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월호

LG그룹 오너들의 놀라운 株테크

꼬리 무는 불공정거래 의혹

  • 글: 이형삼 동아일보 신동아 차장 hans@donga.com

    입력2003-12-26 18: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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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장점유율 1위를 달리던 LG카드가 한 순간에 부실덩어리로 전락했다.
    • LG카드 일반주주들이 ‘깡통’을 차고, LG그룹 다른 계열사 주가에까지 불똥이 튄 것은 불문가지. 그러나 정작 LG그룹 오너 대주주들은 건재하다. 짭짤하게 시세차익을 챙긴 후 카드사태 직전에 손을 털었기 때문이다. ‘발목에서 사고 이마에서 팔기’의 ‘숙달된 시범’을 이번에도 유감없이 보여준 것. LG家의 의혹투성이 주식거래 실상을 파헤쳤다.
    LG그룹 오너들의 놀라운 株테크
    초유의 ‘차떼기’로 150억원의 불법 대선자금을 전달해 물의를 빚은 LG그룹은 검찰 조사에서 ‘대주주의 지주회사 재편과 상속 등에 대비해 모아둔 갹출금의 일부’라고 자금 출처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대주주들의 개인 돈이었다는 얘기다. 불법 대선자금이 회사 돈을 빼돌려 조성한 비자금으로 드러나면 분식회계 및 횡령 여부에 대한 추가 수사가 불가피해지므로 기업의 처지에선 사실이야 어떠했든 그렇게 주장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재벌이라면 몰라도 LG의 경우라면 그같은 진술에 상당한 신빙성이 있다고 볼 만하다.

    지주회사제 전환을 추진해온 LG의 기업지배구조는 여느 재벌의 그것과 다르다. 오너가 A계열사에 출자해 대주주가 되고, A계열사는 B계열사에 출자해 대주주가 되며, B계열사는 C계열사에 출자해 대주주가 되는 식의 복잡한 순환출자를 통해 오너가 사실상 전 계열사를 장악하는 것이 한국 재벌의 전형적 지배구조였다.

    이에 비해 LG의 지주회사제는 출자구조를 단순화해 출자는 지주회사가, 사업은 자회사가 맡도록 하고 있다. 자회사들로 하여금 출자에 대한 부담없이 고유 사업에만 전념케 하기 위함이다. 오너는 지주회사의 지분만 보유하고, 자회사 경영은 전문경영인이 책임지는 소유·경영체제를 지향하는 것이다. 물론 아직은 LG그룹의 지배구조를 완전한 형태의 지주회사제로 보기 어렵지만, 이런 체제로 전환해가는 과정에만도 상당한 정도의 투명성이 확보되므로 자회사들에게 대선자금을 할당하는 식의 구태를 재연하기는 쉽지 않다.

    ‘오너 不死 ’

    더욱이 LG그룹 오너 대주주의 두 축인 구(具)씨와 허(許)씨 일가는 주머니 사정이 좋다. 시장논리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탁월한 주식거래 수완 덕분이다. 미리 각본을 짜놓기라도 한듯 ‘발목’에서 매수하고 ‘이마’에서 매도하니 주식거래에서 도무지 손실을 입는 법이 없다. 이들은 특히 수년간에 걸쳐 기업의 상장(上場) 및 인수·합병과 같은 주가 상승 모멘텀을 적극 활용하는 거래를 통해 막대한 시세차익을 챙겼다. 이른바 ‘대주주 갹출금’의 재원(財源)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이같은 주식거래는 결과적으로 기업과 소액주주들의 희생을 초래했고, 이 때문에 불공정 내부자 거래 의혹이 끊임없이 불거져 왔다. LG 오너 대주주들은 ‘카드 대란’을 촉발한 최근의 LG카드 사태 와중에도 짭짤한 수익을 챙기고 발을 뺀 것으로 드러나 모럴 해저드 논란을 낳았다.

    구·허씨 대주주들이 LG카드 주식을 취득한 가격은 1주당 평균 5000∼1만원. LG카드는 2002년 4월22일 코스닥에 등록됐는데, 공모가는 1주당 5만8000원이었다. 이에 따라 오너 대주주들의 평가차익은 1조5000억원에 달했다. LG카드 주가는 상장되자마자 10만7000원으로 치솟았다.

    LG카드 대주주들은 상장 후 6개월이 지나 보호예수기간이 종료된 2002년 11월부터 주식을 대량으로 내다팔기 시작했다. 이때는 허씨 일가 대주주들이 매도를 주도했는데, 당시 LG카드 주가는 3만∼4만원으로 바닥을 치고 있었다. 일부 증권사가 LG카드의 적정주가를 8만원대까지로 잡고 있던 시점이라 굳이 그처럼 저가에 주식을 팔아치우는 까닭을 종잡기 어려웠다. 다만 지주회사 출범과 함께 LG의 전자·화학·통신·금융부문 계열사는 구씨 일가로, 건설·유통·에너지부문 계열사는 허씨 일가로 분리되고 있었기에 허씨 대주주들이 금융부문에서 손을 떼는 수순쯤으로 해석됐을 따름이다. LG카드가 유동성 위기로 빠져들어 주가가 6000∼7000원대로 폭락한 지금에야 대주주들의 ‘혜안’이 드러났다.

    2003년 들어서는 구씨 대주주들도 매도 대열에 합류했다. LG카드가 대주주 및 외국인 주주들과 유상증자 참여 여부를 협의중이던 4월 중순, 구태회·구평회 창업고문 일가인 구자홍 당시 LG전자 회장, 구자열 LG전선 사장 등이 주식을 대거 매도했다. 특히 이 무렵엔 정부의 카드사 종합대책 발표에 힘입어 카드사들의 주가가 반등하고 있었는데, LG카드 주가는 대주주들의 지분 처분 탓에 오히려 하락했다. LG측은 “창업고문 집안의 계열분리를 위한 지분정리”라고 해명했지만, 일반 투자자들의 이해관계를 도외시하고 자신들만 잇속을 차렸다는 점에서 시장의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이들 LG전선 계열 대주주 18명(이들 중 16명이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친인척이다)은 지난 11월18, 19일 남은 LG카드 지분 전량을 장내에서 매도했다. LG측은 “계열분리가 마무리돼 LG카드 주식을 계속 보유하고 있을 이유가 없어 정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매도 시점이 11월21일 현금서비스가 중단되는 등 LG카드의 유동성 위기가 표면화되기 직전이라 대주주들이 이같은 회사 사정을 미리 알고 주식을 처분했다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했다. 이들이 주식을 내다판 11월18일의 LG카드 주가는 1만1100원이었으나, 이후 일주일 새 두 차례의 하한가를 기록하면서 11월27일엔 5880원으로 반토막이 됐다. 구본무 회장 일가의 LG카드 지분은 2002년 말 32%에서 2003년 11월 말 현재 15.8%로 절반 이상 줄었다.

    미국계 템플턴자산운용에 이어 LG카드의 2대주주인 LG투자증권 김붕락 노조위원장은 “그룹 오너와 핵심 임원들은 방만한 경영으로 LG카드를 부실덩어리로 만들고도 시세차익을 챙겨 빠져나가고, 그 피해를 소액주주와 LG증권 에게 전가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업계 1, 2위인 LG카드와 삼성카드의 시장점유율 차이는 2%포인트에 불과하지만, 내년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부실채권은 LG(11조6000억원)가 삼성(7조6000억원)보다 4조원이나 더 많다. 이는 전적으로 출혈경영 때문이다. 카드업계의 부실화는 LG카드가 선도한 측면이 크다. 지불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젊은 층과 여성 대상의 ‘2030카드’ ‘레이디카드’로 800만명의 회원을 끌어모으며 마구잡이로 카드를 찍어내자 다른 카드사들도 울며 겨자 먹기로 따라왔다. 실속이야 어떻든 LG그룹에서 업계 1위에 오른 것은 신용카드뿐이었기에 그룹 차원에서 실적경쟁을 독려했다. LG카드 임원들에겐 파격적인 보너스가 주어졌고, ‘배부른 2등보다는 피 흘리는 1등이 돼라’고 외치는 이헌출 당시 사장의 강연 비디오를 전 직원에게 돌려보게 할 정도였다. 그렇게 거품을 키워 주가를 끌어올린 뒤 카드사태가 터질 것을 미리 알고 주식을 내다판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이는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불공정 내부자 거래다. 대주주뿐만 아니라 LG카드의 경영 실상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룹 핵심 임원들까지 주식을 처분한 게 그 증거다.”

    실제로 구본무 회장의 최측근인 (주)LG 강유식 부회장은 보유중이던 LG카드 주식 2만1882주 전량을 2003년 7월 평균단가 2만1400원에 매도했고, LG카드 이헌출 사장(현 고문)도 보유 전량인 5만주를 2003년 4월 2만600원에, LG증권 서경석 사장 역시 보유 전량인 2만6193주를 2002년 11월∼2003년 7월 1만5700∼4만4900원에 처분했다.

    LG증권 노조는 LG카드가 악성 채권 회수를 의뢰해온 (주)미래신용정보에도 의혹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다. 미래신용정보의 전신은 LG카드 채권팀의 채권추심 전담조직이었다. LG카드는 매출이 급증세를 보이던 1998년, 이 조직을 LG카드가 지분 100%를 보유한 ‘LG신용정보’로 분리시켰다. 이 회사는 그해 8월 사명을 ‘미래신용정보’로 바꿨고, LG그룹 기획조정실 이사·LG증권 부사장 출신의 J씨가 그후 지분 40%를 사들여 1대주주가 됐다. 그러나 회사측에선 부인하지만, 미래신용정보 직원들은 이 회사의 실질적 대주주가 구씨 일가라고 믿고 있다. J씨가 오래 전부터 LG그룹 구자경 명예회장의 재산을 관리해온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LG증권 노조는 “만약 구씨 일가가 미래신용정보의 실제 주인이라면 LG카드가 채권을 적극적으로 회수하지 않고 이 회사로 넘겼을 공산이 크다”고 주장한다. 회수 가능한 채권도 악성 채권이라는 꼬리표를 붙여 떼줬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

    LG카드가 미래신용정보에 추심을 의뢰한 채권은 19조원에 이르며, 미래신용정보는 이중 2조5000억원 가량을 회수했다. 자본금이 30억원에 불과한 미래신용정보는 2002년 2220억원의 영업수익을 냈다. 2001년과 2002년의 매출액 증가율은 91%, 44%에 달했다.

    기업 上場이 자금줄?

    LG그룹의 지주회사제 전환은 여러 모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출자관계가 단순화하면서 오너 대주주들이 적은 지분으로 여러 계열사를 지배하는 레버리지 효과도 줄어들었다. 구·허씨 일가는 지주회사 지분 55% 말고는 가진 것이 없다. 이런 지배구조 덕분에 LG카드의 부실 영향이 LG증권 이외의 다른 계열사로 파급되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다.

    LG는 1999년부터 지주회사제 전환을 추진해 오면서 훗날 법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부분들에 나름대로 꼼꼼하게 대비했다. 그래서 삼성그룹의 CB(전환사채) 저가 발행을 통한 편법 증여처럼 무리한 발상은 걸러냈다.

    하지만 자금 소요가 계속 증가함에 따라 변칙적인 주식거래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주회사 요건을 갖추려면 자회사가 상장 회사인 경우 30%, 비상장 회사인 경우 50% 이상의 지분을 보유해야 하며, 지주회사의 부채비율은 100% 이하라야 하므로 오너들이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큰돈이 필요하다.

    LG그룹 오너들의 놀라운 株테크

    유동성 위기에 처한 LG카드의 현금서비스가 지급정지되어 고객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LG는 지주회사제로 바뀐 후에도 계열사 수는 전혀 줄지 않았다. 많은 계열사를 그대로 유지하려니 자본확충 등에 계속 돈이 들어간다. 또한 구·허씨 일가의 지분정리를 위해서는 수많은 특수관계인에게 이런저런 보상을 해줘야 한다. 게다가 지주회사로 편입할 수 없는 금융계열사들은 따로 지배해야 했기에이들 지분도 사들여야 했다. 이런 일들을 동시에 수행하려다 보니 엄청난 돈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결국 비상장 기업 주식의 상장 과정을 통해 자금을 마련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지주회사가 아무리 바람직한 제도라고 해도 불공정한 주식거래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김상조 소장(한성대 교수·무역학)의 지적이다. LG 대주주들이 비상장 기업의 상장 과정을 활용해 주식 매매·평가차익을 얻은 사례는 비단 LG카드뿐만이 아니다.

    1999년 4월 LG정보통신은 보유중이던 LG홈쇼핑 주식 101만6000주(전체 지분의 25.4%)를 구본무 회장 등 구씨 일가 11명에게 1주당 6000원에 매도했다. 비슷한 시기에 LG캐피탈은 자사 보유 LG홈쇼핑 주식 62만9000주(전체 지분의 15.7%)를 허창수 당시 LG전선 회장 등 주로 허씨 일가 인사들에게 같은 가격으로 넘겼다.

    2000년 1월 코스닥 등록을 앞두고 LG홈쇼핑이 공모주 청약을 실시했을 때 공모가격은 1주당 5만5000원이었다. 공모가격과 비교해도 800억원 이상의 차익이 발생한 것. 홈쇼핑 붐을 타고 매출과 수익이 급증하면서 그룹의 캐시카우로 부상한 LG홈쇼핑은 코스닥 등록 한 달여 만에 주가가 15만원을 돌파했다. 이 무렵을 기준으로 하면 오너 대주주들의 수익률은 무려 25배, 차익은 2400억원에 달했다. 이들은 코스닥 등록 이후 주식을 수시로 처분했다.

    상장회사인 LG정보통신이 코스닥 등록 이후까지 LG홈쇼핑 주식을 보유했다면 막대한 차익을 얻어 자산을 늘렸을 뿐 아니라 기업가치 상승에 따른 주가 상승도 기대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터무니없는 헐값에, 그것도 내부자에게 주식을 판 사실이 드러나자 LG정보통신에 투자한 기관투자가와 소액주주, 그리고 회사 직원들이 분통을 터뜨린 것은 불 보듯 했다.

    LG정보통신측은 “비업무용 자산 처분 및 유동성 확보 차원에서 주식을 매각했다”며 “매각 당시에는 LG홈쇼핑이 코스닥에 등록될지도, 주가가 그처럼 급등하게 될지도 몰랐다”고 해명했으나 공허하게만 들렸다. 법적으로는 하자가 없을지 몰라도 곧 실현될 회사의 이익을 고스란히 대주주에게 넘겨줬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합병 정보 이용 의혹

    2000년 4월 LG화학은 대주주가 보유한 비상장 주식을 높은 가격에 매입해 기관투자가 등으로부터 거센 반발을 샀다. LG화학은 구씨 일가로부터 비상장 기업인 LG칼텍스정유 주식 118만주와 LG유통 주식 164만주를 매수했는데, 1주당 평균 매수가격은 각각 11만원, 15만원이었다.

    LG화학측은 “자산가치와 수익가치 등을 감안하고 상속세법상 산정방법에 따라 결정된 가격”이라고 주장했으나, 적정가는 각각 9만원, 10만원 안팎으로 봐야 한다는 게 시장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의견이었다. 가령 당시 정유업계 시장점유율 1위인 SK(주) 주가가 2만5000원대임을 고려하면 비록 액면가(SK·5000원, LG칼텍스정유·1만원)와 발행주식 수(SK·1억2000만주, LG칼텍스정유·2600만주)에 차이가 있다 해도 LG칼텍스정유 주가를 11만원으로 산정한 것은 지나쳤다는 것이다.

    LG화학이 두 회사 주식을 사들이는 데 쓴 돈은 3766억원으로 LG화학의 1999년 전체 흑자액 3677억원보다 많았다. 직원들이 1년 내내 땀흘려 벌어들인 돈으로 오너 대주주들의 비상장 주식을 사줌으로써 일반주주들에게 돌아가야 할 이익이 대주주의 주머니로 흘러들어간 것이다.

    LG화학은 LG칼텍스정유 주식 매입 사실을 알리는 공시에서 매입 목적을 ‘안정적인 원료 확보’라고 밝혔다. 그러나 같은 LG 계열사끼리 굳이 지분을 보유해야 원료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LG화학은 1999년 6월에도 대주주들로부터 3319억원어치의 LG칼텍스정유 및 LG유통 주식을 사준 것으로 드러났다.

    LG화학이 이렇듯 시장의 상식을 외면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일부 기관투자가들이 LG화학 주식을 대거 매각, 주가 하락 행진을 야기했다. 공시 직후인 2000년 4월7일부터 하락세로 돌아선 LG화학 주가는 남북정상회담 발표로 증시가 폭등한 4월10일에도 회복되지 못했고, 이후 20여일 동안 20% 이상 곤두박칠쳤다. 시장의 냉담한 반응에 당황한 LG화학은 5월10일 이례적으로 투자설명회를 마련해 투자자들에게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한편 구·허씨 대주주(미성년 특수관계인들까지 포함됐다)들은 이렇게 LG칼텍스정유와 LG유통 주식을 판 돈 가운데 약 2000억원으로 2000년 2∼4월 LG전자 주식을 집중적으로 사들여 구설에 올랐다. 이들의 주식 대량 매수가 끝난 5월31일, LG전자가 LG정보통신과의 합병을 검토중이라고 공시함으로써 LG전자 주가가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 것. 이 때문에 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이라는 이들의 신분과 주식 매입 시기를 감안할 때 두 회사가 합병된다는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주식을 매집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LG측은 이에 대해 “전자와 화학을 두 축으로 하는 지주회사 체제로 가기 위해 대주주들이 전자와 화학 이외 계열사의 주식을 팔고 전자 지분을 늘린 것일 뿐 대주주에게 부당한 이익을 주려 한 게 아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LG의 한 임원은 “절차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대주주들의 주식거래가 끝난 시점은 4월인데, 지주회사 체제를 선언한 것은 7월4일이었다. 주식을 거래하기에 앞서 지주회사 체제에 대해 설명하고 지분 이동 계획도 밝혔어야 한다”는 것.

    매도 3년 후 3배 값에 되사줘

    LG그룹 총수 일가와 LG화학 간의 LG석유화학 주식거래도 부당 내부거래 의혹에 휘말렸다. 1999년 6월 LG그룹 지배주주들은 LG화학으로부터 LG석유화학 지분 70%에 해당하는 주식 2744만주를 1주당 5500원에 사들였다. 이에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는 “대주주에게 LG석유화학 주식을 헐값에 매각했다”며 LG화학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했다. LG석유화학은 LG화학이 1978년 자본금 100만원으로 설립한 이래 20년간 2000억원을 투자해 키운 회사다. 그 결과 지속적으로 당기순이익을 실현하면서 누적 결손을 털고 본격적으로 수익을 내는 시점에 와서 자본조달 비용에도 못 미치는 싼 값에 전격적으로 총수 일가에게 팔아넘겼다는 것.

    LG화학측은 “부채비율을 낮추기 위한 유동성 확보 차원에서 주식을 매각했다”고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LG석유화학 주식을 매각한 바로 그날 총수 일가로부터 LG칼텍스정유와 LG정유 주식을 고가에 매입한 것으로 밝혀져 군색한 변명이 되고 말았다. 싸게 팔고 비싸게 사며 주식을 맞교환했으니 유동성 확충에 도움이 됐을 리가 없다. 결국 LG화학은 2001년 1월 공정거래위로부터 부당 내부거래 판정을 받아 79억원의 과징금을 물게 됐다. 공정거래위는 1999년 당시 LG석유화학 주식의 적정 거래가격을 1주당 최소 8500원으로 판단했다.

    그런데 3년 후에는 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총수 일가는 LG석유화학이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뒤인 2002년 1월부터 9월까지 LG석유화학 주식 1702만주를 1주당 1만∼2만원에 장내 매각했다. 특히 그해 4월에는 LG화학에 LG석유화학 주식 632만주를 1주당 1만5000원에 되팔아 주당 9500원의 매매차익을 실현했다. LG화학으로선 총수 일가에게 주식을 판 지 불과 3년 만에 3배 값을 주고 되사온 셈이다. 총수 일가가 LG석유화학 주식 1702만주를 처분해 얻은 매매차익은 1650억원에 달한다.

    LG화학은 “공장 가동에 필요한 연료를 대부분 LG석유화학에서 가져오기 때문에 화학부문 지주회사로서 자회사를 안정적으로 지배 경영하기 위해 주식 매입이 불가피했다”고 둘러댔다. 하지만 ‘안정적 경영’을 위해 지분이 필요했다면 3년 전 70%의 석유화학 지분을 오너 일가에 매각할 이유가 없었다. 한 증권사 임원은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는 자회사(상장사) 지분의 30% 이상을 확보해야 하는데도 지분을 70%나 매각한 것을 보면 조만간 이를 다시 매입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상장을 앞둔 석유화학 주식을 이용해 대주주들에게 시세차익을 남겨주려 한 의도가 엿보인다”고 말했다.

    부실 떠넘기기 합병

    LG는 부실 계열사를 견실한 계열사에 떠넘기는 식의 기업 합병을 통해 오너 대주주들의 파이를 키우고 일반주주들의 권익을 침해했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그 원리는 이렇다. 부실 기업이 증자를 실시하면 일반주주들은 대개 실권하기 때문에 대주주들이 물량을 받는다. 대주주들이 지분을 늘린 상태에서 우량 기업과의 합병설이 뜨면 부실 기업의 주가는 오르고 우량 기업의 주가는 내린다. 따라서 부실 기업 대주주는 주가 상승으로 앉은 자리에서 떼돈을 버는 것은 물론, 우량 기업과의 주가 차이가 좁혀지면서 기업 합병비율에서도 혜택을 보게 되니 일거양득의 주가 관리가 아닐 수 없다. 그들의 주머니를 채워주는 것은 이래저래 피해를 입는 우량 기업의 일반주주들이다.

    1999년 4월 합병한 LG산전과 LG금속의 경우가 그런 사례다. 합병 이전에 LG산전은 3000억원 흑자, LG금속은 7000억원 자본잠식상태였지만, 합병설과 함께 양사의 주가 갭이 줄어들어 합병비율은 산전과 금속이 1대 1.2로 거의 대등해졌다.

    LG산전은 부채가 2조원이 넘는 LG금속을 떠안은 후 고전을 면치 못했다. 연평균 17%의 영업이익률을 유지하면서도 1999년 1700억원, 2000년 627억원의 적자를 기록했고, 주력사업이던 엘리베이터사업마저 LG오티스에 넘겨야 했다.

    1999년 10월 LG증권과 LG종금을 합병한 것도 ‘증권과 종금의 합병은 선진국형 투자은행으로 가는 사전 포석’이라는 명분과는 달리 사실상 종금의 부실을 증권에 떠넘긴 데 지나지 않았다. LG종금의 경우에도 합병 전에 종금 지분을 가진 계열사들이 계속 증자 물량을 받아 자본을 확충하며 주가 부양을 시도했지만, ‘제2의 LG산전화’를 우려한 LG증권 직원들이 강력하게 반발하며 주가 감시에 나선 결과 증권과 종금의 합병비율은 1대 8.2로 벌어졌다.

    ‘회사 전체로서의 이익’이 우선

    LG는 비상장 주식의 내부자거래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이 쏠릴 때마다 ‘기업의 자산가치와 수익가치, 상속·증여세법에 따른 비상장 주식 가치 산정방법에 따라 결정한 적정가격’이었다고 항변한다. 그러나 수익가치와 자산가치 평가는 다분히 주관적인 것이며, 특히 내부자 거래의 경우 정보의 불균형으로 인해 대주주가 자의적으로 가치를 평가할 가능성이 높다. 예컨대 비상장 주식을 매각할 때는 소극적·보수적으로, 매입할 때는 희망적·공격적으로 계산하게 마련이다.

    또한 상속·증여세법상의 산정 기준은 과세 편의를 위한 최소한의 수치로 실제 가치와는 거리가 있다. 부동산의 시가와 공시지가가 다른 것과 마찬가지다. 이것이 부당 내부자 거래를 정당화시키지는 못한다.

    적정가격이란 원칙적으로 시장원리에 따라 수요와 공급에 의해 형성되는 시장가격이라 할 수 있다. 비상장 주식을 처분하면서 최상의 시장가격을 끌어내려면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한 공개입찰 등 경쟁방식에 의한 매각이 상식이다. 하지만 대주주 일가와의 거래는 경쟁이 원천적으로 배제된 수의계약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다.

    경영권 유지를 위해 대주주 일가와 수의계약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더 이상 현대 기업에서 통용될 수 있는 논리가 아니다. 기존 대주주의 경영권 유지라는 목적은 회사 전체로서의 이익(interest of company as a whole)이 아니라 사익(私益)에 관한 것이다.

    경제적 이익을 절대적 가치로 추구하는 자본시장에서 회사의 가치를 극대화하려면 오히려 경영진 퇴출의 유연성이 확보돼야 한다. 따라서 이제는 적대적 M&A도 다른 시각에서 볼 필요가 있다. 대주주가 적대적 M&A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회사와 일반주주의 손해를 야기하는 행위는 배임으로 봐야 한다. 이것보다는 차라리 어떻게든 회사를 포장해서 피(被)M&A 매력을 키워나가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지주회사제가 고유의 장점을 살리려면 지주회사와 자회사 간의 이해상충을 최소화하는 소유구조가 전제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시 말해 지주회사 주주의 이익을 위한 조치가 자회사 주주의 희생을 초래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선진국의 지주회사는 자회사의 지분을 거의 100% 소유해 완전 자회사화하는 대신 지주회사 주식만 상장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이로써 이해상충을 예방하고, 한편으로는 연결납세의 혜택도 누린다는 것.

    이에 비해 LG는 단지 30%의 지분만을 소유하면서 지배하므로 지주회사 주주와 자회사 주주, 특히 지주회사 대주주와 자회사 소액주주 사이에 이해상충의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에 LG 지주회사 성공 여부가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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