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월호

전문의 없는 응급실 의료사고 百態

맹장염·탈장·천식 오진으로 뇌손상에 사망까지

  • 글: 김현미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khmzip@donga.com

    입력2003-12-26 16: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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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단 접수부터 하고 오세요.”
    • 응급실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듣게 되는 말이다. 휴일 응급실에서는 “의사가 올 때까지 기다리라”며 몇 시간씩 방치되기 일쑤이고 그나마 “다른 병원으로 가라”는 말이나오지 않으면 다행이다.
    • 시간이 흐를수록 황당함은 분노로 바뀌고, 의료진에 대한 깊은 불신은 소송으로 이어진다
    전문의 없는 응급실 의료사고 百態
    “금요일 밤 12시경 아기의 체온이 38도가 넘어서 급히 ○○병원 응급실로 향했습니다. 우선 접수를 하고 다시 체온을 재니까 39도3부가 나오더군요. 열이 너무 올라 간호사들이 물로 마사지를 해야 한다고 준비를 하는데 의사가 오더니(인턴인 듯) 얼굴을 찌푸리며 ‘아기가 열이 높네요’ 하고 진찰도 않고 차트만 보며 얘기하더군요.

    의사 : 죄송한데요. 다른 병원으로 가야겠네요. 본인 : (황당) 의사 : 아기가 열이 높아서 위험할 수도 있는데, 현재 저희 병원에 소아과 침상이 남은 게 없어요. 빨리 다른 병원으로 가세요. 본인 : (너무 경황이 없어서) 네.

    그 순간 간호사들이 아기의 체온을 내리기 위해 물 마사지를 한다고 다가오는데 그 의사가 간호사들을 막으며 하는 말이 ‘아기가 3개월이라는데 받으면 안 돼요.’ 제 아내가 너무 어이가 없어서 ‘그럼 응급처치만 해주세요’ 했더니 간호사가 물 마사지 할 것을 놓고 가버립디다. 경황도 없고 아기는 울고 해서 급히 마사지를 해주고 빨리 다른 병원으로 가려고 간호사에게 ‘이 근처 다른 병원 어디로 가야 하나요?’ 하니까 응급실 접수구로 가서 물어 보라더군요.

    응급실에서는 환자에 대한 응급처치 의무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또 환자 얼굴 한번 보지도 않고 다른 병원으로 가라고 하는 것은 진료거부 아닌가요?”

    2003년 8월 한밤중에 고열에 시달리는 3개월 된 아이를 안고 황급히 응급실을 찾았지만,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그냥 “다른 병원으로 가라”고 한 의사의 무성의한 태도에 분통이 터진 최모씨가 의료사고 전문 변호사에게 상담을 요청한 내용이다.



    “다른 병원으로 가세요”

    굳이 의료법 제16조 ‘진료거부금지’ 조항을 들어 소송까지 갈 만한 사항은 아니라 해도 다급한 부모와 앞뒤 재는 병원 사이에 상당한 심리적 격차가 존재함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정도는 응급실에서 흔히 겪게 되는 다른 황당한 일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2003년 11월26일 또 다른 변호사의 의료사고 공개상담실에 접수된 내용도 응급실의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다음은 환자의 제보를 재구성한 것이다.

    한밤중에 배가 너무 아파 일반병원 응급실로 갔더니 위경련이라며 주사를 놓아주었다. 그러나 차도가 없자 대학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위염 진단을 받고 진통제를 맞은 후 새벽 2시에 귀가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너무 배가 아파 대학병원 소화기내과로 갔더니 급성맹장염이라며 응급실로 가서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다시 응급실로 오니 빨리 수술을 받아야 할 환자에게 “수술 들어간 외과의사가 오면 다시 진찰을 받아야 한다”며 진통제만 놓아주었다. 소화기내과에서 응급실로 온 것이 오전 10시경, 다시 6~7시간을 기다려 겨우 만난 의사는 “충수염 같은데 나는 더 급한 수술환자가 있다”며 여기저기 전화를 걸더니, “협력병원으로 가야할 것 같다”며 수술하러 가버렸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 CT촬영까지 마치고 다시 다른 외과의사가 와서 결국 충수염 확진을 받았지만 그 의사도 “급한 수술환자가 있으니 협력병원으로 가라”고 해서 구급차를 탔다. 드디어 협력병원 도착. 대학병원에서 CT촬영한 것을 보며 “빨리 수술을 하자”고 해서 수술실에 들어갔는데, 황당하게도 응급환자가 생겼다며 1시간만 기다리라는 것이다.

    다시 입원실에서 대기. 그 동안 경기와 발열 증상이 일어나고 이번에는 열이 내리기를 기다려야 한다며 또 지체하다 마침내 수술실로 갔으나 이미 맹장이 터졌다. 그러나 의사는 수술 후 가족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수술이 잘 되었다”고만 하더니, 수술 다음날 너무 배가 아파 치료를 받게 되자 그제야 “터졌다”고 알려주었다. 그 바람에 20cm 가까이 절개하고, 복통은 심하고, 가족들은 분개하고.

    법무법인 해울의 신현호 변호사는 이 사건의 경우 “단순 충수염을 방치하여 복막염에 이르게 했다면 손해배상청구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응급실에서는 이런 일이 다반사다. 12월7일 ‘의료사고시민연합’에는 충남 금산에서 병원을 전전하다 수술 시기를 놓쳐 결국 다섯 살짜리 아들을 잃은 부모의 안타까운 사연이 날아들었다.

    12월1일 오후 2시반경 아이가 복통을 호소해 병원에 가서 진료한 결과 식중독이라며 주사를 놔주었는데도 계속 복통을 호소해 다른 병원으로 갔다. 거기서는 체했다며 다시 주사를 맞혔다. 병원에서는 다음날까지도 아프면 한번 더 오라고 했다. 다음날 아이가 계속 아프다고 해서 또 다른 병원으로 갔다.

    오전 10시반경 병원에 도착해 진료한 결과 의사는 복막염일지도 모른다는 소견서를 적고 119구급차를 불러주며 ○○대학병원으로 옮기라고 했다. 그곳에 전문가가 계시니 전화를 해놓겠다며 응급실로 가지 말고 직접 그 선생님을 찾아가라고 했다. 그쪽이 응급실로 가서 수속하는 것보다 더 빠르다고 해서 구급차를 타고 ○○대학병원에 도착한 것이 12시15분경. 마침 의사가 기다리고 있다 아이를 직접 안고 진찰실로 갔다.

    먼저 병원 의사가 급하다는 소견서를 써주고 전화까지 해서 대기를 시켜놓았다면 얼마나 급한 환자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최종판단은 의사가 하는 것이지만 그처럼 응급한 환자에게 응급처치는 안 하고 별의별 검사를 다하면서 시간을 끌다가 결국 오후 5시경 CT촬영을 끝내고 약물을 투여하는 과정에서 아이가 죽었다. 사망원인은 장파열이라고 했다. 너무 억울해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부검을 의뢰했는데 장이 꼬여 산소공급이 안돼 죽었다는 말을 들었다.

    네 번째 병원에서 아이는 수술도 받아보지 못하고 죽었다. 의료사고시민연합 부설 ‘솔로몬번역분석원’의 정상미 원장은 “병원측 과실여부는 진료기록을 봐야 알 수 있고, 환자는 일단 장중첩증으로 판단된다”면서 “장중첩 부위가 눌려 피가 통하지 않고 괴사하여 터지면 이처럼 복막염, 장출혈, 쇼크 등으로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다”고 했다. 응급실 내에서 벌어진 상황은 아니었으나 119구급차를 타고 온 응급 환자가 5시간 가까이 병원에 머무는 동안 과연 적절한 처치를 받았느냐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2002년 3월에도 일산 ○○병원에서 비슷한 이유로 8세 남아가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홍모씨는 밤중에 갑자기 배가 아프다는 아들을 안고 집 근처 의원으로 갔다가, “급성 충수염이나 장중첩증으로 보여 수술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소견서를 받아 근처 종합병원으로 옮겼다.

    그러나 야간응급실에서 소아과전문의는 보이지 않았고 아이는 계속 복통을 호소하며 아침까지 의사가 오기를 기다렸다. 아침에 나타난 소아과 전문의는 홍씨가 받아온 소견서를 무시하고 장염이라고 진단했지만, 이미 아이가 실신하는 등 증세가 심각해 홍씨는 다른 병원으로 옮기려 했으나 병원측의 만류로 일반병실에 입원시켰다. 아이는 탈장으로 인한 장괴사로 입원 3일 만에 숨졌다.

    홍씨는 이 병원 전문의와 수련의 등 3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고소했지만 경찰은 “의사 과실을 찾기 어렵다”는 대한의사협회의 소견을 근거로 불기소 처리했다. 그러나 의정부지청은 병원 진료기록을 다시 조사하고 관계자들의 진술을 통해 의사들의 과실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확보해 사건 1년 만에 이들을 불구속 기소했다.

    위급한 신생아 1시간 넘게 이송

    경기도 김포에 사는 이모씨의 딸 연지(가명)는 곧 첫돌이 돌아오지만 앉지도 서지도 못한다. 연지는 김포 ○○병원에서 분만 직후 무호흡 상태여서 수동호흡(앰부 호흡)과 심폐소생술을 통해 간신히 목숨을 건지고 신생아실로 옮겨졌다. 이씨는 이처럼 중증가사상태로 태어난 신생아에 대해 병원이 검사를 게을리했다고 말한다. 이틀 후 오전 5시반 무렵 연지의 상태가 눈에 띄게 나빠지면서 청색증이 나타나자 병원측은 기관 삽관을 통해 호흡을 유지하다 종합병원으로의 이송을 지시했다.

    그러나 이씨가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김포에서 10여분 거리의 대학병원, 종합병원들을 두고 1시간이 훨씬 넘는 거리에 있는 서울 강남의 ○○병원으로 이송된 것이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연지의 심장은 멈춘 상태였고, 40여분의 심폐소생술 끝에 호흡은 회복됐으나 이미 5분 이상 호흡이 멈추면서 저산소성 뇌손상을 피할 수 없었다.

    “병원측이 가까운 종합병원으로 연락을 했으나 모두 신생아 중환자실에 여유가 없다고 받아주지 않아 결국 1시간 이상 거리의 병원으로 이송됐다. 구급차에 소아과의사가 동승했지만 앰브호흡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심박동과 호흡이 멈추고 온몸이 파래져도 의료적인 처치를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이씨는 “연지가 태어난 병원에서는 ‘적절한 조치를 다했기 때문에 책임이 없다’고 말한다. 나도 의사가 최선을 다했다고 믿는다. 그러나 가까운 병원으로만 이송됐어도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을 거라 생각하면 억울하다”고 했다. 이씨는 연지를 분만한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전문의 없는 응급실 의료사고 百態

    2003년 권역응급의료센터의 평가에서 C등급을 받은 서울대병원 응급실.

    2003년 4월 서울지방법원 민사 15부는 교통사고 후 의료과실로 사망한 17세 허모군의 가족에게 관련 병원과 보험사는 1억5000만원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사건은 1998년 3월. 당시 분당 ○○고에 다니던 허군은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 승용차에 치였다. 운전자는 버스를 추월하려고 과속을 하다가 뒤늦게 횡단보도를 건너던 허군을 발견하고 당황한 나머지 액셀러레이터를 밟아 허군을 치였고 허군은 5m 가량 떨어진 인도로 떨어져나갔다.

    대형교통사고였음에도 허군은 이렇다 할 외상이 없어 인근 A병원에서 소염진통제 처방만 받고 돌아와 등교를 계속했다.

    그러나 두통과 메스꺼움, 전신 통증, 피로감을 호소하고 잇몸출혈, 온몸에 멍이 들고 여드름 자리에서 피가 흐르는 등 이상 증상이 나타나 다시 A병원으로 갔으나 별다른 조치 없이 물리치료가 필요하다며 B병원을 소개했다. B병원에서도 혈액검사 등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물리치료와 소염제 처방만 했다. 2주후 허군은 걷기조차 힘든 상태로 B병원으로 갔고 의사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C종합병원 응급실로 보냈다.

    이곳에서 처음 혈액검사를 한 결과 혈소판 수가 생명이 위태로울 만큼 심각하게 감소됐음이 발견됐으나 병원은 진통제만 투여하고 입원을 시켰다. 다음날 허군은 혼수상태에 빠졌고 뒤늦게 달려온 신경외과 전문의의 지시로 CT촬영 등을 했으나 증상이 더욱 악화돼 응급실로 이송, 심폐소생술을 시행한 후 뇌수술을 받고 사망했다. 사망원인은 혈소판 감소증과 뇌출혈.

    대외 법무법인 전현희 변호사는 “신속히 혈소판 수혈을 했더라면 간단히 치료할 수 있는 것인데 시기를 놓쳐 사망케 했다. 첫 번째 병원에서 외상이 없으므로 ‘별것 아니다’라는 식으로 넘어갔고, 두 번째 병원에서 종합병원 응급실로 올길 때 진료기록이나 소견서 등을 첨부해 교통사고 환자였음을 알렸다면 검사로 시간을 낭비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중 ‘전원 의무 위반’에 해당된다.

    1999년 교통사고를 당해 왼쪽 무릎이 거의 절단된 노모씨(51세·남자)가 수원 ○○병원 응급실로 실려 왔다. 당시 노씨는 과다출혈로 당장 수혈을 하고 좌측 무릎 이하 부분을 절단해서 출혈을 막아야 했으나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가족들이 집에서 가까운 병원으로 옮기기를 원해 이송 도중 사망했다.

    소송대리인인 법무법인 한강의 홍영균 변호사는 “보호자가 전원을 요구했기 때문에 일부 원고측 책임도 있으나, 전원 도중 사망할 위험이 높다면 보호자를 설득해 전원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도 의사의 의무”라면서 “환자가 응급실에 도착한 직후부터 다른 병원으로 옮겨지기까지 약 3시간 동안 충분한 수혈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직접적인 사망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환자는 응급·비응급의 상황을 판단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은 “응급의료 종사자는 업무 중 응급의료 요청을 받거나 응급환자를 발견한 때 즉시 응급의료를 행해야 하며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거부하거나 기피하지 못한다”고 되어 있고, “응급환자가 의사결정 능력이 없는 경우 대리인에게 설명한 후 응급처치를 하고 의사의 의학적 판단에 따라 응급진료를 행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최근 10년 새 우리나라 의료소송 건수가 10배 가까이 늘어났다. 특히 2000년대 들어 소송이 눈에 띄게 증가해, 법원 통계를 보면 2001년 800건을 넘었고 2002년에는 900건 가까이 돼 ‘폭증’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그 중에서 응급실 관련 의료분쟁은 아직 미미하나 사망 혹은 뇌손상 등 치명적인 결과가 대부분이어서 소송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1991년에 창립된 ‘의료사고가족연합회’(회장 이진열·이하 의가연)는 그 동안 축적된 의료분쟁 상담사례들을 정리해 ‘15년 의료사고에 숨은 이야기’를 펴냈다. 2000년 4월부터 2002년 12월까지 이루어진 상담사례 1336건 중 응급의학 관련 상담은 28건이었다. 의가연의 권종현 실장(고려대 의료법학연구소 연구원)은 “응급의학과의 특성상 응급실에서 시행하는 처치로 인한 사례와 잘못된 진단으로 인한 사례가 분쟁으로 번지고 있다”면서 “사고 후 상태로 보면 다른 진료과에 비해 사망 관련 분쟁(60.7%)이 많은 것에 유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2002년 경희대 응급의학교실팀(박현경 외)이 발표한 ‘응급센터에서의 의료소송 판례 분석과 향후과제’에서도 응급의학 관련 의료분쟁은 사망 사건이 많고 원고(환자) 승소율이 높은 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16건의 응급의학 관련 의료분쟁에서 사망이 14건, 장애가 2건이었으며 환자 처치 지연 및 이송 중 사망이 6건, 응급실에서 투여한 약제 부작용 4건, 환자 진단에서의 오진시비 4건, 시술상 주의의무 소홀 및 설명 의무 위반 2건 등이었다. 환자 처치 지연 및 이송 중 사망 사건 6건을 보면 5건이 정규진료 시간 이외인 휴일이나 자정에서부터 오전 5시 사이에 발생했다. 흔히 “휴일이나 주말에 응급실에 가면 위험하다”는 말이 아주 근거 없는 소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1996년 각 대학 응급의학과가 공동으로 조사한 응급의료센터 이용 현황을 보아도 응급실 내원 환자수가 토·일요일에는 평일에 비해 3~8%정도 늘어나고, 시간대 별로는 오후 4시부터 밤 12시까지 사이에 집중되며(50%), 일요일은 오전 10시 이후 급격히 환자가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1년 캐나다 토론토대학 차임 벨, 도널드 리델마이어 박사팀이 10년 동안 응급실 이용 환자 400만명의 의료기록을 분석해 “주말에 응급실에 입원하는 환자가 평일에 입원하는 환자보다 사망률이 현저히 높다”고 발표했다.

    원인은 주말에 응급실 근무자가 적고, 주말 근무자들은 경험이 부족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벨 박사팀은 특히 세균 감염으로 후두가 부어올라 이로 인해 기도가 막히는 후두개염의 경우 주말 입원환자의 사망률이 5배나 높다고 했다. 그밖에 대동맥 누출로 복부에 피가 고이는 환자는 28%, 다리 혈전 환자는 19% 정도 사망률이 높다(연합뉴스 2001년 8월30일). 그렇다고 휴일이나 야간에는 아프지 말거나, 아픈 것을 참을 수는 없지 않은가.

    일산에 사는 황모씨는 4개월째 중환자실에서 눈만 깜박이며 누워있는 남편 강모(41)씨의 곁을 지키고 있다. 추석 연휴를 앞둔 2003년 9월7일 일요일 오후 4시 무렵 사무실에서 귀가한 남편 강씨는 목이 아프다며 따뜻한 물을 찾았다. 저녁 6시 이후 20분 간격으로 가래를 뱉었고 자정 무렵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다 병원으로 향했다. 차 안에서 강씨는 계속 헉헉거리며 가래를 뱉었다. 인근 종합병원 응급실에 도착한 시간이 12시20분경. 호흡곤란을 호소하는 강씨가 피검사를 하고 X선 촬영 도중 너무 힘들다며 그만하자고 해서 나와 침대에 앉는 순간 경련을 일으키더니 숨이 멎었다. 그 때가 12시45분. 의사들이 달려들어 기관절개를 하고 산소호흡기를 꽂았으나 숨이 멈춘 지 5분 만에 뇌의 90%가 손상됐다. 강씨의 병명은 후두개염. 목의 후두덮개가 감염되어 부은 상태에서 미처 뱉어내지 못한 가래가 기도를 막아버려 질식한 것이다.

    황씨는 억울했다. 검사하느라 지체한 25분 동안 호흡곤란에 대한 응급처치만 했어도 뇌손상을 막을 수 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 발로 응급실로 걸어 들어온 환자에게 25분의 검사는 불가피했으며 호흡정지 후 5분 만에 인공호흡이 이루어진 것은 최선이었다는 병원측 설명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환자가 꽤 아팠을 텐데 너무 오래 참다 병원에 왔다. 낮에만 왔어도 괜찮았을 텐데”라는 의사의 위로에 가슴을 칠 뿐이다.

    이처럼 응급실에서는 5분이 생명을 좌우한다. 응급실에선 충분히 환자의 상태를 살피거나 과거 의무기록을 참고할 수 없는 상태에서 신속하게 판단해야 하기 때문에 응급의학 전문의거나 임상 경험이 풍부한 의사가 필요하다. 의식이 없는 환자, 중환자, 사고환자, 소아환자일수록 전적으로 의사의 판단에 맡겨진다. 그러나 현실에서 야간 응급실은 의사 초년생인 인턴들과 당직 아르바이트를 하는 공중보건의, 레지던트 1·2년차들로 채워진다. 응급의학 전문의가 있는 대학병원들조차 야간 근무는 대부분 이들의 몫이다.

    살인적인 근무강도

    2000년 10월27일 자정 무렵 경련을 일으키며 쓰러진 김모(34세·여자)씨가 가족들에 의해 인천 ○○병원 응급실로 실려 왔다. 당시 응급실에는 의사 1명, 간호사 1명이 있었고 의사는 환자를 진정시키기 위해 바륨을 주사했다. 신경안정제인 바륨을 주사하면 ‘무호흡 상태’에 빠질 우려가 있어 환자에 대한 지속적인 관찰이 필요한 데도 이를 무시했다. 20분쯤 지나 가족들(남편 등 3명)은 환자에게서 청색증이 나타나는 것을 발견하고 황급히 의사를 불렀다. 그제야 의사가 인공호흡을 위해 기관삽입을 시도했으나 당황한 나머지 기도를 찾지 못하고 식도로 넣는 실수를 저지르며 시간을 지체했다. 이를 지켜보던 가족들은 부랴부랴 119를 불러 환자를 근처 대학병원으로 이송했다. 환자는 이곳에서 심폐소생 응급처치를 받았지만 끝내 사망했다.

    홍영균 변호사는 “당시 담당의사는 외국에서 의대를 나와 국내 병원에서 레지던트(전공의) 과정을 밟고 있었다. 낮에는 대형병원에서 수련의로 근무하고 밤에는 중형병원 응급실 당직 아르바이트를 하는 상황이니, 전문성도 전문성이지만 피로가 누적돼 정상적인 진료가 가능했는지 의문”이라며 “그처럼 아르바이트 의사를 쓰면서 ‘주야24시간 응급의사 대기’라고 현수막까지 내걸고 선전해온 병원의 처사가 어처구니없다”고 했다.

    2003년 1월2일 69세의 박모씨(남자)가 갑작스러운 의식저하와 마비증세 등 뇌졸중 증세를 보이며 경기도 남양주시 ○○병원 응급실로 왔다. 의사는 뇌경색으로 진단하고 항응고제인 헤파린을 주사했으나 이틀 후 환자는 사망했다. 사인은 급성 뇌출혈. 어이없게도 뇌출혈 환자를 뇌경색으로 오진하고 오히려 출혈을 유발하는 약을 투입해 상태가 급격히 악화된 것이다. 의사는 환자가 내원했을 때 CT나 MRI 촬영을 하지 않았고, 특히 헤파린의 경우 과량 투여시 뇌출혈이 우려되므로 미리 혈액검사(aPTT)를 해서 주입량을 조절해야 하는 약임에도 모든 검사를 생략해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 당시 의사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공중보건의였다. 병원측은 의료과실을 인정하고 피해자 가족에게 위자료 지급을 약속한 상태다.

    물론 의사들도 이런 상황이 즐거울 리 없다. 특히 야간 당직을 많이 하는 인턴과 레지던트 1·2년차들은 늘 의료사고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한 응급의학 전문의는 “수련의들은 아침 7시에 출근해 다음날 저녁 7시까지 꼬박 36시간을 근무하고 퇴근했다 다시 다음날 아침 7시에 출근하는데 이처럼 무리한 근무가 의료사고를 부른다”며 “항상 멍한 상태로 있고 수술하다 조는 일도 허다하다”고 했다.

    방치된 환자, 분노하는 가족

    응급실 관련 의료분쟁에서 환자와 환자가족들이 한결같이 분노하는 대목이 ‘방치’다. 의사들은 적절한 치료를 했다고 말하지만 환자들은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방치됐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대구에 사는 배모씨는 3년 전 기관지 천식으로 호흡이 곤란하고 청색증이 나타난 아들 정우(가명, 당시 2세)를 데리고 ○○대학병원 응급실로 갔으나 6시간 가량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방치됐다 결국 뇌손상 장애를 입은 것이 원통하다. 응급실에서 정우의 호흡곤란은 점점 심해졌고 흉부함몰 증상까지 나타나 가족들이 중환자실로 옮겨줄 것을 요구하자 그제야 증상이 심각한 것을 확인한 의료진이 병실을 옮기도록 했다. 하지만 중환자실에서도 산소호흡과 약물투입 등을 보호자에게 맡겼고, 갑자기 아기의 상태가 나빠지자 인공호흡을 위해 기관내 삽관을 해야 한다며 보호자들을 밖으로 나가있도록 했다. 정우의 울음소리가 멈추는 순간 뭔가 큰 일이 났다고 판단한 보호자들이 서둘러 중환자실로 들어갔으나 의료진은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었고 정우는 이미 저산소성 허혈성 뇌손상을 입은 상태였다.

    배씨는 응급실에서 방치된 6시간 동안 정우의 상태가 급속히 나빠졌고, 중환자실로 옮긴 후에도 의료진이 환자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말한다. “인공호흡기를 꽂기 전 쇼크에 대비해 진정제를 투여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의사는 했다고 하지만 진료기록은 없다. ‘안 적을 수도 있다’고 변명을 하는데 모든 진료과정이 너무 허술했다.”

    그 일이 있은 후 정우는 3년 내내 누워 지낸다. 시력이 조금 살아났고 부드러운 음식을 넣어주면 씹어 삼킬 수 있는 정도가 됐지만 어느 정도까지 회복할 수 있을지 모른다. 배씨는 ○○대학병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신헌준 변호사는 “보호자들이 이상 징후를 보고 의료진을 불렀음에도 ‘괜찮다’ ‘검사를 해봐야 한다’ ‘상황을 더 봐야 한다’면서 관찰과 치료를 소홀히 한 경우다. 3년 전 발생한 사건이지만 어린아이의 경우 어떤 장애를 입었는지 당장 알 수가 없기 때문에 발육상태를 지켜보며 몇 년 후 소송을 제기하는 일이 많다”고 설명했다.

    최소 기준에도 미달

    지난 11월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15개 권역응급의료센터 평가결과는 상당한 파문을 일으켰다. 중증 응급환자를 전담해야 할 전국 15개 권역응급의료센터 가운데 10곳이 야간에 응급의학전문의 없이 레지던트와 인턴으로 유지해 왔음이 드러났다. 권역센터 기준인 응급의학 전문의 4명을 확보하고 있는 곳은 7곳에 불과했고, 전문의 1명 이상이 24시간 교대근무가 가능한 곳은 5곳뿐이었다. 더욱이 서울 지역 권역응급의료센터인 서울대학병원이 최하위 등급을 받아 충격을 주었고, 응급의학 전문의를 1명도 확보하지 못한 울산병원은 권역센터 지정을 취소당했다.

    지역응급의료센터 106곳의 평가 결과도 마찬가지여서 응급의학 전문의는 고사하고 응급실 전담 전문의 2명과 레지던트 3년차 이상을 포함한 의사 4명의 기준을 채운 병원이 40여곳에 불과했다. 직접 응급실 현장평가를 한 한국보건산업진흥원 홍두호 책임연구원(보건의료사업단)은 “이번 평가는 인력, 시설, 장비 등 응급실의 인프라를 점검하기 위한 것으로 특히 인력에 가중치를 두었다”면서 “지역센터의 경우 24시간 근무하는 의사의 자격을 레지던트 3년차 이상으로 권역센터(전문의)에 비해 낮추었음에도 이 규정을 준수하지 못하는 곳이 많았다”고 말한다.

    이처럼 응급실에서 전문의 확보에 비상이 걸린 데는 1차적으로 응급의학 전문의 부족에 원인이 있다. 1990년대 삼풍백화점 붕괴 등 대형사고가 잇따르면서 응급의학 전문의의 필요성이 대두됐고 95년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이 공포되어 종합병원 응급의료센터에 반드시 전담전문의를 배치하도록 했다. 96년부터 새로운 전문과목으로 응급의학과 전문의 제도가 시행됐다.

    8년의 역사를 가진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2003년 현재 286명. 이 가운데 은퇴를 했거나 임상을 하지 않는 고령의사 60~70명을 빼면 200명 남짓으로 각 병원의 응급실을 지키기에는 역부족이다. 현재 법정 기준대로 권역응급의료센터에 24시간 응급의학 전문의가 상주하려면 최소 4명 이상이 있어야 한다.

    더욱이 응급실 근무가 3D업종으로 알려지면서 응급의학과는 몇 년째 전공의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중도 포기율도 높아서 당분간 응급의학 전문의 부족 현상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연도별 응급의학 전공의 확보율은 2000년 69.1%, 2001년 64.7%, 2002년 54.8%, 2003년 75.2%로 연속 미달이다. 그나마 응급실에서 필수인력으로 분류되는 흉부외과나 신경외과, 외과 전공의 역시 늘 부족해 타과의 지원조차 기대하기 어렵다.

    2001년 인제대와 아주대가 공동으로 ‘응급의학과 전문의의 근무형태와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교수나 과장급이 아닌 일반 병원 봉직의의 경우 주당 최소 66시간에서 최대 90시간까지 거의 살인적인 근무를 하고 있었다. 이 연구는 “하루 24시간, 365일 응급센터에서 환자를 보아야 하는 응급의학 의사들은 야간당직 근무와 응급환자에 대한 스트레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응급의료를 떠나는 경우가 많다”면서 “더욱이 타과 전문과목 의사들은 전문의 취득 후 10~15년이 지나면 최고의 기술·지식·자본으로 의사 생활의 전성기를 구가하는데 비해 응급의학 의사들은 이 시기 24시간 연장근무와 야간근무로 인한 탈진과 피폐 등 열악한 근무여건으로 조기은퇴를 해야 하는 실정”이라고 보고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매년 응급의학 전문의 가운데 12% 정도가 다른 전문과목으로 전환하고 있다. 과도한 근무부담 외에 응급의학 전문의들을 떠나게 만드는 또 다른 이유가 ‘대우’ 문제다. 성형외과, 피부과, 안과 등 소위 ‘잘 나가는’ 과와 비교했을 때 연봉에서만 4000만~5000만원씩 차이가 나, 응급의학 전문의들의 사기를 꺾고 있다.

    응급의료체계는 크게 병원전 처치단계, 이송단계, 병원진료단계, 그리고 이들을 연결하는 통신체계로 구성된다. 병원진료단계는 지역응급의료기관, 지역응급의료센터, 권역응급의료센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현행 권역 및 지역응급의료센터의 수는 중증응급환자의 수요를 고려할 때 인구 45만명 당 1개꼴로 지나치게 많다(선진국 100만~150만 명당 1개). 많아서 나쁠 게 없다고 볼 수도 있으나 인력, 시설, 장비 등에서 중증응급환자를 진료할 만한 여건을 갖추지 못한 곳이 태반이다. 그 결과 예방가능사망률 50.4%라는 부끄러운 기록을 갖고 있다.

    2명 중 1명은 살 수도 있었다

    예방가능사망률이란 사망자 가운데 적절한 치료를 받았다면 살 수 있는 확률이 얼마나 되느냐를 가리킨다. 다시 말해 살 수 있는 환자가 오진이나 부적절한 치료, 전문의 부재와 진료 지연 등으로 사망하는 경우인데, 50.4%라면 사망 2명 가운데 1명은 살 수도 있었음을 의미한다(선진국의 경우 예방가능사망률 25% 수준).

    1999년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실시한 ‘응급의료기관 평가 및 모니터링체계 구축’을 위한 조사에 따르면 2년 동안 6개 응급의료센터에서 사망한 외상환자 중 50.4%는 예방가능한 사망이었으며, 이들 중 병원에서의 진료오류로 인한 사망이 40.5%, 병원전 단계에서의 오류로 인한 사망이 9.9%에 달했다.

    오류의 종류를 보면 쇼크 치료, 환자감시장치 미비, 구조적 문제로 인한 이송지연, 적절치 못한 수혈, 호흡처치 잘못 등이 있다. 특히 2차 병원(지역응급의료센터)은 3차 병원(권역응급의료센터)에 비해 예방가능사망률이 2배나 되는 등 응급진료에 많은 문제점이 있음이 드러났다. 또 이 보고서는 예방가능사망률이 눈에 띄게 낮은 한 2차 응급센터의 경우 개설된 지 얼마 안돼 야간에도 전공의가 아닌 전문의가 직접 환자를 신속하게 판단·처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즉 병원내 외상치료체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전문적인 치료를 신속히 시행할 수 있는 ‘외상팀’의 운영임을 입증한다.

    그러나 현실적인 어려움도 있다. 응급의료 지침상 쇼크환자에게는 30분 이내에 수혈을 시작하도록 되어 있으나 대부분 내원 후 1시간, 길게는 2시간이 지나야 수혈이 이루어진다. 그밖에도 전문의 부재로 연락이 늦은 경우, 진단을 위한 검사가 적시에 시행되지 않아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 여기에 병원간 이송(전원)시 문제 등 사망률이 높은 데는 복합적인 원인들이 작용한다.

    보건복지부는 권역 및 지역 응급의료센터에 이어 지역 응급의료기관에 대한 평가가 끝나는 대로 문제점을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2004년 상반기에 ‘응급의료체계 5개년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내년부터는 응급실의 인력·장비·시설 등 인프라 평가 외에 응급의료의 신속성, 소생률(심정지 환자 생존 퇴원율), 실패율 등 질적 평가를 함께 시행해 2007년까지 예방가능사망률을 20%대로 낮추겠다는 목표도 갖고 있다. 하지만 그때까지 의료소비자인 국민들은 “살 수도 있었다”는 원통함을 감수해야 하고, 응급실의 의료진은 소송이라는 살얼음판을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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