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월호

열린우리당 김원기 상임공동의장

“민주당과 통합·연합공천,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된다”

  • 글: 최영훈 동아일보 정치부 차장 tao4@donga.com

    입력2003-12-26 10: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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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통령 입당 시기는 대통령의 판단 존중해야
    • 소폭 개각은 총선 이후 큰 변화 대비한 것
    • 한나라당 대선자금의 10분의 1, 20분의 1도 못 거뒀고 못 썼다
    • “세풍, 안풍, 강제모금…한나라당은 청산, 해체되어야 할 정당”
    •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논의는 노 대통령 인정 않겠다는 정략적 의도
    • 말이 여당이지 대통령은 도와줄 힘도, 그럴 생각도 없다
    열린우리당 김원기 상임공동의장
    노무현 정권 탄생으로 우리 사회 전 분야에 강력한 개혁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특히 대선자금에 대한 검찰 수사로 정치권에는 정치개혁 회오리 바람이 코앞에 닥쳤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정치적 스승’으로 불리는 김원기(金元基) 열린우리당 상임공동의장. 그는 지난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가 외풍에 시달릴 때마다 묵묵히 바람막이 역할을 해줬다.

    동아일보 기자 출신으로 5선(전북 정읍)인 그는 ‘지둘려(‘기다려’의 호남사투리)’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결코 서두르지 않는 ‘기다림의 미학’을 터득한 사람이다. 지금과 같은 여소야대의 4당 체제였던 6공 당시 그는 평민당 원내총무를 맡아 5공청산과 국정감사를 부활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해내기도 했다.

    야당 명총무의 바통을 이어받은 그가 부활시킨 국정감사는 당시 초선이던 노무현 의원을 스타 의원으로 만드는 초석이 됐다. 당시 여당 카운터파트였던 이세기(李世基) 민정당 총무는 “막후에서 했더라도 한번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믿을 수 있는 상대였다”고 그를 회고한다.

    김 의장은 1995년 국민회의 창당에 반대하며 옛 민주당에 남았다가 15대 선거에서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이 쓴잔은 그에게 협상력과 함께 소신도 지닌 정치인이라는 선물로 돌아왔다. 당시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 대표를 맡으며 노무현 대통령과 정치적 사제이자 동지의 연을 맺게 된 것.

    열린우리당 창당을 주도한 그가 이제 개혁세력을 결집해 2004년 4월의 17대 총선 승리를 통해 지역과 금권(金權)이 좌우하는 정치판을 뒤집는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1937년생으로 얼마 안 있어 만 67세가 되는 그는 걸음마 단계인 신생정당의 대표를 맡아 하루 6, 7회의 공식일정을 수행하며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노 대통령과 싸우다 가까워져

    2003년 12월12일 오전 두 차례의 당내 회의를 마친 그와 어렵게 인터뷰 약속을 잡았다. SBS가 주최한 행사가 늦게 끝나 점심도 먹지 못한 그와 인터뷰를 시작했다. 한나라당 최병렬(崔秉烈) 대표가 갑자기 답방을 하겠다고 통보해왔기 때문이다. 먼저 연말로 예정된 개각과 청와대 개편과 관련한 질문을 했다.

    -노 대통령이 개각을 소폭으로 한다고 하는데 총선을 위해서는 생각을 달리해야 하는 것 아닌가.

    “총선이후 국정을 일신하기 위해서는 또 한번 개각을 해야 할 것이다. 그때 큰 변화를 주려면 지금은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나.”

    -열린우리당의 사정이 어려운데 상황이 바뀌면 강금실 법무장관이나 문재인 민정수석비서관 등 인기있는 각료나 청와대 인사들이 총선에 출마할 수 있도록 대통령에게 다시 간청할 용의는 없나.

    “노 대통령의 정치 스타일이 누구를 강박하거나 그러는 스타일이 아니다. 세상이 많이 달라졌지 않나. 장관들의 태도도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본인의 희망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억지로 참여시킬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게다가 우리가 그 사람들을 출마시킬 만한 지역도 있어야 한다. 비례대표로 한다면, 그럴 만한가 고민도 해봐야 한다.”

    -국정쇄신 차원에서 청와대라도 연말에 대폭 물갈이를 하도록 건의할 용의가 없나.

    “대통령이 잘 알아서 판단할 것이다. 총선을 위해서 나오는 경우라면 몰라도 대통령을 보좌하는 사람들에 대한 인사권은 대통령에게 있다. 대통령이 여러 가지 상황을 잘 판단해서 적절하게 바꿀 부분은 바꿀 것으로 본다.”

    -당내에서는 노 대통령이 빨리 입당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지 않나. 언제쯤 노 대통령이 입당할 것으로 보는가.

    “책임정치 차원에서 대통령이 당적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국민도 대통령과 우리당을 떼어놓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구체적인 입당 시기는 대통령의 판단을 존중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도 언론에 밝혔듯이 입당은 기정사실로 되어 있다. 다만, 비자금 수사라든지 정국 상황이 이러니까 대통령으로서 부담을 안고 있는 것이지. 이런 상황이 정리되면 가까운 시일 내에 들어오지 않겠나.”

    -노 대통령과는 오랜 인연을 맺어 왔다. 언제 처음 그를 주목했는가.

    “싸우다가 가까워졌다. 노무현 의원은 민주당시절 이기택(李基澤)계로 분류됐다. 정치인들이 계파 이익에 매달리게 마련인데 노 대통령은 공천심사를 할 때도 다른 계파의 인물이 더 낫다고 판단하면 미련 없이 양보했다. 민주당 최고위원 시절 당직자 배분 문제로 다툼이 있을 때도 누군가가 ‘당신이 포기하면 숨통이 트일 것 같다’고 설득하자 군소리 없이 양보하더라. 그 때부터 서로를 신뢰하고 친해졌다.”

    김 의장 집무실의 한쪽 벽면에는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 사진이 걸려 있다. 노 대통령이 취임사를 하는 연단 뒤쪽의 계단식 내빈석 중 김 의장은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앉아 있었다. 그의 양쪽 옆에는 이제는 서로 당을 달리하는 이해찬, 이협 의원 얼굴도 보였다. 김 의장과 노 대통령 두 사람의 친분을 생각하면 좀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당선된 날부터 ‘인간 노무현’은 최고 권력자로 신분이 바뀌었을 터이다. 청와대라는 구중궁궐 속으로 들어가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어떻게 변했을까 궁금했다.

    -요즘 대통령과의 관계가 어떤가요.

    “(왜 묻느냐는 듯이 미소를 지으면서) 대통령 되기 전에는 매일 머리를 맞대다시피 했는데,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바쁜 국정현안, 정치현안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말고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그래도 일이 있으면 자주 전화도 하고, 만나서 얘기를 할 필요가 있을 때는 청와대로 찾아가 만나기도 한다.”

    -최근엔 언제 만났나. 아무래도 예전보다는 좀 소원해진 것 아닌가.

    “12월초쯤인가. 그동안 대통령과는 여러 차례 만났다. 대통령의 입당 문제 때문에 궁금해하는가 본데 내가 언제 입당해야 한다는 요구를 한 적이 없다. 예전처럼 자주 뵙기는 어렵지만 직접 만나 의견을 말할 이유가 있을 때는 언제든지 그럴 생각이다.”

    -재신임 문제는 어떻게 정리해야 하나. 대통령이 열린우리당과 김 의장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말한 것으로 아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 보인다.

    “재신임 문제는 앞으로 정리될 것이다. 위헌시비도 있고 하니 내가 적절한 기회에 대통령께 건의할 생각이다.”

    -특히 대통령 측근비리 특검법안이 재의결된 뒤 당내에서는 “청와대가 여당 노릇을 제대로 못하게 한다”는 비판도 많다.

    “열린우리당은 ‘정치적 여당’임을 자임하고 있다. 대통령이 입당하면 ‘법적으로도’ 여당이 되겠지. 대통령도 시기는 다소 유동적이지만 입당의지를 분명히 밝혔다. 대통령과 우리당 사이에 역할과 위상을 둘러싼 인식 차는 없다. 다만 원내 의석 5분의 1에도 못미치는 소수당이다 보니 한계가 있다.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하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 문제일 뿐이다.”

    최돈웅과 비교는 심한 것 아니냐

    인터뷰가 진행되는 도중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가 곧 도착한다는 전갈이 왔다. 인터뷰는 잠시 중단됐다. 이내 출입기자들과 카메라기자들이 의장실로 쏟아져 들어왔다. 한 기자가 “검찰이 최돈웅 의원과 같은 역할을 한 사람이 열린우리당에도 있다고 했다”고 김 의장에게 말을 건넸다. 김 의장은 미소를 지으며 “최돈웅 의원과 비교하는 것은 너무 심한 것 아니냐”고 답했다.

    배석한 정동채 의원이 기자들에게 “의장님은 오늘 점심도 굶었다”고 전했다. 그러자 김 의장은 “오늘은 나도 단식했다”며 웃었다. “이호웅 의원이 최근 만나뵌 노 대통령이 쓸쓸해 보이더라고 얘기하더라”는 다른 기자의 말에 김 의장은 “원래 지도자는 항상 외로운 법”이라고 받았다.

    잠시 후 최병렬 대표가 박진 대변인 등과 함께 의장실로 들어섰다. 카메라 플래시가 요란하게 터졌다. 단식 탓인지 최 대표의 얼굴이 핼쑥해 보였다. 김 의장과 최 대표는 나란히 앉았다. 다시 카메라 플래시가 번쩍거렸다. 두 사람은 10여분 간의 만남에서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와 관련해 뼈있는 말을 던지며 신경전을 벌였다.

    최 대표 어차피 총선은 다가오고 경제는 경제고 민생은 민생이다. 힘을 합쳐서 민생을 함께 챙기는 모습을 보여야 국민들이 정치에 대해 일말의 기대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한나라당의 대선자금에 대한 수사는 대충 마무리단계에 들어섰다고 본다. 이제부터는 신당과 관련된 수사를 하지 않겠나.

    김 의장 수사가 지금부터 진행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에 대해서는 계좌추적까지 끝났다. 알다시피 우리가 말로만 여당이었지 여당인 상태에서 치른 선거가 아니다. 이회창 후보가 대통령이 다 된 것 같은 분위기에서 선거를 했다. (노 후보측은) 법정한도를 다 채우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모든 것을 계좌 처리했기 때문에 아무 문제없다. 대통령선거가 워낙 큰 선거니까 개인적으로 문제가 있을 순 있지만 당 차원의 문제는 없다. 이미 추적당할 것은 다 추적당했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에 대해 부끄럽기 짝이 없다.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은 검찰 수사에 협력해서 모든 것이 빨리 드러나도록 하는 것밖에 없다고 본다.

    수사에 관해서 우리 당 입장은 더 이상 감출 것도 없고 감출 방법도 없고….

    그런데 최돈웅 의원은 왜 수사에….

    수사와 관련된 테크닉 차원에서 하루이틀 늦어지는 것이지 안나가는 것은 아니다. 걱정하지 마시라. 전적으로 (협조)하게 되어 있다. 문제없다. 인사하러 와서 이런 얘기하는 것이 그렇지만 수사는 균형이 맞아야 사람들이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본다. 우리는 균형에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라서 그 문제는 좀더 지켜보기로 했다.

    엄청난 차이가 나고 실상이 다른데 수사로 균형을 맞출 수는 없다. 많은 것은 많은 대로, 상태가 안 좋은 것은 안 좋은 대로 하는 것이지 수사를 통해 억지로 균형을 맞추는 것은 균형이 아니다. 오신 손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기는 뭐하지만.

    우리는 공중전, 한나라당은 조직선거

    서먹한 얼굴로 최 대표가 떠난 뒤 다시 인터뷰가 이어졌다. 질문을 던지려는데 보좌진이 양해를 구했다. 김 의장이 도시락 먹을 시간을 10분이라도 내달라고 했다.

    그때 시간이 오후 2시20분. 40분 뒤에 김 의장은 전경련회관에서 열리는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떠나야 했다. 결국 시간절약을 위해 도시락을 먹으면서 인터뷰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김 의장이 늦은 점심을 먹는데 소화가 잘 안될 질문부터 던졌다.

    -안대희 중수부장이 노무현 후보 대선자금을 모은 뉴 페이스가 있다는 말을 했다. 김 의장을 염두에 둔 말이 아닌가 하고 검찰 출입기자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배달해온 김초밥 도시락을 먹다가 좀 불쾌한 표정으로) 김원기가 누군지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지.”

    김 의장은 잠시 젓가락을 놓고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검찰수사에서 이번 대선자금 관련사건 말고 계속해서 다른 사건들이 나올 것이다. 지금까지는 4개 재벌 것만 나왔다. 30대 재벌 것도 나올 수밖에 없다. (다른 규모가 작은) 대기업들이 나오고 모두 합하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천문학적 수치가 나올 것이다. 수법도 이전과 비슷한 수법이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같은 검찰수사를 받는데 왜 우리는 문제가 없느냐 하면, 그쪽은 일찍부터 대통령으로 지냈다. (이회창 총재가 임동원 장관 해임안이 의결된 이후 사실상 대통령이나 마찬가지였으니) 7년 대통령을 할 것이라고들 말하지 않았나. 우리야 단일화 이후 잠깐 반짝한 것이지. 그래서 당내에서 서로 고문도 맡지 않으려 했다. 들어온 대선자금도 대부분 법정한도 이내였다. 영수증을 받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한나라당은 조직선거를 하다보니까 천문학적인 돈이 필요했고, 그러다보니 영수증을 뗄 수 없어 돈을 받은 것 아니냐. 우리는 공중전(인터넷 선거 등 홍보전을 의미하는 듯) 했고, 그쪽은 조직선거를 했기 때문에 그런 차이를 낳은 것이다.”

    -하지만 당 일각에서조차 1992년 대선 때의 초원복국집 사건처럼 한나라당 지지층을 결집시킬 수 있다는 분석도 있는데.

    “불법 대선자금 문제는 한국정치의 발전이냐 퇴보냐를 가름할 중대한 문제다. 세풍, 안풍 사건을 일으켰던 정당이 또다시 대기업을 상대로 강압적으로 불법자금을 모금한 것이다. 국민이 단죄하지 않는다면 정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정치는 으레 그런 것이려니 하는 식으로 넘어가서는 안 된다.”

    -열린우리당에서 대선자금 검찰수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 먼저 고백할 용의는 없나.

    “우리는 한나라당이 거둔 대선자금의 10분의 1, 아니 20분의 1도 못 거뒀고 못 썼을 거다. 일부 영수증 처리 등 미숙함으로 인한 잘못이나 개인차원의 위법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 이런 점들은 충분히 공개하고 해명해 나갈 것이다.”

    김 의장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화제를 가벼운 쪽으로 돌렸다.

    -노 대통령 1년을 어떻게 평가하나. 잘한 점과 못한 점을 각각 세 가지만 꼽아 달라.

    “탈권위적인 리더십을 실천해왔고, 어려운 여건에도 안정적인 경제운용을 해왔으며 부패정치 개혁에 나선 점은 평가받을 만하다. 불법대선자금과 비리의혹에 여야를 가리지 않고 가차없는 수사와 사법처리가 이뤄지고 있다. 아직 잘못한 점을 평가하기엔 이르다.”

    당사, 값싼 양평동으로 이전 고려

    -경제성과 평가에도 이견이 없지 않지만 정당한 권위마저 내동댕이친 것은 잘못 아닌가.

    “변화가 급속히 이뤄지다 보니 그런 지적에도 일리가 있다. 대통령도 그런 지적을 감안해야 할 대목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이면을 잘 봐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 의식에는 이중구조가 굳어 있다. 오랫동안 카리스마나 권위주의에 익숙하다 보니 말로는 그런 시대는 지나갔다고 하면서도 그런 지도자를 그리워하는 이중적인 태도가 분명히 있다는 말이다.”

    -당사 보증금과 임대료가 많이 들어 힘들다고 들었다.

    “민주당 당사 면적의 7분의1도 안될 것이다. 그래도 벌써 나간 돈이 6억원에 가깝다. 감당하기에 벅차 임대료가 싼 양평동 쪽으로 옮길까 생각중이다. 말이 여당이지 대통령이 우리당을 도와줄 힘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다. 특히 자금 면에서야 도와줄 돈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당에 참여한 의원들이 돈을 거둬서 당사를 얻고 연대보증해서 빌린 돈으로 월급을 주는 이런 당을 과거에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는 ‘선수들끼리 왜 그러느냐’며 도통 믿으려고 하지 않더라.”

    -당내 세력들간 화학적 결합이 잘 되지 않아서 마찰이 심한 것 같다. 김두관 전 행자부 장관 같은 사람은 당헌개정에 반발하면서 당 지도부 전원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카리스마가 강한 DJ나 YS는 호주머니 속 사람들로 당을 만들었다. 우리당은 태생부터 과거 3김식 정당과는 다르다. 내가 카리스마가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 정치에 문외한인 사람도 많이 들어왔다.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당 내부가 복잡하다. 중앙위원회를 하다보면 바쁜 현역의원들이 참석하지 못해 밖에서 온 사람들의 목소리가 더 크다. 다양한 그룹이 동등한 자격으로 새로운 정치문화를 만들어가는 과도기적인 현상으로 봐달라. 잘될 것으로 본다. 김두관 전 장관 문제도 견해 차이였지 당내 갈등이라고까지 확대 해석할 필요는 없다.”

    총선 승리는 포기할 수 없는 목표

    -1월11일 전당대회가 민주당처럼 성공할 수 있을까. 민주당은 어쨌든 ‘조순형·추미애 빅 매치’를 성사시켜 흥행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고 당 지지도도 상승하고 있지 않나.

    “민주당이 반짝하고 떴는지 모르지만 본색이 드러나고 있다. 최근 원내총무를 뽑는 것을 보니까 최종 흥행에는 실패한 것 같다. 조순형 대표도 사실상 민주당 구주류가 밀어서 당선된 것 아니냐. 원내총무 경선은 그야말로 구주류인 정통모임 뜻대로 된 것 같다. 잠시 포장을 해서 눈가림을 했지만 곧 진면목이 드러날 것이다.”

    -당의장 경선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는가. 지금은 5인 상임중앙위원의 집단지도체제로 상황이 바뀌지 않았는가.

    “출마 않겠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그러나 총선승리는 우리가 포기할 수 없는 목표다. 나에게 걸맞은 역할을 찾아 혼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그러면 세대교체를 주장하는 재선그룹 의원이나 젊은 개혁당 사람들의 생각대로 당이 흘러가게 할 것인가. 의장은 아니더라도 비중있는 상임중앙위원으로 계속 당을 이끌 계획은 없나.

    “내가 해야 할 일은 당 의장하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내가 할 일은 분명히 있으니까.”

    -그게 어떤 것인가. 아까 정통모임에서 밀어서 조순형 대표가 됐다고 말했지만 대표가 되고나면 당을 이끌 힘이 생긴다. 조 대표도 최근 사석에서 “자리라는 것이 참 대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김 의장도 젊은 사람들에 밀려 ‘정신적 지도자’로 물러나면 힘이 빠지는 것 아닌가.

    “총선 이후 중요한 것은 노무현 정부가 힘있게 개혁을 추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총선에서 과반수는 어렵겠지만 어쨌든 총선 이후 대비를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직을 맡는 것보다 그것이 훨씬 더 중요한 일이다.”

    -정동영(鄭東泳) 의원 등에 대해 서운한 감정을 표한 일이 있다. 그때 ‘돈키호테처럼, 연예인처럼 한번에 떠보려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한 것으로 기억되는데.

    “골프를 하다가 몇몇 사람에게 한 말이 와전된 것이다. 특정인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미디어, 인터넷 시대의 경향을 지적했다. 물론 대중적 인기도 중요하다. 하지만 정치인은 내공도 키우고 인간적 신뢰도 있어야 한다. 서운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후배정치인들이 이해하고 노력했으면 한다.”

    ‘가장 담배 피우고 싶었던 순간’

    -그러면 내년 총선 이후 정계 구도를 어떻게 그려보는가.

    “한나라당은 군사정권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경상도를 중심세력으로 삼고 있는 정당이다. 그리고 민주당은 호남이라는 지역주의에 편승하고 이를 온존시키는 정당이다. 이런 정치세력들이 여전히 위력을 발휘한다는 것은 시대흐름에 맞지 않다. 이런 점을 국민이 이번 선거에서 분명히 인식하고, 새로운 선택을 할 것으로 믿는다. 물론 아직 우리당에 대한 국민의 믿음이 부족하다. 경상도 사람들이 DJ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한나라당에 반사적인 이익을 줬다. 이제 그런 일은 많이 약화될 것이다. 시대의 흐름을 타고 있는 우리당이 전국정당의 굳건한 위치를 확보할 것이다.”

    -너무 낙관적인 전망 아닌가. 김근태 원내대표는 2004년 총선을 걱정하면서 반한나라당 연합전선이 필요하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민주당과의 당대당 통합이나 연합공천을 말하는 사람들도 당내에 있다. 그러나 가능성도 낮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승리지상주의로 갈 수는 없는 것 아니냐. 민주당이 지역주의 노선과 기득권을 포기하고, 정치개혁 의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그러지 않는 한 통합이나 연합공천은 가능하지 않다. 물론 한나라당은 청산되고 해체돼야 할 정당이다. 그런 점에서 반한나라당 전선 구축은 일리가 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군불을 때고 있는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노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정략적 의도가 다분히 깔려있다. 개헌문제는 정략에 의해 좌우돼선 안 된다.”

    하루 3갑 정도 담배를 피워 골초로 유명했던 그는 1996년 이후 금연을 했다. 하지만 요즘 하루에 몇 차례씩 담배를 손으로 만지작거리다 입에 물기도 한다. 잘 모르는 사람들이 불을 갖다 대지만 그는 절대 피우지는 않는다.

    -최근 끊었던 담배를 피워 물고 싶었던 고뇌의 순간이 없었나. 오랜 정치역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순간, 가장 기억나는 순간은 언제였나.

    “둘 다 하룻밤 사이에 일어났는데 정몽준 후보의 돌연한 지지 철회로 후보단일화가 무산되었을 때가 가장 견디기 어려웠다. 담배를 피워 물고 싶었던 순간이었다. 그후 국민들이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고 선택했을 때가 역시 가장 기억에 남는다.”

    -요즘 정대철 상임고문과 종종 저녁에 술을 든다고 하는데 건강은 어떤가.

    “내가 무쇠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더라. 지난 대선 이후 지금까지 단 하루도 쉴새없이 무리를 했다. 지금은 세심하게 건강을 관리하고 있다. 술은 서로 즐거울 정도만 마신다. 원래 즐기는 편도 아니고.”

    -국회의원 수를 340명까지 늘리자고 유인태 정무수석이 말했는데.

    “국회의원 정수를 늘려야 한다는 취지에는 공감한다. 전문가들의 정치참여를 위해 비례대표 의석을 늘려야 한다. 지역주의 완화를 위해서는 중대선거구제의 도입이 절실한데 여야간 첨예한 대립 때문에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남다른 집념과 고집

    김 의장은 40년 전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로 있던 시절 기사를 늦게 보냈다는 이유로 원고지를 집어던진 편집부 데스크를 마감시간 뒤 불러냈다. 한참 선배인 그를 경복궁까지 가자고 해서 기어코 ‘맞장’을 뜨자고 했다 한다. 그의 고집스러운 면모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정치개혁과 관련한 그의 집념과 고집은 남다르다. 하지만 그를 둘러싸고 있는 정치현실이 그렇게 녹록지만은 않다. ‘말싸움 정치’ 청산을 위해 폐지한 대변인제만 해도 그렇다. 그의 소신과는 달리 총선을 앞두고 부활시켜야 한다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그의 정치역정은 이제 새로운 시험대에 올랐다. 한때 명총무라는 말을 들으며 국회라는 무대에서 주연배우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그는, 낙선의 시련을 딛고 킹 메이커로 화려한 변신에 성공했다. 이제 그는 노무현 정부가 주요 개혁과제로 설정한 정치개혁의 토대를 세우는 것을 필생의 과업으로 삼고 있다. 그 출발은 2004년 4월에 치러질 총선에서 그가 주도해 만든 열린우리당이 제1당으로, 전국정당으로 발돋움하는 것이다.

    인터뷰를 끝내고 둘러본 열린우리당의 브리핑룸 한쪽 벽면에는 대형 패널이 눈에 띄었다. ‘희망과 웃음을 주는 우리당이 되겠습니다’라는 글귀와 함께 행복한 표정을 한 중산층 가족이 문을 열고 나오는 그림도 있다. 과연 열린우리당이 내년 총선에서 승리해 희망의 문을 활짝 열어제칠 수 있을 것인가.

    7년 전 통추 시절 정치개혁의 첫걸음을 내디딘 김 의장. 그가 ‘정치개혁의 대장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날은 언제쯤일까. 내년 총선 결과가 많은 것을 말해 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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