘미 의회發 9월 위기 시나리오’에 대해 한국은 어떤 대응책을 갖고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콕스-마키 수정안에 대해 구체적인 대응책을 마련한 정부 관계부처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경수로사업을 총지휘하고 있는 장선섭 통일부 경수로기획단장은 “진행상황을 지켜보지 못해 정확한 내용을 모르겠다. 관련 법안의 하원 통과 소식은 처음 듣는다”고 말했다. 사업 진행을 맡고 있는 한국전력 이영일 KEDO사업처장 또한 “그런 법안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외교통상부 담당자 또한 내용을 정확히 알지 못하기는 마찬가지. 이 담당자는 “경수로사업과 관련이 있는 법안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보고는 들어왔지만, 하원을 통과해 상원에 계류중이라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에 대한 대응책 또한 구체적으로 검토한 바 없다는 것. 주미한국대사관의 관계자 역시 “이 문제와 관련해 의회 관계자들을 접촉한 적은 없다”고 답했다.

    한편 마키 의원실의 공보담당 비서관은 “한국 정부 관계자가 이 법안에 대해 의견을 개진하거나 면담을 요청한 사실이 있느냐”는 ‘신동아’의 질문에, “예전에 정책토론 차원에서 만난 적은 있지만 이 법안에 대해 의견을 나눈 적은 없다. 특히 4월 하원 통과 이후 한국정부 관계자를 만난 일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변했다.

    대신 원자력 전문가들이 부분적인 정보를 갖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관련 연구기관에 몸담고 있는 한 전문가는 “콕스-마키 수정안에 대한 자료를 확인하고 과기부에 전달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과기부 담당자는 “내부적으로는 검토했지만 이를 다른 관계부처에 전달·보고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보고라인의 상층으로 올라갈수록 심했다. 북핵 위기와 관련해 실무를 맡고 있는 청와대 외교담당 라인의 한 관계자는 “관련 움직임에 대해 언뜻 이야기를 들은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설마 상원까지 통과하겠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이 청와대 관계자가 제시한 낙관론의 근거는 “미국이 독자적으로 경수로건설 중단을 강행함으로써 국제적 비난을 자초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앞서 말한 한국계 로비스트의 분석은 전혀 달랐다. 한마디로 “미 의회의 최근 분위기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이야기”라는 것이었다. 이라크전 이후 민주·공화 양당의 강경·보수화 경쟁과 의원들의 ‘깡패국가에 대한 적개심 과시하기’ 분위기를 감안하면 법안 통과는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견해였다.

    또한 부시 행정부 입장에서도 내심 끝내고 싶지만 한국을 의식해 머뭇거리고 있는 경수로사업을 의회에서 폐기시켜버린다면 못 이기는 척 끌려갈 공산이 크다는 것. 설령 부시 행정부가 국제적 비난을 피하고 싶어한다 해도, 의회가 그것까지 고려할 리 없다는 설명이다.

    그런가 하면 이 법안의 통과로 인해 직접적인 피해를 입게 되는 미국의 원자력회사 웨스팅하우스 관계자는 지난 7월11일 상원 외교위를 통과한 ‘북한난민 구호법안’을 예로 들어 비교하며 콕스-마키 수정안의 발효 가능성도 결코 적지 않다고 말했다. 탈북자들에게 미국에서 난민지위나 망명을 신청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는 이 법안은, 남북한을 두 개의 국가로 인정해 ‘북한 주민은 한국 국민으로 간주하지 않는다’고 명문화했다. 당초 한국 정부 관계자들은 이 법안에 대해 “우리 정부를 고려할 수밖에 없는 미국 정부의 입장을 감안할 때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한 바 있었다.

    지금이 바로 ‘외교’가 필요한 때

    만약 전문가들의 예측대로 콕스-마키 수정안이 발효된다면, 이 때문에 경수로사업이 폐기되고 분위기가 악화되어 ‘인질극 상황’이 벌어진다면, 그래서 서두에 그려본 가상 시나리오 같은 최악의 위기가 닥친다면, 그때는 과연 누구에게 책임이 돌아갈 것인가.

    우선은 한반도 평화나 핵 위기 해결보다 ‘테러국가 응징’을 택한 미 의회의 매파 의원들을 비난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위기가 어디에서 오는지 미리 감지하고 대응하지 못한, 이 때문에 자국 국민을 위기에 빠뜨린 한국 정부 또한 분노 섞인 비판의 소리를 피하기 어려울 듯하다. 다행히 상황이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자국에게 불리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강대국의 결정을 미리 막아내는 일, 그런 작업이야말로 ‘외교’가 맡아야 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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