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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方外之士

한라산 名人 대각심(大覺心) 스님

“내 삶의 화두는 ‘이 뭐꼬’”

  • 글: 조용헌 원광대 초빙교수 cyh062@wonkwang.ac.kr

한라산 名人 대각심(大覺心)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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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의 수행을 마친 고승에게선 6가지 신통력이 나온다고 한다. 첫째는 숙명통(宿命通), 둘째는 천안통(天眼通·멀리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능력), 셋째는 타심통(他心通·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능력), 넷째는 신족통(神足通·축지법), 다섯째는 천이통(天耳通·하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능력), 여섯째가 누진통(漏盡通·번뇌가 사라진 경지)이다.

이 중에서 가장 어려운 능력이 누진통이다. 여기서 말하는 번뇌는 성욕을 가리킨다. 성욕으로 인해 생기는 번뇌를 끊기는 무척 어렵다고 한다. 따라서 누진통에 도달한 사람은 성욕으로부터 해방된 인간이다.

누진통을 얻은 사람의 구체적인 징표는 무엇인가. 남자는 정액이 새지 않고 여자는 생리가 중단된다. 도교의 내단학(內丹學)에서는 이를 항백호(降白虎), 참적룡(斬赤龍)이라는 구체적인 용어로 설명한다. 백호를 항복 받고 붉은 용을 절단한다는 뜻이다. 백호는 남자의 정액을 지칭하고 붉은 용은 여자의 생리를 상징하는 표현. 항복과 절단의 의미는 이것을 중지시킨다는 것이다. 누진통의 경지를 체험한 고수들로부터 정액은 물론 땀도 별로 나오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누진을 시키는 과정은 인체의 연금술 원리에 따라야 한다. 심장의 불기운을 신장의 물기운 속에 접어 넣는 것. 이렇게 되면 아랫배에 단(丹)이 형성된다. 그러면 남자의 경우 성기가 어린아이의 고추처럼 줄어든다. 이런 상태를 마음장상(馬陰藏相)이라 부른다. 말의 성기가 번데기처럼 줄어들어 있는 형태와 유사하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붓다의 신체적 특징을 나타내는 32상 가운데 하나가 바로 ‘마음장상’이다. 남자의 경우 누진통을 얻었는가 여부를 같이 목욕탕에 가보면 확인할 수 있다.

종합해보면 누진통의 형이상학적 정의는 성욕으로 인한 번뇌가 사라진 경지를 가리키고, 형이하학적인 정의는 정액(생리혈)이 새지 않는 경지로 압축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성욕이 사라졌는가, 아닌가의 현실적인 증거는 정액 또는 생리가 계속되는가 안 되는가로 환원할 수 있다.



“대각심 스님은 언제 생리가 끊겼습니까?”

“아마 서른여섯 살 때일 거야. 생리가 묻은 속옷을 갖다 놓고 돌로 자근자근 쪼았어. 중단되라고 말이야. 그러니까 중단되면서 음심이 사라지더구만. 마치 아이 낳는 것처럼 배에 통증이 오면서 음심이 빠져나갔지.”

대각심이 한라산에서 살기 시작한 것은 1957년부터다. 1922년생이니 35세의 나이였다. 그는 세속에서 결혼을 했었고 아들도 하나 두었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항상 불도를 닦아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밭에서 김을 매다가 홀연히 손에 들고 있던 낫으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버렸다. 그 머리카락을 세 차례 허공에 던지면서 “이 머리카락 수만큼 많은 도를 기필코 이루리라”고 소리쳤다. 그 후 남편과 아들을 버리고 무작정 한라산에 들어왔다.

당시 한라산의 절물은 사람이 전혀 살지 않는 곳이었고 길도 없었다. 잡목만 무성한 야생의 밀림지대였다. 여자의 몸으로 혼자 나무를 꺾고 돌로 담을 쌓아 움막집을 짓고 살았다고 한다. 미국 매사추세츠의 월든 호숫가에서 혼자 살았던 소로우처럼, 대각심도 한라산의 숲 속에서 외부세계와 단절된 야생의 상태로 혼자 살았다. 의식주를 자급자족하는 원시적인 생활이었다.

어느 날 저녁 무렵에 남자 한 명이 들이닥쳤다. 여자 혼자 산다는 말을 듣고 겁탈하려고 온 것이다. 대각심은 예지력으로 남자가 겁탈하려 오리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준비하고 있었다고 한다. 낫을 숫돌에 갈아서 예리하게 다듬어놓았던 것이다.

“그 남자가 나를 덮치려고 다가오더구만. 그래서 내가 ‘강아리(여자의 생식기를 지칭하는 제주도 방언)가 두 개라면 이 낫으로 그걸 하나 오려내서 너를 주겠지만, 하나뿐이라서 줄 수 없다. 만약 네가 나를 덮치려고 가까이 오면 이 낫으로 내 목을 칠 것이다’ 하고 큰소리로 외쳤지. 그리고 낫을 내 목에 턱하니 걸쳐놓았어. 가까이 오면 내 목을 잘라버릴 각오를 하고 있었지. 그까짓 죽는 일에 미련이 없었어. 그러니까 남자가 돌아가더라고. 속으로 미친년이라고 생각했을 거야.”

이 말을 하고 대각심은 큰 소리로 웃어제쳤다. 웃음소리가 어찌나 큰지 80대의 고령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고승들이 설법할 때 그 소리가 크고 우렁차기 때문에 사자가 부르짖는 것 같다고 해 ‘사자후를 토한다’고 표현하는데, 대각심의 음성이 그랬다. 마치 암사자가 포효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임신 후 부부관계는 금물

한번은 육지에서 큰스님이라고 알려진 유명한 스님이 약수암을 방문했다. 따르는 사람도 많고 매스컴에도 자주 등장한 그야말로 큰스님이었다. 대각심은 그와의 첫 대면에서 이렇게 말하였다고 한다.

“당신이 큰스님이라고? 뭐가 커서 큰스님이야? 좆이 커서 큰스님인가? 불알이 커서 큰스님이야? 어디 한번 내놔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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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조용헌 원광대 초빙교수 cyh062@wonkw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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