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월호

부산 주먹의 어제와 오늘

영화 ‘친구’로 뜨고 불법오락실로 쫓기고…

  • 글: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입력2003-12-26 14: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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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친구’의 무대인부산 주먹계는 숨죽인 듯 조용하다. 불법오락실 사건 여파로 상당수 주먹들이 도망중이거나 활동을 자제하고 있다. 부산지검 박충근 강력부장은 “전반적으로 세대교체 바람이 불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 주먹의 어제와 오늘
    관객 800만을 동원한 영화 ‘친구’의 무대 부산에는 칠성파라는 강력한 폭력조직이 있다. 칠성파는 현재 국내에서 단일조직으로는 가장 규모가 크고 탄탄한 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이 조직의 보스 이강환(60)씨는 1980년대 후반 현해탄을 건너가 일본 야쿠자 조직 두목과 의형제를 맺기도 한 전설적인 주먹이다.

    ‘친구’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이 영화에서 유오성이 속한 조직이 바로 칠성파다. 유오성은 부하를 시켜 라이벌 조직에 몸 담고 있는 친구(장동건 분)를 살해한다. 유오성의 실존 모델 정○욱씨는 살인교사 혐의로 1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인데 2005년 출소 예정이다. 장동건의 모델 정○철씨는 사망 당시 신20세기파 조직원이었다. 신20세기파는 부산에서 칠성파 다음으로 세력이 큰 조직이다.

    ‘친구’로 조명을 받은 부산 폭력조직이 최근 다시 구설에 오른 것은 ‘한겨레’의 취재가 발단이 된 불법오락실 사건이 발생하면서다. 검찰 수사가 시작되면서 불법오락실 운영에 관련된 주먹들은 모두 몸을 숨겼다. 전통적으로 오락실 업계에서 강세를 보인 조직은 신20세기파다. 검찰은 부산의 번화가인 남포동·광복동 일대 오락실들 중 상당수가 이 조직의 영향권에 놓인 것으로 본다.

    2003년 10월 중순 부산지검 강력부(부장검사 박충근)는 통합20세기파 두목인 하○석씨와 고문 2명을 구속기소했다. 또 행동대장 1명을 불구속기소하고 부두목과 또 다른 행동대장을 지명수배했다. 두목 하씨는 폭력조직을 결성하고 주먹계 선배인 길○근씨를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통합20세기파는 신20세기파의 방계계열과 재건20세기파 계열을 흡수·통합한 조직이다. 검찰이 이 조직을 수사하게 된 계기는 2003년 9월 신20세기파의 전 조직원 조아무개씨의 검찰청 침입사건이다. 당시 조씨는 검찰청에 비공식적으로 들어와 “조직을 떠났음에도 후배 조직원들이 활동자금을 요구하며 괴롭히고 가족을 협박하고 있다”고 검사에게 하소연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씨의 진술에서 통합20세기파 결성 정보를 얻은 수사팀은 그때부터 하씨의 범죄사실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검찰에 따르면 30대 후반인 하씨는 알부자로 빌딩을 갖고 있으며 횟집도 운영하고 있다. 돈을 많이 벌면서 자연스럽게 두목급으로 부상했다는 게 검찰 분석이다.

    부산지검은 현재 통합20세기파를 비롯해 신칠성파 서면파 유태파 연산파 인수파 등 6대 군소 조직을 특별관리하고 있다. 이 조직들은 규모나 파워 면에서 전통 조직인 칠성파나 신20세기파에 미치지 못하지만 나름대로 독자적인 영역을 갖고 있다.

    “칠성과는 게임이 안 된다”

    어느 지역이나 마찬가지로 부산에도 군소조직이 난립하고 있지만 부산 주먹계의 판도는 역시 전통에 빛나는 칠성파와 신20세기파의 양자대결 구도로 압축된다. 그 중에서도 최강자인 칠성파의 역사는 곧 부산 주먹계의 역사라 할 만큼 독보적인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통합20세기파를 적발해 주요 간부들을 구속한 부산지검 권오성 검사는 “위계질서 측면에서 칠성에 버금가는 조직은 없다. 파워 면에서도 다른 조직들은 아직 칠성과는 게임이 안 된다”고 칠성파의 위력을 인정했다.

    부산 주먹계의 뿌리는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6·25 당시 피난민들이 폭력을 생계 수단으로 활용한 것이 그 출발점이다. 수사기관에 따르면 칠성파의 전신은 세븐 스타다. 세븐 스타는 피난민 건달들이 만든 조직으로 초대 두목은 황○씨였고 이○섭씨가 2대 두목을 맡았다.

    조폭 연구의 권위자로 통하는 안흥진 경위(송파경찰서)가 펴낸 ‘한국 조직폭력 실태’에 따르면 1960년대에 활동한 이○섭씨가 바로 칠성파의 초대 두목이다. 그는 1970년대 초반 이강환씨에게 두목 자리를 넘겨줬다. 1970년대 말 칠성파는 20세기파 역전파 영도파 서면파 등의 일부 조직을 흡수해 1980년대 중반에는 부산 폭력조직을 거의 장악할 정도로 세력이 커졌다. 1980년대 초반부터 부산의 유흥업소 밀집지역을 중심으로 세력을 확장했으며 일부 조직원들은 서울에까지 진출했다.

    지금은 일선에서 물러난 이강환씨는 부산 주먹계 대부로 군림해왔다. 이름값이 전국적으로 통한다는 이른바 전국구 주먹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힌다. 지난 20여년 간 전국 교도소를 돌며 건달들을 상대로 교화교육을 해온 교계 관계자는 몇 년 전 기자에게 “한국 주먹계 최고의 두목은 이강환”이라고 단언한 바 있다.

    이씨는 소아마비로 몸이 불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릴 때부터 한쪽 팔에 이상이 있었다는 것. 체구도 작고 마른 편이다. 이런 몸으로 어떻게 보스의 자리에 올랐을까. 부산 주먹계 사정을 잘 아는 체육계 관계자 B씨에 따르면 이씨의 파워는 주먹보다는 두둑한 배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간이 몸보다 몇십 배 크다고 보면 된다. 칼이 목에 들어와도 겁을 안 내는 성격이다. 카리스마가 대단하다.”

    이강환의 전설

    주먹계에 따르면 이씨는 요정을 하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났다. 그의 어머니는 자식이 밖에서 맞고 들어오면 “왜 맞고 다니냐”며 야단을 쳤고 사고를 치면 뒷수습을 다해줬다. 이씨는 이런 어머니의 영향으로 배포를 키우고 신체적 콤플렉스를 극복했다. 칠성파 ‘현역’으로 사업을 하는 A씨는 이씨에 대해 “존경한다”는 표현을 썼다.

    “원래 기질이 있는 분으로, 외길을 걸어왔다. 어느 분야든 고생하고 성취한 사람은 인정해주지 않느냐. 이 세계의 상징적인 인물이며 많은 건달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최고다.”

    이강환씨는 1988년 10월 경남 경주에 있는 경주문화원에서 화랑신우회를 결성하고 회장으로 취임했다. 화랑신우회는 자유당 정권 시절 이정재의 동대문사단과도 같은 연합조직으로 부산·경남 지역의 주요 조직이 연대한 것이다. 발족 당시 회원은 약 300명에 이르렀다.

    화랑신우회는 그 전에 결성된 호청련(호국청년연합회)과 일송회를 본뜬 것이었다. 1987년 7월 서울에서 창설된 호청련은 전북 출신 주먹계 거물인 이승완씨가 안기부 지원을 등에 업고 만든 유사 폭력단체다. 자유당 말기의 대한반공청년단(대표 신도환)을 흉내내 대학생 조직까지 만드는 등 청년우익단체임을 표방했으나 1990년대 초 ‘범죄와의 전쟁’ 당시 이씨가 정치폭력사태에 개입한 혐의로 구속된 이후 공식무대에서 사라졌다.

    일송회는 1988년 8월 결성됐는데, 이리배차장파를 비롯한 전북 지역 토착 주먹들이 주축이 됐다. 전북 레슬링협회 회장이며 이리배차장파 두목 김향락씨가 회장을 맡았다. 부산 영도파(천달남)와 양은이파(조양은), 전주 나이트파(김용구) 등 다른 지역의 조직과도 연대하는 등 세력을 과시했으나 김향락씨가해상 폭력사건으로 구속되면서 해체의 길로 접어들었다.

    1988년 11월 이강환씨는 칠성파 간부인 김영○, 조명○, 안효○씨 등 8명을 데리고 일본에 건너가 야쿠자 조직과 의형제 결연식(사카스키 배)을 가졌다. 이 행사엔 평소 이씨와 친분이 있던 다른 조직의 우두머리들도 대거 참석했다. 수원 주먹계의 대부인 최창식씨가 부하 7명과 함께, 그리고 호남 쪽에서는 1970년대 번개라는 별명으로 이름을 떨쳤던 박종석씨, 광주 국제PJ파와 관련된 여운환씨, 그밖에 서방파 조직원 6명이 동참했다. 당시 이강환씨와 의형제를 맺은 야쿠자는 오오사카 사카우매 조(組)의 방계조직인 가네야마 조의 두목 가네야마 고사브로였다.

    1989년 3월 이씨는 칠성파 부두목 조명○씨의 동생 조영○씨가 이끌던 서면파를 흡수해 세력을 강화했다. 씨름협회 부회장을 역임하며 체육계에도 명함을 내밀었던 이씨가 구속된 것은 1990년대 초 ‘범죄와의 전쟁’ 때다.

    1990년 5월 서울지검 강력부에 있으면서 3대 패밀리의 선두주자인 범서방파 두목 김태촌씨를 구속했던 조승식(현 대검 강력부장) 검사는 그해 8월 부산지검 강력부로 발령을 받았다. 부산 주먹들과의 전쟁을 선포한 조검사가 칠성파 간부들을 잡아들이자 위기를 느낀 이강환씨는 서울로 도피했다.

    1991년 4월 서울에서 시경 특수대에 체포된 이씨는 부산지검으로 압송됐다. 부하들을 시켜 신칠성파 두목 김영찬씨를 회칼로 난자해 전치 12주의 중상을 입히는 등 10여 차례에 걸쳐 폭력을 배후 조종한 혐의였다. 조검사는 이씨에게 범단(범죄단체 구성) 혐의를 적용해 구속했다.

    이씨가 출소한 것은 1999년. 하지만 검찰은 그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이듬해 11월 이씨는 협박, 탈세 등의 혐의로 재구속돼 2년형을 선고받았다. 복역 도중 또 다른 혐의로 기소돼 형이 추가돼 이씨는 2003년 8월 출소했다. 원래 2003년 3월이 만기였는데 벌금 4억원을 내지 못해 약 5개월을 더 살고 나왔다. 이씨가 벌금 대신 교도소에서 치른 노역의 대가는 하루 200만원 꼴. 이씨는 4억원 중 절반 이상을 노역으로 대납했고 나머지 1억여원은 처가에서 받아 완납한 것으로 전해진다.

    부산 주먹의 어제와 오늘

    부산 주먹들은 최근 검찰의 불법오락실 수사로 숨죽인 듯 지내고 있다. 사진은 성인 오락실 슬롯머신 업장.

    부산지검 관계자는 이씨가 이처럼 벌금을 내지 못해 형을 더 살고 나온 데 대해 두 가지로 분석했다. 첫째는 감옥에 있는 동안 재산관리를 못하고 부하들이 챙겨주지 않아 진짜 돈이 없었을 가능성, 둘째는 벌금을 대체하는 노역 일당이 크기 때문에 돈이 있으면서도 ‘몸으로 때웠을’ 가능성이다. 검찰은 이씨가 오랜 수형생활로 인한 건강 악화 등으로 조직에서 사실상 은퇴한 것으로 보고 있다. 교도소에서도 툭하면 의무실 신세를 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통합 20세기파 등장

    칠성파와 더불어 부산 주먹계 양대 산맥을 형성하고 있는 신20세기파는 1970년대 칠성파에 맞섰던 20세기파의 후신이다. 1985년 20세기파 두목 김영춘씨는 합법적인 사업가로 변신, 조직에서 은퇴했다. 이때 부두목이었던 안용섭, 정상수씨 등이 독립해 만든 조직이 바로 신20세기파다. 신20세기파는 부산 남포동 및 부평동 일대의 유흥업소와 오락실 밀집지역을 주 활동무대로 삼았다. 1990년 ‘범죄와의 전쟁’ 때 두목 안용섭씨를 비롯한 주요 간부 10여 명이 구속된 이후 조직원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1997년 2월 장○근씨가 두목 자리를 넘겨받아 조직을 추슬렀다. 하지만 장씨는 히로뽕 복용으로 몸이 망가져 몇 년 만에 두목 자리를 내놓았다. 2001년 초 장씨가 은퇴한 후 행동대장급이었던 30대 주먹들이 급부상했다. 신20세기파는 장씨의 총애를 받던 하○석씨가 이끄는 정통파와 영화 ‘친구’에서 장동건의 모델인 정○철씨가 속했던 김○철(4년 전 사망) 계열, 구○석씨가 중심이 된 재건20세기파로 분파됐다.

    2001년 7월 하○석씨는 김○철 계열의 20세기파 방계 조직을 흡수한 데 이어 재건20세기파 조직원들을 끌어들여 새로운 조직을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부산지검이 적발한 통합20세기파다. 하○석씨에게 폭행당한 길○근씨는 안용섭씨 밑에서 행동대장을 했었다.

    하씨는 자신을 따르는 선배는 고문으로 대접하고 따르지 않는 선배에 대해서는 조직 결속력을 다진다는 명목으로 무자비하게 폭행했다고 검찰 관계자는 밝혔다. 하씨의 선배인 길씨가 집단폭행을 당한 것도 하씨를 두목으로 인정하지 않은 탓이었다. 한편 안용섭씨는 불법오락실 운영과 관련해 수배된 상태다.

    부산 조직의 양대 산맥을 꼽으라면 칠성파와 신20세기파지만, 4대 조직이라고 얘기할 때는 여기에 신칠성파와 영도파가 추가된다. 이 4대 조직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범죄와의 전쟁’ 때 두목이 구속돼 와해 위기를 맞았다는 사실이다.

    신칠성파는 칠성파 부두목급이었던 김영찬씨가 1988년 이강환씨에 반감을 품은 조직원들을 이끌고 나와 결성한 조직이다. 중앙동 남천동 광안리 일대를 장악하고 오락실 골프장 등의 이권에 개입하는 과정에 폭력을 행사했다. 1990년 ‘범죄와의 전쟁’ 당시 김영찬씨를 비롯해 주요 조직원들이 구속되는 바람에 사실상 조직활동이 중단됐다. 지금은 칠성파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김영찬씨는 몇 해 전 외국으로 이민간 것으로 알려졌다.

    영도파도 신칠성파와 마찬가지로 칠성파에서 갈라져나온 조직이다. 칠성파 부두목 노릇을 했던 천달남씨가 1989년 부산 카지노업계 실력자인 P씨의 자금력을 바탕으로 영도 일대 건달들을 규합해 만들었다. 영도파는 해운대에서 칠성파 조직원 이○수씨를 손도끼로 공격하는 등 한때 칠성파와 치열한 전쟁을 벌였다.

    ‘친구’ 감독에게 거액 요구

    이강환씨의 친구이기도 한 천씨는 1991년 ‘범죄와의 전쟁’ 당시 대구로 도피해 있다가 부산지검 조승식 검사에 의해 구속됐다. 조 검사는 당시 천씨의 전화 발신지를 추적해 직접 수사팀을 이끌고 대구로 가 공중전화 부스에서 지인과 통화중이던 천씨를 체포했다. 천씨가 구속된 이후 영도파의 세력은 급격히 약화됐다. 천씨는 출소한 후 주먹계 일선에 물러나 사업가로 활동하고 있다.

    부산 주먹계의 최대 관심사는 최강 조직인 칠성파의 후계구도다. 부산 지역 주먹계의 향후 판도를 가늠할 수 있는 사안이기에 수사기관 또한 예의주시하고 있다. 부산지검 박충근 강력부장은 부산 지역 주먹계 동향에 대해 “전반적으로 세대교체 바람이 불고 있다”고 말했다. 박 부장의 말마따나 칠성파나 신20세기파 모두 30대 주먹들이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한 시절을 풍미했던 칠성파 두목 이강환씨를 무너뜨린 것은 오랜 수감생활과 검찰의 지속적인 감시와 제재였다. 검찰은 1991년 ‘범죄와의 전쟁’ 때 구속돼 8년 동안 옥살이하고 출소한 그를 1년 만에 또 다시 잡아넣었다.

    2000년 11월 이씨가 재구속된 후 칠성파의 후계자로 떠오른 사람은 40대 중반의 권○기씨다. 검찰에 따르면 권씨는 이씨를 대신해 조직을 관리하는 한편 서면파를 접수하는 등 세력을 확장했다.

    권씨는 폭행 등의 혐의로 5년 실형을 산 전과가 있다. 1990년대 중반 서울 서교동 서교호텔에서 발생한 강○환씨 피살사건과 관련됐다는 혐의도 받았으나 재판과정에서 무죄가 인정됐다. 2001년 11월 그가 결혼식을 치른 부산 P호텔에는 약 1000명의 하객이 몰려들었다. 이 결혼식엔 전국 주요 조직의 보스급 주먹들과 연예인들이 상당수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권씨의 존재가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것은 영화 ‘친구’ 때문이다. 2002년 11월 부산지검 강력부는 그를 갈취 혐의로 구속했다. 영화 ‘친구’의 곽경택 감독을 협박해 3억원을 빼앗은 혐의였다.

    곽 감독은 권씨의 협박에 못 이겨 제작사와 투자사측으로부터 5억원을 받아 그중 3억원을 권씨에게 건넨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검찰에 따르면 권씨는 ‘친구’가 자신의 조직을 소재로 삼았다는 이유로 곽 감독에게 돈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곽 감독은 검찰에서 이 같은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2003년 7월 법원은 권씨에 대해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곽 감독이 재판과정에서 진술을 바꾼 것이 결정적 원인이었다. 재판부는 권씨가 주민등록증을 위조해 ‘친구’의 실존 모델인 정○욱씨를 접견한 데 대해선 유죄를 인정해 징역5월을 선고했다. 이 사건은 검찰의 항소로 고등법원에 계류중이다.

    검찰은 권씨가 이강환씨의 적통 후계자로 칠성파를 이끌고 있다고 보고 있다. 부산 주먹계 사정에 밝은 B씨도 “권○기는 곧 전국적인 우두머리로 인정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B씨는 권씨에 대해 “대인관계가 원만하고 매너가 좋고 통이 크다”고 좋게 평했다. 그에 따르면 권씨는 3대 패밀리의 후예들인 40대 호남주먹들과도 친분이 깊으며 그들로부터 이강환씨의 후계자로 인정받고 있다는 것.

    “재기 불가능하도록 재산 몰수”

    하지만 다른 시각도 있다. 부산에서 만난 칠성파 관계자는 권씨가 칠성파의 두목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았다. 칠성파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임에 틀림없지만 현재 조직생활은 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였다.

    검찰도 권씨가 ‘친구’ 사건 여파로 당분간 전면에 나서지 않고 후배들을 내세우거나 나아가 조직에서 발을 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다. 검찰 관계자는 “권○기는 재산이 많고 부산 최대 유흥업소로부터 매달 일정액을 상납받는 등 고정수입도 있기 때문에 일선에서 물러날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해 검찰이 주목하는 두 사람이 있다. 칠성파의 30대 실세인 강○호씨와 공○권씨다. 두 사람은 유흥업소를 끼고 카드 깡 등으로 큰돈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에 따르면 두 사람은 칠성파의 후계구도를 놓고 주도권 다툼을 벌이고 있다. 이와 관련, 앞서 언급된 B씨도 “두 사람 사이가 안 좋다는 소문이 퍼져 있다”고 검찰의 시각을 부정하지 않았다.

    강씨는 권○기씨의 직계인 반면 공씨는 권씨를 거치지 않고 이강환씨와 통하는 관계라고 한다. 이씨가 공씨에게 적통을 넘길 것처럼 언급하는 바람에 후계구도에 혼선이 생겼다는 얘기도 들린다. 권○기씨의 직계인 강씨는 권씨가 과거 살인사건에 연루돼 도망 다닐 때 스치로폴에 생선회를 싸서 몰래 전달하는 등 각별한 충성을 보여 권씨로부터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부산 주먹계는 숨죽인 듯 조용하다. 불법오락실 사건 여파로 상당수 주먹들이 도망중이거나 활동을 자제하고 있다. 부산지검 박충근 강력부장은 “현재 부산 조폭들은 납작 엎드린 상태”라며 “조폭들의 경제적 기반을 무너뜨리고 재기가 불가능하도록 자금원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고 재산을 몰수하는 수사가 시작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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