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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산책

고대 유럽 호령한 훈족 수장 아틸라는 한민족

유물·유적 통해 추적해본 한민족의 뿌리

  • 글: 이종호 과학국가박사 mystery123@korea.com

고대 유럽 호령한 훈족 수장 아틸라는 한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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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유럽 호령한 훈족 수장 아틸라는 한민족

훈족의 유물과 비슷한 특성을 가진 금관가야의 대표적 유물이 다량 출토된 김해 대성동 고분.

그러나 한나라는 화제(和帝, 89∼105) 원년인 89년에도 남흉노를 규합하여 북흉노에 결정적 타격을 가했다. 치명상을 입고 사분오열된 북흉노는 대부분 동호(東胡)에서 분리된 선비(鮮卑)에 예속되었다. 그러나 일부 북흉노는 천산산맥 북쪽으로 계속 서진하여 페르가나 분지를 지나 발하시호와 아랄해 사이의 강거(康居) 땅에 이르렀다. 이것이 흉노의 제3차 서천이다.

흉노와 훈족을 연결시키는 또 다른 연결 고리는 한나라 왕조가 붕괴될 무렵에 등장하는 남흉노이다. 304년 당시 산서의 태원에 자리잡고 있던 유연(劉淵, ?∼310)은 진(晉)나라 혜제에 의해 남흉노의 왕으로 책봉된다. 그러나 유연은 과거 선조 중에 한나라의 공주가 있었음을 근거로 자신이 한나라의 후예라고 내세우며 스스로를 황제로 칭했다. 그는 308년 태원에서 북한(北漢, 즉 前趙)을 세운다. 318년 석륵(石勒, 274∼333)은 전조를 폐하고 후조(後趙)로 알려진 새로운 흉노 국가를 세웠고, 349년 석민(石閔)이 후조의 정권을 잡았다. 석민은 흉노에게 원한이 많은 한인(漢人)들을 부추겨 대대적인 흉노 토벌에 나서도록 한 뒤 무려 20여 만명의 흉노가 살해되는 것을 방관한다.

흉노로서는 이것이 결정적 패배였다. 중국에 동화된 흉노와 유목 생활을 하던 흉노가 연합했음에도 패배하자, 살아남은 흉노들은 새 삶의 터전을 찾아 서쪽으로 도망쳤다. 이것이 흉노의 제4차 서천으로, 이들은 이미 1∼3차에 걸쳐 서천했던 흉노와 합류(또는 압박)한다. 설상가상으로 370년경부터 혹독한 한파가 엄습하자 흉노는 보다 서쪽으로의 이동을 단행, 375년 서유럽을 공격하기에 이른다.

한편 한반도에서 훈족과의 친연성이 가장 두드러진 지역은 가야와 신라 지방인데, 중국과의 전쟁 와중에 훈족의 지배집단 중 일부가 동천(東遷)하여 한반도에 정착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여기서 훈족의 지배집단이란 유목민의 수령(首領)이 속한 부족을 말한다.

학자들은 흉노·동호·선비·오환 등 북방 기마 민족들의 흥망이 가야국의 건립시기와 유사하다는 점에 주목한다. ‘삼국지’의 ‘위지동이전’에 따르면 한반도 중남부 지역에는 늦어도 1∼3세기까지 마한, 진한, 변한이라는 삼한이 존재하고 있었다. 3세기 중엽 이후 마한은 백제로, 진한은 신라로 통합되었고, 변한은 3세기 이후 가야란 명칭을 갖게 된다. 이는 3세기말∼4세기 초에 변한이 가야사회로 전환됐음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가야란 나라가 신라나 백제와 달리 내부에 다양한 여러 나라들을 포괄하고 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학자에 따라서는 가야의 건립시기가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3세기 중엽까지 무려 5세기의 차이를 보이는 등 논란이 많다.



학자들은 경상도의 가야고분에서 전형적인 북방 기마민족의 유물이 발견된다는 것 자체가 북방 기마민족이 한반도에 정착한 증거라고 주장한다. 특히 금관가야는 흉노가 직접 한반도에 들어와 세웠다는 설도 있다. 이러한 점들로 미루어볼 때 흉노 속에 포함됐던 한민족의 일파가 서천하여 훈족으로 성장했고, 또 다른 일파가 동천하여 가야 등으로 성장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결혼 조건으로 로마의 절반 요구

가장 넓은 대국을 건설한 역사적 인물을 꼽으라면 칭기즈 칸과 알렉산더 대왕, 그리고 아틸라(Attila, 395∼453)를 들 수 있다. 세계 3대 제국을 건설한 아틸라는 고구려 광개토대왕보다 20년 늦은, 훈족이 서유럽을 침공한 지 20년이 지난 395년에 문주크왕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아틸라의 생애는 로마의 역사가 프리스코스와 요르다네스에 의해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로마는 훈족에 공물을 주어 화친(和親)하면서 게르만족을 경계했다. 이에 따라 당시 외교 관례대로 아틸라는 410년경부터 서로마 황제 호노리오스가 수도로 삼은 라벤나 궁정에서 자랐다.

434년 왕위 후임자였던 삼촌 루가가 사망하자, 훈족의 전통에 따라 아틸라는 형 블레다와 함께 왕위에 올랐다. 새 왕으로서 자신들의 힘을 대외적으로 과시할 기회를 노리던 이들은, 동로마가 훈족에게 보내야 할 공물의 납기를 번번이 어기자 435년 동로마로 진격했다. 이에 동로마는 공물을 두 배로 올리기로 약속하고 아틸라와 평화협정을 맺었다. 이어 아틸라는 서로마로부터 서고트에 대한 경찰권을 넘겨받는다. 이로써 훈족은 로마제국을 제치고 사실상 유럽의 패자(覇者)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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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종호 과학국가박사 mystery123@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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