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월호

영화 ‘실미도’로 ‘반지의 제왕 3’와 맞붙는 ‘충무로 군주’ 강우석

“나는 아티스트 아닌 엔터테이너… 재미없는 영화는 영화도 아니다”

  • 글: 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입력2003-12-29 11: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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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완성도 높은 영화, 진지한 영화가 성공해야
    • 안성기 설경구는 돈 얘기 안 해, 개런티 가장 센 배우는 한석규 송강호 최민식
    • 한국영화 자양 풍성하게 할 여배우, 심은하 장진영 이영애 전도연
    • 돈벌이 아니라 영화인으로 살아남으려 영화 한다
    • 임권택 감독에겐 두려움 느껴… 젊은 감독 중엔 강제규 높이 평가
    • 한국 영화, 중국·동남아 시장은 충분히 먹을 수 있을 것
    영화 ‘실미도’로 ‘반지의 제왕 3’와 맞붙는 ‘충무로 군주’ 강우석
    서울 충무로 ‘시네마서비스’로 영화 ‘실미도’ 개봉을 앞둔 강우석(44) 감독을 찾아갔다. 1990년대 이후 충무로에 있던 영화사들은 대부분 강남 도산대로 주변으로 이사했다. 충무로엔 시네마서비스 제작사무소와 최근 영화 ‘황산벌’을 제작한 시네월드 정도가 남아 있다.

    국가정보원은 내곡동으로 이사간 뒤 더 이상 ‘남산’으로 불리지 않는데, 영화계를 상징하는 말은 여전히 도산대로가 아닌 ‘충무로’다. 영화판의 대부가 충무로에 머물러 있기 때문일까.

    충무로는 한국 영화계의 ‘절대군주’ 강 감독을 키워준 거리다. 그는 대학을 중퇴하고 무작정 충무로에 뛰어들었다. 지금은 영화판의 1인자이지만, 차비가 떨어져 충무로에서 서대문구 홍은동 집까지 걸어간 적도 있다.

    강 감독은 영화전문지 ‘시네21’ 평가에서 2003년까지 9년 연속 한국 영화계 파워 1위를 지켰다. 한국 영화에서 이렇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장기집권한 사람은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다시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한국 영화의 연간 제작 편수는 70~80편. 이중 15~20편이 그가 전액 또는 일부 투자한 돈으로 만들어진다. 전국의 스크린 수는 약 1000개. 강 감독이 대표로 있는 시네마서비스의 자회사인 프리머스가 보유한 스크린 수가 현재 20개 정도인데, 2년 후엔 230개로 늘어난다.

    한국 영화계의 ‘절대군주’



    시네마서비스에는 김상진 감독의 ‘광복절 특사’와 강 감독의 ‘실미도’ 포스터가 여기저기 붙어 있다. 그는 직원들이 모두 쉬는 일요일에도 회사에 나오는 일중독자다. 그래서 세들어 사는 빌딩의 경비원이 일요일에 꼬박꼬박 출근하는 그를 귀찮게 여기는 눈치란다.

    영화감독치고 넥타이를 매고 다니는 사람은 드물다. 목을 졸라매는 넥타이가 상징하는 속박과 규제가 예술인들에게 거부감을 주는 것일까. 부스스한 머리에 점퍼 차림의 그가 주는 이미지는 한국 영화계 1인자와는 거리가 멀었다.

    ‘투캅스’ ‘마누라 죽이기’ 등 주로 웃음을 선사하는 코믹물 감독을 맡던 그가 이번에 1970년대 실화를 소재로 한 ‘실미도’를 찍었다. 진지하고 무겁고 강렬한 영화다.

    -‘실미도’에서 위험한 장면을 많이 찍었다지요.

    “위험한 장면에서 대역을 쓰지 않고 배우들을 그냥 출연시켰습니다. 사고 위험이 컸습니다. 웃으면서 즐겁게 찍은 장면은 기억에 없고 계속 화를 내며 스태프들을 다그쳤습니다. 배우들로부터 ‘도 닦는 영화 같다’ ‘너무 힘들다’ ‘공포스럽다’ ‘감독이 너무 무섭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라 생존자들이 있습니다. 사실을 지나치게 극화하면 생존자들이 말도 안 된다고 할테고, 증언이나 자료에 충실하면 상업적으로 성공할 확률이 낮겠죠. 그래서 중간지대에서 타협했어요. 드라마에 대한 중압감 때문에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나한테는 재미없게 느껴졌어요. 묻어둬도 될 얘기를 굳이 바깥으로 끌어낼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요.”

    -어떤 신이 그렇게 위험했습니까.

    “가령 배를 폭파하는 신입니다. 바다에 뜬 상태에서 배를 폭파해야 하는데 배우들도 배 주변에 있어야 합니다. 수심이 14m였는데 배우들에게 떠내려가다 위급하면 손을 들라고 했지요. 구명튜브를 던져줘야 하니까요. 그런 장면 찍을 때 힘들었습니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하면 관객들이 눈치챕니다. 할리우드나 한국이나 모두 화면 장치에 돈을 많이 들이거든요. 지나치게 컴퓨터 그래픽에 의존한다든지, 비사실적 그림으로 관객의 눈만 현혹시키려 합니다. 눈 위의 폭발 장면을 찍다 배우 두 명이 타죽는 줄 알았습니다. 계산보다 일찍 터졌거든요. 스킨스쿠버 장비 없이 맨몸으로 수심 10m에서 잠수훈련하는 장면도 힘들었습니다.”

    -북파공작원(HID) 동지회 쪽에서 압력은 없었습니까.

    “HID 설악동지회 쪽에서 리얼하게 그리려면 자기들 자료를 보라며 도와줬습니다. 희생자가 생기고 가혹훈련을 받는 장면은 그 사람들의 조언을 받아 촬영했습니다. 대신 ‘고생해도 될 놈들’ ‘국가로부터 버림받아도 될 놈들’이란 식으로 그리지는 말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실미도 생존대원들은 고인들을 욕되게 하지 말라는 말도 했습니다.”

    -40대 후반이나 50대도 실미도 사건이 어렴풋이 기억 날 정도입니다. 요즘 젊은 세대한테 실미도가 실감나게 다가올까요.

    “감독의 딜레마죠. 사건을 모르는 관객이 재미없다고 하면 말이 안 되잖아요. 사건을 모르는 사람도 이해하게 만들어야지요. 실화와 픽션을 잘 버무려야 관객을 감동시킬 수 있어요. ‘실미도’는 가상 드라마로 생각하고 봐야 합니다.”

    1968년부터 1971년까지 범죄자들로 구성된 684 북파부대원 31명이 인천 앞바다의 무인도 실미도에서 훈련을 받았다. 1968년 1월21일 북한 124군 부대의 청와대 기습사건에 대한 보복을 위해 창설된 부대였다. 그러나 석 달간 훈련시켜 북한으로 보내려던 계획은 취소되고, 이들은 3년 동안 외딴 섬에서 지옥 같은 훈련을 받았다. 이들은 처우에 대한 누적된 불만과 용도폐기되리라는 두려움 속에서 교관과 경비를 서는 기간병을 살해하고 탈출했다. 서울까지 진입해 영등포구 대방동에서 군경에 포위돼 저항하다 대부분 수류탄으로 자결했다. 살아남은 4명은 군사재판을 받고 처형됐다. 이 사건이 터진 후 국회 진상조사가 벌어졌으나 생존 교관들과 사형집행을 기다리던 684부대원들은 입을 다물었다.

    실미도의 실상은 유신독재와 군사정권 기간 동안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1993년 실미도 교관(중사) 생존자가 ‘신동아’에 고백수기를 게재했다. 박영철(가명) 중사는 난동이 벌어졌던 날 밤 육지로 외출을 나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김대곤 당시 신동아 부장(현 국무총리 비서실장)이 직접 그가 거주하는 경북 의성에 가서 구술을 받아 수기를 대필했다.

    “‘실미도’ 녹음하느라 바쁘지만 ‘신동아’ 인터뷰라 OK 했습니다. ‘신동아’ 1993년 4월호에 22년 전에 일어난 ‘실미도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생존교관의 수기가 실리자 감독 10여명이 영화로 만들겠다고 덤벼들었죠. 그러나 제작비가 많이 드는 데다 정보당국 및 군의 간섭과 압력 때문에 모두 중도에 포기했습니다. ‘신동아’가 밝혀낸 비밀을 다시 영화화하기까지 또 10년이 걸린 거죠.”

    -‘실미도’ 세트장은 그대로 보존했습니까.

    “모두 철수했습니다. 기업이 소유한 사유지인데 호텔을 지으려 한다더군요. 작고 아름다운 섬입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영화가 개봉되고 사람들이 세트장 보러 몰려오는 게 부담스러웠던가봐요.”

    인천국제공항이 들어선 영종도 용유도와 찻길로 이어진 잠진도 부두에서 배로 15분 가량 가면 무의도(舞衣島)가 나온다. 무의도는 춤추는 무희의 의상처럼 아름다운 섬이란 뜻이다. 썰물 때는 무의도에서 실미도(實尾島)까지 걸어들어갈 수 있고 밀물 때는 소형배로 들어가야 한다.

    -당시 684 북파부대가 훈련받았던 흔적이 실미도에 남아 있었습니까.

    “그들이 팠던 우물이 남아 있었습니다. 영화촬영하면서 그들이 쓰던 모자 신발 칼 등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이 실미도에 들어가기 전에 저지른 범죄기록을 찾아봤습니까.

    “어딘가 남아 있겠지만 군당국이 자료를 제공해줄 리 없습니다. 방해나 안하면 다행이죠.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도 국방부 협조를 못 받는데 ‘실미도’에 협조해줄 리가 있겠습니까. 장갑차도 우리 돈으로 만들었습니다. 총기도 수입했구요. 그래서 제작비가 많이 들었습니다.”

    -영화가 주류관객인 10∼20대에 맞춰 제작되다 보니 중장년 세대가 볼 만한 영화가 없습니다. 나는 감명깊은 영화를 들라면 지금도 ‘닥터 지바고’나 ‘대부’를 꼽습니다. 한마디로 한국영화가 죽었던 시절이죠. 외국영화 수입쿼터를 따기 위해 한국영화를 찍었으니까. 중장년층 세대에겐 지금의 한국 영화가 너무 경박하게 비쳐지는 측면이 있습니다.

    “대단히 우려되죠. 저러다간 어느 순간 관객들로부터 외면당할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 말장난 위주의 코미디가 판치고 있습니다. 제작자들이 ‘시간 때우기용 오락영화라야 손님이 든다’라는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완성도 높은 영화를 만들려는 엄두를 안 내요. ‘실미도’나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 같은 진지한 영화가 성공해야 합니다.”

    일반 영화 3배인 110억원 투입

    강 감독이 영화계의 흐름을 비판하고 있지만 극장가에 가벼운 코미디류가 범람하게 된 데는 그의 책임이 작지 않다. 스티븐 스필버그도 오락영화를 만들다 ‘쉰들러 리스트’(1993)를 제작해 아카데미 감독상 등 7개 부문을 휩쓸고 골든글로브상을 받았다. 강 감독은 한국의 스필버그가 되고 싶다는 말을 간간이 한 적이 있지만 ‘실미도’가 ‘쉰들러 리스트’가 될지는 이번에 관객들의 반응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실미도’엔 제작비(광고비 포함)로 일반 영화의 3배 가까운 110억원이 투입됐다. 한국 영화 평균 제작비(광고비 포함) 40억원을 회수하자면 관객이 150만명 정도 들어야 한다. 강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실미도’가 본전을 건지려면 350만명은 들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올 최고 히트작이라는 ‘살인의 추억’은 관객 500만명을 돌파했다. ‘실미도’ 제작비 110억원은 시장 규모에 비추어 무리한 투자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실미도’로 ‘반지의 제왕 3’와 맞붙는 ‘충무로 군주’ 강우석

    강우석 감독과 인터뷰하고 있는 황호택 논설위원.

    -제작비는 주로 어디에 들어갑니까.

    “배우 스태프 인건비입니다. 배우들이 무리하게 달라고 해요. 톱스타는 4억5000만원, 5억원 달라고 하고 추가로 인센티브를 요구합니다.”

    -영화계 전체가 살쪄야 좋은 영화가 만들어질 텐데…. 개런티를 너무 많이 요구하는 배우들을 영화판에서 왕따시키려는 분위기는 없습니까.

    “그 배우들이 필요하니까 말을 못 하죠. 어떻게든 그 배우를 출연시켜야 장사가 돼요. 자율적으로 규제하면 좋은데 음성적으로 돈 많이 주고 서로 데려가려고 하거든요. 나만 살고 보자는 거지요. 한 영화사에서 4억5000만원 주겠다고 하면 다른 영화사에서 6억원 줄게 하는 식입니다. 영화배우도 ‘이전 작품은 6억원 받았는데…’라고 나오는 거고 다른 배우는 ‘내가 왜 걔보다 못하냐’고 따집니다.”

    -감독은 얼마나 받습니까.

    “감독료는 세지 않아요. 감독은 일류라고 해야 한 1억원 받을 겁니다.”

    주연 남녀배우를 5억원씩에 쓴다면 제작비와 광고비 40억원 가운데 10억원이 들어간다. 전체의 25%를 두 명이 가져가는 셈이다. 할리우드도 형편은 마찬가지다. ‘터미네이터 3’ 제작비가 1억5000만달러였는데 이중 아널드 슈워제네거 혼자서 개런티로 3500만달러를 챙겼다.

    “미국도 끙끙 앓는 거예요. 스타만 돈 벌고 투자자는 죽어나갑니다. 제작자는 죽고 극장은 법니다. 스타와 극장이 다 가져가는 시스템입니다.”

    -신인을 발굴해 쓰면 어떻습니까.

    “신인배우 쓰면 관객들이 아예 쳐다보지도 않아요. 제목이 확 당기는 ‘여고괴담’ 또는 ‘장화, 홍련’ 같은 영화에는 신인배우를 쓸 수도 있겠지요.”

    -개봉관 상영이 끝나면 비디오가 출시되는데 비디오 수입은 얼마나 됩니까.

    “영화가 히트해야 비디오 수입도 같이 올라갑니다.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면 TV 비디오 DVD 합해 25억원 가량 들어옵니다. 그런데 망한 영화는 2억5000만원도 안 돼요.”

    -‘실미도’에 나오는 안성기 설경구씨는 어땠습니까.

    “안성기씨는 돈에 초연한 배우입니다. 오히려 개런티 깎으라고 하는 사람이에요. 설경구도 돈 얘기 안 해요. 한석규 송강호 최민식 세 사람이 제일 세게 받을 걸요.”

    ‘실미도’엔 설경구 안성기 허준호 정재영 임원희 강신일 강성진 등 7명이 주인공으로 출연한다. 충무로의 ‘군주’가 아니면 한 영화에 이렇게 호화배역을 싹쓸이해오긴 어려울 것이다.

    “남녀의 사랑 얘기는 못 찍는다”

    영화계에 여배우 기근이 심각하다. 흥행력과 연기력을 동시에 인정받는 여배우층이 얇다. 여배우의 역할 비중이 큰 영화는 기획조차 되지 않는다. ‘고양이를 부탁해’ ‘피도 눈물도 없이’ 등 최근 선보인 ‘여배우 영화’들이 줄줄이 흥행에 실패하자 여배우 영화의 씨가 말라버린 형편이다. 실미도도 전형적인 남성 영화다. 여배우는 단역으로 두 차례 나온다. 사형수의 어머니역, 그리고 강간당하는 무의도 교사역이 고작이다.

    -강 감독 영화를 보면 여성이 활발하게 역할을 하는 작품이 거의 없습니다.

    “내 성격 때문이죠. 내가 멜로드라마를 안 좋아합니다. 남녀의 사랑 얘기는 못 찍습니다. 책을 보고 좋은 것을 발견하면 다른 사람에게 찍으라고 권유합니다. ‘마누라 죽이기’처럼 웃기는 건 하겠는데 여성 심리를 엮어 눈물 짓게 하는 것은 닭살 돋아서 못합니다.”

    -38세에 결혼할 때까지 연애는 몇 번 해봤습니까.

    “남들 한 정도겠죠. 영화에 미쳐 있었습니다. 사실 나는 영화랑 결혼하고 살았습니다.”

    -여배우 중에서 한국영화의 자양을 풍성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을 두셋만 꼽으라면….

    “심은하가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 ‘텔미썸딩’ ‘미술관 옆 동물원’에 나왔었죠. 마스크 좋고 연기 잘합니다. 유학 가서 미술 공부한다고 안 나오는데 이해할 수 없어요. 장진영도 좋습니다. 최근 ‘싱글즈’ ‘국화꽃 향기’에 주연으로 나왔습니다. 다음으로 이영애. 그러니까 장진영 이영애 전도연 정도를 꼽을 수 있습니다. 여배우 기근이에요. 남자들은 물이 좋거든요. 설경구 한석규 최민식 송강호 차승원 차태현…. 남자 배우는 자원이 풍부해 골라 쓸 수 있어요. 박중훈 배용준 이성재…. 그런데 여배우가 없어 웬만하면 신인을 쓰자고 하는 형편입니다. 여배우들은 어느 순간 스타가 되면 영화보다 사생활을 즐기는 것 같아요. 좋아하는 남자 생기면 결혼한다고 그만둬버리죠. 영화를 결혼하려고 하는 겁니까. 미국처럼 결혼한 뒤에도 영화배우로 쭉 활동하면 좋을 텐데요. 공인 의식이 부족해요. 여배우를 비하하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철저히 영화로 승부를 걸겠다는 정신이 없어요. 결혼해 은퇴하는 게 멋있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려면 영화배우 뭐하러 시작했어요.”

    -영화감독도 하고 제작도 하니까 여배우하고 스캔들도 더러 있었겠지요.

    “여배우들이 다 나를 좋아했죠.”

    -어느 여배우가 특히 좋아했습니까. 실명으로 거론해봐요.

    “왜 이러세요. 쫓겨납니다. 나를 좋아했던 배우가 있는데 나는 그녀를 별로 안 좋아했습니다. 사람들이 나한테 ‘차다’고 하죠. 내가 배우들한테 무관심하니까요. 그래서 여배우 관리하는 매니지먼트사에서 강 감독한테 보내면 안전하다고 그래요.”

    -정말 안전한가요.

    “다른 사람들은 집적거리는데 나는 관심 없으니까. 내가 영화계에서 해온 일, 그리고 할 일을 생각하면 여배우와 스캔들이 생겨선 안 되거든요. 그러다가는 내가 한 방에 무너집니다. 나는 스스로 영화계에서만큼은 공인이라 생각합니다. 공인은 정말 절제된 생활을 하고 모범된 상을 보여줘야 해요. 탈세도 안 합니다. 돈 몇 푼 아끼려고 범법자가 돼서는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안성기씨의 사생활이 깨끗하잖아요. 그 형은 추문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니까. 내가 언젠가 ‘형이라고 여자 안 좋아하겠어’하고 물었더니 ‘맞아. 나도 안 좋아할 리 없지. 그런데 나는 그렇게 하면 안 되잖아’ 하고 말하더군요. 그 말이 맞는 말이에요.”

    충무로에는 강 감독 문하생이, 데뷔를 시키며 도와준 사람까지 합하면 10여명에 이른다. ‘주유소 습격사건’ ‘신라의 달밤’ ‘광복절특사’를 만든 김상진 감독, ‘킬러들의 수다’ ‘간첩 리철진’의 장진 감독, ‘접속’ ‘텔미썸딩’의 장윤현 감독이 그의 문하생이다.

    -어느 분야에서 한 사람이 독주하면 해독이 있게 마련입니다. 한국 영화의 절반 이상에 투자하고 싶다는 포부를 말한 적이 있는데 그렇게 한 사람이 독주하다보면 한국 영화의 다양성이 위축될 우려가 있지 않겠습니까.

    “한국 영화가 연간 70~80편 만들어집니다. 60편 만들어질 때 내가 15편 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25%입니다. 70편일 때는 17편 정도. 25%가 어떻게 독점입니까. 그리고 나 혼자 하는 게 아니라 회사가 제작하는 겁니다. CJ 동양 롯데가 하면 아무리 많이 해도 독주라는 말 안 씁니다. 나는 개인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파워맨 넘버원’ ‘나홀로 장기집권’ 같은 말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두 번째, 다양성에 관한 이야기인데 내가 코미디를 한다고 해서 코미디 영화만 제작하는 건 아닙니다. ‘실미도’도 그렇고 작년에 칸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취화선’도 내가 돈 댄 영화입니다. ‘이재수의 난’ ‘초록 물고기’ 등은 잘 만든 영화입니다. 모두가 등을 돌려 내가 투자했죠. 단순히 돈벌이하러 영화판에 들어온 기업과 영화인으로 살아남기 위해 영화를 하는 이들과 나는 다릅니다. 나는 100억원 벌면 영화를 두세 편 더 찍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데, 기업은 100억원 벌면 ‘얼마 더 벌어라’고 합니다. 나는 돈벌어 땅 사지 않고 영화에 재투자합니다. 영화판이 워낙 기복이 심하니까 물론 예비비는 확보하고 있지요. 그러나 이걸 갖고 자자손손 대대로 부를 물려줄 생각은 없습니다. 혼자 영화계를 주물러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영화만 찍게 할 생각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한때는 삼성 대우 SK도 영화제작에 손을 댔던 적이 있다. IMF 외환위기를 계기로 빠져나갔지만. 강 감독은 그 시절에도 기업의 스카우트 제의를 거절하는 고집을 부렸다.

    -강 감독이 어떤 인터뷰에서 ‘정정당당히 일하는데 뒤통수친 놈을 그냥 놓아둔 적이 한 번도 없다. 물론 킬러를 고용한 것은 아니지만. 그런 놈 영화가 나오면 같은 날 흥행 될 영화를 앞뒤로 붙여서 아예 죽여버렸다’는 살벌한 고백을 했더군요. 영화판에서 강 감독에게 밉보이면 살아남기 어렵다는 뜻인가요.

    “단순히 돈 벌러 들어온 투자자들을 말하는 겁니다. 그런 사람들 영화는 나라도 눌러놓아야 합니다. 영화판에서 돈만 벌고 빠져나가려는 사람들이니까. 그런 사람들이 배우 개런티를 올려놨어요. 연줄 없고 인간관계가 형성돼 있지 않으니까 전부 돈으로 하는 거예요. 돈 몇 푼 들고 와서 감독들한테 함부로 하고 영화에 대해 함부로 얘기하는 사람들이 만든 영화를 혼내준 적이 있습니다. 요즘은 그런 짓 안 합니다.”

    -그러다 같이 죽을 수도 있는 거죠.

    “물론이죠. 그렇게 하다 나도 죽은 적 있어요. 까불다가.”

    곽정환 회장에게 영화 비즈니스 배워

    강 감독은 말이 빠른 편이다. 성격 급한 사람들이 대개 말을 빠르게 하는 경향이 있다. 강 감독의 말을 주의 깊게 들어보면 ‘습니다’ ‘입니다’ 하는 어미가 없다. 어미는 떨어져나가고 ‘나는 그렇게 했’ ‘그 사람은 그런 사람입’이라는 말만 들린다.

    -1960년생이니까 40대 초반인데 후배 감독들이 앞에서 담배도 못 필 정도로 카리스마를 가졌다고 하더군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조감독도 같이 피웁니다. 본인들이 괜히 어려워서 그러는 거지…. 술자리에서 (담배 피려고) 슬쩍 일어나잖아요. 그러면 내가 ‘너 어디 가! 앉아. 무슨 짓이야 이거. 내가 니 아버지냐. 여기서 피워’라고 붙잡습니다. 대신 게으른 후배한테는 화를 많이 냅니다. 내가 바쁘게 살고 성질 급하고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모르지만…. 준비를 느긋하게 한다든가, 재능은 있는데 놀고 있는 사람은 혼냅니다. 너 뭐하는 놈이냐, 영화감독이면 영화 찍고 영화기획을 해야지, 손님 조금 들었다고 놀러다니고…. 나는 그 꼴 못 봅니다. 일하기 싫으면 다른 데로 가라고 합니다.”

    -40대 초반에 영화판의 ‘대부’가 된 비결이 궁금하네요.

    “남들보다 빨리 ‘영화도 비즈니스’라는 데 눈을 떴습니다. 배급이 영화의 흥행을 좌우합니다. 배급사 꾸리고 극장 세우고 스튜디오 지어 활용하고…. 이렇게 하다 보니 영화계를 선도하는 것처럼 보였겠죠. 나는 한해에 영화 20편 만들 때까지는 멈추지 않겠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녔습니다.”

    그가 영화 비즈니스에 눈 뜨고 사업적으로 성공하기까지는 극장업계의 큰손이던 서울극장 곽정환 회장의 지원에 힘입은 바 크다는 것이 영화계의 정설이다.

    -곽 회장에 대해 ‘아버지 같은 분’이라고 말한 적이 있던데요. 영화계 주변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에 대한 평가가 엇갈려요.

    “엇갈리지요. 그 양반 시대에는 영화판이 선의의 경쟁을 통해 돈을 버는 구조가 아니었습니다. 시장이 너무 작아 곽 회장이 영화를 한 편 개봉하면 다른 영화들이 죽고 말았죠. 스크린 수가 몇 개 안 되기 때문에 자기 영화 붙이기 위해 남의 영화 흠집 내고 상영하지 못하게 하던 시대였거든요. 지금은 스크린 수가 워낙 많아 극장들이 서로 영화 달라고 난리잖아요. 그런 시대에 그 양반이 넘버원이니까 당연히 피해자가 많았을 겁니다. 곽 회장이 가해한 적도 없는 피해자가 있었을 거라구요. 그 양반한테 부지런함과 영화 비즈니스를 배웠습니다. 곽 회장은 실패에 대비해 영화를 많이 제작하라고 조언합니다. 조금씩 하다 실패하면 못 일어난다는 거지요. 많이 하면 실패해도 하나쯤 성공하는 작품이 나오고 그것이 실패를 막아준다는 거지요. 힘든 일 생길 때 찾아가 물어보면 탁탁 대답이 나와요. 어디서 그런 상상력이 발동하는지 모르겠어요.”

    강 감독은 1인자가 되기까지 숱하게 어려운 시절을 겪었다. 영화에 대한 열정 하나만으로 춥고 배고픈 시절을 견뎠다. 그때 버릇으로 지금도 술 생각이 나면 포장마차에서 꼼장어나 어묵 안주를 시켜놓고 소주를 마시거나 호프집에서 골뱅이 안주에 생맥주를 마신다. 그가 보유한 코스닥 등록기업 플레너스 주식 118만3000주를 시가로 환산하면 280억원 가량. 주식갑부가 포장마차에서 술 마시는 모습은 멋이라기보다는 궁상에 가까울 것 같다.

    “‘투캅스 1’ 찍을 때 무리했습니다. 제작비를 잘못 계산해 돈이 크게 모자랐어요. 친구들에게 돈을 빌렸습니다. 꿔온 돈도 다 떨어져 부모 모시고 살던 집의 전세계약서를 담보로 잡혀 은행에서 융자를 받았습니다. 올인한 거죠. 이렇게 찍어 영화를 개봉했는데 손님이 많지 않았어요. 처음에 지방 극장에서 ‘크리스마스 시즌인데 이렇게 손님이 안 오면 어떻게 하느냐’며 자르겠다(상영 종료)는 연락이 왔어요. 그때 진 빚을 연출료로 벌어 갚으려면 영화 10편 찍어야 했으니 10년 걸려야 갚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습니다. 영화 그만두라는 뜻인가보다고 체념했지요. 그런데 개봉 일주일째부터 관객이 폭주하기 시작했어요. ‘투캅스 1’에서 번 돈을 종자돈으로 해서 시네마서비스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교만을 떠니까 하늘이 그냥 놔두지 않았어요. ‘투캅스 1’로 번 돈 갖고 감독 여러 명을 독점 계약하고 방만하게 영화 투자하느라 2년 반 만에 빚을 22억원이나 졌습니다. ‘투캅스 2’를 막 하고 있을 땐데 이거 무너지면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거라는 걱정 때문에 밤을 새웠어요.”

    ‘투캅스 1’ 제작 위해 ‘올인’

    기복이 심해 1년에 열 달 울고 두 달 웃는 사업이 영화제작이다. 그는 사업 걱정 때문에 동이 트는 새벽 대여섯 시까지 줄담배를 피우며 응접실에 앉아 있은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투캅스 1’로 번 돈 다 까먹고 ‘투캅스 2’ 할 때는 통장에 고작 100만원이 들어 있었다.

    “중소기업하다가 목 매 자살하는 사장들이 나 같은 심정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족과 직원들한테도 면목 없고…. 이런 기도도 해봤어요. ‘다시는 교만하지 않을 테니까 하나님 나한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그런데 ‘투캅스 2’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빚을 다 갚아주더라고요. 공교롭게도 투캅스 1편과 2편 개봉 즈음이 인생에서 가장 어려웠던 시기예요. 그 다음부터는 투자전략을 바꾸었죠. 곽정환 회장한테 투자기법을 배웠습니다. 결정적으로 성장한 계기는 1999년 미국 월가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워버그 핀커스라는 투자그룹이 시네마서비스 지분 45%를 2000만달러에 사들인 거죠. 워버그 핀커스가 200억원을 넣어주면서 장부를 뒤져보더니 사업을 참 잘했다고 칭찬했습니다. 공금 1원짜리 하나 횡령 안 했다는 거지요. 보통 회사 장부를 들여다보면 마구 빼내 쓴 게 드러난다는 거예요. 시네마서비스가 무너지기 힘든 회사로 변신한 거죠. 두 번째로 로커스라는 벤처기업과 결합하면서 커졌습니다.”

    -아까 어려울 때 기도한다는 말을 했는데 교회에 다닙니까.

    “우리 식구 모두 교회에 나가는데 나만 빠집니다. 주일을 지키기가 힘들어요. 아내에게 조금만 기다려주면 당신 손 잡고 교회 갈 날이 있을 거라고 약속했습니다. 지금은 좀 봐달라는 거죠. 너무 바쁘니까.”

    -상업영화에서 번 돈으로 예술영화에 투자한다는 강 감독의 철학에 대해 쇼맨십이라고 비웃는 사람들이 있어요.

    “쇼맨십에 그렇게 많은 돈을 투자합니까. 쇼맨십 보이려면 2억∼3억원짜리 독립영화 찍는 데 투자하지 ‘취화선’ 같은 영화에 44억원을 투자하겠습니까.”

    -‘취화선’은 프랑스에 수출했는데 실적이 어땠나요.

    “흥행엔 실패했습니다. ‘취화선’ 투자로 20억원 손해봤습니다. 돈보다는 영화 자체의 의미가 크죠. 상업영화에서 돈 못 벌었으면 ‘취화선’ 투자 못 했니다. 왜 ‘있는 놈이 더 무섭다’는 말이 있잖아요. 돈 있는 사람들이 돈 더 안 써요.”

    -스스로 아티스트가 아니고 엔터테이너라는 이야기를 자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내가 입버릇처럼 하는 얘기가 ‘재미없는 영화는 영화가 아니다’는 겁니다. 관객을 즐겁게 해주지 못한다면 영화로서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뜻이죠. 예술영화라 손님이 안 든다는 말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관객들로부터 무시당하는 것이 예술영화라면 언어도단입니다. 엔터테이너로서 장인의 소리를 듣고 그 다음에 예술가로 평가받는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겠죠. 나는 관객들을 즐겁게 해주려고 노력하는 감독이고 싶어요. 언젠가 추리소설 작가 스티븐 킹이 전미 도서상을 받은 것처럼 나도 예술가로 인정받으면 좋긴 하겠지만….”

    ‘바람 불어 좋은날’ 보고 대학 중퇴 결심

    -기막힌 예술영화 만들어서 칸이나 베를린에서 큰 상 받아보고 싶은 욕심은 없나요.

    “욕심은 있죠. 실행에 옮기려면 상당히 시간이 걸릴 거 같은데요”

    -딱 한 작품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 태워 없애라면 어느 작품을 남기고 싶습니까.

    “실미도.”

    -지금까지 만들었던 영화 중에서는.

    “투캅스 1.”

    -강 대표가 감독한 영화에 한석규가 거의 등장하지 않던데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내가 감독한 영화에 꼭 그 친구가 나와야 한다는 생각은 별로 해본 적이 없어요. 감독한 영화에는 안 나오지만 한석규가 출연하는 영화 제작은 많이 했습니다. 그 친구 좋아합니다. 석규도 나한테 잘하고. 내가 제작한 ‘초록물고기’ ‘텔미썸딩’ ‘넘버 쓰리’에 한석규가 출연했습니다.”

    -화가는 다른 화가를 시샘하고 글 쓰는 사람은 다른 글쟁이를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죠. 조금 거북한 질문 같지만 감독으로서 역량 있는 한국 감독을 서너 명만 꼽는다면 누구를 꼽겠습니까.

    “임권택 감독한테는 두려움까지 느낍니다. 임 감독은 대본을 직접 쓰거든요. 대사가 잘 어울립니다. ‘장군의 아들’ 하면 ‘장군의 아들’에 맞는 대사가 나오고 ‘취화선’을 하면 ‘취화선’에 맞는 대사가 나옵니다. 대화에도 유머가 있습니다. 표현은 어눌한데 웃겨요. 영웅치고 유머 없는 사람 없다고 하던데 임 감독한테서 그런 느낌을 받습니다. 젊은 감독 중에는 강제규 감독을 높이 평가합니다. 강제규 감독은 뚝심이 있어요. 그 친구 영화를 보면 저런 엄두를 어떻게 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막 밀어붙여서 누구도 불평 못하게 넘어가버립니다. 대단히 뚝심 있는 감독입니다. 그 친구도 한국 영화계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겁니다. 후배들 중에는 장진 장윤현 김상진 감독의 캐릭터가 아주 독특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흉내내기 어렵습니다. 김상진의 ‘신라의 달밤’이나 ‘주유소 습격사건’이 그렇습니다. 장진 감독은 어린 나이에 유머감각이 뛰어나죠. 장윤현도 마찬가지고. 이런 감독들이 계속 나오면 내가 감독 안 해도 될 거라는 생각도 들어요.”

    그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영화감독이 될 결심을 했다. 다섯 살 때부터 어머니의 치마꼬리를 붙잡고 영화관에 들어갔다. 어머니는 프로가 바뀔 때마다 영화관에 갔다. 아버지는 “여자가 나돌아다니면 안 된다”는 완고한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어머니가 막내를 데리고 영화관에 간다고 하면 허락했다. 강 감독은 어머니의 인질이었던 셈이다. 처음에는 어머니에게 끌려가 졸 때도 많았지만 나중에는 영화 보는 것이 습관처럼 됐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이담에 커서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떠들고 다녔다. 고등학교 때는 생활기록부의 장래 희망 난에 ‘영화감독’이라고 썼다가 담임선생님한테 꾸지람을 들었다.

    중3 때는 ‘바보들의 행진’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대학교 2학년 때는 이장호 감독의 ‘바람 불어 좋은날’을 보고 더 이상 학교에 다닐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성균관대 영문과를 그만두었다.

    -‘바람 불어 좋은 날’의 어디가 그렇게 좋았습니까.

    “소시민들의 얘기입니다. 문화적 쇼크였죠. 내가 지금 도서관에서 기말고사 준비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내 인생에 아무 도움이 안 되는 학문을 계속해야 하나 고민했죠. 그러다 대학을 중퇴하고 무작정 충무로로 나왔습니다.”

    강 감독의 어머니 배영연(74)씨는 지금도 아들이 만든 영화에 대한 평을 혹독하게 하는 영화 마니아다.

    “어머니가 제일 싫어하는 것은 여자들 옷 벗기는 영화입니다. 영화감독 그만두는 한이 있더라도 그런 영화 하지 말라고 하시죠. 그 다음으로 관객이 들지 않는 영화는 하지 말라고 말씀하세요. 아들 무시당하는 꼴은 못 보겠다는 뜻입니다. ‘공공의 적’ 같은 경우 ‘영화는 잘 만든 거 같은데 아무리 영화지만 부모 죽이는 게 말이 되느냐’고 혼이 났죠. 내가 만든 영화 중에 ‘투캅스’를 제일 좋아하십니다.”

    -삼성·대우 같은 대기업의 영화투자를 기피한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나마저 대기업에 줄 서면 우리 영화판은 다 죽게 된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그 사람들은 돈이 벌리지 않으면 떠날 사람들이라는 걸 처음부터 알았어요. 실제로 삼성·대우가 영화판에서 손뗄 때 한국 영화 나 혼자 제작했어요. 삼성·대우에 기웃거렸으면 개인적으로는 몇십억원 벌었을지 모르지요. 목돈을 건 스카우트 제의를 여러 번 받았으니까.”

    -청문회는 아니지만 재산에 대해서도 좀 묻지요. 주식 외에 부동산은 얼마나 됩니까.

    “부동산은 없어요. 내 집, 어머니 사는 집, 그리고 내가 지금 사는 집을 팔고 이사 가려고 파주 헤이리 아트밸리에 땅 사놓은 거 있습니다. 번 돈은 스튜디오와 시네마서비스에 들어가 있고 얼마간 갖고 있는 현금도 투자대기중인 돈입니다.”

    -영화에 투자할 때 어떤 걸 판단자료로 삼습니까.

    “일차적인 자료는 시나리오입니다. 여자도 첫눈에 ‘야 예쁘다’ 하는 여자가 있잖아요. 시나리오도 마찬가지입니다. 첫눈에 죽인다는 느낌을 주는 시나리오가 있어요. 배우는 나중 문제입니다. 내가 감독하거나 투자했던 ‘주유소 습격사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여고괴담 1편’ ‘넘버 쓰리’ ‘신라의 달밤’ 모두 시나리오가 좋았어요. ‘이건 동네 개가 찍어도 된다’고 말한 시나리오 중에 영화 찍어 망한 게 한 편도 없어요. 두 번째는 누가 이 영화를 제작하고 감독하느냐를 봐요. 시나리오가 다소 미흡해도 만드는 사람들에게 믿음이 가면 투자합니다.”

    -시나리오 작가는 얼마나 됩니까.

    “등록한 사람만 200여명 가량 됩니다. 죽이는 작가는 대여섯 명 될까요.”

    -이름을 거론해보지요.

    “‘실미도’ 쓴 김희재가 죽이고, 장진은 감독이면서 시나리오 대가입니다. 자기 영화는 자기가 직접 쓰니까. 거의 천재과예요. 지금은 안 쓰지만 ‘투캅스’ 썼던 김성홍 감독, 이 세 사람을 꼽겠습니다.”

    -시나리오 직접 써본 적 있습니까.

    “조감독 시절에 대충 써본 적 있습니다. 내가 쓸 수 있다고 하더라도 안 씁니다. 누군가 써준 거 가지고 연출해야지 내가 쓴 걸 찍자면 거기에 몰입해 그 틀을 벗어나지 못해요.”

    -투자를 결정할 때 인상을 보고 판단한다면서요. 관상을 공부했습니까.

    “별도로 공부는 안 했습니다. 그냥 첫인상을 보고 느낌으로 합니다. 지금까지 별로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비과학적인 거 아닙니까, 그 사람의 여러 가지 경력이나 주변의 평가, 과학적인 데이터를 보고 판단해야지….

    “이미 나를 찾아올 정도면 영화계에 어느 정도 노출돼 있죠. 그만큼 내가 사람을 중요시한다는 뜻입니다.”

    숫자 감각이 경영에 큰 도움

    그는 초등학교 때 주산 암산을 익혔다. 주산은 3단까지 땄고 전국 암산왕을 차지한 적이 있다. 웬만한 계산은 계산기를 쓰지 않는다. 숫자를 보면 가감승제해보는 버릇이 있다. 강 감독은 휴대전화에 전화번호 저장을 해놓지 않는다. 전화번호를 300개 가량 외운다.

    그는 영화배우 안성기와 김상진 감독의 전화번호를 댔다. 동아일보에서 영화를 오래 담당했던 김희경 기자 번호를 물었더니 회사 직통번호를 외우고 있었다.

    -숫자 감각이 경영에 도움이 됩니까.

    “상당히 도움이 됩니다. 다른 사람 같으면 하나씩 검토할 거 아니예요. 나는 한번에 죽 정리되니까 판단이 빠르죠. 영화계에서 강우석은 검토하는 데 10분도 안 걸린다들 말해요.”

    중학교 때 IQ가 140이었다. 경주에서 초등학교 다닐 때는 경상북도에서 IQ가 제일 높게 나와 대구교육청에서 가정환경조사를 나온 적도 있다. 그런데 IQ가 높은 데 비해 영화 보느라고 그랬는지 성적은 별로였던 것 같다. 명문학교 학생으로 뽑히지 못한 것으로 봐서는.

    강 감독의 아버지는 황해도 해주 출신으로 경주에서 사업을 했다. 형 누나들은 서울에서 공부하고 강 감독은 막내라서 부모와 오래 머물러 있다가 초등학교 때 서울로 전학을 왔다.

    -한 달 용돈은 얼마나 씁니까. 업무관계로 쓰는 돈 말고 술 한잔 하고 어디 가서 맛있는 밥 먹고 하는 순수한 용돈 말입니다.

    “어느 자리에 가든 으레 내가 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절약해도 한 달에 1000만원은 씁니다. 나는 법인카드 안 쓰고 개인카드를 씁니다. 그러나 접대 때문에 룸살롱 갈 일 생기면 사장보고 나오라고 해요. 난 이거까지는 못 내겠으니 법인카드로 계산하라고 하지요.”

    -영화사 하면서 룸살롱 접대할 일이 많습니까.

    “투자자들하고 술마실 때 그런 데 가잖아요. 투자규모가 워낙 크니까 술자리 돈은 거기에 비하면 극히 작은 편이지요.”

    -집에서도 소주 마십니까.

    “네. 집에서는 거의 소주를 마십니다. 와이프도 소주를 좋아합니다.”

    영화 ‘실미도’로 ‘반지의 제왕 3’와 맞붙는 ‘충무로 군주’ 강우석

    지난 4월 실미도 현지에서 열린 영화 ‘실미도’ 제작 발표회.

    -발렌타인 30년짜리도 술맛 좋던데….

    “나는 그 맛 잘 모르겠더라고요. 술 많이 마셔봤지만 12년짜리나 30년짜리나 차이를 모르겠어요. 1차로 꼭 소주를 마신 뒤 양주를 마시기 때문에 취기가 올라 맛을 감별하지 못하는데다 성격이 급해 빨리 먹거든요.”

    -술 마시다가도 밤 12시만 되면 반드시 튄다면서요.

    “11시에는 몽유병 환자처럼 일어섭니다. 왜냐하면 항상 다음날 아침에 약속이 있으니까요. 새벽 2, 3시까지 마시면 아침에 술냄새가 나고 비몽사몽일 테니 만날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겠어요.”

    -주량은 어느 정도입니까.

    “소주로 4병까지 마십니다.

    -성격 급한 것은 인터뷰 하면서도 느끼겠어요. 말이 아주 빨라요.

    “성격이 급해 손해볼 때가 엄청 많습니다. 조금만 더 들으면 투자 안 해도 될 것을 성격이 급해 하자고 결정해놓고 번복하길 싫어하니까 딸려가 손해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국 영화의 시장 점유율이 40~50%로 올라가면서 충무로에 개미 투자자들까지 몰려들었지 않습니까. 그러나 영화판에서 돈 벌던 시대는 끝났다는 이야기도 나오더라구요. 갈수로 제작비가 늘어나는 추세여서…. 투자시장으로서 영화판의 전망은 어떻습니까.

    “영화의 퀄리티는 좋아지겠지만 돈 벌 확률은 낮아질 겁니다. 나도 영화 제작편수를 줄여서 한 해에 3, 4편만 하면 진짜 돈 벌 자신 있어요. 그런데 영화판을 키우고 영화판 사람들을 끌어안고 공생해야 하니까 그렇게 소수정예로 해서는 안 되죠.”

    ‘실미도’ vs ‘반지의 제왕 3’

    -한국 영화가 제작비가 올라가고 시장은 좁아 탈출구가 보이지 않잖아요. 외국시장을 개척해보면 어떨까요. 한국 드라마가 중국 베트남에서 한류(韓流) 바람을 일으키는 것을 보면 영화도 그곳에서 가능성이 있다고 봐야 하는 것 아닙니까.

    “동남아 시장은 충분히 먹을 수 있어요. 중국이 열렸거든요. 중국시장의 각종 제약이 풀리고 있습니다. 한국 영화가 중국과 동남아에서 1년에 몇 개라도 대박을 터뜨리면 영화판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내가 이번에 ‘실미도’를 일본에 직배하려고 합니다. 12월16일에 일본에서 처음으로 한국영화 시사회를 합니다. 전략이 맞아떨어진다면 워낙 시장이 커서 해볼 만합니다. 잘하면 ‘실미도’ 제작비를 일본에서 다 뽑을 거라는 생각도 들어요. 우리 관객들이 관심을 가져주면 일본에서도 터집니다.”

    일본에서 ‘쉬리’는 성공했지만 ‘공동경비구역 JSA’는 실패했다. 직배를 한 일본에서 ‘실미도’가 ‘쉬리’처럼 성공한다면 한국 영화제작의 새로운 젖줄이 될 수 있다.

    -미국과 유럽시장은 어떻습니까.

    “유럽은 가능하지만 미국은 폐쇄적입니다. 영어권이 아닌 나라 영화에는 관객이 들질 않아요. ‘와호장룡’처럼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칼을 던지는 영화라야 손님을 끕니다. 태권도 영화도 잘 만들면 성공할 수 있겠죠. 미국 관객들은 격투기 영화를 좋아하니까. 그러나 ‘공동경비구역 JSA’ ‘쉬리’ 같은 영화는 미국에서 성공하기 쉽지 않습니다. 정말 독창적인,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영화라야 성공할 수 있어요. ‘쉬리’는 일본에서 성공했어요. 그것처럼 중국시장만 뚫으면 한국 영화의 살길이 생길 거 같아요. 중국시장이 없다면 우리 영화의 전망은 어두워요.”

    그는 후배 감독들에게 골프를 못 치게 말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골프가 너무 재밌기 때문이라고 한다. 재미있는 잡기에 빠져 본업에 소홀할까봐 골프를 못 치게 한다는 것이다. 강 감독의 핸디캡은 90대 초반. 영화 찍을 때는 골프에 손대지 않고 세종호텔 헬스클럽에서 40분씩 트레드 밀을 타는 것으로 운동을 대신한다.

    그는 결혼도 타고난 성질대로 했다. 38세에 영화배우 안성기씨에게 급하게 부탁해서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조소를 전공하던 24세의 신부와 결혼했다. 영화에 미쳐 장가를 안 들고 있자 스포츠신문 스캔들 기사의 단골이 됐다. 여배우랑 같이 있어도 스캔들이 생기고, 영화담당 여기자랑 술을 마셔도 연애한다는 소문이 났다. 그는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한번은 스캔들에 오르내린 여기자에게서 항의 전화가 왔다. 영화판이 한심하다는 거였다. 더 이상 견디기 어려워 안성기씨에게 전화를 했다. 안성기씨의 부인 오소영씨가 이화여대 미대 조소과 출신으로 모교에서 강의를 했다.

    “‘성기 형. 결혼하고 싶으니 형수한테 얘기해서 후배 중에 아무나 소개 좀 해달라고 해주세요’라고 했지요. 1주일 만에 연락이 왔어요. 형수가 소개해준 대학원생과 커피 한잔 마시고 바로 결심해 한 달 반 만에 결혼했습니다. 형수씨가 4년을 지켜봤는데 정말 괜찮은 여학생이라고 추천했어요. 내가 나이 차이가 너무 많다고 하니 형수씨가 ‘나도 다빈이 아빠하고 10년 넘게 차이 나는데 아무 문제 없다’며 만나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결혼해 지금 다섯 살, 네 살, 두 살 난 2남1녀를 두었다. 금실이 좋은 모양이다.

    시사회에서 본 ‘실미도’는 지금까지 강 감독이 제작한 영화와는 확실히 유가 달랐다. ‘실미도’가 관객의 반응에 따라서는 한국 영화의 흐름을 바꿔놓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개봉하는 ‘실미도’는 한국에서 거푸 관객동원 기록을 세운 ‘반지의 제왕 3’와 격돌한다. 한국영화의 시장 점유율이 50%를 넘느냐가 ‘실미도’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지의 제왕’과 ‘충무로 군주’가 벌이는 한판 전쟁이 올 겨울 극장가를 뜨겁게 달궈놓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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