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월호

‘창틀에 낀 남자’ 정대철의 고민

통합만이 살 길인데 수는 안 보이고…

  • 글: 이승헌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ddr@donga.com

    입력2003-12-26 11: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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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즘 정대철 상임고문은 몸 따로 마음 따로다.
    • 몸은 열린우리당에 있지만 마음은 민주당을 향해 있다.
    • 정 고문은 그래서 통합론을 강력히 주창하고 있다.
    • 과연 그의 몸과 마음이 합쳐질 날은 올까.
    • 데드라인은 2004년 총선. 시간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창틀에 낀 남자’ 정대철의 고민

    2003년 11월7일 열린우리당 의원총회에서 김원기 의원(왼쪽 끝)과 이해찬 의원 사이에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정대철 상임고문(왼쪽에서 두번째).

    정대철(鄭大哲) 의원. 열리우리당 상임고문. 경기고-서울대 법대-미국 미주리대 정치학박사를 거친 뒤 부친인 고 정일형(鄭一亨) 전 외무부장관의 지역구를 물려받아 중구에서 5선을 기록한 대표적인 정치 엘리트. DJ 정권 시절 경성 사건으로 구속되는 등 비주류의 길을 걸어왔지만 2002년 대선에서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 선대위원장을 맡으며 정치인생의 절정기를 눈앞에 뒀던 인물이다.

    그런 그를 정치권에서는 요즘 ‘창틀에 낀 남자’라고 부른다. 지난해 민주당 대표 시절 마지막까지 부친의 영혼이 서려 있는 민주당의 분당은 막겠다며 박상천(朴相千) 전 민주당 대표측과 막판 타협을 시도했던 정 고문은 그 노력이 실패하자 고심을 거듭하다 결국 우리당에 합류했다. 우리당의 많은 이들은 정 고문의 합류로 민주당이 갖고 있던 정통성의 상당 부분을 인계받을 것으로 봤다.

    하지만 ‘승차 시간’이 늦어서일까. 당내 유일의 상임고문이라는 직함을 갖고 있긴 하지만 우리당에서 그의 목소리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의 선대위원장을 맡았지만 최근 당내 현안을 놓고 그가 노 대통령과 접촉했다는 소식도 들리지 않는다. 더군다나 그가 대선 직전 굿모닝시티 등으로부터 거액의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검찰로부터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된 데 대해서도 “그를 구해야 한다”는 당내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정 고문은 요즘 4월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과의 통합만이 살 길”이라며 양당의 통합파와 끊임없이 교류하며 생존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한때 노무현 정권 최대 실세 중 한 명으로 떠오를 것이 확실시됐던 그가 어쩌다 이런 지경이 된 것일까. 이에 앞서 우리당 창당 과정에서 정 고문이 보여준 행보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과연 그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당무회의장에서 매번 폭력 사태를 연출하는 등 신당 논의를 두고 민주당 신당파와 구당파 간 갈등이 정점으로 치달았던 2003년 9월초 어느 날 오후. 정대철 당시 민주당 대표는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 2층 대표실에 앉아 담배를 피워 물던 중 핵심 측근인 A의원의 방문을 받았다. A의원은 당시 중도파로 분류됐고 지금 민주당에 남아 있다.



    “대표님, 어떻게 하실 겁니까?”

    “나도 몰라.”

    “제가 보기에 신당에 가시면 절대 안 됩니다.”

    “왜?”

    “대표님이 민주당에 남아 있으면 대표를 계속 할 수는 없어도 분명히 기회가 더 올 겁니다. 하지만 신당에 가면 그것으로 끝장입니다. 대표님이 신당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천정배(千正培) 신기남(辛基南) 정동영(鄭東泳) 의원 등이 대표님을 계속 ‘모실’ 것 같습니까?”

    “…”

    “게다가 대표님은 굿모닝시티 정치자금 수수 문제가 남아 있지 않습니까. 민주당에 남아 있으면 혹시 검찰에서 강공을 쓴다고 하더라도 ‘신당에 가지 않아 정치보복을 받았다’고 주장할 명분은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당에서는 그 논리가 통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주장하는 ‘새 정치’에 걸림돌이 된다고 볼 겁니다.”

    “두고 보자고.”

    그 무렵 정 의원은 하루에 많게는 30여통의 전화를 소속 의원들에게 걸어 “분당만은 안 된다. 분당하면 공멸하고 실질적으로 야당으로 전락한다. 모두 함께 신당으로 가야 한다”며 호소하고 있던 터라 분명한 대답을 할 수 없던 처지였다. 신당파를 향해 “민주당을 좌파 정당으로 만들려는 음모를 중단하라”고 비난하던 구당파의 수장인 박상천 전 대표에게도 “형(정 의원은 자신보다 나이 많은 정치인에게 곧잘 ‘형’이라고 부른다), 정말 이럴 거야. 당을 쪼개서 우리 야당 하려고 이러는 거야”라며 치열하게 설득하던 그였다.

    동시에 그는 신당파도 설득했다. 특히 신당파의 수장이자 절친한 술친구인 김원기(金元基) 당시 민주당 고문(현 우리당 공동의장)과는 거의 매일 밤 만났다. 그 자리에서 정 의원은 “구당파를 구주류라고 부르며 신경을 자극하면 결국 분당될 수밖에 없다. 긴 호흡으로 신당 논의를 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그의 이런 고민을 엿볼 수 있는 한 대목. 그는 9월 어느 날 측근인 B의원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사준비위원장을 지낸 한림대 지명관(池明觀) 교수의 조언(‘민주당이 분당하면 안 되는 이유’)을 전해듣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지 교수의 ‘분당 불가론’은 대략 이렇다. “지역주의는 물론 나쁘다. 하지만 영남의 지역주의는 다른 지역을 공격하려는 경향이 강한 ‘공세적 지역주의’이고, 호남의 지역주의는 자신들을 지키기 위한 ‘수세적 지역주의’ 성격이 강하다.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이만큼의 평형을 이루며 발전한 데는 호남의 공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런데 신당파는 지금 그 호남을 무조건 지역주의에 기생하려는 세력으로 보고 있다. 이는 분명 잘못된 것이다.”

    낭만의 정치인

    이 말을 들은 정 의원은 B의원에게 “말씀 요지를 메모해서 (김)원기 형에게 전해. 민주당의 분당이 얼마나 나쁜 일인지 알려드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랬던 정 의원은 구당파 당직자들이 의사봉까지 빼앗아가며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했던 지난해 9월 당무회의 이후, 김원기 당시 민주당 고문 주도로 신당파가 국민통합신당 창당주비위원회를 결성하며 사실상 분당을 선포하자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의 복심(腹心)으로 통하는 한 핵심 측근의 전언.

    “정대철이 그래도 관록의 정치인인데 신당에 가면 자신의 입지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을 왜 몰랐겠나. 하지만 정대철은 보기보다 매우 순수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순진한 구석이 있는 사람이야. ‘그래도 내가 노무현 선대위원장을 했는데 어떻게 민주당에 남아 있을 수 있냐’는 게 그의 논리였지.”

    정치 공학적으로는 매우 취약하지만 인간적으로는 수긍할 수밖에 없는 그런 논리였다.

    이때부터 정 의원은 행보를 결정하지 못한 중도파 의원들을 직·간접적으로 만나 신당행을 설득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표적인 포섭 대상은 우리당 김근태(金槿泰) 원내대표와 김덕배(金德培) 의원. 김 대표는 분당 직전까지 “통합적 신당이어야 한다”며 천정배 신기남 의원 등 골수 신당파와는 거리를 뒀고, 김 의원은 2002년 대선에서 반노(反盧) 진영의 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정 의원의 설득 때문이었는지 김근태 의원은 9월 당무회의 직후 3일간 단식이라는 나름의 ‘의식’을 치른 뒤 신당 행을 선언했고, 김덕배 의원 등도 이를 뒤따랐다.

    이와 동시에 정 의원은 민주당 대표직을 자진 사퇴하고 우리당 입당 시점과 특히 우리당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장고(長考)에 들어갔다. 한 마디로 우리당에 입당해서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겉으로는 거취에 대해 제대로 밝히지 않았다. 자연히 신당파와 구당파 양 진영은 속이 타기 시작했다.

    2003년 10월초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 속한 그가 국정감사차 일본에 갔을 때 김원기 당시 신당주비위원장과 민주당 김상현 고문이 그를 설득하러 거의 동시에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것은 당시 정대철의 몸값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양 진영의 ‘정대철 잡기’가 치열하게 전개되는 가운데 정 의원은 김 위원장과 일본 도쿄의 한 호텔에서 극적으로 ‘상봉’하며 사실상 신당행을 결정했다.

    이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정 의원을 보자마자 “무조건 신당에 입당하고 주비위원장부터 맡아라”고 전격 제안했다고 한다. 이에 정 의원은 김 위원장에게 “뒤늦게 신당에 가는 데 주비위원장은 무슨…. 형이 계속 주비위원장을 맡고 내가 창당준비위원장을 맡겠다”며 신당 행을 수락하게 된다. 정 의원 입장에서는 “도쿄 담판을 통해 신당에서도 대표에 준하는 역할을 할 수 있게 됐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정 의원은 며칠 뒤 청천 벽력같은 소식을 듣게 된다. 일본 도쿄까지 찾아와 정 의원에게 “주비위원장부터 맡아라”고 했던 김원기 주비위원장이 돌연 창당준비위원장을 맡게 됐다는 것. 정 의원은 물론 주변 측근들은 발칵 뒤집혔고 일부 인사들은 “그것 보십시오. 신당에서는 지켜주지 않는다고 말씀드렸잖아요”라며 신당 행 철회를 강력 요청하기도 했다.

    여의도 정가에서 사람 좋고 웃음 많기로 소문난 정 의원도 한동안 분을 삭이지 못했다. 생각나면 수시로 만나고 애인처럼 휴대전화로 서로 안부를 주고받던 김 위원장의 전화를 1주일 동안 받지 않았을 정도다. 김 위원장으로부터 전화가 오면 “나 없다고 해”라며 외면했다.

    그러나 정 의원은 지난해 10월14일 신당 행을 택했다. 그의 신당 행을 두고 일각에서는 “17대 총선에서 전국구를 보장해주기로 했다”는 식의 각종 추측이 무성했다. 하지만 정 의원의 핵심 측근은 신당 행 결정 당시 그의 심정을 이렇게 전했다.

    “막판까지 갈까 말까 망설였지만 김근태 김덕배 의원 등에게 ‘먼저 가 있어라. 나중에 따라 가겠다’고 해놓고 이제 와서 안 갈 수 없다는 게 정 의원의 생각이었죠. 많은 측근들은 ‘그게 무슨 이유가 되느냐’고 말렸지만 잘 듣지 않았습니다.”

    정 의원이 아직까지 ‘낭만의 정치인’으로 불리는 이유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일단 오긴 왔는데…

    2003년 10월14일 서울 여의도 우리당사에서 열린 정 의원 입당식에는 이례적으로 김원기 당시 주비위원장이 참석하며 힘을 실어줬다. 그는 준비한 입당 성명서를 근엄한 표정으로 읽어내려 가기 시작했다. “이 시대의 정신은 분열에서 통합으로, 소모적 정쟁에서 생산적 정치로 나갈 것을 요구하고 있다. 새로운 정치의 실험과 도전에 나선 통합신당 동지들의 대열에 합류해 미력이나마 힘을 보태겠다….”

    정 의원은 입당식 후 기자들과 만나 입당 선언에서는 엿볼 수 없는 뼈 있는 한 마디를 던진다. “일반 신당에서 백의종군하겠으나 민주당과 신당의 재통합 노력은 아직 유효하다. 물론 재통합된다면 신당이 기준이 되어야 할 것이다.”

    언뜻 보면 신당이 ‘형님’의 자세로 민주당을 대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될 발언이었으나 신당 내 일부 인사들은 이 말을 전해듣고 거의 까무라칠 지경이었다고 한다. 수도권의 초선인 C의원은 기자와 만나 “뒤늦게 신당에 들어와놓고 열심히 뛰겠다는 말이나 할 것이지 무슨 통합론을 이야기하고 있느냐. 정대철 선배를 그렇게 안 봤는데 정말 실망스럽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 의원은 신당 입당 이후 제대로 발언권을 얻지 못했다. 상임고문이라는 직책이 주어졌지만 재신임-이라크 파병-대선자금 수사로 이어지는 급박한 정치 현안에 대해 이상하리만큼 침묵을 지켰다. 일각에서는 “정대철이라는 정치인이 이제 사그라드는 것 아니냐”는 성급한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이 시기에 본격적으로 민주당과의 통합을 위한 노력에 나서기 시작했다. 11월 중순 어느 날. 김원기 의장과 함께 자신의 대표적인 술 파트너인 김상현 의원과 만난 그는 어떻게 하면 통합할 수 있을까를 놓고 난상토론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김 의원은 정 의원에게 “어차피 양쪽에 통합론에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의원들이 상대적으로 더 적은 만큼 통합론자들이 주도적으로 양당간의 ‘화해’를 시도하다 정 안 되면 총선 전 각 당에서 뛰쳐나와 새로운 정치 세력을 만들면 된다”는 요지의 제안을 했고, 그는 동시에 무릎을 쳤다고 한다.

    “나도 어려워질 수 있어”

    11월28일 민주당 대표 경선을 위한 임시전당대회가 예상보다 성공적으로 치러진 것을 지켜본 정 의원은 “더 이상 갈라진 채로는 안 된다”며 통합론에 더욱 강력한 집착을 보였다. 정 의원은 12월초 우연히 기자를 사석에서 만나 다음과 같이 통합론에 대한 당위성을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총선 뒤 합치자고 하는 의견도 있는데 다 죽고 난 다음에 몇 명 살아남은 사람들끼리 뭉쳐서 뭘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어. 얼마 전 여론조사를 해봤는데 서울과 수도권 지역의 열린우리당 현역 의원 중 총선에서 살아남을 것으로 조사된 사람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더라고. 지금은 모든 것을 던지고 합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돼. 우리당에서도 말하지만 민주당과 정책이나 정강이 뭐가 그리 크게 다른가. 다만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도왔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이렇게 갈라져 있을 뿐이지. 이런 식으로는 나도 (총선에서) 어려워질 수도 있어….”

    정 의원의 이런 생각이 당내에 어느 정도 퍼졌는지 그 동안 통합론에 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던 의원들도 필요성에는 원칙적으로 수긍하는 모습이다. 김근태 원내대표는 지난달 “반(反)한나라당 전선을 구축해야 한다”는 의미심장한 말로 통합론에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김 의장 등 우리당의 핵심 지도부들의 상당수는 여전히 “말은 되는데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부정적이어서 현재 통합론은 아이디어 차원에서 그칠 가능성도 크다.

    이제 정 의원이 ‘합치지 않으면 공멸한다’는 총선 시점이 10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우여곡절 끝에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우리당에 합류한 정 의원은 과연 민주당과의 통합 노력을 계속 할 것인가. 아니면 그냥 우리당에 남아 ‘젊은이’들과 함께 정치개혁의 구호를 외칠 것인가. 그가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은 이제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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