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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배울 수 있다면 자식 姓도 바꾼다

조기유학 노린 美 위장입양 극성

  • 글: 강지남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layra@donga.com

영어 배울 수 있다면 자식 姓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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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사무장이 언급했듯, 입양이란 친부모가 없거나 혹은 친부모가 양육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인 어린이가 안락한 가정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마련된 인도적인 제도다. 미국은 고아가 아니어도 친부모가 키우기 어려운 형편이라면 만 16세 미만의 어린이에 한해 입양을 허가하고 있다. 그런데 고국에 멀쩡한 친부모를 둔 아이가 단지 유학을 위해 미국 가정에 입양되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개인사업을 하고 있는 오경환(가명)씨는 위장입양을 “충분히 가능한 일이자,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유학 방법”이라고 장담한다. 그는 지난 1999년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던 딸을 미국 남부지역에 사는 처제에게 입양시켰다.

“먼저 딸과 아내가 관광비자로 미국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한인 변호사를 선임해 절차를 밟게 했지요. 친부모는 입양 사유를 밝혀야 하는데, 변호사가 써준 영문 서류에 사인만 하면 됐습니다. 법무사 사무실에 가서 25만원인가를 주고 공증을 받아 미국으로 보냈습니다. 뭐, 자세히는 모르지만 ‘친부모는 경제적 능력도 없고 아이를 키울 만한 정신상태도 아니다’고 쓰여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씨는 “딸의 한국 호적 또한 살아 있다”고 털어놨다. 미 당국에서 입양아의 본래 호적이 깨끗하게 정리됐음을 입증하라고 요구하지 않기에 굳이 호적을 정리할 필요가 없다는 것. 오씨는 “딸이 성년이 되면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선거권이 나올 것”이라며 “주민등록증을 만들라는 통지가 나올 때 딸이 한국에 없는 것이 유일한 걱정거리”라고 했다. 오씨는 처제에게 매달 100만원의 양육비를 보낸다. 그는 “월 100만원이면 거의 공짜로 미국에서 공부시키는 셈”이라며 흡족해했다.

미국 필라델피아의 신중식 변호사는 위장입양 업무를 가장 활발하게 맡아주는 이민 전문 변호사 중 한 명이다. 그는 “지난해에만 미국 전역에서 3000여 건의 위장입양이 이뤄졌을 것”이라며 “개인적으로는 지난 한 해 동안 100건 정도 상담했고, 40여 명을 위장입양시켰다”고 밝혔다.



신변호사에 따르면 위장입양을 시키는 부모들은 대부분 중산층 이상이라고 한다. 그는 “전문직 종사자나 대기업 임직원, 자영업자가 70%를 넘는다”며 “경제적으로는 풍족하지만 부모가 미국에 와서 자녀를 뒷바라지할 여건이 안 될 경우 입양을 고려한다”고 했다. 짧게는 4개월에서 길게는 8개월, 그리고 변호사 비용 2000∼3000달러만 투자하면 간단하게 자녀를 ‘미국 시민’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입양시키는 이유가 단지 교육뿐이라고 해도 아무 문제가 없느냐”는 질문에 신변호사는 “입양 사유가 문제된 적은 없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즉 주(州) 정부는 양부모가 아이를 행복하게 해줄 능력을 갖췄는지만을 중점적으로 심사한다는 것이다.

“법원 판결을 받기 전에 주정부에서 양부모의 집으로 직접 심사를 나옵니다. 실제 함께 살고 있는지, 아이의 방이 있는지, 가정의 분위기는 화목한지 살펴보지요. 또 양부모가 범죄를 저지른 적이 있는지, 아동학대 및 성추행 전과가 있는지도 확인합니다.”

신변호사는 자녀의 위장입양을 상담하러 오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부실한 한국 공교육에 분통을 터뜨리면서 ‘국제화 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원주민 수준의 영어 구사능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강조한다고 전한다. 입양의 목적이 과거처럼 ‘가난한 살림에 숟가락 하나라도 덜기 위해서’가 아니라 ‘선진 교육을 받기 위해서’라는 것.

‘저렴하고 안정적인 유학생활’

이처럼 위장입양이 성행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저렴한 가격에 안정적인 유학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시민권자의 입양아가 되면 무료로 공립학교에 다닐 수 있을 뿐 아니라 대학에 진학할 때는 장학금과 수업료 할인 등 다양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또 비자 만료 등 신분 문제에 대한 걱정을 말끔히 털어버릴 수 있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영주권과 시민권을 자동으로 획득할 수 있다.

현재 학생비자를 발급받아 ‘정상적’으로 조기유학을 하려면 매년 3500만∼4500만원의 비용이 드는 것으로 추산된다. 사립학교 수업료, 기숙사비, 자녀 용돈은 기본이고, 부모 대신 아이의 대소사며 교사와의 상담, 학교행사 참가, 병원 동행, 비자 연기 신청 등을 현지에서 챙겨줄 보호자(guardian) 비용도 대야 한다. 더구나 부모 가운데 한 사람이 자녀와 함께 미국에서 머문다면 비용은 배가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부담 때문에 학부모들은 학비가 전혀 들지 않는 공립학교를 선호하지만, 미 공립학교는 외국인 입학을 허락하지 않고 있다. 때문에 아예 미국 시민권자에게 자녀를 입양시키는 방법이 고안된 것이다.

서울 서초구의 학부모 김모씨는 지난 여름방학을 이용해 중학생인 딸을 미국 시카고에 사는 남동생에게 입양시켰다. 김씨는 공립학교에 다니는 딸에게 매달 급식비 70∼80달러와 약간의 용돈을 부치고 있다. 이 정도면 한국에서 서너 개의 학원을 다니는 것보다 훨씬 저렴할 뿐 아니라, 훨씬 질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유창한 영어실력까지 자연스레 갖추게 될 테니 부모는 아이의 성(姓)이 바뀌는 것만 감수하면 된다는 것. 김씨는 딸에게 “미국에 불법 체류하다 잡히면 그대로 끌려나온다. 입양말고는 미국에서 학교 다닐 방법이 없다고 설득했다”고 한다.

미국에서 불법 체류하고 있는 조기유학생에게 위장입양은 불안한 신분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매력적인 편법이다. 현재 미국에는 공립학교에 다니는 조기유학생이 부지기수인데, 이들 중 상당수는 불법체류자라고 한다. 관광비자로 입국해 미국 거주자를 보호자로 등록해놓으면 별다른 어려움 없이 공립학교에 입학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외국인 학생이 불법 체류자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 뉴욕 소재 공립고등학교 교사인 김경남씨는 “조기유학생들이 미국에 머물기 위해 온갖 편법을 다 동원한다. 입양 정도는 별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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