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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화벌이 일꾼 탈북자의 육필수기 (상)

“군대가 개성 고분 파헤쳐 중국에 골동품·황금 밀수출”

  • 글: 김영일(가명) 전 평양 1여단 소속 외화벌이 일꾼

외화벌이 일꾼 탈북자의 육필수기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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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조선에서 평양 다음으로 잘사는 도시라는 개성이었지만, 우리가 주둔해 있던 개풍군 상동리 농민들의 생활은 전혀 여유가 없었다. 6월이면 1년분 양식이 떨어져 야생초와 과일을 식사대용으로 하는 집이 부지기수였다. 우리도 주위의 민가나 과수원을 습격해 과일이나 감자, 옥수수 등을 훔쳐 주린 배를 채웠다. 군에 입대해 제일 먼저 배운 것이 인민의 재산을 훔치는 일이었던 셈이다.

내가 배치받았던 13연대 정찰소대는 훈련강도는 세지만 자유시간이 좀 있는 편이었다. 훈련은 주로 권투와 격투로 이루어졌다. 병사들은 비무장지대에 도착하면 우선 15일간 훈련을 받으며 참호생활을 했다. 그 뒤 부대에 돌아와 각자 부업을 갖고 자유 경작지에서 일을 하는 식이었다.

전방부대 근무는 나의 인생관을 변화시킨 전환점이었다. 특히 군생활 10년 동안 남조선의 대북방송을 매일같이 들으면서 남조선의 정치상황에 대해 예전과는 다른 의문점을 갖게 됐다.

처음에는 남조선 방송은 모두 거짓말이라고 여겼다. 철저히 교육받은 탓이었다. 그러나 이미 몇 년 근무한 선배들이나 개성 주민의 말을 듣게 되자 혼란이 가중되었다. 대북방송은 “남조선에는 언론, 출판, 집회, 결사, 신앙의 자유가 있으며, 남조선 국민은 누구에게도 지배를 받지 않고 민주주의를 충분히 누리고 있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남조선을 인간지옥이라고 배운 나 같은 이들은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치열한 사상투쟁



이 무렵 공화국에서는 사상투쟁이 한창이었다. 당과 군대를 가릴 것 없이 남로당과 소련파, 중국에서 건너온 파벌 등을 모두 제거하고 김일성 유일체제를 공고화하던 시기였다. 당 공산청년단, 직업동맹, 여성동맹 등의 단체들은 모두 김일성 수령 유일사상체제에 따라 사상투쟁을 전개했다. 이 기간 동안 반동분자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사람은 모두 숙청되거나 사람이 살지 않는 산골짜기로 유배됐다.

외국 연애소설이나 탐정소설은 물론이고 우리나라 고전소설, 홍명희 선생이 쓴 ‘임꺽정’의 원고까지도 모두 불태워버렸다. 또한 동의학(한의학)은 봉건적이고 낙후된 의학이라고 주장하고 동의원과 동의과를 없애버렸다. 침술기구를 들고 다니는 사람은 감옥살이까지 해야 했다. 예술영역에서는 기타, 관현악기를 포함하여 유행가 반주를 할 수 있는 악기와 트럼프 카드, 화투 등을 모두 불태워버렸다.

분위기가 이러했으므로 남조선 대북방송이 제일 많이 들리고 남조선 전단이 가장 많이 발견되는 최전선의 병사들은 치열한 사상투쟁을 벌였다. 그 가운데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는 것은 1973년 무렵 우리 소대의 분대장이었던 이재연에게 일어난 사건이다.

늘어만 가는 ‘반역죄’

이재연의 집은 평안북도 동림에 있었다. 어려서부터 운동을 좋아했던 그는 축구공 다루는 솜씨가 정말 대단했다. 그의 형은 공화국 대표축구선수였다. 1966년 영국 런던에서 개최된 제8회 월드컵 대회에 참가하기도 했던 그의 형은 어느날 당 중앙의 조사를 받고 양강도 산골짜기로 유배됐다. 1973년 4월 초 어느 날, 중대 긴급회의가 소집되었다. 사람들의 표정이 심각하기 이를 데 없었다.

아침 9시, 전중대원이 교육실에 집합했다. 연대 간부 몇 사람과 보위지도원, 그리고 조직지도부에서 나온 2명의 고급장교가 참석했다. 중대 정치지도원이 입을 열었다.

“현재 우리 중대 내에 출현한 반당, 반국가 경향의 분자들을 숙청하기 위해 중대 회의를 소집한다. 먼저 보위지도원 동무가 발언한다.”

정치지도원의 발언이 끝나자마자 전 중대 100여 명의 병사는 일시에 긴장해 숨소리도 내지 않았다. 연대 보위지도원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엄숙하게 전 중대원을 향해 이야기했다.

“현재 중대 내에 적지 않은 문제가 발생했다. 특히 정찰소대는 독립생활을 하는 상황에서 중대 일상생활과 활동에 잘 참석하지도 않고 조직생활도 제대로 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머리에 자본주의사상만 가득 차 있다. 그들은 우리 내부를 와해시키고 우리의 목적을 해치려 하고 있다. 몇몇 사람은 적군의 전단을 보았으며 방송을 듣고 그들의 식품을 먹고 그들의 공산품을 사용했다. 이것은 반역행위이며 전군의 치욕이다. 오늘 우리는 이러한 사람들에게 사심 없는 사상투쟁을 전개하고 또한 군사재판에 기소한다.”

연대 보위지도원의 말이 끝나자, 미리 준비한 대로 소대 공산청년단과 몇 명의 군관, 하사관, 사병이 발언을 했다. 비판대상은 외국담배를 피웠거나 비누 등 남조선 공산품을 사용한 사실 등이었다. 이재연 동무를 포함하여 몇몇 하사관과 사병들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이들은 연단 앞에 서서 고개를 숙인 채 신랄한 비판을 받고 있었다.

토론에 참가한 사람들은 “적군 물품을 사용한 사람은 반당·반혁명 분자일 뿐 아니라 남조선 괴뢰와 한 패거리”라고 욕하며 몰아붙였다. 어느새 사람들의 목소리는 격앙되어 있었고 원한으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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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영일(가명) 전 평양 1여단 소속 외화벌이 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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