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0월호

그들을 위한 새로운 당신

  • 글·이승희 청소년보호위원회 위원장

    입력2003-09-29 17: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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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을 위한 새로운 당신
    날마다 비가 내린 것 같은 8월이 지나 9월이 왔는데도 여전히 비가 오고 있다.

    창 밖으로 내다보이는 비 오는 광화문. 밤에 더 아름답다고 생각했는데, 비에 젖은 한낮의 광화문도 고색창연(古色蒼然)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광화문 거리에 19세기와 21세기가 공존하는 탓일까.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는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변화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가장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것들과 옛것 그대로인 것들이 함께 숨쉬고 있는 광화문 거리. 그래서 더욱 재미있고 운치 있으며, 여유롭고 정답다. 광화문 거리는 서로 아주 다른 것들도 공존할 수 있고, 그 공존 덕분에 각기 더욱 빛을 발하며 가치로울 수 있다는 믿음을 준다.

    그러나 세상살이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다르다는 이유로 비난함으로써 상처 입히고 상처 입으면서 끝내 갈라선다. 청소년 관련 업무를 시작한 지 1년 6개월이 지나면서, 자녀와 부모 사이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문제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아이들과 어제와 오늘이 똑같아 변하지 않는 어른들의 차이에서 비롯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됐다. 부모들은 도저히 요즘 아이들을 이해할 수 없고, 아이들은 부모의 말을 좀처럼 존중하지 않는다.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어도 벌써 그러한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바야흐로 사춘기에 접어든 것이다.

    물론 어느 시대에나 사춘기 아이와 부모 사이에는 갈등이 있었다. 그러나 요즘처럼 답답한 단절은 아니었다. 지식정보화 사회에서 모든 지식과 정보는 순식간에 유통되고 교류된다. 하지만 약 20%의 중·고등학생들은 아버지와 하루에 단 1분도 대화하지 않는다고 한다. 절반 정도는 아버지와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하루 30분 미만이다.

    한국의 중·고등학교 남학생들의 흡연율은 OECD 가입국가 중에서 가장 높다. 음주율도 비슷해서 중학생은 약 60%가, 고등학생은 80% 이상이 음주를 경험한다. 왜 우리 아이들은 일찍부터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울까? 아이들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라고, 어른과 똑같은 대답을 한다.



    부모와 의사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그 때문에 더욱 가정에서 소외된다고 느끼며, 학교 생활에서도 만족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휴대전화와 인터넷으로 자기들만의 세계를 구축한다.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부모 역시 소외감, 불만, 걱정, 두려움에 빠져든다. 먹여주고 재워주고 용돈 주고 할 거 다 해주는데 왜 너는 네 할 일, 즉 공부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미 소통의 끈이 끊어진 부모와 아이의 관계는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는 말 그 자체다. 야단은 욕설과 구타로 이어지고, 때로는 애원과 눈물이 동원되고, 다시 다툼으로, 그리고 끝내는 가출로 이어지기도 한다.

    학교 부적응으로 중퇴하는 아이들이 한해 7만명 남짓이다. 학교를 다니지 않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가출한 아이들 역시 늘어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가출 청소년이 2만명에서 많게는 10만명에 이른다고 추정한다. 휴대전화와 인터넷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는 아이들, 학교와 집을 떠나기도 하는 아이들이 ‘요즘 아이들’인 것이다.

    그런 아이들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외모 지상주의에 빠져 있고 즉흥적이고 소비 지향적이고 놀고 먹는 것만 좋아한다고 비난받는 아이들, 단정하고 반듯한 어른이 보기에 엉망인 아이들을 말이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어른들 생각에 단정하고 반듯한 것이 아이들 눈에는 무미건조하고 재미없으며 엉망인 것이 아닐까?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단순 공식’을 제시한다. “잘살려면 좋은 대학 가야 한다, 좋은 대학 가려면 공부 잘해야 한다.” 어른들에게 이 단순한 공식은 절체절명의 진리요, 법칙이다. 아이들은 이를 암기해야 하고 삶의 공식으로 받아들여 실천해야 한다. 부모는 아이에게 이 공식을 주입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다.

    그런데 이 공식이 맞지 않거나 거부하는 아이들, 공부가 아닌 다른 분야에 흥미를 가진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그리스 신화에서처럼 침대 밖으로 튀어나온 긴 다리는 자르고, 침대 길이에 못미치는 짧은 다리는 늘려야 할까? 그런데 문제는, 어른들이 신봉하는 단순 공식에 맞지 않는 아이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인터넷이 많은 것들을 바꾸고 있다. 생활양식, 사고방식, 인간관계 방식 등의 질과 양을 혁명적으로 바꾸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 보급률이 세계 1위라는 우리나라. 아이들은 자기 방에서 세계에서 가장 성능 좋은 컴퓨터로 인터넷을 즐기고 있다. 인터넷이 우리 아이들을 가장 먼저 바꾸고 있는 것이다.

    이제 어른들은 더 이상 지식과 정보의 양으로 아이들 위에 군림할 수 없다. 인터넷에 접속하기만 하면 어른들의 머리에 저장된 정보량의 수천 배, 수만 배나 되는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더 이상 수직적인 관계, 일방적인 관계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인터넷에서 모든 관계는 수평적이며 쌍방적, 다면적이기 때문에 아이들은 상하의 수직이 아니라 호혜평등의 수평관계에 익숙하다.

    지식정보화 사회로의 변화는 어른이 아닌 아이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너무나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인터넷 음란물의 피해자일 뿐 아니라 가해자로까지 등장한다는 것이다. 경기경찰청은 인터넷 음란사이트 운영자의 20%가 청소년이라고 밝혔다. 해킹을 비롯한 사이버 범죄 역시 아이들이 주도한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사회 변화의 최전선에 아이들이 있는 것이다.

    어른들의 눈으로 보자면 그러한 요즘 아이들은 이해할 수 없는 점들 투성이다. ‘도대체 나중에 어떻게 살려고 저 모양인가’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꼭 부모가 아니라 해도 모든 어른들은 모든 아이들을 도와야 한다. 그게 어른의 의무다. 그러나 비난이나 일방적 가르침, 혹은 분노로는 세대간 갈등을 해결할 수 없다. 부모자식간 소통불능의 가장 큰 문제는, 부모가 아이에게 주어야 할 가장 중요한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나의 생각, 나의 가치관, 나의 삶의 방식이 가장 옳다는 자만에 빠진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몰라서 그렇기도 하고, 자신의 것에 익숙해 그렇기도 하다. 그 착각이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가 강하게 충돌하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우리 모두는 새로움이나 변화를 두려워한다. 그러나 아이들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어른을 똑같이 닮았을 뿐, 새롭지 않다면? 우리 모두의 미래는 암담해진다.

    어른이 맡아야 할 역할은 젊은 세대의 길을 터주는 일이다. 길을 열어주고 그 길을 가는 동안 마주치게 될지도 모르는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 길을 모조리 청소해줄 필요도 없고, 만들어줄 필요도 없다. 그럴 시간이 있으면 자기 인생이나 잘 챙기면 된다. 아이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행복과 삶의 보람을 위해 열심히 사는 부모가 아이에게만 모든 관심을 쏟아붓는 부모보다 더 이로울 수 있다.



    아이들이 변화하고 있다. 어른들은, 부모들은 그 변화의 속도와 양상을 얼마나 간파하고 있으며, 또 이해하고 있을까? 그 변화를 발전적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우리 어른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변화하는 청소년, 그들을 위한 새로운 청소년보호위원회’. 우리 아이들과 보다 더 친밀해지고픈 바람이 담긴 청소년보호위원회의 캐치프레이즈다. 청소년보호위원회 대신 우리 각자의 이름을 넣어보면 어떨까? “○○○, 그들을 위한 새로운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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