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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기획|‘新명예퇴직시대’ 가이드

명퇴 후 창업 나선 ‘선배’ 5인의 경험담

“과거 잊고 앞치마부터 둘러라”

  • 글: 김성환 ‘월간 창업&프랜차이즈’ 기자 spam001@hanmail.net

명퇴 후 창업 나선 ‘선배’ 5인의 경험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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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퇴직이라는 것에 연연할 필요가 없더라고요. 어차피 직장은 한계가 있잖아요. CEO가 아닌 이상 적당한 시기에 그만둬야 하는데, 그 시기가 조금 일찍 왔을 뿐이었죠. 그렇게 생각하니 직장 다니는 동안 퇴직 이후의 계획을 전혀 세워놓지 않은 것이 부끄러워지더군요.”

그러나 뜻이 있는 곳에 길은 있게 마련이었다. 오랜만에 참석한 동창회에서 그는 미국에서 살다 온 친구에게 그곳의 침대, 카펫 청소대행업체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들 피부병도 예방하고 쾌적한 생활도 보장하는 클리닝 전문업체가 우리나라에도 필요하다는 주장이었다. 언뜻 듣기에도 괜찮은 사업 같아 보였다.

죽이 되든지 밥이 되든지 일단 시작하고 볼 일이었다. 그는 세탁소를 찾아다니며 클리닝에 대해 알아보는 한편, 소형 승합차에서 각종 약품에 이르기까지 창업에 필요한 장비와 물품들을 준비했다. 그리고 1999년 1월, 명예퇴직 후 4개월 만에 종잣돈 1000만원을 갖고 전문 침대세탁업으로 창업의 첫발을 내디뎠다.

“생각을 오래하니까 오히려 무기력해지더군요. 자신감도 점점 줄어들고. 인터넷 사이트만 뒤적거리고 이것저것 머리만 굴리면 아무것도 안 됩니다. 생각은 깊고 짧아야 합니다. 대처할 시간도 없이 퇴직한 사람이라면 빨리 행동에 나서는 것이 바람직한 것 같아요. 명퇴를 결정했다고 해서 기죽어 지내지 마세요. 사람들도 자주 만나고 여기저기 돌아다녀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론 이정태씨도 처음 6개월 동안은 고생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때마침 가정용 침대에 수많은 집먼지, 진드기, 박테리아가 서식하고 이것이 아이들의 천식과 아토피성 피부염을 일으킨다는 어느 대학교수의 연구결과가 언론에 발표됐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침대 세탁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창업시장에서도 이러한 업종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주문도 늘고 가맹점을 내달라고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현재 이씨는 30여 개의 점포를 출점시킨 프랜차이즈 본부의 대표이다.



“침대 세탁이 물론 거창한 일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여기서 끝난다는 생각은 절대 하지 않아요. 이 일을 계기로 활동영역을 넓히고 또 다른 일을 만들어갈 겁니다. 지금 명퇴를 꿈꾸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마음가짐을 가지라고 충고하고 싶습니다.”

‘“양복 입고 넥타이 매던 시절은 옛말”13년 몸바친 직장 떠나 반찬가게 연 정호기씨

명퇴 후 창업 나선 ‘선배’ 5인의 경험담
서울 봉천동 재래시장에서 반찬전문점을 운영하는 정호기(41)씨. 무려 120여 가지에 달하는 맛깔스런 반찬들도 구경거리지만 남자인 그가 보란 듯이 두르고 있는 빨간 앞치마가 더욱 눈길을 끈다.

“제 삶을 바꿔놓은 앞치마입니다. 이거 안 둘렀으면 지금 어떻게 됐을지 몰라요.”

지금껏 살아오며 단 한번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앞치마를 정씨가 두르게 된 것은 3년 전 작은 치킨전문점을 개업하면서부터다. 지난 1996년, 13년 동안 애정을 쏟았던 회사인 (주)제우정보는 당시 경기침체에 따른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부도로 쓰러졌다. 이 과정에서 그도 퇴직할 수밖에 없었다. 컴퓨터 제조 및 소프트웨어 개발 분야에서 잘나가던 회사였던 터라 동종 업체에서 ‘러브콜’을 보내오기도 했다. 하지만 연봉협상 때마다 그는 ‘부도회사 출신이 목소리가 너무 크다’는 핀잔을 들어야 했다. 결국 ‘더러워서 내 일 하겠다’는 결심으로 1999년 시작한 것이 바로 치킨전문점이다.

드디어 개업식날 아침. 가게에 도착한 정씨는 일을 하기 위해 빨간 앞치마를 무심코 손에 들었다. 그런데 그것을 차마 두르지 못하고 30분 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그래도 한때 잘나갔었는데, 앞치마가 뭔지도 모르고 살던 사나이가 어쩌다가…. 참 만감이 교차하더군요. 하지만 그것은 현실이었어요. 왕년은 잊어버리자, 처음부터 시작하자는 생각에 눈 딱 감았죠.”

그때부터 쓸데없는 자존심은 사라졌다. 새벽에는 업소 소개 전단을 들고 거리를 누비고, 낮엔 동네 아줌마들을 찾아다니며 넉살 좋게 홍보용 병따개를 나눠줬다. 종업원, 재료상, 고객을 구분하지 않고 인간적으로 대했다. 그렇게 1년이 흐르자 하루 10마리 팔리던 닭이 150마리까지 팔려나갔다. 결국 그의 점포는 당시 1300여 개에 이르던 해당 브랜드의 전국 가맹점 중에서 매출액 ‘톱3’에 진입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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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성환 ‘월간 창업&프랜차이즈’ 기자 spam0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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