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1월호

“대박 터뜨린 캐나다 이민상품, 실제론 혹한의 원시림 지역”

캐나다학 교수의 이민 열풍 직격진단

  • 글: 문영석 강남대 교수·캐나다학 smoon@kangnam.ac.kr

    입력2003-10-27 17: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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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인들은 지금 ‘코나디안 (Konadian)’을 꿈꾼다. 모 홈쇼핑의 캐나다 이민상품은 방송 80분 만에 175억원어치가 팔렸다.
    • 20,30대의 70%가 이민을 원하며 이민지로 캐나다를 가장 선호한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나왔다.
    • 가히 ‘캐나다 광풍’이다. 캐나다는 과연 삶의 질을 높여줄 수 있는 나라인가. 국내 유일의 캐나다학 전공학자가 분석한 캐나다 이민 현지 실태, 문제점 및 성공비법.
    “대박 터뜨린 캐나다 이민상품, 실제론 혹한의 원시림 지역”

    토론토 도심

    최근 이민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높아졌다. 20~30대 10명 가운데 7명 정도가 이민을 생각하고 있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나왔다. 결혼정보업체 ㈜피어리가 20~30대 남녀 572명을 대상으로 전화 설문조사를 실시해 9월17일 집계한 결과 응답자의 72.1%인 380명이 “이민을 생각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민을 생각하는 이유로는 자녀의 교육문제 (42.3%), 국내 실업문제 및 경제난 (31.4%), 국내의 정치적·사회적 혼란 (19.7%) 순으로 꼽혔다. 이민 희망국은 캐나다(32.7%), 미국(30.5%), 호주(23.9%), 멕시코 등 중남미지역(8.9%) 순이었다.

    이런 경향은 즉시 현실로 나타났다. 최근 국내 모 홈쇼핑 회사가 캐나다 매니토바주 이민 상품을 내놓자 단 80분 만에 175억원어치가 팔려나갔다. 며칠 후 내놓은 2차 상품도 약 600억원(추정치)의 매출을 올렸다. 신청자수는 총 2935명. 1차 때의 3배에 달하는 엄청난 반응이었다. 이는 단일 품목, 단일방송시간으로는 홈쇼핑 사상 최고의 주문매출액이었다고 한다. 상품의 매기가 대체로 침체된 상황에서 이민 상품만 ‘대박’을 터뜨린 것이다.

    왜 캐나다에 열광하는 것일까. 무엇보다 불신이 극도로 팽배해 있는 한국 사회의 전반적 분위기가 일차적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지도자들과 사회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모 일간신문의 기사 제목대로 ‘광풍! 탈(脫) 한국 신드롬’의 에너지가 되고 있다.

    캐나다 이민 열풍에는 ‘모방적 전염’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모방적 전염은 대중의 열기에 무비판적으로 휩쓸려가는 것으로 이성적 분석이나 개인의 주체적 판단을 마비시킨다. 한국처럼 국토가 좁고 단일화된 사회에서는 이런 현상이 잦다. 실제로 캐나다 이민열풍에는 검증되지 않은 추측과 과장들이 난무하고 있다.



    필자는 캐나다에서 17년간 생활했다. 현재도 캐나다학 전공교수로서 캐나다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특히 대학 재학 시절엔 한인 밀집지역인 토론토에서 11년간(1987~97) 비정규직(part time job)으로 사회복지 상담실에서 일하면서 이민 정착 과정에서 실패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극빈자 구호금(welfare), 연금, 저소득층을 위한 정부 임대 아파트 신청, 신규이민자 정착, 유학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업무에 종사했다.

    이 과정에서 필자는 캐나다 이민자들이 겪는 고통을 생생히 보고 들을 수 있었다. 필자가 체험한 것들을 바탕으로 현행 캐나다 이민제도의 문제점을 하나하나 지적하고자 한다.

    캐나다는 과연 낙원인가

    우선 객관적 지표로 알아보자. 국제연합(UN)은 매년 전세계 174개국의 평균수명, 문맹률, GDP, 보건, 여가, 범죄율, 교육지수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 ‘인간발전지수(Human Development Index)’를 내놓는다. 인간발전지수는 곧 ‘삶의 질’을 의미한다. 이 순위에서 캐나다는 1990년대에 내리 6번, 그리고 2000년에 다시 또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캐나다는 세계에서 러시아 다음으로 국토가 넓은 나라다. 남한의 100배나 되는 광대한 영토(998만km2)에 인구는 불과 3000만 명 정도. 자연자원도 풍부하다. 세계 경제를 이끌어가는 서방 선진 7개 공업국(G7)의 하나로서 사회복지제도와 교육환경이 훌륭하다고 공인받고 있다. 캐나다는 또한 미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으면서도 미국과는 달리 테러나 범죄 발생률이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낮다. 한국의 경우 북한과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고 중국, 일본 등 이웃 나라들로부터도 잠재적 위협을 받고 있다. ‘국가안보’란 개인의 관점에선 생명과 재산으로 보호해주는 시스템을 의미한다. 캐나다의 안보상황은 한국보다 월등히 좋은 편이다.

    그러나 캐나다에도 다양한 사회문제가 있다. 우선 지역간 경제·문화적 편차가 크다. 여러 가지 유형의 편견도 상존하고 있다. 계층간 수입격차도 매우 크다. 극빈자, 실업자, 노숙자도 많다. 낙원이 편견도, 차별도, 격차도, 인간적 소외도 없이 고루 잘사는 곳을 의미한다면 캐나다는 낙원이 아니다.

    “대박 터뜨린 캐나다 이민상품, 실제론 혹한의 원시림 지역”

    캐나다의 시골 농장. 캐나다는 도농간 생활수준과 문화의 격차가 큰 나라다.

    캐나다의 국가적 상징인 국장(國章)엔 “바다에서 바다에 이르기까지”(A mari usque ad mare)란 문구가 쓰여 있다. 캐나다의 동쪽 해안은 대서양이며 서쪽 해안은 태평양이다. 동부와 서부의 시차는 4시간반으로, 서쪽 밴쿠버가 오전 10시일 때 동쪽 뉴펀들랜드는 같은 날 오후 2시30분이다.

    당연히 지역간 편차가 클 수밖에 없다. 온타리오엔 캐나다 전체인구 3000만의 약 37%가 몰려 있으며 그 중 절반이 토론토 인근 4개 도시에 살고 있다. 서부의 부유한 주들은 동부의 가난한 주들을 경제적으로 원조(equalization payment)해준다. 동부 연안의 뉴펀들랜드 같은 가난한 주의 실업률은 15%를 상회한다. 반면 온타리오주의 실업률은 3~4%에 불과하다.

    현재 한국의 수많은 영어 학원이나 여러 대학에선 캐나다 젊은이들이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시골지역 출신이거나 인문학을 전공한 사람들이다. 캐나다에서도 청년 실업이 상당한 사회문제라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이민 쉬운 州, 실업률 높아

    북미로 간 이민자들은 특별한 전문직(교수·의사 등)이나 개인적 연고가 없는 한 대부분 상공업이 발달한 대도시로 집중된다. 캐나다 또한 예외가 아니다. 이민자들의 50% 정도가 토론토에 살고 있고 30% 정도는 서부의 대도시 밴쿠버에 산다. 나머지가 록키산맥 자락에 있는 캘거리를 비롯, 전국 각처에 흩어져 있다. 지금 캐나다에서도 이농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청년들은 도시문화에 대한 동경과 구직 문제 때문에 도시로 모여들고 있다. 여기에다 출산율이 현격하게 떨어지고 있는 추세다. 이 점은 이민문제와도 연결된다.

    이농현상과 출산율 저하로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주들은 독자적인 이민정책 을 내놓으면서 적극적으로 이민자들을 유치하려고 한다. 그 중의 하나가 이번에 한국 홈쇼핑의 이민 대상이었던 매니토바주다. 매니토바주는 캐나다 곡창지대의 한가운데에 있는 주. 가도가도 산을 볼 수 없는 수만리에 걸친 대평원지대로, 그 중 50.8%(3307만5198ha)는 원시림으로 뒤덮여 있다.

    전형적인 대륙성 기후여서 여름철엔 한낮 편군기온이 35℃를 넘을 만큼 무덥고 겨울에는 평균기온이 영하 20℃까지 떨어진다. 혹한이 몰아치면 영하 40℃에 육박하기도 한다. 그러나 습도는 낮아 겨울철에 아주 춥게 느껴지지는 않는다고 현지인들은 말한다. 그러나 춥게 느껴지지 않는다 하여 함부로 노출하고 돌아다니다간 동상에 걸릴 위험이 크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곡창지대인 캐나다 대평원에 위치한 주(매니토바, 샤스카취완), 불어사용을 강요하는 퀘벡주, 경제적으로 낙후한 동부 연안의 주(뉴펀들랜드, 노바스코샤, 뉴브런즈윅, 프린스에드워드아일랜드) 들은 이민자들에게 인기가 없으면서 상대적으로 이민이 쉬운 곳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 주는 신규 이민자들을 유치하기 위해 연방이민법보다 훨씬 느슨한 조건을 내세우고 있다. 그래서 상당수 이민자들이 이들 주에 들어오는 조건으로 영주권을 취득한 뒤 온타리오주나 서부의 대도시로 이주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홈쇼핑 광고에서 보여주었던 것처럼 그림 같은 집, 넓은 잔디밭, 공원 등은 누구나 동경해 마지않는 주거환경이다. 이민 알선업자들은 우선 이민신청자들을 캐나다로 데려가 견학을 시킨다. 대개 주택가의 골목길이 한국의 4차선 도로 만큼이나 넓고 주차공간도 풍부한 곳들이다. 어디를 가든 금세 마주치는 공원, 이상적인 학교시설, 시민을 위한 위락시설 등이 제시된다. 여기에 안 넘어갈 사람이 없다.

    그러나 이민알선업자들이 보여주는 곳은 대부분 중산층 이상이 사는 지역들이라는 것을 미리 알아둘 필요가 있다. 이런 정도의 주거 공간은 캐나다에서도 일부 계층만이 누리는 것으로, 한국에서 온 대다수 초기 이민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대다수 캐나다 이민자들은 목가적이고 쾌적한 환경 속에서의 삶을 연상하고 캐나다로 온다. 그러나 도착하고 나서 몇 달 지나지 않아 그것이 ‘신기루’였음을 깨닫게 된다. 또 부유한 도시가 아닌 시골을 정착지로 선택한 상당수 이민자들은 고독감을 심각하게 느끼게 된다.

    30~40대 한국인 이민자들은 대개 열정이 넘치고 도시문화에 익숙한 한국 내의 엘리트그룹이다. 실제로 이들 중엔 홈쇼핑 광고대로 매니토바주 같은 시골에 정착한 사람들도 있다. 이들이 만주 벌판(위도나 기온이나 풍경이 매우 흡사함) 같은 적막한 대평원에서 과연 어떤 느낌을 갖게 될까. 매니토바주의 주도인 위니펙만 해도 인구는 68만 정도로 한국 기준으로 보면 지방 소도시에 불과하다.

    도시가 서울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넓은 공간에 널찍하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주택가에 들어서면 한적하기 이를 데 없다. 적막한 공간은 이민자들에겐 고독감을 더해줄 수 있다. 여름 한철 강원도 산골에 가서 재충전을 할 수는 있겠지만 영원히 살아야 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대박 터뜨린 캐나다 이민상품, 실제론 혹한의 원시림 지역”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몰에서 열린 이민박람회에 20~30대 청년층이 몰려 캐나다 이민에 대해 상담을 받고 있다.

    매니토바주 정부의 이민 홈페이지 (http://www.gov.mb.ca/labour/immigrate)를 한번 들여다보자. 매니토바주는 주로 컴퓨터 관련기술자, 웹디자이너, 자동차 수리공, 전기-기계 기술자, 요리사, 벽돌 쌓는 기술자 등 주로 기능직을 원한다. 그러나 한국인 이민 신청자의 절대 다수는 중산층 이상의 사무직 출신들이다. 현지에서 영어와 기술교육을 시켜준다고 한다지만 과연 30~40대 나이의 이민자들이 이른 시일내 새로운 기술과 언어를 익혀 적응해 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요즘 한국사회에서 유행하는 단어가 ‘코드’인데 한마디로 캐나다가 요구하는 이민형과 한국의 이민 지원자들의 ‘코드’는 전혀 맞지 않는 것이다.

    모 일간신문은 이번 홈쇼핑 이민상품 신청자가 실제 캐나다 이민을 떠날 확률은 10%에 불과할 것으로 추정했다. 이같은 추정은 매우 현실성 있는 이야기다. 한국인은 과거에도 몇 번 비슷한 경험을 한 바 있다. 1960년대 브라질로 농업이민을 갔던 사람들은 애당초 농업과는 전혀 연관이 없었던 사람들이었다. 결국 절대 다수가 농업을 포기했다. 다행히 이들은 대도시로 진출해서 브라질의 의류업계를 장악했다.

    독일에 광부로 갔던 사람들도 실제로 광업과는 아무런 인연이나 경험이 없었던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무작정 독일로 갔지만 역시 탄광이 아닌 다른 곳으로 빠져나갔다. 매니토바 이민도 이들의 전철을 그대로 밟게 되리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한국사회가 당면한 여러 가지 문제들, 특히 교육제도와 실업문제를 획기적으로 해결하지 않는 한 유학과 이민 열풍을 잠재우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간 여러 매체들이 이민열풍의 부정적인 면을 앞 다투어 보도했지만 정작 이민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캐나다의 정황이나 초기 이민생활의 성공과 실패담을 실체적으로 분석한 보도는 거의 없었다. 이런 가운데 이민의 긍정적인 면을 보여주고 부정적인 측면은 간과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이민도 일종의 구매행위다. 문제는 이민의 경우 충동구매가 가져올 부작용이 너무나 심대하며 원상회복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때문에 이민의 결단을 내리기 전에 먼저 이민에 관한 정보와 이민자들의 다양한 경험담을 취합해야 한다.

    이민자들은 일차적으로 심리적 불안에 시달린다. 이민자들은 새로운 문화에 노출되면서 정서적 충격을 받는데 이러한 문화충격(culture shock)은 성장단계에 있는 어린이보다 어른에게 더 심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매사에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하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 두고 온 고향 ‘한국’을 생각하며 후회하는 일이 잦아진다. 누구에게 하소연조차 할 수 없는 현실에서 대인기피증이나 우울증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특히 수직적 위계제도가 뿌리깊은 나라에서 성장한 한국인은 철저히 수평적인 캐나다 사회로 진입하자마자 상처를 입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캐나다 이민 후 가족 구성원들이 가장에게 ‘옆집처럼’ 수평적 관계를 요구하기도 한다. 이를 거부할 경우 아내와 자식에게 배척받는 일도 벌어진다.

    한국인 전용 정신클리닉

    이러한 문화적 충격으로 인해 해체되는 가정도 경우도 의외로 많다. 필자는 토론토에서 한국 교포들을 상담하는 과정에서 많은 이혼 사례를 접할 수 있었다. 위계질서가 엄격한 한국 회사에서 간부로 대접받다가 캐나다에 와서는 하루 종일 계산대 앞에서 푼돈을 세어야 하는 현실에 직면하면 이민자들은 그야말로 허무를 절감한다.

    토론토 웨스턴병원엔 한국인 전용 정신과클리닉이 운영되고 있다. 정신적 방황이 한국인 이민자들에게 큰 장애물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이 클리닉 임승호 전문의는 “동양계, 특히 초기 이민자들 가운데 문화와 언어차이 등으로 인해 각종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이민자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대표적 정신질환으로 우울증, 불안공포증, 피해망상증을 꼽으며 “이런 증상들을 방치할 경우 심각한 정신질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정신과 전문의들은 “하루속히 목표를 이루려는 한국인 특유의 조급증이 정신질환의 최대원인”이라고 분석하고 “능력에 맞는 장기적 계획과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가지라”고 조언한다.

    한국인 상호간 불신이 크다는 점도 캐나다 이민의 불안요인이다. 신규 이민자들은 한국에서부터 현지 한국인들을 조심하라는 주의를 듣는다. 반면 1970~80년대 캐나다에 들어온 기존 이민자들은 최근의 이민자들에 대해 “돈 좀 가져왔다고 으스댄다”면서 경원시한다. 결국 한인 밀집지역을 중심으로 한인 신문이나 각종 단체들을 통해 정보를 나눌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서로 의심하고 경원시하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

    한편 이민자들이나 유학생들이 부딪히는 가장 큰 장벽은 영어다. 영어를 극복하지 못하는 한 성공적인 이민대열에 들어서기는 어렵다. 영어가 이민자들을 일종의 청각 장애자, 벙어리, 문맹자로 만들고 있기 때문. 그래서 이민자들은 자꾸 의기소침해지고 주눅이 들어 캐나다 주류사회엔 접근도 못하고 한인사회를 맴돌며 게토(ghetto)를 형성한다. 이에 따라 좁은 교민사회에서 조그만 이권을 두고도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것이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이민가정 어린이들이 의사표현이나 학습에 있어 원어민 수준에 이르는 데는 대략 5~7년이 소요된다고 한다. 10대에 유학이나 이민을 할 경우 성인이 되면 본토 수준의 매끄러운 영어를 구사할 수 있다. 20의 경우 현지 대학이나 각종 학교에서 적어도 3~4년간 수학하면 악센트나 어휘표현에 약간의 문제가 있기는 해도 주류사회에서 사람들과 어울리고 일하는 데 큰 불편을 느끼지는 않는다. 고3이나 대학 1학년 때 이민 와서도 현지의 유명한 법대나 의대에 들어가고 캐나다에서 가장 선망받는 직종인 변호사, 의사, 회계사, 교수가 된 한국 이민자도 많다.

    가장 큰 문제는 30, 40대다. 이번 홈쇼핑 이민상품 구매자를 연령대별로 보면 30대가 51%를 차지해 가장 많았고 40대(29%), 50대(7%), 기타(13%) 순이었다. 이 연령층은 대부분 한국에서 십여 년 이상 영어공부를 한 사람들이다. 현재 한국 30~40대의 평균적인 영어회화능력이 어느 정도인가를 여기서 재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영어를 배우는 최상의 비결은 학교에 들어가는 것이다. 학교 수업을 통해 읽기, 쓰기, 듣기, 말하기를 두루 배울 수밖에 없으므로 퇴학당하지 않고 수업을 따라가기만 하면 언어능력이 크게 향상된다.

    그러나 나이 30을 넘긴 성인 이민자들은 가족부양의 책임이 있기 때문에 한가하게 학교에서 공부를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30만~40만달러를 갖고 캐나다로 이민을 왔다고 해도 주택, 자동차를 구입하고 생활비로 지출하다 보면 첫해 10만달러를 쓰는 게 보통이다. 이렇게 되면 심리적으로 매우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대개는 이민 초창기 몇 달 동안 영어학교를 다니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이내 직장이나 가게를 물색하러 나서게 되는 것이다.

    한국서 영어 배운 뒤 오라

    영어는 캐나다 이민자들에겐 생존의 도구다. 이민 와서 영어공부할 시간이 많지 않다면 이민 오기 전 한국에서 영어회화에 모든 것을 걸고 전력투구해야 한다.

    1990년대 후반 캐나다에서 IT 산업이 번창해 인력이 달리자 컴퓨터를 전공하고 직장에서 1~2년 경험을 쌓은 한국인들이 독립이민 형태로 캐나다 토론토 지역 IT회사에 상당수 입사했다. 그러나 문제는 영어였다. 숙련된 컴퓨터 기술자 중에서도 결국 언어 장벽을 극복하지 못해 직장에서 쫓겨난 사람이 있었다. 기계조작도 중요하지만 말이 통해야 능률이 오르고 무엇보다 직장동료들과의 인간관계도 원만해진다. 이민생활에서 영어가 얼마나 대단한 변수인가는 한국인 이민자들의 웹사이트(www.konadian. com)에 올라온 한 주부의 글에서 잘 드러난다.

    “한국인 가게주인은 스무 살짜리 백인 종업원에겐 잔소리 한마디 안 하면서 나는 만만해 보였는지 한국말로 계속 간섭하고 참견하였다. 진심으로 내 일처럼 보아주는 내 맘을 알면서, 또 그걸 고마워하면서도 일삼아 잔소리를 했다. 샌드위치 속에 상추 잎을 두 장 넣으면 한 장만 넣으라 하고(아주 작은 거라 두 장 넣은 건데) 버터를 많이 바른다, 베이컨을 조금씩 넣어라 하며 계속 잔소리다. 백인은 상추를 세 장씩 넣어도, 베이컨을 덥석덥석 넣어도 한마디도 안했다. 왜일까? 문제는 영어였다. 영어를 못하는 주인은 주방에서 궂은 일을 다 맡아하고 백인 종업원은 대개 카운터에서 손님의 주문만 받는다. 영어를 왜 배워야만 하는지, 그 확실한 이유를 눈으로 본다.”

    이처럼 영어에 한이 맺힌 이민자들은 자녀들이 영어를 유창하게 할 때쯤이면 대단히 만족스럽게 생각한다. 아이들은 일단 학교에 들어가면 무서운 속도로 영어 실력이 늘지만 어른은 잘 늘지 않는다. 그렇게 몇 년 지나면 소위 완벽한 수준(?)의 영어를 구사하는 아이들과 여전히 모국어만을 완벽(?)하게 구사하는 부모 사이에 두터운 장벽이 생긴다. 물론 ‘밥 줘’ ‘돈 줘’ 하는 기본적인 말은 한국말로 하지만 아이들은 자신의 의사를 영어로 표현하는 것이 훨씬 편하다고 느끼게 된다. 아이들은 사춘기 정도 되면 학교 내외에서 여러 가지 심리적 문제를 겪게 되는데 이런 문제를 영어가 짧은 부모와 상의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한국인 이민자들은 자녀가 영어를 잘한다고 생각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 교육부가 주내 10학년생(한국 고등학교 1학년에 해당) 17만명을 대상으로 독해 및 작문 시험을 실시했는데 29%의 학생들이 기준치 이하의 점수를 받았다. 이들 중엔 이민자 가정 출신 학생도 상당수였다고 한다.

    캐나다 이민자들은 영어만 완벽하게 구사하면 문제가 다 해결될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는 착각이다. 영어를 잘 구사하는 대신 한국어 구사능력을 많이 잃어버렸다면 캐나다 이민자로서의 장점은 상당부분 사라지는 것이다. 한국어로 의사소통은 가능하지만 유창하게 구사하지 못하는 교포2세나 유학생들은 한국에 돌아와서도 영어강사 외에는 할 일을 찾기 어렵다. 한국 기업이나 한국 관련 사업을 하는 캐나다 기업이 원하는 직원은 대개 한국어와 영어를 모두 유창하게 구사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교민들은 소위 브로큰 잉글리시(문법이 잘 맞지 않은 영어)로 자녀들과 대화하려고 한다. 영어를 이중 언어로 배우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언어학습에 관한 연구들은 모국어에 유창한 아이는 영어도 쉽게 배울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두 개의 언어를 쓸 줄 아는 아이들의 경우 한국어의 문장 표현방식을 영어에 자연스럽게 접목시킴으로써 영어로 말을 할 때나 글을 쓸 때 창의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더 잘 개발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두 개 이상의 언어를 배우면 전반적으로 아이들의 언어 구사능력이 향상되어 학습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한다.

    2세들이 한국어를 잃어버리도록 방치하는 것은 캐나다 이주민들이 너무나 쉽게 범하는 실수다. 그래서 필자는 캐나다 교민들에게 “아이들이 한국어로 하면 잘 들어주고 영어로 하면 아예 못 들은 척 무시해라”고 충고해왔다. 모든 것을 부모에게 의존해야 하는 아이들은 한국말을 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할 수밖에 없다.

    자녀의 영어 구사력에만 관심을 기울이다가 결과적으로 훌륭한 재산이 될 수 있는 한국어를 잃어버리도록 하는 것은 피해야 할 일이다. 또한 부모와 자녀간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서도 한국어교육은 필수다.

    이민은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캐나다 이민정책의 목적은 미래 캐나다 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전문지식, 기술, 자본을 갖추고 있으면서 되도록이면 젊은 사람들을 유치하고자 하는 것이다. 영어도 못하고 특별한 기술도 없고 돈도 없으면서 캐나다에서 살기 힘들다고 불평한다면 그건 억지를 부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민이란 제1세대에겐 끝없는 절망의 산과 허무의 늪을 건너야 하는 장거리 행진이다. 무엇보다 자기가 누렸던 기존의 삶으로부터 ‘하향이동’을 각오해야 한다. 대다수 이민자들은 캐나다로 떠나며 삶의 ‘상향이동’만을 꿈꾼다. 그러나 언어와 문화적 배경이 극도로 다른 동양인이 서양사회에 진입하는 것은 과거의 경력과 경험을 무화시키는, 즉 ‘원점’에서 새로 시작하는 것이라는 점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이민자는 과거의 화려했던 경력은 잊어버려야 한다. 캐나다의 전문직에 진출할 수 없다면 초밥 말기, 미용, 자동차 정비, 조경, 손톱 손질, 청소 등 무엇이라도 척척 해낼 수 있는 체력과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이민대행사 잘 택하면 절반 성공

    이민을 알선하는 대행사나 업자들도 무조건 이민지망자들을 유혹해 영주권 한 장 쥐어주고는 캐나다라는 망망대해에 내팽개치는 일을 더 이상 해서는 안된다. 이민자들 사이에는 정직하고 능력 있는 이민대행사의 선택이 이민에 있어 절반의 성공이라는 말이 있다. 제대로 된 이민대행사를 선택하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일이다.

    구체적이고 실현성 있는 대책 없이 무작정 이민을 떠난 결과, 현지 정착에 실패하고 한국으로 역이민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이들의 사례를 모은 역이민 사이트도 있다. ‘이민 절대 가지 마라’는 제목의 책도 최근 발간됐다. 이러한 일들은 한국-캐나다의 외교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인류의 역사는 이주의 역사였다. 한국인의 직계 조상만 해도 본래 한반도에서 산 것이 아니라 중앙아시아에서 이주해 왔다. 여러 가지 사례들이 이민을 생각하는 사람들을 의기소침하게 만들 수 있지만 오늘의 북미를 일군 사람들도 유럽에서 먹고살 것이 없어 배 하나에 의지해 목숨을 걸고 대서양을 횡단한 이주자였다. 여러 가지 부정적 사례를 들어 캐나다를 마치 살벌한 사회처럼 묘사했지만 아직도 역이민은 10% 내외에 불과하다. 역이민자 중엔 자녀나 부인은 캐나다에 남겨둔 경우도 많다.

    최근 토론토의 한국인 이민자들이 만든 웹사이트에 읽는 이의 가슴을 따스하게 하는 글이 하나 올라왔다. 영어도 잘 못하고 특별한 기술도 없는 평범한 중년의 이민자가 조그만 가게를 운영하면서 캐나다에서 살고 있는 체험담이다. 그는 캐나다에서의 삶은 노력한 만큼 보상이 주어지고 보람도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3년 전 오늘, 내 가슴에 한 그루의 작은 사과나무를 심고 이곳 캐나다의 동부 끝 핼리팩스에 우리 가정의 둥지를 틀었다. 거의 빈손으로 시작했다. 마음의 각오는 어느 정도 하고 왔지만 낯선 얼굴과 언어에 깜짝깜짝 놀랐고, 점점 삶의 용기를 잃어갈 때엔 ‘내가 왜이곳에 와 있지’라는 향수병에 걸릴 정도였다.

    도착 며칠 후, 어느 정도 시차에 적응한 후부터는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우선 이 도시의 지리를 알아야만 했고, 무언가 정복하고 싶은 마음으로 부지런히 헤매고 다녔다. 석 달 후,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지를 결정하게 되었다. 하얀 와이셔츠에 푸른 타이를 매고 하는 일은 아니었지만 새로운 일을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한다는 것이 더 가슴 설레게 했다.

    구멍가게! 우리 가게는, 핼리팩스의 할렘가라고 불리는 헤링코브 로드에 있었다. 너무나 낡은 건물에 들어있는 볼품없는 가게였다.

    하지만, 첫날부터 남편과 나는 ‘손님은 왕’이라는 나름대로의 철학을 가지고 가게를 찾는 손님 한 사람 한 사람을 진심으로 존중했고, 참마음으로 친절을 베풀었다. 그러자 점점 더 많은 단골손님이 생겼고,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다정한 이웃으로 자리잡기에 이르렀다.

    사실, 나는 영어를 그다지 잘하는 편이 아니어서 몇 달 동안은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 웃음거리가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섰다. 하지만, 우리 구멍가게를 위해서 할 일은 너무도 많았다. 나는 일주일에 2~3번 정도 조금 더 싼 가격에, 조금 더 많이 물건을 구입했다.



    우리 가게는 인수한 지 몇 달 안 되어 전 주인보다 50% 이상의 매상을 더 올렸다. 또한 캐나다 사람들이 나누어주는 따스함에 감동을 했다. 그해 겨울에 손님 중 한 분이 조끼를 손수 떠서는 추운 날 물건 하러 갈 때 따습게 입으라고 선물해주셨고, 어떤 손님은 우리 가족의 양말을 모두 손뜨개질하여 가져오시는가 하면, 어떤 손님은 음식도 나누어 먹어야 정이 든다고 정성스레 만든 음식을 나누어주셨다. 같은 민족끼리도 이런 따스한 정을 나눠보지 못했는데…. 나는 1년6개월 만에 가게를 정리하게 되었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자신감이 있었다. 사탕가게(candy shop)를 다시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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