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7월호

문화산업에 눈뜬 문화대국, 콘텐츠는 ‘빈약’ 잠재력은 ‘막강’

권기영(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중국사무소장)이 말하는 중국의 문화산업

  • 대담: 황의봉 동아일보 출판국 부국장·전 베이징특파원 heb8610@donga.com

    입력2004-07-01 11: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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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TO 가입 이후 문화의 빗장을 풀고 문을 활짝 연 중국.
    • 외국의 문화콘텐츠를 조심스레 받아들이면서 21세기 유망산업인 문화산업 진흥에 발벗고 나섰다.
    • 2007년 문화소비 규모 1000억달러로 세계2위가 될 중국시장을 겨냥한 각국의 공략 또한 치열하다. 중국 대중문화의 실태와 발전 전망, 그리고 한류(韓流)현상으로 힘을 받고 있는 한국 문화상품의 중국진출 전략은 무엇인가.
    문화산업에 눈뜬 문화대국, 콘텐츠는 ‘빈약’ 잠재력은 ‘막강’
    21세기는 문화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무성하다. 그래서 문화산업이라는 말도 이젠 낯설지 않게 들린다. 잘 만든 영화 한 편으로 벌어들이는 외화가 자동차 수천, 수만 대 수출효과와 맞먹는다는 계산도 그럴듯하다.

    굳이 이런 분석을 곁들이지 않아도 중국의 문화와 문화산업에 대한 이해는 중국탐험의 필수코스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문화의 현주소를 모르고는 중국진출이니 현지화니 하는 것들이 사상누각이 되기 십상일 터이다.

    권기영(權基永·38)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중국사무소장은 우리 문화의 중국 문화산업계 진출과 문화 분야의 한중협력을 위한 실무작업을 총괄하고 있다. 말하자면 중국 문화산업의 최전선에 파견된 선발대인 셈이다. 베이징대에서 중국문학 박사과정을 마치고 현재까지 9년째 중국에 체류중인 권 소장은 중국 문화산업의 구석구석을 꿰뚫고 있는 ‘중국문화통’이다. 각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중국 문화산업의 전반적인 분위기부터 짚어보기로 했다.

    -권 소장께서는 중국에서 9년째 생활하시면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또 중국의 문화산업 전반을 직접 다루고 있으므로 누구보다도 보고 듣고 느끼는 점이 많을 줄 압니다. 좀 두루뭉실한 이야기가 되겠습니다만, 우선 중국의 대중문화를 한국의 대중문화와 비교해보면 어떤 특징이 있습니까.

    “우리와 특별히 다르다기보다는 서로 통하는 면이 참 많다는 점을 자주 느낍니다. 물론 구체적으로 파고들면 우리와 상이한 측면이 많겠지요. 몇 가지 인상적인 점을 든다면 먼저 드라마를 10대에서 50~60대까지 광범위한 계층이 즐겨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중에 사극(史劇)이 아주 많습니다.



    최근 들어서는 한류(韓流)의 영향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청춘드라마도 많이 찍고 있습니다. 음악도 발라드풍은 기본이고, 외국풍의 댄스뮤직도 유행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는 한국과 크게 다르다고 보기 힘들죠. 오히려 한국에서 널리 인기를 얻은 것들이 중국에서도 크게 환영받고 있다고 보아야겠지요. 다만 현대적인 대중문화의 수준이라든가 제작능력을 놓고 보면 한국보다 떨어진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경제성장률 뛰어넘는 문화소비

    -중국의 경제발전이 지속됨에 따라 문화소비 지출도 증가하고 있는데요. 전반적인 문화소비의 추세와 전망을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몇 가지 경제지표만 보더라도 문화소비 지출이 늘어나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1990년대 이후에 비로소 엥겔계수가 50% 이하로 감소했는데, 대도시는 40% 이하로 낮아졌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의 비중이 낮아진 대신 문화에 지출할 여력이 생겨난 것이지요. 지난해의 경우 경제성장률이 8.5%였던 데 비해 문화소비는 약 10% 늘어난 725억달러에 달했습니다. 경제성장보다도 더 빠른 속도로 문화소비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지요. 2008년의 베이징올림픽과 2010년의 상하이엑스포 개최를 계기로 급속한 성장세가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2007년에는 문화산업의 시장규모가 1000억달러를 넘어서 미국에 이어 세계2위가 될 전망입니다.

    흔히 중국의 일인당 소득을 놓고 소비수준을 예상합니다만, 지금 웬만한 젊은이들은 자기 월급보다도 비싼 휴대전화를 다 가지고 있어요. 또 문화적 접촉 공간이 점점 넓어지면서 생활방식이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갖가지 외국문화가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지요.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지난해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발생 기간에 사람들이 외출을 자제했는데 그 바람에 인터넷 서비스가 17.3%, 통신서비스가 31.4%나 증가했다고 합니다. 전반적으로 문화소비에 대한 욕구가 팽배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나라가 크기 때문에 지역별로도 문화의 생산과 소비 유형이 다를 것 같은데요. 지역별로 어떤 특징이 있나요.

    “보통 중국 전체를 다섯 개의 문화권역으로 구별합니다. 베이징(北京)을 중심으로 한 화북지역, 상하이(上海)를 중심으로 한 화동지역, 광저우(廣州)를 중심으로 한 화남지역, 청두(成都)를 중심으로 한 서남지역, 선양(瀋陽)을 중심으로 한 동북지역 등인데 시장규모도 크고 각기 특색이 있습니다.

    베이징과 상하이는 모든 것이 갖춰진 종합도시입니다만, 상하이가 경제중심지로 외래문물이 빨리 들어오고 실험적인 요소가 강하다면 베이징은 중앙정부의 통제가 심하고 문화적 보수성이 강한 편입니다. 상하이에서 애니메이션, 온라인게임, 영화 등이 발전하고 베이징에 각종 공연이 성행하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입니다. 남부의 경제중심지인 화남지역은 홍콩의 영향을 받아서 문화적으로도 상당히 개방적입니다. 현재 모바일콘텐츠 시장의 70%를 차지할 정도입니다.

    청두는 전통적으로 문화의 고도(古都)지만, 경제적으로 낙후돼 있다가 최근 서부대개발의 핵심도시로 떠오른 곳인데, 차(茶)문화가 발달해서인지 이곳 사람들은 참 놀기를 좋아해요. 이런 특성이 오히려 문화산업에서는 굉장한 이점이지요. 예컨대 중국 온라인게임의 최고 히트작인 ‘미르의 전설’ 같은 경우 회사 본부는 상하이지만 실제 서비스해서 돈버는 곳은 청두를 중심으로 한 서남지역입니다. 청두지역이 동부의 연안지역보다 경제력은 상대적으로 떨어지지만 오락산업은 더 발전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동북지역은 전통적으로 중공업지대였는데, 일본의 진출이 굉장히 활발합니다. 다롄(大連)시에는 일본문화가 상당히 많이 들어와 있습니다. 동북지역은 또 조선족 동포가 많이 살고 있기 때문에 한국의 방송이나 문화가 가장 먼저 들어오는 곳이기도 합니다.”

    WTO 가입과 점진적 개방정책

    -2001년 11월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후 각 방면에서 개방이 진행되고 있는데요. 문화산업 분야는 현재 어디까지 개방돼 있습니까.

    “공식적으로는 문화산업 쪽에서도 상당히 개방을 하는 것으로 돼 있어요. 예컨대 스크린쿼터제를 유지하고는 있지만 연간 20편의 외국 영화를 수입할 수 있도록 했고, 외국자본에 의한 영화관 건설도 가능해졌습니다. 또 외국자본과 합작으로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도록 개방하고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개방의 폭은 더욱 넓어지겠지요.

    그럼에도 중국의 다른 산업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장 소극적이고 규제가 많은 것이 문화 영역입니다. 가령 정보통신(IT)산업을 보면 세금 감면 조치 등 외국기업에 대한 적극적인 유치 노력이 돋보이는데 비해 문화 쪽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외국문화가 들어와서 중국의 사회주의 정신문명을 해칠 수 있다, 특히 자본주의 문화가 인민들에게 불건전한 풍조를 부추길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정권의 아이덴티티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이데올로기를 장악해야 하는 중국정부의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문화산업의 개방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는 것입니다.”

    -중국정부의 입장을 말씀하셨는데요. 중국의 경우 정부가 주도적으로 문화산업 정책을 펴나가고 있지 않습니까. 중국정부의 문화산업 진흥정책이 대개 어떤 식으로 나타나고 있습니까.

    “중국정부가 문화사업과 문화산업을 구분한 구체적인 정책을 내놓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부터라고 하겠습니다만, 문화산업을 진짜 산업으로 인식하고 적극 추진한 것은 2000년 이후입니다. 예를 들어 애니메이션 발전 10차 5개년 계획에 따르면 각 방송국마다 애니메이션 관련 채널을 신설한다든가 성(省)급 이상 방송국은 하루에 최소한 30분 이상 애니메이션물(物)을 방영하되, 방영시간의 60%는 국산으로 하라는 식입니다. 또 애니메이션 제작 관련사들은 매년 30%씩 제작량을 늘리라는 정책도 나왔습니다.

    중국은 이미 2003년을 디지털방송 원년으로 선포하고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100% 디지털 방송으로 송출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또 2014년경에는 중국내에서 아날로그 방식의 송출을 완전히 없애도록 하겠다는 등의 정책들을 내놓고 있어요. 주목할 것은 문화산업을 정보산업과 결합시키는 구상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처럼 적극적인 정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만, 문제는 문화산업과 관련된 각 장르들을 보면 관리하는 부서가 도처에 흩어져 있다는 점이에요. 예컨대 방송이나 영화는 광전총국에서 관리하고 있고, 전자출판물이나 게임은 신문출판서에서, 기타 순수 민간예술과 공연 연극 등은 문화부가 맡고 있어서 정책을 통일시켜 나가는 데 어려움이 많습니다.”

    전통문화와 외래문화의 공존

    -요즘 중국의 문화현상을 관찰해보면 과거 전통문화적인 요소를 많이 간직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습니까.

    “전통문화적 요소와 현대화된 국제적인 유행문화가 섞여 있다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외국과 합작해서 방송프로그램이나 드라마, 혹은 애니메이션을 만들 경우 중국에 관련된 스토리나 혹은 중국의 민족적인 색채가 짙은 작품이라야 정부당국에 의해 공동제작으로 인정받습니다. 특히 최근에 나온 애니메이션의 소재를 보면 대부분 중국의 고전에서 따온 것들입니다.

    반면에 청소년들이 열광하는 유행문화는 전통적인 것과는 거의 관계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홍콩 대만, 나아가 한국 일본에서 수입되는 것들은 중국의 전통문화와는 별 관련이 없죠. 이처럼 계층별, 연령별로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면서 전통문화와 외래문화가 공존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문화를 얘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사회주의 체제의 특성과 1960~70년대 문화혁명의 경험이 여전히 영향을 끼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대중문화라는 것이 소비나 유행에 민감하기 때문에 자유롭고 유동적이라는 특성이 있습니다만, 중국은 체제의 특성상 정부 혹은 정책의 주도성이 굉장히 강하고 특히 사회주의 정신문명의 가치관이 강조되고 있어서 일정 부분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가장 비근한 예로 우수한 문화 콘텐츠의 개발은 결국 좋은 작품이나 시나리오가 나와야 가능한데, 여기에 심사제도라는 것이 있어서 많은 영향을 주고 있어요. 민감한 정책상의 문제라든가, 과거의 역사라 하더라도 현재와 관련돼 있는 것들, 폭력적인 것들, 음란성이 강한 것들이 모두 규제대상입니다. 그런데 그 규제의 기준이 아주 모호해서 속된 말로 작가가 알아서 긴다는 것입니다. 작가 스스로 한계를 설정해 창작에 임하다 보니 작품이 위축되고 재미도 없어지게 되는 것이죠. 또 소재 부분에서도 예를 들면 중국공산당에 관한 새로운 시각, 중국역사에 관한 새로운 해석이 금기시돼 있다는 겁니다.”

    -한류를 문화산업이라는 측면에서 활용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한류 비즈니스는 어떤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나요?

    “한류효과는 비즈니스 차원에서 여러 각도로 따져볼 수 있습니다. 우선 경제적 효과로는 안재욱이 광고 모델로 출연한 삼성전자의 모니터가 중국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했고, LG드봉이 김남주 CF 기용을 통해 중국 화장품시장의 70%를 점유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드라마 촬영지 관광이나 한류 스타와의 팬미팅 관광이 유행하고 있다거나 한류를 통해 한국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가 상승한 것도 무시할 수 없는 효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류는 각 장르별 문화산업의 중국진출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어요. 카세트테이프와 CD의 발행이 2002년 한해에만 32종 114만장에 달했고, 영화산업 쪽에서는 지난해 베이징에 멀티플렉스관이 건설되기도 했습니다. ‘엽기적인 그녀’의 주제가가 벨소리 다운로드 1위를 기록한 것도 한류 비즈니스의 한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중국에서 발행된 한국음반들은 보통 얼마씩에 어느 정도나 팔리고 있습니까.

    “정품 음반이라면 우리돈으로 3500~4000원 정도에 판매가가 정해지는데, 그렇게 팔리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복제품이 정품의 10배쯤 유통되니까요. H.O.T. 음반이 가장 많이 팔렸을 때 정품으로 약 30만장 정도가 나갔으니까 복제품은 그 10배에서 30배인 300만장에서 1000만장 가량이 퍼져 있다고 보면 됩니다.”

    -한류(韓流)의 상대적 개념으로 한국에서의 한류(漢流)현상을 지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중국문화를 접하시면서 한국에도 본격적인 한류(漢流)현상이 대두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시는지요.

    “그럴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저희처럼 중국문화의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그에 대해 굉장히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중국으로 흘러가는, 때로는 일방적인 듯한 한류(韓流)현상이 언제까지 갈까, 오히려 그 역류현상이 나타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죠. 다만 역류현상이 생겨난다 하더라도 그 분야는 다를 것 같아요. 예컨대 드라마 같은 대중문화 분야에서는 소재의 발굴이라든가 재미있고 역동성 넘치는 전개 등에 있어 우리가 상당기간 앞서갈 수 있을 것이라고 보니까요. 반면 중국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것들 가운데 한국인이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보는 것이지요.

    중국문화의 세계화 가능성

    중국도 지금 드라마를 찍는 기술, 노래를 하는 테크닉, 공연장의 무대장치와 조명 등에서 매우 빠르게 발전하고 있어요. 이처럼 기술적인 문제를 따라잡는 건 시간문제예요. 중국이 자국의 풍부한 문화유산을 단순히 중국적인 감수성이 아닌 글로벌한 감수성으로 취사선택해 문화상품으로 개발해낼 수 있다면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가 열광하는 현상도 충분히 예견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국과 중국의 문화교류에 있어 바람직한 방향, 그리고 우리 문화의 중국진출과 관련해 요구되는 전략은 무엇이겠습니까.

    “결론적으로 중국시장을 개척하지 못하고 세계시장에서 한국문화를 드높이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그리고 중국의 문화를 우리 것으로 재창조하는 노력도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이문열 삼국지’가 베스트셀러가 됐는데 이게 중국고전 삼국지냐, 아니면 이문열 혹은 한국 삼국지냐를 따진다면 저는 한국 삼국지라고 봅니다. 기본 스토리는 중국에서 나왔지만 이것을 시장에서 팔릴 수 있는 콘텐츠로 가공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런 능력이 중요합니다.

    다음으로 문화도 서로 주고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방적으로 우리것을 자꾸 팔아야 한다는 논리에서 벗어나 우리도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얘기입니다. 한국의 문화 소비자들한테 보다 다양한 문화를 흡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우리 문화의 전반적인 수준이 향상될 수 있습니다. 그런 적극성과 개방적인 자세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다만 전략적으로 저는 중국과의 문화교류에서 어깨동무하고 같이 가기보다는 거인의 목마를 탄 난장이가 돼야 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거인이 활기차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하면서 그 위에 목마를 탄 난장이가 조금 더 높은 곳에서 멀리 바라보는 기회로 만들어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중국 문화산업이 콘텐츠에서 열세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도 지금 말씀하신 체제의 특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봐야 할 것 같군요.

    “연관성이 굉장히 크다고 봐야죠. 중국의 작가들이나 예술가들의 창의력이 부족해 문화 콘텐츠가 빈약하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다만 자유로운 창작활동을 제한하는 조치가 너무 많고 그것이 사회적으로 오랫동안 지속되다 보니까 스스로 만든 울타리 속에 갇혀 있는 측면도 크다는 것이죠.”

    문화산업을 좀더 정확히 표현하면 문화콘텐츠산업이다. 즉, 문화콘텐츠의 기획, 제작, 유통, 소비와 관련된 산업으로 매우 광범위하다. 영화나 드라마 음악 같은 전통적인 문화콘텐츠에서 최근 IT산업의 발달에 힘입어 새롭게 부각된 온라인게임이나 모바일콘텐츠에 이르기까지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해 오늘은 우리가 비교적 익숙한 분야를 중심으로 중국의 문화산업을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한국인 누구나 한번쯤은 봤음직한 중국영화의 현황과 안팎의 사정부터 물어보았다.

    -중국에서는 ‘누가 미우면 그를 보고 영화에 투자하라고 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영화를 만들어 돈 벌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장이모(張藝謀) 천카이거(陳凱歌) 등 세계적 감독을 배출한 중국의 영화산업이 의외로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실제로 현장에서 느끼는 중국 영화산업의 현황은 어떻습니까.

    “중국영화의 배우나 감독, 촬영기사들 수준이 결코 한국에 비해서 떨어지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상당히 괜찮아요. 장이모나 천카이거가 세계적인 감독인 것은 분명합니다. 제작 편수도 적지 않습니다. 저희들이 조사한 것을 보면 1979년에 극영화를 63편 찍었는데, 2002년에는 100편 정도 찍었어요. 2003년에는 제작 승인을 받은 영화가 197편으로 늘었습니다. 이중 해외자금이 투자된 경우가 40편을 넘었습니다. 중국영화가 나름대로 꽤 활발히 제작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수요, 즉 시장이 매우 열악하다는 겁니다. 개혁개방 초기인 1979년만 해도 영화 관람객이 연인원 293억명에 달했는데 1990년에 161억명, 1999년에 4억6000만명으로 격감했고 2001년에는 2억2000만명으로 줄어들었습니다. 불법복제가 주원인이겠지만 영화상영관 문제도 있을 것입니다.”

    소득에 비해 비싼 영화관람료

    -중국의 영화산업이 개혁개방 이후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요. 그 원인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먼저 외국영화에 대한 수입규제에서 원인을 찾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수입요건이 상당히 까다롭습니다. 방송과 마찬가지로 영화 제작에 있어서도 규제가 많습니다. 체제의 경직성이랄까 폐쇄성이 영화산업 발전을 제약하고 있다는 지적은 사실인 것 같아요. 그런데 문제는 이런 요인들이 순환되다 보니까 영화에 대한 투자가 활발하지 않다는 겁니다. 그래서인지 요즘 영화를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대학인 베이징영화학원 학생들의 가장 큰 희망사항이 인디영화 같은 걸 잘 만들어서 어떻게든 국제적인 상을 받는 것이라고 합니다. 상을 받아야만 투자유치가 가능해지고 그래야 상업영화를 찍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영화관 말씀을 하셨는데요. 영화 상영시스템이 낙후돼 있다는 얘기인가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요즘 좋은 시설을 갖춘 멀티플렉스관도 많이 들어서고 있습니다. 한국에 디지털 영화관이 하나인가 둘밖에 없을 겁니다만, 중국에는 꽤 많습니다. 디지털 영화관은 필름없이 송신 받아서 바로 상영이 가능한 데, 그렇게 하기 위한 제반 시스템들을 갖추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처럼 영화 상영시스템은 선진화됐는데, 문제는 영화관람료가 너무 비싸다는 것이에요. 게다가 영화관람료가 고정돼 있지 않아요.

    예컨대 중국 국산영화 관람료는 개봉관에서 25~30위안으로 우리돈 약 4000~5000원 정도입니다. 그런데 1998년 무렵 미국영화 ‘타이타닉’을 수입개봉하면서 관람료를 80위안이나 받았어요. ‘진주만’ ‘매트릭스’ ‘반지의 제왕’도 80위안 안팎으로 관람료를 책정했지요. 이는 중국의 소득이나 물가수준을 감안하면 상당히 부담스런 금액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청소년보다는 30대 직장인들이 영화관을 더 찾아요. 우리처럼 젊은층이 영화를 많이 보고 또 그들을 타깃으로 한 영화를 제작할만한 환경이 갖춰지지 않은 것입니다.”

    문화산업에 눈뜬 문화대국, 콘텐츠는 ‘빈약’ 잠재력은 ‘막강’

    중국은 국산영화의 관람료가 한화 4000~5000원으로 소득수준에 비해 비싼 편이다. 사진은 광저우의 한 영화관 매표구.

    -저도 ‘타이타닉’을 중국에서 봤는데, 그때 상당히 비싼 입장료를 냈다는 기억이 남아 있어요. 한 가지 재미있는 게 영화관에 들어가 보니까 좋은 위치에 좌우 측면과 후면을 칸막이한 2인용 좌석이 마련돼 있고 요금도 아주 비싸더군요. 커플 전용석이라고나 할까요. 그런가 하면 영화관 입구에서는 영화보는 동안 파트너가 돼주겠다는 여성들이 영업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에요. 이런 것을 보며 영화 하나를 놓고도 다양한 상술이 동원되는 나라가 중국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감입니다. 얼마 전에 베이징의 유명한 멀티플렉스관에 가봤는데 그곳도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일반석 뒤쪽으로 딱 두 사람만 앉을 수 있게 양쪽이 막혀 있고 앞만 뚫려 있는 좌석이 있더군요. 그런가 하면 VIP룸이 따로 있어서 그 안에서도 영화를 볼 수 있도록 해놓았어요. 의자가 자동으로 뒤로 젖혀지거나 안마기가 작동하기도 하고 음료수도 마실 수 있도록 돼있는데, 관람료는 150위안 정도를 받고 있었습니다.”

    -영화의 수준을 가늠해볼 수 있는 여러가지 기준이 있겠는데요. 일례로 유명한 감독이나 배우의 배출 또는 국제영화제에서의 수상기록을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면에서 중국영화가 그동안 이룩한 성과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제가 정확한 통계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만, 그 부분에서는 한국영화보다는 중국영화가 훨씬 앞서갔죠. 한국영화가 히트작을 많이 내고 국제무대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 아닙니까. 중국은 이미 1990년대 초반부터 국제영화제에서 상당히 주목을 받았고 걸출한 감독과 배우를 많이 배출했어요. ‘붉은 수수밭’ ‘부용진’ ‘패왕별희’ 등이 모두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한 작품들입니다. 당시 5세대 감독으로 불렸던 장이모, 첸카이거, 장원(姜文)이 대표적인 감독들이죠. 배우는 궁리(鞏麗)라든가 최근에 활발히 활동하는 장쯔이(章子怡) 등이 세계적 스타 대열에 올라 있습니다.”

    -중국인은 어떤 영화를 즐겨 봅니까.

    “어떤 영화를 특별히 선호한다기보다는 비교적 다양한 취향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중국인들이 한국영화 ‘엽기적인 그녀’를 굉장히 좋아했습니다만, 영화관에서 최고의 수익을 낸 작품은 ‘매트릭스’ ‘반지의 제왕’‘해리포터’ 같은 수입 대작영화였거든요. 그런가 하면 장이모 감독의 ‘영웅’이 360억위안의 매표수입으로 중국 영화사상 최고의 수익을 올렸다고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한국영화나 감독 배우에 대한 중국 관객들의 평가는 어떻습니까.

    “한국영화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웬만하면 다들 한국영화를 보는데 문제는 영화관에서 보지 않고 불법 DVD를 통해서 본다는 겁니다. 아직 한국의 특정 감독을 좋아하는 단계에는 이르지 않았습니다만, 배우는 많이 알고 있죠. ‘엽기적인 그녀’를 통해 전지현을 좋아하는 팬이 굉장히 많아졌고, 원빈 장동건도 중국 사람들이 아주 좋아합니다.

    -한국영화 ‘엽기적인 그녀’가 2003년 중국의 10대 인기영화로 선정됐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중국여성들이 애인이나 남편을 폭행하는 행태가 늘어났을 정도로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고도 하더군요. 이 영화의 어떤 측면이 중국인에게 인기를 끌었을까요.

    “글쎄요. 거기에 대해서 이런저런 해석이 있습니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엽기적인 그녀’가 한국인에게는 엽기적이었는지 몰라도 중국인에게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중국인들에게 여주인공의 행동이 엽기적이었냐고 물어 보았더니 어떤 경우는 좀 심하기는 하지만 엽기적이라고는 느끼지 않는다는 게 대체적인 반응이었어요. 그보다는 오히려 영화 속에서 그려진 남녀간의 사랑, 예컨대 약간 멍청한 듯하면서도 순수한 사랑을 간직한 남자주인공, 뻔한 스토리인 데도 눈을 떼지 못하고 웃게 만드는 스토리 구성, 사람들을 웃기는 코믹한 요소 등이 적절하게 가미돼 있기 때문에 중국인들을 사로잡은 것으로 보고 싶습니다.”

    중국의 엄청난 TV드라마 시장

    -문화의 전파와 교류에 방송매체만큼 큰 영향을 미치는 도구도 없을 것 같습니다. 또 TV드라마는 문화산업의 중요한 아이템입니다. 중국은 방송업계의 규모 자체가 엄청날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어느 정도입니까.

    “TV방송국이 368개에 채널만 2124개입니다. TV 보급률 98%에 3억600만 가구가 시청하고, 전체 시청자수는 10억7000만에 달하니까 엄청난 규모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02년의 TV 방송시간이 총 1095만 시간이라고 합니다. 얼른 실감나지 않는 숫자라고나 할까요. TV드라마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2002년 중국에서 촬영하여 심의를 통과한 드라마가 313편 2642회분에 달합니다. 국영 중앙방송인 CCTV의 8개 채널에서 방송하는 드라마만 연간 1000회 정도이고, 각 지방의 방송국에서 방영하는 드라마를 모두 합하면 중국 전역에서 연간 약 8000회 분량에 달한다는 것입니다. 가히 드라마왕국이라 할 수 있습니다.”

    -TV드라마 분야에서도 외국 작품이 수입되고 있을텐데요.

    “수입은 물론이고, 공동제작도 활성화되고 있습니다. 요즘 한국에서 방영중인 ‘북경 내 사랑’도 한국과 중국이 공동제작한 TV드라마입니다. 2002년에 중국에서 방영된 외국 드라마는 모두 327부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역시 홍콩드라마가 133부로 전체의 40.7%를 차지하고 있습니다만, 한국드라마도 67부로 전체의 20.5%를 차지해 대만이나 미국 일본 유럽 등을 제치고 2위에 올라 있습니다. 중화권의 홍콩을 제외한다면 사실상 외국드라마로는 한국 작품이 가장 많이 방영되고 있는 셈입니다.”

    -중국에서 방영된 한국 TV드라마 가운데 가장 인기를 끈 작품은 무엇이었습니까.

    “역시 ‘사랑이 뭐길래’가 최고 인기였죠. 중국에서 외국드라마를 들여와 방영한 이래 사상 두 번째로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으니까요. 이 드라마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입니다. ‘사랑이 뭐길래’가 비교적 나이 드신 분들이 좋아한 드라마였다면 젊은이들에게 크게 다가갔던 게 ‘가을동화’입니다. ‘가을동화’는 주로 대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했는데, 중국은 거의 모든 대학생이 기숙사 생활을 하지 않습니까. 기숙사에 대여섯 명씩 모여 TV나 VCD 등을 통해 ‘가을동화’를 보면서 우느라고 매번 휴지 한 통이 날아갔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최근에는 ‘보고 또 보고’가 인기를 끌고 있고, 막 방영을 시작한 ‘명성황후’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중국사람들이 그렇게 한국 TV드라마를 즐겨보는 배경이나 이유는 뭘까요.

    “기본적으로 재미있다는 겁니다. 구성을 잘해서든 어떻든 재미있다는 반응이 많아요. 사실 ‘가을동화’의 스토리는 기존 멜로물과 별 다를 건 없이 빤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배우들의 연기가 뛰어나고, 또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대사가 인상적이라는 거지요. 한국어 대사를 중국어로 한번 옮겼음에도 중국인들이 흠뻑 감동에 젖는다는 거예요. 거기다가 아름다운 화면과 음악이 결합돼 팬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는 분석입니다.”

    -한국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중국 TV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커지고 드라마 수입가격도 크게 올라 중국정부가 최근 수입 편수를 제한하고 심의도 엄격하게 하고 있다는 말이 있는데요. 실제로 당국의 견제가 심해졌습니까.

    “반드시 그렇게 볼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다른 산업도 마찬가지지만 어떤 국가든 외국의 문화가 급속히 인기를 얻게 되면 긴장하고 나름대로 규제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는 게 당연하다고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방송가에서는 지금 한국드라마가 없어서 문제인 실정입니다.”

    대중음악은 전통가요와 발라드

    영화나 드라마와 함께 중국의 대중문화 소비층에 한국제품이 파고든 분야가 바로 음반 영상분야다. 이른바 한류현상도 90년대 후반 드라마와 음반에서 불붙기 시작했다. 중국인의 음악적 취향과 음반영상산업의 현황을 살펴보면 한국 가수들이 중국에서 인기몰이를 하는 이유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중국의 음반영상분야의 시장규모나 현황은 어떻습니까.

    “중국의 음반영상 시장규모를 TV와 비디오 CD VCD DVD플레이어와 컴퓨터 CD롬의 보유량에 근거해 계산해보면, CD 수요량만 최소한 20억장이라는 수치가 나옵니다. 1인당 연간 2장을 소비한다고 보고 장당 10위안(1500원)으로 치면 260억위안의 시장규모라 하겠습니다. 전문가들의 예측에 의하면 앞으로 3~5년 내에 음반 및 영상시장의 전체 수요는 1000억위안(약 15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하니 관련업계의 상승효과를 불러일으킨다면 그 경제적 효과는 엄청날 것입니다. 워낙 인구가 많아 그 시장규모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지요.

    이처럼 시장규모가 거대함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자본을 가진 대형기업이나 다국적기업이 없고 업계의 전반적인 수준이 낮아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형편입니다. 또 음악산업의 전세계적인 하락추세에도 많은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인들의 노래 부르기 취향은 어떨까요. 거리 곳곳에 가라오케니 KTV니 해서 노래방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노래방문화도 발달해 있는 것 같던데요.

    “음악분야를 놓고 보면 중국인의 취향은 댄스뮤직은 아니에요. 한국인이 여전히 트로트를 좋아하는 것처럼 중국에서도 전통적 대중음악인 민가(民歌)라든가 홍콩 대만풍의 발라드가 주류입니다. 댄스음악이 양념으로 덧붙여지는 형태입니다. 중국사람들도 최근엔 집에서건 집 밖에서건 노래 부르기를 즐기는데 한국이나 일본과는 좀 다릅니다. 노래를 부르는 문화가 따로 있다기보다는 음주 같은 유흥문화에 곁들여지는 하나의 부가적인 취향일 뿐이지요. 가라오케가 그 대표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처럼 따로 노래방이 있어서 신나게 한두 시간씩 즐기는 그런 문화는 아닌 것 같습니다.”

    불법복제 음반 단속실적

    -댄스뮤직은 그리 발달한 것 같지 않다고 하셨는데, 중국사람들이 춤을 즐겨 추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고 학교에서도 춤을 가르치지 않습니까. 오히려 한국사람보다 춤에 일가견이 있을 것 같은데요.

    “집단무용은 모르겠습니다만, 춤은 한국사람이 더 즐기는 것 같습니다. 한류의 영향으로 인해 중국에서도 젊은이들 사이에 힙합 혹은 댄스그룹이 많이 생겨났어요. 심지어 현대무용학원 같은 전문대학에 한국무용과가 생겼는데 한국 전통 부채춤 등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힙합을 가르치고 있거든요. 그런데 가르치는 분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중국 학생들이 정해진 동작을 그대로 따라하라면 잘하는데, 흥이랄까 신명 같은 감각적인 부분에서는 다소 떨어진다는 것이에요. 아무튼 제가 보기에 춤은 한국 쪽이 더 나은 것 같습니다.”

    -2001년 불법복제품으로 적발돼 소각된 음반영상제품이 1억장에 달하고 2002년에도 상당량이 소각됐다고 하는데요. 현재 불법복제 문제는 좀 개선이 되고 있습니까.

    “이게 참 골칫거리인데요, 외국인 눈에는 개선 속도가 더뎌서 불만족스럽겠지만 점차 나아지고 있습니다. 불법복제는 음반이나 DVD 위주로 성행하고 있지만 이외에도 저작권 침해라든가 인터넷상에서의 연예인 초상권 침해 등의 사례가 비일비재합니다.

    2002년도 단속실적을 보면 1월6일 전국에서 약 20만명의 조사요원이 출동해서 음반영상 경영단위 17만여개를 조사했어요. 이때 몰수한 불법 음반영상제품이 4344만장에 달하고 폐업시킨 영업단위가 1만개가 넘었습니다. 이 해에 미국영화협회가 중국정부의 해적판 소탕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중국 문화부에 간판을 선물했습니다. 제가 보기에 앞으로 3년 정도 지속적으로 단속을 펴면 베이징올림픽 전해인 2007년경에는 어느 정도 정상화되지 않을까 전망됩니다.”

    -WTO 가입으로 외국업체의 중국내 음반발행이 가능해졌다고 하는데요. 외국음악에 대한 중국인의 수용태도는 어떻습니까.

    “중국인의 사고는 굉장히 개방적입니다. 외국 것에 대한 수용태도가 한국인이나 일본인보다도 훨씬 더 너그럽습니다. 중국은 내부에 55개 소수민족이 있어서인지 굉장히 개방적이에요. 음악 자체가 좋으냐 나쁘냐가 문제이지, 어느 나라 것이냐는 상대적으로 크게 문제삼지 않는 것 같아요.”

    -한국의 음반이 중국시장에서 대박을 터뜨린 사례가 있습니까.

    “음반영상 분야에서 성공의 기준을 이른바 대박을 터뜨렸느냐 여부로 본다면 아직 한국 음반이 성공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다만 HOT나 NRG 베이비복스의 음반이 아주 빠른 시간에 광범위하게 팔렸던 점을 들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프로모션을 예컨대 ‘서울음악실’ 같은 고정 방송프로그램을 통해서 성공시켰고 또 대규모 공연도 성립시켰다는 점을 성과로 꼽을 수 있습니다만, 아직은 음반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었다고 보기 힘듭니다. 한 가지 염두에 둬야 할 것은 지금 중국의 A급 가수들의 소속사가 중국 기획사에 소속돼 있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모두가 소니뮤직 같은 메이저급 글로벌 회사에 소속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중국의 스타급 가수들의 활동으로 얻어지는 수입은 그 기획사들이 가져가는 거죠.”

    해외가수 톱10 중 한국인 8명

    -요즘 중국 최고의 인기가수로는 누구를 꼽습니까.

    “중국 최고 인기가수라면 대륙에서는 나잉(那英)을 꼽습니다. 나잉도 중국기획사가 아닌 미국의 타임워너 음반사 소속입니다.”

    -한국의 기획사가 중국 가수를 거느리고 있는 경우는 없습니까.

    “아직은 없습니다. 다만 한국의 기획사나 음악관련 기업이 중국 청소년 가운데 노래 잘하는 친구들을 뽑아 한국에서 춤도 가르쳐주고 곡도 주어 중국으로 내보내는 방식이 시도되고 있습니다. 금년 초에 선보인 남성 4인조 그룹 신무기(新舞器)도 그런 경우인데요, 중국 방송계에서도 그들을 주목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중국의 음악잡지에서 독자투표로 선정하는 ‘해외가수 톱10’에 한국가수가 여러 명 들어 있다고 하는데요. 한때는 한국가수들이 마이클 잭슨이니 머라이어 캐리 같은 세계적 톱스타들을 제치고 상위권을 독차지하지 않았습니까.

    “중국의 대표적 음악잡지인 ‘당대가단’이 지난 5월호에 발표한 외국연예인 인기순위를 보면 톱10에 한국 연예인이 8명 들어가 있어요. 1위가 강타고 다음으로 보아 장나라 원빈 JTL 배용준 순으로 한국인이 상위권을 휩쓸었습니다. 7위가 미국의 백스트리트 보이이고 뒤이어 한국의 세븐 안재욱이 8,9위에 올라 있고, 10위가 캐나다 사람입니다. 다만 이 순위에는 홍콩과 대만 연예인은 제외돼 있습니다.”

    -이제 화제를 공연 쪽으로 돌려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중국 공연시장의 추세를 구풍미우한류(歐風美雨韓流)로 표현하더군요. 그만큼 다양한 외국공연단이 오고 있다는 거겠지요. 중국 공연예술의 현황과 외국공연팀의 활동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대충 통계만 훑어보아도 각 지역의 공연시장이 활기에 넘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002년 한해 동안 베이징의 공연 횟수가 1만7000여회에 관중은 1300만명에 달하고 있어요. 같은 기간 상하이에서는 1만4000여회의 공연에 893만명의 관중을 기록했습니다. 성단위로 치면 더욱 많아져 장쑤(江蘇)성은 3만여회의 공연에 1401만명의 관중을 동원했고 광둥(廣東)성도 연간 공연횟수가 5만회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연간 중국에서 벌어지는 공연횟수는 셀 수가 없을 정도로 많다고 할 수 있겠지요. 베이징의 연간 공연횟수를 365일로 나누면 하루에 47회라는 계산이 나옵니다. 이처럼 공연이 엄청나게 많고 공연시장도 무척 큰 편인데, 문제는 제대로 수익을 올리는 공연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는 겁니다. 중국 문화부의 승인을 거친 외국공연팀의 방중(訪中)공연 실적을 보면 1998년 162회, 2002년 428회에 달합니다. 그리고 2002년에 내국업체의 중국내 공연이 359회입니다. 상당히 많은 것이죠.”

    -베이징이 어떤 면에서는 서울보다 더 국제화돼 있다는 느낌을 받는데요. 공연분야만 보더라도 이미 90년대 말에 오페라 ‘투란도트’가 베이징의 자금성에서 성황리에 공연됐습니다. 그때 공연장 입장료가 엄청나게 비싸서 한국언론에도 소개된 적이 있을 정도였어요. 이밖에도 러시아 발레단 공연이나 북한의 ‘꽃파는 처녀’ 같은 작품 공연도 열려 세계 각국의 다양한 공연팀들이 베이징으로 모여든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베이징은 물론이고 상하이도 그렇습니다. 베이징국제음악제, 상하이국제예술제 등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공연행사들이 열리고 있고, 장르별로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공연단이 수시로 중국을 찾고 있습니다. 이들 세계 일류의 공연단은 중국 공연을 단순히 한번 왔다 간다는 정도가 아니라 아시아 진출의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이런 상징성 못지않게 중국 공연은 비즈니스 측면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예로 호세 카레라스,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 등 세계 3대 테너가수의 자금성 공연은 VIP석 티켓이 1장에 2000달러였어요. 엄청나게 비싼 가격이었지만 가장 먼저 팔렸다는 겁니다. 이런 경우가 아니더라도 중국에서 웬만한 공연일 경우 티켓값이 1500위안, 우리 돈으로 20만원 이상은 기본입니다.”

    -말씀을 듣고 보니 중국에는 그렇게 비싼 문화상품을 소비할 수 있는 재력가들이 존재한다는 말이 실감납니다. 자금성뿐 아니라 우리의 국회의사당 격인 인민대회당에서도 가끔 공연이 열리더군요. 인민대회당은 공산당 전국대표대회 같은 대규모 정치행사를 하는, 권위의 상징과도 같은 건물인데 그런 데서도 공연을 하는 걸 보면 문화예술에 대해 굉장히 관대하고 유연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런 점은 어떻게 보십니까.

    “국제적으로 공인된 예술작품이나 전통적인 클래식을 존중해주는 풍토는 중국이 우리보다 훨씬 더 강합니다. 자금성이나 인민대회당이라면 우리로 치면 경복궁이나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관에 해당하는 데도 예술공연을 허용할 정도로 개방적이에요. 이렇게 자금성이나 인민대회당 혹은 만리장성에서 공연하는 배경에는 일종의 이벤트적인 상징성이 자리잡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런 명소가 아니더라도 중국에는 훌륭한 공연시설이 많은 편이에요. 작년에 저희들이 상하이 대극장을 방문해서 내부시설을 돌아봤는데요, 아직 한국에는 그 정도 시설을 갖춘 공연장이 없습니다. 베이징에도 내년에 돔형의 중국대극장이 인민대회당 바로 옆에 들어설 예정입니다.”

    -최근에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한국의 정상급 클래식 음악가들이 공연을 했는데요. 한국 예술가가 인민대회당에서한 최초의 공연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 중국에 소개된 한국문화가 대중문화 위주로 치우친 것엔 어떤 사정이 있는 것입니까.

    “고급문화 쪽의 중국진출이 상대적으로 저조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공연은 기본적으로 비즈니스이기 때문에 기획사들이 선뜻 나서지 않은 것 같아요. 중국측 기획사가 개런티를 주고 한국 공연단을 초청하는 방법이 좋을 것 같은데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이지요. 한국의 고급문화 공연수준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유명한 대중가수들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전통문화나 고급문화 공연을 기획할 경우 리스크가 크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명성황후’라든가 ‘지하철 1호선’ ‘난타’ 같은 공연은 중국에서 굉장히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한국이 대중문화만 뛰어난 줄 알았더니 순수예술에서도 상당한 수준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는 거예요. ‘지하철 1호선’에 대해서는 작품의 형식과 내용, 무대장치 조명 등에서 모두 호평을 받았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암울한 뒷면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그것들이 인간적인 면과 맞부딪치는 모습을 중국 작가들은 감히 표현해내지 못한다며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문화산업이 엄청난 잠재력을 갖는 것은 일단 거대한 인구에서 비롯된다. 워낙 인구가 많다 보니 문화상품의 소비자층이 두터운 것은 당연하다. 거기다 중국정부가 문화산업 육성에 발벗고 나선 것도 중요한 요인이다. 이 두 가지 요소가 딱 맞아떨어지는 분야가 애니메이션이다. 엄청난 아동인구와 정부의 강력한 육성책으로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애니메이션 산업의 잠재력

    -중국의 아동인구만 3억이라고 하니까, 애니메이션 산업의 규모나 향후 발전전망도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요. 어떻게 보십니까.

    “중국의 애니메이션 산업은 일단 규모만 놓고 보면 그것만큼 큰 시장이 없을 정도로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애니메이션 그 자체뿐만 아니라 애니메이션이 때로는 출판물이 되고, 온라인에서도 활용되고, 캐릭터상품 개발로 연결되는 등 연관분야가 망라해서 보는 겁니다. 2003년 중국산 애니메이션 생산량이 2만9000분에 달했고, 2년 후에는 4만8000분 분량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그런 막대한 물량의 내용을 채워갈 작가들의 창작관념이나 표현기법의 수준은 어떻습니까.

    “1960~70년대만 해도 애니메이션 분야에 중국학파라는 게 있었습니다. 수묵으로 표현하는 애니메이션 기법이었는데, 개혁개방 이후 점차 명성이 사라져 오늘날 중국 애니메이션은 세계수준에 크게 뒤처졌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소재와 시나리오 창작, 캐릭터 창조, 스토리, 특정부분에 대한 묘사, 상상력, 생산공정, PC기술 운용 등 전반적으로 떨어지고 시장경쟁력도 약한 실정입니다.”

    -중국 애니메이션의 문제점으로 특히 주제가 단조롭고 교과서적이라는 평이 있던데요. 대개 어떤 주제와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나요.

    “전통적인 것들에서 아이디어를 따오는 경우가 많은 것이 문제인 것 같아요. 서유기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전통적인 것에 집착하다 보면 창의성이 발휘되기 힘들거든요. 중국도 이런 문제점을 깨닫고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 CCTV에서 만든 ‘나타전기(헳咤傳奇)’나 상하이미술영화제작소에서 만든 ‘수당영웅전(隋唐英雄傳)’이 환영을 받은 대표적 작품인데요. 제목에서 보다시피 전통적인 소재를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중국 최대의 애니메이션 제작기지로 알려진 상하이미술영화제작소의 시설이나 수준은 어떻든가요.

    “중국의 애니메이션 제작기지는 북쪽의 베이징 중앙텔레비전방송국(CCTV)과 남쪽의 상하이미술영화제작소로 크게 구분됩니다. 상하이미술영화제작소가 2D기법의 선두주자라고 한다면 CCTV는 점차 3D기법으로 넘어가는 단계에 있습니다. 상하이미술영화제작소는 몇 번 가본 적 있습니다만, 시설이나 설비가 아주 선진적이라고 평가하기는 힘듭니다. 국가의 지원을 받아서 특히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현재까지 굉장히 많은 애니메이션 작품을 제작했습니다만, 실제로 흥행되는 것은 그렇게 많지 않았어요. 오히려 CCTV 쪽을 눈여겨봐야 합니다. CCTV 애니메이션 기술부가 편집 제작한 방송프로그램 애니메이션성(動畵城)은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만화영화 방송프로그램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전문인력이 210명이나 되고 제작능력이나 중국내 위상이 첫손꼽힐 만합니다.”

    일본만화가 점령한 중국만화계

    -중국정부가 해외업체와의 공동제작을 적극 장려한다는데, 한국 애니메이션의 진출 전망은 밝은 편입니까.

    “일단 중국의 애니메이션 관련 방송사나 제작업체들이 한국 애니메이션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한국 애니메이션도 노하우가 풍부한 것이 아니어서 실제 팔려고 해도 팔 만한 것이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중국과 공동제작을 추진하려고 합니다. 그럴 경우에는 중국 국내용으로 간주되므로 황금시간대에 방영할 수도 있고 이는 곧바로 수익으로 연결되거든요.”

    -중국의 애니메이션산업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만, 그 바탕에는 만화가 자리잡고 있지 않습니까. 중국의 만화 역사는 우리보다 오래됐다고 합니다만, 오늘날 중국만화계는 일본만화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다고 하더군요. 실상이 궁금합니다.

    “중국에서는 원래 시사만화류, 즉 카툰(Cartoon) 일색이었는데, 1990년 일본의 애니메이션 작품 ‘성투사성시’가 전국의 대도시에서 방송돼 인기를 끌자, 중국의 해적판 복제업자들이 바로 같은 제목의 만화책을 출판하면서 일본만화 붐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이어서 중국 최초의 만화연재 잡지인 ‘화서대왕’(畵書大王)이 1993년에 창간됐는데, 각양각색의 일본만화를 수집하여 연재한 것이었습니다. 일본에서 나온 만화를 거의 시차없이 중국으로 가져왔기 때문에 중국의 만화 마니아들에게 높은 인기를 끌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일본만화의 불법유통이 계속 늘어나자 중국 관련당국이 전면적인 단속에 나섰는데 그 첫 번째 타깃이 ‘화서대왕’이었습니다. 현재 만화를 자주 보는 청소년이 8000만명이나 된다고 하지만 95%는 일본만화와 미국만화에 점령당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중국의 만화산업이 그처럼 외국만화 세력에 억눌리게 된 까닭은 무엇인가요.

    “중국만화를 보면 만화 특유의 오락성이 배제되고 대신 예술성이 강조돼 신문의 부속물 역할에 머무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동안 만화가 출판사나 신문사의 미술편집의 한 방면으로 진행돼왔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프로만화가라고 할 만한 사람이 많지 않아요. 그러니 소재나 창작면에서 외국만화를 따라잡을 수 없는 거죠. 게다가 중국시장에서 유통되는 만화의 60% 이상이 불법복제물이다 보니까 출판사들이 만화 단행본 출판을 꺼립니다. 결국 만화시장은 있으나 자신들의 만화는 없는 상황에서 외국만화의 진출이 가속화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중국은 오래 전부터 출판대국으로 불려왔다. 종이를 발명하고 한때 세계적 수준의 인쇄술을 보유한 적도 있다. 그러나 중국이 WTO에 가입한 이후 외국자본의 상륙에 대비해 출판계를 재편하는 등 지각변동을 겪고 있다는 소식이다. 요즘 중국의 출판계 안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출판계 지각변동 내막

    -그동안 중국의 출판산업은 나름대로는 잘 나가지 않았나 싶습니다. 역사적인 문화유산이 풍부한 데다가 특히 인구대국이어서 책의 절대 판매량도 많았을 것 아닙니까. 책을 한 권 내더라도 상당한 양이 팔려나갔을 것 같은데요.

    “개혁개방 이후 출판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개혁개방 원년인 1978년 105개에 불과했던 출판사가 2001년에는 565개로 늘어나는 등 양적인 성장세가 두드러집니다. 책을 세상에 내놓았을 때 기본적으로 팔려나가는 부수가 많은 것은 확실합니다. 신간서적의 판매량에 대한 정확한 자료는 없지만 기본적으로 5000~1만부는 나갑니다. 일반도서든 전문도서든 그 정도는 팔려나간다는 얘깁니다. 전국의 도서관에서만 구입해도 꽤 되니까요.”

    -한국은 외국어나 처세술 건강 경영 재테크 등 실용적인 책이 잘 팔리는 반면 순수문예물은 퇴조하는 분위기인데, 최근 중국에서는 어떤 유형의 책이 잘 팔리고 있습니까.

    “한국과 유사한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빌 게이츠 같은 세계적 거부(巨富)의 성공스토리, IT 관련서적과 컴퓨터 관련서적이 상당히 많이 나가고 있죠. 그러나 역시 가장 활발한 출판분야는 아동서적입니다. 최인호의 소설 ‘상도’도 중국에서 인기를 끌었습니다. 반면에 시나 소설 등 순수문학작품은 상대적으로 판매부수가 떨어집니다.”

    -WTO 가입후 출판계도 크게 변하고 있다는 말이 들리는데요.

    “WTO 가입이 중국 출판업계에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외국자본의 유입이 자유로워졌다는 점입니다. 아직 외국자본의 최대 지분율이 49%를 초과하지는 못하지만 그동안 정부의 관리하에 놓여 있던 중국 출판업계가 부분적으로는 외국자본의 관리를 받게 된 셈입니다. 특히 외국의 대형서점이 선진적인 판매방식과 막대한 광고량을 앞세워 진출하면 신화서점 위주의 판매방식인 중국의 도서유통업계에 엄청난 타격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주목됩니다.

    또한 가입을 전후해 출판관련 합작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외국업체와 합작으로 중국에서 백과사전을 출판하는가 하면, 아동관련 전문출판사도 생겨나서 외국의 베스트셀러와 관련상품들을 직수입하기도 합니다.

    이런 외국자본의 진출에 맞서 중국 출판업계가 그룹화 현상을 보이고 있는 점도 커다란 변화입니다. 과거 출판사란 게 국가에서 출판사업을 하도록 허락해준 국유기업이었거든요. 이들이 뭉쳐서 출판그룹을 만든 것입니다. 대형화로 WTO체제에 대비한다는 것이죠. 그 대표적인 사례가 2002년 3월 인민출판사를 비롯한 13개의 대형 출판업체가 그룹화를 선언한 것입니다.

    이때 생겨난 중국출판집단은 총인원 5000명에 자산이 50억위안(한화 약 7500억원)으로 매출액이 중국 전체 도서시장의 17%를 치지했을 정도입니다. 여기에는 상무인서관 중화서국 삼련서점 인민문학출판사 등 전통있는 유명출판사들이 포함돼 있습니다. 이렇게 대형화된 출판그룹이 얼마나 시장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지는 좀더 두고봐야겠습니다만, 정부 입장에서는 관리하기가 좋겠지요. 아무튼 WTO 가입이 중국의 출판업계 전반에 혁명적 변화를 몰고 오는 것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한국책의 중국수출 전략

    -최근 한국의 도서를 중국에서 판권수입해 번역, 출판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도서의 중국 수출 전망은 어떤가요.

    “최근 한국책의 판권이 중국으로 수출되는 사례가 늘고 있긴 합니다만, 제가 보기에 책 자체만 가지고는 일정 수준 이상의 매출을 올리기가 힘들 겁니다. 요즘의 분위기를 감안하면, 예를 들어 드라마 등 대중의 흥미를 끌만한 부분과 함께 엮어서 들여오는 형식이 필요할 것 같아요. 소설 ‘상도’가 중국에서 꽤 오랜 기간 베스트셀러가 됐는데, 홍콩에서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상도’가 방송이 되면서 판매에 상승세를 탔거든요.

    애니메이션 방영과 연계해 만화책의 판매를 늘린 것도 마찬가지 경우입니다. ‘국화꽃 향기’ 같은 순수문예물도 중국에서 많이 팔렸습니다만, 아직은 번역의 문제 등 한국의 출판물을 적극적으로 중국시장에 내놓기에는 여건이 미숙한 상태입니다. 최근 ‘옥탑방 고양이’를 중국 인터넷에 연재하겠다는 계약이 진행되고 있는데, 이런 유형도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중국의 출판물 유통시장에서 재미있는 현상 중의 하나로 이른바 서시(書市)가 매년 열리고 있지 않습니까. 말하자면 거대한 책시장이 고궁 같은 데서 열리는 건데,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풍경입니다. 이것도 하나의 유통형태가 되겠죠?

    “그렇습니다. 서시는 중국의 웬만한 출판사들이 모두 참가해서 독자들과 직접 대면해 새로 나온 책들을 선보이고 재고서적도 싸게 파는 연례행사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서시가 열리기를 기다렸다가 사고 싶은 책을 한꺼번에 싸게 구입하기도 합니다. 국가신문출판총서 주관으로 열리는 전국서시(全國書市)는 전국을 돌면서 해마다 개최되는 최대규모의 서시인데요. 전시부스 1000여개에 15만여종의 책이 시장에 나올 정도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른바 한류(韓流) 현상에 대해 살펴볼 차례인 것 같다.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열풍이라고 할 한류는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안겨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한류를 통해 한국의 이미지가 상승하고 있는 것은 물론, 경제적 효과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2007년 한국의 문화상품 수출목표가 100억달러인데 이중 상당부분이 중국시장에서 달성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 현지에서 파악하는 한류의 실체와 현주소가 궁금하다.

    -일본에서는 드라마 ‘겨울연가’가 NHK 프로그램중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고 하고, DVD OST 소설 등으로도 나와 직접적인 수익만 1000억원이 넘는다고 합니다. 또 ‘겨울연가’ 촬영지를 찾는 일본 관광객이 끊이지 않고 있고 한국어교재 판매도 2배 이상 늘어났다고 합니다. 일부에서는 공동개최한 한일월드컵보다도 더 한국에 대한 이해와 친밀도를 높였다고 평가하더군요. 이 같은 한류현상이 원래 중국에서부터 일어난 것 아닙니까. 중국내 한류현상의 진행과정과 현황은 어떻습니까.

    문화산업에 눈뜬 문화대국, 콘텐츠는 ‘빈약’ 잠재력은 ‘막강’

    중국의 공연시장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공연팀이 몰려들어 항상 활기에 넘쳐 있다. 사진은 상하이에서 공연된 오페라 ‘아이다’의 한 장면.

    “그렇습니다. 한류라는 것이 중국에서 먼저 시작돼 동남아 일본 등으로 확산됐고 지금도 진행형입니다. 1997년 6월 CCTV에서 방영한 ‘사랑이 뭐길래’가 외국드라마 중 시청률 2위라는 인기몰이를 하면서 촉발된 한국 대중문화 열풍이 그뒤 H.O.T. 등의 대중음악이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면서 완전히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정착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2000년대 이후에는 영화와 온라인게임, 애니메이션, 캐릭터, 모바일콘텐츠 등 문화산업의 전체 영역으로 확산되고 있는 중입니다. 지금 한국에서 상영중인 영화들은 대개 일주일 후면 중국에서도 볼 수 있을 정도가 됐습니다. 한국에 직접 가서 캠코더로 찍어오는지는 모르겠지만, DVD의 경우는 화질도 굉장히 좋습니다. 다만 더빙이라든지 번역이 엉터리더군요. 아무튼 이런 과정을 통해 한국에 대한 호감도나 이해도가 더 깊어지고 넓어진 것은 사실입니다.

    한류현상을 놓고 여러 측면에서 평가가 가능하겠지만, 그로 인해 일단 한국에 대해서 좋은 이미지를 갖게 된 것 같고 다행스럽게도 이것이 오래 지속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국 대중가수를 좋아하거나 드라마나 영화가 좋아서 한국을 좋아하게 됐다는 중국 청소년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어요. 얼마전 베이징제2외국어대학에서 한국문화축제를 연다고 해서 가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 그 학교 학생들이 펴낸 학회지를 보니까 ‘왜 나는 한국어과를 선택했나’라는 질문에 ‘좋아하는 한국 연예인에게 한글로 편지를 써보고 싶어서’ ‘좋아하는 한국노래를 한국어로 부르고 싶어서’라고 답한 학생이 굉장히 많았어요. 제가 볼 때 한류현상은 앞으로도 한동안은 수그러들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한류현상의 숨은 배경

    -중국에서 한류현상이 나타난 배경과 이유를 어떻게 분석하십니까.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 소득이 늘어나면서 문화소비 욕구가 높아졌습니다만, 국내에서 그것을 채워줄 콘텐츠가 없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개혁개방 초기에는 홍콩과 대만문화가 물밀 듯이 몰려왔고, 이후 80년대 중후반에는 잠시 미국문화가 휩쓸었다가 이어서 일본문화가 들어왔고, 다시 일본문화가 식상할 때쯤 한국문화가 유행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죠. 미국문화나 일본문화가 한번씩 휩쓸고 간 기간이 5년 정도니까 한류현상도 한 5년 지나면 자연스럽게 다른 걸로 대체되거나 사라져야 할텐데 꼭 그렇지는 않은 듯합니다.

    구체적으로 한국 대중문화의 어떤 점이 중국인에게 호감을 샀느냐가 중요한데요. 드라마의 경우를 예로 들면 우선 배경설정이 진솔하고, 스토리 구성이 탄탄하다는 것입니다. 특히 전통적 가치관과 현대적 가치관의 충돌, 세대간의 충돌 그리고 그 사이에서의 애정관계 같은 것이 복합적으로 전개돼 굉장히 재미있다는 것이 중국인들의 대체적인 평입니다. 또 중국인들이 모두 동의할 정도로 배우의 연기가 뛰어나다는 것과 함께 화면처리, 배경음악 등에도 높은 점수를 주고 있습니다.

    온라인게임은 말할 것도 없고 애니메이션 경우에도 기술력으로는 한국이 훨씬 앞서 있으니까 중국 청소년들에게 일단은 먹히는 거죠. 청소년들이 무언가 대리만족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내 갈증을 풀어야 하는데, 그런 공간이 중국내에서는 제공이 안된다는 겁니다. 그런가 하면 한국문화가 동양문화와 유럽문화의 융합체라서 흡인력이 크다는 얘기도 합니다. 일본문화가 바로 중국으로 들어오는 경우에는 잘 안 먹힌다는 거예요. 거부감이 많다는 얘깁니다. 그런데 한국이나 대만을 한번 거쳐서 오면 중국에서 잘 먹힌다는 거죠. 미국문화나 유럽문화도 마찬가집니다.

    그러니까 외래문화를 동양감각에 맞도록 융합시켜 한 단계 끌어올려주는 맛이 한국문화에는 있다는 얘기죠. 사실 이런 평가에는 일면 서양문화나 일본문화에 대해선 두려움이 있는 반면 한국문화에 대해서는 크게 경계하지 않아도 된다는 일종의 만만하게 보는 시각도 저변에 깔려 있다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엽기적인 그녀’ 벨소리 1위

    -한국 대중문화에 열광하는 이른바 합한족(哈韓族)은 어떤 사람들인가요. 이들이 요즘 가장 좋아하는 한국 연예인은 누구입니까.

    “합한족은 일종의 한국마니아, 한국팬을 일컫는 말인데요. 10대 초중고생이 대부분입니다. 이들은 개혁개방 이후 태어난 세대로 자기 표현이 강하고 우리로 치면 X세대에 해당하는 부류입니다. 장르마다 차이는 있습니다만, 이들에게 가장 자극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분야가 음악입니다. 대중음악 쪽에서는 지금은 해체됐지만 H.O.T.가 여전히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강타, 보아, 장나라, 이정현, NRG 등 가수들이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연기자 가운데서는 배용준, 안재욱, 김희선, 전지현, 차태현 등이 합한족의 우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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