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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지성의 허브’ 바이마르

포도줏빛 고전주의 빚어낸 괴테 문학의 산실

  • 글: 권삼윤 문명비평가 tumida@hanmail.net

‘독일 지성의 허브’ 바이마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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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지성의 허브’ 바이마르

일름 공원 입구에 세워진 아우구스트 공의 늠름한 청동마상.

“내가 바이마르에 왔을 때 그(아우구스트)는 열여덟 살이었다. 그러나 그때 벌써 큰 나무가 될 눈과 싹이 보였다. 그는 이내 나와 가장 밀접하게 연결됐으며 내가 하려는 일이면 무조건, 그리고 철저히 참여했다. 내가 그보다 여덟 살 위라는 사실이 우리의 관계에 도움이 됐다. 그는 저녁 내내 내 옆에 앉아서 예술과 자연, 그리고 그 밖의 온갖 좋은 것들에 대해서 깊은 대화를 나눴다. 우리는 자주 밤늦게까지 앉아 있었다. 내 소파에서 둘이 나란히 잠든 일도 드물지 않았다. 그는 고급 포도주와 같았다. 아직도 강력하게 발효하고 있는.”

괴테는 당시 두서너 편의 문학작품을 써 유명해지긴 했지만 아직도 어설펐고, 무엇보다도 궁정 예법에 서툴렀다. 바이마르 상류계층 인사들은 그런 괴테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그와 가까이 하기도 꺼려했다. 그런데 최고지도자인 아우구스트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이 젊은이를 그처럼 끼고 돌았으니 더욱 미운 오리새끼 꼴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아우구스트의 귀에도 비난이 들려왔다. 하지만 그는 그때마다 이런 식으로 헤쳐나갔다.

“나는, 그리고 자신의 의무를 행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나 명성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신과 자신의 양심 앞에서 스스로를 정당화할 수 있기 위해서 일한다.”

아우구스트가 이렇듯 커다란 비전과 용기를 갖게 된 것은 어머니 안나 아말리아(Anna Amalia·1739~1807) 대공비(大公妃)의 헌신적인 노력과 지극한 정성에 힘입은 바 컸다. 그녀는 남편 에른스트 아우구스트를 일찍 여의고 어린 큰아들 대신 섭정할 때도 아들의 교육을 위해 셰익스피어의 전작을 독일어로 번역한 소설가 빌란트를 가정교사로 초빙하는 등 갖은 뒷바라지를 다했다. 또한 바이마르를 당대의 문화도시인 파리나 런던과 같은 도시로 만들고자 지식인과 문화예술인들을 불러들였다.

덕분에 아우구스트는 어머니보다 예술에 더 심취했다. 그 결과 전도양양한 젊은 괴테를 바이마르로 모셔왔고, 독일 최초의 오페라극장이 세워지고 요한 세바스찬 바흐가 연주 활동을 하는 등 문화 인프라를 지닌 바이마르를 독일 문화의 중심지로 우뚝 서게 했다. 요즘 말로 표현하자면 독일 지성의 허브(hub)를 구축한 것이다.



“더 많은 빛을!”

괴테가 프라우엔플란에 있는 집으로 이사한 것은 바이마르에 머문 지 8년째(34세) 되던 1782년이다. 아우구스트 공이 광석과 서책, 미술품 등을 모아두던 바로크 양식의 3층집을 선사하자 괴테는 이를 자신의 거소로 삼았는데, 지금의 인테리어는 1786년부터 1년 9개월에 걸친 이탈리아 여행에서 돌아온 뒤 르네상스 스타일로 개조한 것이다. 그 중에서도 백미는 1층 정면 현관에서 3층까지 꾸불꾸불 이어지는 아름다운 나선형 계단으로, 그의 안목이 어느 정도인가를 잘 보여준다.

경사가 완만한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오르자 나무판자인 바닥에 발을 디딜 때마다 삐그덕 소리가 났다. 2층 입구 바닥에는 ‘SALVE’라는 글자가 또렷하게 새겨져 있었다. 라틴어로 ‘환영’을 뜻한다. 계단에서 연결되는 방에는 도자기와 그림들이, ‘흉상(胸像)의 방’에는 그리스·로마 시대의 석고 인물상이, 응접실 겸 음악감상실인 ‘유노의 방’에는 괴테가 최고로 모셨던 음악의 여신 유노의 흉상이, ‘우르비노의 방’에는 우르비노의 초상화 등이 가득해 정말 박물관에 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이렇듯 그의 집은 크고 복잡했다. 여기에다 부인 크리스티아네가 사용하던 안방과 식당, 마요르카 도자기를 모아둔 ‘마요르카의 방’, 아우구스트의 65세 때 모습을 그린 초상화 등이 걸려 있는 대전시실, 만찬장으로 쓰이던 ‘황색의 방’ 등도 덧붙어 있다. 미술품은 많은 편이었으나 가구는 실용적인 것들이 대부분이고 그나마 단출했다. 바닥에는 판자가 알몸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이 집에서 50년 넘게 살았다면 그의 체취는 물론 생각까지 배여 있을 터, 그렇다면 그 분위기에서 그의 인품을 유추해봐도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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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권삼윤 문명비평가 tumid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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