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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를 빛낸 스타들⑥

1970년대 ‘충무로 누벨 바그’ 윤여정

“조영남 만나 인생 끝냈기에 배우로 부활할 수 있었다”

  • 글: 심영섭 영화평론가 chinablue9@hanmail.net

1970년대 ‘충무로 누벨 바그’ 윤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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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아르바이트도 많은데 왜 하필 탤런트였어요?

“그 무렵에는 TV 탤런트라는 게 신종 직업이었어요. 어린 마음에 서울대 나온 이순재, 이낙훈 선생님이 탤런트 하는 걸 보며 ‘저걸 하면 조금 덜 창피하지 않을까’했어요. 내 딴에는 많이 고민해서 짜낸 아이디어였다니까요.”

윤여정이 데뷔한 1960년대 후반, 여배우들은 결혼을 선택했고 그들을 대체할 만한 스타는 나오지 않았다. 바야흐로 절대강자가 없는 춘추전국시대. 이 시기 영화계의 스타 부재는 영화산업의 불황과 검열이라는 시대적 족쇄 탓도 있었지만 영화의 강력한 경쟁자로 등장한 TV라는 대중매체도 무시할 수 없는 원인이었다. 여배우들 입장에서는 노출에 대한 부담감이 적고 스튜디오라는 편안한 공간에서 연기할 수 있는 TV를 선호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윤여정이 등장한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는 새로운 시기였다. 1930~40년대 전옥 같은 여배우들이 악극단 출신이었다면 1950~ 60년대의 김지미 등은 전 세대와는 달리 정규교육을 받았다는 사실에 굉장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윤여정은 TV 탤런트인 동시에 영화배우로도 연기를 펼친 첫 케이스였다. 이전까지 TV에서 출발한 여배우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던 까닭이다.

1970년대 초반에 등장한 배우 중 김영애, 박원숙, 이효춘, 김자옥 등은 이후 모두 TV와 영화를 겸업하거나 TV 탤런트로 안착한 케이스들이다. 그 중에서도 윤여정은 특히 톡 쏘는 말투와 일상적인 이미지를 통해 여성 스타도 탈신비화할 수 있다는 것을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보여준 첫 케이스였다. 돌이켜보면 그녀가 국내 최초의 오란씨 모델이었다는 점도, 산업화의 물결이 TV를 통해 각 가정에 막 보급되기 시작하던 1970년대 초반, 그녀의 탈신비화된 이미지가 산업적으로 얼마나 유용할 수 있는지를 증거하는 것이리라.



-또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윤여정씨가 신화적인 미모를 가진 여배우는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그건 그렇죠. 그 때문에 내가 김기영 감독하고 얼마나 싸웠는데요. 김 감독님이 여성지에다 ‘윤여정, 모든 사람들한테 배우가 될 수 있다는 용기를 준 인물’이라는 글을 썼어요. 내가 전화를 걸었죠. ‘감독님 전데요’ ‘왜 또?’ ‘여원에다 그런 말을 했다면서요? 그럴 수 있어요?’ ‘그것 봐, 사람들이 벌써 미스윤한테 동정을 하잖아. 나를 욕하고. 그러면 미스 윤이 이긴 거야. 내가 일부러 그렇게 한 거라니까.’ 그러데요. 그 사람 참 괴짜죠?”

-저는 윤여정씨가 ‘신화적인 미모를 갖지 않은 여배우’의 선두에 서 있다고 생각해요. 요즘엔 오히려 지나치게 뛰어난 미모가 방해가 되잖아요. 문소리씨만 해도 빼어난 미모 대신 연기력과 지적인 능력으로 배우의 길을 개척하고 있고요. 남자 배우로는 1970년대 하재영씨와 80년대의 안성기씨, 여배우로는 윤여정씨가 그런 현상의 선봉에 선 게 아니었나 합니다.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데 듣고 보니 그럴 듯하네요. 그 시절엔 여배우들이 참 예뻤죠. 누가 저보고 그랬대요. ‘한국의 누벨 바그’라고. (웃음) 제가 1966년 대학 1학년 때 탤런트 시험을 봤는데, 수험생 대부분은 잘생겼거나 예쁜 사람들이었어요. 그런 와중에도 제가 뽑힐 수 있었던 건 굉장히 달랐기 때문이었다더군요. 시험장에서 실기를 하는데 제 대사가 무척 빨랐다죠. 연출자들이 앉아서 ‘원래 저렇게 해야 맞는 건데’ 하는 생각을 했다는 거예요.”

-지금도 계속해서 TV와 영화를 오가며 연기를 하고 있는데, 차이라면 뭐가 있을까요?

“흔히 텔레비전 작가들은 영화가 망했으면 좋겠다고 그래요. 배우 쓸 만하면 다 영화 하러 간다고.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나라도 영화 한다.’ 영화는 굉장히 많은 시간과 여유를 배우한테 주잖아요. TV는 절대 그럴 수 없죠. 그냥 찍어내야 돼요. ‘바람난 가족’ 찍을 때 이런 일이 있었어요. 내가 스탠바이를 하고 있는데 문소리가 안 오는 거야. 왜 안 오나 하고 봤더니, 자전거 타다 내리는 장면이라 숨차게 하려고 뛰고 있다는 거예요. 그걸 보고 내가 굉장히 놀랐어요. TV에서는 숨찬 장면이라고 하면 무조건 숨찬 척해야 돼요, 사실 그건 말이 안 되는 일인데도. 배우가 준비될 때까지 기다린다는 건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이죠.”

‘3분의 앤’

-영화 얘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해보겠습니다. 1972년 작품인 ‘화녀’로 데뷔했는데, 이 첫 영화로 윤여정씨는 시체스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탔습니다. 참 대단한 일이었죠. 20년 전 인터뷰를 찾아보니 ‘뭔지도 잘 모르는데 자다가 소식을 들었다’고 그러셨더군요.

당시 신흥 영화제였던 스페인의 시체스 영화제는 지금은 전세계 공포영화제 중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상으로 성장했다. 윤여정의 수상은 국제영화제 수상경력이 일천했던 당시의 한국 영화계로서는 커다란 경사이자 화제가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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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심영섭 영화평론가 chinablue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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