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7월호

정동영-김근태의 대권플랜

통합의 리더십 vs 평화통일 전도사

  • 글: 엄상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gangpen@donga.com

    입력2004-06-29 18:29: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2007년 12월, 17대 대통령선거까지는 3년6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남았다. 벌써부터 대권 운운하는 게 시기상조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대권의 꿈을 품은 정치인에게는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다. 대권은 철저한 준비와 함께 치밀한 전략을 구사해야만 쟁취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 내 유력한 차기주자로 꼽히는 정동영(鄭東泳·51) 전 의장과 김근태(金槿泰·57) 전 원내대표의 대권 행보를 밀착 취재했다.
    정동영-김근태의 대권플랜
    2004년 6월11일 오후 2시. 정동영 전 의장의 연구소로 알려진 여의도 대하빌딩 한 사무실엔 여직원 혼자서 사무실을 지키고 있었다. 정 전 의장이 당의장직과 비례대표직을 내놓으면서 마땅히 머물 만한 곳이 없어지자 가끔씩 들르는 것으로 알려진 곳이다.

    건물 관계자는 “사무실은 지난 달 중순쯤부터 들어와 있는데 정 의장은 얼마 전에야 처음 봤다”면서 “무슨 연구소라고 하는데 간판도 없어서 그냥 정 의장 사무실이라고 부른다”고 전했다.

    보좌관이나 비서관, 특보 등 정 전 의장의 핵심 측근들도 외부에 공개된 국회의사당 앞 보이스카우트빌딩에 있는 후원회사무실보다 이 곳을 주로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여직원은 정 전 의장과 연관된 사무실이라는 것을 애써 숨기려 했지만 정 전 의장의 측근들이 사무실을 오가거나 일부 비서진이 출근한다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못했다.

    사무실에는 책상과 컴퓨터 수를 감안할 때 적어도 7~8명이 상근하고 있는 듯했다. 대권을 향한 정 전 의장의 행보와 관련된 조직임이 분명해 보였다.

    이 사무실이 썰렁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정 전 의장이 지난 6월7일 2주간의 일정으로 일본과 미국 방문길에 오른 것과 거의 동시에 측근들도 모처럼 만에 짜릿한 휴식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일부는 지방에 내려가 머리를 식히고 있고, 일부는 아예 해외로 여행을 떠났거나 떠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비슷한 시각, 김근태 전 원내대표가 이사장으로 있는 여의도 한반도재단 사무실에는 7~8명이 각자 뭔가에 열중해 있었다. 한두 달 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재단은 2002년 3월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직후 사무실 크기를 절반으로 줄이고, 경선 당시 20~30명이던 인원도 3~4명으로 대폭 감축한 상태에서 간신히 명맥을 이어오고 있었다. 지난 4·15 총선 때는 그나마 인원도 선거에 동원되면서 잠시 개점휴업 상태나 다름없었다.

    그 때와 비교한다면 겉으로 조용한 것은 별반 다를 바 없지만 내부적으로는 새로운 움직임이 꿈틀대고 있었다. 재단 관계자에 따르면 재단은 현재 조직을 확대재편 중이다.

    정 전 의장의 연구소와 측근들이 피로회복과 충전의 시간을 갖고 있다면 김 전 대표의 한반도재단은 조직정비에 나선 모습이다. 두 사무실의 대조적인 분위기는 정 전 의장과 김 전 대표의 최근 모습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총선 승리 후 통일부와 보건복지부 장관직을 놓고 벌인 두 사람의 신경전은 사실여부를 떠나 당 안팎에서 열린우리당이 6·5재보선에서 패배한 중대 원인으로 지적됐다. 그러자 정 전 의장과 김 전 대표는 인사결정권자인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뜻에 따르겠다는 원칙적인 입장 이외에는 입각과 관련한 어떤 질문에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측근들에게도 함구령이 내려졌다. 정 전 의장은 6·5재보선 직후 외유길에 오른 반면, 김 전 대표는 중국 방문일정을 취소하고 문화계 인사 등 그동안 소원했던 지인들을 만나고 있다.

    정동영 대선전략 리모델링 중

    하지만 이런 상황은 그다지 오래가지는 않을 전망이다. 두 차기주자의 동반입각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입각은 곧 대권경쟁의 신호탄이나 다름없는 까닭이다. 그렇다면 정 전 의장과 김 전 대표는 각자 어떤 대권플랜을 준비하고 있을까.

    “새 정치를 향한 큰 걸음을 내딛겠습니다.” 정 전 의장의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 뜨는 글이다. 정 전 의장의 홈페이지는 요즘 리모델링 중이다. 마찬가지로 대권을 향한 그의 전략도 수정보완 중이다.

    정 전 의장이 의장직을 사퇴한 직후 한 측근은 대권플랜과 관련 “지금 상황에서 그동안의 계획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새롭게 고민하면서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입각 결정으로 인해 전혀 새로운 정치지형과 상황을 초래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총선 승리 후 정 전 의장측은 내부적으로 의장직 유지와 사퇴를 놓고 치열한 공방을 벌였었다. 의장직 유지 쪽이 대세였다는 것이 한 측근의 전언이다.

    정 전 의장이 의장에 취임한 것은 올해 1월11일 열린 전당대회에서다. 당시 열린우리당의 지지도는 노 대통령 측근비리 등으로 인해 최악이었다. 이를 반전시키기 위해 정 전 의장이 전당대회 직후 꺼낸 전략이 ‘몽골기병론’이다. 정 전 의장은 발빠르게 시장과 공사판 등 서민투어에 나서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10%대 초반에 머물던 당 지지도가 30%선까지 회복된 것.

    대통령 탄핵정국으로 당 지지도가 급상승하다가 자신의 노인폄훼 발언으로 잠시 위기를 맞았지만 정 전 의장은 당 안팎에서 총선 승리의 ‘1등 공신’으로 평가받기에 충분했다. 특히 이번 총선을 통해 친(親)정동영 세력을 원내에 상당수 진출시켜 그동안 약점으로 지적됐던 당내 기반도 확실히 다졌다.

    순간순간 정치적 노련함을 발휘해 보수층의 반감을 감소시키는 데도 어느 정도 성공했다는 평가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에게 회담을 제안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그 제안은 다른 한 축을 인정하는 자세를 보이면서 ‘통합과 상생의 정치를 위한 새로운 정치모델’을 제시하는 한편 국민에게 정 의장에 대한 안정감을 심어줘 합리적 보수세력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한 전략이었다”는 게 한 측근의 설명이다. 정 전 의장이 중도보수 성향의 전문가그룹을 집중적으로 영입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던 것이다.

    의장직 유지를 바랐던 측근들은 총선 이후 다양해진 당내의 이념적 스펙트럼을 조정하기 위해서라도 당 의장의 지도력이 더욱 요구되는 만큼, 그 역할을 수행하면서 차기대권 주자로서의 자리를 확고히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 전략의 일환으로 세워놓은 것이 이른바 ‘당-청 한 몸론’이다. 당과 청와대가 선택적 협력보다는 현안마다 ‘한 몸처럼’ 긴밀하고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풀어가야 한다는 전략이다. 그러면서 당을 장악하고 확고한 지도력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것. 궁극적으로는 당의 노선을 합리적 개혁, 실용적 개혁으로 정리하고 정 전 의장이 그동안 내세웠던 ‘통합과 상생의 정치구도’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정 전 의장이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제시하고 있는 ‘정동영의 비전’이 바로 그 내용이다. “탈권위주의적 ‘통합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이제는 권력의 집중과 권위주의로부터 탈피해야 할 때다. 21세기는 ‘개개인이 생산적으로 사고하고 결정해 이의 총합이 사회발전으로 통합되는 시대’다.”

    하지만 정 전 의장이 의장직을 사퇴하고 입각 쪽으로 방향을 정하면서 이런 전략은 대폭 수정될 수밖에 없게 됐다.

    ‘천신정’의 당-정-청 한몸론

    정 전 의장이 입각을 결심하게 된 것데는 노 대통령의 권유가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노 대통령이 정 전 의장에게 “총선 과정에서 불거진 노인폄훼 발언을 만회할 기회를 갖는 것이 어떻겠느냐”며 보건복지부 장관을 제안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확인되지는 않았다.

    현재 통일부 장관이 유력시되지만 어떤 자리에 입각하든 정 전 의장의 입장에서는 활용가치가 충분하다. 정 전 의장은 그동안 ‘지나치게 대중적 인기에 영합한다’거나 ‘포장에 비해 내용이 빈약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노 대통령 탄핵정국과 총선과정에서는 ‘감성정치’라는 비아냥도 들었다. 국정경험이 전혀 없다는 것도 자주 지적되는 단점이다. 정 전 의장에게 입각은 이런 지적과 우려를 일시에 말끔히 해소할 수 있는 기회인 셈이다.

    정 전 의장측은 오히려 이번 기회를 통해 기존에 세워놨던 전략인 ‘당-청 한 몸론’을 ‘당-정-청 한 몸론’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구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건은 충분하다. 당은 내년 초까지 신기남 의장 대행체제를 유지하기로 결정됐고, 원내는 천정배 원내대표가 장악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정 전 의장이 입각하게 된다면 이른바 ‘천신정’은 서로간에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낼 것으로 측근들은 기대하고 있다.

    4·15 총선에서 총선기획단 부단장 겸 상황실장을 맡았던 김현미(金賢美) 의원의 정 전 의장에 대한 평가다.

    “청와대에 갔다가 다시 돌아와 1년 만에 정 의장을 봤는데 굉장히 많이 변해 있었다. 그 사이 각 분야의 전문가그룹과 만나면서 끊임없이 공부하고 준비한 것이 축적돼 있음을 느꼈다. 콘텐츠가 그만큼 준비된 사람도 없다. 다만 오랜 방송생활에서 몸에 밴 깔끔한 말투와 외모로 인해 오히려 자신의 콘텐츠를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리더십도 따뜻한 리더십, 화합하는 리더십을 보여줬다. 상임중앙위원회에서 제일 나이가 어린 데도 중앙위원들을 존중하면서 원만히 회의를 이끌어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김 의원은 정 전 의장의 정치적 자질에 대해 “상식과 자기 철학이 있고, 애정이 있다. 각 분야의 전문가보다는 전문적인 식견이 다소 부족하겠지만, 그런 것들을 취사선택해서 소화할 만한 능력이 있다”면서 “대통령감으로서 자질이 충분하다”고 추켜세웠다.

    김 의원은 다만 “이 시대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고민하면서, 좀더 폭을 넓혀 사람들을 만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정 전 의장의 입각을 염두에 둔 말이다.

    GT의 대권플랜 3대 키워드

    김근태 전 원내대표의 대권플랜도 입각으로 인해 일정 부분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통일부 장관이 될 경우에는 그다지 손질할 필요가 없지만 보건복지부장관으로 입각할 경우에는 복잡해진다.

    김 전 대표는 그동안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정보화 사회’라는 3대 키워드에 맞춰 대권을 향해 차곡차곡 준비해 왔다.

    김 전 대표의 과거는 그 자체가 민주주의를 향한 투쟁의 역사다.

    1971년 서울대 내란음모 사건으로 수배, 1974년 긴급조치 9호위반으로 수배, 1983년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초대 및 2대 의장, 1985년 민청련 사건으로 구속, 1989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집행위원장, 1990년 전민련 활동으로 구속.

    김 전 대표는 일반인에게 재야운동권 출신이라는 이미지와 진보적 좌파성향 또는 개혁적인 ‘투사’로 깊게 각인돼 있다. 문제는 이런 강한 이미지 때문에 김 전 대표가 지닌 다른 장점들이 가려진다는 것이다.

    김 전 대표는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이다. 시장경제에 남다른 관심과 애정이 있다는 점을 피력하기 위해 국회 상임위도 줄곧 재경위만 맡았다. 또 정보화 사회를 이끌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한 나름의 노력도 기울여왔다. 김 전 대표가 첫 당직으로 전자정부구현 정책기획단 위원장을 맡은 것도 그 일환이었다.

    그동안 이 같은 이미지관리 덕분에 김 전 대표의 강한 이미지는 일정부분 완화됐다. 특히 지난 총선을 통해 문제점으로 지적돼온 대중성과 인지도 부족도 어느 정도 해소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 전 대표는 총선 이후 다시 한번 원내대표에 나설 뜻을 여러 차례 피력한 바 있다. 한 측근은 “소수 정당의 원내대표가 아닌 다수 의석을 확보한 실질적인 집권여당의 원내대표가 돼 원내정당화를 위한 초석을 다지고 싶지 않겠느냐”고 반문해 김 전 대표의 의중을 전하기도 했다. 여러 가지 변수가 있었지만 실제로 측근들은 원내대표 재도전에 무게를 두고 나름의 전략에 따른 향후 일정을 준비했었다.

    측근들은 김 전 대표가 원내대표를 다시 맡아 지난 4·15 총선을 통해 원내에 진출한 재야운동권 및 386세력을 규합해 당 주도권을 확보하는 것을 우선과제로 삼았다. 거시적으로는 김 전 대표의 개혁이미지에 평화통일이미지를 더해 ‘동북아시아의 평화통일 전도사’라는 입지를 구축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지난 5월 일본 방문에 이어 6월 중국 방문, 7월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 참석 등의 외유일정도 동북아시아의 대표적 지도자로서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는 차원에서 준비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대표측은 특히 중국 방문길에 참석할 예정이었던 ‘보아오 포럼’을 아시아판 다보스그룹으로 추진하려는 복안까지 마련해 둔 상태였다고 한다.

    동북아 외교는 잠시 중단

    그러나 노 대통령의 입각제의는 떨치기 힘든 유혹이었다. 행정경험이 전무하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해소하는 데 장관직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자리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통일부 장관이라면 그의 장기적 대권플랜인 ‘동북아시아 평화통일 전도사’라는 이미지 메이킹 전략과도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자리다. 결국 김 전 대표는 노 대통령이 통일부 장관 자리를 줄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입각 쪽으로 마음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한 측근은 이에 대해 “유세현장에서 참여정부의 역사적, 현실적 성공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한 본인의 발언에 대해 책임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말로 입각을 결정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상황은 이때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원내대표 경선에 재야운동권 후보로 이해찬 의원을 내세웠지만 당권파 후보로 나선 천정배 의원에게 6표차로 석패했다. 원내 주도권을 당권파에게 넘겨줄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 결과 김 전 대표의 측근들로 채워졌던 원내대표실 산하 정책실 인원이 천정배 신임 원내대표 측근들로 대폭 물갈이됐다. 김 전 대표로서는 한반도 재단과 함께 전체적인 조직재정비 요인이 발생한 것이다.

    여기에 예상치 못한 정 전 의장의 의장직 사퇴에 이은 입각 결정, 그리고 정 전 의장이 보건복지부가 아닌 통일부 장관 입각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김 전 대표는 매우 복잡한 상황에 빠져버렸다.

    또 대학 및 운동권 후배인 이해찬 의원이 신임 국무총리 내정자로 지명되면서 “그 밑으로 들어가는 게 껄끄럽지 않겠느냐”는 시선도 부담스러운 처지가 됐다. 김 전 대표측은 그러나 “장관은 국무위원이다. 국민을 위한 진정한 개혁정책을 펼치는 것이 중요하지 자리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선·후배나 나이 등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고 일축했다. 지난 6월14일에는 김 전 대표가 노 대통령의 공공주택 분양원가 공개 반대 입장에 대해 “계급장을 떼고 치열하게 논쟁하자”며 청와대와 각을 세우자 당내 일각에서는 ‘입각포기 수순밟기 아니냐’는 해석이 분분했다.

    김 전 대표측은 이에 대해 “청와대를 향한 발언이 아니라 우리당 내부의 각성을 촉구한 것”이라고 지나친 확대 해석을 경계하면서 “행정부로 들어가서 국정을 도와주기로 한 대통령과의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것이 원칙”이라고 밝혔다. 입각결정엔 변함없다는 이야기다.

    한 측근에 따르면 김 전 대표는 입각과 동시에 개인적 차원의 동북아 중심외교는 당분간 중단할 계획이다. 국정운영을 하는 데 불필요한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이미 보류된 중국 방문은 물론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도 참석하지 않는 방향으로 결론내렸다고 한다.

    대신 한반도재단을 확대 재정비해 활성화시키겠다는 복안이다. 현재 재단 상근인원은 5명으로 늘었다. 재단 산하 ‘동북아전략연구소’가 새롭게 만들어져 3명의 상근자가 추가됐다.

    이 연구소는 김 전 대표와 가까운 이인영 의원이 주도적으로 만든 것으로 원내외 구분 없이 전대협 및 386 운동권 출신 40여명이 참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북아전략연구소는 2주에 한 번 모임을 갖고 있다.

    이 의원은 동북아전략연구소의 운영방향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일본과 중국, 미국, 러시아, 북한 등에 대해 제대로 알아보자는 차원에서 시작했다. 이들 지역의 이데올로기나 정치, 경제적인 변화 등에 대해서 해당분야의 전문가가 발표하고 토론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또 중요한 정치적 이슈에 대해서도 토론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자리다. 예를 들어 일본 천황제의 역사와 최근 일본의 우익화 경향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볼 것이냐에 대해 고민하고 토론하는 것이다.”

    문용식 재단 사무국장은 “재단은 본연의 업무인 한반도 평화통일과 동북아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기 위한 연구와 정책개발에 주력할 것”이라면서 “재단과 연구소는 한 몸이면서, 독자적인 운영으로 서로간에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재단은 이와 함께 ‘성장을 위한 개혁, 인간을 위한 성장’이라는 김 전 대표의 경제철학을 정책적으로 완성시키기 위한 연구와 토론회도 병행할 계획이다.

    한편 이인영 의원과 함께 연구소 모임에 참석하고 있는 전대협 등 386 재야운동권 출신 인사들은 김 전 대표의 적극적인 지지자이다. 이들에게 김 전 대표는 어떤 사람일까.

    이 의원은 “(김 전 대표는) 생각이 바르고 역사적 정통성이 있는 분”이라며 이렇게 덧붙였다.

    “시대정신을 얼마나 잘 체득하고 실천하느냐가 중요하다. 김영삼 대통령은 군인에서 민간인으로 권력을 옮겨왔고 김대중 대통령은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루어냈다. 노무현 대통령에게는 정치개혁과 지역주의 극복이 큰 시대정신이다. 이제 다음 정권에 요구되는 시대정신은 평화의 리더십, 경제, 풍요로운 복지와 민주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민족적인 과제, 민주적인 과제가 새롭게 제기될 텐데 그런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사람이 바로 김근태 전 대표라고 생각한다.”

    탈권위적인 통합의 리더십을 내세운 정 전 의장과 동북아 평화통일 전도사를 표방한 김 전 대표. 입각과정에서 통일부 장관을 둘러싼 갈등은 일단 노 대통령에게 일임하는 선에서 봉합됐다. 하지만 두 사람사이에 보이지 않는 경쟁과 견제는 17대 대선까지 어떤 식으로든 계속될 수밖에 없다. 권력싸움에선 승자만이 살아남기 때문이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