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9월호

흙을 밟아야 살 수 있는 사람들

  • 입력2003-08-25 17: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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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흙을 밟아야 살 수 있는 사람들
    농사꾼 송씨

    도랑말에 40대 농사꾼 송씨가 살고 있다. 식구는 올해 87세가 되는 어머니와 단 둘뿐. 자기 땅으로 밭이 너 마지기쯤 되는데, 남의 땅을 더 많이 부친다. 논농사는 없고, 고추·호박·오이·배추·무 같은 밭농사만 한다. 거름을 장만해서 땅을 잘 가꾸는데, 부지런하고 성실하기로 이웃 마을까지 소문난 진짜 농사꾼이다.

    이 송씨는 5, 6년 전 나이 40이 채 안 되었을 때 서울 색시와 결혼을 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온 마을 사람들이 반가워했다. 그런데 서울 색시는 4년 가까이 살다가 그만 몰래 집을 나가버렸다.

    서울 색시는 송씨와 같이 사는 동안 남편을 도와 일하는 법이 없었다. 밥조차 허리 꼬부라진 늙은 시어머니가 짓고 반찬도 시어머니가 장만해야 했다. 남편이 죽자살자 일해서 겨우 번 돈으로 옷이고 살림살이 물건이고 도시 사람 흉내내어 사들이기를 좋아했다. 그리고 흔히 밖에 나가 음식을 사먹고 술을 마셨다.

    이러자니 살림살이가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하지만 송씨와 그 어머니는 참았다. 때가 되면 괜찮아지겠지 하고 기다렸던 것이다. 또 자식을 낳게 되면 그 자식 때문에 사람이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가 색시가 도망을 친 것이다.



    여자가 도망친 것이 마을에 알려지자 이웃 사람들이 가출신고를 해두어야 한다고 해서 신고를 했다. 가족이 어디로 가버렸는 데도 신고를 하지 않으면 가족을 학대하거나 쫓아냈다는 것으로 되는 모양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송씨가 아내의 가출신고를 하기 전에 벌써 도망친 그 여자가, 자기는 학대를 받고 쫓겨나왔다며 재빨리 고소를 해놓은 상태였다. 이래서 송씨는 맞고소를 하게 되었다.

    당신이 집을 나간 것은 친정에 가 있는 것인데, 남편이 무능하고 시어머니가 학대했다는 것은 도무지 말이 될 수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사실을 적어서 맞고소를 한 것이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도 송씨 집 사정을 잘 알고 있는 터라 송씨가 낸 고소장의 사실이 어디까지나 옳다는 것을 진정서로 써서 함께 내었다.

    이런 경우에 참 이상하게도 판사가 여자 쪽을 편들게 되어 있는 모양이다. 판결이 났는데 처음에는 남자가 여자에게 위자료를 몇 천 만원이나 내도록 했다가 마지막에 가서 천여 만원으로 줄여서 이혼을 하게 되었다.

    이제 송씨는 여자들이 겁나서 결혼을 할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아주 바쁜 농사철에는 도시에 사는 누이가 가끔 와서 허리 꼬부라진 어머니를 도와준다. 송씨 어머니는 요즘 힘이 달려 겨우 쌀 씻어 밥 짓고 간단한 반찬 장만하는 일을 하고 있다. 방에 앉아 있을 때는 허리를 바로세워 앉아 있는데, 걸어갈 때는 허리를 90도로 꼬부려서 마치 기어가듯이 간다.

    더러 도시 사람들이 찾아오면 나는 이 착한 송씨 이야기를 해주면서, 왜 도시의 여성들이 이런 훌륭한 농사꾼과 함께 살고 싶어하지 않는가 하고, 더구나 여자들에게 묻는다. 그러면 농사일과 농촌 생활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찬양하던 사람조차 벙어리가 되어 대답을 하지 않는다.

    사람이란 동물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그리고 대관절 법이란 것이 어째서 그렇게 되었나? 농사꾼과 결혼해서 도무지 사람이라 할 수 없는 태도로 살다가 도망친 여자에게 도리어 위자료를 주도록 하다니, 이것이 여남평등이고 민주주의인가? 이래 가지고 농촌이고 도시고 우리 사회가 어떻게 제대로 되겠는가? 나는 이 송씨 일에서 분노가 치밀어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일이 너무나 많이 일어나고 있다. 이런 사실을 여성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보는지 묻고 싶다.

    같은 도랑말에 혼자 사는 노인이 있다. 성은 김씨. 나이는 일흔. 부인은 오래 전에 농약을 마시고 죽었다. 딸 하나, 아들 둘을 두었는데, 모두 서울 근처에 나가 산다. 딸은 시집을 갔지만 아들 둘은 아직도 결혼을 못 하고 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 학교도 못 다니고 일만 하는 사람은 도시에 나가서도 결혼 상대가 없다. 마을에서 결혼한 딸은 남편이 술고래로 살다가 결국 술로 죽고 말았다. 하도 가진 것이 없어서 혼례식을 치르지 못하고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낳고 살았는데, 남편이 술로 거의 죽게 되자 마을 사람들 도움으로 마치 송장하고 혼례식을 치르듯이 했다. 그렇게라도 죽기 전에 예식을 올려야 된다고 해서다.

    이 김노인은 남의 집 머슴으로 살다가, 지금은 남의 밭을 조금 부치고 품팔이로 살아간다. 손수 밥을 지어 먹으니 빚은 물론 없다. 다른 데서도 말했지만 농사 많이 지어서 그것을 팔아 돈벌이하려고 하는 사람치고 빚 없는 사람이 없지만, 자기 식구들이 먹을 만큼 짓거나 품을 파는 사람은 빚 없이 살아간다. 도시에 나가 있는 두 아들의 도움을 받는 것도 아니다. 그 자식들 때문에 생활보호대상자로 혜택을 받을 수도 없어, 도리어 자식들이 큰 짐으로 되어 있다.

    차를 타면 멀미가 나는지, 아무리 먼 길이라도 걸어다닌다. 요즘은 이발을 하거나 무슨 씨앗을 사야 할 때, 이삼십 리를 걸어서 면사무소가 있는 곳이나 금왕읍까지 걸어다닐 뿐이다. 한 해 동안 몇 번만 그렇게 걸으면 그만이다. 경운기고 무슨 기계고 손대지 않고 다만 호미로 김매고 괭이로 골을 타는데, 어쩌다가 소를 빌릴 수 있으면 그 소로 밭을 갈기도 한다.

    김씨 노인이 공짜로 부치는 산골 밭뙈기가 3킬로미터쯤 되는 곳에 있어, 한번은 우리 아이가 트랙터로 갈아주고 싶어서 그곳을 찾아가게 되었다. 그래서 노인을 안아서 트랙터에 태웠다. 그랬더니 깜짝 놀란 노인은 그만 기겁을 하고 차에서 문을 열고 기어나오다시피 해서 나와버렸다. 그러고는 밭을 못 갈아도 좋으니 차는 타지 않겠다고 했다. 그래 할 수 없이 노인과 같이 걸어서 십리 가까운 곳으로 가서 그 밭 자리를 알아놓고 다시 돌아와 트랙터를 몰고 가서 갈아주었는데, 밭 가는 시간보다 걸어다닌 시간이 더 걸렸다고 한다.

    이 근처 사람들은, 어떤 사람도 이 노인이 차를 타는 것을 보지 못했다. 면 직원들도 가끔 기회가 있어 이 노인을 차에 태워주려고 했지만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고 한다.

    김씨 노인은 어째서 그토록 차를 타지 않겠다고 하는가? 언젠가 한 번 차를 탔다가 심한 멀미가 나서 혼이 났는지도 모른다. 옛날부터 시골 사람들은 차를 타게 되면 거의 모두 멀미를 한다. 차를 타고 단 1분도 안 되어 속이 울렁거리고 토하기 예사다. 그런 고통이 없고 차 속이 지옥으로 느껴진다. 이것은 내가 어렸을 때부터 차멀미를 하도 많이 해서 그 누구보다도 잘 안다. 하지만 사람들 가운데는 나처럼 차를 못 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처음부터 차를 즐겨 타는 사람이 있다. 이 둘 중에서 차를 못 타는 사람은 산짐승이나 들짐승에 가까운 몸 상태가 그대로 남아 있는 사람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이런 사람은 현대의 기계문명 속에서는 그 생리를 맞출 수 없다. 하지만 참으로 깨끗한 자연의 심성을 잃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김노인은 참으로 보기 드문 산사람 들사람이다. 그 오랜 세월 온갖 바깥 환경이 이 노인을 마치 장난감처럼 마구잡이로 괴롭혔을 터인데도 끝내 제 몸과 마음을 지켜왔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차를 범보다 더 무서워하는 사람. 이런 사람이 우리 시대에, 더구나 바로 내 이웃에 한 사람이라도 살아 있다는 것이 이만저만 위안이 되지 않는다.

    쇠붙이집과 정신병자

    내가 있는 마을에서 찻길까지 가는 산기슭 길을 빙 돌아가면 왼쪽 산위로 지금은 부도가 나서 텅 비어 있는 큰 공장건물이 쳐다보이고, 그 공장 높은 옹벽 아래 마을 사람들이 사는 집이 네 채 있다. 그 중 한 집은 쇠붙이로 된 조립식이다. 그 집에는 70쯤 되는 노인 내외와 아들이 살았는데, 그 집에 들어가 살기 시작한 지 한 해 가까이 되자 할머니가 그만 정신병에 걸리고 말았다. 사람을 못 알아보고, 말을 횡설수설 알 수 없게 했다. 정신병원에 데리고 가서 2년 동안 치료했지만 낫지 않았다. 영감님이 생각 끝에 아무래도 낫지 않을 바에는 차라리 집에서 같이 사는 데까지 살아야겠다며 데리고 왔다. 집에 와서 다시 한 해가 지난 뒤 할머니는 세상을 떠났다.

    이 일을 두고 우리 아이는 “사람이 쇠붙이 속에 갇혀 살면 병들어요”했다. 정말 그럴까? 그렇다면 그런 조립식 집에 사는 사람이 적지 않고, 그런 사람들이 죄다 병들어 있어야 하는데, 왜 그렇지 않은가 하고 물으면, “사람의 체질에 따라 얼마쯤씩 그 정도가 다르겠지만, 그 사람들 몸 어딘가에 조금씩은 다 고장이 나 있을 거고, 그래서 그 병통이 자기들도 모르게 자꾸 더해갈 겁니다” 하고 대답한다.

    우리 아이 말은 물론 과학으로 증명된 것이 아니고 그저 그렇게 느낀것을 말하는 것이겠지만, 이런 직감이란 것을 사실은 나도 아주 중요한 사람의 능력이라고 생각하고 있기에, 이 쇠붙이집과 사람의 질병의 관계를 좀 생각해보고 싶어졌다.

    지난 한 달 동안 나는 서울 변두리에 있는 어느 병원에 입원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가끔 그 병원의 1층과 2층을 승강기로 오르내려야 했다. 승강기가 몇 군데 있었는데 그 중 한 곳에 들어가면 도무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고약한 쇠붙이 냄새가 나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때마다 나는 들이쉬는 숨을 멈추고 내쉬기만 하면서 오르내렸다. 내가 앉아 있는 휠체어를 밀고 다니는 우리 아이도 숨을 못 쉬었다고 했다. 만약에 내가 그런 쇠붙이통 속에 살고 있다면 1년이 뭔가, 단 하루도, 아니 몇 시간 만에 숨막혀 죽을 것이다. 이래서 우리 부자는 또 쇠붙이집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정신병으로 죽은 그 할머니 얘기를 좀더 자세히 하자면, 앞에서 말한 그 부도난 큰 공장이 들어서기 전에는 그 자리가 농사꾼들 집이 일곱 채 모여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그런데 6, 7년 전 어느 정부권력자를 등에 지고 있다는 소문이 난 사람이 와서 그 마을 집들을 죄다 사서 산을 깎아 크게 터를 만들어 공장을 지었다. 마을에서 쫓겨난 일곱 집 가운데 네 집이 그 공장 옹벽 밑으로 내려가고, 세 집은 아주 다른 마을로 옮겨갔다.

    이 노인네 내외와 아들은 옛마을 어귀 바로 길가에 집을 가지고 있었다. 제 땅도 없고 집만 가지고 남의 땅을 소작으로 일하면서 살았지만, 그 집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흔히 그 집에 들어가 쉬어갔다. 그래서 그 집은 마치 사랑방같이, 주막집같이 언제나 사람들의 정다운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내가 알기로도 옛날부터 밤낮 사람이 모여드는 집은 결코 돈 많이 가진 부잣집이 아니고 가난한 집이었다.

    아무튼 공장이 들어서게 되어 마을 사람들은 모두 떠나야 했다. 집 값을 많이 준다니까 잘 됐다고 좋아했다. 평생 큰돈 한 뭉치를 쥐어본 적이 없는 농사꾼들에게는 천만원이 아니라 오백만원이라도 눈이 번쩍 띄었던 것이다. 공장 쪽에서는 처음에 그 노인네한테 집 값으로 오백만원을 주겠다고 했고, 노인네도 그렇게 받기로 승낙했다. 이 소문을 듣고 우리 아이가 찾아가서 말했다. “제가 일천만원 드릴 테니 저한테 파세요.” 그리고, “이천만원 안 주면 절대로 팔지 마세요” 했다. 이 말을 듣고 노인 내외와 그 아들이 크게 놀라면서, 이거 모처럼 큰돈 벌게 된 걸 놓쳐버리는 것 아닌가 싶어 곧이듣지 않다가, 마을 사람들도 우리 아이 말대로 버티어보라고 해서 결국 이천만원으로 결정되었다. 그런데 공장 쪽에서는 그 이천만원을 돈으로 안 주고 그 값이 될 만큼 땅을 사고, 집은 조립식으로 지어주고 말았던 것이다.

    또 하나, 여기에 보탤 이야기가 있다. 한 할머니가 서울에 나가 있는 아들 집에 찾아가게 되었다. 그 아들은 꽤 높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가던 날 밤에는 승강기를 타고 올라갔으니, 그렇게 땅에서 높이 올라가게 된 줄을 몰랐다. 그런데 자고 일어나 창문으로 가서 바깥을 내다보고는 그만 깜짝 놀라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벌벌 떨었다. 일어서지도 못하고 그대로 앉은 채 엉덩이를 뒤로 미기적거리면서 벽 쪽으로 가서 기대고는 말했다. “얘들아, 어서 나를 집으로 데려다줘. 여기 앉아 있을 수 없어.” 그래 아들은 아침 대접도 못 하고 그 어머니를 시골 집으로 데리고 갔다고 한다.

    이 할머니 얘기를 전에 들은 적이 있는데, 우리 아이가 하는 말이 “바로 그 할머니가 조립식 집에서 정신병으로 죽은 할머니입니다” 했다. “아, 그랬구나. 그렇다면 그 할머니는 쇠붙이집에서 그렇게 병들어 죽을 수밖에 없겠다.”



    이래서 나는 흙집에 살면 건강해진다는 것도 믿는다. 도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온갖 병들이 먹는 것을 비롯해서 공기며 시끄러운 소리 따위와도 깊은 관계가 있지만, 언제나 갇혀 있는 집과도 관계가 있다고 본다. 한편 옛날부터 가지고 있던 그 깨끗한 몸과 마음을 아직도 잃지 않고 있는 자연인은 오늘날 기계문명의 해독을 놀랄 만큼 재빠르게, 심각하게 입게 된다는 사실도 틀림없다고 믿는다. 산짐승 들짐승들이 자꾸 죽어가듯이, 종달새와 제비가 사라지고 무지개를 볼 수 없듯이, 그리고 인디언들이 백인들에게 짓밟혀 죽어갔듯이, 가장 착하고 아름다운 우리 겨레가 이렇게 해서 사라진다는 것은 얼마나 서글픈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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