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7월호

“변호사는 ‘리콜’ 안 되나요?”

서민 울리는 불성실, 불친절, 비전문…

  • 글: 강지남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layra@donga.com

    입력2004-06-30 11: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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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에 무지한 서민이 법정에 나설 때 유일한 우군은 변호사다.
    • 그런데 스스로 선임한 변호사와 법정 안팎에서 분쟁을 벌이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변호사의 부실 변론과 불성실한 행위로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고 하소연한다.
    “변호사는 ‘리콜’ 안 되나요?”
    토론회가 어수선해졌다. 질의·응답 시간이 되자 방청객들은 앞다투어 마이크를 부여잡고 억울한 사정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이를 말리려는 사회자와 한마디라도 더 하려는 방청객 사이에 몇 차례 고성이 오갔다.

    “법조인 가중처벌법을 만들라!”

    누군가가 소리지르자 여기저기서 박수가 터져나왔다. 지난 6월3일 서울 광화문 서울문화회관 컨퍼런스홀. 시민단체 공권력피해구조연맹이 ‘변호사 피해 진상보고서’ 발간 기념으로 마련한 토론회는 결국 이렇게 끝났다.

    Y씨도 남편과 함께 이날 토론회에 참가했다. 3시간 내내 말없이 토론회를 지켜보던 Y씨 부부는 기자와 마주앉자 눈물을 글썽였다.

    “승소금 받아주겠다며 6년이나 기다리게 하던 변호사가 이제 와서 없던 일로 하잡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1993년 Y씨가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시작된 지난 11년간의 이야기는 이렇다.

    Y씨는 지방의 한 소도시에서 작은 양품점을 운영하면서 동료 상인들과 모 운송회사의 24인승 승합차를 빌려 타고 옷감을 사러 서울 동대문시장을 오가곤 했다. 1993년 6월, 서울에서 돌아오던 길에 승합차가 전복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Y씨는 장이 파열되고 어깨와 팔이 부러지는 등 큰 부상을 입고 6차례나 수술을 받아야 했다.

    “회사 부도 났으니 없던 일로…”

    8개월간 입원치료를 받고 지체장애 6급 판정을 받는 등 경제적으로나 심정적으로나 지쳐있던 Y씨 가족에게 1996년 운송회사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승소했다는 희소식이 전해졌다. Y씨는 배상금 7800만원을 받으면 미뤄오던 추가 수술도 받고 살림에도 좀 보탤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Y씨는 8년이 지난 지금까지 단 한푼의 배상금도 받지 못했다.

    “승소금의 30%를 지불하기로 하고 수도권의 모 변호사를 선임했습니다. 승소한 다음 변호사 쪽에서 배상금을 받아다준다고 하길래 인감 등을 맡기고 기다렸지만 소식이 없었어요. 사무실로 찾아가니 ‘두 달만 기다려라. 연이자가 25%나 되니 늦게 받을수록 이득 아니냐’고 했습니다. 그후 6년 동안 한두 달에 한 번씩 찾아갔습니다. 먼 거리를 수십 번은 왕복했지요. 그때마다 ‘좀더 기다려보라’고만 했습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온 것은 승소한 지 5년이 넘은 2001년 9월. 변호사측은 “운송회사가 부도가 나 돈 받을 길이 없으니 없던 일로 하자”고 했다. 당시 받아야 할 배상금은 이자까지 포함해 1억4000만원. 2000년에는 일주일 동안 직접 전국을 돌며 이 운송회사 소속 차량등록부 240부를 떼어다 150만원의 차량 압류비용과 함께 변호사 사무실에 넘겼고, 두 달 전에는 7월말까지 배상금을 받아내기로 약속하며 변호사측과 배상금을 50:50으로 나눈다는 합의서까지 썼는데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고 만 것이다. 너무 어처구니없어 변호사와 운송회사 사이에 ‘뒷거래’가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심까지 들었다.

    “그래놓고도 사무장은 ‘이 사건으로 추후 어떠한 민·형사상 소송이나 진정을 제기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에 서명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기막힐 노릇이죠.”

    현재 Y씨 부부는 공권력피해구조연맹의 도움을 받아 변호사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준비중이다. 하지만 변호사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Y씨가 일방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며 “여러 차례 노력했으나 배상금 집행을 하지 못한 것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변호사 불출석으로 소송 취하

    변호사의 부실 변론과 불성실한 행위로 피해를 당했다는 사람들의 원성이 빗발친다. 공권력으로부터 피해를 당한 사람들을 위해 구조활동을 펴고 있는 공권력피해구조연맹(이하 공구련)에는 각종 민·형사상 소송에 대응하기 위해 변호사를 선임했지만 변호사의 잘못으로 패소하거나 아예 사건이 기각되는 등의 피해를 당했다는 하소연이 줄을 잇는다. 공구련을 이끄는 조남숙 단장은 “1999년 이후 50여명의 ‘변호사 피해자’에 대해 선임료 반환 등의 구조활동을 벌여왔다”고 밝혔다.

    피해자들이 주장하는 변호사로 인한 피해 형태는 여러 가지다. 부실하거나 불성실한 변론행위, 잘못된 소송 제기, 승소 불가능한 사건 수임, 과다한 수임료 청구, 정확한 법률정보 미전달 등이 주요 내용. 그 결과는 패소나 기각, 소송취하로 이어진다. 앞서 소개한 Y씨처럼 승소하고도 배상금을 받지 못하는 피해를 당하기도 한다. 조 단장은 “재판에서 패소하고 나서야 변호사 과실을 깨닫고 법무부와 대한변협 등에 진정을 냈지만 제대로 처리되지 않아 찾아오는 사람이 대다수”라고 말한다.

    건축업자 J(67)씨는 “변호사의 불성실한 태도로 인해 패소했다”고 주장한다. 사건을 맡긴 변호사가 재판에 출석하지 않아 항소심이 쌍불취하된 것. 쌍불취하란 당사자가 변론기일 중 2회에 걸쳐 출석하지 않거나, 출석해도 변론하지 않을 경우 소(訴) 취하로 간주되는 것을 말한다.

    “강원도의 한 도시에서 135가구 규모의 임대아파트를 짓는 사업을 했습니다. 당시 시공사인 모 종합건설이 빚 때문에 부도 날 상황이어서 제가 인수했습니다. 시공사가 부도 나면 공사에 차질이 생기니까요. 그런데 이 회사의 전 대표가 우리 쪽에서 선임한 대표에게 ‘대표이사 집무집행정지 가처분 주주총회 부존재 확인소송’을 걸었습니다. 우리 쪽은 1심에서 패소했지만 항소심을 위해 서울에서 변호사를 선임했지요.”

    변호사를 선임한 뒤 J씨는 건설현장에 내려가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공사현장에 시공사의 새 대표라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는 “재판에서 원고 승소한 지 6개월이 지났다”며 자신이 새 대표로 선임됐다고 했다. 변호사의 말대로 소송기일이 무기한 연기됐다고만 알고 있던 J씨로서는 기절초풍할 일이었다. 급히 경위를 알아보니 변호사가 재판에 출석하지 않아 항소가 취하, 1심 판결이 확정됐다고 했다.

    J씨는 건설회사를 다른 이에게 넘겨주게 됐고, 사업은 차질을 빚게 돼 결국 17억원의 투자자금을 고스란히 날렸다. 그는 “그때 빚진 사업자금을 다 해결하지 못했다”며 “은행 대출금 이자만 수억원대”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J씨는 “변호사의 잘못으로 패소한 것도 화나지만, 대한변호사협회나 법무부에 아무리 진정을 해도 제대로 처리해주는 곳이 없어 더 서글펐다”고 털어놨다.

    “대한변협에 진정을 내고 조사를 받으러 갔습니다. 조사담당자에게 이름을 묻자 ‘내 이름은 알 필요 없다’고 하더군요. 법무부에 진정을 내자 담당검사가 정해져 검찰에 불려가서 조서를 작성했습니다. 하지만 그후 아무런 연락이 없었습니다. 1년 후 검찰을 찾아갔지만 담당검사는 이미 다른 곳으로 발령받은 뒤였고, 사무실 어디에서도 제 조서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공구련 조남숙 단장은 “변호사 중엔 선임료 챙기기에 급급한 나머지 소송 가치나 승소 가치 등은 따져보지도 않고 일단 수임부터 하고 보는 경우가 있다”며 “이 때문에 선임료만 날렸다는 피해자가 적지 않다”고 전했다.

    N씨는 모 건설회사의 도로 건설 기사로 일하던 1997년 여름, 후배들과 식당에서 식사를 하다가 사소한 일로 식당 주인과 말싸움을 하게 되면서 평범한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게 됐다. 그는 112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들이 식당 주인 편만 들자 홧김에 경찰관 한 명의 따귀를 때렸다가 공무집행방해혐의로 파출소에 끌려가 경찰관들에게 폭행을 당했다.

    몸도 마음도 회복하기 어려울 만큼 상처 입은 N씨는 경찰관들을 여러 차례 고소했지만 경찰들은 계속 무혐의처분을 받았다. 급기야 N씨는 지난해 경찰들을 고소했다가 무고혐의로 경찰서 유치장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이 일로 N씨의 형은 급하게 변호사를 선임했고, 변호사와 담당 검사는 N씨 형제에게 일부 경찰관은 혐의가 없다며 고소를 취하하라고 설득했다. N씨는 결국 고소를 취하하고 유치장에서 풀려났다.

    선임료부터 챙기는 변호사들

    억울함이 풀리지 않은 N씨는 이 사건을 들고 또 다른 변호사를 찾아갔다. 변호사는 “부당한 압력에 의해 고소를 취하한 것이라면 다시 고소할 수 있다”고 했고, 이에 착수금 560만원을 내고 변호사를 선임했다. 그러나 결과는 기각. N씨의 형은 “이후에도 여러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갔지만 모두들 ‘취하한 고소를 다시 고소할 순 없다’고 말했다”며 허탈해했다. 현재 N씨는 공무집행방해 및 업무방해혐의로 수감돼 있다. N씨 형의 말이다.

    “경찰들에게 얻어맞고 몸이 불편해진 뒤 동생은 술만 마시면 지나가는 경찰에게 시비를 걸었습니다. 작년에도 그러다 공무집행방해혐의로 구속됐어요. 고소를 취하하라고 설득한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가 시위를 벌이다 업무방해혐의로도 기소됐고요. 억울함을 풀어보겠다며 경찰, 검찰, 변호사 사무실 등 이리저리 들락거려봤지만 오히려 분통터지는 일만 늘었습니다.”

    S씨는 동업자와의 분쟁과 관련된 소송을 위해 선임한 변호사로부터 제대로 된 법률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는 “소송사기 혐의로 고소당해 변호사를 선임했다. 변호사는 소송사기가 맞다며 이에 대응해야 한다고 했지만, 법률구조공단에서조차 소송사기가 아니라 무고라며 반소(反訴)하라고 충고했다. 이 사람이 과연 내 변호사인가”라고 반문한다.

    내용인즉 이렇다. 1999년 S씨는 동업자 K씨와 각각 3800만원씩 부담해 S건설을 인수했다. 이후 K씨가 S씨에게 S건설 지분을 자신에게 팔라고 요구해 자신의 지분을 K씨에게 넘겼다. K씨는 곧장 3800만원을 지급하지 않고 2000년 6월까지 돈을 갚기로 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부동산에 근저당권을 설정해줬다.

    “2000년 6월 K씨에게 전화를 걸어 돈을 갚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K씨는 거절하면서 ‘법대로 해보라’고 하더군요. 법무사를 찾아가니 ‘근저당설정 계약서가 없으면 돈 받을 길이 없다’고 했습니다. 법무사는 대신 ‘S건설을 인수할 때 지급한 수표 내용을 제출해 법원으로부터 지급명령 판결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법무사 말대로 했죠.”

    그러다 지난해 8월 문제가 터졌다. K씨가 ‘부동산에 설정된 금원이 있음에도 다시 지급명령을 신청했다’는 이유로 S씨를 소송사기혐의로 고소한 것. 이 사건을 맡아줄 변호사를 찾던 신씨는 지방의 한 법원앞 복사점에 들렀다가 서울에서 사무실을 운영하는 한 변호사를 만났다.

    “변호사는 ‘리콜’ 안 되나요?”

    자신이 선임한 변호사에 대한 불만이 높지만 이를 구제해 줄 제도적 장치가 미비하다.

    “변호사와 근처 다방에서 상담했습니다. ‘K씨의 사위가 지방경찰청 계장인데 사건을 맡아줄 수 있겠냐’고 물었습니다. 그동안 여러 변호사가 ‘상대방이 너무 세다’며 선임을 거절했거든요. 그러자 변호사는 ‘나는 검찰총장에도 굴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날 당장 600만원을 착수금으로 지불하고 선임했습니다.”

    이후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던 S씨는 자신이 이미 법원으로부터 지급명령 판결을 받았기 때문에 소송사기혐의가 성립될 수 없다는 조사관들의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변호사에게 반소를 요구했으나 변호사는 응하지 않았다. S씨는 변호사를 해임했고, 이 사건은 검찰에 무혐의로 송치된 상태다.

    S씨는 “이 변호사에게 말도 안 되는 사건을 맡겼다가 선임료를 돌려받은 적도 있다”고 했다. 지난해 10월 지방의 한 금융기관이 S씨가 갚지 않은 대출금 3000만원에 대해 지급명령소송을 제기하자 S씨는 300만원의 착수금을 지불하고 변호사에게 사건을 맡겼다. 그런데 이 금융기관은 S씨가 갚지 않은 3000만원에 대해 이미 보증보험회사로부터 대위변제를 받았기에 원고 자격이 없었다. 결국 금융기관측이 법원에 출석해 소송을 자진 취하함으로써 사건은 싱겁게 마무리됐다. S씨는 “법에 무지한 나라면 몰라도 변호사는 상대에게 원고 자격이 없다는 걸 뻔히 알고 있었을 텐데…”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조남숙 단장은 “변호사에 대한 불만을 해소하는 데 있어 가장 어려운 점은 변호사가 ‘법적으로 대응하라’며 맞서는 경우”라고 말한다. 법률 지식으로 무장한 변호사를 상대로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해 이길 확률은 극히 낮다. 판·검사 또한 같은 법조인으로서 변호사 편을 드는 게 인지상정 아니냐는 것.

    변호사에게 소송 거는 사람들

    변호사들에게 항의해 수임료 일부를 돌려받는 식으로 구조활동을 펴온 공구련은 보다 적극적인 구제활동을 위해 변호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벌여나가겠다는 입장이다. 현재 공구련이 진행하고 있는 손배소송은 6건이다. 4건은 1심에 계류돼 있고, 1건은 1심에서 승소했으며 나머지 1건은 1심에서 패소했다.

    또다른 S씨는 지난 5월 변호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피고는 1000만원을 배상하라’는 1심 판결을 얻어냈다. 재판부는 변호사의 잘못으로 S씨가 금전적, 정신적 고통을 입게 된 사실을 인정하고 변호사가 S씨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1989년 S씨는 지인 L씨에게 자신 명의의 부동산을 담보로 돈을 빌리라며 땅을 빌려줬다. 그러나 L씨가 4000만원의 부채를 갚지 못하게 돼 1998년 이 땅이 경매로 넘어갈 위기에 처했다. S씨는 부랴부랴 변호사를 선임했다. S씨를 도와 손배소송을 이끈 나홀로도우미재단 최영식 이사장은 “경매법원으로부터 경매정지신청을 받아낸 뒤 채권자와 합의해 돈을 갚고 소송을 취하하게 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변호사가 엉뚱하게도 ‘근저당권 등기말소 청구소송’을 내면서 사건이 꼬였다”고 설명한다.



    S씨는 채권자로부터 ‘2000만원만 주면 경매를 취하하겠다’는 제안을 받고 변호사의 의견을 물었다. 변호사는 “근저당권 등기말소 청구소송이 잘 되면 2000만원도 줄 필요가 없다”고 했고, S씨는 이 말만 믿고 채권자와 합의하지 않았다. 그러나 재판부는 S씨가 자신 명의의 부동산을 빌려준 것이기 때문에 말소청구에 대해 ‘이유 없다’고 판결했다. 이에 변호사는 항소했고, 또다시 패소 판결이 내려졌다. 이러는 와중에 속절없이 몇 년의 시간이 흘렀고, 경매가 실시돼 시가 2억5000만원의 땅이 6000만원에 팔리게 됐다.

    법원은 S씨가 변호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 1심 판결에 앞서 800만원에 합의하라는 화해권고를 결정했지만, 변호사가 받아들이지 않자 1000만원을 배상하라는 1심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변호사의 잘못으로 인하여 의뢰인의 재판 받을 권리를 침해한 불법행위가 성립된다고 할 것이고, 따라서 불법 행위자인 변호사는 그로 인한 정신적 고통에 금전적으로 위자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이에 변호사는 항고한 상태.

    ‘성실의 의무’ 논란

    한편 변호사 상대 손배소송 1심에서 패소하고 항소한 K씨 사건은 변호사의 성실한 직무 수행 의무를 어느 수준까지 인정할 것이냐는 논란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K씨는 “채권자취소소송이라는 방법이 있었다는 것을 변호사가 알고 있었음에도 이를 조언하지 않은 것은 변호사의 과실”이라고 주장한다.

    K씨는 1995년 바다에서 선박 작업을 하다가 끊어진 와이어에 머리와 목을 맞는 사고를 당해 신체장애 2급 판정을 받게 됐다. 이에 K씨는 선주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고, 1심과 2심에서 모두 배상금 1억5000만원의 승소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1996년 1월 선주가 이미 자기 명의의 재산을 처남 명의로 바꾸어놓은 탓에 K씨는 배상금을 한푼도 받아내지 못하고 있는 형편.

    1심을 맡은 변호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배소송에서 쟁점은 두 가지였다. 가압류 등 보전처분에 대한 변호사의 위임이 이뤄졌냐는 것과 1심 승소 이후 채권자취소소송이라는, 법적으로 취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은 과실이 인정되느냐는 것. 채권자취소소송이란 채무자의 재산행사에 대해 채권자가 그 취소 및 원상복귀를 청구하는 소송.

    지난 4월 법원은 “가처분을 위한 별도 약정이 있었음을 인정할 증거가 없고, K씨가 1심 재판이 끝난 후 변호사와 어떤 논의도 한 적이 없으며, 항소심은 다른 변호사에게 의뢰하여 진행했기 때문에 채권자취소소송을 하도록 조언했어야 할 구체적 의무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기각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K씨측은 “항소심에서 변호사로서의 법률적 조언 의무를 게을리한 점에 대해 다시 한번 다툴 것”이라고 밝혔다. 조 단장은 “선주가 재산을 빼돌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나 1심 재판이 끝난 직후 변호사가 K씨에게 채권자취소소송이란 방법을 적극 알려줬다면 시효를 놓치는 피해를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변호사는 “1심 판결 후 연락을 두절한 채 다른 변호사를 선임한 사람에게 어떻게 법률적 조언을 할 수 있겠는가”라고 주장했다.

    최근 변호사 상대 소송이 심심찮게 제기되고 있다. 과거엔 드물던 일이다. 불성실한 변론으로 의뢰인에게 정신적 피해를 줄 경우 이를 배상하라는 법원의 판결도 종종 나온다. 그러나 여전히 서민들에게 변호사 상대 소송은 힘겹기만 한 일이다.

    두 번 우는 피해자들

    2000년 소비자보호원이 최근 2년 동안 민형사상 손배 청구에 있어 변호사에 소송을 의뢰한 경험자 55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2%가 법률서비스에 불만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중 63%는 변호사에 아무런 항의를 하지 못했다고 답변했다. 또 응답자의 57%는 변호사의 업무 과오가 있다 하더라도 ‘패소의 우려’ ‘변호사 선임 불가능’ 등을 이유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포기했다고 밝혔다. 소보원은 “불성실한 변론, 불친절한 태도, 전문성 및 능력부족, 수임료 관련 불만 등이 변호사에 대한 소비자들의 주요 불만 사항”이라고 덧붙였다.

    어려운 형편에 놓인 사람들의 소송을 도와주는 나홀로도우미재단 최영식(고려대 법학과 석사) 이사장은 “변호사 본인이 완강하게 불응하는 데다, 판·검사들도 아무래도 팔이 안쪽으로 굽기 마련이기 때문에, 또 적극적으로 변호사 과실을 찾아낼 능력이 없기 때문에 피해자들은 변호사 상대 소송에 앞서 주저하기 마련”이라고 설명한다.

    조남숙 단장은 “대한변협에서 변호사 과실에 대해 철저하게 진상조사와 징계를 한다면 피해자들이 소송에까지 나서진 않을 것”이라며 “변호사와 의뢰인 사이의 분쟁을 조정·해결해주는 시스템 마련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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