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월호

눈 오는 날엔 김장배추 꺼내고, 눈 녹은 날엔 광대나물 무치고

  • 글: 장영란 odong174@hanmail.net

    입력2003-12-29 17: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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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돈 생각을 하면 시골서는 답이 없다. 그러니 갈무리해놓은 것을 하나하나 꺼내 먹으려 하루 한 가지씩 묵나물 먹기, 해 나는 날에는 겨울 나물 해먹기. 이렇게 목표를 정하고 살아간다.
    눈 오는 날엔 김장배추 꺼내고, 눈 녹은 날엔 광대나물 무치고

    필자의 아이들이 처마 끝에 달린 고드름으로 칼싸움을 하고 있다.

    올해는 날이 따뜻해 첫눈이 늦었다. 올 겨울은 어떤 겨울이 될까? 여기는 눈이 많고 길이 산을 끼고 돌아 11월부터 길 양쪽에 모래주머니를 쌓아놓는다. 우리 집은 국도에서 지방도로로 갈라져 6km 정도 산허리를 끼고 돈 뒤, 다시 경운기 다니는 산길로 구불구불 올라와야 있다. 처음에는 비포장으로 울퉁불퉁하고 비 오고 나면 물웅덩이가 곳곳에 있는 데다 산길이라 험했다. 그러나 몇 년 사이 집으로 오는 길이 많이 좋아졌다. 강을 건너는 다리도 두 군데 새로 놓였고, 경운기 다니던 산길도 세 번에 걸쳐 포장 공사를 한 덕에.

    그 사이 우리는 프라이드 디엠을 몰았는데 이 차는 정말 달구지처럼 웬만한 비포장 길도 탈없이 달려주었다. 전국 곳곳에 땅을 알아보러 참 많이도 다녔는데 산길도 꽤 돌아다녔다. 그래도 눈이 오면, 집으로 오는 비탈을 오르내리기 어렵다.

    산속에 집을 짓고 사니, 눈이 오면 어떻게 해요? 하는 걱정을 듣는다. 눈이 왔는데 급한 일이 생겨 나가야 하면 어쩌느냐는 소리겠지. 도시에 사는 사람한테는 당연한 걱정이다. 나도 똑같은 질문을 했으니까. 여기 와서 몇 년은 큰 눈이 온다거나 큰 비가 온다고 하면 차를 큰길까지 미리 빼놓았다. 물론 지금도 차를 쓸 일이 있으면 그래야겠지. 하지만 아무 예정이 없는 데도 만에 하나가 걱정이 되어 차를 빼놓을 필요는 없다. 이제는 고립된다는 두려움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기 때문이다.

    눈이 오면 모든 기계 소리, 경운기 소리마저 멈춘다. 고요하다. 세상이 눈으로 뒤덮이니, 이럴 때는 뜨뜻한 아랫 목을 차지하고 앉아 눈 오시는 걸 구경한다. 앞산에도 눈, 뒷산에도 눈. 마당에도 눈, 지붕에도 눈. 눈이 그치고 나면 눈을 쓸어 길을 내고. 아이들 눈사람 만드는 데 끼여 나도 만든다. 눈에 코를 박고 한 입 먹어본다. 맛이 없다. 그런데 그 눈이 고드름이 되면 참 맛있다. 고드름이 달리면 아이들은 그걸 따서 얼음 칼싸움도 하고, 으드득으드득 씹어 먹기도 한다. 작은애는 고드름을 냉동실에 넣어두기도 한다. 우리 어른은 눈을 떠서 커다란 통에 담는다. 눈 녹은 물에 볍씨를 담기 위해서다.

    눈이 많이 오면 집 앞길이 눈썰매장이 된다. 두터운 비닐로 된 비료 포대에 짚단을 넣으면 훌륭한 눈썰매다. 어차피 차가 못 다니니, 아이들은 신나게 탄다. 앉아서 타다 누워서 타고, 거꾸로도 타고, 서서도 타보고. 무주 리조트에 훌륭한 눈썰매장이 있지. 언젠가 손님이 와서 가자고 해 따라간 적이 있지만, 우리한테는 집 앞 눈썰매장이 더 안성맞춤이다.



    눈보라 치는 겨울밤, 문 여며 닫고 불땐 방바닥에 이불 덮고 누우면, 사람임에 그렇게 감사할 수 없다. 집을 지어 불까지 때고 사는구나.

    우리 집은 한옥이다. 한옥은 집안 꾸밈이 바로 문에 있다. 한옥 방 그림을 생각해보자. 무늬 없는 한지를 바른 벽, 나지막한 머릿장 하나 놓여 있고, 띠살문 문종이 사이로 은은하게 비쳐드는 빛. 이런 모습이 그려지지. 집을 지으며 문을 어떻게 할까 궁리를 많이 했다. 집은 한옥인데 문은 아파트 문을 달 수도 없고. 띠살문은 생산량이 많지 않아, 문 짜는 전문목수에게 주문제작을 해야 하니 값이 만만치 않다. 서울 황학동 고물상에 가서 헌 문을 사려고도 했고, 대전, 광주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

    한데 헌집에서 뜯은 문은 낡기도 했지만, 높이가 낮다. 왜 그럴까? 추운 곳이라 문을 작게 해 달려고 그랬나? 목수 말이 우리나라에는 문을 짤 나무, 그러니까 옹이 없이 곧게 자란 나무가 귀하단다. 고관대작이야 쉽게 구할 수 있었겠지만, 시골에서 농사 지으며 살아가는 농민들이 그런 나무를 구할 길이 없었겠지. 실제 황학동 고물상에 가 보니, 높이가 어른 키보다 높은 문은 양반 집에서, 그것도 중부지방 양반가에서 뜯어온 문이란다.

    궁리 끝에 바깥문은 유리문을, 안에는 띠살문을 달기로 했다. 여럿이 드나드는 마루문은 집안 얼굴이라 목수에게 맡겨 짜기로 하고. 집 짓는 나무 가운데 좋은 걸 골라 문 짤 나무로 삼았다. 방문으론 광주에서 짜놓은 띠살문을 구해두었고.

    남편은 안방 문만은 손수 짜고 싶어했다. 안방에는 문이 많다. 방문 두 짝을 빼고도, 창문 두 짝. 붙박이장 문 두 짝. 쪽창 하나, 불밝이창문 두 짝. 집 꼴이 갖춰지는 대로 들어와 살면서, 남편은 시나브로 문을 짰다. 급한 대로 쪽창부터, 그 다음 벽장문을 짜고, 불밝이창 두 짝. 그러고 나서 광 문, 보일러실 문, 효소광 문…곳곳에 문을 짜서 달았다. 그러더니 일년이 지나도 안방 창문은 감감무소식.

    여기서 우리 부부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나이는 나보다 위지만 대학 학번이 같은 남편과 나는 결혼 뒤에도 한동안 친구였다. 결혼 뒤 10여년이 흐르고, 아이 둘이 자라면서 관계가 새롭게 바뀌기 시작했다. 그러다 시골로 내려와 하루종일 붙어살게 되니, 서로를 새롭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었다. 도시에서 우리 부부는 아침밥을 같이 먹고 나면 서로 다른 세계에서 지냈다. 주말에야 같이 있고 서로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고 하지만 함께하는 건 일부일 뿐이다. 그런데 시골로 내려오니 늘 함께 지내게 된다. 사람을 사귀어도 함께 사귀고. 일을 해도 함께 해야 하고. 그러니 참 많이도 부딪혔다.

    그렇게 부딪치면서 처음에는 왜 그런지 몰랐다. 처음에는 서운하고, 다음에는 답답하고. 남편을 원망해봤자 부부 사이만 벌어질 뿐이다. 귀농한 이웃들 사이에는 ‘남편은 머슴, 아내는 마님’이라는 우스개가 있다. 시골 일이 그렇지. 남자 손이 가야 되는 일이 그만큼 많다. 아파트야 집 밖은 관리소에서, 집 안은 전화 한 통이면 보수가게에서 다 해주지. 사실 자기 집 안팎을 돌볼 일이 있나. 한데 시골은 늘 손보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시골 살림이 어설플수록 손볼 일이 더 많다. 살림을 살다 어디를 고치려 하면, 그건 남자가 할 일로 여겨진다. 그러니 계획은 아내가 하고 그에 따라 일은 남편이 하지. 마님과 머슴이 따로 있나, 바로 여기 있다.

    한데 현대판 머슴은 마님 말을 잘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귀농해서 자연에서 살고자 할 때는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자 하지 않겠나. 그러니 집안일이지만 아내 말에 얽매일 리 없지. 이렇게 남편을 이해하려 하지만 그런다고 안방 문이 달리는 건 아니고, 겨울은 다가오는데 유리창만 한 겹 달려 있는 방을 볼 때마다 답답했다. 눈이 오고 난 뒤, 산책 삼아 처녀 혼자 사는 집에 놀러갔다. 마을 빈집에서 혼자 사는데. 처마 밑에 어른 팔목 굵기만한 아카시아 줄기가 세워져 있다. 그걸 보니 처녀가 낯선 산에 올라가 혼자 힘으로 땔감을 해오는 모습이 떠오른다. 나는 어떤가? 남편만 믿고 살지 않는가?

    자연에서 한 가정이 자립하는 일이 목표였다면 이제부터 한 인간으로 내가 자립하는 게 목표가 되었다. 그렇게 마음먹고 나니 안방 문 하나 내 손으로 못 짜랴 싶다. 남편도 언제 문을 짜본 적이 있나. 혼자 공부하고 궁리해가며 짜지 않았나.

    남은 목재를 모아 거기에 맞는 설계를 했다. 목재도 모자라고 내 실력도 그러니 살을 우물 정(井)자로, 그러니까 문살을 최대한 성기게 넣은 문을 짜기로 했다. 겨우내, 마당에 햇살이 좋을 때, 일을 한다. 대패질, 톱질, 망치질, 끌질. 직각자, 수평자 쓰는 법도 하나하나 배워가며 서투르게. 재고, 깎고, 자르고, 구멍 파고, 끼워가며. 드디어 마름질이 끝나고 문을 짜 맞추는데 어, 문이 평면이어야 하는데 꼬인다. 그걸 되는 만큼 바로잡아, 문 모양새를 잡았다. 남편이 달아주며, 나뭇가지로 만든 손잡이까지 달아주었다.

    서툴기 이를 데 없는 문이지만 그래도 문으로 손색이 없다. 그리고 얼마 뒤다. 이번에는 오리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남편에게 의논했다. 말이 의논이지 사실은 남편보고 하나 지으라는 소리지. 남편과 내 생각이 다르다는 걸 아는 순간, ‘까짓 거 내가 만들지.’ 이번에는 쉽게 나설 수 있었다. 그 뒤 짐승우리 문 정도는 처음부터 내가 뚝딱 만들어 단다. 이제 스스로 서려는 발걸음을 내디딘 셈이다.

    지금까지 해왔듯, 이 달 절기 이야기를 해보겠다. 1월1일 양력설이다. 대한(大寒)이 놀러왔다가 얼어죽었다는 소한(小寒) 추위 밀어닥친다. 모든 게 얼고 눈 쌓인다. 저장해둔 먹을거리 있으니 땅 얼고 눈 쌓여도 걱정 없고, 물도 얼지 않게 받아먹는구나. 새는 이런 날 어디서 자며, 산짐승들은 이런 날 어디서 먹이를 구할까? 산길에 새 깃털이 널브러져 있는 걸 보곤 한다. 아, 잡아먹혔구나. 처음에는 놀라고 가슴 아프기도 했지만, 이제는 목숨을 이어가는 이치구나 하고 넘어간다.

    우리 닭과 오리만 해도 바람 숭숭 드나드는 우리에서 추위를 견디며 자고 있겠지. 지난해 추위에 닭이 얼어죽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얼어죽지는 않을까? 아침에 해 뜨면 나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물을 떠다줘야지.

    겨울은 겨울답게 마음을 느긋하게 먹고 해 뜨거든 하루 일을 시작하고 해 지기에 앞서 불때고 집에 들어와 긴긴 겨울밤에 공부를 한다. 사람 사회는 1월1일부터 새해를 시작하나 농사는 땅이 풀려야 시작이니 아직 새 농사를 하기까지 시간이 있다. 자연에서 새해는 음력이 더 맞는다. 그 동안 미루었던 여러 일들 시나브로 처리할 때다.

    농사 지어 넣어둔 것을 하나하나 꺼내 끓이고 익혀, 겨울 이길 힘을 얻는다. 묵나물, 호박죽, 가래떡, 조청, 두부에 비지, 청국장, 전, 찹쌀떡, 강정, 묵. 처음에는 손에 익지 않고, 입에 달지 않다고 내가 갈무리한 것들 제쳐놓고 돈 주고 사서 먹기도 했다. 그러다 보면 돈이 필요하고, 돈 생각을 하면 시골서는 답이 없다. 여기서 이렇게 살 수 있을까 흔들린다. 그러니 갈무리해놓은 것을 하나하나 꺼내 먹으려 하루 한 가지씩 묵나물 먹기, 해 나는 날에는 겨울나물 해먹기. 이렇게 자기 목표를 정하고 살아간다.

    눈 오는 날엔 김장배추 꺼내고, 눈 녹은 날엔 광대나물 무치고

    필자가 가꾸는 밀밭이 눈옷을 입었다.

    대한이란 크게 춥다는 말인데, 날씨가 점점 이상하게 흐르곤 한다. 작년 이 맘때는 봄날같이 푸근하고, 때아닌 비까지 내리기도 했으니까. 그러다 바람 불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기온이 떨어지고 매서운 추위가 닥치기도 한다.

    아무리 한겨울이라 한들 날이 풀릴 때엔 양지 바른 곳에 광대나물 보랏빛 꽃봉오리 맺히고, 밭에는 들나물이 풋풋하게 웅크리고 있다. 햇살 좋아 눈 녹은 날은 광대나물, 벌금자리, 고수덩이 한바구니 무쳐 먹고, 눈 오고 추운 날은 저장했던 김장배추, 무, 당근을 하나씩 꺼내 먹는다. 아침 밥상의 싱싱한 푸성귀를 겨울이라고 포기할 수 있는가!

    우리 동네는 오일장이 선다. 장날 나가야 과일전도, 생선전도, 붕어빵 가게도, 옷가게도 선다. 이맘때면 장날 장에 간다. 생선전에 가기 위해서다. 한겨울 사람도 짐승도 든든하게 먹어야지. 잉걸불에 구워 먹을 생선이 있으면 사오고, 조개도 사거나 덤으로 얻어온다. 사람이 먹고 나서 조개껍데기, 생선뼈를 빻아서 닭과 오리한테 준다. 입춘이 얼마 남지 않았다. 입춘이면 알을 낳기 시작하겠지.

    새해를 맞아, 또 겨울 이야기로,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써보겠다. 시골에 와서 가장 좋은 것을 들라면,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고 하리라. 일을 해도 혼자 하고, 남의 눈을 마음쓰지 않고 내 좋을 대로 해도 괜찮다.

    겨울 아침 해가 창을 비출 때에야 느지막이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다. 집 안팎에 먹을거리 쌓여 있으니 군불 뜨뜻이 때고, 맛난 것 만들어 먹으며, 놀고 공부하고 지내기 좋지. 책을 보고, 바느질도 하고, 아이들과 함께 컴퓨터 게임에 도전해보기도 한다. 마을 사람과 어울리기도 하고, 여행을 가서 몇날 며칠 지내도 괜찮다.

    토막토막을 잘라서 보면 뭔가 다른 걸 하고 있지만, 가장 굵은 흐름은 마음공부다. 봄부터 가을까지 밖에서 바삐 일할 때와 달리, 겨울이 깊어질수록 자기와 마주하는 시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수녀님들이 묵언 피정을 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동안거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요즘 ‘치유(healing)’에 관심이 많다. 치료가 남이 해주는 거라면, 치유는 자기 안에서 온다. 영어로 치유라는 말이 ‘온전하게 만든다’는 뜻이라던가. 살면 살수록 자신이 상처도 많고, 그래서 막히고 꼬여 있다는 걸 보게 된다. 도시에서 살아갈 때는 자신 위에 옷을 입히고, 분장을 했다. 교양이라든가, 처세라든가, 하여튼 내가 하는 일에 걸맞게 행동하곤 했다.

    그러다 보면 진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 자신도 잊고, 어쩌다 나를 직면하는 일이 생겨도 바쁜 일상에 묻어둔 채로 살지 않았나. 자연에서 살다 보니, 분장이 지워지고, 자기를 돌아볼 시간이 많다. 또 자기 스스로 보지 못해도, 가족이, 이웃이 보고 거울을 들이민다. 고통스럽지. 그러나 사람이 어찌 자기 자신을 포기하랴.

    ‘치유’ 이야기가 나온 김에 몸 이야기를 해보자. 산골에서 좋은 공기 마시고, 흙집에 살면서, 유기농산물만 먹는데 아파요? 그러나 어쩌랴. 때론 아프고, 때론 병원에도 갈 일이 생기는 걸.

    서울 살 때 변비였다. 이건 시골 살면서 절로 바로잡아졌다. 먹는 게 바뀌고, 몸을 많이 움직이니 몸이 바뀌었겠지. 더 깊이 들여다보면, 도시에서는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든 움켜쥐며 살았으니 변비가 생겼다면, 자연에서 살려면 돌고 돌아야 하니, 내 속도 비워진다. 한데 허리가 다시 아프다. 나는 뼈대가 가늘고 길어서, 일찍 허리뼈에 이상이 왔다. 1970년대 학교를 다닌 사람이 그렇듯 책가방을 한 팔로 들고 다녔지. 사물함이 있나, 신발장이 있나, 책에 공책, 거기에 사전, 도시락, 실내화까지 든 가방을 들고. 내가 다닌 중·고등학교는 집에서 버스를 두어 번 갈아타고 한 시간을 가서, 다시 산꼭대기로 올라가야 있었다.

    그러니 낑낑대며 올라다녔다. 그때 허리뼈가 휘었는지 늘 허리가 아프곤 했는데, 큰애 낳고 허리 디스크가 왔다. 어찌저찌 치료를 받아 조심하면 그냥저냥 살 만했다. 그런데 시골로 와서는 20kg짜리 포대도 번쩍번쩍 들고, 일을 곧잘 해 허리 병이 다 나은 줄 알았다. 환골탈태했나 그러면서. 드디어 삽질, 톱질, 도끼질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다 허리가 아프기 시작하는데. 병원에 가보니 디스크가 있는 허리뼈에 퇴행성이 왔단다.

    남편은 아이가 아프면 왜 아픈지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아이 나름대로 치료방법을 찾도록 도와주곤 했다. 그러다 보면 스스로 추스르고 다시 아프지 않다고. 부모가 치료해주면 의지하고 만다고. 그래서 그런지 우리 아이들 같아서는 병원이나 약국은 망하게 생겼다. 아이들은 몸에 균형이 흐트러지면 자기 편한 자리에 누워, 하루종일 물만 먹고 푹 잔다. 그러고 나면 괜찮다. 작은애는 아직도 가끔 배가 아프다고 한다. 아직도 심심하고, 그래서 아이들과 어울려 놀거나 새로운 걸 만나면 흥분하곤 하는데 그런 삶이 아이 배를 아프게 하는 듯하다.

    치유에 관한 책을 보면 사람은 엄마 뱃속에서부터 상처를 받기 시작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작은애가 힘들어하는 게 이해가 간다. 뜻밖에 임신을 하고, 예정일에 맞춰 수술을 해서 낳고, 엄마 젖도 제대로 못 먹이면서 뭔가를 한다고 아기를 떼놓고 다니고…. 그게 아니라는 걸 뒤늦게라도 깨달아, 이제는 아이와 함께 있어주고, 아이 마음껏 하루를 살도록 해주려 한다. 그러다 내 삶이 흔들리면 먼저 아이가 아프다. 겨울밤, 늦게 다니면 아이 감기 걸리는 게 당연하고, 아이들 핑계 대고 사서 먹으면 배 아픈 게 당연하지 않겠나.

    치유 이야기를 하다 보니 무겁다. 그래 여기서 밝은 이야기도 나눠야지. 허리 치료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큰애가 내 허리에 부항도 뜨고 쑥뜸도 떠주는데. 그러면서 이 엄마 하소연도 들어주고, 엄마와 함께 음악도 듣고, 친구도 되어주고. 몸과 마음을 함께 다스려준다. 상처받고 흔들리는 사추기 엄마를 사춘기 딸이 고쳐준다.

    자기 약 스스로 달이는 아이

    며칠 전 겨울 날씨 같지 않게 따사한 날. 한낮에 우리 이웃이 자기 집 안방에서 둘째를 낳았다. 엊저녁까지 마을 가 놀았다는데, 오늘 아침에 산기를 느껴 한 시간 반 만에 아이를 낳았단다. 집에서 스스로 아기를 낳으려 공부하고 준비해온 덕이리라. 본인이 생각해도 꿈만 같다나. 이웃집 아줌마 두 분이 도와주었는데, 그분들 말이 산모가 스스로 아이를 잘 낳아, 자기들은 심부름을 했을 뿐이라고. 아기도 피 한 방울 안 묻히고 깨끗하게 나왔단다. 엄마와 아기가 서로 도와 이 세상에 태어난 거지.



    이 글을 마무리하는데 작은애가 달이는 약 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코가 막혀 코를 훌쩍이곤 하는데, 며칠 지나면 괜찮겠지, 그러다 한 달이 다 되어간다. 아이 코에 손을 가져다 대니 아이 코로부터 고통이 전해온다. 안 되겠다. 아이와 이야기를 나눈다. 약 먹을까? 쑥뜸 뜰까? 고개를 절레절레. 아이가 찾아낸 자기 치유의 길은 몸을 많이 움직이겠다는 것. 틈틈이 요가를 하고, 자전거를 탄다든가. 약은 자기 손으로 달여 먹겠다며, 파 뿌리, 무, 대추, 생강, 수세미, 배를 꼽는다. 아침에 자기 손으로 약을 약탕관에 넣어 달이며, 자기 방을 깨끗이 치우고 걸레질까지 한다.

    자연에서 태어나고 자라는 젊은 생명들. 이들에게서 앞날의 우리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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