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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를 빛낸 스타들⑥

1970년대 ‘충무로 누벨 바그’ 윤여정

“조영남 만나 인생 끝냈기에 배우로 부활할 수 있었다”

  • 글: 심영섭 영화평론가 chinablue9@hanmail.net

1970년대 ‘충무로 누벨 바그’ 윤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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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상패는 제작사인 우진필름 대표였던 정진우 감독이 갖고 있어요. 나한테는 보여주기만 하더라고요.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왜 대표가 갖고 있는지 참 이상하죠? (웃음)

그 영화가 끝나고 나서 몹시 시끄러웠어요. 신인배우가 대종상 주연상을 받았잖아요. 발칵 뒤집어졌죠. 다음날부터 영화배우협회에서 반환을 하라고 난리가 났어요. 내가 협회에 등록이 안 돼 있다는 거였죠.

청룡상을 받을 때도 에피소드가 많았어요. 시상식이 시민회관에서 열렸는데 김기영 감독님이 가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하라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나도 잊어먹고 시상식 날 오후에 조영남씨랑 ‘천일의 앤’을 보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누가 손전등을 비추면서 나오라는 거예요. 너무 놀랐죠. 덕분에 조영남씨는 두고두고 ‘천일의 앤이 3분의 앤이 됐다’고 놀렸고요.

나가봤더니 잘 알고 지내던 신문기자였어요. 그가 대뜸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어떻게 하냐’고 그러더라고요. 그러면서 빨리 미장원 가서 머리를 하라느니, 잡지 표지를 찍어야 한다느니 하는 거예요. 속으로 ‘조영남하고 스캔들이 나서 그러나 보다’ 하고 있는데, 내가 영화제 상을 타게 됐다고 귀띔해주더라고요. 그 기자가 청룡상을 주관하는 신문사 소속이었으니 믿을 만 했죠. 당연히 신인상을 받나보다 했어요.

부랴부랴 머리를 하고는 시민회관으로 달려갔는데, 신인상 후보에서 내 이름을 안 부르는 거에요. 혹 조연상인가 기다렸는데 거기도 없어요. ‘큰일났다, 망신도 이런 망신이 어디 있나’ 쩔쩔 매고 있는데 여우주연상으로 내 이름을 부르는 거에요. 거의 기절할 뻔했죠.



나중에 뒷이야기를 듣고 나서 상이라는 게 참 운이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요즘도 상에는 뒷말이 많지만 당시에는 심각했어요. 심사 따로, 상 따로였으니까. 그 해에 청룡상 주최신문사 사장이 갑자기 ‘시상자 결정이 너무 썩었다고 들었다. 무조건 심사결과대로 하라’고 그랬다죠, 아마. 덕분에 탤런트 출신 초짜가 주연상을 탈 수 있었구요. 그런 옛이야기가 있답니다.” (웃음)

운명적인 감독, 김기영

- ‘화녀’는 어떻게 찍게 된 건가요. 김기영 감독이 먼저 제안했던 거겠죠?

“내가 스튜디오에서 녹화를 하는데 어떤 아저씨하고 아주머니가 와서 쳐다봐요. 처음에는 몰랐어.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하루는 그 사람이 날 보자고 그래요. 자기가 김기영 감독이라며 ‘화녀’ 대본을 주더라고요.”

윤여정씨가 말하는 ‘어떤 아주머니’는 김기영 감독의 부인인 김유광씨다. 치과의사였던 그녀는 김 감독의 평생 제작자였고 동반자였다. 덩치 큰 남편에 비해 자그마했던 이 여인을 김 감독은 늘 존경하고 어려워했다고 한다. 이들 부부의 연은 김기영 감독이 부산 영화제에서 ‘재발견’되고 베를린 영화제 회고전을 앞두고 있던 1998년, 자택이던 혜화동 한옥에서의 화재로 인해 한 날 한 시에 나란히 이승을 떠나는 기연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런데 그때 나는 이미 다른 영화를 찍고 있었어요. 그런데 ‘화녀’ 대본을 보니 찍고 있는 영화와는 느낌이 다르더라고요, 외국 영화 같고. 찍고 있던 영화 필름값을 물어주고 ‘화녀’를 하기로 했죠. 그랬더니 김 감독님이 조건이 있대요.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한 달 동안 하루에 한 시간씩 자기랑 만나야 된대요. 이상한 사람이다 싶었죠.

어쨌든 우리 집에서도 만나고 김 감독 집에서도 만나고 커피숍이나 극장에도 갔어요. 사실 나는 재미없었죠. 중년 남자랑 매일 한 시간씩 뭘 하겠어요. 그래서 일주일쯤 지난 뒤에 윤형주, 이장희 같은 친구들한테 시켰죠. ‘잠시 있다 우리집 문을 두들기고 수영 가자고 해라….’ 다방에서 만날 때도 누구를 미리 오게 해서 우연히 만난 것처럼 하고 그랬어요. (웃음)

김 감독이 왜 그랬는지는 나중에 촬영 들어가서야 알았어요. 촬영을 준비하다 보면 막힐 때가 있는데, 그러면 김 감독이 그러는 거예요. ‘그때 나하고 미스 윤하고 어디서 뭐 할 때 그때 웃었던 바로 그 웃음 있잖아, 그렇게 웃어봐.’ ‘화녀’ 첫 부분에 보면 제가 아주 이상하게 웃거든요. 그런 표정이 그렇게 나온 거예요. 한 달 동안 나를 만나면서 김감독은 연구한 거죠. 내 손짓이며 발짓 같은 거, 다리를 어떻게 하는지, 앉을 때는 어떻게 앉는지 다 기억하고 있더라고요. 그제서야 ‘그냥 이상한 사람은 아니고 좀 특별한 사람인가 보다’ 생각했죠.

영화 계약할 때 또 하나 이상한 조건이 있었어요. 영화가 끝날 때까지 연애를 하면 안 된다는 거였죠. 처음에 그 얘길 듣고는 ‘이 감독 정말 변태구만’ 그랬었는데, 그것도 다 이유가 있었어요. 여배우가 연애를 하면 영화에 집중이 안 돼서 영화를 망친다는 거죠. 그 직전에 ‘병사는 죽어서 말한다’는 영화를 찍었는데, 여배우가 연애를 하는 바람에 영화가 망했다는 거예요.”

사디즘, 집착, 카리스마

-그러고 나서 몇 년 만에 재기작으로 고른 영화가 본인 작품이었던 ‘하녀’의 리메이크작인 ‘화녀’였군요. 혹시 오리지널인 ‘하녀’와 비교된다는 부담감은 없었나요.

“별로 그런 생각은 없었어요. 그저 여배우가 참 매력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얼굴이다, 그런 생각만 했어요. 김 감독님에게 만날 저 사람 어떻게 됐냐고 물었죠.”

윤여정씨의 회고에 따르면 1969년작 ‘하녀’의 주연배우였던 이은심은 이후 그 영화의 조감독이었던 이성구 감독과 결혼했다가 출산한 아이가 죽은 뒤 브라질로 건너갔다고 한다. 1941년에 태어난 이은심은 일본 나고야 출생으로, 채 열 편도 되지 않는 영화에 출연하고 사라져간 1960년대 초반의 여배우다. 데뷔작이었던 ‘조춘’은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그녀의 강렬하고 퇴폐적인 체취는 ‘하녀’의 히로인으로 오래오래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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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심영섭 영화평론가 chinablue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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