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월호

사교육비 폐해 근절을 위한 제언

평준화정책 유지하되 학교 선택권은 학생에게

  • 글: 윤종건 한국외국어대 교수·교육학 younjg@kornet.net

    입력2003-12-26 18: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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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교육비를 없애려면 공교육의 질을 높이고 대학입시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다 아는 처방인데 왜 효과가 없는가. 지금까지 내놓은 교육정책들이 본질을 외면하고 변죽만 울렸기 때문이다. 고교 의무교육을 전면 실시하고 평준화는 유지하되 공립학교, 준공립형 사립학교, 완전자립형 사립학교 체제로 바꾸어야 한다
    사교육비 폐해 근절을 위한 제언

    학원 전단지를 살피는 학생들. 맞춤식 프로그램으로 고객만족을 추구하는 학원과 경쟁하기에 학교의 현실은 너무 열악하다.

    정부가 사교육비 경감방안 대책을 내놓고 서둘러 공청회를 열고 있으나 반응은 시큰둥하다. 공교육이 부실하니 사교육으로 몰리는 것은 당연한 이치. 그런데 공교육을 내실화하는 처방은 없고 수능성적을 등급화하고, 특수목적고만 증설하겠다니 실효성도 없고 반발이 클 수밖에 없다.

    ‘무식한’ 처방으로 사교육비를 줄일 가장 확실한 길이 있다. 전두환 정권식으로 무허가 과외를 전면 금지하고 학원과외도 철저히 규제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학평준화정책을 실시한다. 속칭 일류대학은 대학원대학으로 만들고 나머지는 모두 평준화하면 된다. 특히 국공립대학은 모두 서울대학의 분교형태로 운영한다.

    이 정책을 보다 확실하게, 단시일 내에 시행하려면 교원정년단축정책을 과감히 추진했던 사람을 다시 교육부총리로 임명하면 될 것이다. 물론 당시 교육정책 추진방식이 옳았다는 뜻은 아니다.

    그런데 현 정부가 내놓은 방안이란 것이 중구난방인 데다 지나치게 여론을 의식해 조령모개식, 땜질식으로 떠벌이고 있다. 한결같이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 듯하여 답답할 뿐이다. 뻔한 길을 왜 빙 둘러 가려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사교육비를 없애는 근본적인 대책은 사교육이 필요 없는 교육정책을 수립하여 추진하는 일이다. 그 정책이란 바로 두 가지, 공교육의 질을 높이고 대학입시제도를 개선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공교육기관의 여건이 개선되지 않고 현재와 같은 대학입시제도가 존속하는 한 과외는 근절되지 않으며 사교육비 감소도 기대하기 어렵다. 혹자는 다 아는 처방이고 그동안 여러 가지로 시도해보았지만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는데 새삼스레 또 무슨 말장난이냐고 힐난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정책들이 실패한 것은 본질을 외면한 채 변죽만 울리고 개선하는 시늉만 했기 때문이다.

    학원보다 더 좋은 학교교육이 보장된다면 아무도 자녀를 학원에 보내거나 과외를 시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학교가 제 구실을 못하는데 거기에 자녀를 보내고 쳐다만 보고 있을 학부모는 없다. 그러기에는 맞춤식 프로그램으로 고객만족을 추구하는 학원과외의 유혹이 너무 크다.

    공교육의 질을 높이려면 학교의 시설과 환경을 학원 수준으로 높이고, 학급당 학생수를 대폭 줄이며, 교사의 전문적 자질을 강화해야 한다. 우수한 교원들이 학원 강사처럼 잡무나 승진유혹에 시달리지 않고 수업연구만 하면서 10명 이내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육한다면 학교가 학원보다 못 가르칠 까닭이 없다. 결국 돈 문제다. 학급당 학생수 1명을 줄이는 데도 엄청남 돈이 들고, 교사 1인당 학생수 1명을 줄이는 데도 엄청난 돈이 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기간에 공교육의 질을 높이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대책이 없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고 본다.

    고교 의무교육 실현부터

    첫째, 고등학교 교육을 의무교육화 해야 한다. 그러면 고교평준화정책의 명분도 산다. 다만 현실적으로 완전무상 의무교육은 어렵다. 헌법에 의무교육은 무상으로 한다고 규정되어 있지만 지금껏 우리는 그 규정을 무시한 채 초등학교나 중학교에서도 등록금과 육성회비를 징수해왔다. 따라서 당분간 고등학교 교육도 의무교육으로 하되 농어촌과 저소득층에만 학비를 보조하는 형태로 하면 추가소요재원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추가로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사립학교의 경우 전체 고교 수의 10% 이내에서 자립형을 허용한다. 그들 학교에 대해서는 국가의 재정지원을 없애고 대신 그 돈을 공교육에 투자한다. 이 경우 자립형 사립학교가 귀족학교로 될 가능성은 인정해야 한다. 10%쯤 귀족학교면 어떤가. 다만 자립형 사립고나 특수목적고에 입학하기 위해 과외가 극성을 부릴 수 있으므로, 신입생 선발방법에서 본고사에 의한 개별 선발방식은 당분간 규제해야 할 것이다.

    사실 현재로서도 평준화 정책은 편법이며 위헌 소지가 많다. 평준화 정책을 펼친 이후로 사립학교에 배정받은 학생들 대부분이 본의 아니게 공립학교에 배정받은 학생들과 비교해 엄청난 불이익과 차별대우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드물다. 대부분의 사립학교는 시설과 여건에서 공립학교보다 못한 경우가 많으며, 학생 1인당 투자되는 공교육비에도 많은 차이가 있다. 중학교의 26%, 고등학교의 50%가 사립임을 감안한다면 국가가 평준화라는 미명 아래 사립학교에 배정받은 학생의 불이익과 차별대우를 방조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사학의 특수성을 말살하는 강제적 제약들은 사학탄압정책이라 해도 할 말이 없다.

    따라서 자립형 사립고를 확대실시함으로써 사학의 자율권도 살리고, 고등학교 교육을 의무교육화함에 따른 국가의 추가재정 소요분도 어느 정도 흡수할 수 있을 것이다. 사립학교의 경우 희망에 따라 완전자립형과 준공립형으로 구분하고, 준공립형은 현재의 공립학교처럼 운영한다. 완전자립형은 엄격한 심사를 거쳐 지정하되 그 비율을 전체 고등학교의 10% 이내로 제한하고, 민족사관학교처럼 특성화한다면 신흥 귀족학교니 위화감 조성이니 하는 비판도 줄어들 것이다.

    이렇게 하면 중학교부터 과외를 부추긴다는 우려와 반발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은 지금도 유치원부터 과외를 하고 있지 않은가. 왜 서울의 어느 사립고등학교는 정부보조금도 주지 않으면서 자립학교 지정도 해주지 않고, 교원 1인당 학생 수가 다른 학교보다 적다고 학교평가에서 불이익을 주는가. 도대체 공교육의 절반 이상을 사립학교에 맡기는 정부가 교육정책을 펼칠 자격이 있는가.

    서울 전체를 한 학군으로

    한편, 평준화지역의 모든 학교를 대상으로 학부모와 학생에게 학교 선택권을 최대한 부여해야 한다. 예를 들어 서울시는 한 학군으로 해서 강북 거주 학생도 강남의 학교에 지원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혹자는 교통대란을 우려하지만 등교시간을 조정하여 시차를 두고 통학버스를 운행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이 문제는 지방자치단체에 맡겨야 한다. 평준화 정책 실시여부를 지방자치단체에 맡기겠다던 정책을 갑자기 유보한 까닭은 무엇인가.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에 의해 지방교육으로 분류되고 있는 초중등의 보통교육조차 중앙집권적으로 규제하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공립학교의 경우는 교명을 바꾸어 권역별로 제1공립고등학교, 제2공립고등학교 또는 가, 나, 다 등으로 재편할 필요가 있다. 이 경우 순번이 서열로 정착되지 않도록 유념해야 한다. 예컨대 경기고등학교가 기득권을 내세워 제1공립고등학교가 돼야 한다는 식의 주장이 동문들을 중심으로 일어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교명은 추첨으로 정하거나 아예 서열과 무관하게 지명해야 한다.

    학생들이 기피하거나 선호하지 않는 학교는 그 원인을 살펴 별도로 지원대책을 강구하되 그 이유가 학교경영에 있다면 미국처럼 ‘계약제 학교(charter school)’로 지정하든가 ‘교장초빙제’를 적극 활용하여 경영개선을 도모한다. 그렇게 되면 학교간 경쟁을 자연스럽게 유도할 수 있다.

    공교육을 정상화하려면 학교에서의 보충수업이나 이른바 0교시 수업은 일절 불허하고, 자율학습도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 대신 각종 특기 적성을 기르기 위한 그룹활동을 강화한다. 만약 그것이 편법과외로 밝혀지면 교장을 면직하고 교사들에게도 승진 등에 불이익을 주는 등 중징계한다. 이 정책은 다음에 논할 학원규제정책과 병행실시해야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처방은 교원의 질을 높이는 일이다. 공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교육환경과 여건을 선진국 수준으로 개선하고 학생 1인당 교육비도 대폭 인상해야 한다. 이와 함께 교원의 전문적 자질 향상에도 박차를 가해야 한다. 교원의 질을 높이려면 교원양성기관의 수준을 높이고, 우수한 인력이 교직으로 몰려들도록 정책을 보완하여 조속히 실시해야 한다.

    57세 신임교사는 난센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능가할 수 없다’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를 입버릇처럼 되뇌면서도 국가가 앞장서서 저질 교원 양성을 부추기고 있으며, 신규교원 임용과정에서 우수한 교원 임용을 저해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예컨대 교육대학 신입생 선발규정을 보면 실력이 더 좋음에도 어느 한 성(性)이 70%를 넘지 못한다는 위헌적인 규정에 따라 여성의 입학을 제한하고 있다. 이 규정 때문에 남성보다 우수한 30%의 여성들이 탈락하고 그 자리를 상대적으로 실력이 뒤처지는 30%의 남성들이 채우고 있다.

    교원임용방식에도 문제가 있다. 해당지역 사대나 교대 출신들에게 가산점을 주려다 위법판결을 받았음에도 교육부는 당분간 그대로 강행하겠다는 배짱이다. 그런가 하면 신규임용고사 응시제한연령을 57세까지 연장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으니 정부의 입장이 얼마나 답답하고 군색한 것인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30년 전 자격증을 따고 교육과는 전혀 무관한 일을 해온 57세의 신임교사가 교단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이는 누가 봐도 웃음이 절로 날 일이다.

    사교육비 폐해 근절을 위한 제언

    2004년 대학수학능력 평가가 끝난 후 채점을 해보는 고3 학생들.

    한편 교원의 질을 높이기 위해 상대적으로 근무 기피지역에 있는 교원들의 후생복지대책을 극대화하고 근무 선호지역에 있는 교원들과는 대우면에서 차별화할 필요가 있다. 즉 농촌지역 향토출신 학생이 교원양성기관에 지원할 경우에는 전면장학금을 지급하고 졸업 후 일정기간 자기고장에서 의무적으로 근무하게 한다든지, 도서벽지학교에 근무하는 교원에게는 군복무를 면제하고 사택을 제공하며, 20년 이상 근속할 경우 자녀들의 대학등록금을 무상으로 지급하는 등의 방안을 들 수 있다.

    또 한 가지 선호하는 지역과 기피하는 지역의 보수를 차별화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서울과 같은 대도시 신임교원 보수가 100이라면, 도서벽지의 신임교원에게는 130을 지급하는 것이다. 이러한 제도가 성공적으로 정착하려면 교원의 지방직화와 기초단위 교육자치제도가 도입돼야 한다.

    교원의 군복무 면제규정을 두고 왈가왈부하는데 그것은 온당치 않다. 6·25 전쟁 때 그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교원들은 ‘후방요원’이라 하여 징집을 면제했던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총칼 들고 일선에서 싸우는 것과 후방에서 장차 나라를 끌고 나갈 동량들을 기르는 일은 똑같이 중요함을 당시 위정자들은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교원 우대정책을 이야기할 때 일반공무원과의 형평성 운운하는 것도 옳지 않다. 교원을 특별우대하는 조치는 군인을 특별우대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자유당 시절에는 교원을 특수3급공무원이라 하여 현재의 사무관급 예우를 했다.

    지금 교원의 보수와 후생복지를 일률적으로 정함으로써 지방에서 근무하는 교원들이 줄줄이 사표를 내고 근무여건이 좋은 대도시로 몰리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이로 말미암아 지방의 학교는 우수교원 확보에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래서 도·농간 학력격차가 심화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도 일부에서 기득권을 앞세워 계약제 학사교사제 도입을 반대하는 것은 농어촌 학교의 고충과 농어촌 지역주민들의 정서를 무시한 것이다. 예전에도 무자격 교사들에게 단기연수를 시켜 교육을 맡긴 적이 있다. 물론 그것이 바람직하다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교원이 모자라니 그렇게 해서라도 한시적으로 충원을 해야 할 것 아닌가. 다만 빠른 시일에 자격증을 갖춘 유능한 교원들로 대치해야 한다. 학생의 입장에서 본다면 57세의 신임교사나, 마음은 콩밭에 가 있어 언제 떠날지 모르는 정규자격 교사보다는 차라리 일정기간 연수를 거친 젊고 의욕 있는 임시교사에게 배우는 것이 낫다. 현실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은 사전준비나 대책도 없이 교원정년을 단축한 지난 정권의 책임이 크다.

    그러나 이상 제시한 정책들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식이어서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으며, 단기간에 이를 실현하려면 엄청난 재정이 추가소요되기 때문에 사실상 불가능하다. 여기에 고민이 있고 대책이 서지 않는 까닭이 있다.

    그러나 교육개혁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해야 한다. 대통령이 수도를 옮기겠다는 정도의 의지를 갖고 여기에 정치권이 적극적으로 공조한다면 못할 것도 없다. GDP 대비 5%로 안 되면 교육비를 7%로 늘리자. 지금 사교육비만 합쳐도 그만한 액수를 초과한다.

    대학입시, 무대책이 대책

    공교육이 사교육과 경쟁이 되지 않는 까닭으로 또 한 가지 간과할 수 없는 것은 학교와 학원은 교육목표가 다르고 가르치는 방법이 다르다는 점이다. 학교는 전인교육을 표방하고, 체험학습과 경험위주의 자기주도적 학습에 초점을 두고 있다. 자연히 학교교육이 지식위주의 암기식 교육에 비해 선다형 객관식 시험과 같은 단기적 입시경쟁에는 약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식의 알맹이만 암기하는 학생에게 유리한 현행 대학입시제도가 존속하는 한 학원식 교육은 절대 수그러들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교육비를 줄이려면 대학입시제도 획기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하지만 수십 년 동안 수십 번을 바꿨어도 실패한 대학입시제도를 개혁한다는 건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발상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무대책이 대책일 수 있다. 쓸데없이 대학입시제도라는 것을 만들어 규제를 하거나 통제하려 하지 말고 완전 자유경쟁체제를 도입해야 한다. 일단 신입생 선발방식을 전적으로 각 대학에 일임한다.

    투명성이 보장되고 부정과 비리에 연루되지 않는다면 수능성적을 반영하든 말든, 내신성적을 반영하든 말든 상관하지 말라. 더구나 사립대학의 경우는 특정고교 출신에게 가산점을 주든 말든, 고교별 내신성적반영에 차등제를 적용하든 말든 상관하지 말아야 한다. 극단적인 예로 연극영화과나 모델학과에서 개성 있는 인물에 가산점을 준다 한들 뭐가 잘못된 것인가. 신입생 선발방식이 터무니없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면 고교나 학부모들이 연대하여 그 대학에 지원하지 않는 운동을 벌이면 될 것이다.

    다만 당분간 고교교육 정상화를 위해 객관식 본고사만은 금지하는 최소한의 규제는 불가피하다. 이는 공교육을 살리고 일부 무지한 대학들이 암기위주의 지식만으로 신입생을 선발하는 구태의연한 방식에서 벗어나 교육본래의 목적에 투철한 전인교육을 받은 학생이 유리한 입시제도를 도입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조치이다.

    한편, 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해서는 전국적으로 학원을 통폐합해서 준교육기관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지도와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 예컨대 수강료 책정을 비롯한 학원의 위생·교육적 환경 등의 기준을 학교와 같은 수준으로 엄격히 규정하고 밤 10시 이후에는 어떤 과외도 못하게 하는 등 철저히 감독한다.

    그리고 학원강사도 일정비율 이상은 교원자격증을 지닌 사람들 중에서 충원토록 하며, 학원장을 비롯한 간부진도 교육적 소양을 갖추도록 규제할 필요가 있다. 이 경우 기존 소규모 학원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고 그들의 생존권을 보장해야 하지만 통폐합은 교육적 책무성과 공공성의 측면을 고려하여 다소 강제성을 띨 필요도 있다. 개인교습은 보습교육이 필요한 학생들에게만 허가제로 하고, 대학생에게만 개인교습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되 3인 이상의 그룹과외는 금지한다. 그리고 교습비는 일정금액 이상을 받지 못하게 규제해야 한다.

    학원을 준교육기관으로

    과거 전두환 정권 때 과외를 금지했더니 비밀과외가 성행하고, 심지어 열차를 타고 그 속에서 과외를 하는 사례도 있었다고 하니 비밀경찰을 두고 감시해도 근절은 불가능하겠지만 그래도 서민들에게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정 안 되면 얼마 전까지 시행했던 교통위반단속 ‘몰카고발’에 보상금을 지급하는 것과 유사한 방식을 도입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어떤 제도나 정책개혁에도 반대세력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국익과 교육적 측면에서 필요가 인정된다면 다소 부작용이 따르더라도 과감하게 추진해야 한다. 이상에서 제시한 정책들을 추진한다고 하면 가장 먼저 국공립대학들이, 다음으로 학원들이 반발할 것이다. 그리고 교원들의 반발도 만만찮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이 집단이기주의라면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 상처를 도려내고 치유하는 데 따르는 아픔은 감수해야 한다. 국가가 쓰러질 위기라면 대수술에 따른 희생은 각오해야 한다. 그런데 정책이랍시고 발표했다가 일부에서 강력히 반발하면 슬그머니 없던 일이 되어버리니 교육개혁이 원점에서 맴돌고 있다. 청계천 복원이나 수도이전처럼 위정자들이 공약사항으로 내걸고 강력하게 추진하지 않는 한 우리 교육의 현재와 미래는 암담하기만 하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NGO들이 활약하고 있으며, 나라를 걱정하고 교육을 걱정하는 단체도 많다. 그러나 그 어떤 단체에서도 사립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불이익을 받고 있는 데 대해 문제를 제기하거나, 교육대학 신입생 선발과정에 성차별이 있는 데 대해 말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또 사학들이 자율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을 시정해야 한다거나, 학생과 학부모에게 학교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도 하지 않고 있다. 한결같이 입을 다물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없다. 결국 직접적으로 이해관계가 없거나 불법이지만 그럴 필요가 있는 부분에 대해서 모두가 묵인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정의라는 개념도 결국은 상대적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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