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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거노인 D씨와 이라크 파병

독거노인 D씨와 이라크 파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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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국민의 최저 생계를 사회적으로 보장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등재할 주민등록지가 없는 노숙자들은 이 법의 혜택 밖에 방치되어 있다. 사정이 이러하니, 서울역 앞의 한 쪽방상담소는 후원금으로 월세 15만원짜리 쪽방을 얻어놓고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될 수 있는 장애인, 환자, 노인, 임산부 등 근로 무능력자를 입주시키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정부로부터 첫 생활비가 나오면 다음 노숙자를 위해 쪽방에서 나가게 하는 편법으로 좀더 많은 노숙자들에게 기회를 제공한다.

작년과 올해, 모두 28명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되는 혜택을 받았다. 그러나 이 중 세 명은 다시 노숙 생활을 하고 있다. 육손이 C씨도 그 중 한 명이다. 그는 알코올성 간염, 다발성 늑골골절, 왼쪽 어깨 관절염좌 등의 만성질환을 앓고 있다. 게다가 발까지 다쳐 목발을 짚고 다닌다. 상담원들이 그를 위해 얻어둔 방으로 들어오라고 빌고 또 빌어도 C씨는 지하도에 널브러져 꼼짝도 하지 않는다. C씨와 3개월 동안 승강이를 벌인 끝에 쪽방상담소 소장은 포기하자고 했다. 그러나 나는 ‘육손이는 우리보다 진화된 인간이니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며 우겼다. 2개월이 더 지난 후 날씨가 유난히 춥던 어느 날 얼어죽을 지경에 놓인 C씨를 방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C씨는 봄이 되자 다시 지하도로 내려가버렸다.

C씨의 통장에는 매달 31만원의 돈이 쌓여가고 있지만 그는 돈을 찾아서 쓸 줄 모른다. 나머지 두 사람도 C씨와 비슷하다. 이들은 아무래도 우리 문명사회의 일원이 아닌 것 같다. 이들의 행복에 대한 욕구는 일반 사람들과 사뭇 다르다.

서울 성북구의 어느 움막에는 독거노인 D씨가 살고 있다. D씨는 거지와 다름없는 생활을 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되었지만 시가 1억원이 넘는 집이 있는 것으로 밝혀져 수급권이 박탈됐다. D씨를 돌봐주는 한 수녀님의 말에 따르면 그는 전직 정보부 직원이었다고 한다. 매사가 귀찮아 연금도 찾지 않고 집에도 들어가지 않는 새에 재산이 쌓여가고 있었던 것이다. D씨가 얼른 내비치는 말을 듣고 있노라면 D씨는 북파 간첩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북한에 잠입해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겪은 절대공포 때문에 북한과는 전혀 다른 우리 사회의 일상에 적응하는 데 실패한 게 아닐까?

디오게네스나 구룡마을의 신부님이 추구하는 대안적 문명이 제1의 문명이라면, 자연의 순리를 그대로 따르고 사는 곰이나 인도 사람들의 문명은 제2의 문명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반면 인간 집단이 다른 인간 집단을 천적으로 삼고 서로 죽이는 경쟁을 해 집단적 승부를 가리는 전쟁은 제3의 문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사회의 문명은 자본주의 체제에 뿌리내리고 있다. 그런데 전쟁이라는 문명에 전혀 익숙하지 않은 한국의 젊은이들이 이라크에 가서 과연 전쟁의 문명이 요구하는 전사가 될 수 있을 것인지 의문스럽기만 하다. 설령 그들이 전쟁에 잘 적응하더라도 다시금 우리 사회로 돌아와 경쟁적 문명 법칙에 충실한 사람으로 환원되기 쉬울지 그 또한 의문이다. 행여나 성북구 독거노인 D씨처럼 두 문명 사이를 왔다갔다하느라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절대 빈곤층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게 되진 않을까 걱정이다.

신동아 2003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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