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7월호

바이엘|전방위 구조조정으로 거듭나는 ‘화학 만물상’

감기약에서 플라스틱까지

  • 글: 이형삼 동아일보 신동아 차장 hans@donga.com

    입력2004-07-01 10: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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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63년 작은 염료회사에서 출발한 바이엘은 지난 140년간 과학 및 응용분야의 집중적인 연구를 통해 전 산업분야에 필수적인 광범위한 제품들을 개발해왔다. 바이엘은 오늘날 세계 150개국에 진출한 다국적 제약·화학기업으로 변신했고, 최근에는 그간의 확대 일변도 노선을 수정, 과감한 구조조정으로 ‘실속 성장’을 다지고 있다. 그 현장을 살펴보기 위해 독일 라인강변 레버쿠젠 일대의 바이엘 본사와 연구소를 찾았다.
    바이엘|전방위 구조조정으로 거듭나는 ‘화학 만물상’
    바이엘은 한국인에게도 꽤 귀에 익은 이름이다. 그런데 막상 “바이엘이 뭘 만드는 회사냐”고 물으면 ‘아스피린’말고는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혹 ‘개인적인 이유’로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바이엘이 지난해 시장에 내놓은 발기부전 치료제 ‘레비트라’ 정도를 더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하지만 바이엘은 무려 1만여종의 제품을 생산하는 세계 유수의 종합 제약·화학그룹이다. 진통제, 감기약에서부터 고혈압 치료제, 동물용 백신, 종자, 제초제, 살충제, 고무, 플라스틱, 건자재, 가구 소재, 자동차 부품에 이르기까지 ‘인간 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이용된다’고 할 만큼 폭넓은 제품군을 확보하고 있다. 아침에 눈을 떠 잠자리에 들 때까지 바이엘의 손길이 닿은 제품을 접하지 않고 지내기란 불가능하다고 할 정도다.

    세계 150여개국 320여개 자회사와 계열사에 11만5000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바이엘그룹은 지난해 286억유로(약 40조원)의 매출을 올렸다. 수년째 세계적 불황이 지속된 데다 최근 상당수 계열사를 매각하거나 분리했지만, 매출액은 2001년(303억유로)·2002년(296억유로)과 비슷한 규모를 유지했다.

    바이엘그룹은 헬스케어(Health Care), 크롭사이언스(Crop Science), 머티리얼사이언스(Material Science) 등 각기 독립된 형태의 3개 사업부문이 이끌어간다. 헬스케어는 의약품과 진단기기사업, 크롭사이언스는 농약과 종자사업, 머티리얼사이언스는 산업 전반에 활용되는 각종 소재사업이 주영역인데, 대부분 세계 시장 점유율 5위 이내에 들어 있다.

    매출 비중은 헬스케어가 39%, 머티리얼사이언스가 35%, 크롭사이언스가 26%를 차지한다. 그룹 본사와 머티리얼사이언스는 독일 북서부 라인강변의 레버쿠젠에 자리하고 있으며, 헬스케어와 크롭사이언스는 각각 레버쿠젠 인근의 부퍼탈과 몬하임에 기반을 두고 있다.



    암·심혈관·비뇨기질환에 초점

    바이엘 헬스케어는 매출 및 R&D(연구·개발) 투자규모, 종업원 수 등에서 단연 바이엘그룹을 선도하고 있는 핵심 사업부문. 전문의약품·일반의약품·생물학적 제제·진단·동물의약품 등 5개 사업부로 이뤄져 있다.

    전문의약품 사업부는 암, 심혈관질환 등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과 당뇨병, 세균 및 바이러스성 감염, 비만, 비뇨기계 장애 등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수명에 영향을 미치는 질병 치료제 개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고혈압 및 관상동맥 치료제 ‘아달라트’ ‘시바쎈’, 혈소판 응집 억제제 ‘아스피린 프로텍트’, 당뇨병 치료제 ‘글루코바이’, 호흡기 감염증 치료제 ‘아벨록스’, 광범위 항균제 ‘씨프로바이’, 발기부전 치료제 ‘레비트라’ 등이 대표적인 제품.

    비처방 의약품 및 소비제품을 판매하는 일반의약품 사업부는 세계 일반의약품 시장점유율 5위에 올라 있다. 바이엘의 ‘얼굴’이나 다름없는 진통제 ‘아스피린’, 위장약 ‘탈시드’, 무좀약으로 잘 알려진 항진균제 ‘카네스텐’ 등이 일반인과 친숙한 편.

    그 중에서도 글로벌 브랜드 랭킹 2위를 자랑하는 100년 역사의 아스피린은 희대의 발명품으로 일컬어진다. 통증과 발열, 염증을 완화시키는 원래의 적용범위를 넘어 요즘은 심근경색과 뇌졸중 예방약으로 각광받고 있으며, 심지어 유방암, 파킨슨병, 두피종양 등의 예방과 치료에도 효과가 있다는 보고가 이어져 활용영역이 계속 확대되고 있는 중이다.

    생물학적 제제 사업부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혈액제제 업계의 선두주자다. 치명적인 질병으로 진단받은 환자들의 수명을 연장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치료제를 개발하는 데 주력한다. 면역 결핍이나 자가면역 장애 환자를 위한 ‘폴리글로빈’, 선천성 폐기종 치료제 ‘프롤라스틴’, 혈우병 치료제 ‘코게네이트’ 등을 생산하고 있는데, 유전공학 기술을 이용해 개발한 코게네이트는 현재 바이엘 헬스케어에서 가장 잘 팔리고 있는 제품이다.

    ‘진단’이란 인체의 가검물을 이용해 질병의 감염 여부와 원인을 규명하는 의료행위. 그 결과에 따른 조치는 생명과 직결되므로 단순한 테스트와는 차원이 다르다. 따라서 고도의 전문성과 정확성을 요한다.

    바이엘|전방위 구조조정으로 거듭나는 ‘화학 만물상’

    바이엘 헬스케어의 최신 아스피린 생산설비. 100년 역사의 아스피린은 적용범위가 계속 확대되면서

    바이엘 헬스케어 진단사업부는 면역화학 검사, 생화학 검사, 혈액학 검사, 혈액가스 및 전해질 검사, 분자생물학 검사, 선천성 대사이상 검사, 당뇨 검사, 요화학 검사 등 8개 부분으로 나뉘는데, 특히 병원 및 연구소의 임상실험 시스템과 환자의 자가측정기기 분야에서 세계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최근 바이엘 연구진은 전립선 조기 발견과 전이적 유방암의 발견·치료를 위한 모니터링 방법을 개발했는데, 이런 검사는 의사들이 환자에 따라 ‘맞춤 치료법’을 선택할 수 있게 돕는 최초의 시도로 주목받고 있다.

    동물의약품 사업부는 100여종의 의약품을 140여개국에서 판매하고 있다. 가축용 백신, 항균제, 영양제, 대사촉진제, 호르몬제, 진정·마취제, 벼룩퇴치제·구충제 등의 애완동물 제제, 양어용 제제 등이 주요 제품. 구제역 발병 등 위급한 상황에 즉각 대처하기 위해 독일에 백신은행도 운영하고 있다.

    작물보호부문 세계 1위

    바이엘 크롭사이언스는 2002년 세계 굴지의 화학회사인 아벤티스의 작물보호사업 분야를 인수·합병하면서 독립법인체로 출범했다. 두 회사의 합병은 바이엘 140년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것이다. 크롭사이언스는 살충제(세계 1위)·살균제(세계 2위)·제초제(세계 3위) 등을 생산하는 작물보호사업, 일반 가정의 병해충 방제와 비농업 분야 작물보호를 전문으로 하는 환경과학사업, 유전공학 등 신기술을 이용한 종자 개발에 주력하는 생명과학사업 등 3개 사업부문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 3개 사업부문의 외형을 모두 합치면 바이엘 크롭사이언스는 몬산토, 듀폰, 바스프 등 쟁쟁한 다국적기업들을 여유있게 따돌리고 스위스계 농업전문기업 신젠타에 근소한 차이로 뒤져 세계 시장 2위를 달리고 있다. 작물보호사업만 놓고 보면 단연 세계 1위.

    바이엘 크롭사이언스 노르베르트 렘켄 홍보실장은 “내년까지 14종의 획기적인 신물질을 시장에 내놓을 계획인데, 이를 이용한 신제품 개발로만 2006년까지 8억유로(약 1조1200억원)의 신규 매출이 예상된다”며 “이런 성과에 힘입어 2006년에는 매출대비 세전이익률을 29%로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바이엘은 특히 완화제(제초제, 살충제 등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는 첨가제) 기술에서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데, 덕분에 완화제 매출도 늘리고 자사 제초제, 살충제의 사용범위도 넓혀가는 시너지 효과를 거두고 있다. 1997년 이후 생물공학적으로 개선된 농작물을 재배하는 지역이 세계적으로 6배나 증가한 것도 고성장을 가능케 하는 배경.

    또한 크롭사이언스는 사업 및 연구활동을 유럽·북미·남미·동북아시아·기타 등 5개 지역으로 나누어 수행함으로써 지역별 특성을 살리고 있다. 북미에서는 면과 카놀라, 동북아시아에서는 벼와 야채 재배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생명공학적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 그런 예다.

    폴리우레탄·폴리카보네이트 왕국

    바이엘 머티리얼사이언스는 ‘만물상’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다양한 제품을 생산한다.

    머티리얼사이언스는 폴리머 사업부문과 케미컬 사업부문으로 양분되는데, 폴리머 사업부문은 폴리우레탄·플라스틱·고무·페인트 및 접착제 원료 사업부 등을, 케미컬 사업부문은 기초화학약품·무기안료제품·정밀화학제품·피혁약품·제지약품·항균제 및 부식방지제·섬유염색·셀룰로오스 사업부 등을 거느리고 있다.

    그 중에서도 폴리우레탄과 폴리카보네이트 계열 제품은 활용영역이 계속 확대되고 있어 무한한 잠재 수익원으로 기대를 받고 있다.

    폴리우레탄은 1937년 오토 바이엘 박사팀에 의해 세계 최초로 바이엘 실험실에서 개발된 이래 가장 중요한 고분자제품의 하나로 자리잡아왔다.

    바이엘 머티리얼사이언스 홍보실의 프랑크 로스바스 박사는 “폴리우레탄은 가소제를 사용하지 않고도 경질, 반(半)경질, 연질 등으로 경도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는 데다 단열성, 접착성, 내약품성, 내마모성도 뛰어나 용도가 광범위하다”고 설명했다.

    가령 경질 형태로는 냉장고·냉동 컨테이너·파이프·건축 패널용 단열재 등으로, 연질 형태로는 침대·소파 등의 가구나 핸들·시트 쿠션 등의 자동차 부품이나 자동차 코팅재로 폭넓게 이용된다.

    폴리카보네이트도 충격에 강하고 단열 및 전기절연성이 우수하며, 빛 확산성과 가시광선 투과율이 높을 뿐 아니라 디자인과 색상을 자유롭게 변화시킬 수 있어 산업분야는 물론, 일반 소비자까지 파고들고 있다.

    바이엘|전방위 구조조정으로 거듭나는 ‘화학 만물상’

    머티리얼사이언스 케미컬 사업부의 소재 시험 반응기(왼쪽), 바이엘 중국법인 케미컬 사업부에서 피혁 품질을 살펴보는 직원들.

    머티리얼사이언스의 스벤 게스터만 박사는 “폴리카보네이트로 만든 자동차 후드는 뜨거운 엔진 열기에도 변형되지 않고, 전조등은 기존 제품보다 45%나 밝으면서도 웬만한 충격에는 깨지거나 긁히지 않는다”며 “요즘은 BMW 등 고급 차종일수록 외형은 폴리카보네이트, 실내는 폴리우레탄 재질의 부품을 많이 사용하는 추세”라고 했다.

    또한 강화유리보다 150배나 충격에 강하면서도 무게는 2분의 1에 불과해 공항, 역사, 경기장 등의 유리지붕을 대체하고 있으며, CD나 DVD 같은 광학 데이터 저장재, 전기·전자제품 외장재, 스키 부츠 등 스포츠 용품 재질에 이르기까지 널리 쓰인다.

    바이엘은 폴리카보네이트의 용도에 따라 ‘바이블렌드’(자동차 내·외장 부품), ‘마크로폴’(전기·전자제품 외장), ‘마크롤론’(광학저장장치·조명기기·의료기기), ‘듀레탄’(자동차용 플라스틱), ‘데스모판’(스포츠 용품) 등 다양한 브랜드를 갖추고 있다.

    게스터만 박사는 “물론 앞으로도 지속적인 혁신이 필요하다. 하지만 바이엘 머티리얼사이언스는 소비자들의 일상 생활(everyday life)과 직접 맞닿아 있기 때문에 우리는 미래에 대해 매우 낙관적”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R&D가 바이엘의 힘

    바이엘 성장의 견인차는 R&D다. 기술 선도적인 제약·화학기업의 특성상 바이엘의 역사는 발명과 발견, 혁신의 역사일 수밖에 없고, 연구와 개발에 최우선 순위를 두지 않는 한 발명·발견·혁신을 전제로 한 기업 성장은 불가능했다. 바이엘은 현재 전세계 25개 연구소 1만2000여명의 연구원을 그룹의 성장 엔진으로 가동하고 있다.

    바이엘의 지난해 R&D 투자액은 약 24억유로(약 3조4000억원)로 매출액의 8%에 달한다. 모든 사업부는 자체 연구소에 의한 R&D와는 별도로 바이엘 테크놀로지 서비스로부터 특히 공정기술 개선에 관한 지원을 받고 있다. 명문 대학과 공공부문 연구기관, 글로벌 파트너 기업들과 연계한 기술혁신 프로젝트도 다수 수행되고 있는데, 이러한 협력을 통해 전문가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신속하게 신제품에 적용시킬 수 있게 된다.

    바이엘 헬스케어 제약연구소의 안드레아스 크노르 박사는 “우리는 미국과 유럽 등지의 굵직굵직한 제약·화학회사 연구진들과 활발하게 정보를 교류하고 있는데, 이들 기업과의 네트워크는 중복 연구와 같은 시행착오를 최소화함으로써 막대한 R&D 투자 리스크를 분산시키는 부수적 효과도 가져온다”고 귀띔했다.

    바이엘 헬스케어는 지난해 R&D 예산으로 12억5000만유로(약 1조7000억원)를 사용했다. 이는 그룹 전체 R&D 예산의 절반 수준이다. 투자규모가 큰 생명공학, 유전공학 분야 연구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구원도 5000명에 달해 그룹 전체 연구인력의 40%를 상회한다.

    그 결과 바이엘 헬스케어는 현재 약 19만개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으며, 독일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6만개에 육박하는 상표를 획득했다. 지난해에는 수개월에 걸쳐 발기부전 치료제 ‘레비트라’, 비뇨기계 감염 치료제 ‘씨프로’ 등 9개의 신제품을 잇달아 시판하는 기염을 토했다.

    바이엘|전방위 구조조정으로 거듭나는 ‘화학 만물상’

    ‘마크롤론’ 브랜드로 생산되는 플라스틱 용기(왼쪽), 크롭사이언스에서 합성물 시험을 수행하는 로봇.

    신약 하나를 시장에 내놓기 위해서는 수많은 시험용 화학합성물(chemical compounds)을 제조하고, 추출하고, 혼합하고, 분리하고, 반응시키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얼마나 많은 화학합성물을 확보해서 얼마나 많은 연구과정을 거치는가가 성공의 관건인데, 바이엘의 남다른 강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화학합성물 비축량과 시험설비에서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 있기 때문이다.

    부퍼탈에 소재한 바이엘 헬스케어 제약연구소는 650만개의 서로 다른 시험용 화학합성물을 도서관 시스템처럼 정교하게 분류·저장해 활용하고 있다(실제로 이 시설을 ‘Compounds Library’라고 부른다).

    합성물이 담긴 소형 용기들에는 바코드가 붙어 있고, 연구원들이 컴퓨터로 지시하면 바코드 리더기를 거쳐 로봇 팔과 크레인이 합성물 용기를 이곳저곳으로 이동시킨다. 특정 시험에 필요한 합성물은 ‘도서관’에서 빼내오고 시험이 끝난 합성물은 제자리에 갖다놓는 것인데, 워낙 많은 시험이 동시에 진행되므로 로봇 팔과 크레인은 마치 공장의 자동화 생산라인에서처럼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

    화학합성물을 이용한 다양한 시험도 컴퓨터와 로봇들이 담당한다. 로봇이 합성물을 이동시키고 시험하면 컴퓨터는 어떤 분자가 어떤 구조에서 어떤 방식으로 반응하는지를 파악해 시뮬레이션 데이터를 저장한다. 이 과정을 ‘스크리닝(screening)’이라고 하는데, 바이엘은 부퍼탈의 제약연구소와 미국, 일본에 세계 최대 규모의 스크리닝 연구소를 두고 있다.

    헬스케어 분자시험연구소의 크리스토프 알린 박사는 “스크리닝 과정에서 시험 결과에 대해 99% 이상 확신이 서야 연구원들간에 본격적인 신약 개발논의가 시작된다”며 “로봇공학의 발전으로 1주일에 150만개 정도의 합성물 스크리닝이 가능해져 개발 속도가 많이 단축됐다”고 말했다.



    바이엘|전방위 구조조정으로 거듭나는 ‘화학 만물상’

    바이엘 머티리얼사이언스 근로자가 특수 플라스틱 소재를 가공하고 있다.

    헬스케어 제약연구소 안드레아스 벡만 수석연구원은 “현재 옥스퍼드, 컴제넥스, 아큘 등 몇몇 생명공학 기업들과 화학합성물 스크리닝 정보를 교환하면서 상당한 성과를 얻고 있다”며 “합성물 바코드 시스템과 보관 및 전달 방식에 관한 국제 표준을 마련해 보다 많은 기업이 합성물 정보를 효율적으로 공유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시뮬레이션 기반 탄탄

    바이엘 크롭사이언스의 신제품도 기본적으로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개발된다. 크롭사이언스의 경우 스크리닝 과정에서 화학합성물 5만개 가운데 1개 정도만이 상품화에 필요한 고도의 기준을 충족시킨다고 한다. 30년 전에는 그 비율이 1만개 중 1개 꼴이었으나, 제품 시판에 앞서 요구되는 안전성 시험의 종류가 계속 늘어나면서 합성물이 제품으로 빛을 볼 가능성은 그만큼 줄어들었다는 얘기다.

    크롭사이언스는 제품의 효능을 높이는 연구 못지않게 독성을 최소화하는 데도 신경을 쓰고 있다. 살충제, 제초제 등의 농약성분이 자칫 작물과 토양, 수질을 오염시키는 주범이 될 수 있기 때문. 그래서 크롭사이언스는 몬하임 본사에 독성연구소를 두고 각종 농약성분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연구한다. 연구소 곳곳에 실제 농촌 여건과 똑같은 작물 재배시설을 마련, 여러 형태의 시뮬레이션으로 독성시험을 실시하고 있는 것.

    ‘실제 상황’에서의 R&D를 강조하기는 바이엘 머티리얼사이언스도 전혀 다를 바 없다. 예를 들어 레버쿠젠에 있는 머티리얼사이언스 테크니컬 센터에서는 아무런 제품도 만들어내지 않지만 폴리카보네이트 건자재를 생산하는 기계, CD와 DVD 원판을 찍어내는 기계, 자동차 회사에서나 볼 수 있는 충돌시험장비 등 각종 첨단설비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머티리얼사이언스가 공급하는 제품 소재가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이들 각각의 소재를 이용해 완성한 생산설비를 직접 갖춰놓고 연구에 매달리기 때문이다.

    머티리얼사이언스 플라스틱사업부의 페터 회크 박사는 “고객이 사용하는 것과 똑같은 설비로 고객과 똑같은 조건에서 시험하는 게 원칙”이라며 “고객이 첨단설비로 교체하면 우리도 새 설비를 들여온다. 그렇게 해야 고객의 변화하는 요구와 기대를 따라잡을 수 있다”고 말한다.

    140년 만의 구조조정

    1863년 창사 이래 줄곧 덩치를 키워온 바이엘은 2002년부터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라고 불릴 만큼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감행하고 있다. 알짜 사업부문인 헬스케어·크롭사이언스·머티리얼사이언스를 각기 독립법인으로 탈바꿈시키고, 셀룰로오스·전자소재 등을 제외한 케미컬 사업부와 일부 폴리머 사업부를 분리해 랑세스(Lanxess)라는 독립회사로 재배치하는 게 그 골자다.

    랑세스는 내년 초쯤 상장될 예정이다. “바이엘은 건강관리와 영양, 첨단재료 등 미래지향적인 분야에서 활약하고, 랑세스는 성숙된 시장에서 비용절감을 기하는 사업에 집중한다”는 게 공식적인 배경 설명이다.

    랑세스가 분리되면 바이엘은 규모가 20% 정도 작아진다. 지난해 폴리머 사업부와 케미컬 사업부의 매출액을 합치면 133억유로(약 18조2000억원)에 달하지만, 랑세스로 분리될 부문을 빼면 머티리얼사이언스의 매출규모는 75억유로(약 10조5000억원)로 줄어든다. 또한 바이엘은 가정용 살충제사업을 미국의 SC존슨에, 향료사업을 투자은행에 매각했으며, 헬스케어의 전문의약품 사업부를 분리해 합작회사로 만드는 방안도 추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초유의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하는 주인공은 2001년 9월 바이엘 CEO로 선임된 베르너 베닝(58) 회장이다.

    그가 바이엘호(號) 선장이 된 건 회사가 최대 위기를 맞았을 때였다. 바이엘이 야심작으로 내놓은 콜레스테롤 저하제 ‘바이콜’ 복용자 중 50여명이 부작용으로 사망, 리콜과 배상사태가 빚어지면서 그룹 전체가 흔들리게 된 것이다. 주가는 1년새 40%나 떨어졌고, 급기야 지난해에는 창립 140년 만에 처음으로 적자를 내기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에서 신임 베닝 회장은 정면승부를 선택했다. “조직이 오래되고 커지면 기동성이 떨어진다”며 “세계 1, 2위에 오를 만한 핵심사업 외에는 미련없이 버리겠다”고 선언한 것.

    그는 회장 취임 한 달 후인 2001년 10월, 제약사업 부문에서 1300명을 감원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이듬해 5월에는 1300명을 더 감원하고 공장 일부도 통폐합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룹 전체적으로는 2005년까지 1만5000명을 감축하겠다고 예고했다.

    베닝 회장의 전임자인 만프레드 슈나이더 전 회장은 “다양한 사업부를 갖춘 지금의 기업구조가 장기적으로는 더 유리하다”는 소신의 소유자였다. 베닝 회장은 그와 정반대의 신념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 보수적인 기업 성향의 바이엘로서는 물론, 독일이라는 나라의 전반적인 비즈니스 풍토에서 좀처럼 상상하기 어려웠던 그림이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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