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1월호

1000만달러 소송 휘말린 한국타이어, 불법 외환거래·배임·주가조작 의혹

  • 글: 이형삼 동아일보 신동아 차장 hans@donga.com

    입력2003-10-28 10: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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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주주의 불법 역외펀드 설립·운영, 대주주의 주식옵션 이면계약과 이에 대한 회사의 이행보증, 주식 불공정 거래, 해외 자금 은닉….
    • 국내 굴지의 타이어 메이커인 한국타이어가 국내외에서 거액의 손해배상청구소송과 행정소송에 휘말리면서 의혹이 꼬리를 물고 있다. 이와 관련, 금융감독원이 직무를 유기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1000만달러 소송 휘말린 한국타이어, 불법 외환거래·배임·주가조작 의혹
    국내 1위, 세계 7위의 타이어 메이커인 (주)한국타이어가 미국에서 1000만달러짜리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당하고, 국내에서도 관련 행정소송과 행정심판에 연루되는 등 ‘복합 소송’에 휘말려 귀추가 주목된다.

    지난해 10월 중미 케이만군도에 적(籍)을 둔 페닌술라 애셋 매니지먼트사(社)는 한국타이어 대주주가 불법으로 역외펀드를 설립, 운영하면서 계약 위반으로 자신에게 피해를 입혔다며 1000만달러를 지급하라는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미국 텍사스주 타란트 카운티 법원에 제기했다.

    페닌술라 애셋 매니지먼트의 실질적 운영자로 국내에서 손꼽히는 국제금융 전문가인 P씨(텍사스주 댈러스시 거주)는 이어 지난 4월 한국타이어의 위법행위에 대한 조사자료를 공개하라며 금융감독위원장에게 정보공개청구서를 제출했고, 이에 대해 금융감독원이 일부 자료만 공개하자 이번에는 국무총리행정심판위원회에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P씨는 또 지난해 12월 한국타이어 감사보고서에 대한 금감위 증권선물위원회의 감리 조치가 미흡했다며 지난 6월 서울행정법원에 증선위 의결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을 냈다.

    이 사건은 여러 모로 시선을 끈다. 무엇보다 국내 기업인이 자본금 한푼 없이 해외에 페이퍼 컴퍼니, 이른바 ‘검은머리 역외펀드’를 만들어 거액의 자금을 끌어들이는 수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주식옵션 이면계약, 대주주의 이면계약 이행을 보증하기 위한 기업의 약속어음 발행, 특정금전신탁을 이용한 역외펀드 채권 매입 등 고도의 금융기법이 다양하게 활용됐다. 주식 불공정 거래와 시세 조작 의혹도 불거졌다.

    역외펀드의 설립과 운영, 청산, 펀드 자산의 기업 재무제표 계상에 이르기까지 6년 여에 걸쳐 진행된 정교한 ‘머니게임’은 불법과 합법의 경계를 무시로 넘나들며 관찰자의 인내력을 시험한다. 그 과정에서 금융감독기관이 감시와 견제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했는지를 따져보는 것도 의미있다 할 것이다.



    역외펀드 만들어 주식 매수

    우선 P씨의 설명을 토대로 사건의 개요를 살펴보자. 워낙 복잡한 금융기법이 사용된 만큼 ∼를 참조하며 흐름을 좇아가야 거래구조를 이해하기 편하다. 소송의 한쪽 당사자인 P씨의 설명인 만큼 일부 내용은 한국타이어나 금융감독원의 주장과 다르다. 이처럼 쟁점이 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뒤에서 따로 살펴보기로 한다.

    1996년 8월 한국타이어측은 조세 피난처인 말레이시아 라부안에 ‘자하마(Jahama)’ ‘제이드(Jade)’ ‘오션(Ocean)’ 등 3개의 역외펀드를 설립했다. 자본금은 각 0.1센트. 그나마 납입되지 않는 명목 자본금이었다. 자하마와 제이드는 한국타이어의 신용도를 빌려 3년 만기의 달러화 채권 약 4100만달러(당시 한화 약 300억원)를 제일은행 등 한국계 금융기관에게 발행했다(의 ①). 자하마와 제이드는 이렇게 끌어들인 자금으로 일본 기업 요코하마 고무가 보유해온 한국타이어 주식 76만주(상장주식의 13.2%)를 1주당 약 4만원(액면분할 이전 기준)에 매수했다(의 ②).

    한편 자하마와 제이드는 이들 주식 전량을 달러 채권 만기까지 1주당 약 5만원에 한국타이어 최대주주(조양래 회장)가 매수하게 하는 콜옵션 및 풋옵션 매매계약을 체결했다(의 ③). 이후 주가가 하락하더라도 채권 원리금을 갚을 수 있는 단가에 주식을 팔 권리를 확보, 이를 달러 채권을 매수하는 금융기관에 담보로 제공한 셈이다.

    그러나 금융기관이 개인인 대주주의 약속만 믿고 거액을 내줄 수는 없는 노릇이라 한국타이어는 주가 하락시 대주주의 주식 매수 이행을 보증해주면서 법적 절차를 무시한 채 주식 매수 대금에 상당하는 외화 약속어음을 발행했다(의 ④). P씨는 “③이 불법 외환거래이기에 매수 대금 지급시 환전승인이 거부될 수도 있어 미리 약속어음을 발행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대주주의 불법 외환거래를 회사가 입보해준 배임행위라는 것.

    자하마·제이드 채권 만기를 10개월 앞둔 1998년 12월에는 또다른 역외펀드인 오션이 한국장기신용은행에 5년 만기 달러 채권 2000만달러를 발행했다(의 ①上). P씨에 따르면 외환위기 시점이던 당시 한국타이어 주가가 요코하마 고무로부터 인수한 가격의 절반인 2000원대로 폭락하자 해외에서 추가로 자금을 조성, 채권을 처리하기 위해 다시 채권을 발행했다는 것이다. 오션은 달러 채권 발행자금으로 자하마 달러 채권을 조기 상환할 목적으로 자하마와 콜옵션 계약을 체결, 자하마가 보유한 주식이 상승할 경우 상승분에 대한 권리의 대가인 옵션 프리미엄으로 자하마에 자금을 전달했다(의 ②).

    P씨의 페닌술라 애셋 매니지먼트는 당시 장기신용은행에 대한 오션의 채권 발행 주간사였다. 그런데 P씨는 업무처리 과정에서 오션 채권의 실제 매수자가 장기신용은행이 아니라 한국전지를 비롯한 한국타이어 관련회사들임을 알게 됐다고 한다. 이들 회사가 장기신용은행에 특정금전신탁 구좌를 개설, 이를 통해 오션의 채권을 매입하고 회사 재무제표에는 ‘장기성 예금’으로 허위 기재했다는 것(의 ①下). 특정금전신탁의 경우 가입자가 은행측에 특정 외화 증권을 매입하라고 지시하게 되어 있다.

    P씨는 “모회사의 대주주가 감수해야 할 리스크를 자회사와 관련회사들에게 대신 부담시키기 위해 나를 매개로 외화가 해외로 불법 송금됐다”며 “이는 1996년의 불법행위를 은폐하기 위한 또다른 불법행위”라고 말한다.

    1999년 4∼5월 자하마는 오션으로부터 받은 자금 등으로 달러 채권을 조기 상환했다(의 ①). 그 무렵 한국타이어는 100억원이 넘는 규모의 자사주를 취득하고 이례적으로 100% 무상증자 공시를 내는 등 주가 부양 의지를 드러냈다. 여기에다 증권사들의 매수 추천이 잇따르자 한국타이어 주가는 급등세를 거듭했다.

    이렇듯 주가가 급등한 시점에서 자하마와 제이드는 보유 주식을 단가 약 9000원(액면분할 이후 기준)에 장내 매도해 약 300억원의 수익을 냈다(의 ②). 제이드는 주식 매도대금으로 달러 채권을 조기 상환했다(의 ③). 이어 자하마와 제이드는 채권을 상환하고 남은 돈을 오션에 전달한 후 청산됐고(의 ④), 오션은 장기신용은행에 발행해준 달러 채권을 그해 하반기에 역시 조기 상환했다().

    주가 부양 후 대량 매도

    대주주가 자기 돈 한푼 들이지 않고 고난도의 금융기법으로 주식을 사고 팔아 막대한 시세차익을 챙긴 머니게임은 이렇게 막을 내리고 묻히는 듯했다. 그러나 채권 발행을 대행하면서 자신도 결과적으로 불법행위에 연루됐다고 판단한 P씨가 한국타이어측에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나서면서 양자 간에 갈등이 빚어졌고, 이는 마침내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으로 이어졌다.

    P씨는 2000년 중반부터 역외펀드, 국내 기업의 해외 증권 발행 등과 관련해 관계 당국으로부터 참고인 조사를 받거나 이들에게 자문을 해주는 과정에서 한국타이어 불법 외환거래의 심각성을 절감하게 됐다. 더욱이 현대그룹의 콜옵션·풋옵션 거래 등이 물의를 빚고 각종 ‘게이트’가 잇달아 터져나오자 불안감은 더 커졌다고 한다. 오션이 P씨의 명의로 노출되어 있어 당국에 적발되면 자신도 처벌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2001년 11월, 재정경제부는 3개월의 유예기간을 주며 모든 역외펀드를 한국은행 총재에게 보고하도록 고시했다. 거주자가 설립(투자)한 역외펀드는 물론, 설립주체에 관계없이 비거주자가 설립한 경우까지 신고를 의무화한 것. 또한 FRN 등 부채성 증권 매입, 대출, 보증 및 담보제공을 통해 역외펀드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하거나, 역외펀드에 투자하기 위한 목적으로 외국 금융회사에 신용공여를 하는 경우에도 당국의 관리·감독을 받게 했다. 이 때문에 P씨는 오션의 자진 신고를 종용하기 위해 한국타이어측 실무자에게 연락을 취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유예기간 5개월 지나 신고

    신고 유예기간이 끝난 지난해 3월 ‘향후 역외펀드가 적발되면 엄중하게 처벌한다’는 기사를 본 P씨는 오션 채권 발행시 영국법 법률의견을 줬던 홍콩 로펌의 변호사를 선임, 한국타이어측에 오션 채권 발행 주간사 계약서상의 조건 위반을 통보하고 대책을 요구했다. 오션과 페닌술라 애셋 매니지먼트 간에 작성된 계약서에는 ‘이 계약서에 따른 증권 발행이 말레이시아, 한국, 미국의 법 규정을 어겼거나 어겼다고 추정되는 경우’ 발행사가 주간사에 피해보상을 해주게 되어 있다.

    그래도 한국타이어가 답을 주지 않자 P씨는 계약 당시의 한국타이어 재무담당 임원을 찾아가 사정을 호소했지만, 임원은 법률을 위반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그후에도 한국타이어 관계자들과 몇차례 더 회합을 가졌으나 “외환거래의 불법성을 인정할 수 없고, 설령 불법이라 해도 전문가들에게 잘못이 있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P씨는 “오션에 남아 있는 한국타이어 자금을 다른 곳으로 이전해 더 이상 나와 연관되지 않게 해달라”는 자구책을 제시했지만, 이것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000만달러 소송 휘말린 한국타이어, 불법 외환거래·배임·주가조작 의혹

    <표 1> 1996년 8~10월 거래도

    1000만달러 소송 휘말린 한국타이어, 불법 외환거래·배임·주가조작 의혹

    <표 2> 1998년 12월 거래도



    한국타이어는 신고 유예기간을 5개월이나 넘긴 지난해 7월에야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에 역외펀드 관련 사실을 보고했다. P씨는 자신의 문제 제기로 사건이 노출되자 한국타이어가 어쩔 수 없이 자진 신고를 한 것으로 보고 있다. P씨는 2002년 대통령선거가 끝나면 지난 정권에서의 금융부정 의혹에 대한 전반적인 조사가 벌어질 것이며, 이 경우 자신도 무사하지 못하리라는 판단에 따라 지난해 8월 미국으로 건너갔다. 이어 10월 텍사스주 법원에 한국타이어에 대한 1000만달러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한편 P씨의 주장에 대해 한국타이어 관계자는 “P씨는 처음부터 돈을 뜯어낼 목적으로 우리에게 접근했다”고 반박했다.

    “P씨는 홍콩 로펌과 한국 로펌을 선임하고 우리에게 400만달러를 요구하며 ‘돈을 주지 않으면 법적 절차를 밟겠다’고 협박했다. 하지만 그는 홍콩과 한국에서 소송을 제기하지 않았다. 이 사안이 소송감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에게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않았는데 도대체 무슨 손해를 배상하란 말인가. 그런데도 이번에는 미국에서 똑같은 주장으로 우리를 협박하고 있다.”

    그러나 P씨의 얘기는 다르다.

    “지난해 3월 홍콩 로펌이 보낸 서신에서 언급한 400만달러는 공탁금이다. 피해구제 조항을 발동하려면 관례상 금액을 제시해야 한다는 현지 변호사의 조언에 따랐을 뿐이다. 그래서 한국타이어 임원에게 ‘아직까지는 내가 피해 본 게 없으니 법적 보호책을 마련해주면 돈 얘기는 없었던 걸로 하겠다’고 했다. 서신의 요지는 내가 오션 거래의 본질을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을 증명해달라는 것이었다. 이걸 협박이라 할 수 있는가.”

    대화로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하고 감정싸움으로 치달으면서 결국 거액의 송사로 번지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서둘러 미국으로 건너온 데다, 다른 원고측이 미국인이어서 미국에서 소송을 제기했지만, 향후 상황에 따라 ‘다국적 소송’을 전개할 수도 있다”고 했다. 또한 미국 민사소송은 기업의 불법행위에 대해 단호하다는 점도 감안했다. 1000만달러의 배상금을 요구한 데는 ‘한국타이어의 부도덕성에 대한 주의 환기’라는 상징적 의미도 있지만, 페닌술라 애셋 매니지먼트의 문을 닫게 된 데 따른 영업기회 상실, 소송이 최종 완료될 때까지 수년간 소요될 천문학적인 변호사 비용과 현지 체재비 등 현실적인 사정도 고려됐다는 설명이다.

    ‘발행회사와의 관계-없음’

    지난해 12월24일 금융감독위원회는 한국타이어와 최대주주 조양래 회장에게 “1996년 역외금융회사를 위한 채무보증 등의 과정에서 한국은행 총재의 신고수리를 취득하지 않았다”며 3개월간 비거주자를 위한 채무 보증계약 체결정지 처분을 내렸다. 역외금융회사 설립·운영 현황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은 데 대해서는 한국타이어에 경고 처분을 내렸다.

    같은 날 금감위 증권선물위원회는 “한국타이어가 설립·운영해온 역외펀드를 통해 획득한 운용수익은 회사에 귀속되어 재무제표에 계상해야 함에도 이를 누락했다”며 한국타이어에 대해 주의 및 시정요구 처분을 의결했다. 이에 따라 한국타이어는 오션에 있던 자금 약 75억원을 회사 자산으로 귀속시켰다.

    금감위의 이같은 조치에 대해 P씨는 “‘회사가 설립·운영해온 역외펀드를 관련 법령에 무지해 정해진 기간내에 신고하지 못했다’는 한국타이어측의 말만 듣고 제대로 검증도 하지 않은 채 솜방망이 징계를 내림으로써 6년에 걸친 불법행위에 대해 면죄부를 줬다”며 “유사한 행위로 중징계를 받거나 형사고발된 다른 기업들의 경우와 도무지 형평이 맞지 않는다”고 허탈해 했다.

    문제의 역외펀드는 한국타이어가 아니라 조양래 회장 개인이 설립·운영한 것이므로 그 자산을 회사로 귀속시킨 것은 부당하며, 정작 주요 위법행위인 주식옵션 이면계약과 그 이행보증을 위한 담보로 제공된 외화 약속어음 발행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제재가 없었다는 것. 아울러 주식 불공정 거래와 시세 조작 의혹에 대해서도 철저한 조사가 필요했다는 주장이다. P씨는 증선위 의결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을 냈다. 이는 한국타이어가 한국 법 규정을 어긴 사실이 명백하게 입증돼야 미국 민사소송에서 계약위반이 성립되기 때문이다.

    한국타이어측은 “역외펀드 자산은 조회장의 것으로 볼 수도 있고, 회사의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조회장은 보증만 서고 아무것도 한 게 없으니 회사 소유로 봐도 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2000년 4월 조회장이 한국타이어를 통해 금감위와 증권거래소 등에 제출한 ‘주식 등의 대량 보유(변동) 보고서’의 특별관계자 인적사항을 보면 제이드는 ‘보고자(조회장)와의 관계’가 ‘공동보유자’라고 기재되어 있는데 비해 ‘발행회사의 관계’는 ‘없음’이라고 돼 있다. 공동보유자란 ‘(보고자와) 주식 등을 공동 또는 단독으로 취득한 후 그 취득한 주식을 상호 양도 또는 양수하는 행위를 할 것을 합의한 자’를 가리킨다. 따라서 제이드가 페이퍼 컴퍼니인 점을 감안하면 이들 역외펀드 명의의 주식은 옵션거래 당사자인 조회장이 ‘소유에 준하는 보유’를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1000만달러 소송 휘말린 한국타이어, 불법 외환거래·배임·주가조작 의혹

    <표 3> 1999년 중반기 거래도

    1000만달러 소송 휘말린 한국타이어, 불법 외환거래·배임·주가조작 의혹

    <표 4> 1999년 하반기 거래도



    1000만달러 소송 휘말린 한국타이어, 불법 외환거래·배임·주가조작 의혹

    한국타이어와 관련된 의혹을 불식시키려면 금감원 등 감독기관의 철저한 진상 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제이드에서 발생한 주식 시세차익은 이면계약에 따라 조회장에게 귀속됐고 이 자금은 1999년 하반기에 조회장의 지인 K씨가 유일한 이사로 돼 있는 오션에 전달됐지만, 이후 지난해 12월 금감위 증선위가 시정요구 처분을 내릴 때까지 이와 관련해서는 아무런 공시도 없었다.

    P씨는 “애초부터 오션은 자하마와 제이드에서 실현된 주가 차익을 이전해 은닉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며 “오션으로 자금을 이전한 후 자하마와 제이드를 청산함으로써 역외 금융거래의 자금추적 경로를 차단했다”고 보고 있다. 그러다 P씨로 인해 역외펀드가 노출되자 하는 수 없이 회사가 설립·운영한 것으로 신고했다는 것. 때문에 오션의 자금은 ‘한국타이어에 귀속되어 재무제표에 계상해야 할 누락된 자산’이 아니라, 해외에 은닉된 최대주주의 불법 차명 자금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장외 주식선물거래는 불법”

    한국타이어의 법률대리인인 법무법인 태평양은 지난해 9월 P씨의 미국 변호사에게 보낸 서신에서 “(자하마·제이드가 만들어진) 1996년에는 역외펀드 설립·취득이나 금융옵션계약에 대해 관계당국의 허가나 보고 의무가 없는 것으로 믿었다”고 밝혔다. 외환관리법이 1999년 4월 개정된 이후에야 한국은행에 대한 보고 의무가 명시됐다는 것이다. 역외펀드에 대한 한국 거주자의 의무 이행을 보증하기 위한 직·간접적인 행위가 한국은행의 허가 대상이 된 것도 그 이후부터라는 해명이다.

    그러나 P씨는 “당시 허가나 신고를 요하지 않았던 상황은 자하마·제이드를 취득한 경우와는 전혀 다르다”고 반박했다. 1996년 당시 역외펀드 설립 또는 투자의 법적 근거가 됐던 외환관리법 제10-48조는 ‘(기관투자가가) 외화증권 또는 이에 관한 권리를 취득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허가 및 신고를 요하지 아니한다. 다만 외국법인의 경영에 참가하기 위해 주식 또는 출자지분을 취득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해외 직접투자의 규정에 의한다’이다. 이에 따라 기관투자가들은 역외펀드에 투자된 주식을 분기마다 관계기관에 보고하고 재무제표에 기표했다. 또한 경영 미참가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펀드 운영을 투자 자문사에게 맡기거나, 임직원이 펀드 이사로 등재될 경우 개인 자격으로 하거나, 철저하게 분산투자를 했다.

    그런데 한국타이어 대주주는 기관투자가도 아닐뿐더러 역외펀드도 한 종목에 투자된 경우이므로 일반투자자의 외환증권 투자나 해외 직접투자에 적용되는 훨씬 엄격한 규정을 따랐어야 했다는 것이다. 외화증권 투자규정에 따르면 일반투자자는 증권회사에 매매거래를 위탁하고, 수탁 증권사는 관련자료를 당국에 보고하게 돼 있다.

    자하마·제이드와 대주주 간의 콜·풋옵션 계약도 당시 적용된 외환관리법에 따라 금지사항이었다고 한다. 장내 금융선물거래가 주식선물거래를 포함시킨 반면 장외 금융선물거래에서는 주식선물거래를 제외시켰는데, 장내와는 달리 장외에서는 거래의 공정성과 회수의 투명성이 떨어져 불법 외화 유출 가능성이 높다고 봤기 때문이다.

    SK그룹은 JP 모건과 이와 비슷한 형태의 주식옵션 이면계약을 체결했다가 금감위와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공시위반, 공정거래법 위반 등으로 총 50여 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당하고 그룹 총수가 형사처벌까지 받으며 그룹 차원의 위기를 맞았다. SK는 순수한 회사 자금 조달을 목적으로 했는데도 중벌을 피하지 못했다. 제일화재해상보험은 한국타이어와 같은 시점인 1996년 10월 미신고 역외펀드를 만들고 회사 보유 채권 등을 담보로 국내 은행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했다가 2000년 금융감독원에 발각됐다. 금감원은 검찰에 회장을 포함한 6명의 임직원에 대한 수사를 의뢰하고 출국금지를 요청했다.

    한국타이어가 금감원으로부터 3개월짜리 행정처분을 받던 지난해 12월24일, 동양메이저는 1996년 이후 허가 없이 역외펀드를 설립·운영하고 해외 직접투자, 비거주자에 대한 보증을 했다는 이유로 1년간 해외 직접투자, 비거주자 발행 외화증권 취득, 비거주자를 위한 채무 보증계약 체결정지 처분을 받았다. 같은 날 (주)코오롱도 1996년 말 이후 허가 없이 역외펀드에 출자하고 역외펀드를 위해 보증을 섰기에 1년간 비거주자 발행 외화증권 취득 및 채무 보증계약 체결정지 처분을 받았다.

    자하마·제이드의 달러 채권 발행 조건표에는 ‘한국타이어는 콜옵션 행사에 의하든 풋옵션 행사에 의하든 대주주가 주식(은행에 담보로 맡겨진)을 매수하도록 하며, 만약 어떤 이유에서든 대주주가 매수할 수 없거나 거부하면 다른 매수자를 확보할 것을 약속하는 보증서를 발행한다’는 조항이 있다. 대주주의 주식 매수 이행을 보증하기 위해 한국타이어가 금융기관에 약속어음을 발행하도록 돼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약속어음이란 국제금융시장에서 흔히 ‘P-노트(Promissory Note)’라 불리는 것으로, 국내에서처럼 어음 형태가 아니라 채권·채무계약을 명시하는 계약서 형태로 되어 있다. P-노트를 발행하면 약속된 날짜에 무조건 지급할 의무가 생기며, 약속일에 지급하지 않으면 디폴트(채무 불이행)가 된다. 만일 회사 자금을 조달할 목적으로 적법한 절차를 거쳐 P-노트를 발행했다면 크게 문제 될 일이 없으나, 한국타이어처럼 대주주 개인의 주식 매수 이행을 보증하기 위해 발행했다면 배임 혐의로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런데 한국타이어의 재무담당 임원은 “자하마와 제이드 채권 매입 대가로 금융기관에 P-노트를 발행해준 일이 없다”고 밝혔다.

    “채권 서류 목록에는 P-노트를 발행해주기로 돼 있었지만, 실제로는 P-노트를 발행한 기록이 없다. 금융기관에서 받은 기록도 없다. 아마 나중에 문제가 생길 것 같아 발행하지 않은 듯하다. 조양래 회장이 보증을 섰기 때문에 금융기관들이 신용으로 채권을 매입했을 것이다. 금융기관들은 자하마·제이드 펀드가 조회장 소유라고 생각한 것 같다.”

    하지만 P씨는 이를 “터무니없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국제금융시장의 투자자가 계약조건에 P-노트 발행을 명시해놓고도 발행 사실을 확인하지 않고 투자한다는 건 소가 웃을 일”이라는 것. P-노트가 없으면 자금 차입이 불가능하다는 게 상식이며, 금융기관이 수백억원대의 돈을 입보도 하지 않고 신용만으로 내줬다면 이것도 배임행위나 다를 게 없다는 얘기다. 다만 돈을 다 갚고 나면 회사 담당자가 행여 뒷탈이 있을까봐 P-노트를 받아 없애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도 “한국타이어가 P-노트를 발행하지 않았다고 들었지만, 금융기관이 P-노트 없이 채권을 사주긴 어려웠을 것”이라며 “만약 한국타이어가 이를 발행하고도 없앴다면 명백한 위법행위”라고 했다.

    에서 봤듯 1998년 12월 오션이 발행한 2000만달러 채권의 실제 매수자는 장기신용은행에 특정금전신탁 구좌를 개설한 한국전지 등 한국타이어 관련회사들이다. 이에 대해 법무법인 태평양은 “한국타이어 관련회사들이 특정금전신탁을 개설했어도 법률적 관점에서 보면 장기신용은행이 기관투자가로서 외환거래법 절차에 따라 매입한 것이므로 특정금전신탁을 통한 오션 채권 매입이 규정을 어긴 것은 아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또한 “오션 채권이 부당하게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되지 않았고 오션과 장기신용은행이라는 제3자 간에 맺어진 거래이므로 공정거래법을 위반하지도 않았다”고 했다.

    관련회사들이 채권 매입

    그러나 외환관리법은 일반투자자가 외화증권을 매매할 경우 이를 증권회사에 위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일반투자자가 은행의 불특정금전신탁에 가입하고 은행이 여기에 외화증권을 편입했다면 논란이 있을 수 있으나, 특정금전신탁에선 가입자가 특정 외화증권 편입을 은행측에 지시하므로 외환관리법에 위배된다는 게 P씨의 반론이다.

    한국전지 등이 증권회사에 0.1%의 외화증권 매매수수료를 지급하고 회계상 외화증권 투자로 기표해야 하는데도 은행에 1% 이상의 신탁수수료를 지급하고 장기성 예금으로 기표한 것은 외환관리법을 의도적으로 위반한 행위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오션 채권이 무보증이고, 오션의 자산이라고는 주가 상승에 대한 권리밖에 없어 만일 주가가 떨어지면 원금을 날릴 수도 있는 관련회사들이 연 11%대의 이자를 지급받게 한 것은 특수관계인 간의 거래가 아니고서는 성립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더구나 당시는 금리가 천정부지로 치솟던 시점이어서 그런 조건이라면 연리가 20%대는 돼야 정상적인 거래로 볼 수 있다는 것.

    결국 ‘개미’들이 당했다

    한국타이어는 자하마·제이드 채권 만기를 10개월 남짓 앞둔 1998년 11월, 향후 3개월 동안 자사주를 취득하겠다는 공시를 냈다. 취득목적은 ‘자기주식 가격안정’. 이듬해 3월에는 무상증자를 추진중이라고 공시했고, 한 달 후인 4월23일 100% 무상증자(기준일은 5월24일)를 공시했다.

    공시 전 2000원대로 떨어졌던 한국타이어 주가는 이후 급상승 곡선을 그렸다. 외환위기 이전 주가 수준인 4000원대를 가볍게 돌파하더니 1999년 5월11일에는 장중 고가 1만4700원(100% 무상권리락 감안시 약 7400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그해 4월부터 전체 상장물량의 13.2%에 달하는 자하마·제이드 주식이 시장에 쏟아진 이후 한국타이어 주가는 결국 최고가 대비 30% 수준까지 떨어졌다. 한국타이어는 가격안정을 위해 취득한 자사주를 고점 시기의 가격으로 현금 상여금 대신 임직원에게 지급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한국타이어측은 “당시 취득한 자사주는 주가에 큰 영향을 줄 만큼의 수량도 아니었고(2.98%), 무상주 발행은 결과적으로 발행사의 총 자기자본에 미치는 영향이 없다”고 설명했다. 주가가 오른 것은 시세조작 때문이 아니라 1999년 4월부터 시작된 국내 주식시장의 전반적 상승에 힘입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한국타이어 주식은 조양래 회장 일가와 외국인, 기관투자가들이 70% 가까이 보유하고 있어 일반투자자 사이에 유통되는 물량은 30% 안팎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2.98%는 적은 물량이 아니며, 설령 주가를 크게 끌어올릴 만한 양이 못 된다 해도 회사측이 주가를 안정시키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줬기에 일반투자자들의 관심을 끌기엔 충분했다.

    게다가 3월의 무상증자 추진 공시는 공시조회에 따른 것이었다. 공시조회는 시장과 관련한 풍문이 있을 때 하는 것인 만큼 그 무렵 어떤 세력에 의해선가 한국타이어의 무상증자설이 퍼뜨려졌음을 의미한다. 무상증자는 대개 유상증자 때 주주들에게 실권하지 말라는 뜻으로 실시하며, 그렇지 않은 경우에 100% 무상증자를 실시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당시 한국타이어는 주식 액면분할을 한지도 얼마 안 되는 시점이었다. 한국타이어측의 설명대로 100% 무상증자는 회사의 가치에 변동을 주지 않으므로 기관투자가는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지만, 일반투자자들에겐 커다란 호재가 아닐 수 없기에 대개는 기준일까지 주식을 보유하려 들게 마련이다.

    다른 것은 차치하고라도 한국타이어는 13.2%의 주식을 비밀리에 팔아치움으로써 상장주식 대량보유상황 보고의무(‘5% 룰’)을 지키지 않았다. 비록 자사주 취득 공시와 무상증자 공시로 주가 부양 의지를 드러냈다 해도, 최대주주가 역외펀드를 통해 보유하고 있는 13.2%의 물량을 쏟아낼 것이라거나 처분했다는 것을 알았다면 일반투자자들이 주식을 샀을 리 없다. 뿐만 아니라 증권거래법 시행령에 따르면 ‘최대주주, 최대주주의 특수관계인이 계열회사 등과 금감위가 정하는 중요한 거래를 할 때’나 ‘유가증권의 공정거래와 투자자 보호를 위해 필요한 사항으로서 금감위가 정하는 사실이 발생한 때’처럼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은 중요한 정보가 있는 경우 그 정보가 공개되기 전까지는 자기주식을 취득 또는 처분할 수 없다.

    P씨는 “이런 사실을 감안하면 오션의 자산은 한국타이어로 귀속될 게 아니라 1999년의 한국타이어 주식 불공정 거래로 피해를 본 일반투자자들에게 돌아가야 한다”며 “이들이 불공정거래 배상청구를 하지 않으면 오션 자산은 국가에 귀속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P씨는 조만간 일간지에 광고를 내 당시 손실을 입은 일반투자자들을 모은 뒤 이들로 하여금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게 할 계획이다.

    ‘남은 돈’ 논란

    P씨는 오션에서 한국타이어로 귀속된 돈이 75억원이라는 데 대해서도 의문을 품는다. 1996년의 자하마·제이드의 주식 평균 매수단가와 1999년의 평균 매도단가를 추산하면 약 300억원의 수익이 발생했다는 것. 물론 1999년에는 원화 가치가 하락했기 때문에 원화 투자수익을 달러로 환전하면서 달러화 수익률은 상당히 낮아졌을 수 있다.

    하지만 1996년 무렵 달러화로 차입해서 원화 자산을 운용하는 경우 대부분의 시장 참가자들은 선물환 계약으로 환율변동 위험을 헤징했다고 한다. 따라서 환율 손실을 벌충한 선물환 계약 청산이익이 어디론가 전달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31일 기준 한국타이어 주요 주주현황에 똑같이 4.9%씩의 주식을 보유한(5.0% 이상을 보유하면 주식보유 신고의무가 발생한다) 외국계 펀드 3개가 있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는 것. 이들과 조양래 회장 일가, 기타 특수관계자의 지분 합계는 정확하게 50.0%다.

    이런 시각에 대해 한국타이어 관계자는 “말도 안되는 얘기”라며 “금감원과 국세청에 역외펀드 계좌 전체를 고스란히 제출해 돈이 드나든 흔적을 이 잡듯이 조사받았다. 역외펀드 수익에 대해서는 국세청으로부터 수십억원의 세금까지 부과받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P씨와 한국타이어 중 어느 한 쪽의 말이 맞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한국타이어의 주장이 옳은 것이라면 ‘협잡꾼’에 발목 잡힌 선량한 기업을 돕기 위해서, P씨의 주장이 옳은 것이라면 ‘악덕기업’과 외로운 싸움을 벌이는 의로운 시민을 돕기 위해서라도 관련 당국의 철저한 진상조사가 불가피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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