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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 100일 공과

소탈 행보로 ‘큰 감동’ 협치·탕평 실패로 ‘큰 불안’

  • 유창선|시사평론가 yucs1@hanmail.net

소탈 행보로 ‘큰 감동’ 협치·탕평 실패로 ‘큰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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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대화, 포옹  

소탈 행보로 ‘큰 감동’ 협치·탕평 실패로 ‘큰 불안’

문재인 대통령이 5월 11일 신임 수석비서관들과 오찬을 함께한 뒤 청와대 소공원을 거닐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우선, 박근혜 정부의 참담한 실패에 따른 반사효과를 꼽을 수가 있다. 박근혜 정부가 워낙 비상식적인 행태를 보였기에 이를 바로잡는 모습을 보이는 새 대통령은 어지간하면 국민의 지지를 받게 되어 있었다. 대통령으로서 국민 앞에 몸을 낮추고 소통하는 당연한 모습이 국민의 박수를 받는 광경이 그것을 말해준다. 모든 것이 비상식적이었기에 정상적인 모습만 보여도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시기였다. 문 대통령은 역설적으로 박근혜 정부의 수혜자라 할 수 있다.

여기에 힘이 된 것이 국민의 기대 심리다. 문 대통령은 취임 후 여러 차례에 걸쳐 ‘성공한 대통령이 되겠다’는 다짐을 내놓았다. 반복해서 실패한 정권을 접해야 했던 국민에게는 보수냐 진보냐를 떠나, 국가적 불행 속에 들어선 이번 정부만은 반드시 성공한 정부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문 대통령의 출발에 큰 기대를 걸고 지켜본 것이다.

물론, 문 대통령에 대한 높은 지지가 국정의 실질적인 성과에 근거한 것은 아니다. 아직은 실현되지 못한 기대의 반영인 셈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그 기대치를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선명한 자기 모습을 국민에게 보였다.

가장 눈에 띄는 건 파격적이고 소탈한 소통 행보다. 여왕처럼 행세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고개를 저었던 국민은 낮은 자세로 국민과 소통하는 문 대통령의 모습에 신선한 감동을 받곤 했다. 커피 산책, 낮은 경호, 길 가던 시민과의 대화, 5·18 유족과 포옹하는 모습에 이르기까지 소탈하고 격의 없는 행보는 대통령과 국민 사이의 정서적 거리를 좁혀 놓으며 세상이 달라졌음을 실감하게 만들었다.

이어 문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의 정신과 가치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밝히곤 했다. 그는 “새 정부는 촛불혁명의 정신을 이을 것”이라며 핵심 가치로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을 이끈 촛불정신의 계승을 전면에 내세웠다. 또한 “새 정부는 5·18민주화운동의 정신을 받들어 이 땅의 민주주의를 온전히 복원할 것”이라고 밝혔으며, “6월 항쟁의 정신 위에 서 있다”고 선언했다.

이는 이전 보수 정부와는 확연히 다른, 민주화 정신을 계승하는 정부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정권교체로 새 정부가 들어섰을 때 흔히 국민통합을 의식하며 조심스럽게 접근하던 정권의 정체성 문제에 대해 문 대통령은 예상보다도 과감하고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지난 정부의 실정(失政)에 대한 국민의 염증이 워낙 컸고 그로 인해 촛불시민혁명이 가능했던 특수한 상황을 인식하고 자신감 있는 태도를 취한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입장은 적폐 청산에 대한 요구가 강력한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리면서 일단 국민의 동의를 얻는데 연착륙한 모습이다. 문재인 정부를 둘러싼 보수-진보 이념 갈등은 생각만큼 크게 나타나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와는 분명하게 다른 정부를 원하는 국민의 바람이 문재인 정부 출발에 탄력을 붙여준 셈이다. 또한 문재인 정부도 국정을 운영하는 데 있어 보수층의 정서를 자극하는 일이 없도록 상당히 신경을 쓴 결과이기도 하다.

하지만 대통령의 지지율이 5년을 그대로 유지한 적은 없다. 시간이 지나면 이런저런 국정의 난맥상 드러나고 국민의 기대 심리도 꺾여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하는 것은 하나의 법칙과도 같다. 문재인 정부라고 해서 예외가 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물론 문재인 정부는 노무현 정부 시절의 국정 경험이 큰 힘이 되고 있다. 더구나 그때의 오류를 성찰하겠다는 자세도 갖고 있다. 그러니 쉽게 추락하거나 하는 일은 없을지 모른다. 그래도 어려운 것은 어쩔 수 없는 환경이다.



무시당한 듯한 기분  

문재인 정부가 계속 순항하리라고 예상하기에는 주변 환경이 녹록지 않다. 여소 야대 상황에서 120석 여당의 힘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 임기 초반인 2018년 말까지를 ‘혁신기’로 설정하고 과감한 개혁과제를 이행하기로 했다. 임기 초반 국민의 높은 지지라는 동력이 있을 때 강도 높은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발표한 100대 국정과제 가운데 91개 과제가 법령을 손질해야 하는 입법 사안이다. 법률을 제·개정해야 하는 것만 465건에 달한다. 일단 시행령·시행규칙 개정만으로 이행 가능한 국정과제는 연내에 완료하겠다는 구상이지만, 국회를 우회하는 개혁 방식에는 근본적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에 대해 협조 의사가 없어 보이는 자유한국당은 도리가 없더라도 국민의당, 바른정당, 정의당의 협조를 얻어내 ‘개혁 공조’가 이루어져야 국회입법을 통한 국정과제 수행이 가능한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가 역점을 두고 있는 재벌개혁, 검찰개혁, 방송개혁 모두 이에 해당한다.

이와 관련해 100일 동안 협치를 위한 문재인 정부의 노력은 매우 미흡했다. 이런 얘기를 꺼내면 청와대는 반론을 펼지 모르겠다. 취임하자마자 야당 당사를 찾아가고, 국회를 찾아가고 청와대로 초대하면서 야당 대표들과 대화하는 대통령이 어디 있었느냐고. 그동안 야당의 협조를 얻어내기 위해 청와대와 여당이 얼마나 노력했는데 그러냐고 말이다.

하지만 협치를 위해 진정 필요한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형식적 손 내밀기를 넘어서는 보다 적극적인 정치력이다. 청와대가 자신의 권력을 다소 줄이면서 일정 부분을 야당, 특히 국민의당이나 바른정당에 넘겨주는 과감한 선택을 했더라면 여야 관계가 이렇게 차가워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누가 집권하든 협치 혹은 연정은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였다. 다당제 구도 아래에서 그 누구도 자신의 힘만으로는 국정 운영이 불가능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청와대는 ‘민주당 정부’임을 강조하며 굳이 야당들을 끌어들이려는 선택을 하지 않았다. 야당에 장관 후보자 추천을 요청한다든지, 중요 정책 현안을 결정하는 데 있어 야당들의 의견을 수렴한다든지 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자신의 철학대로 간다는 점을 강조했을 뿐, 굳이 야당에 공을 들이지 않았다. 집권 초기만 하더라도 협조의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열어놓으며 청와대의 태도를 지켜보던 국민의당이나 바른정당은 무시당한 듯한 기분을 느끼며 협조보다는 견제에 방점을 찍는 태도를 굳혔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래 여야 관계가 풀리지 않고 계속 꼬여가는 데에는 물론 제1야당 자유한국당의 무조건적 반대와 다른 야당들의 비협조에도 책임이 있지만, 청와대 스스로 협치를 위한 리더십을 적극적으로 발휘하지 못한 탓도 크다. 결국 여권이든 야권이든 아직 협치에 적응되지 않은 100일의 시간을 보낸 셈이다.

여야 모두가 협치의 정치를 몸에 붙이지 못하고 이대로 계속 간다면 정부도 국회도 계속 혼란의 시간을 보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여기서 협치의 열쇠는 우선은 집권세력 쪽에 달려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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