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5월호

‘혈액투석’ 의사들 낯 뜨거운 ‘밥그릇 챙기기’… “‘새 생명’에 약 대주지 말라”

  • 글: 허만섭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04-04-28 11: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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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장 기능 저하로 고통받는 사람은 전국적으로 약 10만명. 한 사회단체가 이들에게 파격적인 가격에 혈액투석 치료를 해주고 있다. 그러자 의사들이 제약회사와 의료기기 회사에 압력을 행사해 이 단체에 대한 약품공급을 막고 나서서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혈액투석’ 의사들 낯 뜨거운 ‘밥그릇 챙기기’… “‘새 생명’에 약 대주지 말라”

    4월13일 서울 종로구 인의동 새생명인공신장실에서 혈액투석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들.

    신장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면 혈액 속 노폐물을 걸러주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져 요독, 부종, 심부전, 의식장애 등의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당뇨, 고혈압, 유전 등이 발병요인으로 꼽힌다. 환자들은 대개 ‘혈액투석’에 의존하는데 혈액투석이란 몸 속 피를 외부의 인공신장 기기(투석기)로 빼내 노폐물을 제거한 뒤 걸러진 피를 다시 몸 속으로 넣어주는 치료법이다.

    혈액투석을 받는 환자의 상당수는 ‘신장장애인’으로 등록되어 있다. 국가는 이들에게 혈액투석 치료비의 80%를 건강보험으로 지원한다(의료보호대상자 등은 치료비 전액 국고지원). 그러나 20%의 본인 부담 비용도 이들에겐 만만치 않은 경제적 부담이 된다.

    신장 장애 환자들은 보통 이틀에 한 번 꼴로 혈액투석 치료를 받는다. 1회 투석 치료에 걸리는 시간은 4~5시간. 일반적으로 일주일 이상 투석치료를 거르면 몸에 적신호가 켜진다고 한다. 한 달 본인부담 투석치료비는 평균 50만~80만원이다.

    대다수 투석환자들은 정상인보다 기력이 훨씬 떨어져 있다. 치료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데다 치료비 부담도 만만치 않은 탓에 상당수 환자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엔 투석치료비 부담을 못 이겨 아버지의 몸에 꽂힌 혈액투석기 줄을 끊은 아들이 경찰에 검거되기도 했다.

    기존 병원비의 25분의 1



    혈액투석 환자들의 모임인 (사)한국신장장애인협회는 2004년 2월 서울 종로구 인의동 한국교직원공제회 건물에 ‘새생명인공신장실’(이하 새생명)을 개원했다. 기존 병·의원들을 대신해 자신들이 직접 저가에 환자들에게 혈액투석 치료를 해주겠다는 취지다.

    새생명엔 40개의 침상과 40대의 투석기가 갖춰져 있고 1명의 내과 의사와 17명의 간호사가 진료를 맡고 있다. 개원 취지대로 새생명측은 진료비를 파격적으로 낮췄다. “혈액투석에 드는 한 달 본인부담 비용을 2만~10만원대로 인하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는 기존 병·의원 치료비의 25분의 1 수준이다.

    이곳에서 치료를 받으려면 한국신장장애인협회 회원으로 가입해야 한다. 새생명측은 환자들에게 식사와 헬스시설 등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또한 환자들이 돈을 벌어 치료받을 수 있도록 세탁물 아르바이트도 알선한다.

    2004년 4월13일 현재 이곳에선 110여명의 외래 환자가 혈액투석 치료를 받고 있다. 이날 오후에도 환자 10여명이 투석기를 꽂은 채 누워 있었다. 60대의 환자 A씨는 “신장내과 의원에서 줄곧 투석치료를 받아왔으나 이곳이 치료비가 저렴하다는 소식을 듣고 옮겼다”고 말했다.

    A씨와 같은 이유로 새생명을 찾는 혈액투석 환자는 꾸준히 늘고 있다. 최근 한 공중파TV 프로그램에 소개된 이후 환자가 부쩍 늘었다. 염완식 (사)한국신장장애인협회 회장은 “치료비가 싸니 평생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들에겐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혈액투석치료와 관련, 80%의 지원을 받기로 했다”고 밝혔다.

    협회는 2004년 5월 경기 의정부에 ‘새생명인공신장실 의정부센터’를 새로 개원하기로 했다. 협회측은 전국적으로 새생명 인공신장센터를 확산시킨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새생명에 약 넣으면 알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쪽은 신장내과 병·의원들이다. 환자들이 하나 둘 새생명으로 옮겨가자 비상이 걸린 것이다. 혈액투석 환자들은 대개 한 병원을 지정해 장기간 정기적으로 치료를 받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환자 네댓 명만 이동해도 병원 수입에 큰 타격을 주게 된다. 현재 전국적으로 190여개 병원과 200여개 의원이 인공신장실을 운영하고 있다.

    신장내과 의사들은 최근 집단행동에 나섰다. 의사들이 ‘새생명 대책회의’를 가진 뒤 혈액투석기 판매업체나 제약회사 등에 압력을 행사해, 새생명측에 기기나 약품을 팔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는 것. 새생명측과 거래를 하면 기존 병원과의 거래를 모두 끊겠다는 식이라고 한다.

    혈액투석기기 도매업을 하는 B씨는 최근 새생명측과 외국산 투석기기 공급계약을 맺었다. 이후 새생명측에 기기 몇 대를 납품했다. 그런데 이 투석기기 제조회사의 한국지사가 B씨를 불러 “새생명엔 투석기기를 공급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B씨는 “신장내과 의사들이 투석기기 제조회사에 강하게 항의했다고 들었다. 의사들의 성화에 못 이긴 것”이라고 말했다.

    혈액투석 치료시 혈액 속으로 들어가는 투석액의 경우도 의사들이 공급을 방해하고 있다고 한다. 새생명측은 최근까지 C제약사로부터 혈액투석액을 공급받았다. 그런데 C제약사측이 갑자기 “더 이상 약을 줄 수 없다”고 통보해왔다. “C제약사 약을 쓰는 개원 의사들이 ‘투석액이 C제약사 제품밖에 없나. 거래선을 바꾸겠다’고 압력을 행사해왔다”는 것이다.

    새생명측은 D제약회사에 공문을 보내 약품을 공급해달라고 요청했다. 다음은 공문 내용 중 일부. “혈액투석을 위한 투석액이 필요하여 귀사에 공급을 요청하오니 저희 새생명인공신장실에 원활한 공급을 해주시기 바라며….”

    이에 대해 D제약회사는 공급을 거절하는 회신을 보냈다. 새생명측이 공개한 D사의 회신내용이다. “혈액투석액을 전국의 인공신장실에 공급하고 있습니다. 혈액투석액의 절대량이 부족하여 기존의 거래처에도 원활한 공급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새로운 대규모 공장의 건설을 추진중에 있으며 2005년 말쯤 준공, 가동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신규 개설되는 인공신장실에 혈액투석액을 납품하기가 어려운 실정입니다.”

    새생명측은 “우리는 실제로는 도매상을 우회해서 D제약회사의 제품을 공급받고 있다. 약이 없어서 못 준다는 말은 변명이다. D사도 의사들로부터 상당한 압박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제약회사로서는 새생명측에 약을 공급하면 매출이 올라가므로 마다할 이유가 없다. 다만 기존 신장내과 병·의원에 공급되는 물량이 워낙 많다 보니 이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최근엔 한국신장장애인협회가 소속 장애인 회원들을 동원해 제약회사를 상대로 ‘행동대응’에 나서겠다고 압박했다. 제약회사로선 신장내과 의사들과 신장장애인들 사이에서 난처한 입장에 빠진 셈이다.

    새생명측은 또 “신장내과 전문의들이 후배 전문의들에게 새생명측의 스카우트 제의에 응하지 말라고도 해 전문의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사측, “치료비 할인은 불법”

    다음은 혈액투석 치료와 관련된 한 의료계 회사가 자체 조사한 ‘새생명인공신장실 사태’의 전모다.

    “▲만성신부전증 환자 단체인 한국신장장애인협회에서 자체적으로 인공신장실을 개원 운영키로 함(환자 본인부담금 경감을 통한 편익 제고 목적) ▲원장으로 내과 의사를 영입(법적으로는 문제없음) ▲2월초 4개 제약사에 대해 의약품 공급 요청해옴 ▲개원 의사와의 마찰 배제차원에서 제약사들이 의약품 미공급 ▲ 각 개원의 원장들이 각 제약사에 새생명측에 대해 제품 공급을 하지 말 것을 요구→개원 의사들, 공급시 기존 거래 정지 의사 통보 ▲ 새생명인공신장실은 제약사들에 대해 서면으로 의약품 공급을 요청했으며 일부 제약사들은 서면으로 공급이 어려움을 전달했고 또 다른 일부 제약사들은 구두상으로 공급할 의사를 전하기는 하였으나 아직까지 구체적인 진행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태임.”

    이 보고에 따르면 2004년 3월말 ‘초 강경’ 입장을 가진 개원의 원장들이 회합을 갖고, 새생명인공신장실이 사용중인 의약품을 제조한 회사에 대해 “거래를 즉각 중지하겠다”는 의사를 실제로 통지했다고 한다. 의사들은 제약사에게 “새생명인공신장실에 의약품을 직접 공급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자사 제품 사용을 방치, 묵인한 책임이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는 것이다.

    최근 한국신장장애인협회 산하 매체에 제약회사 광고가 나갔다. 이에 대해서도 의사들은 “새생명과 관련된 매체에 왜 광고를 내느냐”며 제약회사측에 강하게 항의했다는 후문이다. 2004년 3월말 모 종합병원에서는 신장내과 의사들이 모여 ‘새생명 고사 작전’을 깊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사들의 이 같은 집단 행동은 효과를 보고 있다고 한다. 새생명측에 따르면 혈액투석 치료가 원활히 이뤄지려면 혈액투석기, 필터, 투석액, 약품(혈압강하제, 빈혈치료제, 비타민제, 칼슘보충제, 영양제, 요독제거제) 등이 충분히 공급되어야 한다. 새생명측 정문갑 본부장은 “혈액투석기가 200대쯤 필요한데 의사들의 방해 때문에 40대밖에 구하지 못했다. 그나마 원하는 제품은 사지도 못했다. 다른 제품 대부분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사들의 방해가 계속될 경우 5월로 예정돼 있는 의정부센터의 개소에도 큰 차질이 불가피하다고 한다.

    새생명측은 의사들의 ‘집단행동’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주장하지만 이들의 의료 활동에는 아무런 문제점이 없는가.

    경기도 한 대학병원 신장내과 교수이자 대한신장학회 이사 E씨는 “새생명측 혈액투석 치료의 질이 의심스럽다”고 비판했다. “미국 등 선진국의 경우 혈액투석은 신장 전문의가 하게 되어 있다. 한국은 의사면허증만 있으면 가능하도록 되어 있으나 그럴 경우 의료서비스의 질이 떨어질 우려가 있다. 저가공세도 서비스 질 하락의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혈액투석’ 의사들 낯 뜨거운 ‘밥그릇 챙기기’… “‘새 생명’에 약 대주지 말라”

    최근 새생명인공신장실(사진)과 신장내과 의사들간 힘겨루기가 한창이다.

    이어 E교수는 “기존 환자가 치료비가 싼 새생명쪽으로 다 빠져나가면 의사들은 굶을 수밖에 없다. 의사들은 새생명에 약을 대준 제약회사를 향해 ‘우리는 당신들 제품을 쓸 수 없지 않느냐’고 얘기할 수 있다고 본다”면서 “새생명이 신장장애인들을 위한 순수한 공익단체인지, 영리를 추구하는 단체인지도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지는 E교수의 말. “새생명이 전국으로 퍼진다는데 그럼 신장내과 의사들은 어떻게 사나. 한국 의료계 전체가 공짜로 치료해줘야 하나. 새생명이 공정거래법을 위반하는 것은 아닌지 조사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 대한투석전문의협회는 2004년 1월 “본인분담금을 감면해주는 것은 불법으로 고발대상”이라는 내용의 공문을 한국신장장애인협회에 발송했다.

    20% 빼고도 이윤 남아

    이에 대해 새생명측 정 본부장은 “새생명은 2004년 1월 보건복지부로부터 의료코드를 부여받았다. 건강보험공단에서 보험수가를 지급받는 의료기관으로 인정받은 것이므로 새생명의 혈액투석 치료행위는 합법적”이라고 말했다.

    ‘저가 공세’라는 ‘법 위반 시비’ 문제와 관련, 서울시는 공문에서 “의료법 제25조 규정에 의거 본인부담금 면제-할인 등의 행위를 금지하고 있으나 단서조항에 의거, 환자의 경제적 사정 등 특정한 사정이 있어 관할 지방자치단체장의 사전승인을 얻은 경우에는 그 행위가 가능할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정 본부장은 “치료비를 면제 또는 할인해주는 행위가 논란거리인데 최근 보건복지부, 종로구청과 협의를 거쳐 법적 문제가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새생명측은 “한국신장장애인협회 염완식 회장 등 일부 인사들이 20억원의 자금을 대 혈액투석사업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염 회장은 “나 자신도 혈액투석환자다. 새생명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한국신장장애인협회 산하기구다. 이윤이 남으면 환자들에게 환원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의사들이 담합해 제약회사나 의료기기 회사에 은밀히 압력을 넣는 행위는 집단의 위세를 이용해 기득권을 지키려는 의도로, 정당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새생명의 실험은 혈액투석 환자들에게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했다. 즉 새생명측이 혈액투석 치료비의 20%에 해당하는 환자 본인 부담금을 받지 않고 80%의 국고보조만으로도 이윤이 날 수 있음을 입증해 보였던 것.

    그렇다면 지금까지 혈액투석 치료를 해온 의사들이 지나치게 많은 이익을 취해온 것일까. 의보수가가 높다는 논란이 재연될 수도 있다. 실제로 새생명 측이 개원한 이후 위기를 느낀 일부 병·의원에선 혈액투석 환자들에게 본인부담금을 대폭 할인해주거나 면제해주고 있다.

    결과적으로 새생명측의 의료 활동은 의사들의 ‘철 밥그릇’에 파문을 던진 셈이다. 정 본부장은 “새생명과의 전쟁에서 의사들은 ‘품위’를 잃었다”고 꼬집었다.

    혈액투석 의사 S씨는 최근 의사내부 통신망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많은 사람들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하면서 타인을 견제합니다. 최고 지성인이라는 우리 의사들 세계에서도 이런 기득권 유지로 의료계 내 불신을 조장하는 일이 자행되고 있어 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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