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7월호

이명박 서울시장 미 LA에서 100억대 소송 낸 사이버금융 미스터리

이명박 “도와주려다 사기당했다” VS 김경준 “정치적 음모 숨어있다”

  • 글: 엄상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gangpen@donga.com

    입력2004-06-30 10:09: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김경준 2001년 12월20일 美 도주, 올 5월27일 FBI에 전격 체포
    • “이미지 회복과 투자손실 떠넘기려는 정치게임에 당했다”
    • 이명박, LK이뱅크 관련 김경준에 100억대 민사소송 청구
    • 다스와 BBK간 190억대 장기투자일임계약이 체결된 진짜 이유
    • 다스 주주는 이명박 친형과 처남, 대표는 현대건설 부장 출신
    • 이명박 “2000년 초 BBK 설립해 펀드 묻고 있는 상태”
    • 대치동 코스모타워 8층 임대차계약 변경에서 드러난 의문들
    • 이명박 “다스·BBK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이명박 서울시장 미 LA에서 100억대 소송 낸 사이버금융 미스터리
    ‘차익거래의 귀재’가 벌인 국제금융사기사건인가, 알 수 없는 음모가 숨어 있는 게이트인가.

    한국 검찰의 수배를 피해 미국으로 도피했던 옵셔널벤처스코리아(현 옵셔널캐피탈·창투사) 전 대표 김경준(38)씨가 지난 5월27일 미 연방수사국(FBI)에 전격 체포되면서 옵셔널벤처스 국제금융사기사건이 다시금 세인의 이목을 끌고 있다. 특히 이명박(李明博) 현 서울시장과 김씨의 주장이 첨예하게 엇갈리면서 사건의 실체에 대한 궁금증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

    김씨는 자신의 검거 배경에 “일종의 정치적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며 그 배후로 이 시장을 지목하고 있는 반면 이 시장은 김씨로부터 일방적으로 사기를 당한 피해자라는 입장이다. 30대 후반의 젊은 금융인을 선의에서 도와주려다가 오히려 피해를 당했다는 것. 현재 한 사람은 서울시장이고, 또 한 사람은 미국에서 체포된 국제금융사기사건 피의자다. 과연 누구의 말이 진실일까.

    검찰이 김경준씨의 금융사기사건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 것은 2002년 3월 옵셔널벤처스코리아 소액주주 27명의 고소장이 접수되면서다. 검찰은 곧바로 이삿짐센터 화물창고에 보관중이던 회사장부 및 서류 등을 압수해 김씨의 혐의를 확인하고 수배했지만 김씨는 2001년 12월20일 이미 미국으로 도피한 뒤였다.

    한국 검찰이 미 사법당국에 제출한 ‘범죄인 인도요청서’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 2000년 7월부터 2001년 12월까지 총 22회에 걸쳐 자신이 운영하던 옵셔널벤처스 회사자금 384억여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중 190억원은 국내에 8개 외국계 유령회사를 설립해 투자하는 수법으로 빼돌렸다는 것.



    김씨는 또 금융감독원에 외국인명의 법인설립이나 외국인투자등록을 하기 위해 외국인명의 여권과 법인인증서가 필요하자 부하직원을 시켜 위조여권 7매와 법인설립허가서 19매를 위조한 혐의도 받고 있다. 이밖에 주식 가장매매, 고가매수, 허수매수, 외자유치 허위사실 유포 등 증권거래법 위반혐의도 추가돼 있다.

    검찰은 미국으로 도피한 김씨가 자진 귀국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지난해 8월21일 법원으로부터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올해 2월12일 미 사법당국에 김씨의 인도를 정식 청구했다. 김씨는 2001년 12월 미국으로 도피한 지 2년 반 만에 체포된 셈이다. 김씨는 현재 미 LA연방법원에서 진행중인 범죄인 인도재판 인정심문에서 자신의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한편 미 LA연방법원에서는 김씨와 친누나 에리카 김 등을 상대로 제기된 세 건의 민사소송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2003년 5월30일 (주)다스(구 대부기공)사의 140억원대 투자금 반환소송과 2004년 2월27일 이명박 서울시장의 법정 수탁인 김백준씨가 제기한 100억원대 투자금 반환 및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소송, 2004년 6월1일 옵셔널캐피털(옵셔널벤처스코리아의 후신)의 횡령 등으로 인한 380억원대 회사자금 손해배상 청구소송 등이다.

    이 세 건의 소송은 법무법인 일신의 정동수 변호사가 LA에 설립한 것으로 알려진 로펌 ‘Lim, Ruger & Kim, LLP’에서 도맡았다. 도합 550억원대에 달하는 세 건의 소송은 따지고 보면 별도의 사건이 아니다.

    하나은행 5억 투자는 ‘풋 옵션’

    이번 사건엔 국내외 금융기관과 기업들이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사건에 등장하는 업체들을 정리하면 국내 금융회사는 LK이뱅크(자산운용관리), EBK증권중개(증권매매중개), BBK투자자문(투자자문운용), 옵셔널벤처스코리아(창업투신) 등 4개사다.

    또 국내 기업은 삼성생명과 다스(대부기공), 심텍 등인데 이들 기업은 BBK와 장기투자일임계약을 맺고 BBK를 통해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British Virgin Islands)에 만들어진 역외펀드 MAF (Millennium Arbitrage Fund Plc.)에 투자하게 된다. 수탁회사는 한국외환은행 아일랜드 현지법인(KEB Ireland).

    지금부터 살펴볼 것은 김씨 및 이 시장과 관련된 금융회사의 설립과정과 시점, 사무실의 위치 그리고 자금의 흐름이다.

    가장 먼저 설립된 회사가 BBK다. 등기부등본상 1999년 4월27일 만들어졌다. 서류상 이 회사는 버진 아일랜드의 BBK캐피탈파트너버진아일랜드가 주식 100%를 소유한 외국계 업체지만, BBK캐피탈파트너버진아일랜드는 형식상 만들어진 페이퍼컴퍼니다. 실질적인 회사는 국내에 있지만 세제감면을 받고 경영간섭을 피하기 위해 조세회피지역에 형식상 본사를 둔 것. 헤지펀드들이 주로 사용하는 수법이다.

    BBK가 금감원에 투자자문업을 공식 등록한 시기는 1999년 11월16일. 하지만 실질적인 영업은 5개월 전인 6월1일부터 이미 시작했다. 주소지는 서울 중구 태평로2가 150번지 삼성생명빌딩 17층이고, 대표이사는 김경준이다.

    뒤이어 2000년 2월18일 같은 주소지에 LK이뱅크가 만들어졌다. 이명박과 김경준 공동대표로, 두 사람은 회사가 설립된 2월18일 동시에 취임했다. 객관적으로 확인 가능한 기록에 의하면 이때부터 이 시장과 김씨가 동업한 셈이다. 이때 전 현대종금 대표이사인 김백준씨가 이사로 등재된다. LK이뱅크의 자본금은 두 차례 증자를 거쳐 모두 62억5000만원.

    회사설립 초기자본금 20억원은 이명박 시장이 모두 부담했고, 김경준씨는 2000년 6월15일 1차 증자과정에서 30억원을 투자했다. 하나은행도 ‘외부감사를 선임하고, 회계장부를 남겨놓아야 한다’는 조건을 걸고 ‘풋옵션’ 형태로 5억원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시장의 총투자금은 30억원이다.

    현재 이 시장이 김백준씨를 내세워 민사소송을 제기한 것이 바로 이 대목이다. 이 시장은 하나은행측이 2001년 9월경 투자금 반환을 요청하면서 법적대응에 나서자 2002년 5월경 5억여원을 반환키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시장은 이에 따라 자신의 투자금 30억원에 하나은행에 합의해 준 5억원을 합한 35억원과 김경준씨가 LK이뱅크 계좌를 자금세탁에 이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피해액 65억원 등을 포함해 100억원대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다음으로 주목해 봐야 할 것은 다스(대부기공)가 BBK와 장기투자일임계약을 체결한 시점이다. 다스측 이사회 의사록을 보면 이사회가 BBK와 장기투자일임계약에 따른 1차 투자금 50억원에 대한 투자결정을 내린 시점은 2000년 3월21일이다. LK이뱅크가 설립된 지 겨우 한달이 지나서다.

    이어 같은 해 10월2일 50억원, 12월21일 90억원의 투자결정을 위한 이사회가 열려 모든 사항을 김성우 대표이사에게 위임하기로 결정했다. 다스가 BBK와 장기투자일임계약을 체결해 투자한 금액은 모두 190억원에 달했다.

    다스는 자동차시트제작업체로 이상은씨(46.85%)와 김재정씨(48.99%)가 최대주주다. 현재 이상은씨는 이 회사의 회장을 맡고 있고, 김재정씨는 감사로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 이 회장은 이명박 시장의 친형이고, 김 감사는 이 시장의 처남이다. 또 회사의 대표이사인 김성우씨는 이 시장이 현대건설 사장 재직 당시(1977~88년) 현대건설 부장(1978~86년)으로 근무했던 인물이다. 주주와 대표이사 등 세 사람 모두 이 시장과 막역한 사이인 것. 또 BBK와 장기투자일임계약건을 결정한 이사회 참석자도 이 세 사람이 전부다.

    “BBK 통해 외국 큰손 확보했다”

    이명박 시장이 가장 역점을 뒀던 회사는 EBK증권중개다. 이 시장은 2000년 6월27일 금융감독위원회에 증권업 설립신청서를 제출해 6개월 만인 2000년 10월13일 어렵사리 증권업 예비허가를 받아냈다.

    이 시장은 그 직후 여러 언론과 인터뷰를 가졌다. 당시 이 시장의 직책은 EBK증권중개 대표이사 회장. 다음은 그해 10월16일자 ‘동아일보’ 인터뷰 내용 가운데 일부다.

    “이 대표가 꼽는 흑자비법은 아비트리지(차익) 거래. 미국계 살로먼스미스바니에서 1999년 초 연 수익률 120%대를 기록한 김경준 BBK투자자문 사장을 영입했다. 이 대표는 김 사장에 대한 기대가 몹시 큰 눈치다. ‘김 사장이 지난해 BBK 설립 이후 한국증시의 주가가 60% 빠질 때 아비트리지 거래로 28.8%의 수익률을 냈다’고 소개하면서 연방 김 사장의 어깨를 토닥였다.”

    같은 날 ‘중앙일보’와의 일문일답형 인터뷰 중 “증권업은 생소한 분야일텐데”라는 질문에 대한 이 시장의 답변은 이렇다. “국내 증권사들은 사이버 트레이딩에 몰두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나는 생소한 증권업 투신을 통해 첨단기법의 증권 업무를 보여줄 작정이다. 올 초 이미 새로운 금융상품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LK이뱅크와 자산관리회사인 BBK를 창업한 바 있다. EBK증권중개는 이 두 회사를 이용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주로 외국인을 큰 고객으로 삼을 작정이다. BBK를 통해 이미 외국인 큰손들을 확보해둔 상태다. 물론 사이버 트레이딩도 한다. 국내 기관들에 대한 파생상품 활용 조언업무도 있다. 그러나 이들에게 위험관리 프로그램도 제공하는 전략으로 나갈 계획이다.”

    이 시장은 이어 2001년 2월 월간중앙(3월호)과의 인터뷰에서 EBK증권중개의 설립배경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털어놓았다.

    “나는 어차피 정치방학이 2~3년 갈 것으로 보고 그 기간에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심각하게 고민했습니다. 새로운 금융기법을 내가 익혀야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정치를 하더라도 필요하다고 여겼습니다. 이를 경험한 사람으로서 지난해 초에 벌써 BBK라는 투자자문회사를 설립해 펀드를 묻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 자문회사가 필요로 하는 것이 증권회사입니다. 그래서 설립한 것입니다.”

    등기부 등본을 보면 EBK증권중개는 2001년 2월2일 자본금 5000만원으로 설립등기를 마친 후 2월28일 증자를 통해 자본금을 100억5000만원으로 크게 늘렸다. 회사설립 당시 이명박 시장과 김백준씨가 공동대표이사를 맡았고, 김경준씨는 이사로 등재됐다.

    EBK증권중개 사무실이 마련된 곳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 1002번 코스모타워 8층. 이 회사의 공동대표이사 부회장이던 김백준씨가 2001년 1월15일 8층 전체(595.86평)를 보증금 2억4000여만원, 월세 2천400여만원에 직접 임대차계약을 맺었다. 계약 당시 이 시장이 사무실을 들러보는 등 상당히 신경을 썼다는 후문이다.

    코스모타워 8층에는 EBK증권중개 뿐만 아니라 태평로 삼성생명빌딩에 있던 BBK도 함께 입주했다. 그러나 BBK는 건물주와 별도의 임대차계약을 맺지 않았다.

    건물관리사무실 담당자는 “BBK라는 회사는 간판만 있었지 EBK증권중개 내부의 한 부서처럼 운영되는 것 같았다”면서 “나중에 계약자 대표명의가 김경준씨로 바뀌기 전까지는 회사 직원들이 그대로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여기서 주목할 대목은 BBK 대표이사이자 EBK증권중개 이사였던 김경준씨가 코스모타워 입주계약을 전후한 시점에 추진했던 또 다른 작업이다. 광주에 본점을 둔 창투사인 뉴비전벤처캐피탈(구 광은창투)의 인수 작업을 시작한 것. 이른바 적대적 M&A다.

    이 작업에는 BBK가 버진 아일랜드에 만들어놓은 MAF 펀드가 사용됐고, 김씨의 친누나이자 미 LA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에리카 김씨가 외곽에서 지원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 첫 거래가 2001년 1월16일 ‘엠에이에프리미티드(MAF LIMITED)’라는 외국법인 이름으로 뉴비전벤처캐피탈의 주식 58만6988주(15.29%)를 26억5000여만원에 매집한 것이다. 이때 공시자료에 등장한 업무상 담당자가 바로 에리카 김이다.

    BBK는 이후 ‘브린모우인베스트먼트(Bryn Maw Investment)’ ‘옵셔널벤처스인코퍼레이션(Optional Ventures & Co.)’ ‘조익파이낸셜서비스(Zoic Financial Service, Inc)’ ‘넥스트스텝엔터프라이즈(Next Step Enterprises, Inc)’ 등의 이름으로 주식을 사들여 2개월도 채 안된 3월5일 전체주식의 36% 이상을 취득해 회사 운영권을 인수해 버렸다. 이 과정에 LK이뱅크 감사로 등재돼 있는 김희인씨가 등장한다. 에리카 김과 마찬가지로 업무상 담당자로 기록돼 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명박 시장과 김경준씨는 표면상 동업자 관계를 그대로 유지한다. 문제는 김씨가 창투사를 인수하는 시점에 불거졌다.

    금감원 조사로 드러난 BBK 비리

    금감원이 2001년 3월2일부터 13일까지 9일간 BBK에 대한 조사를 벌인 결과 김씨가 2000년 6월 LK이뱅크의 증자에 투자했던 30억원이 이사회결의나 차입계약 없이 개인적으로 유용한 BBK의 회사자금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 조사대상 기간인 2000년 5월27일~2001년 3월2일에 BBK의 운용전문인력이 최소 필요인원인 5명보다 2~4명이 부족했던 사실이 적발됐다.

    금감원은 김씨가 역외펀드 운용보고서 및 정산지시서를 위·변조한 사실도 확인했다. 문제가 된 자금은 삼성생명이 BBK를 통해 버진 아일랜드에 소재한 역외펀드 MAF에 투자한 100억원. 이 펀드자금은 현지 수탁회사인 한국외환은행 아일랜드 법인에서 관리했다.

    규정상 BBK는 KEB로부터 펀드운용보고서를 받아 투자자인 삼성생명에 전달해야 한다. 그런데 BBK가 2000년 5월10일~12월14일간 7회에 걸쳐 KEB로부터 받아 삼성생명측에 전달한 펀드운용보고서가 위·변조돼 있었던 것. BBK는 또 삼성생명의 동의를 받지 않은 채 임의로 삼성생명측의 서명을 날인해 정산지시서를 작성하기도 했다.

    이 같은 사실은 펀드운용과정에 의문을 품은 삼성생명측에서 BBK로부터 받은 보고서와 KEB측에 직접 연락해 전달받은 보고서를 비교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역외펀드의 전환사채를 취득한 사실과 펀드 운영현황을 금융감독원장과 한국은행 총재에게 보고하지 않은 점, BBK 대표이사 김경준씨가 운영하던 인터넷 홈페이지(ebank-korea.com)에 허위사실을 게시한 점도 지적됐다.

    금감원은 적발된 규정위반 사실이 심각하다고 판단하고 대표이사 해임권고와 함께 4월28일자로 BBK의 투자자문업 등록취소 결정이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정체불명의 외국인들

    LK이뱅크를 지주회사로 하고 그 밑에 EBK증권중개, BBK, 하나은행, 자동차보험사 등을 엮어 사이버 금융거래네트워크를 구축하려던 이명박 시장의 원대한 구상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실제로 이 시장측은 이때부터 외형상 정리절차에 들어갔다.

    이 시장은 2001년 4월8일 EBK증권중개 예비허가를 자진철회하고 4월18일 EBK증권중개와 LK이뱅크의 대표이사직을 사임했다. 그리고 같은 날 관련회사 대표이사들과 이사 및 감사들이 일제히 정리됐다. 김경준씨는 LK이뱅크 대표이사직을 사임했고, BBK 대표이사에서 해임됐다. 또 LK이뱅크의 김희인 감사는 사임, BBK의 허민회 이사는 해임 처리됐다.

    LK이뱅크와 BBK, 두 회사의 대표이사와 이사에는 이들 대신 래리 롱, 도린 그랙, 폴 머피, 스티브 발렌주엘라, 산드라 모어, 길레스 신 등 신원불명의 외국인들이 대거 취임했다. 이 모든 게 같은 날인 4월18일 벌어진 일이다.

    김경준씨는 그로부터 9일 후인 4월27일 MAF 펀드를 통해 인수한 창투사 뉴비전벤처캐피탈을 옵셔널벤처스코리아로 이름을 바꾸고 대표이사로 복귀했다. 의아한 건 본점소재지를 EBK증권중개와 BBK와 같은 주소지인 강남구 대치동 코스모타워 8층으로 이전한 점이다. 그리고 5월21일 건물관리회사와의 임대차 계약업체가 EBK증권중개에서 옵셔널벤처스로 바뀌었다. 변경신고자는 EBK증권중개 대표이사였던 김백준씨. 그로부터 한달여가 지난 6월26일 계약자 명의가 김백준에서 김경준으로 변경됐다.

    7월9일 옵셔널벤처스는 8층 전체(595.86평)를 사용하던 사무실 규모를 축소해 413.16평만 사용키로 하고 보증금 1억6700만원 월세 1670만원에 재계약했다. EBK증권중개는 8월23일 청산종결되기 전까지 같은 층에 남아 있었지만 별도의 임대차계약은 하지 않았다. 청산인이었던 김백준씨는 “청산절차를 위해 8~9월까지 사무실을 운영했다”고 말했다.

    한편 김경준씨는 대표이사로 취임하던 날 옵셔널벤처스의 발행주식 총수를 1600만주에서 1억5000만주로 늘리고 5월부터 제3자 배정방식으로 증자를 시작했다. 5월 30억, 6월 30억, 7월 100억, 10월 475억, 12월 50억 등 자본금을 무려 685억원이나 늘렸다. 이때 증자에 참여한 제3자는 모두 실체가 확인되지 않는 외국계 업체였다.

    김씨는 이에 앞서 BBK가 인수초기 엠에이에프리미티드와 브린모우인베스트먼트 명의로 사들였던 옵셔널벤처스 주식을 5월 중에 모두 매각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차익거래를 실현한 셈이다. 김씨는 또 한창 증자중이던 9월6일 대표이사를 사임하고 미국인 스티브 발렌주엘라를 대표이사로 앉혔다. 국외로 도피하기 위한 사전준비 차원이었을 개연성이 크다.

    김씨는 급기야 11월1일부터 12월11일까지 40일 동안 국내에 주소지를 둔 외국계 유령업체 8개사에 모두 190억원을 투자한 것처럼 꾸며 자금을 빼돌린 직후 12월20일 미국으로 출국했다.

    삼성생명 100억 투자 22억 챙겨

    BBK 투자자문업 등록취소 결정에 가장 당황한 곳은 BBK와 장기투자일임계약을 맺고 역외펀드 MAF에 투자한 기업들이다. 투자운용주체가 사라진다는 것은 자칫 투자금이 어느 곳에서 어떻게 운용되는지 알 길이 없어진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기업과 투자금액은 삼성생명 100억원, 심텍 50억원, 다스 190억원 정도다. 이 가운데 삼성생명은 금감원의 조사단계에서 투자금 100억원은 물론 22억원의 투자수익까지 챙겼다.

    문제는 나머지 두 업체. 2000년 10월 50억원을 투자한 심텍은 BBK에 즉각 투자금 반환을 요청해 20억원을 받고 그해 9월까지 투자수익 5억원을 포함해 나머지 35억원을 되돌려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심텍은 BBK의 대표이사였던 김경준씨가 이사로 옮겨간 옵셔널벤처스를 찾아갔지만 “우리는 BBK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답변만 들어야했다.

    당시 심텍이 검찰에 제출한 고소장에 따르면 심텍이 BBK와 장기투자일임계약을 체결하고 투자한 데는 이 시장의 영향력도 컸던 것으로 보인다. 한 시사주간지를 통해 공개된 심텍측 관계자의 검찰 진술서 내용 중 일부다.

    “2000년 9월 심텍사 직원은 삼성생명 17층에 있는 BBK 사무실을 찾아갔다. 당시 이명박씨가 회장실이라는 곳에서 나왔고, 그들은 식당으로 갔다. 이명박씨는 식사 자리에서 ‘내가 대주주다. 나를 믿고 투자하라’고 말했다.”

    이 시장측은 이에 대해 식사를 한 일은 있으나 대주주라고 말한 적은 없다고 반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텍은 이에 10월22일 이명박 시장(당시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의 부동산을 가압류하고 이 시장과 김경준씨를 횡령 및 사기혐의로 고소하기에 이른다.

    검찰은 심텍측의 고발이 이유 있다고 판단하고 12월7일 김씨를 긴급체포하고 이 시장에 대해서도 연루혐의가 드러나면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사건은 심텍이 약속된 투자금을 되돌려받는다는 조건으로 합의, 소송을 취하하면서 조용히 정리됐다.

    이와 달리 투자 및 피해규모가 가장 컸던 다스는 2001년 10월26일 39억원, 12월4일 11억원 등 50억원만 되돌려 받고 140억원에 달하는 미반환금이 남았는데도 김경준씨가 미국으로 도피하기 전까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다스는 뒤늦게 2003년 1월 검찰에 고발하고 그해 5월 미 LA연방법원에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다스는 또 BBK 투자건에 대한 자료를 제출하지 못해 2001년과 2002년 2년 연속 연말 회계감사에서 한정의견을 받자 2003년 연말결산에서 “김경준이 횡령한 것을 2003년도에 확인했다”면서 140억원 중 관련미지급비용 1억9900만원을 차감하고 138억100만원을 부실로 처리했다.

    여기까지가 금감원 및 중소기업청 조사자료와 각종 공시자료, 등기부등본, 언론 보도내용 등 최대한 객관적인 자료를 기초로 정리한 내용이다. 하지만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가 여전히 남아 있다.

    “다스, BBK와는 아무 관계 없다”

    먼저 이명박 시장과 BBK의 관계다. 이 시장은 EBK증권중개 예비허가 직후 여러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BBK는 자신이 만들었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김경준씨도 LA연방법원에 제출한 변론요지에서 “이명박 시장이 서울 시민들에게 다양한 분야에서 경영능력을 입증할 것이라며 (나에게) BBK에서 일할 것을 요청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시장은 이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이 시장은 최근 기자와의 통화에서 BBK에 대해 “잘 모른다. 김경준이가 별도로 운영한 것”이라며 “외국 사람들이 주주로 있었는데 물어봐도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 시장측의 변론을 맡은 정동수 변호사도 “BBK는 별도의 회사로 운영됐다. 김경준씨가 BBK의 주식은 단 1주도 내놓지 않으려 했다”며 이 시장의 입장을 적극 대변했다.

    다스가 BBK와 장기투자일임계약을 통해 역외펀드 MAF에 190억원이라는 거액을 투자하게 된 배경도 여전히 의문이다.

    김경준씨는 “이명박 시장과 측근 김백준씨는 자신들이 다스를 소유, 관리한다는 이야기를 했다”면서 “이명박 시장과 다스는 사실상 하나다”라고 주장했다. 다스가 BBK에 투자하게 된 것은 결국 이 시장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런 주장이 사실이라면 다스에서 김경준씨를 상대로 투자금 반환소송을 제기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

    김씨의 변호사인 마크 벡 변호사는 “김경준씨는 이명박 시장의 지시를 따랐을 뿐인데, 이 시장은 손상된 이미지를 회복하고 투자손실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려 하고 있다”면서 “한국 검찰은 물론 미국 사법부까지 현명하지 않게 한 정치인의 정치게임에 말려들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시장은 물론 이 시장의 변호사와 다스측 관계자 등은 한결같이 “이 시장과 다스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굳이 관련이 있다면 가족관계 정도라는 것.

    다만 다스 대표이사 김성우씨는 “회사에 여유자금이 있었고 당시 은행 이자가 낮았다. 자금운용문제를 잘 아는 전문가와 상의하다가 적게는 15%, 많게는 30%까지 (수익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삼성생명 등 다른 기업들도 이미 가입돼 있어서 BBK와 장기투자일임계약을 체결하게 됐다”면서 “김백준씨의 소개로 김경준씨를 만나서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김백준씨도 “추천이라는 표현은 조심해야 한다”고 전제한 뒤 “김경준씨는 당시 매스컴을 많이 탔고 검증된 부분도 있었다. 당시 다스가 자금여유가 있던 상황에서 투자처를 고민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어떻게 자금을 활용할까 자문을 구하길래 단순히 소개시켜줬던 것뿐”이라고 전후 사정을 설명했다.

    사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밖에 이 시장측이 “2001년 4월 금감원의 BBK에 대한 조사 직후 김경준씨측과 관계를 청산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면서도 그해 8~9월까지 옵셔널벤처스의 사무실에 EBK증권중개가 함께 남아 있었던 사실도 의문으로 남는다.

    한편 김경준씨는 “다스가 손실을 입었다고 주장하는 펀드의 행적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은 바로 이명박 시장과 이상은 다스 회장”이라면서 “이들을 증인으로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김씨의 변호사는 지난 6월7일 법원의 인정심리를 마친 직후 “한국의 주요 정치인인 이 시장으로부터 수백만 달러 규모의 민사소송을 당해 강제송환 대상자로 지목됐다”고 지적하고 “미국 시민인 김씨는 손상된 이미지 개선과 투자에서 발생한 손실을 다른 사람의 책임으로 떠넘기려는 한 정치인의 정치적 게임 때문에 두려움에 떨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동수 변호사는 이에 대해 “말도 안되는 주장”이라고 일축하면서 “이 시장은 피해자 중의 한 사람이다. 나쁜 범행을 저지르고 해외로 도피한 사람을 적극 조사해서 정의를 구현하고 배상을 받아야겠다는 것이 이 시장의 입장이다. 이 시장은 법정에서 진실이 밝혀지기를 바라고 있다”고 강변했다.

    김백준씨도 “이번 사건은 결코 복잡하지 않다”면서 “이명박 시장이 김경준과 LK이뱅크를 중심으로 사이버금융 네트워크를 준비하다가 시작도 못 해보고 끝난 것이다. 그리고 청산 과정에서 김경준에게 사기를 당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고 주장했다.

    각기 정반대의 주장을 펴고 있는 이명박 시장측과 옵셔널벤처스 전 대표 김경준씨. 미 LA연방법원에서 동시에 진행중인 김씨에 대한 범죄인 인도재판 인정심문과 3건의 민사소송 과정에서 사건의 실체가 어느 정도 밝혀질지 주목된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