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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을 위한 리뷰

영화 ‘택시운전사’ 안에 ‘춘향전’ 있다

‘택시운전사’와 ‘화려한 휴가’ 그리고 춘향전과 레비나스

  • 권재현 기자|confetti@donga.com

영화 ‘택시운전사’ 안에 ‘춘향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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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차로 회차 장면의 미학

그렇게 만섭은 간다. 서울로 간다. 외동딸이 기다리는 서울로 간다. 선물로 줄 꽃신도 사들고 서울로 간다. 울적하고 찜찜한 기분을 씻어내려는 듯 ‘강물은 흘러갑니다, 제3한강교 밑을’로 시작하는 혜은이의 ‘제3한강교’를 목 터져라 부르며. 그런데 이어지는 노랫말에 갑자기 목이 멘다. ‘어제 다시 만나서 다짐을 하고/우리들은 맹세를 하였습니다/이 밤이 새면은 첫차를 타고/행복이란 거리로 떠날 거에요.’

전날의 기억을 주마등처럼 흐르게 하는 가사여서다. 피터를 광주에 내려준 만섭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바로 차를 돌려 도망가려다 피터를 다시 만나게 되고 결국 서울까지 다시 데려가겠다고 다짐했다. 그리하여 온갖 위험을 넘기며 취재에 동행하고 밤까지 함께 보냈지만 결국 새벽에 빠져나와 홀로 서울로 가고 있지 않은가.

교차로에서 신호가 바뀐 것도 모르고 멍한 눈빛으로 입술까지 떨던 만섭은 결국 차를 돌리고 만다. 춘향이 모든 희망의 등불이 꺼진 상황에서 자신을 짓밟으려는 정치권력에 홀로 맞서 싸우기를 결심했듯이 만섭 또한 어떤 위험을 감수하는 한이 있더라도 야만적 쿠데타 세력의 먹잇감이 되어버린 광주시민들의 애끓는 진실을 알리기로 결심한 것이다.

기자가 사실을 보도해야 하듯 택시기사는 손님을 원하는 곳까지 태워 줘야 한다. 돈 때문에 광주에 왔던 만섭이 ‘차마 어쩔 수 없는 마음(측은지심)’으로 인해 고귀한 사명감의 화신이 되는 윤리적 전회를 보여준다. 그걸 카메라 앞에서 표정연기 하나로 응축해낸 송강호의 연기 또한 일품이었다. 춘향전에서 옥중 재회 장면이 그러하듯 ‘택시운전사’에서 교차로 회차 장면이 최고의 명장면인 이유다.

차이도 존재한다. 춘향은 그 순간 자신과 변학도 간 싸움에 끼어들었다가 괜한 피해를 보지 않도록 몽룡을 놓아준다. 그가 자신을 구해줄 동아줄임을 까맣게 몰랐기 때문이다. 반면 만섭은 피터와 그를 쫓는 군인들 사이에 끼어들어 피터의 탈출을 돕는다. 그가 광주시민을 도와줄 동아줄임을 너무도 잘 알았기 때문이다.

타자의 시선으로 포착된 광주

영화 ‘택시운전사’ 안에 ‘춘향전’ 있다

실존 인물인 위르겐 힌츠페터 역을 연기한 독일배우 토마스 크레취만.[쇼박스 제공]

80년 광주를 다룬 영화 중에서 대중적 흥행에 성공한 영화로는 김지훈 감독의 ‘화려한 휴가’(2007)가 있다. 광주에 투입된 공수부대의 작전명을 제목으로 삼은 이 영화는 사건의 주체였던 광주시민군을 전면에 내세웠다. 순박한 택시운전사 강민우(김상경)와 고교생인 동생 진우(이준기), 예비역 대령 출신의 택시회사 사장인 박흥수(안성기)와 딸인 간호사 신애(이요원) 같은 소시민들이 왜 죽음을 각오하고 국가 공권력에 맞서 싸우게 됐는지를 최루성 짙은 화면에 담아냈다.

당시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100억 원이 넘는 제작비가 투입된 이 영화는 여름 블록버스터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신파로 중무장했고 당당히 살아남았다. 80년 광주의 진실에 대해 ‘몰랐던 게 아니고 알려고 하지 않았던’ 대중적 죄의식에 대한 일종의 ‘씻김굿’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택시운전사’는 이와 달리 타자의 시선으로 80년 광주를 포착한다. 그것도 이중적 타자의 시선으로. 첫 번째는 한국말도 못하는 외국 기자의 눈에 포착된 광주다. 이는 힌츠페터가 남긴 뉴스 영상과 다큐멘터리 영상을 토대로 재현됐다. 더 끔찍한 장면도 있었지만 장훈 감독은 반박하기 어려운 최소한의 장면만으로 진실의 일말을 전한다. 대신 그 과정을 지켜본 또 다른 타자로서 만섭의 심리를 섬세하게 포착한다.

영화 초반부 만섭은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데모만 하는 녀석들”이라며 학생시위대를 냉소적으로 바라본다. 중동 건설 현장에서 일한 경험을 앞세우며 “사우디 사막 땡볕 아래 일해봐야지 정신을 차린다”고 말하는 그는 요즘 젊은이들이 ‘꼰대’라 부르는 소시민적 정치관을 지닌 인물이다. 그에겐 일상이 진짜고 정치는 거품일 뿐이다.

그런 만섭이 일상을 열심히 좇다 도달한 곳이 하필이면 광주다. 거기서 그는 자신이 그렇게 신봉하던 일상이 정치권력에 의해 철저히 짓밟히는 것을 목도한다. 첫 반응은 외면이다. 못 본 척 그냥 지나가버리면 그만이다. 그래서 내빼려 했다. 그러다 측은지심에 주저앉은 할머니를 태워줬는데 그게 하필 병원이다. 공수부대원들의 폭압적 진압에 다친 부상자로 아수라장이 된 거기서 피터를 다시 만나고 만다.

새침하고 말이 없어 왠지 재수 없어 보이던 저 이방인은 도대체 왜 이 아수라장을 떠나지 않는 걸까. 그제야 만섭은 발견한다. 자신조차 외면하고 부인하려 했던 진실을 그 이방인은 열심히 카메라에 담고 있음을. 그리고 그런 그를 환대하는 대학생 구재식(유준열)과 황태술로 대표되는 광주시민의 순박하고 슬픈 얼굴을. 그 얼굴은 곧 프랑스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가 말한 ‘절박하게 도움을 갈구하는 타자의 얼굴’이다.

제1철학은 형이상학이 아니라 윤리학이 되어야 한다고 설파한 레비나스는 그 윤리학의 핵심을 ‘타자에 대한 환대’로 풀어냈다. 여기서 타자는 누구인가. 레비나스의 표현을 빌리면 ‘춥고 어두운 밤 내 현관문을 두드리는 과부와 고아의 얼굴을 한’ 그 누군가다.

만섭은 그 얼굴을 봐버렸다. 김수영의 시 ‘사랑’에 등장하는 ‘번개처럼 번개처럼 금이 간 너의 얼굴’을 그만 보아버린 것이다. 만일 그 얼굴들을 보지 못했다면 그는 여전히 교통체증을 유발하는 학생 시위대와 ‘광주의 폭도들’을 욕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영화 ‘택시운전사’ 안에 ‘춘향전’ 있다

김사복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택시 운전사 김만섭 역의 송강호. [쇼박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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