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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용 목사의 체험 한국 현대사 ②

이승만·조봉암 사이에서 양다리 걸친 미국

  • 대담: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한국학 tgpark@snu.ac.kr

이승만·조봉암 사이에서 양다리 걸친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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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 민주의원을 만든 2월14일은 북한에서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창설된 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일부 연구자들은, 3월로 다가온 미소공동위원회를 염두에 두고 미군정 쪽에서 민주의원을 급조했으며 이는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강 : 명동성당에서 열린 비상국민회의에서 정부 조직을 이승만·김구에게 위임한 것은 미군정측이 조정한 결과입니다. 특히 버치 중위의 역할이 컸던 듯싶어요. 임시정부와 사이가 좋지는 않았지만, 비상국민회의를 무시할 수는 없었기에 미국측이 개입한 게 아닌가 싶어요. 북한에 대한 미군정청의 대응과 관련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박 : 말씀 중에 이극로씨 이야기가 나왔는데, 유명한 국어학자이지 않습니까. 이극로씨는 중간운동을 좀 하다가 조봉암씨와 손잡고 제3전선인 민주주의독립전선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독립전선이 좌우합작위원회에 참여하려 하자 김규식 박사가 거부한 것으로 압니다. 이쯤에서 본격적으로 죽산(竹山) 조봉암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으면 합니다. 먼저 해방 직후 상황부터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강 : 조봉암씨는 공산당 인천지구당 책임자였습니다. 그러다가 박헌영하고 노선을 달리해서 신문에 ‘박헌영 동무에게 보내는 글’을 쓰고 탈당했죠. 그런 글을 두 번인가 썼어요(조봉암은 1946년 4월말 미군정에 체포됐고, 그 직후 미군정이 그의 사무실을 수색하다 편지를 발견했다. 그가 미군정에서 풀려난 직후 그 편지가 신문에 실렸고, 조봉암은 조선공산당에서 탈당하고 전향하겠다고 선언했다). 조봉암씨는 탈당한 후 김규식 박사를 만나려고 했는데, 김박사가 이를 거부했어요. 그래서 제가 김규식 박사한테 “만나야지 왜 거부합니까” 했더니 “이 사람아, 한번 공산당 한 사람은 바뀌지 않아. 조봉암씨는 믿을 수 없어. 공산당 하던 사람을 어떻게 믿어” 하는 겁니다.

그 무렵 조봉암씨가 공산당을 탈당한 게 아니라 박헌영이 이승엽을 인천지구당 책임자로 앉혔기 때문에 반발했을 뿐이라는 소문이 돌았어요. 조봉암은 김규식 박사를 지지하고 좌우합작운동에 참여하려고 했지만, 김박사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공산당은 절대 안 돼”

박 : 김규식 박사가 조봉암씨를 그토록 신뢰하지 않았습니까?

강 : 김규식 박사가 중간노선을 취했다며 불그스레한 사람으로 보는 이들도 있지만, 그 양반은 철저한 반공이었습니다. 미군정에서는 김규식 박사를 굉장히 좋아했어요. 그래서 적십자사 총재를 시켰죠. 그런데 적십자사 이사로 각 정당 대표가 다 들어오는 바람에 박헌영이 이사가 됐어요. 그러니까 김규식 박사가 “나는 박헌영이 이사를 맡은 조직에 앉아서 일 못한다”는 거예요. 김규식 박사가 그런 사람이거든. 그래서 제가 김규식 박사더러 “그렇게 공산당을 싫어해서야 어떻게 좌우합작을 합니까” 하고 물은 적이 있어요. 그랬더니 김 박사가 이런 얘기를 들려주더군요.

“내가 러시아에 자주 다녀왔는데, 러시아 사람들은 참 선량하다. 그런데 그곳에서 레닌이 1917년에 혁명을 일으켜 1922년까지 5년 사이에 700만명을 죽였다. 또한 알바니아라는 조그마한 나라에서 공산당이 혁명을 일으켰는데, 단 하루 만에 6만명을 죽였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러시아 사람들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잔인하다. 만일 한국에서 공산당이 정권을 잡게 되면 피바다가 된다. 그러니까 절대로 공산당이 들어와선 안 된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보니 공산당이라고 하면 아예 상대를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조봉암씨가 들어오지 못하고 이극로와 민주주의독립전선을 만든 거죠. 여기에는 나중에 이북에 가서 거물이 된 사람들이 여럿 들어왔습니다.

저는 독립전선 때문에 억울한 일을 당하기도 했어요. 이 사람들이 중앙위원 명단을 발표하면서 거기에다 제 이름을 집어넣은 겁니다. 저는 독립전선에 가담한 일이 없거든요(강원용 목사는 여운형이 암살당한 후 김규식의 주도로 조직된 민족자주연맹에 기획담당 책임자로 참여했다). 당시 전북지방에 자주 강연하러 갔었는데, 한번은 거기에서 차를 세우려니까 잘 아는 장로 한 사람이 차에 뛰어오르더니 “내리지 마십시오” 해요. 왜 그러냐니까 “내리면 테러당해 죽습니다” 하는 거예요. 까닭을 물으니 제가 공산당 조직의 중앙위원이 돼서 그렇다더군요. 그 무렵 제가 전북 일대에 강연을 하면서 바람을 일으켰는데, 보수파에서 이를 아주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보수파에서는 저를 초청한 이승만 박사 계열의 김춘호라는 사람까지 징계했을 정도예요. 그런 분위기에서 조봉암과 이극로 같은 이들이 중간세력으로 나서려다 결국 와해되고 말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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