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월호

21세기 한국, 19세기 감옥

466일간 온몸 결박, 벌레 우글대는 0.5평 징벌방의 절규

  • 글: 이지은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miley@donga.com

    입력2003-12-26 16:36: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한 나라의 인권 수준을 알려면 교도소를 가보라고 했다.
    • 그렇다면 ‘국민의 정부’를 거쳐 ‘참여정부’에 이른 대한민국 교도소의 인권 상황은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참담한 형편이다. 계구에 묶여 생리현상조차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맹장염에 걸린 재소자가 응급처치를 못 받아 죽어나가는 게 우리 교도소의 현주소다. 그늘 속 인권 사각지대에서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21세기 한국, 19세기 감옥
    “오래도록 씻지 못해 온몸이 가렵지만 긁을 수가 없다. 너무 가려워 벽 모서리에 몸을 비벼댔다. 두 팔은 하도 오래 묶여 있어 이젠 아무런 느낌이 없다. 마비가 된 것 같다. 용변을 볼 때마다 고역이다. 특히 대변을 보고 나서 뒤처리하기가 너무 힘들다. 며칠 전에는 발뒤꿈치에 휴지를 올려놓고 꿇어앉아 뒤처리를 시도했다. 제대로 닦였을 리가 없다. 몸에서 이상한 냄새가 풍겨 역하다. 내가 과연 인간이기는 한지 몸서리가 쳐진다. 내 몸을 옭아맨 차디찬 물체들에서 언제쯤에나 벗어날 수 있을까….”

    목포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정모(41)씨는 무려 466일 동안 계구(戒具)에 묶여 지냈다. 계구는 교도소 내의 안전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사용되는 도구로 포승, 수갑, 사슬, 안면보호구 등 네 종류가 있다. 정씨는 금속수갑 2개와 허리에 손목을 고정시키는 가죽수갑에 묶여 있었다. 그는 묶여 있는 동안 손과 팔을 전혀 움직이지 못했다. 식사할 때는 밥그릇을 바닥에 놓고 개처럼 먹어야 했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변을 봐야 했다. 주 1회 허용되는 목욕시간에 한해 1시간 정도 계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짐승보다 못한 삶’. 그가 466일 동안 되뇌던 말이다.

    “고문이나 마찬가지”

    1999년 구속돼 광주교도소에서 복역하던 정씨는 2000년 2월 법정에서 재판을 받던 중 교도관을 흉기로 찌르고 도망쳤다. 교도관은 한동안 생명이 위독했을 만큼 목 부분을 심하게 다쳤다. 한 달 뒤 체포된 그는 광주교도소에 재수감돼 바로 독방에 수용됐다. 그는 2000년 3월7일부터 2001년 6월18일까지 광주교도소에서는 물론 목포교도소로 이감된 후에도 죽 계구에 묶여 지냈다. 특히 처음 계구에 묶인 뒤 26일 동안은 단 한번도 계구에서 풀려나지 못했고 한 차례도 목욕을 하지 못했다. 오랜 기간 팔이 고정되다 보니 어깨 관절은 완전히 망가졌고, 허리 뒤에 달린 고리 때문에 모로 누워 허리를 구부리고 자다 보니 허리도 변형됐다.

    “게다가 정씨는 척추디스크를 앓고 있었다. 광주교도소측도 이를 인정했다. 이런 상태에서 모로 누워 구부린 자세로 자면 통증이 무척 심하다. 이는 고문행위나 마찬가지다.”



    정씨의 변호를 맡았던 법무법인 남산 관계자의 주장이다.

    행형법 제14조에 따르면 교도관은 재소자의 도주·폭행·소요·자살의 방지, 기타 교도소의 안전과 질서유지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 계구를 사용할 수 있다. 광주교도소 관계자는 “정씨는 교도소에서 제작한 흉기를 휘둘러 도주했던 자다. 재수감된 후에도 심한 심적 갈등을 보여 자살, 자해 등을 저지를 가능성이 농후했다. 여건만 되면 또 흉기를 제작해 도주할 것으로 우려됐다. 따라서 재소자 보호와 교도소 질서유지를 위해 계구를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목포교도소측의 주장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인권운동사랑방의 유해정 간사는 “계구를 사용한 것은 안전과 질서유지를 위해서라기보다는 교도관을 상해한 데 대한 보복행위임이 명백하다”고 반박했다.

    “정씨가 수감된 독방은 철문 3개를 거쳐야 갈 수 있다. 그는 요시찰 수용수로 분류돼 가로 120cm, 세로140cm(독거실 개조 후에는 200×140cm)의 독방에 수용돼 철저한 감시를 받았다. 그런 그에게 도주나 자해의 우려가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보복과 징벌의 수단으로 장기간 계구를 사용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현재 정씨는 “계구 사용은 헌법에 명시된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평등권, 신체의 자유, 프라이버시권을 침해한 행위”라고 주장하며 헌법소원을 냈고, 국가를 상대로 45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온 몸에 채워진 10개의 자물쇠

    2002년 6월 출소한 박모(34)씨는 이른바 ‘문제수’였다. 2001년에는 여러 차례 징벌을 받아 8개월 동안 독거실인 징벌방에 수용되기도 했다. 동료 재소자를 폭행해 금치 2개월을 받은 것이 첫 징벌이었다. 금치를 받으면 징벌방에 독거 수감되고 서신, 접견, 전화통화 등 외부와의 소통이 완전히 차단되는 것은 물론 독서, 운동, 작업, 자비부담 물품사용 등 일상생활도 금지된다(행형법 시행령 제145조 제2항). 그후로는 징벌방과 일반방을 오가는 생활을 계속했다. 이유는 폭행과 지시불이행.

    “욱하는 성질 때문에 누군가가 나를 욕하면 주먹부터 올라갔다. 징벌방에 갇히면 늘 후회하면서 앞으론 얌전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지만 또 사고를 치곤 했다. 여러 번 징벌방을 드나들자 교도관들 사이에서 ‘요시찰’로 분류돼 불이익을 받았다. 아무것도 아닌 일로 꼬투리를 잡혔다. 초기의 징벌사유는 주로 폭행이었지만 그 후로는 지시불이행이 대부분이었다.”

    박씨는 징벌방의 구조 자체가 비인간적이라고 주장했다. 0.5평도 채 안돼 누우면 다리를 겨우 뻗을 수 있는 크기였고, 창문에는 아크릴판을 붙여놓아 햇볕도 제대로 쐴 수 없었다고 한다. 방에 설치된 CCTV는 하루종일 그를 감시했고 위생상태가 좋지 않아 벌레들이 기어다녔다. 그래도 징벌방은 참을 만했다. 2001년 9월11일 청송 제2교도소에서 8일간 수갑과 사슬을 차기 전까지는.

    그는 ‘소지(교도관을 보조하는 재소자를 뜻하는 은어)’에게 면도기를 갖다달라고 했다가 큰 소리로 옥신각신 다투게 됐다. 담당 교도관이 오더니 소란을 피운 그를 조사실로 끌고 갔다. 손에는 수갑을 채웠고 온몸을 사슬로 묶어 징벌방에 넣어버렸다.

    “팔에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수갑을 꽉 채워 무척 아팠다. 온몸에 채워진 자물쇠을 세어보니 10개나 됐다. 억울하기도 하고 아프기도 해서 소리를 질렀지만 소용이 없었다. 사슬을 차고 생활하면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대변을 보는 일이었다. 제대로 앉기도 힘들었고, 변을 보고 나선 칫솔대에 휴지를 말아 간신히 뒤처리를 했다. 그런데 징벌방 화장실엔 차단시설이 없어 그러는 내 모습이 바깥에서 다 보였다. 그래서 대변을 자주 보지 않으려 밥을 거의 먹지 않았다.”

    그는 자신에게 징벌을 내리는 과정에 다리와 허리를 구타당하는 등 가혹행위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교도소측은 징벌 과정에 수갑과 사슬을 사용한 것은 인정했으나 폭행한 사실은 없다고 밝혔다.

    ‘합법적인 인권탄압’ 만연

    교도소에서 구타 등의 가혹행위는 거의 사라져가는 추세다. 취재 중 만난 출소자들 중 상당수가 1990년대 후반 이후에는 교도관들에게 가혹행위나 구타를 당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납득하지 못할 이유로 계구를 사용하거나 사소한 일에도 징벌을 가하는 등 ‘합법적인 인권탄압’은 계속되고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2003년 6월 현재 전국 45개 교정시설에서 계구를 착용하고 있는 재소자는 95명. 착용한 계구의 종류별로는 금속수갑이 87명, 가죽수갑이 5명, 포승이 1명, 사슬이 2명이다. 계구 사용의 사유는 95명 중 89명이 ‘자살 및 자해 우려’였다. 법무부 교정과 김안식 교정관은 “중형을 받은 재소자들은 자살이나 자해의 충동을 강하게 느끼기 때문에 재소자를 보호하려면 계구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에 대해 인권운동사랑방 유해정 간사는 “자살이나 자해가 우려된다는 판단을 너무 쉽게 내린다. 재소자가 그저 ‘죽고 싶다’고 한마디만 해도 자살 우려가 있다고 판단한다. 더욱이 재소자가 자살을 시도하는 등 심리적 불안증세를 보였다 해도 계구 사용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정신과 진료와 상담 등을 통해 마음을 안정시키는 게 바람직하다”고 반박했다.

    인권단체들은 계구뿐 아니라 징벌제도 자체에 인권침해의 소지가 적지 않다고 주장한다. 행형법 제46조에 따르면 ‘형벌규정에 저촉되는 행위, 자해행위, 근무를 거부하거나 태만히 하는 행위와 기타 법무부 장관이 정하는 규율(규칙 제3조)을 위반하는 행위’를 한 경우 징벌할 수 있다. 그런데 징벌대상 행위가 지나치게 포괄적인 데다 자의적인 해석이 가능해 징벌 남용을 초래하고 있다는 것.

    예를 들면 규칙 제3조에 ‘큰 소리로 떠들거나 노래를 하는 등 소란을 피우면 안 된다’는 규율이 나오는데, ‘큰 소리나 소란’의 기준이 모호해 교도관이 자의로 판단할 여지가 있다. 징벌을 하려면 징벌위원회의 의결을 거치야 하지만 요식행위에 불과하다고 한다. 징벌에는 경고, 신문 및 도서 열람 제한, 작업 상여금 삭감 등도 있지만, 실제로는 일정 기간 독거실인 징벌방에 수용하는 금치가 대다수를 이룬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이상희 변호사는 “교도관들이 ‘이제 유일하게 남은 통제 수단은 징벌뿐’이라고 공공연히 말할 정도로 징벌이 남용되고 있다”고 우려한다.

    “금치 처분을 받으면 비좁고 환기도 안 되는 좁은 징벌방에서 운동도 하지 못하고 하루종일 고통스런 자세로 앉아 있어야 한다. 이 경우 관절, 근골격계 질병에 걸릴 수 있고 공간감각이 없어져 정신이상 증세가 나타날 수도 있다. 이런 상태로 2개월을 지낸다면(금치 최장기간이 2개월) 육체적, 정신적으로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것이다. 또한 재소자의 가장 큰 희망은 가석방인데, 금치 처분을 받으면 행형성적이 나빠져 가석방 가능성이 그만큼 줄어든다. 그래서 재소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징벌이다.”

    21세기 한국, 19세기 감옥

    2003년 12월9일 국가인권위원회가 주최한 ‘구금시설 수용자 건강권 보장방안 마련을 위한 청문회’에서 재소자의 실태를 역설하고 있는 출소자 조석영씨(왼쪽에서 두 번째).

    국가인권위원회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에 의뢰해 2002년 8월부터 9개월간 실시한 ‘구금시설의 의료실태 조사 및 의료권 보장을 위한 연구’ 보고서를 보면 금치 처분을 받은 응답자 중 86%가 금치 종료 후 건강상태가 악화됐다고 답했다. 2002년 5월 청송 제2교도소에선 정신이상 증세가 있던 재소자가 금치 2월의 징벌을 연달아 여섯 차례나 선고받고 10개월도 넘게 징벌방에 갇혀 지내다 자살했다.

    구미간첩단 사건으로 1985년부터 1998년까지 복역한 김성만씨는 “징벌방에서는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다”고 말한다.

    “징벌을 받으면 외부와의 소통경로가 완전히 차단된다. 그래서 재소자들은 극도로 자신을 학대하면서 억울함을 호소한다. 그래도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숟가락이나 젓가락 등을 삼키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불만을 표출한다. 한번은 징벌방에 다녀온 재소자가 배가 아프다고 해서 X레이 촬영한 필름을 봤더니 뱃 속에 수도꼭지가 들어 있었다. 심성이 얼마나 황폐해졌으면 그런 일을 저질렀겠는가.”

    징벌이 재소자의 인권뿐 아니라 생명권까지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출소자 박씨 역시 오랜 기간 징벌방에 감금된 탓에 척추와 뼈, 근육에 문제가 생겨 출소 후 지금껏 이틀에 한 번씩 물리치료를 받아 왔다. 최근에는 위(胃)에서도 이상이 발견돼 입원했다. 수감되기 전부터 위궤양을 앓았다는 그는 교도소에 있는 동안 위출혈 증세를 자주 겪었다. 하지만 증상이 심할 때마다 겔포스 같은 위장약을 먹는 게 고작이었다. 외부 진료는 꿈도 꾸지 못했다. 출소 후 위와 장 때문에 병원 응급실을 들락거린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래도 박씨는 죽지는 않았으니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

    2002년 청송 제2감호소에 수감중이던 이모씨는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 지병인 폐기관지 협착증이 심해져 치료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숨을 제대로 못 쉬게 되자 폐질환을 의심했지만, 담당교도관과 의무과장은 감기로 일축했다. 증상이 심각해지자 어렵사리 외부 병원에서 폐기관지 협착증 진단을 받았다. 이씨는 형집행정지가 내려지자 자기 돈 2000만원을 들여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경과가 좋았다. 그러자 다시 감호소로 들어가야 했다. 행형법에 따라 형집행정지 사유가 상실되면 형을 재집행해야 하기 때문.

    2003년 11월에 출소한 이씨는 “죽기 직전에야 내보내더니 겨우 내 돈 들여 살아나니까 다시 잡아들이더라”면서 “국가가 재소자들의 건강에 대해 얼마나 무관심한지 절감했다”고 털어놨다.

    2001년 자궁암으로 사망한 재소자 김모씨의 경우 교도소에서 치료를 해줬거나 조금만 일찍 형집행을 정지해 외부 진료를 받게 했으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김씨는 청주교도소에서 수감중이던 2000년 2월 자궁암 2기 진단을 받았다. 당장 수술을 받아야 했지만, 교도소측에서는 치료비가 없다는 이유로 수술을 기피했다. 그후 이감된 대전교도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그해 7월 말기 암으로 병세가 악화된 상황에서 김씨는 형집행정지로 석방됐고, 청주 꽃마을에 맡겨져 생명을 연장하다가 사망했다.

    이처럼 형집행정지는 죽음이 임박했을 정도로 병세가 심각한 상황에서나 이뤄진다. 교정시설에서 공중보건의로 재직한 적이 있는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소속 한 의사는 “형집행정지는 단지 교도소측이 재소자 사망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죽기 직전에 풀어주는 조치일 따름”이라고 했다.

    하지만 법무부 교정국 김용석 관리과장은 “의무과장이 중증 환자라고 진단하면 즉각 상부에 건의해서 형집행정지를 시킨다. 2003년 12월 현재 500여명이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 교도소에서 재소자가 사망하면 안 된다는 원칙을 세워놓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상희 변호사는 “형집행정지만이 능사가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즉 재소자들이 국가 시설인 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한 이들의 건강을 관리해주는 것도 국가의 책임이라는 것. 하지만 법무부는 의료인력 및 예산 부족 등을 들어 난감해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구금시설의 의료실태조사 및 의료권 보장을 위한 연구’ 보고서는 재소자들의 의료환경이 얼마나 열악한지 여실하게 보여준다. 보고서에 따르면 2002년 7월 말 현재 구금시설에 근무하는 의사 1인당 재소자는 평균 1068.5명에 달한다. 시설 근무의사의 65%는 1년 단위로 교체되는 공중보건의다. 의사 한 사람이 하루 평균 239명을 진료하고 324명에게 투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약사가 있는 구치소는 3곳에 불과했으며, 간호사는 총 66명으로 기관에 따라 1∼3명이 배치됐지만 없는 곳도 있었다. 의료인력이 부족하다보니 교도관들이 주사를 놓는 등 무자격자의 의료행위도 빈번했다. 의료장비 수준도 극히 열악해 요즘은 1차 의료기관들도 대부분 보유하고 있는 X레이 촬영기를 갖춘 구금시설이 30%에 불과했다.

    안양교도소 김현철 의무과장은 “열악한 여건 탓에 의사들이 오지 않는다. 의무과 정원이 65명인데, 현재 인원은 54명에 불과하다. 그 중에서도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비전임 의사가 21명이나 된다”고 밝혔다.

    더구나 의무과장이 퇴근하고 없는 야간이나 휴일의 경우 교도소는 완전한 의료공백 상태에 놓인다. 의무과에서 근무하는 한 교도관은 “늦은 밤이나 휴일에 의사를 불러내기가 미안해 대충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고 털어놓았다.

    천주교인권위원회에서 활동하는 김덕진씨는 “교도소내 의료사고의 상당수가 의료공백 상태인 야간, 토요일 오후, 일요일 및 공휴일에 발생한다. 2003년 10월4일 청송 제1보호감호소에서 맹장염으로 사망한 이모씨가 바로 그 같은 사례”라며 사연을 들려줬다.

    사망 당시 34세였던 이씨는 10월2일 오후부터 복통을 호소했다. 1차 진료를 마친 공중보건의는 진통제와 소화제를 투약했지만 이씨의 복통을 더욱 심해졌고 짙은 갈색 액체를 토해냈다. 하지만 다음날인 10월3일이 개천절 휴일이었기 때문에 그를 돌봐줄 의료인력은 한 사람도 없었다. 10월4일 오전, 증상이 심각하다고 파악한 의무과장은 곧장 이씨를 외부 병원으로 옮겼지만 그는 병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사망하고 말았다. 원인은 이른바 맹장염이라고 불리는 충수돌기염에 의한 복막염. 처음 복통을 호소할 때 맹장염 수술만 받았어도 생명을 건질 수 있었다.

    구금시설의 의료예산 또한 턱없이 부족하다. 2002년 전국의 구금시설 의료예산은 36억6995만원. 전국의 재소자가 약 7만명이니 1인당 의료비는 5만9000원 꼴이다. 반면 2000년의 국민 1인당 의료비는 107만원이었다.

    행형법 제26조는 질병에 걸린 재소자의 치료를 교도소장의 의무사항으로 명시하고 있지만, 제28조에서는 허가사항으로 재소자에게 자비 부담하도록 돼 있다. 그러니 의료예산이 태부족인 교도소측으로선 재소자에게 자비 부담을 종용하게 마련. 하지만 재소자들은 급여가 없어 건강보험 혜택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에 의료비 부담이 크다.

    쇠사슬에 묶인 채 수술

    2003년 8월 청송 제1감호소에서 출소한 조석영씨에 따르면 재소자가 진료비를 부담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외부 진료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우선 공중보건의를 만나 1차 진료를 받고 나서야 의무과장의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의무과장이 외부 진료가 필요하다고 인정해도 재소자가 진료비를 부담할 수 있는지를 확인한 후 보고문을 작성해 소장에게 올린다. 나는 치아가 썩어 치과 진료를 받아야 했는데, 외부 병원에 나가기까지 두 달 가까이 걸렸다. 결국 그 사이에 치아가 저절로 빠져버렸다.”

    조씨는 “재소자는 외부 진료 과정에서도 짐승처럼 다뤄진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수갑을 두 개씩 채우고 포승으로 상체를 묶어 병원으로 호송하며, 진료를 받을 때도 풀어주지 않는다고 한다. 도주를 막기 위해서라지만 흉악범이 아니라면 지나친 처사라는 것.

    “외부 병원으로 데려갈 때는 교도관 2∼3명이 따라붙기 때문에 재소자가 도주할 우려는 거의 없다. 게다가 몸도 성치 않은 환자 아닌가. 나는 두 시간이 넘게 잇몸 소파수술을 받았는데, 수술받는 동안에도 몸을 결박한 계구를 하나도 풀어주지 않아 너무나 불편하고 수치스러웠다. 입원하면 쇠사슬로 발목을 침상에 묶어두기도 한다. 가족이 마련해준 돈으로 치료를 받으면서 이런 짐승 같은 취급을 받아야 하는가.”

    간질이나 고혈압처럼 심각한 질환도 ‘당장 죽을 병’은 아니기에 형집행정지를 받지 못하는데, 이 경우 재소자에게 치료비가 없어 외부 진료를 받지 못하면 위험한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21세기 한국, 19세기 감옥

    교도소에서 사용되는 계구는 안면보호구(1), 금속 수갑(2), 가죽수갑(3), 사슬(4) 등이 있다. 계구는 교도소 내 인권탄압의 대표적인 도구로 지목된다.

    “재소자 중에 하루에도 여러 차례 경련을 일으키고 정신을 잃는 간질 환자가 있었는데, 의무과에서는 매일 똑같은 약만 줬다. 이럴 경우 약을 바꾸거나 수술을 해야 하는데, 그냥 방치했다. 재소자는 좁은 방에서 경련이 일어날 때마다 벽에 머리를 부딪혀 곳곳에 큰 혹이 나고 이마에는 피멍이 들어 있었다.”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우석균 정책국장(가정의학과 전문의)의 이야기다.

    이상희 변호사는 “자유형의 집행이 단순히 가두는 것 이상으로 건강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건강한 사람도 교도소에 들어가면 질병을 얻을 만큼 생활여건이 열악하다는 게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우선 과밀수용이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2002년에 나온 서울지방변호사회의 구금시설 실태보고서에 따르면 서울구치소의 경우 3.45평에 평균 9명을 수용하고 있다. 한 방에 14∼15명을 수용한 경우도 있다. 안양교도소에는 1평당 2명 정도가 구금되어 있으나, 7.4평 공간에 17∼18명이 수용되기도 했다. 한 사람이 차지하는 면적이 0.5평도 안 된다는 얘기다.

    독일 행형법은 재소자 1인당 최소한 3평은 보장돼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독일의 한 교도소에서 2.7평에 2명을 함께 수용했다가 법원으로부터 인권을 침해했다는 판결을 받은 것은 그야말로 ‘남의 나라 이야기’다.

    교도소내 병상에는 전기 패널이 깔려 있어 겨울철에 다소 훈기라도 있지만, 일반 거실은 대부분 마루바닥이라 난방이 제공되지 않는다. 운동시간은 하루 30분 정도에 불과하고 개인 위생은 형편없으며, 음식에 대한 재소자들의 만족도도 매우 낮다(구금시설 의료실태조사 및 의료권보장을 위한 연구).

    재소자 권리 억누르는 행형법령

    행형학자들은 행형법부터 재소자에 대한 인권침해 요소가 많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외대 이호중 교수(법학)의 말이다.

    “행형법 제33조 3항에는 ‘수용자는 소장의 허가를 받아 집필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러나 집필은 기본적인 권리다. 물론 특별한 사유가 있을 때 교도소에서 집필을 제한할 수는 있지만 처음부터 허가를 받아야 할 사안이 아닌 것이다. 이처럼 행형법 자체가 재소자의 권리를 중심에 두고 있지 않다.”

    이 교수는 행형법이 시행령, 규칙, 예규, 지침 등 하위법에 실무를 너무 많이 위임하고 있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행형법 제18조 2항에는 ‘소장은 재소자의 서신을 검열할 수 있다’고 되어 있는 데 비해 시행령 제62조에는 ‘소장은 재소자의 서신을 검열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법에서 시행령으로 내려오면서 제한의 정도가 심해진 것이다. 또한 행형법에는 발송이 불허된 서신에 대해 아무런 조항이 없는데 시행령 제62조에서는 폐기하도록 되어 있다. 이처럼 하위 법령으로 내려갈수록 재소자의 권리를 광범위하게 제한하고 있다.”

    특히 재소자에 대한 실질적인 관리내용을 명시한 교정규칙 및 예규는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다. 2002년 7월 서울지방변호사회는 법무부에 교정규칙과 예규 등의 정보 공개를 청구했지만, 법무부는 공개를 거부했다. 이유는 ‘내용이 공개될 경우 직무 수행을 현저히 곤란하게 한다’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 규정을 다수 포함하고 있어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에 서울지방변호사회는 법무부의 정보공개거부처분에 대해 취소 청구를 제기했다.

    법무부와 산하 교도소들의 폐쇄적인 태도는 여러 곳에서 드러난다. 재소자 사망사건 등 교도소 관련 사고가 터질 때마다 해당 교도소가 관련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게 그런 예다.

    2003년 5월1일 안동교도소 재소자 서모씨(당시 35세)가 징벌방에서 내의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서씨는 사망하기 하루 전날 교도관과 다툰 후 자해행위를 하고 소란을 피워 ‘금치 2개월’ 처분을 받았다.

    그런데 유가족들은 서씨가 자살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형 서영신씨는 “동생이 평소 자식과 가족이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게다가 1년만 있으면 출소하는데 왜 자살을 하겠냐”며 “교도소측은 당시 징벌방에 설치돼 있던 CCTV 녹화내용이나 사건관련 수사기록, 시신 사진 등을 일절 공개하지 않았다. 떳떳하다면 왜 공개하지 않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씨는 안동교도소를 상대로 사건 관련 정보를 공개하라는 소송을 제기했지만, 교도소측은 앞서 법무부가 교정규칙 및 예규를 공개하지 않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내용이 공개될 경우 직무 수행을 현저히 곤란하게 한다’ 등의 이유로 정보공개를 거부했다. 서씨 역시 정보공개거부처분 취소 청구를 했다.

    숨진 서씨는 ‘교도관이 편지를 늦게 전달해준다’는 등의 내용으로 그 동안 국가인권위원회에 다섯 차례나 진정을 했다. 죽기 이틀 전에도 국가인권위 조사관들을 면담했다. 서영신씨는 동생이 이런 행동 때문에 교도소로부터 불이익을 당했을 것이고, 이것이 동생의 죽음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재소자가 집필한 문서 중 검열을 거치지 않고 외부로 나갈 수 있는 것은 인권위 진정밖에 없다. 하지만 진정을 하려면 진정서 작성을 위한 집필 허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교도소에서는 누가 어떤 내용으로 진정을 하는지 대략 파악할 수 있다.

    인권위 공보실 육성철 사무관은 “초반에는 인권위에 진정했다는 이유로 인해 재소자들이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사라져 재소자들이 자유롭게 인권위 진정을 하고 있다. 2003년 현재 인권위에 접수된 구금시설 관련 진정은 2554건인데, 이는 인권침해 관련 진정 중 47.1%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서씨는 “진정을 했다는 이유로 교도소측으로부터 협박을 받는 등 불이익을 당한다고 주장하는 재소자가 한두 명이 아니다”고 말한다. 또 어렵게 진정을 해도 인권위로부터 제대로 조사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동생이 남긴 서신에는 ‘아무리 진정 신청을 해도 인권위로부터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되어 있다는 것. 인권위에서 구금시설을 담당하는 조사관은 11명. 진정 건수를 감안하면 인력이 크게 모자란다. 출소자 조석영씨는 이렇게 말한다.

    “진정을 하고 6개월은 기다려야 조사관들이 온다. 억울하게 폭행을 당해서 진정을 했다고 치자. 6개월이 지나도록 맞은 흔적이 남아 있겠는가. 그러니 조사관들이 내려와도 주마간산 격으로 조사한 후 별일 없었다는 식으로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면담도 편안한 분위기가 아니라 마치 취조를 받는 듯한 상황에서 이뤄진다.”

    가죽수갑 폐지, 금치기간 단축

    이렇듯 재소자의 인권은 여전히 사각지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희망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 듯하다. 법무부가 계구 및 징벌에 대한 법 개정을 담당하는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해 개정법안을 마련하고 있기 때문. 태스크포스 팀장을 맡은 법무부 이병래 정책보좌관은 “우선 교정규칙에서 인권침해가 심각한 사안부터 삭제하거나 수정할 계획이며, 2004년에는 행형법과 시행령에 대해서도 전반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이 마련한 개정안 초안에 따르면 가장 큰 인권침해 논란을 일으켰던 가죽수갑이 폐지되고, 사슬 사용도 최대한 억제될 것으로 보인다. 계구의 사용요건을 엄격히 하고, 계구를 착용한 재소자를 의무관이 하루 한 번 관찰하도록 함으로써 부당하게 장기간 착용시키는 일을 없게 했다.

    또한 계구를 착용시켰더라도 목욕이나 식사를 할 때는 반드시 풀어주도록 했다. 용변을 볼 경우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용변을 볼 때마다 계구를 풀어주면 재소자를 통제하기 어려운 데다, 특히 한밤중에는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일선 교도관들의 우려 때문이다. 하지만 한 교도소에 계구를 사용하는 재소자가 1∼2명에 불과하기 때문에 별 무리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징벌의 경우 최장 금치기간을 2개월에서 1개월로 줄이고, 연속해서 금치를 내리는 일은 금했다. 아울러 금치 중에도 접견과 서신 집필 등이 가능하게 했는데, 이는 징벌을 받은 재소자의 권리 구제 측면에서도 큰 의미를 지닌다. 현행 법률하에서는 자신에게 주어진 징벌이 부당하다고 여겨도 금치중 접견이나 서신 집필을 할 수 없어 외부에 억울함을 호소할 방법이 없다.

    법무부는 2003년 12월23일 마련한 개정안 초안을 바탕으로 각계 전문가들의 토론회를 거친 후 2004년 1월 중 개정할 계획이다.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로 재직 중인 박노자 교수는 저서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에서 북유럽의 ‘환상적’인 교도소를 묘사한 바 있다. 북유럽 감옥의 기본 주거 단위는 큰 거실과 그에 딸린 개인용 독방이다. 거실에는 텔레비전과 식탁, 냉장고 등이 있고 독방에는 침대와 책상, 화장실이 있다. 재소자의 허락 없이는 교도관도 개인 독방에 들어갈 수 없다. 교도관들도 절반 이상이 여성이고 대부분 심리학, 법학, 사회복지학을 전공해 재소자가 사회 적응 능력을 기르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 1년에 18일은 집에 돌아가 보낼 수 있다.

    북유럽 감옥의 목표는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반사회적 행위를 저지를 위험이 있는 사람들을 단순 격리하는 데 있지 않고, 그들에게 사회적응 능력을 갖춰줌으로써 건강한 사회인으로 돌려보내는 데 있다.

    그들도 인간이다

    정말 먼 나라만의 이야기일까. 가까운 일본을 살펴보자. 2003년 11월19일 일본 법무성은 형무소와 구치소 운영실태를 시민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체크하는 ‘시민감시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형무소와 구치소가 있는 지역에 ‘시민시찰위원회’를 설치하고 지역에서 신망이 높은 시민, 변호사, 의사 등을 위원으로 위촉할 예정이다. 시민시찰위원회는 언제든지 형무소와 구치소를 시찰할 수 있고 재소자들과 면회해 불만을 들을 수 있다. 이 같은 제도는 이미 영국, 프랑스, 독일 등도 시행하고 있으며, 일본은 2004년부터 정식으로 시행한다.

    한국에는 아직 공식적으로 교도소 운영을 감시하는 민간단체가 없다. 인권운동사랑방 유해정 간사는 “그간 인권단체들은 국가나 재소자가 아니라 제3자인 일반 시민들로 구성된 ‘3자위원회’를 만들어 교도소를 감시하도록 해야한다고 여러차례 제안했지만, 법무부에서는 고려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한 교도관은 법무부 교정국 홈페이지에 “재소자의 인권을 따지기 전에 그 재소자에게 피해를 당한 사람들의 인권을 먼저 생각하라”는 글을 올렸다. 하지만 재소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게 피해자의 인권을 지켜주는 일일까. 재소자들은 자유를 박탈당하면서 자신의 죄값을 치르고 있다. 그들에게도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최소한의 권리가 있다. ‘죄인에게 무슨 인권이 있냐’는 의식이 교도관은 물론 일반 시민, 심지어 일부 재소자들에게까지 뿌리 박혀 있다. 희대의 탈옥수 신창원의 절규가 귓가를 맴돈다.

    “교도소에서 인간다운 대접을 받았다면 전혀 다른 인생을 살 수 있었을 것이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