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2월호

영남 광역단체장들이 ‘동남풍 진원지’

김혁규 “시장, 군수 모여라”… 이의근 “우리당이면 어때”… 박맹우 ‘흔들’

  • 글: 허만섭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04-01-28 10: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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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남 광역단체장들이 ‘동남풍 진원지’
    노무현 대통령의 친형 건평씨는 대통령 주변 부동산 문제가 불거진 2003년 5월 이후 언론에서 사라졌다. 외부 인사와의 접촉을 자제하면서 낚시터를 자주 찾는다고 한다.

    2003년 12월4일 서울 서교호텔에서 ‘재경 김해 향우회’가 열렸다. 건평씨는 “안 가겠다”고 했다. 그러자 주최측이 승용차를 그의 김해 자택으로 보내 끌고 올라오다시피 했다. 향우회는 예년의 세 배가 넘는 500여 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새 향우회장으로 곽진업씨가 뽑혔다. 곽씨는 부산국세청장 출신으로 2003년 초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과 사돈을 맺은 사이다. 박 회장은 건평씨와 친한 사이로, 건평씨의 거제 구조라리 별장을 사준 인물. 박 회장의 딸은 청와대 직원으로 채용돼 일한다. 건평씨는 2003년 초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곽진업씨를 국세청장 후보로 추천하는 발언을 했다가 곤욕을 치른 바 있다.

    이날 행사에서 건평씨는 김혁규 당시 경남도지사와도 반갑게 악수를 나눴다. 노건평씨, 곽진업씨, 김혁규 전 지사가 한자리에 모인 것은 꽤 상징적인 일이다. 노씨와 곽씨의 얽히고설킨 인연 못지않게 사실 노씨와 김 전 지사의 인연도 깊은 편이기 때문이다.

    김 전 지사는 김해 소재 모 고등학교를 수개월 간 다닌 적이 있다. 노건평씨는 이 학교를 졸업했다. 그래서 노씨는 김 전 지사를 고교 선배로 대접한다. 김 전 지사가 1995년 제1기 경남도지사 선거에 출마했을 때 노건평씨는 김 전 지사 선거캠프의 김해 연락소에 소속돼 선거운동을 하기도 했다. 당시 동생 노무현 대통령은 민주당 소속이었지만 건평씨는 신한국당 후보인 김 전 지사를 도운 셈. 노씨는 “김 전 지사의 성품에 매료돼 그를 위해 뛰었다”고 주변에 말한다. 김해 유권자들 중엔 노씨 출신학교 졸업생이 많아 김 전 지사에게 적지 않은 도움이 됐다고 한다.

    동생이 대통령이 된 뒤로 노건평씨는 김 전 지사와 여러 일을 상의했다. 시사저널 기자를 만난 직후에는 꺼림칙했던지 “인터뷰 문제를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며 김 전 지사측에 묻기도 했다.



    노건평씨는 열린우리당의 구심점인 노 대통령을, 곽씨와 김 전 지사는 ‘친노그룹의 새 얼굴’을 각각 대표한다. 곽씨는 노 대통령의 고향인 김해에서 출마할 예정이다. 공교롭게도 김해 터줏대감인 한나라당 김영일 전 사무총장은 대선자금 비리에 연루돼 구속 수감되면서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경남도청 소재지인 ‘창원을’에서 평판이 괜찮은 것으로 알려진 한나라당 이주영 의원은 불출마를 선언했다. 공석인 경남도지사 보궐선거에 나서기 위해서다. 한나라당은 현역 프리미엄이 없어진 셈. “김혁규 전 지사가 창원을에서 출마한다면….” 한나라당으로선 생각하기도 싫은 시나리오다. 김 전 지사는 전국구로 나가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PK(부산 경남)에서 ‘확실한 1석’이 급한 것이 열린우리당 사정인 만큼 상황은 유동적이다.

    도지사에서 親盧 핵심으로

    현재 김 전 지사는 ‘대통령 경제특보’ 자격으로, PK와 대구·경북 지역 곳곳을 다니고 있다. 노 대통령을 대리한 선거운동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그를 중심으로 경남에선 김두관 전 장관, 김태랑 전 의원, 공민배 전 창원시장, 곽진업 전 부산국세청장, 최철국 전 경남도 문화관광국장, 김맹곤 경남개발공사, 정해주 진주산업대 총장, 이상조 밀양시장, 김병로 진해시장, 정구용 하동군수 등이 출마를 확정했거나 고심중이다. 일단 ‘라인업’ 면에선 역대 ‘비한나라당 정당’ 중 최강 멤버라는 자체 평가다.

    김혁규 전 지사는 “중국을 돌아본 뒤 경제를 위해 한나라당 탈당을 결심했다”고 말한 바 있다. 안상영 부산시장은 중국 방문 뒤 검찰에 구속됐다. 기자는 사석에서 이명박 서울시장에게 김 전 지사의 탈당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이 시장은 “중국만 갔다오면 신상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 같아”라고 응답했다.

    경남, 부산 전 지역구를 석권했던 한나라당은 김 전 지사의 영향력에 대해 평가절하하는 분위기다. 최근 ‘부산일보’ 여론조사 결과 PK에서 한나라당 지지율이 30%로 15.6%의 열린우리당을 앞서있다. 그러나 2003년 9월 조사에 비해 한나라당 지지율은 이 지역에서 8.1% 하락했다.

    2003년 12월 말 한나라당은 국회 예결위 계수조정소위 위원을 허태열 의원(부산북·강서을)으로 내정했다. 그러다 경남의 김정부 의원으로 교체를 검토했다가 다시 허 의원으로 확정했다. 총선과 관련, 한나라당은 부산이나 경남이나 모두 위기라고 절감했기에 발생한 우여곡절이다.

    이의근 경북도지사는 2003년 12월31일 이영탁 국무조정실장, 김병준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장, 성경륭 국가균형발전위원장과 조찬모임을 가졌다. 이강철 열린우리당 상임중앙위원이 주선한 만남이었다. 이 자리에서 이 지사는 일부 공기업의 경북이전을 건의했다. 이 지사는 2006년까지 경북 구미에 디지털전자정보 기술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다. 그는 정부의 도움을 기대하고 있는데 이강철 위원은 경북지사의 민원을 정부측에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기획예산처 장관에 경북 출신 김병일 금융통화위원이 임명된 데 대해 이강철 위원은 “TK(대구 경북) 배려차원 인사였다”고 말했다.

    이강철 위원은 “이의근 지사는 입당하지 않고 열린우리당을 도와주기로 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지사는 “경북을 발전시킬 프로젝트가 성사된다면 입당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지사에겐 열린우리당 비례대표로 총선에 출마할 수 있는 기회가 아직 남아 있다.

    캐시(Cash) 전략의 위력

    이강철 위원은 대구시 예산확보를 위해 예결위 소속 열린우리당 이강래 의원을 설득하기도 했다. 요즘 대구에선 조해녕 대구시장, 국회 예결위 소위원장인 박종근 한나라당 의원, 이강철 위원 등 3자가 전략적으로 연대하는 이색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서는 한나라당에 앙금이 있는 문희갑 전 대구시장의 열린우리당 참여설도 나오고 있다.

    영남권 광역시·도의 1년 예산은 3조~4조원 안팎. 서울 16조원, 경기 19조원에 비해 크게 낮다. 영남권은 국고지원 의존도가 큰 것도 특징. 따라서 정부의 예산지원 규모는 단체장의 심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대구의 경우 2004년도 국고지원금은 1조1000억원대(국무회의 의결 기준), 경북은 2조5000억원대. 부산과 경남에 대한 국고지원은 각각 1조5000억원, 2조2000억원대였다. 단체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힌 사업들에 대해선 국고지원이 비교적 만족스러웠다는 게 공통점이다.

    반면 울산광역시는 사정이 다르다. 울산시는 1조2000억원대의 국고지원을 요청했으나 반영된 것은 7000억원대였다. 박맹우 울산시장은 최근 최병국 의원(울산남·한나라당)을 만나 “울산도 사업 많이 하는데…”라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박 시장의 열린우리당 입당 소문까지 나온 시점이었다. 최 의원은 박 시장으로부터 “울산을 튼튼히 지키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기자는 최 의원에게 “울산에서 열린우리당 바람이 조금 부는가”라고 물었다. 최 의원은 “조금이 아니라 무척 많이”라고 대답했다.

    한나라당은 영남 지역 국고지원 사업의 상당수는 한나라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정부를 설득해 따온 것이라고 주장한다. 최병국 의원은 “국가 차원의 안보, 경제 버팀목이 반드시 있어야 하기 때문에 현 규모의 야당을 지켜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권의 ‘캐시(Cash)’ 전략이 영남에서 한나라당 광역단체장들을 중립화 내지 우군으로 돌려세우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수성해야 하는 한나라당 입장에선 뒷문이 열린 셈이다. 광역단체장들 사이에서 꿈틀대는 모반의 분위기가 시장, 군수, 시의원, 통장, 반장…유권자에게 널리 전파되기를 열린우리당은 학수고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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