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7월호

사회복지 확충하면 빈부격차 줄고 일자리 는다

분배는 가장 중요한 성장전략

  • 글: 김용익 대통령 자문 고령화 및 미래사회 위원장·서울대 의대 교수

    입력2004-07-01 10: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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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복지 확충하면 빈부격차 줄고 일자리 는다

    비정규직 확대, 구조조정의 여파 등으로 소득분포는 계속 나빠지고 있다.

    최근 들어 경제의 어려움에 대한 걱정이 늘고 있다. 다행히 투자가 늘어나는 조짐이 하나둘 나타나고 있고, 중국과 미국의 최근 동향도 장기적으로는 우리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남북관계와 교류도 회복돼가고 있는 중이다. 물론 고유가는 상당기간 우리 경제에 큰 짐이 될 전망이다. 현재의 경제 상태가 위기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이 한국 경제의 현주소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어야 함은 누구나 동의하는 바일 것이다.

    최근 우리 경제지표를 보면 모순이 두드러진다. 수출은 사상 최고의 호조를 보이는 반면 내수는 극심한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서민가계의 상당수가 과다한 부채에 시달리고 있고 건전한 가계마저 소비를 최대한 축소하고 있음에도 일부 부유층의 고급품 소비와 해외소비는 오히려 늘고 있다.

    기업의 투자 부진이 지표상에 명백히 나타나고 있지만 한편에선 거대한 가용자금이 투자처를 찾지 못해 부동산과 주식 시장을 떠돌고 있다. 고학력 청년층의 취업률은 낮아지고 있으나 상당수의 중소기업은 구인난을 호소하고 있다. 고임금과 경직된 노동시장이 기업경영의 어려움으로 지적되는가 하면 이미 절반을 넘어섰다고 하는 비정규직의 저임금과 고용불안은 또 하나의 사회불안 요인이 되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이렇게 모순된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우리 경제의 현 상황을 이해하는 지름길이 될 듯 싶다.

    돈은 많은데 투자는 부진하고

    무엇보다도 소비의 부진이 가계소득의 전반적인 저하가 아니라, 소득 분포의 악화에서 기인한다는 점에서 논의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 1998년 외환위기로 소득수준과 분포가 크게 악화되었음은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다. 그후 전반적인 소득수준은 회복되었지만 소득분포는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지니계수는 1991~97년간 0.281~0.291 사이에 분포하다 1998년 이후 0.312~0.320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1분위 계층 소득/5분위 계층 소득’의 비는 2002년 현재 5.36이다. 국부의 많은 부분이 상류층으로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내수의 기본주체가 되는 서민, 중산층 가계의 소비가 부진함에도 일부 계층의 고급 소비가 늘고 있는 현상을 이로써 설명할 수 있다. 더욱이 교육비, 주거비, 의료비 등 가계의 경직성 지출요인 비중이 커지고 고용의 불안정으로 노후 대비에 불안을 느끼게 된 가계가 지출을 줄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내수 부진의 구조가 이러함에도 김대중 정부 말기에 단기 소득부양책으로 추진된 가계신용의 과다한 팽창은 이제 후폭풍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그렇다면 문제는 소득분포가 왜 악화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가계의 가처분소득은 시장소득을 기본으로 형성되고 정부의 이전지출에 의해 교정된다. 우리나라의 조세와 사회보장기구가 소득재분배 효과를 가지지 못한다는 사실은 이미 밝혀져 있다. 유경준(KDI)의 연구에 의하면 2000년 시장소득의 지니계수는 0.374인데, 가처분소득의 지니계수는 0.358로 큰 차이가 없었다. 미국에서조차도 재분배 시스템에 의해 지니계수는 0.411에서 0.335로 개선된다. OECD 평균치는 0.380에서 0.272로 변화한다. 그러나 이전지출의 소득재분배 효과가 최근 들어 더 악화되었다는 보고는 없다. 다만 원래 나빴던 상태가 고쳐지지 않고 있을 뿐인 것이다.

    비정규직의 확대

    소득분포가 나빠진 원인은 주로 시장소득의 분배 악화 때문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첫째는 비정규직의 확대이다. 한국에서 비정규직이라는 말은 고용불안 및 저임금 노동자와 동의어로 쓰이고 있다. 이것이 문제이다. 계약직 고용형태가 일반화된 선진국에서 비정규직은 임금차별의 고통을 겪지 않는다. 고용불안도 경기가 후퇴할 때 문제가 될 뿐 비정규직이라는 사실 자체만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즉 고용과 해고가 유연할 뿐이며 노동자의 입장에서도 취업과 이직이 자유롭다. 실업률이 상당히 높음에도 이렇게 유연한 고용이 가능한 것은 고용보험이 이직과 취직 사이에 놓인 과도기의 생활을 뒷받침해주고 동일노동-동일임금의 대원칙이 준수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비정규직이 확대되면서 이들에게 정규직보다 크게 낮은 임금이 적용되고, 건강보험 산재보험 등 사회보장제도에서도 제외되면서 사회적 혜택의 사각지대로 빠져들게 됐다.

    둘째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분업과 산업 연관 관계가 훼손되면서 양자의 관계는 크게 양극화되었다. 대기업이 전통적인 중소기업의 상품시장 영역으로 침투하고, 원료시장에서는 해외에서 부품을 구하게 되면서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전후방 파급효과는 축소되었다. 중소기업의 자금조달을 지원해주어야 할 금융시스템은 오히려 위험을 기피하고 대출의 중심을 가계로 돌렸다. 중소기업에 혁신 동력을 제공해야 할 대학과 연구소는 경영기법과 기술개발 지원이라는 면에서 제몫을 해내지 못했다. 바로 이런 것들이 중소기업 위축의 원인이 되었다.

    셋째,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추진된 기업 인수합병, 공기업 민영화, 불안해진 고용형태와 사회적 안전망의 미비는 대기업 노동자를 중심으로 노동운동을 격화시키게 되었다. 이로 인해 낭비되는 사회적 비용은 막대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 노동운동의 ‘과격성’을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이런 상황을 초래하게 된 배경도 함께 이해할 필요가 있다.

    조직 노동자와 비조직 노동자가 양분되어 있을 때, 조직 노동자의 힘에 의한 임금과 해고비용 상승이 장기적으로 일자리의 축소와 비조직 노동자의 임금하락을 초래한다는 것은 고전적인 이론이다. 한국에서도 500인 이상 기업 대비 5~9인 기업의 임금 수준은 2000년 58.0%에서 2003년 50.7%로 악화되고 있다.

    결국 최근 수년간 일어난 산업구조 조정과 고용인력 축소, 비정규직 확대와 이들의 낮은 임금 , 대기업의 중소기업 시장 침투 및 글로벌 소싱 확대 등은 개별 기업의 측면에서는 경영합리화였지만 경제 전체로 볼 때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대기업 노동자와 중소기업 노동자, 정규직 노동자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격차를 더욱 벌리는 계기가 됐다.

    내수 부진이 투자 부족의 원인

    농어업의 위축과 함께 농어민들의 상황도 악화되었다. 비정규직은 저임금 노동자와 혼동되지 말아야 했고 대기업의 경쟁력 강화는 중소기업의 보호육성과 발을 맞추어야 했다. 고용시장 유연화 정책은 동시에 비정규직 및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전반적 급여를 확대하는 사회보장제도를 마련하는 노력과 병행되었어야 했다. 결국 이런 문제들이 내수기반의 훼손이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

    우리 경제의 앞날을 불안하게 하는 또 하나의 문제는 바로 투자 부진이다. 지난해 투자 증가율은 2002년의 7.5%에서 -0.3%로 급락하였다. 그런데, 현재의 투자율 하락은 재원의 부족이나 해외 소비의 부진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다. 금년도 1/4분기 총저축률은 31.5%로써 외환위기 이후 최고치이며(한국은행), 정확히 확인할 수는 없지만 시중의 부동자금이 400조원에 이른다는 보도도 있다.

    시장에서의 가용재원은 부족이 아니라 잉여 상태이며 오히려 투자처를 찾지 못해 투기자본화하고 있는 현실이다. 2002~03년의 일부 지역 부동산 가격 급등은 투기성 자금의 유입으로 인한 것이었다. 또 작년의 총수출액은 1938억달러로 사상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결국 현재의 투자 부족은 내수 부진에 그 원인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소득격차의 악화가 내수의 부진으로, 내수의 부진이 투자의 부진으로 이어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투자의 부진은 다시 취업률을 하락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에 문제의 심각성을 더하게 된다. 다행히 최근 지표에 의하면 가동률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작년 78.3%, 올해 1/4분기 83.5%) 투자율이 회복될 기미를 보이고 있다. 물론 기업에 가해지는 각종 규제를 줄여 기업 활동을 지원해 줄 필요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중요한 것인지, 내수 부진이 더 근본적인 원인인지는 좀더 따져봐야 할 것이다.

    청년들의 구직난과 중소기업의 구인난은 그동안 수없이 지적되었던 고용시장의 패러독스이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을까? 먼저 인력 수급의 불균형을 들 수 있다. 1995년을 기점으로 대학 진학률이 극적으로 높아졌다. 1990년 47.2%였던 대학 진학률은 2003년 현재 79.7%에 달한다. 이들을 위해서는 ‘좋은 일자리(good job)’가 대량 확대되어야 하는데 80%나 되는 대졸자들을 모두 만족시키기는 일자리를 제공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한편 기업환경에서도 또 다른 답을 얻을 수 있다. 앞서 말한 대로 중소기업의 위축은 이들이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할 능력도 잃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소기업의 일자리 증가율이 줄어들 뿐 아니라, 제공되는 일자리마저 점점 더 ‘나쁜 일자리(bad job)’에 국한되게 되었다. 높아지는 학력에 부응하려면 다수의 우수한 중소기업이 전국에 흩어져 좋은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현실은 오히려 정반대로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교육개발원의 조사에 따르면 2003년 이공계 대졸자 10만4694명 중 취업자는 49.0%인 5만1301명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은 교육 부문에도 영향을 미쳐 이공계 기피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이를 두고 이른바 ‘이공계 푸대접’이라고도 하지만 그 바탕에는 고학력 인력의 과다공급과 중소기업의 사정 악화로 고학력 청년실업이 구조화되는 문제가 깔려 있다. 교육과 노동 수요의 불일치가 심각한 양상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일류대학 입시경쟁은 격화되고 대학원 진학 역시 늘어나고 있다. 이처럼 교육 서비스는 과잉으로 치닫고 있는데, 이것이 노동 수요자의 요구에 부응하는지는 의문이다.

    사회복지 확충하면 빈부격차 줄고 일자리 는다

    최근 청와대는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의 통합을 위해 정책실장 산하에 사회정책수석을 신설했다.

    노동시장의 유연화나 산업의 구조조정, 국영이 불필요한 기업의 민영화 등은 모두 시장기능을 정상화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이로써 시장 개혁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시장개혁의 핵심요소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시장개혁의 핵심은 시장의 투명성, 소유지배구조의 선진화 등이다. 이것들이 시장개혁에 중요한 이유는 불투명한 회계, 불공정 거래행위, 소수에 집중된 채 외부의 통제를 거부하는 경영권 등이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고 시장의 자원 배분 기능을 왜곡하기 때문이다.

    공정한 경쟁이 없으면 기업가들의 혁신 정신은 설 자리가 없고 시장의 활력은 소멸된다. 시장이 국가 운영에서 소중한 것은 자원배분기능 때문이고 이 기능을 잃은 시장은 시장일 수 없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생산자든 소비자든, 자본이든 노동이든 시장의 마당 안에서는 시장의 규칙을 준수해야 할 것이다.

    기업과 정부의 투명성

    물론 투명성은 기업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정부와 가계도 투명하게 운영되어야 한다. 가계, 기업, 정부의 3대 경제주체가 모두 투명하게 운영되어야 시장과 경제, 재정과 조세, 사회보장제도 등을 합리적으로 공정하게 운영할 수 있다.

    소득과 거래의 은닉, 세금포탈과 재정낭비 등으로 한국 사회는 이미 심각한 혼선을 겪고 있다. 투명화는 부정부패를 막고 한국경제의 대외 신인도를 높이는 데에도 필수적인 요건이다.

    결과적으로 한국 경제는 성장잠재력의 잠식과 고용흡수력의 약화를 동시에 겪고 있다. 1990년대 6.6%에 이르던 잠재성장률은 2000년대 들어 4.8%로 떨어졌고, 취업계수는 1995년 4.56, 2000년 3.70, 2002년 3.48로 지속적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국민소득도 1만달러 수준에서 8년 동안이나 제자리걸음을 하는 등 구조적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경기 순환에 대응하는 단기적인 대책도 중요하지만 이를 넘어서는 구조적인 문제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게다가 최근 들어서는 출산력마저 저하되어 인구의 재생산 자체가 위기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2002년 여성 1인이 평생 낳는 자녀의 수인 합계출산율이 1.17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져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준 것. 인구의 수가 단순재생산되는 대체출산율이 2.1인 것을 고려해보면 현 상황은 매우 심각하다. 단순 추계를 해보자면 한민족 자체가 소멸되는 시한이 약 200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말이다. 출산율의 저하를 단순히 양성평등의 결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혼인과 출산은 합리적인 인간 행동의 한 부분으로, 보육과 교육 등 육아비용의 과다로 인해 자녀를 낳아 기를 자신이 없을 때 이를 기피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200년 후면 한민족 소멸(?)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 것인가. 첫째는 소득 분배의 개선이다. 최근 주요 언론들은 성장이냐 분배냐 하는 문제를 특집으로 다루면서 많은 관심을 표명하였다. 그러나 성장과 분배는 이분법적인 것도, 상호배타적인 것도 아니다. 어느 나라, 어느 경제에서나 성장은 분배의 기제를 필요로 하고, 분배를 위한 부는 성장을 통해 축적된다.

    물론 이 두 가지가 늘 조화를 이루는 것은 아니다. 높은 수준의 복지제도를 가진 나라들일수록 경기침체기에 복지급여의 하방경직성으로 인해 곤란을 겪기도 한다. 또 실업자와 노인들의 복지 의존도가 높아 노동력 공급에 차질을 빚기도 한다. 이는 많은 학자와 언론들이 우려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상황은 이와는 정반대이다. 분배의 미흡으로 절대다수의 소비계층이 구매력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에 내수 기반이 취약해지고, 기업과 노동자,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치열한 대립으로 인해 사회갈등의 고비용을 치르고 있다.

    현재 한국의 상황에서 분배는 가장 중요한 성장 전략이다. 소득 분배는 우선 시장소득의 개선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여기서 중소기업 대책과 비정규직 대책이 가장 핵심임은 말할 것도 없다. 중소기업은 각 지역별로 고루 육성되어 계층적, 지역적 소득 분포의 개선에 바탕이 되어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중소기업의 육성이 기업정책의 핵심에 놓여져야 할 것이다.

    중소기업은 규모가 작을 뿐이지 열등한 경쟁력, 열악한 조건, 낮은 임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자면 중소기업이 자금력, 경영력, 기술력을 가지도록 지원해주는 체계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혁신의 능력, 고용의 능력을 가질 수 있고 한국 경제와 지역 경제의 기반이자 견인차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는 해소되어야 한다. 고용의 유연화가 임금의 격차와 동일시되어서는 안 된다. 임금의 유연화는 이와는 별도의 차원에서 필요하다. 동일한 노동에 대해 고용형태와는 무관하게 임금 격차를 줄이자고 한다면 동시에 노동의 질의 차이에 따라 임금도 차등을 두어야 한다는 논리도 성립하다. 동일 학력이라도 노동의 질에 차이가 날 때, 연령에 따라 능력의 차이가 발생할 때, 이 차이는 임금에 반영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차별과 차등은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

    이는 우선 기업의 책임이겠지만 노동 측의 변화도 필요하다. 고용안정, 임금 향상을 기대하는 것은 노동조합들의 당연한 요구이겠지만 그것이 비조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피해를 주는 방향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 노동운동은 노동자 전체를 포괄하는 좀더 큰 차원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 한 직장 안에서의 고용안정보다는 전직(轉職)과 전업(轉業)의 가능성을 포함하는 고용안정으로, 한 직장에서의 임금향상보다는 사회적 임금을 포함하는 총임금 향상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둘째는 재분배이다. 시장소득의 분배는 조세와 사회보장제도의 이전지출로 조정되어야 한다. 1차적 재분배는 조세와 국가재정이 담당한다. 물론 여기서 관건은 세원의 정확한 파악과 조세제도의 공평성이다. 현재의 조세제도는 이 양자에서 나름대로의 문제와 난점을 가지고 있는 바, 국민들이 신뢰할 수 있는 방향으로 해결책이 모색되어야 한다. 재정은 경제개발에서 사회개발로, 중앙에서 지방으로 중점이 옮겨져야 할 것이다.

    사회복지제도는 2차 재분배의 역할을 수행한다. 사회보장과 복지 서비스에서 소외되어 있는 계층의 편입(즉 사각지대 해소), 적정한 수준으로의 급여 확대, 정확한 소득 파악에 근거한 보험료 부과, 각 부처와 조직으로 산재되어 있는 제도의 조정과 종합 기획을 통한 내부효율화 등이 관건이다. 이제 사회복지제도는 소비적이라고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전지출과 재분배를 통한 가계의 지출능력 향상과 경직성 가계지출요인의 경감은 구매력의 복구와 유지에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이는 결국 생산을 촉진하고 투자를 유발하기 때문에 성장 동력으로서의 가치를 가진다. 갈등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 또한 만만치 않은 규모이다. 사회통합의 효과는 현재 한국의 현실에서 그 자체가 투자 성격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셋째는 복지 확충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다. 복지는 그 자체가 막대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영역이라는 점이 늘 간과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보건 및 보육 등 사회복지 서비스 분야에 고용된 인력은 2000년 현재 전체 산업 취업자의 2.2%에 불과하나, 미국 11.1%, 독일 10.3%, 스웨덴 18.4% 등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사회복지 분야는 아마도 향후 가장 큰 일자리 창출의 동력이 될 것이다. 노인, 아동 양육, 보건 등은 일자리 창출을 통한 분배 효과가 급여를 통한 재분배 효과를 능가할 수도 있다. 즉, 사회복지가 산업으로서 가지는 효과를 평가할 필요가 있다.

    넷째는 소득분배와 복지서비스의 강화다. 이 경우 인구 재생산을 촉진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즉 혼인과 출산을 장려하여 노동력의 장기적 공급 확대를 기대할 수 있다. 특히 보육과 육아교육의 강화, 그리고 공교육의 충실도를 높여 사교육비를 절감하는 방안 등은 출산력 제고에 가장 중요한 기반을 다지는 정책이 될 것이다.

    시장의 공정성과 투명성, 중소기업의 육성, 사회통합을 통한 성장 등은 그동안의 전통적 성장논리를 벗어난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한국의 성장논리는 군사개발독재 시기 이후, 요소투입 확대, 불균형 성장, 수출주도, 노동배제, ‘선성장-후분배’ 등을 중심으로 형성되어왔다. 중소기업의 육성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유기적 균형 복구를 의미하는 것이며, 사회통합적 성장은 ‘분배를 통한 성장’ 또는 ‘분배의 성장 동력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물적 자본보다 인적 자본이 중요

    여기서 자세히 다룰 수는 없지만 새로운 성장전략에서 또 하나의 전환점이 될 수 있는 것은 혁신을 통한 성장의 추구이다. 자본과 노동의 국가간 이동이 자유로워지는, 즉 요소들의 이동이 세계화하는 상황과 함께 생산가능인구의 축소와 노인인구의 폭발적 증가라는 미증유의 인구변동의 위기에서 이제 생산요소의 단순한 확충만으로 성장을 추구할 수는 없다.

    물적자본은 이제 필수적이기는 하나 부차적인 가치를 가지는 것이며, 그보다는 인적자본과 창조적 정신이 성장동력으로서 더욱 주도적인 위치를 점하게 된다. 진취적이고 창조적인 ‘혁신 기업가 정신’, 연구개발에 의한 기술·지식, 교육·훈련을 통해 육성된 우수한 인적자본, 그리고 이를 엮어주는 창의적이고 분권적인 정부의 역할이 성장을 이끌어가야 한다.

    창조적 인적자본의 육성을 위해서는 교육내용이 창의적인 방향으로 전환되고, 산업 수요와도 맞아야 한다. 각 지역의 교육·연구기관과 산업체는 지역의 교육·훈련, 연구개발(R&D), 고용, 생산, 지방행정 등을 위해 혁신 클러스터로 네트워킹되어야 한다. 정부의 역할은 물적자본의 투입에서 인적자본, 지적자본의 육성으로, 그리고 이를 위한 사회적 SOC의 형성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러한 혁신주도형 발전정책이 제 2의 도약 달성의 관건이다.



    이러한 변화가 정부의 일방적 주도로 이루어질 수 없음은 누가 보더라도 자명하다. 노·사·정·시민사회의 사회적 협의체제가 형성되고 한국 사회의 지향점에 대한 합의와 이를 이루기 위한 각종 의제들에 합의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는 짧은 기간 동안 이뤄낼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성공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을 것이다. 네덜란드, 아일랜드, 핀란드 등 이미 이를 성공시킨 나라들의 사례도 참고로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노동, 기업, 시민사회의 폭넓은 사고가 있어야 할 것이다. 정부의 굳은 의지와 균형 잡힌 시각이 전제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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