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호

특집 | 탈(脫)원전을 다시 생각한다

건설 중단 반대에 목숨 걸고 원전 상대 갑상선암 소송하기도

신고리 5·6호기 건설 현장 가보니…

  • 울산=정현상 기자|doppelg@donga.com

    입력2017-08-27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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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근 녹 방지 등 안정화 작업 중
    • UAE에 수출한 한국형 신형경수로 건설 예정
    • 사업공정률 28%, 매몰비 2조6000억 예상
    • “젊은 직원들 적폐로 몰리는 것 같아 고민”
    8월 8일 오전 11시께 울산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현장은 바깥의 논란만큼이나 뜨거웠다. 섭씨 34도가 넘는 불볕더위 속에서 근로자 수십 명이 5호기 공사 안정화 작업에 여념이 없었다. 정부가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방침을 정한 뒤 공사가 일시 중지됐지만, 최소한의 유지 관리 조치는 계속되고 있었다. 특히 부식을 방지하기 위해 철근에 비닐을 씌우는 세밀한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바닥 위로 드러난 철근은 그 두께가 일반 아파트용의 10배 가까이 두꺼워 보였다.

    한국수력원자력 관계자는 “(재개될 경우를 가정해서) 공사의 품질 및 안전성을 유지하는 차원에서 공론화 기간 중에도 불가피하게 작업을 계속해서 8월 말이나 9월 초까지 마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로 인해 인건비, 안정화 비용 등 1000억 원 정도의 가외 비용이 들 것으로 예상했다.



    6호기는 굴착 중단 상태

    6호기의 경우 굴착하다 중단된 상태였다. 바위와 토사가 벌겋게 드러나 있었다. 1km 정도 떨어진 신리마을 200여 가구와의 이주 협상은 건설 일시 중지가 결정된 이후 중단된 상태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현장은 울산 울주군 서생면과 부산 기장군 장안읍 일원에 있다. 총면적은 육상·해상 포함해서 257만㎡, 공사금액은 약 8조6250억 원, 원래 건설 예정 기간은 2016년 7월부터 2022년 10월까지 73개월이었다. 2008년 제4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08~2022년) 확정 당시 포함됐다가 2012년 원자력안전위원회로부터 건설 승인을 받았다. 2016년 6월 27일 최종 건설허가를 받아 공간 기초 굴착공사를 시행해 올해 4월 1차 콘크리트 작업을 완료했다. 8월 초 현재 전체 사업공정률이 28%, 시공공정률은 11% 진행된 상태로 멈춰 있다.

    신고리 5·6호기는 신형 경수로 APR(Advanced Power Reactor)1400 2기가 들어가는 최신형 원전이다. 부지 자체가 해발 9.5m 높이에 있어 쓰나미에 대비한 방벽을 별도로 쌓을 필요가 없다고 한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폭발은 수소 폭발이었다. 이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신고리 5·6호기는 원자로 건물 안의 수소농도를 10% 이하로 유지하는 무전원 수소제거 설비를 갖추게 된다. 또 정전 시 비상 전원공급설비인 대체교류디젤발전기, 기존 8시간에서 24시간으로 용량을 확대한 축전지, 일정 규모 이상의 지진이 발생할 경우 원자로가 자동으로 정지되는 설비 등이 설치될 계획이다. 1일 1만t의 해수를 담수로 바꿀 수 있는 담수화 설비도 갖춘다. 항공기 충돌에 대비해 원자로 건물 벽체는 135cm, 보조건물은 150~180cm 두께로 시공하며, 해일과 홍수에 대비해 밀폐형 방수문을 설치한다.



    까다로운 출입 절차

    문재인 대통령이 6월 19일 고리1호기 영구정지 행사에 참석해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을 위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겠다”고 말한 뒤 5·6호기 건설 여부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가늠자가 된 형국이다. 그만큼 이곳은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건설 현장을 확인하기 위해 방문신청을 했을 때 한수원 측은 개별 방문은 불가하다고 했다. 기자의 방문 수용은 자칫 정부의 탈원전 방침을 거부하고 친(親)원전 홍보에 열심인 것으로 비칠까 저어하는 듯했다. 하지만 공론화 절차가 국민에게 객관적이고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 숙의(熟議·deliberation) 과정을 거치기 위한 민주적 과정인데, 취재 거부는 공론화 취지와 맞지 않는다고 설득해 겨우 방문 허락을 받았다.

    초고도의 안전성을 확보해야 하는 원자력발전소이다 보니 출입부터가 까다로웠다. 한수원 새울원자력본부에 도착해 출입통제소로 가자 경비원이 신분증을 요구했고, 지문 등록을 통해 다시 한 번 신원을 확인했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현장을 둘러본 뒤 인접해 있는 4호기 쪽으로 이동했다. 2007년 신고리 3호기와 함께 착공된 4호기는 설비용량 1400MW로 한국이 아랍에미리트연합국(UAE)에 수출한 한국형 신형경수로(APR1400)와 같은 기종이다. 기존 원전들보다 안전성과 경제성을 보강한 신고리 4호기의 설계수명은 60년으로 기존보다 20년 늘어났고, 내진 설계 규모도 7.0으로 높였다.

    하지만 2014년 준공 예정이었던 신고리 4호기는 케이블 시험성적서 위조사건, 3호기의 질소가스 누출 사고 등이 생기면서 준공 시기가 여러 차례 늦춰졌다. 올해 말 상업 운전에 들어갈 예정이었으나 최근 기기 성능 개선 조치 등으로 다시 10개월가량 준공 시점이 늦춰진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는 핵연료가 장착되진 않았고, 가동 준비를 하고 있는 상태다.

    4호기로 접근하기 위해 새울제1발전소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다시 까다로운 보안 절차를 밟았다. 지문인식기에 다시 한 번 손가락을 대고 신원이 확인되자 이중 출입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부속 건물을 거쳐 겹겹의 문을 통과해 중앙통제실 옆방까지 들어갔다. 비록 유리창으로 차단된 곳에서였지만 발전팀 운전원들이 중앙통제실에서 기기를 테스트하고 있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실제 운영되고 있는 3호기가 4호기와 거의 붙어 있기 때문에 기자는 혹시나 방사능에 피폭되지는 않을까 우려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방호복을 입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자 월성 원전에서 20년간 운전원으로 근무한 임모 차장은 “고방사선 구역 외엔 잘 관리되고 있기 때문에 염려할 것 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그러니 더 불안”

    지금은 정부가 원전을 위험하다고 여기고 있다.
    “그러니 더 불안한 것 아닌가. 주민들이 어쩔 수 없이 원전 옆에서 살아왔고, 또 의견을 모아 지역을 발전시키기 위해 유치까지 했다.”

    원전에서 서생면보다 좀 더 멀리 떨어진 곳, 예컨대 부산 시민의 경우 65%가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에 찬성한다는 여론조사(2017년 6월 부산일보)가 있다.
    “그 지역 사람들이 일부 탈핵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그렇게 판단한 것 같다. 나는 원전 홍보관에도 들어가 보고, 5·6호기 건설 현장에도 가봤다. 지난해 경주 지진 이후 원전에 볼트 하나 풀린 곳 없다. 곳곳에 지진감지기가 설치돼 일정 규모 이상의 지진이 오면 원전이 자동으로 정지된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주민들은 공론화위원회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한수원 이사회의 신고리 5·6호기 일시중단 결의에 대해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법원에 냈다.”

    주민협의회가 한수원의 사주를 받거나 일부 주민의 의견만 대표하는 것은 아닌가 의심하는 이들도 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지난 6월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촉구하기 위해 상경했을 때 서생면 주민 8000명 가운데 860명이 참가했다. 그만하면 대표성이 있는 것 아닌가.”

    물론 이상대 위원장과 달리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반대하는 인근 주민도 적지 않다. 심지어 고리 원전 주변 한 주민이 원전 방사선으로 인해 자신이 갑상선암에 걸리게 됐다고 소송을 제기해 법원이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린 일도 있다. 한수원은 원전 운영과 여성 갑상선암의 증가는 인과관계가 없다며 항소한 상태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반대 측은 또 이 지역이 세계에서 원전이 가장 밀집한 핵 단지라며 위험성을 줄이기 위해서 건설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완공 40년 만에 운전이 영구 정지된 고리1호기 근처에 신고리 5·6호기가 새롭게 위용을 드러낼지 아니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지는 공론화 결론이 나오는 10월 말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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