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0월호

한·중 관계 변화에 대한 美 정책엘리트들의 시각

진전은 필연, 밀착은 경계

  • 글: 정재호 서울대 교수·국제정치학

    입력2003-09-26 14: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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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중 관계 변화에 대한 美 정책엘리트들의 시각

    지난 7월7일 중국 베이징을 방문해 후진타오 주석과 만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

    한미 동맹 50주년을 맞은 2003년의 시점에서 볼 때 한미 관계의 환경은 반세기 동안 참으로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동아시아 전역에서 냉전구조가 해체되고 한국은 중국 및 러시아와 선린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1998년 이후 남북한 관계에서도 적잖은 긍정적 계기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한미 동맹관계의 적절한 재조정에 대한 요구와 협의가 서울과 워싱턴 양쪽 모두에서 제기되고 또 진행되고 있다.

    돌이켜볼 때 한미 관계는 공조와 협력이라는 큰 틀 속에 갈등과 마찰이 내재된 구조였지만, 북한이라는 실재하는 위협과 그에 대한 공동봉쇄라는 목표 하에서 동맹은 무난히 유지될 수 있었다.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김대중 정부(1998~2003)가 추진했던 ‘햇볕정책’은 북한에 대한 적극적 개입과 교류를 통해 남북한 관계에 관한 한 한국을 주(主)조종사의 자리에 앉혔으며, 클린턴 행정부는 이러한 한국의 주도성을 상당히 포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2000년 6월의 역사적인 남북한 정상회담도 이러한 맥락에서 성사될 수 있었다.

    2001년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한국의 ‘상호주의를 결여한’ 대북 정책에 대해 견제가 시작되었다. 게다가 2001년 9월11일의 테러참사는 미국이 바라보는 국제정치의 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바꾸어놓았으며 북한이 이라크나 이란과 같은 ‘악의 축’ 성원으로 분류되면서 한반도에 대한 한미간의 시각에 가시적인 차이가 두드러지게 됐다.

    설상가상으로 2002년 10월 북한이 비밀리에 진행하던 농축우라늄 계획이 밝혀지고 이어 미국이 중유공급을 중단하면서 소위 ‘제네바 합의(Agreed Framework)’에 따른 북핵 동결의 구조가 깨졌다. 그 후로 북핵 문제의 완전하고도 ‘불가역적인’ 해결을 위해 3자 회담 및 6자 회담이 열렸으며 한미간 공조와 협의가 강조되고는 있지만 여전히 북한에 대한 압력 사용에 대해 한국과 미국 사이에 적잖은 차이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이 와중에 국내에서는 한미 동맹에 대한 관점 차이로 보수와 진보 간의 논쟁과 대립이 가열되고 있다. 동맹 대(對) 민족이라는 이분법적 논의의 구도도 잘못된 것이지만 국가전략에 대한 논의가 북핵에 대한 해법만을 놓고 이루어지고 있는 점도 매우 아쉽다.



    보다 거시적인 측면에서 한미 동맹을 보려면 중국 변수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 서울에서 바라보는 워싱턴이 한국 대외관계의 최소한 절반 이상이라면 미국의 한반도 정책은 미국의 세계전략과 동아시아 정책의 부분집합이라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현재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의 핵심은 중국에 대한 ‘은밀한’ 경계이기 때문이다.

    한미 관계의 중국 변수

    3자 회담뿐 아니라 6자 회담에서까지 중국이 적극적 중재자 역할을 자임하자 북핵 문제의 다자적 해결을 주장해온 미국은 이를 반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를 계기로 동아시아에서의 영향력을 높이게 될 중국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 2000년 6월15일 남북한 정상간에 발표된 공동성명이 중국의 입장과 매우 비슷한 ‘자주’에 기반한 평화통일을 포함했을 때 미국이 보인 불쾌감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2002년 여름 한중 수교 10주년을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가 마련된 가운데 여중생의 죽음을 애도하는 반미집회가 열린 것도 미국에게는 반갑지 않은 일이었다. 그 해 말 당선된 노무현 대통령의 배미(拜美)적 발언과 북핵 협의과정에서 노정된 한미간의 차이는 한국이 미국을 벗어나 전략적 대체재(strategic supplement)를 모색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자아내기도 하였다. 북한이 한미 동맹의 강화를 위한 접착제이기보다는 오히려 장애물로 작동하고 한국 내에서 중국에 거는 기대가 급격히 커지면서 미국의 대표적 보수논객인 사파이어(William Safire)나 크라우테머(Charles Krauthammer) 등은 한국이 더이상 ‘동맹’이 아니라 인도네시아 정도의 ‘중립국’일 뿐이라며 미군 철수를 주장하기도 했다.

    미국의 조야, 특히 부시 행정부 내에서는 급속도로 친밀해지는 한국과 중국에 대하여 적잖은 우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특히, 국내에서 급증하는 친중(親中)적 경향이 최근 늘어가는 반미(反美)의 목소리와 상관관계가 있는 것인지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북핵 문제의 해결을 뛰어넘어-한국이 미국과의 동맹구조에 남아 있을지 아니면 장기적으로 중국의 외교궤도에 진입할지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우려는 두 가지 측면에서 기인한다. 첫째, 한미 관계의 역사는 한중 관계에 비하면 매우 일천하며, 실증적으로 규명하기는 어려워도 한중간에 공유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문화적 친밀성’이 한미간에는 결여되어 있다는 시각이다. 중국이 수교 후 단기간에 미국에 이어 한국의 제2수출기지로 부상한 것이나, 중국과 한국을 뜨겁게 달구는 ‘한국열기(韓流)’와 ‘중국열풍(漢流)’에 미국이 주목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둘째, 한중 양자관계가 급속도로 다면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양국은 이미 무역, 투자, 기술, 문화, 관광 및 교육의 교류에 있어서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을 뿐 아니라 아직은 시작단계이지만 해군 함정의 상호방문 등 군사협력도 이루어지고 있어 한중간에 합의한 ‘전면적 협력을 위한 파트너십’에 상당히 근접해가고 있는 상태다. 미국은 더 나아가 2002년 말 현재 중국 내 외국인 유학생 총수의 42%에 달하는 한국 유학생들이 향후 한국에 소개할 ‘대안적 세계관’에 대해서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글에서는 미국이 과연 한중간의 양자관계를 어떻게 보고 있으며 이것이 한국에 주는 정책적 함의는 무엇인지 논하고자 한다. 우선 미국이 세계를 보는 시각에 대한 논의를 통해 미국의 대외전략 속에 위치한 한중 관계의 좌표를 찾아본다. 이를 위해 미국 내 다양한 의식조사 보고서들, 보다 구체적으로 퓨 연구소(Pew Research Center), 해리스 조사연구소(Harris Interactive), 시카고 외교협회(Chicago Council on Foreign Relations) 등에서 발표한 자료를 활용하여 미국의 대외인식 구조를 새로이 재구성해보았다.

    이어서 미국인들이 보는 중국과 한국에 대한 인식을 각각 살펴보고, 대중들의 인식에 대한 자료가 없는 한중 관계에 대해서는 필자가 워싱턴의 대표적 싱크탱크인 브루킹스 연구소의 초빙연구원으로 1년간 재직하면서 56명의 미국인 정책 엘리트들의 인식에 대해 수행한 면접조사 자료를 활용하였다.

    면접조사는 워싱턴 주변의 순환도로(I-495) 내에 거주하는 외교정책 및 동아시아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했으며 이들의 평균연령은 50.6세, 정부재직 평균연수는 17.8년이었다. 이들 중 13%(7명)와 52%(29명)는 자신들이 ‘상당한’ 내지 ‘적잖은’ 정책영향력을 가진 것으로 자평하였다. 이들의 정당 지지도는 공화당(13), 민주당(22)과 무소속(21)이었으며, 배경에서는 싱크탱크(19), 행정부(12), 학계(10), 군부(8), 의회(6) 그리고 언론(1) 등이었다. 물론 이들이 무작위 추출로 선정된 표본이 아니기 때문에 이 조사결과는 일반적 추론의 대상이 될 수는 없으나 이들이 지닌 인식의 공통성이 제시하는 ‘밑그림(sketch)’에 주목하고자 한다.

    ‘미국은 세계 그 자체’

    미국은 오랜 기간 자신을 ‘예외적’ 존재로 여겨왔으며 이런 ‘미국 예외주의(American exceptionalism)’가 미국의 대외인식 형성과 재생산에 많은 기여를 해온 것도 사실이다. 물론 학술적 저술들은 대부분 예외주의가 ‘다르다’는 것일 뿐 ‘더 나음’을 의미하지는 않음을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도덕적 우위에 기반한 일방주의로 나타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어쩌면 이런 배경 하에서 미국이 전세계를 향해 민주주의, 인권 및 자유의 확산을 위한 이분법적 구도를 활용했다고 할 수도 있다.

    대부분의 미국인에게 미국은 ‘세계 그 자체’인 경우가 많다. 대다수의 미국인은 세계인구의 절반 이상이 영어를 사용한다고 생각하며 놀랍게도 젊은 세대일수록 그렇게 생각하는 비율이 더 높다. 그러나 실제로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의 세계 총인구 대비 비율은 6%이며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람까지 포함하더라도 27%(16억 8천만 명) 정도에 불과하다. 물론 필자의 면접조사에 응했던 미국인 엘리트의 대다수(83%)는 영어가능 인구가 20%에 불과하다고 응답했지만 미국 정치과정의 특성상 일반 미국인의 대외인식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미국인의 여권 소지 비율이 14%밖에 안 될 정도로 평균적인 미국인이 외국(캐나다와 멕시코는 제외)과의 접촉을 갖는 빈도나 수준은 매우 낮다. 그러나 미국 내에서 이루어지는 대외관계와 관련한 설문조사에서 이들은 항상 무작위추출의 대상이 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이 외교정책과 관련한 ‘국가적 분위기’를 만드는 데에 활용될 개연성은 매우 높다.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영어를 사용한다는, 즉 언어소통은 문제가 안 된다는 인식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휴가지는 서구와 유럽에 집중되어 있다. 1998~2002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해리스 보고서에 따르면 서구 유럽 8개국(영국, 호주, 캐나다,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아일랜드와 스위스)은 항상 10위권에 들었으며 멕시코, 자메이카, 이스라엘과 일본만이 간혹 순위에 들곤 했다.

    보다 흥미로운 점은 미국인이 선호하는 휴가지 명단과 미국인이 생각하는 ‘친밀한 국가(close allies)’의 명단이 상당 부분 중첩된다는 것이다. 선호 휴가지의 선택이 비용부담을 제거한다는 전제하에서 이루어진 것인 만큼 응답자들의 내심이 보다 충실히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고, 따라서 이 두 명단 사이의 높은 중첩성은 미국인들의 대외인식이 얼마나 서구와 유럽 중심적인 지를 잘 보여준다.

    1995~2002년 기간 동안 아시아에서는 일본만이 유일하게 미국인이 생각하는 친밀한 국가 10위권에 들 수 있었다. 미국과의 공식적 동맹관계를 이미 1979년에 종식한 대만의 경우 1995~99년까지 10위권에 있었으나, 한국은 설문에조차 포함되지 않았고 처음으로 설문에 포함된 2002년의 경우 25개국 중 친밀도 14위를 기록하였다. 미국의 제7위 교역국에 걸맞은 인식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인의 서구·유럽에 대한 선호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대미인식은 최근 악화 일로의 길을 걷고 있다. 여러 다국가 의식조사에 따르면 중동, 이민, 환경, 이라크, 중국 등의 이슈와 관련하여 미국과 유럽 간의 견해차가 점증하고 있으며 특히 미국의 일방주의에 대한 유럽의 견제가 강해지는 추세이다.

    중요한 것은 대미 인식의 악화가 단순히 유럽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퓨 연구소가 수행한 다국가 조사에서 보듯이 2000년과 2003년 사이에 미국에 대한 인식은 대륙의 구분 없이 악화되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미국의 정책 엘리트들도 잘 알고 있었는데, 필자의 면접조사에 응했던 엘리트의 93%가 9·11 이전에는 미국이 상당한 ‘연성권력’(다른 나라들의 자발적 순응을 유도하는 힘)을 가졌던 것으로 보고 있으나 지금은 54%가 미국의 그런 힘이 쇠퇴하고 있다고 보고 있었다.

    그렇다면 미국인들의 대외인식에 나타나는 ‘비우호적 국가(not friendly states)’에 대한 인식은 어떠한가. 역시 해리스 보고서에 의하면 1995~2002년 기간 동안 비우호적 국가의 상위 5개국은 와 같으며 다음의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전통적 의미에서의 서구 및 유럽 국가는 단 하나도 비우호적 국가의 상위권에 들어 있지 않다. 둘째, 일본에 대해 미국인들은 양면성을 갖고 있는 듯하다. 즉 친밀한 국가의 상위권에 속하면서 비우호적 국가의 상위권에도 들어 있기 때문이다. 셋째, 중국은 1995~2002년의 8년 동안 빠짐없이 미국인이 가장 비우호적으로 인식하는 국가로 선정되었다. 넷째, 한국이 이 조사에 처음으로 포함된 2002년에 미국인이 비우호적으로 인식하는 국가 5위에 랭크되었다는 점이다.

    이상을 종합할 때 미국인이 가장 비우호적으로 느끼는 중국과 상당히 비우호적으로 인식하는 한국 간의 양자관계의 확대에 대하여 미국이 그리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을 것임을 어렵지 않게 추론할 수 있다.

    미국의 대중국 인식은 향후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을 결정짓는 핵심적 요소일 뿐 아니라 미국이 보는 한중 관계에 대한 평가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소련의 붕괴와 공산권의 침몰 이후 지난 10여 년간 미국인의 대중국 인식은 적잖이 변화해왔다. 시카고 외교협회에 따르면 미국이 중국에 대해 핵심적 이익을 갖고 있다고 믿는 미국인의 비율이 1990년 47%에서 1994년과 1998년에는 각각 68%, 74%로 급증하였다. 같은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이 미국에게 핵심적 이익영역이라고 간주하는 미국의 엘리트 비율도 1990년 73%에서 1998년에는 95%로 늘었다.

    중국은 미국의 잠재위협

    중요한 것은 미국의 엘리트와 대중이 중국을 중요한 국가로 인식하는 것과 그런 중국에 대하여 친밀한 ‘느낌’을 갖는 것은 별개라는 점이다. 위의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을 미국의 잠재위협으로 본 미국 국민의 비율이 1990년에는 40%에 불과했으나 1998년 조사에서는 57%로 늘어났다. 이러한 추세는 다른 조사에서도 볼 수 있다. 퓨 연구소가 1999~2001년 동안 수행했던 다섯 차례의 조사에서 중국을 ‘적국(adversary)’ 또는 ‘심각한 문제’로 인식한 미국인의 비율이 평균 64%에 달했다.

    중국을 잠재적 위협으로 보는 인식의 증가는 미국의 엘리트들에서도 발견되는데 시카고 외교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1990년의 경우 그 비율이 16%에 불과했으나 1994년과 1998년에 이르면 각각 46%, 56%로 증가하고 있다. 필자가 면접조사를 실시했던 56명의 정책 엘리트의 경우에도 63%가 늦어도 2030년에는 중국이 미국에 대한 실질적인 ‘경쟁자’로 등장할 것으로 보고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의 57%는 그 경쟁 영역이 경제통상일 것이며 18%만이 군사부문에서의 경쟁을 상정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전체적으로 70%의 인터뷰 응답자들은 현 시점에서 미래의 중국이 미국에 (비)우호적일 것인지를 판단하기는 어렵다는 유보의 입장을 보였다.

    사실 일반 미국인들이 중국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식은 상당부분 정치체제에 대한 것으로, CNN에 방영되었던 ‘천안문 사건’의 기억과 함께 공산독재체제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실제로 1999년의 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 국민의 52%가 일본과는 상당히 많은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다고 믿는 반면 중국에 대해서 그런 인식을 가진 사람의 비율은 29%에 불과했다. 필자의 면접조사에서도 미국과 중국이 많은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23%에 불과했다.

    미국이 보는 중국과 일본에 대한 인식의 격차는 향후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정치체제의 성격과 가치관의 공유를 중시하는 미국 외교정책의 특성상 일본과의 전략 및 외교적 협력을 강화하고 그 반대쪽에 중국이 서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의 경제상황이 계속 악화되면서 미국 내에서 일본을 심각한 위협으로 보는 비율은 급감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에 기반하여 많은 미국 엘리트들이 일본의 군사역량 개발을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필자의 면접조사 대상자 중 50%가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는 데 있어 미국의 가장 큰 파트너는 일본이라고 답했으며 그 다음으로 대만을 꼽았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미 동맹관계는 힘의 차이가 크게 나는 두 나라 사이의 ‘비대칭 동맹(asymmetrical alliance)’이 흔히 겪는 다양한 굴곡을 경험하였다. 1970년대 중반 이후 경제력이 급성장하면서 한국 또한 단순히 미국의 ‘추종자’로만 남지 않으려 시도했으나 북한이라는 실재하는 위협과 함께 군사독재정권이 갖는 정통성 결여라는 족쇄로 인해 그리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한국이 민주화에 진입하고 1990년대 초반 냉전체제가 붕괴함에 따라 한국은 점진적이나마 미국과의 동맹에 대해 내부적인 성찰을 갖게 되었으며 더 나아가 중국과 러시아 같은 주변 강대국들과의 관계 정상화를 통해 외교적 ‘호흡의 공간’도 얻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무엇보다도 미국을 놀라게 했던 것은 한국과 중국 사이에서 확대되는 양자관계의 다면성과 획기적 발전 속도라고 할 것이다.

    한중 교역은 1979년 1900만달러 규모였던 것이 2002년에는 무려 2158배나 증가하여 412억달러에 달했고 중국은 미국에 이어 한국의 제2수출시장의 위치를 공고히 하고 있다. 중국은 또한 한국의 해외투자 최고선호지역이 되었으며 한중간 교역이 한국의 총 교역규모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무려 13%에 이르고 있다. 게다가 한중간의 항공여객수가 한미간의 그것을 이미 초과하였고, 2003년 1월 현재 주중 한국교포 수의 증가율도 재미교포 수의 증가율을 넘어섰다.

    무엇보다도 중국이 한국에게서 얻은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인 것으로 보인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지금까지 한국에서 실시된 의식조사의 대부분에서 한국인의 대중국 인식이 대미국 인식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교적 높은 호감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한국의 대미 그리고 대중 인식에 대해서는 ‘신동아’ 2000년 10월호 ‘중국의 부상, 미국의 견제, 한국의 딜레마’ 기사 참조).



    일반 대중의 중국에 대한 높은 호감도와는 달리 한국의 정책 엘리트들은 상당히 유보적 입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되어 왔지만 그것도 지금은 상당히 바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포토맥 연구소가 한국의 정책 엘리트에 대한 면접조사에 의거해 발표한 2002년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도 중국의 미래 역할에 대해 상당한 희망과 긍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참조).

    한미 관계의 비대칭성

    이런 배경 아래 2002년 여름 이후 극명해진 한국에서의 반미·배미의 경향과 함께 12월에는 미국의 예상을 비껴간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이 이루어졌고 북핵 위기에 대한 관점과 해법에서도 한미간의 견해차가 적잖이 노정되었다. 물론 미국으로서는 이러한 변화의 추세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한국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자국민 수만 명의 목숨을 잃었던 미국으로서는 이러한 한국의 태도가 ‘부도덕’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던 반면, 한국에서는 한미 행정협정, 기지반환 등의 이슈가 당연히 제기되어야 할 현안이 된 것이다.

    한미간의 가장 핵심적 문제는 구조적 격차에서 재생산되는 상호인식의 비대칭이라고 하겠다. 즉 한국에게는 미국이 양자관계에서나 지역전략의 측면에서 거의 절대적 위치를 차지하는 반면, 미국에게는 한국이 동아시아라는 지역의-그나마 구체적 중요성은 시기에 따라 가변적인-여러 나라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환언하면 우리 외교 지평의 대부분을 미국이 차지하는 것에 비해 미국의 대외관계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너무도 작은 비대칭의 문제를 지칭하는 것이다.

    이 문제를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1995년 갤럽의 한 조사에 따르면 당시 한국 대통령(김영삼)의 이름을 알고 있는 미국인 응답자는 10%도 안 되었던 반면 중국인 응답자의 비율은 무려 66%에 달했다. 같은 조사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도를 묻는 질문에 58%에 달하는 미국인 응답자는 아예 관심이 없다고 답했다. 2001년 1월 해리스 연구소의 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습니까?”라는 설문에 대해 60%의 미국인 응답자가 “아무 의견도 없다(no opinion)”는 답을 하였다. 미국의 정책 엘리트의 경우에도 한국이 미국의 7대 교역국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비 통상 전문가는 그리 많지 않았거니와 한국이 이에 걸맞은 인식의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더더욱 적었다.

    한·중 관계 변화에 대한 美 정책엘리트들의 시각

    지난 8월27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6자회담. 최근 중국은 북핵 문제 등 한반도 현안 해결을 위해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인식의 괴리는 다른 부문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앞서 언급했던 1995년의 갤럽조사에 따르면 한미 관계가 향후 보다 발전할 것이라고 답한 미국인 응답자는 31%였던 데 반해 향후 한중 관계가 보다 발전할 것이라고 한 중국인 응답자는 무려 68%에 이르렀다. 더 나아가 2001년 해리스 연구소의 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응답자 중 38%만이 한반도 통일의 가능성이 높다고 한 반면 중국인과 한국인 응답자들의 비율은 각각 63%, 73%였다. 뿐만 아니라 한국과 미국 간에는 북한과 중국에 대해 느끼는 위협에서도 큰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특히 일본의 재무장을 바라보는 관점에서도 적잖은 괴리를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배경하에서 미국은 과연 한중 관계의 확대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한중 관계와 관련하여 아직까지 미국인의 인식에 대한 대규모 설문조사가 이루어진 적이 없기 때문에 여기서는 필자가 수행한 미국 정책 엘리트와의 면접조사에 근거하여 논의를 제공한다.

    우선 82%의 응답자가 한국이 중국의 핵심영향권(core sphere of influence) 하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미국이 여전히 한국의 최대 교역국임에도 불구하고 이들 엘리트의 절반 이상이 이미 한국의 최대 교역국은 중국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들은 또 “한국인들이 앞으로 10년 후 한국에 대해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할 나라는 어디라고 생각할 것이라 보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 무려 86%가 중국일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8%의 응답자가 대만보다는 한국이 미국에게 훨씬 중요한 나라인 것으로 보고 있었으며 또 46%의 응답자는 한국이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절대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어 향후 한반도(한국)를 둘러싼 미중간의 경쟁이 만만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한미중 삼국간에 생길 수 있는 파란의 가능성을 짐작케 하는 부분도 있다. 대만해협에서 미중간에 군사 충돌이 생길 경우 미국이 한국에 지원을 요청할 것인지에 대하여 놀랍게도 64%의 엘리트 응답자들이 미국은 한국에 대해 군사적(전투성 및 비전투성 포함) 지원을 요청할 것이라고 답했다.

    대만해협에서 그러한 충돌이 생길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지만 만의 하나라도 그런 상황이 발생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동맹의 약속과 함께 중국과의 교역, 투자, 통상관계를 지킬 준비가 되어 있는가.



    “미국이 일본의 재무장을 주창하고 촉진할 때 그 결과는 어떨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65%의 응답자들은 한중 관계의 강화라고 답한 반면 26%만이 한미 관계의 강화를 선택하였다. 1997년과 2000년 세종연구소와 동아일보에서 각각 수행한 조사에서 90%가 넘는 한국인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이 일본의 재무장이었으며, 2002년 초 한국의 국회의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66%가 일본을 가장 심각한 잠재위협이라고 본 결과가 나왔었다. 그러나 중국과 한국의 대일 인식을 감안하여 미국이 자신의 동아시아 전략을 획기적으로 재조정할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미중 관계가 악성의 경쟁자 관계로 진입할 경우 미국 정책 엘리트들이 생각하는 한국의 ‘선택’은 무엇인지에 대해 물어보았다.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중국에의 ‘편승(bandwagoning)’을 권하는 이는 없었고 17% 정도가 다자적 안보체제의 필요성을 제시하였다. 절대 다수인 76%가 한미 동맹의 지속을 강조하였으나 응답자의 3분의 2에 달하는 67%가 한미 동맹의 유지와 미국의 대중국 강경 행동에의 한국 참여는 별개라는 시각을 제시하였다. 물론 한국이 실제로 동맹의 유지와 대중 행동에의 자의적 불참을 구별할 때 미국 정부가 이를 받아들일지는 매우 다른 문제일 수도 있다.

    어떻게 보면 반세기 가까이 치밀하게 관리되었던 냉전구조가 가장 안정적인 체제였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1990년대 초반 이후 반소·반공의 세계적 구조가 해체되는 과정에서 그 동안 수면 밑에 가라앉아 있던 옛 상처와 함께 새로운 문제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소련의 위협이 갑자기 증발하고 중국 또한 분열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았던 1990년대 초반과는 달리, ‘중국위협론’이 강하게 대두되고 또 9·11테러 이후 미국의 적극적 일방주의가 진행되면서 중국과의 유대는 강화하고 미국으로부터는 ‘호흡의 공간’을 확보하려던 한국에게는 큰 어려움이 생긴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9·11 이후 미국 내에서 국제사회와의 교감을 중시하는 ‘국제파(Internationalists)’는 갈수록 그 목소리를 잃고 있으며 부시 행정부는 유럽을 ‘구(舊) 유럽’과 ‘신(新) 유럽’으로 구분할 정도로 기존의 동맹들에 대해서도 새로운 시각을 채택하고 있다. 신보수주의자인 케이건(Robert Kagan)이 ‘낙원과 권력에 관하여(Of Paradise and Power, 2002)’에서 “미국은 총을 가진 포수지만 유럽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곰을 만났을 때 취하는 선택이 당연히 달라질 수밖에 없다”면서 미국의 일방주의를 옹호했던 것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 미국은 실제로 변하고 있다. 국토방위부 신설과 유학 및 이민 등에 대한 규제의 강화, 국방개념과 방위체제의 혁신 등 많은 것들이 큰 변화를 겪고 있다. 이러한 추세를 단순히 부시 행정부의 특성으로만 단순화하기에는 너무도 많은 것들이 본질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미국이 군사 영역 이외에는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많은 논객들의 비판적 논의는 정당하지만 그러한 논의 자체가 현실을 적극적으로 변화시키지는 못한다. 미국이 무언가를 ‘잘못하고 있다’에 집착하는 것은 어쩌면 궁극적으로 우리의 대응에 대한 진솔한 평가를 희석시킬 뿐이다. 결국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초점이 모아져야 한다.

    지난 5월의 방미 기간 중 노대통령이 미국에 대한 유화적 발언을 했던 배경도 어찌 보면 현실을 지배하는 미국의 ‘힘’에 대한 인식에 기반 했을 것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신정부가 대외관계에 대한 충분한 대비와 전략이 없었다는 아쉬움도 있다. 신정부는 취임 후 최소한 6개월 정도 조용하면서도 면밀한 정책검토(policy review)를 했어야 했다. 2002년 외교통상부가 건국 후 처음으로 주변국들에 대한 중장기 전략을 검토했던 내용들만 자세히 살폈더라도 그리 서두를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사실 작년 12월 대선 이후 넉 달 정도만 해도 필자가 만난 워싱턴의 아시아 및 한반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우리가 한국을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거나 “미국의 대(對)한국 인식의 경로가 너무 제한돼 있었다”는 긍정적 자기 성찰이 적잖이 대두됐었다. 그러나 노대통령의 방미 이후 워싱턴에서는 오히려 신정부 외교의 일관성에 대한 조용한 풍자(silent sarcasm)가 회자되기도 하였다.

    미국에 대해 ‘동등한 동반자’ 관계를 요구하는 동시에 북핵 문제 해결에 있어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선언하는 것과 실제로 진행되었던 과정 사이의 괴리가 얼마나 큰지를, 노대통령의 방미 모습과 텍사스 목장에서 부시 대통령이 운전하는 트럭에 동승한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모습에서 볼 수 있었으며 이는 한미 관계의 현주소를 현실감 있게 잘 보여주는 것이었다.

    자주국방과 대외관계의 자율성을 강조한 노대통령의 8·15 담화문 또한 적절하고도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 자기 평가와 중장기 전략을 담고 있다. ‘그저 미국과의 동맹만 강조하는 것도 틀렸고 아무 대책 없이 미군 철수를 외치는 것도 잘못되었다’는 내용은 많은 고민에서 나온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취임 후 선행되어야 했던 조용하지만 치밀한 준비가 결여되었고 또 너무나 많은 것들을 이미 쏟아놓은 상태에서 나온 담화문이었기에 그 파장은 적을 수밖에 없었다.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이룬 한국이 갖고 있는 ‘비전(vision)’의 딜레마를 미국을 위시한 주변국에게 설득력 있게 토로할 좋은 기회를 잃은 것이다.

    그렇다면 향후 우리의 좌표는 무엇인가? 첫째, 단기적으로 한반도 문제를 논의하는 어떠한 구조에도 한국은 단순히 ‘역내국가’가 아닌 실질적이고 직접적인 ‘당사자’의 위상을 되찾아야 한다. 북핵 문제의 여하한 해결에도 한국의 지원이 핵심적이기에 이 원칙은 당연한 전제가 될 수밖에 없다. 한국이 가진 외교력과 미국 및 중국과의 협력관계를 최대한 활용하여 향후 한국이 실질적이고 직접적으로 한반도 문제 논의의 중심에 서야 할 것이다.

    둘째, 북핵 문제에 발목이 잡힌 상황에서도 한미 주둔군지위협정 등과 관련하여 적잖은 개선이 이뤄졌거나 협의되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다. 한국이 미국에 대해 축적해온 좌절감에 대한 워싱턴의 이해가 그 어느 때보다도 높은 시점에서 한국 정계가 성숙한 동맹관계를 위한 건설적인 제안을 보다 적극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 다만 조심할 것은 우리의 요구를 제시함에 있어 충분한 이해를 구하는 방식이 필요하며 미국의 대응과 관련하여 다양한 경우의 수를 미리 생각하고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머지 않아 한미간 교역규모를 넘어설 것으로 보이는 한중 통상관계의 확대를 단순히 ‘시장(市場)’의 문제로만 간주해서는 곤란하다. 우리가 지금 미국에 대해 자율성을 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급속히 늘어가는 대중(對中) 의존도만큼이나 유지하기 어려워질 중국에 대한 우리 외교의 국격(國格)에 대해서도 대비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등거리외교나 균형은 말로 하기는 쉽지만 시행하기는 참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넷째,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넘어서는 제3의 목표로서 한국의 비전을 정립하는 데 가장 중요한 내용은 미국과 중국에 우리를 제대로 알리는 것이다. 미국에 대해 7대 교역국에 걸맞은 홍보를 해야 하며 중국에게도 우리의 중요성을 제대로 알리는 동시에 미국과 중국의 조야에 다양한 소통의 경로와 제도를 우리 주도로 만들고 유지해야만 한다. “한미 관계는 항상 별 문제 없이 견고하다”던 평가와는 달리 서울과 워싱턴을 잇는 동맥이 심각한 경화현상을 보였던 것처럼 한중간에도 그럴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가장 큰 고민은 ‘최악의 사태(worst-case scenario)’와 관련된 것이다. 2010년의 한반도는 최악의 경우 미중간 갈등의 한복판에 서게 될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먼 친척보다는 가까운 이웃이 낫다(遠親不如近隣)”는 중국은 우리에게 과연 책임 있는 우호대국으로 남을 것인가. 미국과의 돈독한 동맹관계를 가진 한국과 그렇지 않은 한국 중에서 중국은 어느 쪽을 더 존중할 것인가. 그때쯤 우리의 외교력은 과연 미중간의 조정자 역할을 해낼 정도로 성장할 것인가. 이내 다가올 10년 후의 다양한 가능성에 철저히 대비하기 위해서 지금부터 역량과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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