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7월호

‘튀어야 산다’ 17대 국회의원 밀착 관찰기

배지 안 달기, 동아리방 같은 의원실, 홈페이지 가꾸기, 너도나도 대권 프로젝트

  • 글: 장덕수 이지폴뉴스 기자 edsalt83@easypol.com

    입력2004-06-29 18: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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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대야소의 17대 국회가 개원했다. 17대 국회에 대한 국민의 기대와 관심은 상당히 높다.
    • 금배지를 처음 단 국회의원 상당수도 변화된 국회상(像)을 보여주려 하고 있다.
    • 개원 후 10여일간 17대 국회의 이모저모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튀어야 산다’ 17대 국회의원 밀착 관찰기

    17대 국회 개원식 모습(아래) 위쪽 오른쪽부터 국회내 여성의원 건강관리실에서 러닝머신을 하는 한나라당 김영숙 의원,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 열린우리당 장향숙의원.

    17대 국회는 역대 어느 국회보다 많은 화제를 낳고 기록을 남길 것으로 보인다. 전체 299명의 의원 중 초선이 187명으로 절반이 훨씬 넘는다. 정치권이 확실히 물갈이, 판갈이된 것 자체가 새 국회의 심상치 않은 미래를 예고하고 있다.

    정치권은 과반의석을 확보한 열린우리당이 국회를 어떻게 이끌어 나갈지에 관심을 갖고 있다.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출, 초선의원과 여성의원의 말과 행동도 관심거리다.

    의원들도 과거와 다른 모습을 보이기 위해 개인이나 그룹, 정당차원에서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언론과 국민을 의식해 ‘오버’하는 의원도 없지 않았다.

    개원 10여일이 지난 시점에서만 보면 이제 국회와 의원들로부터 국민 위에 군림하는 모습은 보기 힘들 전망이다. 의원들이 저마다 국민에게 좀더 친근하고 탈(脫) 권위적으로 보이려 노력하고 있기 때문. 상황이 이렇다보니 17대 국회의원들이 본격적으로 국회에 입성한 5월25일부터 국회는 크고 작은 소동으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국회의 ‘국(國)’자가 ‘혹(惑)’자 같다”



    17대 국회의원들이 첫 등원한 지난 6월5일 아침. 국회 본관 입구 계단에서부터 본회의장 입구까지 레드 카펫이 깔렸다. 이 카펫을 밟은 이날의 주인공은 당연히 처음으로 국회의사당을 밟는 187명의 초선의원.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의원 대다수가 사전에 준비해온 듯 ‘개혁’ ‘무거운 책임감’ ‘두려운 소명의식’ ‘민생국회’ 등등 의례적인 말로 답했다. 그러나 겉모습만큼은 역대 국회와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17대 국회의 생존수칙 1조1항은 ‘튀어야 산다’다. 초선의원 대부분이 기존 의원들과 다르게 보이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역력했다. 대표적인 것이 금색 도장의 국회의원 배지가 눈에 잘 띄지 않는 것. 이를 달지 않은 것이 당연해 보일 정도로 많은 의원이 국회의원의 상징인 금배지를 포기했다. 국회가 존경받게 될 때 달겠다는 ‘각오’란다. 민주노동당 의원들은 단체로 금배지 대신 당(黨) 배지를 달았다.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은 “국회의원 배지를 자세히 보면 나라 국(國)자가 ‘의혹스럽다’고 할 때의 혹(惑)자 같아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의원들마다 제각각 이유를 댔지만 대체로 ‘금배지’가 자신의 이미지에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의원들이 첫 등원 때 선보인 옷차림도 국회의 관행을 한방에 깨어버린 파격이었다. 가장 눈에 띄는 패션을 자랑한 의원은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과 한나라당 고진화 의원. 강 의원은 이날도 평시와 마찬가지로 턱수염에 잿빛 두루마기를 입었다. 그는 느린 속도로 국회 분수대를 지나 의사당까지 걸어서 왔다. 농민운동가 출신인 강 의원은 “농민회에서 평소처럼 입으라고 해서…”라고 말했다. 같은 당 단병호 의원도 평상시처럼 짙은 감색 점퍼를 입고 등원했다.

    고진화 의원은 젊은 세대의 튀는 패션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그는 젊은층에서 유행하는 가벼운 스니커즈(굽이 없는 구두형 운동화)를 신고 밝은 색 스포츠 점퍼를 입고 나왔다.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은 청바지를 입고 나와 ‘생활정치’를 실천했고 열린우리당 홍미영 의원과 강혜숙 의원은 개량 한복을 입고 맵시를 자랑했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이혜훈 의원은 분홍색 치마정장을, 전여옥 대변인은 보랏빛 상의에 검정바지를 입었다. 송영선·김애실 의원은 각각 분홍색 치마정장과 비둘기색 바지정장으로, 한나라당 박찬숙 의원과 열린우리당 김희선 의원은 흰색 옷으로 화사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과거 여성 국회의원들이 짙은 색 치마정장 일색이었던 것과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었다.

    변화의 바람은 의원들이 타고온 승용차에도 일었다. 검은색 고급승용차 행렬이 크게 줄었다. 많은 의원이 RV용 차량을 이용하거나 흰색 등 다양한 색깔의 차를 타고 등원했다. 한나라당의 윤건영 의원은 직접 운전을 하고 국회에 출근,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걸어왔다.

    ‘잘했어’ 소리에 버럭 화내

    이와 관련된 일화 하나. 열린우리당 소속 한 초선 의원은 집에서 지하철을 이용해 여의도역까지 온 뒤 역 앞에서 택시를 타고 국회에 등원하기로 했다.

    보좌관은 본관 계단에 서서 기자들에게 넌지시 “택시 타고 출근하는 의원도 있다”고 흘리면서 촬영과 취재를 유도했다. 그러나 문제는 엉뚱한 데서 터졌다. 의원이 초선이라 국회 관행을 잘 몰랐던 반면 택시기사는 ‘택시는 국회의원 차가 내리는 본관 계단까지 올라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그래서 택시 기사가 ‘거긴 못 올라가요’라며 택시를 본관 계단에서 한참 떨어진 주차장에 세웠고 그 의원은 걸어서 올라올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단체로 걸어오는 바람에 그 의원은 민주노동당 의원들을 취재하는 기자들의 등에 떠밀려 의사당 안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아무튼 승용차를 직접 운전하고 출퇴근하는 의원이 늘어나고 있어 이제 여의도에서 운전자석에 앉아 있거나 신호위반으로 스티커를 발부받는 의원들의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날 본회의장에서도 초선 의원들의 좌충우돌은 계속됐다. 대표적인 것이 ‘잘했어’ 소동이다. 국회는 방한한 외국 원수나 외부인사가 아닐 경우 본회의장에서는 박수를 치지 않는 관행이 있다. 그 대신 ‘잘했어, 잘했어’라는 말로 격려와 지지를 표시한다.

    ‘튀어야 산다’ 17대 국회의원 밀착 관찰기

    17대 국회에선 한글 명패를 사용하는 의원들이 크게 늘었다.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이 교섭단체인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만의 협상에 의해 일방적으로 국회의장 등 원 구성을 진행하는 것에 대해 비난하는 신상발언을 하는 도중 다른 당 의원석에서 “잘했어”라는 소리가 나왔다. 그러자 강 의원은 이에 발끈해 의원석을 향해 “개인이 아니라 국민대표로서 지적한 건데 누가 잘했어라고 해”라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에 재선 이상 의원들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정말 잘했다고 해주는 것”이라며 “처음이라 알 리가 있나, 원래 이렇게 하는 거야”라며 혀를 찼다.

    쉬는 시간엔 의원 10여명이 휴대전화로 통화를 하다가 국회 직원들로부터 제지를 받았다. 몇몇 여성 의원은 물이 담긴 종이컵이나 노트북을 회의장에 갖고 들어가려다 이를 막는 국회 직원들과 가벼운 실강이를 벌이기도 했다.

    명패도 한글이름 명패로 대부분 바꿨다. 전체 의원 중 80% 정도가 한글이름을 선택했다. 지난 16대(42.1%)에 비하면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명패뿐만 아니라 국회 모든 자료에서도 의원 이름이 한글로 쓰여지게 돼 국회 공식기록물도 점차 한글전용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아졌다.

    발람함의 극치, ‘의원회관’

    17대 국회의 파격은 정책연구와 민원인 면담 등 의정활동 대부분이 이루어지는 ‘의원회관’에서도 계속됐다. 제2의 집 같은 곳이기에 의원회관에서 17대 국회의원들의 ‘자유 발랄함’은 극에 달했다. 여기에 생전 처음 국회에 들어오는 보좌관과 비서관들까지 합세해 대학 기숙사와 비슷한 분위기다. 16대까지의 귄위와 격식은 어느 구석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의원회관을 담당하는 최모 경위는 “우리야 골치 아프죠. 누가 의원인지, 보좌관인지, 비서관인지 알 수가 없어요. 비슷비슷해요. 배지도 안 달고”라며 “옷차림을 보면 직원 같은데 의원인 사람도 있고, 압구정이나 뭐 이런 데서 노는 애들 같아 도저히 비서관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게 많아요”라고 말했다.

    책상 배치 등 의원실 구조도 16대와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17대 의원실은 철저하게 탈권위적 오피스형으로 탈바꿈했다.

    재선인 한나라당 임태희 의원은 의원실을 보좌관 등 직원들의 업무공간으로 내줬다. 초선인 열린우리당 정청래 의원은 총 9명이 일할 수 있도록 사무실과 의원실의 구분을 없애버렸다. 서로 ‘형’ ‘선배’로 부르는 경우도 많아 대학 동아리방이 따로 없다.

    한나라당 최구식 의원은 의원실을 손님 접대실로 사용하고 있다. 보좌진 경력 13년째인 L씨는 “의원실마저 의원의 독점을 인정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며 “의원의 정치적 역할은 간과된 채 기능주의에 함몰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한나라당 진수희 의원은 “사무실 공간이 좁은 것은 어쩔 수 없다치고 인프라라도 제대로 깔려 있어야 하는데 아주 형편없다”고 의원실을 혹평했다. 인터넷망이 들어와 있지만 이용자가 많아 속도가 떨어지는 것도 문제지만 무엇보다도 ‘무선 랜’이 되지 않는다는 불평이었다.

    의원들은 방 배정에 상당히 신경썼다. 각 의원 사무실은 모두 25평(의원실 11.6평, 보좌진실 11.1평)으로 내부구조가 같다. 한번 정해놓으면 4년간 바꿀 수 없어 소위 명당자리를 차지하려고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그러나 사무처는 과열경쟁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당선자 ‘나이순’으로 방을 배정했다.

    열린우리당 장향숙 의원이 들어간 221호는 김종필 16대 의원이 오랫동안 사용했던 방인데 장 의원이 휠체어를 이용한다는 점을 감안해 배정된 것이다. 민주당 김상현 전 의원이 쓰던 721호실은 한때 총리설까지 나돌던 열린우리당 한명숙 의원이,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가 쓰던 423호는 열린우리당 유선호 의원이 차지했다. 민주당 조순형 전 대표의 방은 무소속 최인기 의원이, 홍사덕 전 한나라당 총무 방은 열린우리당 김성곤 의원이 접수했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 방엔 열린우리당 신기남 당의장이 들어왔다.

    재선급 의원 대다수가 국회 본관이 보이는 앞쪽으로 방을 옮긴데 반해 홍준표 의원은 방(707호)을 옮기지 않았다. 방은 맨 구석으로 여러 가지 측면에서 좋지 않지만 그곳에서 두 번이나 힘든 선거를 이겨냈기 때문에 굳이 옮기려 하지 않은 것이다.

    ‘정책 우선’ 바람은 보좌관과 비서관을 뽑을 때도 영향을 미쳤다. 국회의원은 모두 6명의 보좌관을 둘 수 있다. 4급 보좌관 2명, 5급 비서관 1명, 6-7-9급인 비서 3명이다. 이중 보좌관은 의원 개인의 정치적 행보에 조언을 해주고 총재 등 지도부, 중앙당과의 관계를 원활히 해 줄 수 있는 정무형을 선발하는게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17대에선 정책전문가가 각광받고 있다. 정책전문가를 한 명이라도 더 뽑기 위해 7급이나 9급 운전기사, 여비서직을 아예 없애는 추세. 이 때문에 의원 자신이 직접 운전하거나 손님을 접대하는 경우가 크게 늘어난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경우는 현행 직급별 체제를 아예 무시하고 의원실별 풀제를 운영하기로 했으며 보좌진들은 월급이 지급되는 통장을 당에 반납한 뒤 당에서 정한 임금체계대로 월급을 받는다. 의원마다 ‘정책능력’을 강조하다보니 보좌진 학력 인플레 현상마저 일었다. 예전 같으면 서울 명문대 박사학위 소지자가 의원회관을 통틀어서 몇 명 되지 않았으나 최근에는 수를 헤아릴 수없을 정도로 늘었다.

    의원들이 아예 모집 공고를 내거나 개인적으로 ‘구인’을 요청할 때 ‘OO대학교 경제학 박사학위 소지자’라는 구체적인 조건을 붙이는 것이 일반화됐다. 최근 구직난 때문인지 이같이 까다로운 조건을 붙여도 의원실엔 수십 통의 이력서가 쌓인다고 한 의원은 전했다.

    이런 일도 있다. 한나라당의 S의원, A의원과 열린우리당의 L의원은 보좌관이나 비서관을 뽑을 때 사주를 보고 채용여부를 결정하는 것으로 알려져 회관 내에서 화제가 됐다. 특히 S의원은 직접 사주를 보기 때문에 아예 면담 자리에서 자신과의 궁합을 따져 당락을 결정한다고 한다.

    실제 면담에서 떨어진 L 전 보좌관은 “면담 도중 갑자기 ‘생시(生時)가 어떻게 되냐’고 물어 당황했다”며 “10여년 동안 여러 명의 의원을 모셨지만 면접에서 사주를 본 것도 처음이고 그 때문에 떨어진 것도 처음”이라고 전했다.

    187명의 초선의원과 힘든 선거전에서 살아남은 재선 이상 의원들은 17대 국회가 시작하자마자 4년 후 있을 총선 준비에 들어갔다. 예전과 달리 1년차라고 해서 여유 부릴틈이 없다. 16대 국회라면 2~3년차에나 나타났을 징후가 곳곳에서 보인다.

    그러나 무리하다 보면 부작용이 따르게 마련이다. 이를 놓고 ‘17대 국회의 3불3과(三不三過)’론이 제기되고 있다.

    3불 중 첫째는 금품수수와 이권개입이다. 단 몇십만 원이라도 공돈은 안 받겠다는 다짐이 의원들 사이에 폭 넓게 형성되어 있다. 둘째는 권위다. ‘딴따라’라는 비아냥은 들을지언정 ‘권위적’이라는 말은 못 참는다는 것이다. 셋째는 서열과 관행의 부정이다. 상대 의원이 비록 고향 선배라 하더라도 거리낌없이 할 말을 하는 분위기다.

    3과는 첫째 사이버 지상주의, 둘째 모임 만들기 열풍, 셋째 너도나도 ‘제2의 노무현’을 꿈꾸는 소장파 의원들의 대권프로젝트다. 의원들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홈페이지를 호화롭게 꾸미고 있다. 디지털 정치에 정성을 쏟고 있는 것이다. 홈페이지 제작 단가도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지만 의원들은 디지털 분야에서 ‘불안’을 느끼고 있다.

    제2의 노무현 프로젝트

    이는 특히 한나라당이 더 심하다. 2002년 대선과 올해 총선에서 진 이유를 ‘사이버 전략의 부재’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도 ‘디지털 정당’을 부르짖고 전 당력을 ‘디지털 정당 구축’에 집중하고 있다. 인터넷 스타를 인위적으로 키우겠다고 조련에 들어갔고 심지어는 소속의원들의 홈페이지를 평가해 매달 순위를 매기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이런 속사정을 꿰뚫고 있는 디지털 장사꾼들은 구석기 디지털 시스템을 들고 와 “열린우리당 것보다 2~3단계 앞선 신제품”이라고 선전, 적지 않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 홈페이지 구축 비용도 업자들이 ‘유권자 완벽관리, 4년 후 총선승리는 기본 대권도 가능’이라고 적당히 늘어놓으면 부르는 게 값이다.

    이는 소장파 의원들 사이에서 열풍처럼 불고 있는 ‘제2의 노무현 프로젝트’와도 깊은 연관성이 있다. 여야 할 것 없이 초·재선의원 상당수가 2007년 17대 대선을 목표로 대권프로젝트 가동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모델은 노무현 대통령. 여기에 빠지지 않는 것이 ‘디지털 정치’이기 때문에 업자들과 이해가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자고 나면 하나씩 만들어지는 의원모임이나 단체도 17대 국회의 특징중 하나다.

    현재 열린우리당에는 초선모임(임종인), 젊은희망(송영길), 국가발전위한모임(김영춘), 열린정치모임(염동연), 참여정치연구회(유시민), 노대통령 참모출신모임(이광재), 여성의원모임(이미경), 시사포럼(정덕구), 서울 균형발전을 위한 연구모임(서울 강북지역 당선자들)이 있다. 이외 전대협 출신이나 대권예비주자별 모임 등 비공식적인 모임 5~6개가 활동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국가발전전략연구회(이한구)와 푸른정치모임(박진), 국민생각(맹형규), 여성전진네트워크(김영선), 21세기 전략네트워크(김애실), 수요공부모임(원희룡)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여야가 함께하는 모임으로는 ‘남북교류협력 국회의원 연구모임’이 있다. 조정식 열린우리당 의원과 고진화 한나라당 의원 등 20여명은 ‘한국과 세계 연구회’를 만들었고 정덕구 열린우리당 의원과 박세일 한나라당 의원이 추진중인 ‘시장경제와 사회안전망 연구포럼’도 발족을 앞두고 있다.

    문제는 이들 모임이 의원들에게 또 다른 구속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17대 국회에선 보스정치, 계보정치의 관행이 상당 부분 사라진 반면 이 같은 모임이나 그룹이 정치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17대 국회가 자칫 소규모 계보정치로 전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열린우리당의 경우 자발적 노심(盧心)지지 그룹이 모든 사안에 대해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어 당 지도부의 ‘지도력’을 사실상 약화시키고 청와대에 의존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소모임 정치는 같은 당 의원들간의 친목에도 문제를 일으킨다. 여야 모두 특별한 정치적 리더십이 없는 가운데 소모임 형태로 삼삼오오 모이다 보니 모임간에 의원 끌어들이기 경쟁이 심한 편이다.

    한나라당 전국구 초선인 한 여성의원은 “다들 모임에 들어가는데 나만 안 들어가면 고립되지 않을까 걱정도 되고 그렇다고 다 들어가면 지조가 없다고 뭐라 할 것 같아 걱정”이라고 고충을 털어놨다.

    새로운 국회가 시작되면 특별히 고생하는 세 부류의 직종이 있다. 국회경비와 의원 경호업무를 맡는 경위, 기자, 보좌관이 그들이다. 새 국회의원의 얼굴, 이름, 성향 등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역대 선거 중 현역 교체율이 가장 높은 17대 국회는 이들에겐 최악이다. 특히 이번 초선의원들은 금배지를 달지도 않을 뿐더러 감색 일색의 양복이 아니라 캐주얼한 복장에 젊은 얼굴이 많다. 따라서 의원을 사전에 알아보고 출입에 불편이 없도록 도와야 하는 경위들로서는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특히 보좌관인지 의원인지 알쏭달쏭한 젊은 의원들을 보면 화날 때도 있다고 한다.

    기자들도 마찬가지다. 정당별로 나누어서 취재하지만 그래도 여야 의원들의 신상명세를 대략적이라도 파악해야 취재가 한결 쉽다. 이번에는 새로 외워야 할 숫자가 너무 많아 기자들도 고생이 심하다.

    17대 의원들의 소감과 각오

    이번 총선에서 낙선하거나 정계를 은퇴한 16대 의원은 140여명. 따라서 낙선한 의원 방에 딸려 있던 수백 명의 보좌관, 비서관들이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자리 이동을 해야 했다. 특히 30대 중반 이후 보좌관들은 적잖이 마음고생을 했다는 후문이다. 자기 밑에서 비서관을 했거나 함께 일했던 동료 다수가 의원이 되어 나타나기 때문이다. 배 아픈 것을 떠나 ‘나는 그동안 뭘 했나’라는 자괴심과 절망에 빠졌다는 것. 일부는 끝내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여의도를 떠났고 일부는 ‘4년 후에 보자’며 굳은 결심을 하고 지역구 표밭으로 내려갔다.

    17대 국회에선 20~30대의 컨셉트에 맞는 새로운 트렌드가 잉태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변화의 속도도 당초 예상보다도 훨씬 빠르다. 그러나 17대 국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변화상이 전적으로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17대 국회는 인기영합주의, 경험 미숙, 안정적 국정 리더십의 부재 등 새로운 우려도 낳고 있다.

    끝으로 의정활동에 임하는 의원들의 소감과 각오를 소개한다. 이들이 자신이 한 말대로 실천한다면 17대 국회는 아마 성공한 국회가 될 것이다.

    ▲김혁규 의원(비례·초선)=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 ▲김영주 의원(비례·초선)=당파 싸움에 휘말리지 않겠다. 국민을 두려워하는 의원이 되겠다. ▲임채정 의원(서울 노원병·4선)=새롭게 출발하면서 이번에 성공하지 못하면 역사를 퇴보시킨다는 자세로 임하겠다. ▲이목희 의원(서울 금천·초선)=민의는 민생과 경제안정에 있다. 이에 힘쓰고 또 중단없는 개혁도 해야 겠다. ▲채수찬 의원(전북 전주덕진·초선)=국가 전반적으로 경제살리기 대책이 제대로 없다. 이 점에 의정활동의 주안점을 두겠다. ▲유시민 의원(경기 고양덕양갑·재선)=아직도 기존의원들에게는 관습이 남아 있다. 의원들 간에 지속적인 충돌이 일어날 것이다. ▲김원기 의원(전북 정읍·6선)=17대 국회는 과거의 연장선상이 아니라,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는 국회가 될 것이다. ▲임종석 의원(서울 성동을·재선)=젊은 초선이 많아 지난 16대보다 생동감이 있어 보인다. 국민은 일하는 국회를 보고 싶어한다. ▲송영길 의원(인천 계양을·재선)=새로운 각오로 새로운 정치를 해나가겠다. ▲정봉주 의원(서울 노원갑·초선)=개혁국회인 만큼 개혁적인 모습을 보이겠다. 최근 당이 혼선을 빚는데 심기일전해 일체감을 갖겠다. ▲김영춘 의원(서울 광진갑·재선)=구태를 일소하고 선진 통일국가로 만드는 선봉에 서는 정치, 생산적 국회가 됐으면 한다. ▲이호웅 의원(인천 남동을·재선)=의원석 배치도 당별로 앉던 것을 지역별로 앉는 등 처음부터 달라진 것 같다.(이상 열린우리당 소속)

    ▲송영선 의원(비례대표·초선)=국가가 너무 어려운 상황이다. 국회가 할 일은 국민이 살 만한 법을 만드는 것이다. ▲김애실 의원(비례·초선)=기다렸던 날이 왔다. 전과 달리 합리적으로 모든 일이 처리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김기현 의원(울산 남을·초선)=산뜻한 기분으로 잘해보고 싶다. ▲배일도 의원(비례·초선)=기존 질서를 바꾸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유정복 의원(경기 김포·초선)=개원 한달 전부터 공부해 왔다. 끊임없이 공부하는 정치인이 되겠다. 초심을 잃지 않겠다. ▲박순자 의원(비례·초선)=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를 하겠다. ▲김충환 의원(서울 강동갑·초선)=열심히 하겠다는 말부터 해야겠다. 또 국민의 뜻에 맞게 활동하겠다. ▲원희룡 의원(서울 양천갑·재선)=구성원이 많이 변했다. 퇴보할 수도 전진할 수도 있다. 나는 전진하는 쪽으로 기대한다. ▲김영선 의원(경기 고양일산을·3선)=국가 혼동기에 정치라도 진지해야겠다. 파워 정치에서 벗어나 여성의 능력을 보여주겠다. ▲박형준 의원(부산 수영·초선)=선거과정에서 말한 것을 반드시 지키겠다. 공을 사보다 앞세워 모든 일을 처리해 나가겠다. ▲전여옥 의원(비례·초선)=회사를 옮겨 새로운 곳에 첫 출근하는 느낌이다. 의사당 앞에 서니 막중한 책임이 실감난다. 열심히 하겠다. ▲박찬숙 의원(비례·초선)=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를 하겠다.(이상 한나라당 소속)

    ▲최순영 의원(비례·초선)=과거에는 우리의 억울한 일을 하소연하러 국회에 왔는데, 이제는 변화시키려고 왔다. ▲단병호 의원(비례·초선)=당사에서 의사당까지 걸어왔다. 17대는 신뢰받는 민생 국회가 되게끔 최선을 다하겠다. ▲권영길 의원(경남 창원을·초선)=마음이 무겁고 착잡하다. 너무나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는 생각이다. ▲노회찬 의원(비례·초선)=서민을 배제하는 과거의 정치는 배제하겠다. 배지에 한자(漢字)가 있으면 계속 달지 않겠다.(이상 민주노동당 소속)

    ▲한화갑 의원(전남 무안신안·4선)=17대 국회가 순탄치 않을 것 같다. 국민과 민족에 대해 준비된 자세로 봉사하겠다.(민주당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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