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5월호

이문열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의 총선 관전기

“시대 흐름을 읽지 못한 내 눈을 탓하노라”

  • 글: 이문열 소설가

    입력2004-04-27 11: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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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결과는 최악으로 나왔다.
    • 열린우리당이 의석 과반수를 넘는 제1당이 됨으로써 나는 시대를 읽는 내 안목과 내 시대의 대중을 알아보는 내 이해력을 더는 믿을 수 없게 됐다.
    이문열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의 총선 관전기

    열린우리당 승리의 원동력이었던 탄핵반대 열풍의 현장. 17대 총선은 2002년 대선의 보선이었나.

    선거는 전쟁의 현대적 양식이다. 인간은 오랜 전쟁 경험을 통해 승리가, 반드시는 아니지만 대개는 전투에 가담하는 사람의 머릿수로 결정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싸울 사람들의 머릿수를 헤아려 보면 굳이 피 흘리며 싸워보지 않고도 승패를 가려낼 수도 있는데, 그 머릿수 헤아리기를 제도화한 것이 투표이고 선거가 아닌가 한다.

    17대 총선도 그런 점에서는 예외가 아니다. 우리 국민은 현대 정치가 제도화한 내전(內戰)을 한바탕 치른 셈인데, 이제 개표가 끝난 지금 느끼는 비장(悲壯)이나 허망감은 실제로 한바탕 치열한 전투를 구경한 것보다 더 절실하다. 아마도 한나라당의 입후보자공천심사위원으로 한 80일 국회의사당을 들락거리며 보고 들은 게 실감을 더한 듯하다.

    내가 공천심사위원으로 초빙 받아 타고 있던 한나라호(號)로부터 내린 것은 한나라호와 민주호의 연합 기습작전으로 정부여당의 기함(旗艦)이 격침되고 그 함대 사령관이 헌재(헌법 재판소)호로 옮겨간 지 사흘째 되던 날이었다. 그로부터 한나라당의 임시 전당대회가 열릴 때까지 열흘, 나는 광란과도 같은 민심의 요동을 보았다.

    그 기간 나는 매스컴의 선동조작이 얼마나 무서운 것이며, 종합적 사고보다는 비속한 단답형(短答型) 논리의 연쇄로 이루어진 정치적 궤변이 얼마나 논의를 황폐화하는지를 잘 보았다. 이미지와 디지털적 사고의 결합으로 급조된 군중이 얼마나 반이성적 특질을 잘 보여주는지도 섬뜩하게 경험했고, 촛불시위에서는 한반도 북쪽에만 남아있는 줄 알았던 개인숭배주의 망령까지 본 것 같아 몸을 떤 적도 있었다.

    그러자 다른 때와는 달리 이번 총선은 내 삶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 시험처럼 다가왔다. 나는 35년 전 처음 투표권을 받은 이래 크고 작은 수십 번의 선거를 치러왔고, 작가로 등단해 25년 넘게 수천만의 독자와 거래해왔다. 거기서 나름으로 시대를 읽을 줄 알고 대중을 이해한다고 믿으면서 살았는데, 갑자기 그 안목과 이해력이 이번 선거로 시험대에 올랐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이해하는 시대는 그래도 이미지보다는 본질에 무게를 두고, 감각보다는 관념이 진실을 파악하는 데 유효한 수단이라고 믿는 시대였다. 내가 이해하는 우리 대중은 자주 냄비니 깡통이니 하는 폄하를 듣지만, 중요한 결정 앞에서는 뜻밖으로 신중하고 사려 깊어지는 이들이었다. 나는 몇 가지 선거결과를 가정하고 그런 시대와 그런 대중이 선택할 법한 결과와 비교하여 내 안목과 이해력을 시험해보려 했다.

    첫째 경우는 탄핵반대 분위기가 선거를 좌우해서 열린우리당이 과반수를 차지하고 한나라당을 비롯한 모든 야당이 비슷한 군소정당으로 전락하는 결과였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내 눈은 이미 이 시대를 읽어내지 못하며 내 정신은 동료대중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 된다. 내가 아는 시대와 이해하는 대중은 그렇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경우는 탄핵반대 분위기가 이어가도 우리 국민들의 균형과 견제 심리가 조금 살아나서 야당 중에 하나에게, 특히 한나라당에게 개헌 저지선 정도의 의석을 허용하는 경우이다. 내게는 여전히 불만스럽지만 그래도 내 안목과 이해력이 온전히 기능을 상실한 것은 아닌 것이 된다.

    셋째는 조금 낙관적인 기대로, 시대의 이성과 대중의 균형 심리가 한층 회복되어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이 선두를 다투는 형태였다. 민주당, 자민련, 민노당 기타가 조금씩 기득권을 지켜 50석 가까이 빼내가고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125석 내외로 선두를 다투는 것인데, 125석을 기준으로 삼은 것은 이성적인 투표에서 두 당이 자력으로 얻을 수 있는 한계로 보았기 때문이다.

    마지막은 내 안목과 이해력에 믿음을 가지고 걸어본 기대에 가까운데, 탄핵이 그 원래의 의미대로 국회의원 투표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경우이다. 다른 야당은 가졌던 의석을 그대로 지키고, 민노당만 약진하면 한나라당은 120석 내외로 한나라당이 원내 제1당을 지킨다. 적어도 삼권분립 제도 아래서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이라면 내가 아는 시대와 내가 이해하는 대중은 그런 선택을 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결과는 최악으로 나왔다. 열린우리당이 의석 과반수를 넘는 제1당이 됨으로써 나는 시대를 읽는 내 안목과 내 시대의 대중을 알아보는 내 이해력을 더는 믿을 수 없게 되었다. 다만 그래도 한 가지 위로가 있다면 그 같은 결과가 한나라당의 무능 탓이 아니라, 민주당과 자민련의 처참한 몰락에서 비롯됐다는 점이다. 특히 민주당의 몰락, 또는 호남 민심의 표변(豹變)은 충격 이상의, 어떤 무상감까지 느끼게 했다.

    하지만 나 자신의 안목이나 이해력에 대한 믿음을 잃기는 했지만 이번 선거를 구경하면서 얻은 것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이번 선거의 성격과 지난 대통령선거 때부터 변화가 감지되어 오던 정치판의 중요변수 하나를 나름으로 확인하고 이해하게 된 일이다.

    이번 선거를 통해 무엇보다도 먼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투표로 표현되는 국민의사의 성격이었다. 달리 말해 이번 선거가 순수한 의회구성원을 뽑는 선거가 될 것이냐, 아니면 지난 대통령 선거의 보선(補選)이라는 의미를 더 강하게 띨 것이냐 하는 점이 궁금했다.

    만약 유권자들이 선거전에 거세게 불었던 탄핵 바람과 무관하게 소속 정당의 정강정책과 인물 본위로 투표한다면 이번 선거는 원래의 목적대로 국회의원 총선이 된다. 하지만 탄핵바람에 그대로 휩쓸려 선거를 치른다면 이는 본질적으로 지난 대통령 선거의 보완 또는 추인의 의미를 가지게 된다. 그런데 결과를 보니 우리는 아마도 2002년 12월15일에 있었던 대통령 선거를 이제야 겨우 마무리한 듯하다.

    냉정하게 따져 보면 지난 1년의 정치적 갈등은 거의가 대선 불복(不服)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싶다. 야당뿐만 아니라 그 지지자들에게 2002년 대선은 좀체 믿기지 않은 악몽 같은 것이었다. 1998년 정권교체 이후 5년 중 4년 11개월 동안 우세를 누리다가 마지막 한달의 극적 반전에 또다시 3% 미만 표차로 정권 탈환에 실패하자 그들은 도무지 그 패배에 승복할 수 없었다.

    거기서 만들어진 것이 ‘15% 사기극’ 논리일 것이다. 곧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 15% 미만의 지지자를 밑천으로 후계자를 제대로 기르지 못한 호남정권의 양자로 들어가 33%의 호남세력을 꾸어왔다고 본다. 그러나 자기 지지세력 33%로 자민련 15%를 꾸어와 집권한 김대중 정권보다 집권 전망이 불투명하자 다시 어수룩한 정몽준을 끌어들였다고 한다. 거기다가 야당 쪽에서 보면 ‘머피의 법칙’이 몇 번 중복되어 대통령에 당선되기는 해도, 그것은 겨우 15%밖에 안 되는 지지자를 밑천으로 한 ‘대 국민 사기극’이었다는 주장이다.

    다분히 억지스런 말이고 다수결을 존중하는 민주주의 원칙에도 어긋나지만, 야당과 그 지지자들은 자기위로를 대신해 그 말을 믿고 싶어 했다. 의회에서는 아직 과반수를 확보하고 있다는 것도 그 같은 믿음을 갖는 데 한몫 했을 것이다. 게다가 그런 대통령이 검찰권으로 자기들을 압박해오자 그 믿음은 차츰 전의(戰意)로 불타올랐다. 대통령 취임 몇 달도 되기 전에 ‘탄핵’이란 말이 야당의 입 끝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노 대통령도 허약한 지지기반을 끊임없이 의식하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 한 근거가 검찰권을 활용한 자기보강이다. 지난 한 해 동안의 검찰활동이 우연이 아니라 기획된 것이라면 그 기획은 너무도 정교하고 철저하다. 노 대통령은 취임 직후 한 차례 측근비리를 털어내고 다시 대북송금, 정치자금 등의 수사를 통해 자신과 과거를 공유하는 민주당의 부정과 부패를 털어냈다.

    용인 땅, 장수천 생수 등에 이어 권노갑 박지원을 비롯한 민주당 실세의 수사와 구속으로 반년이 지나갔다. 공정한 검찰이라는 인상과 자신에게 엄격한 대통령이란 인상을 주기에 넉넉한 검찰활동이고, 기간이었다. 그러다가 재신임 발언과 더불어 한나라당에 ‘차떼기’로 치명타를 주게 되는 대선자금 비리수사에 들어간다.

    검찰에 포착된 혐의에 따라 수사를 하다보니 그와 같은 프로그램이 되었다고 주장한다면 당장은 반론할 명확한 근거가 없다. 하지만 나중에는 700여 억원까지 불어났고, 필요하면 1000억원도 넘길 수 있었을 만큼 엄청난 규모의 한나라당 대선자금 비리혐의는 정말 9월 이전에는 전혀 검찰에 포착된 바 없었을까. 허약한 지지기반, 특히 민주당과의 분당으로 더욱 심화된 의회에서의 열세를 행정 권력으로 보완하려는 유혹은 대통령에게 전혀 없었을까.

    검찰과 친여 언론들의 ‘차떼기’ 십자포화가 몇 달에 걸쳐 무자비하게 한나라당에 퍼부어졌다. 대책 없이 침몰해가던 한나라당은 이미 길러오던 전의를 무서운 적의로 바꾸고 반격의 기회를 기다렸다. 그때 또 다른 이유로 배신감과 위기감에 내몰린 민주당 쪽에서 탄핵 발의를 제의해 왔다.

    대통령 탄핵이란 사태의 엄중함을 본능적으로 감지한 한나라당은 처음엔 민주당과의 공조를 주저했다. 마지못해 공조에 들어간 뒤에도 의원들 개별적으로는 미온적이었으며, 가결 전망도 불투명했다. 하지만 일단 발의에 동의한 이상 그 다음 단계로의 진행은 필연적이었다. 칼은 이미 칼집에서 뽑혔고, 두 당은 호랑이 등에 올라탔다.

    게다가 대통령의 사과 거부가 마지막 남은 타협의 여지를 지워버렸다. 아니 대통령의 담화는 오히려 타는 불에 기름을 부은 격으로 자극적이서 그때까지도 탄핵을 부정적으로 보던 한나라당의 소장파 의원들과 관망하던 자민련까지 탄핵 표결에 가세하게 했다. 그리하여 야당이 숨겨오던 불복의사는 갑작스럽고도 극적인 탄핵 가결로 표출되었다.

    그런데 개표결과는 탄핵 반대 바람이 위력을 발휘해 탄핵 전만 해도 80석 정도를 목표로 삼은 열린우리당을 152석의 의회 과반 거대 여당으로 만들었다. 게다가 탄핵에 대해서는 열린우리당과 행보를 같이해온 민주노동당에 다시 10석을 주어 의회에 진출시킴으로서 탄핵반대의 프리미엄을 줬다. 여러 가지 다른 설명이 있을 수 있겠지만, 어쨌든 국민들은 2002년 대통령선거가 15%의 ‘대 국민 사기극’에 속은 것이 아니었음을 투표로 명백히 해준 셈이다.

    이번 선거를 통해 16개월 전의 찜찜했던 지난 대통령 선거가 마무리된 것은 반가운 일이다. 국민들은 2002년 12월15일에 이어 다시 한번 노무현 대통령을 국가 원수로 추인하였다. 하지만 걱정은 아직 남아있다. 건국 후 열일곱 번째로 의회를 구성할 인물들을 뽑으라는 선거를, 지난 대통령선거를 보충하고 추인하는 용도로 써버린 후유증이다. 입법 전문가를 보내야 할 자리에 대통령선거인단을 잔뜩 뽑아 보냈으니, 그러잖아도 여당의원은 행정권의 시녀노릇을 해온 관행이 있는 이 나라에서 삼권분립의 원칙이 어떻게 지켜질지 앞날이 자못 흥미롭다.

    그 다음으로 이번 선거에서 관심 깊게 지켜본 것은 지역감정의 추이였다. 지난 대통령 선거 때부터 전통적인 지역감정은 변화의 조짐을 보여주었다. 비이성적이고 무논리(無論理)한 지역감정이 어느 정도의 합리성과 타산을 바탕으로 한 지역이기주의로 변질해가는 듯한 현상이 그랬다.

    달리 선택이 없었다는 점에서, 지난 대통령 선거 때 호남의 몰표가 민주당 노무현 후보에게 간 것을 두고 호남 지역감정의 연장으로 보는 이도 있다. 그러나 노 후보의 출신지역이 영남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미 김대중과 박정희 또는 김대중과 김영삼 때의 지역감정과는 외양이 다르다. 영남의 대다수가 이회창 후보를 지지한 것도 마찬가지다. 한나라당의 뿌리가 이른바 TK세력이었다 하더라도 이회창의 집권이 곧 영남의 집권은 아니었다.

    충청도의 지역감정도 심상찮은 조짐을 보였다. 지역기반 정당인 자민련이 후보를 내지는 않았지만, 지난 대선에서 충청도는 이미 지역감정보다는 지역이기주의 쪽으로의 경사(傾斜)를 보여주었다. 전통적인 우호감정이나 친근성보다는 수도이전에 따른 개발이익이라는 실리 쪽을 선택한 듯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17대 국회의원 총선에서는 그런 지역감정의 변질이 더욱 뚜렷해진 느낌이다.

    이번 선거에서 영남은 대구 경북은 몰표, 부산 울산 경남은 일곱 지역을 빼고 모두 한나라당을 밀었다. 대표가 지역출신이라고는 하지만 6월 전당대회까지의 임시대표이고, 당의 핵심부도 수도권 비영남 출신이나 소장파 의원들에게 많이 옮겨가 있는 상태인 점에서 옛날의 정서와는 많이 다르다. 또 지난 총선 때는 한나라당이 영남 전 지역을 휩쓸었던 것과 비교해도 무턱 댄 지역감정 이외의 표심이 작용한 듯하다.

    호남도 마찬가지다. 열린우리당의 공동 선대위원장이 모두 호남 출신이고 적잖은 호남 출신 의원이 합세하고는 있지만, 이 정권의 권력 핵심에는 이미 비호남인의 지분이 만만치 않다. 그런데도 이번 선거에서 호남의 열린우리당 지지는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의 민주당 지지를 상기시킬 만한 수준이었다. 정동영 당의장이 차기를 기약하고 있다고는 하나, 호남의 열린우리당 지지는 분명 옛날과는 다른 지역이기주의적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

    충청도의 지역감정이 지역이기주의로 변질된 것은 이번 선거에서 더욱 뚜렷해졌다. 그 지역을 기반으로 삼고 있던 자민련은 참담하게 몰락하고 열린우리당이 대전과 충북을 휩쓸었는데, 그 까닭이 행정수도 이전 공약이라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언필칭 통일지향시대에 웬 남천(南遷)이냐고 묻는 사람도 있지만, 땅값 상승이나 개발혜택 따위 실리를 보장하는 공약만 잘 개발하면 어수룩한 지역감정쯤은 얼마든지 잡을 수 있는 시대가 된 듯하다.



    영악스럽고 타산적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 합리성과 현실성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지역이기주의는 감성적이고 무논리적인 지역감정의 발전적 변형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의 변화가 변함없는 추세로 이어질지는 단언할 수 없다. 설령 그게 한 추세로 이어진다 해도 과연 지역이기주의가 우리 남한사회의 고질적인 지역감정을 완전히 해소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주의 깊게 관찰하면서 북돋을 것은 함께 북돋우고, 잘라낼 것은 무성해지기를 기다리지 말고 잘라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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