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월호

강지원 변호사의 탕평채

파벌 당쟁도 숨죽인 기묘한 조화

  • 글: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사진: 김용해 기자 sun@donga.com

    입력2003-12-30 11: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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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후기, 영조가 극심한 당쟁을 뿌리뽑기 위해 대신들과 함께 ‘탕평책’을 논하는 자리에 올려진 음식이라 하여 그 이름이 붙었다는 ‘탕평채’. 쓸어버릴 탕(蕩), 평평할 평(平) 하여 탕평. ‘어느 쪽에도 치우침이 없다’는 의미와 ‘소탕해 평정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탕평채는 그 이름만큼이나 영양학적으로도 균형과 조화가 완벽하다.
    강지원 변호사의 탕평채
    “뜻도 좋고 담백한 맛도 그만이지요.” 탕평채는 ‘청소년 지킴이’로 잘 알려진 강지원(姜智遠·54) 변호사의 집에서 회식이 있을 때면 빠짐없이 등장하는 단골메뉴다. 같은 법조인인 부인 김영란(47·대전고법 부장판사)씨가 손님들을 위해 개발한 음식이다.

    “접대 음식으로 무엇이 좋을지 고민하다가 배운 거예요. 다행히 손님들이 무척 좋아하더군요. 한번은 부장판사 부부를 식사에 초대한 적이 있는데 유난히 탕평채를 좋아하시고 잘 드시더라구요.”

    강 변호사도 탕평채를 무척 좋아한다. 맛도 맛이지만 음식 이름에 담긴 뜻 때문이다. ‘탕평’은 요즘 강 변호사에게 화두이자 과제. 핵폐기장 건설을 둘러싼 민관갈등, 진보와 보수간의 이념갈등, 노사갈등 등 투쟁과 대립으로 치닫는 사회를 지켜보면서 그의 마음속으로 파고 들어온 단어들이 중화(中和), 조화(調和), 상생(相生), 탕평 같은 것들이다. 따져보면 모두 일맥 상통한다. 청소년 문제에만 매달렸던 강 변호사가 이처럼 사회 전반의 문제에까지 고민의 폭을 넓히게 된 것은 시사프로그램을 맡으면서부터다. 그는 2003년 7월14일부터 KBS 제1라디오에서 ‘안녕하십니까 강지원입니다’를 생방송으로 진행하고 있다.

    “처음 (프로그램 진행) 제의가 들어왔을 때는 거절했어요. 시사문제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지만 청소년들을 위해 할 일이 많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죠. 그러다 청소년지킴이 운동의 연장선이라는 생각에 ‘한번 해보자’는 심정으로 맡게 됐어요. 결과적으로는 잘했다고 생각해요.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청소년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더욱 절감했거든요.”

    강 변호사가 맡은 프로그램은 사회의 이슈를 쫓아 대담이나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된다. 갈등의 양측을 불러내 토론을 하고, 그 과정에서 나름의 해법을 모색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치의 양보 없이 일방적인 주장만 되풀이하다 무의미하게 끝나는 경우가 태반이다. 해법을 찾기는커녕 감정싸움으로 치달을 때도 종종 있다.



    강 변호사는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전국민이 갈라져 서로 싸우고 헐뜯는 것이 조선후기 사색당파 때보다 더 심각한 것 같다”며 그 해법을 청소년에게서 찾았다. “오랜 세월 고정관념에 매몰된 기성세대가 쉽게 변할까요? 청소년기부터 다양성에 대한 공부, 다른 입장과 견해를 존중하고 때로는 받아들일 줄 아는 관용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들이 사회의 주역이 될 때쯤이면 조금씩 변화가 나타나지 않을까요.”

    강지원 변호사의 탕평채

    강 변호사와 부인 김 판사는 요즘 주말부부다. 그래서인지 함께 장보는 것도 새롭고 즐겁다.

    요리 중간 중간, 탕평채라는 이름에서 시작된 강 변호사의 이야기가 무겁다못해 버겁다. 부인 김 판사 덕에 자주 먹어보긴 했지만 그가 직접 앞치마를 두르고 만들기는 이번이 처음이란다.

    먼저 야채 다듬어 데치기. 숙주나물은 머리와 꼬리를 떼고, 미나리는 다듬어 씻은 후 끓는 물에 소금을 조금 넣고 데쳐낸다. 그리고 물기를 짠 다음 3∼4cm 길이로 썬다. 고추는 반 갈라 씨를 털어낸 다음 가늘게 채썬다. 달걀도 노른자와 흰자로 분리해 지단을 부쳐 가늘게 채썬다. 쇠고기는 다지듯 가늘게 채썰어 양념장에 쟀다가 프라이팬에 기름을 살짝 두르고 센불에 바싹 볶는다. 쇠고기는 기름이 적어 담백하고 고소한 채끝살이나 안심이 좋다.

    탕평채의 주재료인 청포묵은 가장자리 더껑이를 포를 뜨듯이 살짝 저며낸 다음 길이 4∼5cm, 너비 1cm, 두께 0.5cm 정도로 얇게 썬다. 양념장은 참기름과 식초, 진간장, 깨소금, 설탕(또는 꿀가루)을 적당한 배율로 섞어 만든다.

    재료가 다 준비되면 청포묵을 접시에 가지런히 담고, 그 위에 지단과 미나리, 숙주, 고추, 쇠고기를 보기 좋게 올려놓은 후 김 가루와 양념장을 적당히 뿌려 먹으면 된다. 취향에 따라 버무려 먹어도 맛은 그대로다.

    부드럽고 매끈한 묵의 감촉이 입 안에서 미끄러지듯 느껴지면서 아삭아삭 씹히는 야채에 새콤달콤한 양념장, 그리고 쇠고기와 김 가루가 어울려 더할 수 없이 담백한 맛을 낸다. 영양도 그만이다. 청포묵의 탄수화물과 지단과 고기의 단백질, 김·미나리·숙주의 비타민과 무기질을 고르게 섭취할 수 있다. 특히 청포묵의 재료인 녹두는 필수아미노산과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해 소화에 도움을 줄 뿐 아니라 몸에 쌓인 노폐물 해독작용도 한다. 술안주로도 제격이다. 사회 곳곳에서 투쟁과 대립이 넘쳐나고 검찰의 정치비자금 수사로 정국이 혼란한 이때, 모든 이들에게 한번쯤 권하고 싶은 음식이다.

    2004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영입대상으로 자주 오르내리는 인물 중 한 사람이 바로 강 변호사다. 그의 화두이자 과제인 탕평을 정치권에서 펼쳐보고 싶을 법도 하다. 강 변호사는 이에 대해 “20여년 전부터 정치권으로부터 여러 차례 제의가 있었다. 청소년 관련법을 통과시키는 과정이 너무 힘들고 어려워 순간적으로 충동을 느꼈던 적도 있다. 하지만 정치는 내 적성에 맞지 않는다”며 정치에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강 변호사는 얼마 전 자신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에서 언론에 영입대상으로 자주 오르내리는 것과 관련해 “(언론이)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공개적으로 요구하기도 했다.



    그의 좌우명은 ‘신기독(愼基獨)’. “혼자 있을 때에도 항상 도리에 어그러짐이 없도록 하라”는 부친의 가르침을 늘 마음속에 담고 있다. ‘양심’도 마음에 와 닿는 말이라고 한다. 정치권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기 위한 스스로의 다짐이다.

    정작 강 변호사의 고민은 따로 있다. 공교육이 무너진 지금, 청소년들을 제대로 교육시키고 훈련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것이다. “요즘 시간이 나면 많은 생각을 합니다. 어떻게 하면 차별을 없애고, 경쟁이 아닌 협동적인 교육구조를 만들 수 있을까 하고. 앞으로의 계획이자 풀어야 할 과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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