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1월호

軍 사정기관 수뇌부 4명 동반퇴진 내막

청와대, 호남군맥 물갈이 시작하나

  • 글: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입력2003-10-27 16: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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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정비서관실 ‘비리’ 압박에 백기투항
    • 헌병·법무 내부의 청와대 제보
    • DJ 정부 군 실세 기무사령관 경질 후 내사
    • 사정비서관실, 합조단·군검찰에 수사기록 요구
    • 고등군사법원장 겨눈 특검 수사와 음모론
    • 일부 장성, 전역 후 사법처리 가능성
    軍 사정기관 수뇌부 4명 동반퇴진 내막
    9월25일 국방부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 벌어졌다. 군 사정기관의 총수라 할 수 있는 4명의 장성이 한꺼번에 전역지원서를 낸 것이다. 군 법무병과의 최고위직인 법무관리관 김창해 준장과 2인자인 육군 법무감 위성권 준장, 그리고 군 수사기관인 헌병 조직의 우두머리인 합동조사단장(이하 합조단) 이정 소장과 육군 헌병감 이길재 준장이 그들이다.

    법무병과는 검찰과 사법부의 기능을 갖고 있다. 또 헌병은 경찰에 해당한다. 두 기관은 군의 국정원이라 할 수 있는 기무사와 더불어 군 사정의 트로이카 체제를 형성하고 있다.

    사실상 강제전역

    임기를 못 채우는 것을 큰 불명예로 여기는 군의 특성상 이런 힘있는 기관의 지휘관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옷을 벗겠다고 나선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창군 이래 전례가 없는 일이다. 국방부 장관이 이들의 전역 지원서를 받아들임에 따라 이들은 11월말 예편할 예정이다.

    전역 사유는 비리와 관련된 것이다. 4명 모두 군수사관 활동비 등 공금을 불법전용 또는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 중 김창해, 위성권 두 법무병과 지휘관의 비리혐의에 대해서는 그간 국방부 감사관실과 감사원 감사 등을 거쳐 확인된 바 있다. 그에 따라 두 사람은 지난 7월초 보직해임된 상태였다.



    반면 헌병병과의 두 지휘관에 대해선 공식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군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 두 사람은 조사나 처벌을 받지 않는 대신 자진 전역의 길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보면 말이 자진 전역이지 사실은 강제 전역인 셈이다.

    국방부 주변에서는 이들 4명의 전역서 제출이 청와대의 뜻에 따른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군 개혁을 주도하고 있는 청와대 민정 라인에서 군 사정기관 개편을 시도한 결과라는 것이다. 애초 이들은 청와대의 전역 요구에 반발했으나, 사법처리 압박에 굴복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은 공금 횡령(이들의 표현에 따르면 ‘예산 전용’) 혐의에 대해 ‘관행’이라고 강변하는가 하면 “인사조치 요구에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반발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들 중 일부는 기자에게 그런 심경을 표출하며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취재 결과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개입했다는 소문은 사실로 확인됐다. 특히 사정비서관실이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 과정에 청와대와 국방부간에 심각한 갈등이 있었으며, 국방부가 청와대에 맞선 흔적도 발견됐다. 전역을 강요당한 4명 중 2명은 알려진 것 외에 다른 비리 혐의가 사정당국에 포착돼 ‘백기 투항’한 것으로 보인다. 그 중 한 명은 관련자료를 넘겨받은 서울지검에 참고인 자격으로 불려가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 와중에 논란이 된 법무병과 일부 고위인사의 비리 혐의를 확인하기 위해 국방부 장관 지시로 특별검사가 임명돼 한시적으로 활동한 사실도 밝혀졌다. 군에서 특정사안을 놓고 공식 수사기관 대신 특검이 수사에 나선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헌병 내부 제보가 발단

    청와대가 이들의 비리 혐의를 확인하는 데 결정적인 단서가 된 것은 군 내부의 제보였다. 헌병측의 첫 제보는 지난 4월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호남편중인사에 따른 군 인사 난맥상을 표지기사로 다룬 ‘신동아’ 4월호가 발간된 직후, 기자는 군 관계자로부터 헌병병과의 지역편중인사 실태에 대한 제보를 받았다. 제보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에 같은 내용이 비슷한 시기 민간인을 통해 청와대 민정수석실에도 전달된 사실을 알게 됐다.

    제보 내용을 확인한 결과 DJ정부 때 고착된 헌병병과의 지역편중 인사실태는 ‘이보다 더할 수는 없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합동조사단과 육군 헌병감실, 중앙수사단, 수방사, 33헌병대(청와대 경비), 육본 헌병인사 관련부서 등 핵심부서 요직 10여개의 대다수를 호남 출신이 장악하고 있었다. 제보 내용 중엔 이정 합조단장이 헌병 수사관 출장비 등 공금을 횡령했다는 의혹도 있었다.

    국방부에 따르면 이정 소장과 이길재 준장은 2000∼2002년 육군 헌병감 재직 당시 군탈병 체포조 활동비 등 헌병감실 예산 수천만원을 개인 판공비로 사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국방부는 “두 사람은 직무수행 과정에 썼을 뿐 사적 용도로 쓰진 않았다고 주장한다. 다만 물의를 빚은 데 대한 책임을 진다는 뜻에서 자진 전역 의사를 밝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군 수사기관 주변에서는 이와는 다른 얘기가 들린다. 과연 그 정도 사유만으로 헌병의 최고위직인 합조단장이 순순히 물러났겠느냐는 의문이다. 군 수사기관 관계자들에 따르면 합조단은 참여정부 출범 후 발생한 해병대사령관 뇌물수수 의혹 사건과 국방회관 운영수입금 횡령 사건, 국군체육부대 공금횡령 사건 등 일련의 대형 군 비리 사건을 수사하면서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이정 소장의 사퇴가 내부 고발로 촉발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군검찰의 고위관계자는 “이정 합조단장의 비리 혐의는 내부 제보로 불거졌으며 기무사가 비공식적으로 확인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헌병의 한 관계자는 “예비역 대령 등 일부 전·현직 헌병 장교들이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이정 합조단장의 비리 혐의를 제보해, 사정비서관실에서 관계기관에 조사를 지시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이정 소장의 공금 횡령혐의는 청와대, 감사원을 거쳐 국방부 감사관실이 최종 확인했다는 것. 이 관계자는 또 “국군체육부대장의 외부지원금 횡령 혐의는 진작 불거진 것인데 합조단이 알고도 제대로 수사하지 않은 사실이 청와대에 알려졌다”고 귀띔했다.

    청와대 사정비서관실의 개입

    체육부대 공금횡령 사건과 관련해서는 이런 소문도 있다. 국방회관 비리 사건에 연루돼 육군 교도소로 문책성 발령이 난 합조단 모 수사관이 사석에서 “합조단에서 체육부대 비리를 수사하다 덮었다”며 “내가 입을 열면 이정 (합조단장)은 한 방에 날아간다”고 떠들었는데, 그것이 청와대 사정팀 첩보망에 걸렸다는 것이다.

    해병대사령관 뇌물수수 의혹 사건은 지난 3월 발생했다. 합조단은 해병대사령관 이아무개 중장이 부하로부터 진급 청탁과 함께 수천만원대의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에 대해 조사를 벌였으나 무혐의 처리했다. 그후 이중장은 해병 1사단 청룡회관 기금 횡령사건에 대해 책임을 지는 형태로 물러났다.

    지난 6월 청와대 사정비서관실은 합조단이 해병대사령관을 봐줬다는 제보를 받고는 이정 합조단장에게 사건 경위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수사기록 제출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의 전언에 따르면 이정 합조단장은 이 사건에 대해 “(국방부) 장관 지시에 의해 (해병대사령관을) 불기소 처분했다”고 보고했다고 한다. 당시 사정비서관실은 합조단과 국방부 검찰단에 논란이 된 사건들에 대한 수사기록 일체를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듯 청와대가 적극적으로 나선 대외적 명분은 군 개혁을 위해선 1차적으로 군 사정기관이 개혁돼야 한다는 것. 또한 그 배경엔 지난 정권 때 군부를 좌지우지한 호남군맥의 아성을 무너뜨리려는 의도가 있다는 게 군 안팎의 중론이다. 극심한 편중인사와 비리혐의로 얼룩진 호남군맥을 정리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군 개혁을 달성할 수 없다는 정책적 판단의 결과라는 것이다.

    이정 소장은 전남 영광, 광주일고 출신이고 이길재 준장은 전남 곡성, 광주고 출신이다. 군검찰 관계자는 “이길재 헌병감은 상대적으로 때가 덜 묻은 사람이지만 직속상관이 물러나는 마당에 도의적으로 동반 퇴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이길재 준장을 동정했다.

    또 다른 군검찰 관계자는 “호남인맥을 정리하겠다는 청와대의 의중이 확인된 이상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기무사 관계자는 “이정이나 이길재나 깨끗하지 못했다”며 구체적인 혐의사실을 거론했다.

    호남군맥 정리의 신호탄은 지난 4월 참여정부 첫 군인사에서 DJ정부 군내 최대 실세였던 기무사령관 문두식 중장을 보직해임한 것이었다. 기무사는 경기도 용인 출신의 송영근 소장이 사령관에 부임한 이후 핵심 보직자 70여 명에 대한 인사를 단행해 지역편중 인사 시비를 상당히 해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에선 임기제 지휘관의 경우 보직해임되면 곧바로 전역하는 것이 관례다. 하지만 문중장은 이례적으로 석 달을 더 버티고 7월에야 전역했다. 사정당국은 문중장이 기무사령관에서 물러난 후 그의 비리 혐의에 대해 내사를 벌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와 관련해 기자는 청와대 사정비서관실 관계자가 전직 기무사 고위관계자를 방문해 관련 정보를 수집하려 했던 사실을 확인했다.

    전직 기무사 장성들의 청와대 진정

    문 전 사령관 내사는 기무사 전직 장성 몇 명이 청와대에 진정서를 낸 것이 발단이 됐다고 알려졌다. 부산 기무부대 이전 공사와 관련해 건설회사인 D업체 유아무개씨로부터 수억원대의 뇌물을 받았다는 것이 주된 혐의다. 문 전 사령관이 이 회사에 돈을 투자했다가 부도가 나는 바람에 떼였다는 얘기도 있다.

    군 수사기관 관계자에 따르면 문 전 사령관은 문제의 돈을 나중에 유씨에게 돌려줬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내사 결과에 대해서도 상반된 소문이 돌고 있다. 사법처리가 곤란하다는 얘기도 있고 서울지검이 관련 자료를 넘겨받아 내사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지난 8월 경남대 북한대학원 최고위과정을 마친 그는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해 시간강사로 강단에 서고 있다.

    법무병과 지휘부를 교체하는 과정은 헌병병과와는 달리 교체하려는 쪽과 교체당하지 않으려는 쪽의 싸움이 꽤 치열했다. 청와대와 국방부는 이 문제로 갈등을 빚었고 한나라당이 김창해 법무관리관을 적극 옹호하고 나서는 바람에 정치쟁점이 되기도 했다. 그 과정에 법무병과 내부의 갈등이 심각한 수위에 이르러 서로 뒷조사를 벌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방부를 불신한 청와대는 직접 영관급 군법무관들과 접촉해 군 내부의 여론을 청취하기도 했다. 법무병과의 한 관계자는 청와대가 군 인사문제에 깊이 관여한 데 대해 “개혁을 하려는데 국방부가 말을 안 들으니 청와대가 직접 나선 것이다. 참여정부 출범 후 군 개혁 작업을 추진하는 데 군 사정기관이 오히려 걸림돌이 됐다”고 말했다.

    법무병과 수장인 김창해 전 법무관리관이 궁지에 몰린 것은 1년 전부터다. 지난해 8월 국정감사를 한 달 앞두고 민주당 법사위 소속 조순형 의원실은 김창해 법무관리관의 비리를 고발하는 군 내부의 제보를 받았다. 군검찰 수사관 활동비, 군판사 출장여비, 국선 변호인료 등을 횡령했다는 의혹이었다. 또 부당하게 군사재판에 개입했다는 직권남용 혐의도 있었다.

    몇몇 군검찰 수사관의 통장 입금기록을 통해 김법무관리관의 횡령 혐의를 확인한 조의원은 국방위 소속 이낙연 의원과 연대해 9월 하순 국정감사장에서 이를 폭로했다. 10월초 참여연대는 김법무관리관을 업무상 횡령 및 직권남용 혐의로 국방부 검찰단에 고발했다. 하지만 검찰단 수사는 피고발인은 고사하고 고발인조차 부르지 않고 미적거렸다. 법무관리관이 검찰단장의 상관이자 결재권자이다보니 그럴 만도 했다.

    국방부의 면죄부

    그 무렵 총리실 공직기강팀이 감사에 나섰다. 현지 출장조사까지 하며 김법무관리관의 혐의사실을 상당 부분 확인한 공직기강팀은 ‘비위 자료’라는 제목이 붙은 조사보고서를 작성, 청와대 사정비서관실로 이첩하는 한편 국방부에도 이같은 사실을 통보했다. 사정비서관실은 자체 검토 후 이를 다시 국방부 감사관실로 넘겼다. 감사관으로부터 보고를 받은 국방부 장관은 특별감사를 지시했다. 이에 따라 국방부 감사관실은 그해 12월 하순 김창해 법무관리관의 비리 의혹에 대해 전면감사에 착수했다(‘신동아’ 2003년 1월호 단독보도).

    국방부는 참여정부가 출범하기 직전인 올 2월 하순 김법무관리관에 대한 감사결과를 발표했다. 먼저 군검찰 수사관 활동비 1억6000만원을 횡령했다는 혐의에 대해, “검찰 수사비는 예산회계법령상 기관장의 재량 사용이 가능하다” “검찰 수사비 중 일부를 업무추진비로 사용했을 뿐 사적으로 사용한 적이 없기 때문에 횡령죄 성립이 안 된다”며 면죄부를 줬다.

    또한 직권남용 부분에 대해서도 “정상적 업무수행 과정에 일어난 일이며 위법한 권력남용 사실을 확인할 수 없었다”고 무혐의 처분했다. 다만 국선변호사비, 군판사 여비·출장비 횡령, 운전병의 음주운전 사건 개입 등에 대해 책임을 묻고 ‘장관 서면경고’ 처분을 내렸다.

    같은 시기 국방부 검찰단도 참여연대가 김법무관리관을 고발한 사건에 대해 ‘혐의 없음’ 결론을 내리고 수사를 끝냈다. 참여연대는 곧바로 고등군사법원에 재정신청을 냈다.

    감사원의 계좌추적

    김법무관리관에 대한 조사는 끝이 없는 듯했다. 이번엔 감사원이었다. 감사원이 감사에 착수한 것은 인수위로부터 관련 자료를 넘겨받았기 때문이다. 국방부 정기감사(일반 회계감사)를 통해 김법무관리관의 개인 비리 혐의를 추적한 감사원은 정기감사 후 두 달간 특별감사를 실시, 계좌추적까지 벌였다.

    감사결과가 나온 것은 지난 6월. 국방부 감사관실 결론과 달리 김법무관리관의 혐의를 대부분 인정했다. 감사원은 6월말 감사결과 자료를 ‘인사 참고용’으로 국방부에 넘겼다.

    당시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이 자료의 제목은 ‘군검찰 수사활동비 집행업무 부당 처리’. 이에 따르면 김법무관리관은 군검찰 수사관 활동비와 국선변호료, 출장비, 군사법원 운영비 등을 임의로 사용했다. 감사원은 이것을 횡령이라기보다는 불법 전용으로 규정했다. 김법무관리관은 감사과정에서 이 돈을 격려비, 부서 운영비 등 공적 용도로 썼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감사원은 “장부를 파기시켰기 때문에 입증하지 못한다”며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감사원 감사결과가 발표된 이후 청와대와 국방부 사이에 김법무관리관 인사조치를 둘러싸고 갈등기류가 형성됐다. 국방부 수뇌부가 소극적인 태도를 취한 데다 김법무관리관을 ‘정치적 희생양’으로 보는 군내 여론이 만만찮았기 때문이다.

    김법무관리관은 지난해 대선과정에 이른바 ‘병풍’과 관련해 국회 청문회에 선 적이 있다. 쟁점은 군검찰이 1999년에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을 인지하고 내사한 적이 있는지 여부였다. 당시 군검찰관으로서 병역비리수사에 참여했던 일부 군법무관들은 청문회에 나와 그런 사실이 있다고 증언했다. 이는 ‘병풍’을 일으킨 김대업씨의 주장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김법무관리관은 당시 국방부 검찰부장이었던 고석 대령의 보고를 바탕으로 이와 상반된 주장을 폈다. 사실 여부를 떠나 그의 주장은 한나라당에는 유리하고 민주당엔 불리한 것이었다. ‘정치적 희생양’이라는 시각은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7월4일 청와대 양인석 사정비서관은 법무병과 영관장교 3명을 시차를 두고 청와대로 불러들여 법무병과 개혁방안과 김법무관리관 인사조치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7월7일 문재인 민정수석과 유보선 국방차관이 청와대에서 만났다. 이 자리에서 두 사람은 김법무관리관을 포함한 3명의 비리 의혹 장성에 대한 인사조치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머지 2명은 육군 법무감 위성권 준장, 국방부 검찰단장 오준수 대령이었다.

    위법무감은 김창해 법무관리관과 마찬가지로 군검찰 수사관 활동비 일부와 출장비·여비 등을 횡령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김법무관리관에 대한 혐의를 조사하는 과정에 불똥이 튄 것이다. 오검찰단장은 참여연대의 김법무관리관 고발사건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무혐의 처분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7월9일 국방부는 김법무관리관과 위법무감을 보직해임했다. 하지만 오검찰단장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대신 국방부 시설국장 정재호 소장을 보직해임했다. 인천공항 외곽경계시설 공사와 관련해 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였다. 오검찰단장은 두 달 뒤인 9월말 자진 전역했다.

    청와대 불려간 영관급 군법무관들

    김법무관리관을 보직해임하긴 했지만 국방부는 이후 청와대에 반발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였다. 법무관리관 직무대리에 국방부 법무과장 고석 대령을 임명한 것부터가 그랬다.

    고대령은 김창해 법무관리관과 마찬가지로 지난해 국회 청문회에 나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에 유리한 증언을 했다고 해 민주당으로부터 집중 공격을 당한 바 있다. 참여연대는 지난해 9월 고대령을 공무상비밀누설, 증거 인멸, 국회 위증 등의 혐의로 국방부 검찰단에 고발했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청와대에서 고대령을 좋게 볼 리가 없었다.

    다음으로 법무조직 개선책 연구 명목으로 법무병과발전특별위원회(이하 발전특위·단장 조영호 육군 중장)를 구성했다. 발전특위는 우선 김법무관리관이 보직해임되는 데 개입한 혐의를 받고 있는 일부 영관장교들의 행적을 조사했다. 지난해 국회 청문회에 나와 상관인 김창해 법무관리관, 고석 국방부 법무과장과 상반되는 주장을 폈던 이명현(한미연합사 법무실장) 중령을 비롯한 4명의 군법무관이 그 대상이었다.

    때 맞춰 일부 언론은 “발전특위가 청와대를 방문한 영관장교들을 엄중 문책할 방침”이라고 보도했다. 군법무관들의 청와대 방문을 인사청탁과 연결시키는 기사도 나왔다. 물론 발전특위측 시각을 반영한 기사였다.

    파문이 일자 청와대가 진화에 나섰다. 문재인 민정수석은 “내가 참고인 자격으로 불러 법무병과의 문제점에 대해 물어본 것인데, 무슨 인사청탁이냐”고 정면 반박했다.

    청와대가 이렇게까지 나오자 발전특위로부터 조사를 받은 군법무관들은 ‘예상과 달리’ 별 탈이 없었다. 남재준 육군참모총장이 “정치행위를 했다”며 이들의 옷을 벗기려 했다가 송영근 기무사령관의 반대로 철회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송사령관과 문재인 민정수석은 매우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의 고등군사법원장 수사

    법무병과 내부 갈등과 관련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장 박주범 대령 고소사건이다. 국방부 검찰단장이 군검찰의 최고위직이라면 고등군사법원장은 군내 모든 사건의 항소심 재판을 관할하는, 군사법원의 최고위직이다. 그리고 그 두 직위의 상위직으로서 법무병과의 모든 업무를 감독하는 자리가 바로 김창해 준장이 물러난 법무관리관이다.

    박대령을 고소한 사람은 지난해 뇌물수수, 횡령 등의 혐의로 유죄판결이 확정돼 강제 전역당한 김태복 전 소장. 그는 여단장 시절 군사보호지역에 대규모 위락시설을 허가해주고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 등으로 기소돼 대법원 파기환송, 고등군사법원 유죄판결, 대법원 재상고 기각 등 우여곡절 끝에 최종적으로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다.

    재심을 준비중이던 김 전 소장은 지난 5월 박대령을 직권남용, 공문서변조,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앞의 두 혐의는 자신의 재판과 관련된 것이다. 직권남용이란 당시 재판장이었던 박대령이 재판과정에 부당한 권한을 행사했다는 것이고 공문서 변조란 증인조서 등을 자신에게 불리하게 바꿨다는 것이다.

    눈길을 끈 것은 세 번째 혐의다. 김 전 소장은 고소장에서 박대령이 사건 관련 변호인들로부터 몇 차례 룸살롱 접대를 받는 등 향응과 더불어 돈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놀랍게도, 일시와 장소까지 적시했다. 사실이라면, 박대령을 철저히 뒷조사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알아낼 수 없는 내용이었다. 당시 기자와 만난 김 전 소장은 “어떻게 그런 사실을 알아냈냐”는 물음에 “경위를 밝힐 수는 없지만 다 사실이다”고 말했다.

    이 고소사건은 청와대를 난처하게 만들었다. 김창해 법무관리관이 물러날 경우 박대령을 유력한 대안으로 검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태복 전 소장은 고소장을 제출하기에 앞서 김창해 법무관리관과 상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인지 법무병과 주변에서는 박대령 고소를 김창해 법무관리관의 ‘역공’으로 보는 음모론이 제기됐다.

    현직 고등군사법원장 고발사건을 수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9월초 발전특위는 장관의 승인을 얻어 한시적으로 특검제를 도입했다. 해군 검찰부장인 김칠하 대령을 국방부 검찰단에 파견하는 형식으로 특검에 임명, 독자적 수사권을 부여했다. 참여연대가 고발한 고석 대령의 혐의도 수사 대상이었다.

    10월초 특검 결과가 나왔다. 김 전 소장이 제기한 박대령의 향응 혐의 중 일부는 사실로 확인됐다. 계류중인 사건 관련 변호인으로부터 술 접대를 받은 사실이 밝혀진 것. 특검은 이와 관련해 해당 변호사의 진술을 확보했다. 그에 따라 유력한 법무관리관 후보로 거론되던 박대령은 큰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대가성이 없는 술자리였으므로 문제 될 게 없다”는 의견도 만만찮아 향후 인사가 주목되고 있다.

    특검은 고대령의 혐의에 대해서는 별다른 조사를 벌이지 않고 과거 국방부 검찰단의 수사 내용으로 대체해 표적수사 시비를 불러일으켰다. 한편 박대령을 고소한 김 전 소장은 “선고유예 판결에 의해 전역시킨 것은 부당하다”며 헌법소원을 냈는데, 최근 헌법재판소가 위헌판결을 내림으로써 복직하게 됐다.

    9월초 위성권 육군 전 법무감은 국방부에 보직해임 취소를 요구하는 인사소청을 냈다. 9월16일 열린 인사소청심사위원회(위원장 신일순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육군 대장)는 위 전 법무감의 소청을 받아들여 보직해임 취소 결정을 내렸다. 총리실, 감사원에 이어 청와대가 인정한 보직해임 사유를 국방부가 인정했다가 다시 부인하는 해괴한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김창해 전 법무관리관과 달리 수사 활동비를 수사관들에게 되돌려준 점을 감안한 결정이라고 한다. 어쨌든 이 결정으로 위 전 법무감은 김 전 법무관리관보다 유리한 조건에서 전역하게 됐다.

    서울지검 특수3부의 내사

    위 전 법무감과 함께 인사소청을 제기했다가 취소한 김 전 법무관리관은 또 다른 혐의로 검찰(서울지검 특수3부) 수사 대상에 올라 눈길을 끈다. 변호사 3명으로부터 합계 8000만원을 받아 주식투자에 사용한 혐의인데, 참여연대의 재정신청을 심리하고 있는 고등군사법원의 계좌추적 과정에 드러난 것이라고 한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김 전 법무관리관이 해직된 후 이와 관련된 자료를 검찰로 이첩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미 해당 변호사들을 조사했으며 김 전 법무관리관도 참고인 자격으로 두 차례 조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 전 법무관리관은 이에 대해 “빌린 돈”이라며 아무 문제 될 게 없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법무관리관에 대한 감사원 감사로 촉발된 청와대의 군 사정기관 개혁 시도는 결국 법무병과와 헌병병과의 고위직 장성 4명을 자진 전역하게끔 만들었다. 이에 대해 청와대의 ‘과도한 개입’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군 개혁을 위해선 먼저 군 사정기관부터 개혁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비리 혐의로 신망을 잃은 기존 수뇌부 물갈이가 불가피했다는 청와대의 논리는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군 수사기관의 고위관계자는 “군 사정기관에 기득권 세력이 포진하고 있는 한 개혁은 요원하다”고 말했다.

    “그동안 군 수사기관이 너무 부패해 있었다. 수사거리는 많은데 선별적으로 사건을 처리하고 봐주다 보니 축소·은폐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국방부가 위성권 전 육군 법무감의 소청을 받아들여 보직해임을 취소하자 청와대가 격노했다고 들었다. 4명의 장성이 동시에 전역지원서를 낸 데는 청와대의 압박이 작용했고, 그들에게는 그럴 수밖에 없는 속사정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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