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호

특집 | 탈(脫)원전을 다시 생각한다

공정성이 가장 중요 ‘기울어진 운동장’론 경계해야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쟁점 분석

  • 정현상 기자|doppelg@donga.com

    입력2017-08-27 09:00:0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정부·여당 일방적 탈원전 띄우기
    • 중단되면 2조6000억 피해 vs 건설보다 해체 시장 더 커
    • “탈원전 공약도 공론화 대상 포함해야”
    • 전문가들 “전기요금 인상” vs 정부 “안 오른다”
    • “5·6호기 건설하고 희생양 찾는 건 반대”
    ‘마주 달리는 기관차들.’

    문재인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을 두고 찬반양론이 팽팽하다. 그 형국이 마주 달리는 두 기관차 같다. 청와대·여권·환경단체 중심의 탈원전 측과 원자력계·야권·일부 지역 주민이 서로 한발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한쪽은 시대가 친환경 신재생에너지 중심으로 바뀌었다고 단언한다. 다른 한쪽은 원전이 우리나라 전력의 30%를 생산하는데 대체할 만한 새 에너지원이 마련되지 못한 시점에서 급속한 탈원전이 과연 올바른지에 대해 회의적이다.

    긴급 현안인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를 두고서도 시각이 너무 다르다. 공론화의 적법성 여부를 비롯해 안전성, 경제성 등에 대한 양측 주장의 간극이 너무 크다. 정부 여당이 친원전 단체나 한국수력원자력 등을 압박해 공론화 자체가 불공정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채종헌 한국행정연구원 부장은 “사회적 갈등과 반목을 최소화하기 위해 도입한 공론화 절차가 사회적 갈등의 시작점이 된 모양새다”라고 했다.

    갈등 소지가 있는 사회적 현안을 ‘참여와 숙의(熟議)적 토론’으로 공감대를 형성해 이견을 해소하는 공론화 절차는 선진적인 공공정책 결정 프로세스다. 잘만 마무리 짓는다면 길이 남을 역사적 ‘기념비’가 될 수 있다. 임현진 서울대 명예교수(학술원 회원)는 “사회적 갈등도 건설적 측면에서 보면 민주주의의 엔진”이라며 “공론화위를 통해 이 갈등을 해소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공론화위원회 어떻게 진행되나

    7월 24일 출범한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위원장 김지형 www.sgr56.go.kr)는 10월 21일까지 3개월의 활동 기간에 숙의 등의 과정을 거쳐 ‘시민대표참여단(이하 시민참여단)’의 찬반 비율을 권고 형태로 정부에 전달하게 된다. 그러면 정부가 이를 해석해 공사 중단 또는 재개 여부를 최종 결정하게 된다.

    이 역할을 정하기까지 공론화위와 정부는 한동안 ‘공’을 서로에게 미루며 시작부터 혼선을 빚었다. 정부는 원래 공론화위가 구성한 시민참여단의 결정을 수용하겠다고 밝혔지만 7월 27일 공론화위가 여론에 밀려 “찬반 결론을 내지 않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에 다음 날인 28일 청와대가 “배심원단이 신고리 5·6호기 공사 중단 여부를 결정하면 정부가 이를 수용한다”고 밝혔지만, 결국 최종 결정 주체는 정부가 하는 것으로 정리했다. 공론화위는 정부에 제출할 권고안에 공론 조사 참여자들의 찬성과 반대 비율만을 담기로 했다.

    문제는 찬성 또는 반대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다. 시민대표참여단 논의 결과 공사 중단에 대한 찬반 비율이 49대 51 정도로 팽팽하다면 이를 어떻게 해석할지를 두고 공론화위 안팎에서 논란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8월 1~3일 진행된 여론조사에서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을 둘러싼 찬반 여론도 팽팽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이 8월 4일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중단해야 한다’는 답변이 42%, ‘계속해야 한다’는 답변이 40%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19%는 ‘잘 모르겠다’며 의견을 유보했다. 하지만 원전 자체의 필요성을 의미하는 찬핵(59%)은 탈핵(32%)보다 두 배가량 높았다.

    당장 친(親)원전 단체들은 “공사 중단 찬성 기준은 ‘사회적 합’으로 통용되는 60∼70%를 넘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론화위는 “찬반 판단 기준을 몇 %로 할지, 이 기준을 공론화위가 보고서에 제시해야 할지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제3의 길에 대한 논의도 나왔다. 최신 기술이 적용되는 신고리 5·6호기는 건설하고, 낡은 원전을 중지하는 방안이다.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방안이라는 의견도 많다. 하지만 한수원 관계자는 “신고리 5·6호기를 건설하기 위해 또 다른 희생양을 찾는 형국이 되면 안 된다”며 “원전은 정해진 절차에 따라 안전성을 평가하고, 그 결과 부적격하다고 판단되면 운전을 정지하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8월 중 진행될 1차 여론조사 규모는 지역, 성별, 연령을 고려해 무작위로 선발된 시민 2만 명으로 확정됐다. 2차 공론조사 대상인 시민참여단 규모는 최다 500명까지 늘리기로 했다. 다만 개인 사정 등으로 1박 2일 합숙토론에 참여하지 못할 인원을 감안하면 350명 안팎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자료집 숙지, 전문가 및 이해관계자 의견 청취, 토론회 등의 숙의 과정을 충분히 거친 뒤 최종 3차 조사에 참여하게 된다. 3개월 동안의 공론화 기간에 논란이 될 사안들을 정리했다.



    시민참여단 누가 포함되나

    공론화의 목적은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여부에 있기 때문에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의 의사를 충분히 반영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게 학계 의견이다. ‘지역 주민의 의견을 수렴해 공론화에 참여하는 시민들에게 그것을 제공하는 방식’(은재호 한국행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가능하지만 대표성을 보완하는 차원에서 ‘지역 주민을 시민참여단에 추가해 참여시키는 방식’(임채영 한국원자력학회 이사)도 가능할 것이다. 할당 표본을 추출할 때 성별, 연령, 지역, 직업 기준에 소득 기준도 추가하자는 의견도 있다.

    일부 원자력계 인사와 매체는 전문가가 아닌 일반 시민이 원전과 같은 기술적인 문제를 다루는 공론화위원회에 참여할 자격과 능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그 반대 논리가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박진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원전 문제는 국민이 판단할 선호의 문제이므로 공론화위원회에 원전 전문가를 포함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는 원전에 우호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논리다. 다만 국민이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 판단할 때는 전문가의 의견을 충분히 경청해야 할 필요가 있다.

    공론화 의제에 포함될 내용은
    정부는 공론화 의제를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여부로 한정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영희 가톨릭대 교수는 “신고리 5·6호기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하기 위해서라도 국가 에너지 정책, 원전의 장단점, 대안 에너지 전망 등에 대한 논의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투표 의제’는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여부에 국한된다 해도 ‘토론 의제’는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의 역사와 현황, 원전 비중의 적정성, 대안 에너지의 현황과 미래 전망 등을 포함해야 한다는 것.

    박진 KDI 교수는 “대통령이 더 근본적인 안건인 ‘탈원전’을 공약으로 결정해놓고, 건설 중인 원전의 중단 여부만 민주 절차에 따른다는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대선에 승리했다고, 모든 공약을 정당화해선 안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공약은 적절한 입법화 과정을 거쳐야 정책이 된다. 채종헌 한국행정연구원 부장은 국회 토론회에서 “탈원전 정책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사용 후 핵연료(폐연료봉)를 처리할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처리장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국민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윤기돈 녹색연합 활동가는 “에너지 생산과 소비 방식을 성찰하는 과정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원전이 값싼 전기를 공급해 우리나라 산업을 성장시켜왔지만 동시에 불필요한 소비와 에너지원의 비효율적 사용을 부추겼다는 것이다.


    공론화위는 적법한가

    신고리 5·6호기 공론화를 둘러싸고 법적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절차와 관련한 위법, 불법 논란은 향후 공론화 추진 과정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수원 노조는 8월 1일 서울중앙지법에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활동 중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손금주 국민의당 의원(탈원전 대책 TF팀장) 등 여러 야권 의원도 공론화위의 법적 근거가 없다고 주장한다.

    신지형 녹색법률센터 부소장(변호사)의 견해는 다르다. 정부가 신고리 5·6호기 공론화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적법한 절차를 밟았다며, 다음 세 가지를 주장했다. 첫째, 신고리 원전 공사 중단 여부를 공론화에 부치는 것은 국무회의 심의 사항을 열거한 헌법 제89조에 따라 적법한 절차를 거쳤다. 둘째, 정부가 한수원에 대해 신고리 원전 공사의 일시 중단을 요청한 것은 행정지도인데, 이는 행정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협력을 요청한 것으로 법률의 근거가 필요하지 않다. 셋째, 공론화위의 구성 및 운영에 관한 사항을 규정한 국무총리 훈령 제690호는 행정 사무처리 기준으로 제정된 규범이어서 불법이라고 볼 수 없다.

    하지만 황형준 변호사(법무법인 율촌)는 “공론화위의 설치 및 활동에 관한 법률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고, 결론적으로 공론화위가 신고리 건설 중단을 권고할 경우 정부가 건설을 중단하게 할 수 있는지 법률적 근거가 불명확하다”고 주장했다.
    이채익 자유한국당 의원의 문의에 대해 입법조사처는 ‘국무조정실이 행정명령으로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을 내릴 수 있는 법률의 근거 조항이 없다’고 밝혔다. 또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의 권한과 관련해서도 공론화위가 발전소 사업 허가나 건설 허가를 내줄 수 없고, 공론화위는 법률에 의한 위임 규정 없이 국무총리훈령으로 설치됐기 때문에 공론화위의 결정 사항은 법률적 구속력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공론화위 공정성 논란

    정부·여당이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에 대한 여론을 조성하면서 공론화 과정에 불공정한 영향력을 행사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사이 친원전 측의 움직임은 상대적으로 미미하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예정지 인근 주민들과 한수원 노조가 시위 등을 통해 건설 중단에 반대하고, 원전 필요성을 강조하는 일부 언론이 거들고 있는 정도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토론회 등 기회 있을 때마다 탈원전 로드맵을 강조한다. 8월 9일에는 장관 직속으로 ‘에너지전환 국민소통 태스크포스(TF)’를 발족했다. 이 TF는 탈원전·석탄과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중심으로 한 새 에너지 정책을 담당하는 팀으로 국장급 인사가 단장을 맡았다. 공론화에 영향을 미칠 계획으로 만든 TF가 아니라면 공론화 이후에 발족해도 무리가 없었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국회 토론회에서 산업부의 한 국장은 ‘탈원전 정책을 흔들림 없이 실천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산업부는 또 7월에 두 차례, 8월 초에 한 차례 급전(給電·전력수요 감축) 지시를 내려 논란을 자초했다. 급전 지시는 전력수요를 강제로 감축하기 위해 취하는 조치로, 이에 응한 기업은 아낀 전기를 전력시장에 판매하고 금전으로 보상받을 수 있다. 이는 산업부가 연례적으로 해오던 조치이긴 하다. 하지만 연이어 세 차례나 급전 지시를 내린 것은 전에 없던 일이다.

    평소 30%의 전력예비율이 유지됐으나 폭염이 이어지면서 8월 7일에는 전력 예비율이 12%로 내려왔다. 이에 정부는 급전 지시를 내렸고, 전력 수요 급증에 따른 원칙적인 조치라고 설명했지만, 친원전 측은 정부가 전력 수급 논란을 막기 위해, 즉 탈원전 정책 논리를 뒷받침하기 위해 내린 조치라고 의심한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7월의 급전 지시에 대해 ‘전력이 남아돌기 때문에 탈원전 정책을 추진해도 아무런 문제 될 게 없다는 정부와 여당의 설명이 거짓으로 드러났다’며 비판했다.

    여당도 탈원전 논리를 거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경수·최인호 의원은 국회 토론회를 열고 정부 정책을 지지했다. 민주당은 8월 9일부터 매주 탈원전 정책 토론회를 열 계획이다. 그러면서도 정부는 한수원에 공론화 기간 중에는 홍보활동을 하지 말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친원전 측 한 인사는 “이런 상황은 정부가 공론화라는 형식적인 틀만 갖추고 탈원전 분위기로 일방적으로 몰아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공론화 과정의 불공정성 지적에 대해 반(反)원전을 주장하는 이영희 가톨릭대 교수는 “공론화위가 기계적인 중립성을 유지한다고 해도 지난 40여 년간 막대한 물량 공세하에서 조성된 원전 편향적인 지형은 ‘구조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이처럼 양측이 ‘게임의 공정성’을 두고 타협점을 찾지 못하면 공론화 자체에 대한 불신이 싹틀 수 있다. 윤성복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박사는 “정부와 공론화위가 중립을 선언한 이상 공론화 과정이나 이후에도 시비가 나오지 않게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며 “이런 논란이 발생하면 공론화가 끝나더라도 공정성 시비에 시달릴 가능성이 농후하고 공론 조사 결과의 수용성도 약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신고리 5·6호기 경제성은

    신고리 5·6호기 총 사업비는 8조6000억 원. 이 가운데 4조9000억 원의 계약이 확정됐으며, 2017년 5월말 현재 약 1조6000억 원이 집행됐다. 건설이 중단될 경우 계약해지 비용 1조 원을 합쳐 약 2조6000억 원의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한수원은 밝혔다.

    이 사업은 지역 주민의 자율유치로 추진된 사업이라 건설이 중단되면 지원금으로 추진된 지역 지원사업이 중단되고, 토지보상 중단 및 집단 이주 지연, 건설 노무인력 이탈로 지역 상권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설계와 기기 제작을 포함한 전체 공사 인원은 1만2000명으로 사업 중단 시 그만큼 일자리가 줄어들고, 1600여 개 하도급사의 경영이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하도급사의 공장가동률이 떨어지면 설비·기술·전문 인력 손실로 국내 원자력 산업의 공급망이 붕괴되고, 향후 원전 수출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다.

    새로운 갈등이 생겨날 수도 있다. 건설 중단 시 신고리 5·6호기 합의지원금 1500억 원과 법정지원금 8000억 원도 지원을 중단해야 한다. 200가구 400여 명을 위한 집단 이주마을 조성도 중단되고, 400여 명의 토지 소유자도 2000년 예정구역 지정 때부터 제한돼온 재산권이 추가로 제한되거나 보상이 지연돼 반발할 수 있다.

    공론화위 결론이 나면 정부가 그 해법을 모두 고민해야 할 문제들이다. 하지만 지금은 탈원전 방향만 제시할 뿐이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7월 26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출석해 “신규 건설 시장보다 원전 해체 시장이 훨씬 더 크고 참여 기회가 많다”면서 “고용창출 입장에서는 원전보다 신재생에너지 분야가 5~10배 정도 효과가 높다”고 답했다.



    전력 수급 문제 없나

    2015년 7월 확정 공고된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15~2029년)은 올해 최대 전력 수요를 8820만kW로 예측했다. 그러나 지난해 8월 12일 전력 수요는 이미 사상 최고치인 8518만kW를 기록했으며 예비전력은 722만kW(예비력 8.5%)로 비상경보 발령 수준인 500만kW에 근접했다.

    그런데 8월 11일 전력정책심의위원회는 전력 설비 예비율에 대한 초안을 공개하고, 2031년 이를 20~22% 수준으로 전망했다. 7차 기본계획에는 적정 예비율을 22%로 상정했는데, 이보다 최대 2%포인트 낮아지는 것이다. 2%포인트는 원전 2기가 생산하는 전력량에 해당한다. 심의위는 2030년까지 5~10GW의 발전설비를 새로 지을 필요가 있지만 이는 원전이 아니라 신재생에너지나 LNG 발전으로 충족할 수 있다고 밝혔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세계 각국은 원전 정책을 재검토했다. 독일 스위스 벨기에 등 일부 국가에서는 원전 폐지 또는 축소를 결정했지만 중국 인도 등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에너지의 안정 공급과 경제성, 온실가스 배출 저감 등의 이유로 원전을 확대하거나 유지하기로 했다.

    사고 당사국인 일본도 2015년 이후 원전의 안전성을 내세워 자국 내 원전 제로 상황에서 탈피해 원전 확대 움직임을 보였다. 적정 비중의 원전 운영은 우리나라만의 선택이 아니며 각국 에너지 수급 여건을 반영한 현상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앞으로 지속적으로 원전 축소 정책을 펴나간다면 비용과 환경 등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장을 지낸 송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건설 중인 원전을 중단하거나 백지화하면 막대한 투자비가 휴지가 된다. 계획 중인 원전을 백지화하는 대신 전력 부족에 대한 대안부터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은 에너지 집약적인 산업이라 전기 수요가 대폭 늘어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전기자동차도 10년 내 대중화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이런 수요를 감안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전력 사용량이 늘어나는데 설비 예비율을 과다하게 줄일 경우 2011년의 ‘9·15순환정전’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독일은 신재생에너지 비중(41%)을 급격히 높이며 탈원전을 이행하고 있다. 하지만 태양광 풍력 등과 같이 자연변동성 전원 비중이 높아 설비예비율을 136.2~175.3% 수준으로 확보하고 있다. 그럼에도 올해 1월 날씨 탓에 태양광과 풍력 발전이 크게 떨어져 ‘블랙아웃’ 직전까지 갔었다. 다행히 유럽은 여러 나라의 전력 계통이 연결돼 있어 독일은 프랑스로부터 전기를 수입할 수 있었다.


    전기요금 인상되나

    원전이 값싼 전기료의 근거였는데 탈원전 정책으로 가면 전기료가 당장 오르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있다. 한국전력에 따르면 지난해 원전의 kWh당 전력 구입 단가는 68원으로, 유연탄(73.8원), LNG(101.2원), 유류(110원), 신재생에너지(156.5원)보다 싸다.

    하지만 김학도 산업부 에너지자원실장은 “2022년까지 탈원전으로 인한 전기요금 인상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2022년 이후에도 부족한 설비는 신재생, LNG 발전으로 보완할 수 있는데, 그때가 되면 신재생에너지 단가 하락 등으로 요금 인상은 우려할 수준이 아니라고 봤다.

    하지만 7·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근거해서 현대경제연구원 등이 전기요금 인상률을 전망했는데, 10.6%에서 230%까지 편차는 크지만 정부 전망과 달리 모두 인상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독일의 경우 탈원전 정책을 내세운 뒤 전기요금이 큰 폭으로 상승했다. 독일은 1986년부터 탈원전 논의를 시작해 1990년 신재생에너지 지원 제도를 도입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에는 안전한 에너지 공급을 위한 윤리위원회를 출범시켜 2022년까지 원전의 단계적 완전 폐쇄를 추진하고 있다.

    현재 독일은 가정용 전기요금이 유럽에서 덴마크에 이어 두 번째로 비싼 나라다.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에 따라 재생에너지 분담금이 높아졌다. 전기요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약 2.25배이고, 한국의 3.58배 수준이다.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재원을 전기요금으로 충당하다 보니 재생에너지 분담금이 소비자에게 전가돼 국민의 부담이 늘어났다.



    사회적 비용 포함하면 원전이 비싸다?

    탈원전 측에선 발전단가에 사회·환경 비용까지 더하면 원전이 결코 값싼 연료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투자, 운영, 연료, 사후처리 등 비용을 총 발전량으로 나눈 균등화발전원가(LCOE·Levelized Cost of Electricity)로 따지면 오히려 원전이 매우 비싸다고 한다.

    올해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이 분석한 2022년 균등화발전원가는 육상풍력(52.2달러), LNG(56.5달러), 태양광(66.8달러), 원자력(99.1달러), 석탄(140달러) 순이다. 지난해 영국 에너지산업전략부는 2025년 육상풍력이 61파운드로 가장 싸고, 태양광(63파운드), LNG(82파운드), 원자력(95파운드), 석탄(136파운드) 순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원전의 경쟁력을 낙관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에너지경제원이 2015년 기준으로 분석한 각국 균등화발전원가를 보면 한국이 40.42달러이고, 미국(77.71달러), 일본(87.57달러), 영국(100.75달러) 등보다 매우 낮은 상황이다. 나라마다 건설비용, 환경 조건, 에너지 수급 상황, 사회적 비용 계산법 등이 다르기 때문에 단순 비교해선 안 된다는 논리도 있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국내 원전 발전단가에는 이미 사용 후 핵연료 비용 등이 포함돼 있고, 원전 건설비용도 외국에 비해  매우 낮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전은 기술적인 측면에선 중대 사고가 발생할 확률이 거의 없지만 TMI, 체르노빌, 후쿠시마 등 심각한 원전 사고가 실제로 발생했다. 따라서 이런 요인을 외부비용으로 반영할 필요도 있다. 조성진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원자력발전의 경제적·사회적 비용을 고려한 적정 전원믹스 연구’ 보고서에서 ‘그동안 국내에선 원전의 외부 비용을 추정할 때 중대 원전 사고 발생으로 인한 피해 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며 ‘신재생에너지를 포함한 모든 전력원의 외부 비용 추정 및 반영 여부를 정하기 위한 범사회적 논의기구 구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원전 과다 밀집?

    우리나라는 원전 밀집도 세계 1위 국가다. 면적에 비해 원전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는 뜻이다. 고리·신고리 원전 부지에는 현재 7기(신고리 4호기는 미준공)의 원전이 운영되고 있고, 신고리 5·6호기가 들어서면 모두 9기가 모여 있게 된다. 환경단체들은 이렇게 원전이 밀집돼 있는 것이 매우 위험하다고 주장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도 자연재해에 더해 원전이 밀집해 있었던 것이 사고 원인이라며 신고리 5·6호기도 밀집 문제에 대한 안전성 검사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반면 한수원과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이 지역 원전들이 계통으로 연계돼 있지 않아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한수원 관계자는 “원전이 한 지역에 몰려 있다고 해서 반드시 위험성이 커지는 건 아니다. 서로 영향을 미칠 수 없도록 설계 때부터 대비를 충분히 했다”고 말했다.



    원전 주변 주민 건강은

    원전 주변 주민들은 먼 곳에 사는 이들보다 방사능 피폭 가능성이 더 높은 것일까. 심지어 원전에서 일상복을 입고 일상적인 활동을 하는 원전 직원들도 방사능 피폭 정도가 더 심하다는 증거는 아직 없지만 일반적인 인식은 그렇다.

    2012년 고리 원전 주변에 살다 갑상선암에 걸린 주민이 고리 원전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한수원의 일부 책임을 인정받았다. 이것이 알려지면서 원전 주변 주민 600여 명이 집단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원전에서 나온 방사선이 갑상선암의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원전 주변의 여성 갑상선암 발생률이 다른 지역보다 2.5배 높다는 서울대 역학조사의 일부 결과를 근거로 제시한다.
    하지만 서울대 역학조사는 원전 주변 여성에게서 갑상선암 발생률이 높았지만 ‘원전 방사선과 암 발병 위험도 간에 인과적인 관련 증거는 찾을 수 없었다’고 결론 내렸다. 과학적인 연구 결과가 더 필요한 상황이다.

    이에 김성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7월 20일 원자력발전소 주변 주민 및 종사자에 대한 역학조사 실시를 위한 근거 규정을 마련하는 발전소주변지역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방사선비상계획구역(30km 이내)이 속하는 읍·면·동의 지역 주민과 원자력발전소 종사자에 대한 정기적인 건강검진 및 역학조사를 실시하고 그 조사 결과를 공개토록 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앞서 국내에서 실시된 역학조사는 두 차례뿐이었다. 1989년 한빛원전에 근무한 한 경비원의 아내가 무뇌아를 유산한 게 알려져 주민 불안이 커지자 정부가 1991년부터 2011년까지 한빛원전 주변 주민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다. 당시 조사팀은 위암 갑상선암 등 10가지 암에 대한 조사를 했는데, 원전 주변 지역에서 발생한 암과 대조 지역에서 발생한 암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이 조사가 부실한 것으로 알려져 두 번째 역학조사를 실시했고, 첫 번째 조사에 오류가 있음이 밝혀졌다. 이후 역학조사는 더 이상 실시되지 않고 있다.


    핵폐기물 대책은 있나

    원전에서 나온 폐기물은 사용된 작업복이나 장갑과 같은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과 사용 후 핵연료인 고준위 방사성폐기물로 분류된다.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은 경주 방사성폐기물처분시설(양북면 봉길리) 건립에 따라 보관이 가능해졌지만,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은 현재 원전에서 임시 보관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전국 원전에서 나온 사용 후 핵연료의 약 55%가 월성원전에 위치하고 있다. 한수원은 애초 경주가 중·저준위 방폐장을 유치할 때 2016년까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을 경주에서 옮긴다고 약속했지만 고준위 방폐장 부지가 마련되지 않아 건식저장고만 추가로 확충할 계획을 밝혔다.

    현재 봉길리, 나아리 등 월성원전 인근 주민들은 원전 이전을 요구하며 2년째 농성 중이다. 더욱이 2015년 한국원자력의학원 실태조사에서 나아리 주민 40여 명의 소변에서 DNA 손상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진 삼중수소가 검출됐다.



    기후변화 대처에 적합한 발전은

    인류가 직면한 위험 가운데 가장 큰 것은 기후변화다. 한반도 역시 기후변화의 직격탄을 피하지 못한다. 폭염 폭우 가뭄 등 예기치 못한 기후로 인해 무엇보다 가난한 이들이 먼저 피해를 본다.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온실가스의 대부분은 우리가 사용하는 에너지에서 나온다. 영국 기후변화 전문가 데이비드 매케이 경은 “기후 문제는 무엇보다 에너지 문제다”라고 말했다.

    원전은 발전 과정에서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고, 발전소 건설에서부터 해체까지 전 기간 배출되는 온실가스 양도 재생에너지보다 적은 수준이다. 파리기후협정 이후 각국은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오히려 원전을 늘리고 있는 것이 확인됐고, 영국 국영 전력회사 내셔널 그리드가 발표한 ‘미래 에너지 시나리오’ 보고서에서도 기후변화협정에 대응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발전 전략이 원전 증설이라고 밝혔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원자력발전에 따른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kWh당 10g이다. 석탄은 991g, LNG는 549g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