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시론

市場이 모든 경제주체를 차별케 하라!

평등주의 함정에 빠진 한국경제 살리는 길

  • 글: 좌승희 한국경제연구원장

市場이 모든 경제주체를 차별케 하라!

2/6
市場이 모든 경제주체를 차별케 하라!

<그림 2> 총요소 생산성 증가율
자료:한국경제의 성장요인분석:1963~2000(김독석 외·KDI 2002년)

그런데 최근 KDI의 연구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총요소 생산성은 1964∼1970년에 6.64%, 1981∼1987년에 5.18% 증가한 반면 경제개혁이 본격화된 1988∼2000년에는 증가율이 오히려 3.42%로 반감됐다. 다른 곳에서 나온 관련 연구들도 거의 모두 이와 유사한 추세를 보여준다( 참조). 이렇게 보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 정체는 사실상 1980년대 후반, 보다 정확하게는 1987∼88년경부터 시작됐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며, 따라서 우리나라는 거의 지난 15년 동안 ‘질적 성장’이 정체됐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1987∼88년 이후 지난 15년 동안 경제개혁의 기치 아래 ‘관치경제·관치금융’으로 특징지어지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제운영 방식을 극복하고 경제 선진화를 이끌기 위해 노력해왔다. 경제개혁이란 사람과 자본을 많이 쓰지 않고도 주어진 자원을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질적 성장을 높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질적 성장이 특히 경제개혁이 가시화된 이후 지속적으로 정체되고 있음이 드러난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간 무슨 개혁을 어떻게 해왔기에 과거의 성장동력은 약화되고 오히려 개혁의 목적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했느냐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이에 대한 답을 구하려면 1960∼70년대에 관치경제·관치금융에도 불구하고 이뤄낸 연평균 8% 이상의 고속성장 동인을 찾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박정희 패러다임’의 성공요인은 ‘관치 차별화’]

1961∼79년의 박정희 대통령 집권 18년 동안 고속성장을 가져온 경제발전의 동인은 ‘잘하는 경제주체가 보상을 더 받는’ 철저한 차별화 정책이었다. 시장경제는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장치다. 시장은 경제주체들에 대한 끊임없는 평가를 통해 열심히 노력해서 성공하는 경제주체에게 자원을 집중시키는 차별화 장치다. 이러한 차별화 원리를 철저히 구현하는 경제는 발전하지만, 차별화 원리에 역행하는 경제는 정체를 면하지 못한다는 게 경제발전의 기본원리다.



‘박정희 패러다임’의 핵심은 한마디로 ‘정부는 스스로 돕는 자만을 돕는다’는 철학이었다. 정부의 개입 속에서도 잘하는 경제주체를 보상하는 차별화의 경제발전 원리를 철저하게 구현했다. 산업정책을 추진함에 있어서도 잘하는 기업을, 새마을운동을 하면서도 잘하는 농촌을 더 격려하고 지원했으며, 심지어 원호 대상자들을 지원할 때도 자립을 전제로 할 만큼 거의 모든 분야에서 차별화의 원리를 견지했다.

당시 산업정책의 핵심이던 수출지원정책을 살펴보자. 1965년부터 매월 대통령 주재하에 수출진흥확대회의가 열렸는데, 이 회의에서는 통상과 관련된 장관, 업계 대표, 금융계 대표 등 유관기관 대표들이 참석해 월별·품목별·지역별 수출동향을 점검하고 수출증대를 위한 시책과 애로 타개 방안을 논의 결정했으며, 특히 연말회의에서는 그해 수출 유공자에 대한 격려와 시상이 있었다.

수출증대를 위한 각종 지원시책도 중요했지만, 보다 특기할 만한 것은 수출 유공자들에 대한 격려와 시상이었다. 이 행사는 그해 대한민국 최고의 (수출)기업을 뽑는 일종의 ‘미인대회’와 다름없었으며, 여기에서 상을 받으면 최고의 우량기업으로 인정받아 각종 금융혜택이나 정부 지원을 받는 데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었다. 따라서 수출기업들은 수출실적을 늘리는 것을 지상과제로 삼았으며, 그 결과 한국의 모든 제조기업들을 수출전선에 뛰어들도록 유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수출진흥전략의 특징은 시장검증을 통해 성과를 인정받은 ‘잘하는 기업’을 밀어준다는 의미에서 차별화 원리를 실천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당시의 대기업들을 국제경쟁에 노출시킬 수 있었을 뿐 아니라, 품목에 관계없이 ‘총수출액’을 경쟁목표로 설정했기 때문에 서로 다른 업종의 기업 간 경쟁을 촉진시켜 당시 국내 독점기업들의 지대 추구 행위를 완화시킬 수 있었다.

[차별화의 역동성과 부작용]

박대통령은 1970년부터 새마을운동으로 농업부문의 구조조정을 시도했다. 새마을운동 첫해에 정부는 전국 3만4000여 개 마을에 시멘트 등을 지원했다. 그 이듬해에 성과를 평가한 결과 1만6000여 개 마을은 목표를 100% 달성했지만, 나머지 1만8000여 개 마을은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박대통령은 공화당과 장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성과가 좋지 않은 마을은 더 지원하지 않았고, 성과가 좋은 마을만 지원했다. 그러자 지원을 받지 못한 1만8000여 개 마을 중 6000여 개의 마을이 자력으로 참여해서 100% 이상의 성과를 올렸다. 다음해 박대통령은 이들 6000여 개 마을도 지원했다.

이러한 메커니즘이 새마을운동의 열기를 전국적으로 확산시켰다. 만일 두 번째 해에도 똑같이 나눠먹는 식으로 지원했다면 새마을운동은 성공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박대통령은 전국의 농촌을 참여도가 가장 낮은 ‘기초마을’, 이보다 좀더 열심인 ‘자조마을’, 그리고 가장 성과가 높은 ‘자립마을’로 구분해 자조마을과 자립마을에만 물자를 지원케 했다. 박대통령의 차별화 철학은 원호대상자의 경우에도 자립·자활 의지가 있는 이들만 지원한다는 원칙에 따라 실천됐다.

2/6
글: 좌승희 한국경제연구원장
목록 닫기

市場이 모든 경제주체를 차별케 하라!

댓글 창 닫기

2019/09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