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월호

국군포로 처리 놓고 국방부·외교부 책임 떠넘기기

전용일씨 사건 한 달 전 국군포로 2명 송환 요청도 묵살

  • 글: 성기영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ky3203@donga.com

    입력2003-12-26 14: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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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용일씨 사건 처리 과정에서 ‘말바꾸기’로 비난을 산 국방부가 전씨 사건 한 달 전에도 국군포로 2명의 구조 요청을 받고 나몰라라 했던 일이 드러났다. 구조를 요청하는 포로들의 편지를 국방부와 외교부가 서로 떠넘기는 사이 생존 포로들은 死線을 넘나들었다.
    국군포로 처리 놓고 국방부·외교부 책임 떠넘기기

    전용일씨 사건 처리 과정에서 빚어진 정부 부처간 혼란이 해외 국군포로들을 더욱 위태롭게 하고 있다.

    국방부가 2002년 6월 국군포로 전용일씨의 중국 체류 사실을 접하기 한 달 전인 5월, 이미 또다른 생존 국군포로 2명의 구조 요청을 받고도 이를 묵살했던 사실이 추가로 밝혀졌다. 그러나 국방부는 전용일씨 사건이 알려진 뒤 처리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음을 인정하고 사과하면서도 정작 이 일은 밝히지 않아 관련 사실을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국방부는 전용일씨 사건 처리 과정을 밝히면서도 처음에는 9월에 전씨의 탈출 사실을 알았다고 했다가 조영길 국방부 장관의 국회 답변 과정에서는 ‘이미 6월에 한 탈북자로부터 전씨 탈출 사실을 전해들었다’고 말을 바꾼 바 있다.

    경기도 안산 출신으로 7사단 소속인 국군포로 김모씨와 같은 사단 소속 또다른 김모씨는 각각 2003년 4월과, 2002년 11월 북한을 탈출했다. 이들은 중국에 도착한 뒤 자신들의 남한내 주소와 가족관계 등을 자세히 기록한 편지를 써 중국과 한국을 오가는 브로커에게 전달했고 이 편지는 브로커를 통해 곧바로 국내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들의 한국행을 추진하던 이산가족 상봉단체 관계자가 2002년 3월 갑자기 사망하면서 이들의 사연이 담긴 편지는 ‘북한인권시민연합(이사장 윤현)’이라는 국내의 한 시민단체로 흘러들어갔다.

    중국을 드나드는 사업가로부터 국군포로 두 김씨가 북한을 탈출해 제3국을 떠돌고 있다는 사실을 제보받은 북한인권시민연합측은 두 김씨의 사연이 담긴 편지를 동봉해 2003년 5월2일과 5월13일 두 차례에 걸쳐 국방부 민원실에 정식으로 민원을 접수했다. 이들이 중개인을 통해 보낸 호소문에는 김씨의 고향 주소 및 사망한 부모의 인적사항과 형수, 5촌 조카 등의 성명과 인적사항이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그러나 이 민원을 접수한 국방부는 1주일이 넘도록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가 5월23일 이 서류를 외교통상부로 이첩했다. 국방부 소관업무가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국방부 관계자는 “국군포로의 송환을 요청하는 민원 서류가 국방부 정보본부와 군비통제관실, 인사복지국 등을 오가다가 결국 소관 부서를 찾지 못하자 외교통상부로 이첩된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사흘 뒤인 5월26일 국군포로 김씨의 송환 요청 민원을 접수한 외교부 역시 담당 부서로 민원을 보냈다가 국군포로 여부를 먼저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로 해당 민원을 국방부로 재이송했다. 이 때가 6월3일. 북한인권시민연합이 구조를 요청하는 김씨의 소식을 접한 지 한 달이 흐른 뒤였다. 국방부와 외교부가 서로 자신의 소관업무가 아니라며 ‘핑퐁식’ 책임 떠넘기기를 하는 사이 두 명의 국군포로는 중국과 태국 등지를 떠돌며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숨막히는 시간을 보내야 했던 것이다.

    이렇게 국군포로 2명이 생사를 넘나들던 사이 국방부와 외교부 사이를 한가로이 오가던 민원서류는 결국 국방부에서 처리하기로 하고 국방부가 주도해 귀환 작업을 벌인 끝에 두 사람은 6월말 가까스로 한국땅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국방부 관계자는 “정부 부처간 업무 분담이 명확하지 않아 초반에는 혼선이 있었지만 결국 국방부가 책임지고 일을 처리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애초 이들 국군포로의 편지가 담긴 민원서류를 제출했던 북한인권시민연합측은 국방부가 자발적으로 이들의 귀환작업에 나섰는지에 대해서도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윤현 이사장은 “6월초 윤영관 외교통상부 장관이 참석한 어느 모임에서 이들 국군포로의 편지를 내놓고 정부의 무대책을 강력하게 질타했다. 그제서야 그나마 움직인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결국 정부의 무관심으로 인해 국군포로들이 생사를 넘나들며 두 달씩이나 해외를 떠돌게 한 셈”이라고 비난했다.

    특히 서울에 5촌 조카 등 친척들이 살고 있던 김씨의 경우, 조카가 지난 1994년 김씨의 북한내 생존 사실을 확인하고 통일부에 이산가족 상봉 신청까지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내의 정보 공유체계에도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셈이다. 김씨의 조카는 “지난 1994년과 95년 두 차례에 걸쳐 당시 국가안전기획부 관계자라고 신분을 밝힌 사람이 아저씨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전해왔고 제3국을 통해 귀환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통일부에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했다”고 말했다.

    국방부가 민원 서류를 접수한 후 재외국민에 해당하는 업무라는 이유로 외교통상부로 이첩하지 않고 통일부에 확인만 했더라도 이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한 대목이다. 현재 통일부는 가족 중 국군포로가 있다는 사실이 확인될 경우 이산가족 중에서도 특별지원 대상자로 분류해 일반 이산가족에 지원하는 생사확인 및 상봉, 교류 지속 경비의 2배에 해당하는 금액을 지원하고 있다.

    한편 국군포로인지 아닌지 확인이 어려웠다는 국방부의 설명과는 달리 김씨의 고향인 경기도 안산시 ○○면 ××리(현 안산시 원곡본동) 원주민들은 대부분 ‘전쟁 나가 죽었다던’ 김씨와 그의 가족들에 관한 이야기를 소상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지역 노인회장을 맡고 있는 정모씨는 “김씨 집안은 워낙 이 동네 토박이였기 때문에 동네 노인 누구를 붙잡고 물어봐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결국 김씨의 신변 보호 요청을 받은 국방부가 전사자 명단을 확인한 뒤 고향 주소지로 전화 한 통화만 해보았더라도 김씨 주장의 사실 여부를 금방 알아낼 수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국방부와 외교부의 책임 떠넘기기, 그리고 국방부 내부의 부처간 책임 떠넘기기는 현재 투먼(圖們)에 억류중인 국군포로 전용일씨 사건과 전씨 사건 한 달 전에 벌어진 두 김씨 사건 처리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최근까지만 해도 국방부는 해외에 체류하고 있는 국군포로는 재외국민이므로 외교부가 해외 공관을 통해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외교부는 국군포로는 현역 군인 신분인 만큼 국방부가 주무부처라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게다가 두 김씨 사건은 부처간 업무영역 혼란뿐만 아니라 정부부처 내에서도 국군포로들에 대한 정보 공유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음을 함께 보여준다.

    국방부는 이뿐만 아니라 이미 귀환한 국군포로들로부터도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다. 국방부가 말로만 ‘선배 노병(老兵)에 대한 예우’를 들먹일 뿐 친목 모임 하나 만드는 것조차 달가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 2002년 여름 국방부가 주관해 국군포로 출신 귀환자들의 친목 모임이 열린 적이 있었다. 국군포로 출신 귀환자들이 33명(1명의 신원은 곧 발표 예정)이나 되는 현실을 감안하면 ‘국군포로 귀환 동지회’ 정도의 모임이 있을 법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

    이 모임에 참석했던 조창호 전 중위는 “국방부측에서 우리가 만나는 걸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더라”고 말했다. 조씨는 “1년에 한두 차례라도 만나봤으면 하는 의사를 전달했지만 ‘2년에 한 번’이라는 규정을 내세우며 ‘안 된다’는 이야기만을 들었다”고 말했다. 지난 1994년 귀환해 우리 사회에 국군포로 문제의 심각성을 불러일으켰던 조씨는 “국방부의 말대로 2년에 한 차례씩 모임을 갖게 되면 그 사이 이미 저세상으로 간 사람이 한두 사람이 아닐 것”이라며 씁쓸해했다. 이미 최근 몇 년 사이에 귀환한 포로 33명 중 4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 “총리 훈령 만들겠다”

    국방부 관계자는 “두 김씨 사건과 유사한 사건이 재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 범정부 차원의 국군포로 대책위원회를 통해 각 부처간 업무 분담을 명확히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를 위해 국방부 외교부 통일부 국정원 등 국군포로와 관련한 정부내 부처별 업무 영역을 명확히 분담해 이를 국무총리 훈령에 명기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청와대 NSC 상임위원회도 해외에 체류하고 있는 국군포로 문제에 대해 범정부 차원으로 대처한다고 결의한 바 있고 국방부도 대책위원회를 가동해 국군포로 문제에 대해 종합적으로 대응한다는 방침”이라고 말했다.

    현재 김씨는 서울에서 아파트를 얻어 함께 귀환한 또다른 김모씨와 함께 생활하고 있으나 북한에 두고온 가족들의 안전을 생각해 인터뷰에는 응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지난 1994년 이미 김씨의 생존 사실을 확인했던 김씨의 조카는 기자와 만나 “아저씨가 귀환하기 전 국방부에서는 자료를 못 찾아서 귀환이 늦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만을 들었다”며 국방부와 외교부가 책임을 떠넘기는 바람에 귀환이 늦어졌다는 사실에 어이없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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