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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국무부 비밀문서로 밝혀진 7·4남북공동성명 내막

박정희 권력욕·美 압박이 대북협상 물꼬 텄다

  • 정리: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미 국무부 비밀문서로 밝혀진 7·4남북공동성명 내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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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국무부 비밀문서로 밝혀진 7·4남북공동성명 내막

1968년 정일권 총리와 비밀회담을 마치고 악수하는 윌리엄 포터(오른쪽) 주한 미 대사.

7·4공동성명과 관련된 논의가 갖는 이러한 한계는 관련된 1차 자료가 부족한 탓이 컸다. 또한 약소국인 한국의 경우 당시의 데탕트 무드에 편승할 수밖에 없었으리라는 막연한 추측이 좀더 체계적인 연구를 가로막은 측면도 있었다.

그러나 최근 비밀해제된 미 국무부 등의 문서들은 이러한 틈새를 메울 수 있는 귀중한 팩트들을 밝혀주고 있다. 1970년대 초반 박정희와 닉슨 사이에는 남북협상을 둘러싸고 거센 밀고 당기기가 전개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남북협상을 유도하기 위해 닉슨 행정부가 취한 여러 조치들, 초기에는 적극적으로 반발하던 박정희 정권이 결국 협상에 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이후 유신이 선포되고 남북관계가 예전으로 돌아가게 되는 원인 등을 이 문서들은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기존 연구에서 제대로 다뤄지지 못한 7·4공동성명 전후 한미간의 정치적 상호작용에 대한 분석은 7·4공동성명에 얽힌 국제정치 상황을 이해하고, 남북대화에서 미국 영향력의 조건과 한계 등을 확인하는 데 핵심적인 부분이 될 것이다.

‘좀더 강력한 수단’

서두에서 밝힌 바와 같이 포터 대사를 비롯한 미국측 인사들의 적극적인 행보는 한국정부 수뇌부들의 인식을 조금씩 바꿔나갔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남북간 선의의 경쟁’을 제안한 1970년 8월 박정희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 그러나 1971년 2월 6만6000명의 주한미군 중 2만2000명을 철수시키고 있던 미국은 더욱 획기적인 분위기 전환이 필요했다. 그해 4월 대통령선거를 눈앞에 두고 있던 이 무렵 한국주재 미 대사관에서 국무부에 보낸 전문(From Amembassy Seoul to SecState, 1971.2.18, ‘Proposal for Increased Display of U.S. Interest in Dialogue between ROK and North Korea.’)은 다음과 같이 분석하고 있다.



“향후 한국정부는 자신의 시간표와 방법으로 (북한에 대한) 어떤 접근법을 만들어갈 테지만, 이 접근법이 과연 우리가 좋아할 만한 것인지 아닌지는 두고 봐야 할 것이다…한국정부가 처음부터 우리의 관점을 고려하도록 하기 위해 조용한 설득보다는 좀더 적극적인 방식이 자주 필요하며, ‘직접접촉을 통한 긴장완화’라는 방식을 압박하기 위해 ‘좀더 강력한 수단(a little more leverage)’도 필요할 것이다.”

쉽게 말해 ‘남북간의 직접 대화를 통한 획기적인 한반도 긴장완화’야말로 주한미군 감축의 명분을 찾던 미국의 요구에 딱 맞는 이슈였다. 박정희가 마지못해 보여준 ‘뜨뜻미지근한 방식’으로는 이를 해결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같은 전문의 다른 문장은 그 구체적인 속내를 보여준다.

“우리는 덜 소극적이어야 하며…덜 관용적이어야 한다. 미군 주둔으로 한국의 방위를 약속하고 있는 이상 한반도 긴장완화는 우리와 직접적인 이해를 갖고 있으며, 한국정부가 우리를 경직된 적대상태에 붙잡아두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박정희가 선출되든 야당후보(김대중)가 되든…이산가족 문제부터 시작해 문화교류와 무역 등 북한과 실질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만약 한국정부가 긴장 완화를 위한 만족할 만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우리가 북한측과 비공식 대화를 위한 채널을 찾아 나설 것이라고 통고해야 한다.”

적극적으로 해석하자면 이는 ‘박대통령이 긴장완화를 미룰 경우 김대중으로 정권이 교체돼도 미국에 불리할 이유가 없다’는 판세 해석이다. 덧붙여 한국정부를 배제한 채 미국이 직접적으로 북한과 비밀협상에 나설 수도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어느 쪽이든 박정희 정권으로서는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이 전문이 말하는 ‘좀더 강력한 수단’이란 무엇이었을까. 1971년 7월3일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의 UN측 수석대표 로저스 소장은 제317차 회담에서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방안’을 제기하면서 “판문점 회담을 남북간 정치회담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고 언급한다. 8월6일에는 “한국의 집권당과 만날 수 있다”고 밝힌 김일성의 ‘8·6제의’를 높게 평가함으로써 한국 정부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는가 하면, 주한미군 1개 사단 철수가 완료된 1972년 4월에는 “1975년부터 미국의 대한(對韓) 무상원조가 종식될 것”이라고 공식 발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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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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