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월호

이란 핵 사태로 본 北核 문제의 앞날

6자회담은 준비운동, 사찰검증이 본 게임

  • 글: 전성훈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swc339@kinu.or.kr

    입력2003-12-26 15: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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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라크전쟁의 명분이었던 후세인 정권의 핵 개발 진상은 미국을 당혹스럽게 할 정도로 신통찮은 것으로 판가름났다. ‘악의 축’ 리스트의 1번이었던 후세인 정권을 붕괴시킨 부시 행정부가 또 다른 ‘악의 축’인 북한과 이란의 핵 개발 프로그램을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향후 이란 핵 사태와 북핵 문제에 대한 해법이 서로 영향을 미칠 것임은 불을 보듯 명확하다.
    • 이러한 의미에서 이란의 핵 사태 추이는 향후 북핵 문제가 어떻게 풀려나갈지를 미리 살펴볼 수 있는 바로미터다.
    이란 핵 사태로 본 北核 문제의 앞날

    이란의 대표적인 핵 의혹 시설인 부셰즈 발전소와 이라크 핵시설을 사찰중인 미국 정부 조사단.

    국제안보정세가 아시아의 동쪽과 서쪽, 북한과 이란의 핵무기 개발이라는 양대 사건으로 시끄럽다. 북핵 문제는 우리에게 익숙한 사안이지만, 이란의 핵 개발은 다소 생소한 문제다. 당장 우리 코가 석자인 판에 이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까지 관심을 갖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유사한 성격을 가지고 있고 동시에 진행되는 한 쌍의 문제, 더욱이 그 해결과정을 주도하는 주체가 같다면 결론 역시 유사할 수밖에 없는 법이다. 미국이 갖고 있는 대(對)이란, 대북한 핵문제 해법은 서로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다른 관련국들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한 문제의 해결방식이 다른 문제의 해결과정에서 중요한 사례이자 참고자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란과 북한의 핵문제가 이라크처럼 ‘허망한’ 결과를 낳게 될지 아닐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우선 두 나라가 보유하고 있는 핵 능력 자체가 이라크와는 사뭇 다르다. 북한은 스스로 ‘핵 억제력’, 즉 사용가능한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공언한 상태이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 결과에 따르면 이란 역시 수년 내에 핵무기를 보유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 글은 이란 핵 사태의 실체와 현황을 북한 핵문제와 비교해서 살펴보고, 영국 독일 프랑스가 이란 핵 사태 해결을 위해 펼치고 있는 중재자 역할을 검토한 후, 6자회담의 최대 쟁점이 될 북한 핵 검증 문제를 분석하고 이 회담의 전망과 협상전략을 소개하고자 한다.

    핵 개발 명분으로 전력생산 내세워



    이란은 1970년 2월 핵확산방지조약 (NPT)에 가입하고 1974년 5월 IAEA와 보장조치협정을 체결했다. 원자력발전소 건설에 관심을 두고 시작된 이란의 핵 관련 활동은 1979년 혁명으로 중단되었다가 1984년에 재개되었다. 당시 이란은 표면적으로 원자력발전소 건설 프로그램을 시작했지만, 비밀리에 핵무기 연구개발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초기에 평화적인 목적으로 원자력 연구를 시작했다가 나중에 핵무기 개발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이란 핵 사태와 북핵 문제의 유사성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의 기술협력선이 러시아, 중국, 파키스탄 정도였던 데 비해서, 이란은 이들 외에 독일, 프랑스, 스페인, 남아공, 아르헨티나 등 다양한 협력루트를 확보하고 기술을 도입했다.

    북한에서는 플루토늄(PU)을 이용한 핵개발 계획이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보다 훨씬 앞서 있다. 영변의 핵 단지는 PU 추출을 주요 목적으로 하는 거대한 핵시설들로 구성되어 있는 반면에, 2002년 10월에 불거진 우라늄농축 프로그램은 아직 HEU를 양산할 수 있는 규모의 생산단지를 갖추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북한 당국도 HEU 생산사실을 부인하고 있고, 대규모 HEU 생산시설이 확인되었다는 정보도 없는 상태다.

    반면 이란의 경우에는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이 플루토늄에 비해 훨씬 진전되어 있다. 이란이 HEU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사실이 외부에 알려진 것은 2002년 8월 이란의 반정부단체인 NCRI(National Council of Resistance of Iran)에 의해서였다. NCRI의 고발로 인해 NPT 회원국인 이란이 IAEA에 관련 시설의 존재와 활동상황을 소상히 알릴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음이 밝혀진 것이다. 이 고발을 계기로 지난 1984년 원자력 활동을 재개한 이란이 18년 동안 국제사회와 IAEA를 속여왔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란과 달리, 북한의 핵 개발과 관련해서는 아직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한 내부 고발자가 없는 상태다. 황장엽씨를 비롯 일부 망명인사와 탈북자들이 북한의 핵 개발에 대해 나름대로 정보를 제공했지만 이란의 NCRI와 같이 결정적인 정보는 없다. 앞으로 북한의 핵 개발 현황을 정확하게 검증하고 핵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기 위해서는 핵 개발 활동에 직접 참여했던 북한 기술자들의 고발과 증언이 필수적이다. 내부 고발자의 정보제공은 제한된 검증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열쇠이다.

    두 나라 핵 개발 계획의 또 다른 공통점은 정권 핵심부의 관심과 주도하에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이란 원자력기구의 소장이 현직 부통령이라는 사실은 이란 정부가 핵 개발에 쏟는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를 잘 보여준다. 북한 역시 핵 개발과 같이 한 정권의 명운이 걸려 있는 문제를 김일성과 김정일의 승인 없이 추진했을 리는 만무하다.

    또한 양국이 핵 개발의 명분으로 전력생산을 내세우고 있다는 점도 같다. 이란 정부는 향후 20년 동안 7000MWe의 전력을 생산하는 데 원자력을 이용하겠다는 논리를 제시하고 있다. 북한 역시 영변 핵 단지의 5MWe 원자로를 비롯한 핵 시설들이 전력생산용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5MWe 원자로의 기술적 특성상 주된 목적은 플루토늄 생산이라는 것이 과학계의 판단이다. 이란의 경우에는 석유자원이 풍부한 나라가 굳이 원자력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는 것이 미국의 반박논리다.

    NCRI가 제기한 의혹의 진상을 확인하기 위한 IAEA의 사찰이 2003년 초부터 시작되면서 이란의 핵 개발 프로그램은 서서히 그 베일을 벗게 되었다. 2003년 2월 나탄츠(Natanz)에 소재한 HEU 생산용 가스원심분리 시험시설을 방문한 IAEA 사찰단은 이 시설의 정교함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현재 건설중인 시험시설은 연간 10~12kg의 HEU 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는데, 2005년 말까지 히로시마급 핵무기 한 개를 만들 수 있는 20kg의 HEU를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 과학계의 판단이다. 이란은 첨단기술인 레이저를 이용한 우라늄농축도 시도했다.

    나탄츠에는 본격적인 HEU 생산을 위한 상용시설도 건설되고 있다. 앞으로 5~10년 후에 이 시설이 완공되면 연간 15~30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의혹을 받고 있는 또 하나의 시설은 테헤란 인근에 위치한 칼라에(Kalaye) 전력회사인데, 이 회사 내에서 우라늄 농축 활동이 있었다는 증거가 포착되었기 때문이다. 이란 당국은 2003년 10월 소규모의 PU 추출을 위한 재처리 작업을 실시했다는 사실도 인정했다.

    중재자 역할 자임한 유럽 3개국

    이란 핵 사태에 대한 국제사회의 입장은 양분되어 있는 형국이다. 이란과 원자력발전소 수출 계약을 맺고 발전소를 건설중인 러시아가 가장 우호적인 입장을 보이는 반면, 미국은 러시아에 대해 원전건설 중단을 요구하는 등 이란의 원자력 이용 자체에 반대하고 있다. 미국은 2003년 초부터 시작된 IAEA의 대이란 사찰활동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다. 11월의 이사회 보고에서 IAEA측이 “아직 이란이 핵무기 개발을 시도했다는 증거가 없다”고 언급하자, 미국은 이러한 언급 자체가 적절치 못하다면서 IAEA를 강하게 비난하고 나섰다. 이란 핵 사태에 관한 IAEA 결의안 채택도 미국과 IAEA의 입장차이로 난항을 겪었다. 11월24일 가까스로 채택된 결의안은 이란이 향후 NPT와 IAEA 협정을 위반했다는 심각한 사례가 추가로 발견된다면 모든 방안을 강구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의 틈바구니에서 타협점을 모색하고 있는 그룹이 영국, 독일, 프랑스다. 이 세 나라는 이란이 과거와 현재의 핵 활동에 대한 모든 정보를 제공하고 농축 재처리 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에서, 원자력발전소와 같은 평화적 활동 권한을 인정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런 입장은 세 나라 외무장관이 2003년 10월 테헤란을 방문해서 이란 정부와 함께 발표한 공동합의문에도 잘 나타나 있다.

    이 합의문에서 이란 정부는 IAEA의 고강도 사찰을 허용하는 추가의정서에 서명하고 IAEA에 계속 협력할 것을 약속했다. 또한 자국의 핵 활동을 평화적인 목적에 국한시키고, 국제사회의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재처리와 농축활동을 자발적으로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IAEA 추가의정서란 1990년대 초 이라크의 핵 개발을 탐지하지 못한 것과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IAEA의 사찰규정을 대폭 강화한 내용을 담은 협정으로서, NPT 회원국은 모두 이 의정서에 서명해야 한다.

    이란 정부의 이런 약속에 부응해서 영국, 프랑스, 독일은 이란이 NPT에 입각해서 평화적 목적의 원자력 활동을 수행할 권한이 있음을 인정하고, IAEA 추가의정서가 이란의 주권과 안보를 훼손하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또한 앞으로 이란에 대한 핵개발 의혹이 해소되면 이란 정부가 한층 현대적인 원자력 기술을 제공받게 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함으로써 이란과의 원자력 기술협력 가능성도 내비쳤다.

    IAEA 사찰에 주권 문제가 거론되는 것은 지나치게 강압적인 사찰에 주권침해의 소지가 있다는 점을 유럽의 3국이 인정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란은 제1, 2차 걸프전 이후 유엔안보리와 미국 정부가 패전국 이라크에 대해 실시했던 정도의 고강도 사찰은 주권침해에 해당되므로 그런 수준의 IAEA 사찰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이라크전쟁 종료 후 미국정부는 대량살상무기와 핵 사찰 전문가 1400여명으로 구성된 ‘이라크 조사단(Iraq Survey Group·ISG)’을 가동해서 이라크 전역을 무제한으로 뒤지고 있다. 10월 초 ISG는 미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대량살상무기를 찾아내지는 못했지만 개발을 추진했다는 징후는 많으며 구체적인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6~9개월이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부시 행정부는 ISG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6억달러의 추가예산을 의회에 요청한 바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이란 핵문제의 추이와 유럽 3개국의 중재자 역할은 한국 정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이란 정부가 핵개발 포기를 약속하고 독일, 프랑스, 영국 외무장관들이 이를 보증하면서 함께 서명한 공동합의문의 경우는 6자회담에 임하는 우리 정부의 목적과 방향이 어떠해야 하는지 일깨워주는 명확한 사례다.

    이란과 미국 사이에 빚어지는 핵심적인 갈등이 ‘강압적인 사찰과 주권문제’이듯, 6자회담이 순조로운 항해를 거쳐 최종합의에 도달하기까지 가장 커다란 쟁점이 될 사항 또한 검증 문제다. 군비통제의 역사를 살펴보면 검증이 협상의 최대쟁점이며 검증에 합의하지 못해서 협상 자체가 깨진 사례도 많다.

    현재는 북핵 문제에서 대북 안전보장과 경제제재 해제 등 미국이 줄 수 있는 ‘당근’이 무엇인가에 관심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만, 이러한 합의사항을 도출하는 것보다 그 이행여부를 적절히 확인하는 절차와 규정을 만들고 그 실천을 검증하는 작업이야말로 협상의 핵심요소이자 난제 중의 난제다. 우리의 경우에도 1990년대 초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의 핵 협상이 검증에 대한 입장차이로 실패한 경험을 갖고 있다.

    따라서 6자회담이 무르익는다면 어떠한 검증절차에 합의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많은 이들의 관심사항이다. 이 글에서는 미국의 핵기술 전문가인 알브라이트(David Albright) 박사와 맥골드릭(Fred McGoldrick) 박사의 견해를 중심으로 북한의 핵 검증 절차와 예상 문제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북한의 핵 검증은 핵 활동의 ‘중단(Freeze)’과 핵무기 및 관련시설의 ‘폐기(Dismantlement)’라는 두 단계로 나누어 접근해야 한다. 사안의 중대성과 복잡성을 감안할 때, 핵 폐기라는 목표를 일거에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핵 활동 중단→핵 시설 폐기’라는 순서에 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핵 활동의 중단 상태를 제대로 검증하기 위한 전제조건은 북한 당국이 검증기구에 전적으로 협력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북한은 2002년 12월 IAEA 사찰요원을 추방한 후 진행했던 모든 핵 활동에 대한 상세 자료를 검증기구에 제출하고, 제출된 자료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한 사찰을 받아들여야 한다.

    시설은 폐기하고 자료는 없애고

    재처리에 비해 그 정보가 부족한 농축활동에 대해서는 더욱 자세한 정보가 공개되어야 할 것이다. 우라늄농축 프로그램의 시간대별 역사, 관련 장비 및 기술도입 시기와 도입원, 농축 프로그램 시설과 물질의 실태 및 소재, 농축활동 종사자들에 대한 인적정보 등 농축활동에 대한 전반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모든 자료가 공개되어야 한다.

    북한은 원칙적으로 농축에 관련된 모든 활동을 중단해야 하는데,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①농축에 관련된 모든 연구개발 활동 ②농축장비의 제조 및 조립 활동 ③농축에 사용될 우라늄 제조 활동 ④농축을 위한 준비 및 시험 활동 ⑤우라늄 농축 활동 ⑥농축 장비와 기술 및 설계도면 등의 해외구입 시기와 구입처 ⑦농축활동에 관련된 각종 외부지원 상황.

    핵 활동 중단이라는 목표가 성공적으로 달성되면 중단사실을 검증하는 과정에서 확보된 자료를 바탕으로 핵무기와 핵무기 개발에 전용된 시설과 장비를 폐기하는 단계로 진입한다. 북한의 원자력발전 규모가 상용 재처리라는 대외적 명분을 합리화할 만큼 크지 않기 때문에 북한의 PU 프로그램은 전적으로 핵무기 제조용이며, 따라서 PU 추출을 유일한 목적으로 설계 제조된 시설과 장비는 모두 폐기해야 한다. 우라늄농축 프로그램에 관련된 대부분의 장비와 설비도 해체해야 한다.

    해체와 폐기에는 절단, 파괴 및 기타 기능을 무력화시키는 물리적인 방법이 동원될 것이고, 관련 문서와 자료는 분쇄하거나 불태우는 방법이 있다. 북한 기술진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지식마저 완전히 소멸할 수는 없겠지만 문서화된 정보의 폐기는 현실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바람직한 차선책이다.

    100%를 요구하면 협상은 불가능

    이상의 실무적인 검증절차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우리가 북한에 대해 어느 정도의 검증을 요구할 것이냐 하는 검증의 기본원칙에 관한 문제다. 바꾸어 말하면 이는 북한의 핵 활동 실태를 100% 완벽하게 파악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다. 6자회담 참가국 가운데 일부는 100% 완벽한 검증을 주장하면서 후세인 정권 붕괴 이후 미국이 구성한 이라크사찰단이 이라크 영토를 샅샅이 뒤졌던 정도의 검증을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런 정도의 고강도 검증을 북한 당국이 수용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결국 고강도 검증을 요구할수록 북한의 거부로 6자회담이 성공할 가능성은 낮아질 것이기 때문에, 검증의 수위와 회담의 성공 가능성 사이의 균형을 잡는 협상전략이 필요하다. 따라서 북한을 제외한 5개국이 북한에 대해 어느 수준의 검증을 요구할 것인지 완벽한 의견일치를 보는 것이 6자회담 성공의 전제조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란 핵 사태로 본 北核 문제의 앞날

    2003년 10월 모하마드 하타미 이란 대통령(가운데)이 독일, 프랑스, 영국의 외무부장관과 환담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이란과 유럽 3개국은 ‘재처리 중단 및 평화적인 핵사용’에 합의했다.

    현재 6자회담 참가국들이 개별적인 차원에서나마 구체적인 검증전략을 입안했다는 징후는 없다. 줄곧 북한 핵 프로그램의 “검증가능한(Verifiable) 폐기”를 천명해온 부시 행정부 내에서조차 ‘검증가능성’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합의된 의견이 없는 상태다. 따라서 우리가 원하는 검증의 적절한 수위와 여기에 부합하는 구체적인 검증절차를 마련하는 일이야말로 우리 정부가 챙겨야 할 시급한 업무라고 생각된다. 검증에 대한 확고한 원칙과 구체적인 정책으로 무장하는 것은 향후 6자회담의 진로를 우리가 주도할 수 있는 관건이기도 하다.

    한편 비록 군사적 용도로 만들어진 시설과 장비라 하더라도 평화적 목적에 사용할 수 있게 ‘전환(Conversion)’하도록 허용하는 것도 6자회담의 중요한 과제다. 그럴 경우 북한에 대해 전환할 권리 자체를 인정할 것인가의 여부에서부터, 인정한다면 전환의 규모와 폭을 어느 정도로 할 것인가에 이르기까지 복잡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문제의 핵심은 북한에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권한을 인정할 것인가 여부에 있다. 미국이 경수로사업의 완전중단을 요구하고 있고 일본도 이에 동의하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북한의 핵 시설 가운데 일부가 전환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미 공화당이 제네바 기본합의 체결 당시부터 경수로 건설에 반대한 것은 잘 알려진 일이지만, 이제는 민주당마저도 경수로 사업에 반대하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는 제네바 합의를 위반하고 NPT를 두 번씩이나 탈퇴하면서까지 핵 억제력 보유를 공언하고 있는 북한에 대해서 미국 정가 전체가 강한 불신을 갖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결국 잠정 중단된 경수로 사업이 끝내 회생하지 못한다면, 북한 핵문제가 완전히 해결된다 하더라도 북한내 핵 시설의 전환 여지는 없어지고 북한 땅에서 원자력의 싹이 뽑히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플루토늄을 이용해 제조한 핵무기의 폐기는 핵무기 제조경험이 있는 핵 보유국의 전문지식과 경험이 필요한 부분이다. 특히 미국과 러시아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제네바 기본합의의 이행과정에서 소외되었던 우리나라가 이번에는 적절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 중요하며, 특히 북한의 핵 폐기 검증과정에 참여하는 것은 상징적으로나 실질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검증과정에서 담당해야 할 적절한 역할을 요구해야 할 것이다.

    물론 핵 보유국들은 비핵국인 한국이 핵무기 폐기절차를 목격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일본의 참여를 배제하는 대신에 5대 핵 보유국(미·러·중·영·프)과 IAEA가 일부 참여하는 다자 검증기구의 창설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러나 북한 핵문제가 우리 안보와 남북관계에 미치는 막대한 영향을 고려한다면 핵무기 폐기는 양보하더라도 다른 핵 시설과 장비의 해체과정에는 우리 전문가들이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

    이렇게 보면 핵 검증 과정에 한국이 참여하느냐 마느냐는 향후 협상과정에서 주요 쟁점의 하나가 될 것임을 예견할 수 있다. 북한 핵 검증에 대한 우리의 확고한 입장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해서 6자회담 참가국들을 설득해야만 우리가 검증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

    ‘유럽 전략’을 목표로 삼아야

    우리 모두가 6자회담의 성공을 바라고 있지만 사실 이 회담의 전망은 매우 불투명하다. 6자회담의 전망이 낙관적일 수만은 없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회담 참가국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합의를 이루기가 어려워진다. 북한과 미국이 제네바 기본합의를 만드는데 17개월 이상이 걸렸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둘째, 6자회담에서 추구하는 목표가 10년 전 제네바 기본합의 때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10년 전에는 북한의 핵 활동을 동결시키는 것이 초점이었지만, 이번에는 동결 이외에 핵무기 해체와 관련 시설의 완전 폐쇄, 그리고 새로이 발견된 우라늄농축 프로그램도 다뤄야 한다. 6자회담의 의제가 훨씬 많고 개별 의제의 중량감도 높아졌기 때문에 단순히 회담진행 차원에서만 보더라도 많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셋째, 북한이 수용해야 하는 검증의 수위가 매우 높아졌다. 제네바 기본합의에서는 과거 핵 의혹은 남겨둔 채 주요 핵 시설을 동결하고 이를 확인하는 사찰만 받으면 되었지만 이번에는 북한의 핵 의혹을 뿌리째 뽑는 광범위하고 최종적인 사찰이 될 것이다. 북한과 같은 ‘불량국가’에게 더 이상 속을 수 없다는 결의가 매우 강하므로 국제사회는 북한에 대해 가급적 고강도의 사찰을 실시하려 할 것이다. 물론 사찰의 수위가 높아질수록 폐쇄체제인 북한이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에 협상의 타결가능성은 그만큼 낮아지게 된다.

    마지막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북한의 핵 개발 능력이 축적되면서 위기상황으로 치닫게 된다는 점이다. 북한은 이미 8000여개의 폐연료봉에 대한 재처리를 완료했다고 공언하고 있고, 5MWe 원자로를 가동하면서 50MWe, 200MWe 원자로의 건설도 다시 시작한 상태다. 따라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도 협상에 성과가 없으면 미국을 중심으로 더 이상 북한의 핵 능력 축적을 방치할 수 없다는 강경론이 대두되면서 협상을 포기해야 한다는 압력이 거세질 것이다.

    이와 같은 점들을 고려할 때 6자회담이 제대로 진행된다 하더라도 조만간 손에 잡히는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다음번 회담 성과가 미흡해 적어도 북한 핵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지 못한다면, 6자회담의 장래는 매우 어두워질 것이 분명하다. 그만큼 이 회담에 대한 국내외의 성원도 반감될 것이다. 따라서 차기 6자회담의 최대 목표는 회담의 연속성을 살리고 유효성을 과시할 수 있는 디딤돌을 놓는 것이다.

    이 글은 이러한 디딤돌의 사례로써, 이란 정부가 핵 개발 포기를 약속하고 독일, 프랑스, 영국 외무장관들이 이를 보증하면서 함께 서명한 공동합의문을 들고자 한다. 이란과 3개국 외무장관들이 발표한 합의문에 포함된 내용 정도가 다음번 6자회담에서 합의된다면 대단한 성공을 거두는 셈이다.

    다음번 6자회담에서 이 정도의 공동선언을 만들어내는 것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북한측이 농축과 재처리를 포함한 모든 핵 활동을 중단하고 IAEA에 적극 협력하면서 추가의정서에도 서명한다면, 나머지 5개 국가는 북한의 주권을 보장하고 평화적인 원자력 활동을 수행할 권한을 인정하면서 향후 대북 지원과 기술협력 의지도 밝힐 수 있을 것이다.

    한 가지 우려되는 것은 북한의 경우 이란에 비해 강대국들의 경제적인 이해가 걸려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러시아는 이란에 수십억달러짜리 원자력발전소 공사를 하고 있고, 영국, 프랑스, 독일은 이란의 석유자원에 경제적인 매력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북한의 경우 이러한 인센티브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중국이나 러시아가 북한의 원자력 이용권한을 인정하는 데 관심을 두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북한을 포함한 6자회담의 관계 당사국들이 경제·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라는 목표를 이루겠다는 의지를 갖고 이란 핵 사태에 적용했던 해법으로부터 유용한 교훈을 이끌어낸다면, 차기 6자회담을 성공으로 이끄는 토대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기술’ 알아야 ‘핵심’이 보인다

    마지막으로, 6자회담 대비책으로 우리정부가 시급히 취해야 할 조치는 우리측 회담대표단에 원자력전문가를 포함시키는 일이다. 6자회담의 핵심의제가 북한의 핵 개발이라는 과학기술적 사안인 만큼 이 분야 과학기술자들이 회담대표단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일부에서는 본 회담에 성과가 있어서 후속 실무회담이 열릴 경우 여기에 과학자들을 포함시키면 된다고 말하지만 이는 너무 안이한 생각이다. 본 회담에서부터 과학기술진이 참여해야 기술적 사안이 대두될 때마다 대응할 수 있고, 본 회담의 분위기와 흐름을 제대로 파악해야 실무회담도 잘 끌어나갈 수 있다. 국가적 현안을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대처하려는 안목과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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